잡지 《아동문학》 주체100(2011)년 제1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영  식

가을철 매미의 노래소리가 짜륵, 짜르륵 귀따갑게 울리고있었다.

푸른 물이 그들먹한 호수같다고나 할가, 돌 한개를 힘껏 올려던지면 금방 쩜버덩― 소리가 날듯싶은 가을하늘엔 구름 한점 없었다.

우뚝우뚝 솟은 산봉우리들사이로 곧게 뻗어내린 길을 따라 두 소년이 나란히 걷고있었다.

《언제가 정말 굉장히도 빨리 올라가지? 크긴 또 얼마나 크구.…》

둘중 키가 훨씬 크고 눈, 코, 입이 다 큼직큼직하게 생긴 대범이가 학송이를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였다.

학송이는 작은 키에 비해 퍼그나 큰 머리를 끄덕일뿐 대답이 없었다.

길옆의 실개천을 따라 한참 내려가 산처럼 우뚝 솟은 언제가 말없이 두 아이를 바라보고있었다.

북방의 된추위를 흔들며 첫 발파소리가 교실의 창문유리를 즈르릉 울리던 그날로부터는 한해남짓이, 봉명천기슭에서 살던 대범이네가 양지바른 서학산중턱에 새로 건설된 현대적인 살림집마을로 이사를 한지는 반년이 넘었다.

저아래 우죽뿌죽 치솟은 산들보다 더 높고 더 큰 언제가 정말이지 빨리도 솟아오르고있었다.

처음엔 발전소언제가 솟아나면 태여난 고향마을의 모든것이 물에 잠긴다는것이 얼마나 아쉬웠던지 몰랐다. 물맑은 봉명천기슭에서 공부도 하고 모래무치잡이와 스케트타기로 즐거운 하루해를 보내던 그 나날.…

그러나 지금은 그 아쉬움이 꼬물만큼도 남지 않았다. 부러운것도 하나 없었다. 원래 집보다 두배나 더 큰 멋들어진 살림집에 도시학교 못지 않게 건설된 3층짜리 학교며 번듯한 문화회관과 병원, 탁아소, 유치원들… 이제 여기에 호수가 생기면 더 멋진 수영장에 넓고넓은 스케트장까지 아이들을 맞아줄것이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이 자그마한 산골마을이 지금은 온 나라가 다 아는 마을로 되였다.

날마다 작가, 기자선생님들이 찾아오고 텔레비죤과 신문에도 여러번이나 소개되지 않았는가.

대범이와 학송이에게 딱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며칠전부터 발그레 익기 시작한 다섯알의 감이였다.

아직은 이 고장에 발전소가 생겨날줄 감감 모르고있었던 세해전 어느 봄날, 대범이와 학송이는 한날한시에 소년단에 입단한것을 기념하여 봉명천기슭에 감나무 한그루를 정히 심었었다.

그 나무에 올해 처음으로 열매가 달린것이였다.

봄에는 꽃도 많이 피고 이어 도토리알만 한 열매가 조롱조롱 맺혔었는데 비바람에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원래 여기는 추운 산골지방이라 감나무가 뿌리내리기 힘들다고 했었다. 그런데도 용케 뿌리를 내린 감나무였다.

《이러다가 다 떨어지는거 아니야?》

《까짓거, 다 떨어져버리면 뭐래? 이제 언제가 다 쌓아지면 여기도 물에 잠길텐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번만이라도 다 익은 열매를 따보는것이 두 아이의 마음속 생각이였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다섯알의 감이 용케 살아남아 토실토실 살이 찌기 시작하였다. 며칠전부터는 기쁨에 겨운듯 빨갛게 달아오르기까지 하는것이였다. 언제도 래년에 들어가서야 다 쌓아진다니 서리를 푹 맞혀 물렁감까지 만들수 있고 비록 한번뿐이지만 따는맛 또한 얼마나 좋을텐가.

그런데 그 달콤한 기쁨도 그만 맛볼수 없게 되였다.

어제 선생님으로부터 당장 가배수로를 막게 되였다는 소식을 들은 대범이와 학송이는 오늘 점심밥을 먹기 바쁘게 서둘러 길을 떠났다. 물렁감은 아니더래도 물에 잠기기 전에 감을 딸수밖에 없었기때문이였다.

마을에서는 유치원꼬마들까지 가배수로막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있었다.

대범이와 학송이도 그날을 기다리는 한편 감아 감아, 어서빨리 익어라고 조바심치고있던 중이였다.

(다섯알이지? 두알씩 가지면 한알이 남는데 그걸 어떻게 할가? 그렇지, 그것도 절반으로 쪼개지 뭐… 아니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니.… 응당 학송이한테 통채로 주어야지.)

이렇게 생각한 대범이는 저도 모르게 히쭉 웃으며 학송이를 돌아보았다.

그의 속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학송이는 무턱대고 히죽히죽 마주웃었다.

집도 앞뒤집, 책상도 한책상에서 공부하는 대범이와 학송이는 탁아소, 유치원시절부터 한송이에 든 밤알처럼 딱친구로 지내왔다. 소년단에도 같은 날에 입단했고 소학교때는 물론 중학생이 된 오늘까지도 한책상에 앉아 공부를 한다.

이들은 집도 서로 가깝고 마음도 가까왔다.

대범이가 학송이를 좋아하는것은 동무에게 솔직하고 동무를 위해 아끼는것이 없는 그 애의 무던한 마음씨때문이다.

두달전 대범이가 독감에 걸려 되게 앓을 때에 학송이가 커다란 토끼곰까지 해가지고와서 《야 대범아, 이걸 먹고 어서 일어나라. 그래야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여다닐게 아니니?》하고 우스개소리까지 했었는데 그때 대범이는 너무 감동되여 눈물까지 흘릴번 했었다.

그때부터 대범이는 단단히 벼르고있었다.…

그새 아이들은 감나무앞에 이르렀다.

이 감나무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 대범이네가 원래 살던 집, 오른쪽에 학송이네 집이 있었다. 지금은 그들이 새집으로 이사갈 때 품이 너무 많이 들어 살려낼수 없다고 떠가지 않은 감나무만이 남아있었다.

주인들을 알아본듯 감나무는 산들한 바람결에 맞추어 팔랑팔랑 잎새를 흔들어주었다.

어제보다 색갈이 더 진해진 감알들이 아이들을 내려다보고있었다.

《학송아, 네가 먼저 따.》

《내가? 그건 왜?》

대범이는 제법 뒤짐을 지며 배까지 슬그머니 내밀었다.

《아 그거야 이 나무를 가꾸는데 동생의 수고가 더 많았으니 응당 네가 먼저 따야지. 이 형님이 먼저 따겠니?》

《뭐, 형님? 흥, 겨우 한달 앞서가지고 밤낮형이야.》

《챠 이런, 네가 태여날 때 왕― 왕― 우는 소릴 내가 이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두 형이 아니야?》

《쳇, 거짓말 말아. 난 웃으면서 태여났단 말이야.》

그 바람에 두 아이는 배를 그러쥐고 깔깔 웃어댔다.

결국 학송이가 3알, 대범이는 2알을 가졌다.

감 한알이라는것이 토끼곰 한마리에 비하면 어방없이 작은것이였지만 동무를 위해 양보했다고 생각하니 대범이의 마음은 마
냥 기뻤다.

《학송아, 우리 마지막으로 봉명천기슭을 걸어보지 않겠니?》

《그래, 걸어보자.》

며칠후면 자기가 물속에 잠겨버리게 된다는것을 꿈에도 모르는 감나무는 어린 주인들을 바래주듯 오래도록 살랑살랑 정답게 속살거렸다.

×

봉명천의 맑은 물도 어제날의 제 동무들을 반겨맞아주었다.

봉명천이 조금 더 흘러내려가 물맑은 룡흥강과 합쳐지는데 바로 그 합수목에 언제가 솟았다.

《대범아, 이제 가배수로를 막으면 좔― 좔 소리를 내며 흐르던 봉명천이 꽤나 속상해하겠지.》

학송이가 크고 둥근 눈을 간잔지런히 쪼프리며 하는 말이였다.

《왜 속상해하겠니? 좋아하지. 쓸모없이 흐르던 물이 전기를 꽝꽝 생산하게 됐는데…》

대범이가 턱을 쳐들자 학송이도 질세라 한마디했다.

《전기뿐일게 뭐야? 물고기두 많이많이 기르지.》

《흥, 또 있다. 호수가 생기니 경치도 좋을게 아니야?》…

두 아이는 어느새 저마다 알아맞추기를 하고있었다.

《됐다, 그만하구 우리 저 산꼭대기에 올라가보자. 거기선 언제가 한눈에 더 잘 내려다 보이거던.》

대범이의 말에 학송이도 얼른 찬성하였다.

두 아이는 씨근씨근 가쁜숨을 톺으며 산언덕을 올라갔다. 언덕우에 올라선 두 아이는 갑자기 말뚝처럼 굳어졌다. 자기들이 씨름터라고 이름붙인 풀밭에 웬 아저씨가 화판을 마주하고 앉아있었기때문이였다.

《그림을 그리는구나.》

《그래, 화가아저씨같아.》

호기심이 가득찬 두쌍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

대범이와 학송이는 그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아저씨의 머리너머로 화판에 눈길을 보내던 두 아이의 입에서는 약속이나 한듯 탄성이 울려나왔다.

《히―야! 멋있구나.》

《아이쿠!》

그만에야 깜짝 놀란 아저씨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원 녀석들, 깜짝 놀랐군.…》

《이건 우리 마을같은데…》

떠듬떠듬 말하는 학송이의 눈에는 혹시 아니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비껴있는듯싶었다.

《오냐, 머지않아 대인공호수가 생겨날 래일의 룡흥리란다. 마음에 드냐?》

나이가 지숙해보이는 그 아저씨는 마치도 심사원들앞에 선듯 진중한 표정이였다.

《멋있어요. 아니아니, 기딱 막혀요.》

대범이는 눈까지 스르르 감았다뜨며 부르쥔 주먹을 내흔들었다.

정말이지 멋있었다. 꼭 살아움직이는것만 같은 그림이였다.

푸른 하늘이 통채로 내려앉은듯 출렁이는 호수의 물결이며 서학산중턱에 줄지어서있는 새 문화주택들과 덩지 큰 건물들, 왼켠에 그려진 구룡산중턱에는 또 얼마나 멋진 화폭이 펼쳐져 있는것인가.… 산봉우리들이 거꾸로 비낀 맑은 물우에는 화려한 려객선까지 그려져있었다.

어찌보면 아닌것 같고 다시 보면 분명한 대범이네 고향마을이 그림우에 담겨져있었다.

《야! 이게 정말 우리 마을이란 말이예요?》

놀라움에 가득찬 학송이의 입은 항 벌린채 다물어질줄 몰랐다.

《왜, 비슷하지 않냐?》

《아― 아니예요.》

성미급한 대범이는 아저씨에게 괜히 별걸 다물어보았다는듯 학송이에게 눈을 흘기고나서 구룡산중턱의 고층살림집들을 가리켰다.

《그런데 아저씨, 이건 무슨 살림집들이나요?》

《그건 야영소와 휴양소란다. 이제 호수가 생겨나면 여긴 얼마나 아름다와지겠냐? 이 아름다운 경치를 그래 너희들만 즐기겠느냐? 야영소랑 휴양소랑 세워놓고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와서 구경도 하고 즐겁게 휴식도 하게 해야지.》

두 아이의 눈동자들은 황홀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야영소, 휴양소, 려객선…

대범이는 가슴이 부풀어오를수록 큰숨을 들이쉬며 고향산천을 새삼스레 둘러보았다.

(야, 우린 정말 좋은 곳에서 살게 됐구나.)

그 마음을 엿본듯 아저씨는 웅글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구나. 도시부럽지 않은 고향마을에서 살게 되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아름다운 고향을 더 잘 꾸리기 위해 공부도 잘하고 몸도 튼튼히 단련해야 한다. 앞으로 이 고장의 당당한 주인으로 자라나야지.…》

《예!》

그들은 목소리를 합쳐 씩씩하게 대답하였다.

주인!… 그것도 당당한 주인!…

아직은 그 두 글자에 담겨진 크고큰 뜻을 다 알수는 없었지만 대범이의 가슴은 끝없는 자랑으로 마냥 부풀어오르고있었다. 불현듯 노래소리 가득 실은 유람선을 씽씽 몰고가는 자기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그려졌다. 코흘리개 꼬마들이 자기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본다. 머리 허연 할아버지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생각하니 두어깨가 으쓱 솟구쳐오른다.

(그래, 난 유람선선장이 될테다.)

아저씨를 뒤에 두고 언덕길을 내려오던 대범이는 넌지시 학송이를 돌아보았다. 학송이는 기분이 떴을 때마다 하는 버릇대로 귀바퀴를 슬슬 내려쓸고있었다.

《학송아, 넌 이담에 뭘 할테야?》

학송이가 입을 짭짭 다시고나서 대답했다.

《난 벌써 정해놨거던.》

《그래? 뭔데?》

《유람선선장이 되겠단 말이야.》

《뭐?》

순간 대범이의 두눈이 떼꾼해졌다.

하― 벌어진 입에서는 숨소리조차 나가지 않았다.

하, 이거… 내 속심을 미리 들여다보고 우정 골려주는게 아니야?

《야, 그건 내거야, 내거.》

《뭐라구?》

이번에는 학송이의 두눈이 왕밤알만 해졌다.

대범이는 그 《왕밤알》을 지그시 쏘아보며 단마디로 결론을 내렸다.

《넌 선장이 못돼.》

《왜?》

《그 배야 큰 배인데 체통이 못해두 나정도는 되여야지 너처럼 작아서야 어울리겠니?》

《흥, 배를 뭐 체통으로 모나?》

학송이는 결코 대범이를 골려주려는것이 아니였다. 동가슴을 쑥 내밀고 맞서는것으로 보아 쉽사리 물러설 잡도리도 아니였다. 언제나 쌍둥이처럼 생각마저 꼭같아서 더욱 가까왔던 학송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그 꼭같은 생각이 말썽을 일으키고야만것이였다. 하긴 학송이는 결코 참하기만 한 애가 아니였다. 고집이 땅속에 박아놓은 바위돌처럼 단단한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나 대범이도 양보할수 없었다. 생억지를 써서라도, 안되면 토끼곰 열마리쯤 해먹이면서라도 그 선장자리는 떼우고싶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굴리던 대범이는 한발 뒤로 물러서서 학송이를 구슬리기 시작했다.

《얘, 너처럼 꼼꼼한 애가 유람선선장이나 하겠니? 너도 아까 야영소, 휴양소랑 봤지? 네 성격엔 아마 야영소소장이 제격일거야. 그렇게 되면 야영생아이들이 〈소장선생님, 소장선생님.〉하며 얼마나 존경하겠니. 나 역시 〈소장동무.〉아니, 〈소장선생.〉이렇게 불러주겠단 말이야. 정말이야.》

얼마나 열변을 토했던지 대범이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싫어, 선생님이라는 부름이 그렇게 좋으면 네가 소장이 되려마. 자 〈소장선생〉, 좀 생각해봐. 선장이 되자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물을 무서워하지 말아야겠지? 개구리헤염이나 칠줄 알아가지구선 어림도 없어요. 못해도 나쯤은 돼야지.》

학송이의 반박에 대범이는 말문이 딱 막혔다.

그도 그럴것이 체격이나 축구며 씨름에서는 학송이가 대범이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물속에서는 영 반대였다.

무슨 조화인지 물속에만 들어가면 학송이의 통통한 몸집은 곱등어 한가지였다.

대범이는 불쑥 밸굽이 동해올랐다. 나라고 곱등어가 못된다는 법이야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때까지는 많고많은 날과 달이 있다. 내가 만약 수영을 배운다면 키가 작은 학송이보다 훨씬 더 빠를것이다.…

《걱정말아, 나도 이제부턴 수영을 직심스레 배울테야.》

《암만 그래두 선장은 내가 될테야.》

그리도 다정하던 두 친구는 뜻밖에도 전혀 생각지 않았던 말다툼을 하게 된것이였다. 대범이는 가슴이 다 선뜩해졌다. 과연 이 승벽내기가 언제 어떻게 끝날것인지 알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이러다 우리사이가 튀는게 아니야?)

《됐어, 이젠 그만 내려가자. 숙제도 해야지.》

학송이가 이렇게 말하며 저먼저 털썩털썩 언덕길을 내려갔다. 대범이의 마음엔 학송이가 멀어져가는것이 아니라 눈앞에 오락가락하던 그 크고 화려한 유람선이 저 멀리로 사라져버리는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래, 지금은 그만하자. 그때까진 아직 멀고도 멀었지.…)

하지만 대범이는 그날 밤 당장 유람선을 보게 될줄은 짐작도 못하고있었다.

×

달빛이 대낮처럼 밝은 산중의 호수…

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들이 깊은 밤중인데도 훨훨 날아다닌다.

출렁이는 물결우로 비늘이 하얀 물고기들이 쩜벙쩜벙 튀여오른다. 그런데 대범이는 물속에서 도무지 전진할수가 없었다. 두팔, 두다리를 맹렬히 허우적거렸지만 몸은 그냥 제자리돌이를 하고있었다. 개구리헤염때문에 《동생》에게 선장자리까지 아니, 그보다도 유람선의 당당한 주인의 자리까지 떼우게 된다는 생각에 대범이는 젖먹은 힘까지 짜내여 요동을 쳤다. 드디여 대범이는 씽씽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때였다. 《붕―》 하는 배고동소리와 함께 크고 멋진 유람선 한척이 야영생들과 휴양
생들을 한가득 태우고 물속에서 솟아난듯 눈앞에 나타났다. 자기가 그려보던 배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화려했다. 물방울이 맺힌 대범이의 눈은 별처럼 반짝이였다.

(내 배로구나! 날 부르는구나!)

대범이는 물살을 헤가르며 쏜살같이 나아갔다.

잠간새에 따라잡아 배전에 붙었는데 별안간 호령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녀석, 너 정신 나갔냐? 죽자고 그래?》

깜짝 놀라 머리를 쳐들었는데 이게 뭔가? 아니 글쎄 학송이가 배전에서 자기를 엄한 눈길로 내려다보고있는것이 아닌가.

(아니, 학송이가 선장?…)

너무 놀라 하 벌린 입으로 물이 꼴깍 들어왔다. 학송이는 좋아라 깔깔 웃어대더니 알락달락한 구명대 한개를 휙 던져주는것이였다.

《이녀석아, 넌 아직 어려. 그거나 붙잡아라.》

유람선은 또 한번 붕― 소리를 내더니 쏜살같이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같이 가자, 학송아. 아니, 같이 가자요, 선장동지!》

고래고래 웨치던 대범이는 있는 힘껏 몸을 뒤채여 물우로 한길이나 솟구쳤다.…

그찰나 정신을 차리고보니 그는 이불우에 앉아있었다. 꿈이였다.

(에― 그거 정말 기분 나쁜 꿈이로구나.)…

구룡산의 아침노을이 붉게붉게 타오르면서 창유리를 어루만지고있었다. 책가방을 들고 뜨락을 나서니 노상 그런것처럼 학송이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그를 보는 순간 방금전에 꾼 꿈이 생각나 허구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혹시 저 애도 나하구 같은 꿈을 꾸지 않았을가? 그렇다면 망신인데…)

학송이에게 다가간 대범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어제 밤 무슨 꿈을 안 꿨니?》

《꿈? 무슨 꿈?》

학송이가 어안이 벙벙해지자 대범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제꺽 말머리를 돌렸다.

《아, 아니야.… 오늘 날씨가 참 좋구나.》

사실 날씨는 그닥 좋지 않았다.

뭉게뭉게 떠돌기 시작한 구름속에 해가 숨어버려 흐릿한 아침이였다. 그러나 대범이의 마음은 개운해졌다. 아무리 생각이 꼭같다한들 꿈까지 같은것을 꾸지는 않았을것이다.

(괜히 겁먹었댔구나.…)

기분이 좋아진 대범이는 중얼중얼 코노래까지 불렀다.

《너 왜 그렇게 좋아하니?》

학송이의 물음에 고개를 돌리니 웬걸, 그 애도 생글생글 웃고있었다.

《넌 나보다 더 기분좋았구나 뭐.》

대범이가 슬쩍 한마디 던지자 학송이는 키드득 웃더니 그의 팔목을 턱 잡는것이였다.

《대범아, 그렇게 큰 호수에 배가 한척만 생기겠니? 적어도 두척이상은 생기겠지.》

순간 대범이의 억실억실한 눈이 번쩍 빛을 뿌렸다.

《정말?》

학송이의 말이 옳을수도 있지 않는가. 아니, 꼭 맞을것이다. 유람선도 있어야 하고 여기에서 저 서학산 안쪽에 자리잡은 길천리며 고성리까지 오가는 려객선도 있어야 할게 아닌가. 대범이는 다른 손으로 학송이의 다른 손을 꼭 잡았다.

《맞아. 그럼 우린 어른이 돼서도 꼭같은 선장이 될수 있겠구나.》

《그럼 넌 이 동생하구 떨어지려고 생각했니? 그래가지구도 형이라구… 내참.》

대범이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학송인 역시 내 친구야. 키는 작아도 생각은 크단 말이야.…)

구름속의 해님이 잠간 나타나 벙실 웃음을 보내주었다.

×

《땡―땡―땡.》

세번째 수업마감을 알리는 종소리가 온 학교에 울려퍼졌다. 창밖에서는 아까부터 부슬부슬 소리없이 비가 내리고있었다. 우리 나라의 산과 강에 대하여 재미나게 설명해주시던 지리선생님이 교실문을 나서자마자 담임선생님이 급히 들어오셨다. 왜서인지 선생님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두눈은 물기어린듯 반짝이고있었다.

의아해진 아이들은 서로서로 호기심어린 눈길들을 마주쳤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1학년생들인 대범이와 학송이네를 다심한 어머니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지금 너무도 심각해보였다. 대범이는 왜서인지 가슴이 두근거리는것을 느끼며 슬며시 학송이를 돌아보았다. 초롱초롱한 눈빛들을 빙 둘러보시던 선생님이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동무들, 기뻐하세요. 아버지장군님께서 방금전… 현지지도의 그 바쁘신 길에서 완공단계에 들어선 우리 마을 발전소건설장을 또다시 다녀가셨습니다.》

한순간 교실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그 다음엔 파도소리같은 탄성이 터져올랐다.

대범이와 학송이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가슴이 쿵쿵 높뛰고 코잔등이 시큰해지며 눈앞이 뿌잇해왔다.

그토록 바쁘신 아버지장군님께서 또다시 찾아오시다니,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내리던 보슬비가 지금도 그냥 한모양으로 내리고있었다.

그러니 아버지장군님께서 비를 맞으시면서, 차디찬 가을비를 맞으시면서 건설장을 돌아보셨겠구나.…

여느때 같으면 눈깜박할사이에 지나가버렸을 수업시간이 오늘은 왜 이리도 굼뜰가.…

네번째, 다섯번째 수업시간…

성미급한 대범이는 벌써 열번이나 넘게 언제쪽을 바라보며 엉치를 들썩거렸다. 학송이며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여 마지막수업을 끝내는 종소리가 울렸다.

대범이와 학송이는 언제 어떻게 가방을 둘러메고 학교정문을 나섰는지도 몰랐다. 그뒤로 온 학급 아니, 온 학교 아이들이 달려나오고있었다.

마침내 대범이와 학송이는 언덕우에 올라섰다. 차츰 비가 멎으며 하늘이 건듯 맑아지기 시작하였다. 저 아래 언제우에서 아버지장군님을 모셨던 환희와 긍지를 가득 안고 힘찬 전투에 열을 올리는 인민군대아저씨들의 모습이 한눈에 안겨들었다. 마을의 할아버지들과 아버지, 어머니들도 모두 떨쳐나와 서로서로 기쁨의 이야기꽃을 피우고있었다.

골목대장으로 소문난 학송이의 동생 학명이도 한무리의 꼬마들과 함께 도로옆 꽃밭에 자갈을 정히 깔고있었다.

문득 대범이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뿌렸다. 언덕우에 서서 저 멀리 하늘가를 점도록 바라보고있는 화가아저씨를 발견했기때문이였다. 아저씨의 어깨에는 큼직한 화판이 메워져있었다.

《아저씨!》

학송이가 먼저 소리쳐불렀다. 아저씨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대범이가 앞장서 아저씨에게로 달려갔다.

《아니, 너희들 어제 만났던 애들이로구나.》

아저씨도 반가운듯 두 아이의 손을 와락 잡아쥐였다.

학송이가 아저씨의 팔에 매달리며 성급히 물었다.

《아저씨, 아버지장군님께서 제일먼저 여기로 오셨겠지요?》

《아니야.》

대범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저씨앞에 나섰다.

《아버지장군님께선 군인건설자아저씨들이 전투를 벌리는 저 언제우에 제일먼저 오르셨을거야, 그렇지요?》

화가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언제우에 제일먼저 오르셨단다. 그런데 얘들아, 아버지장군님께선 저 이깔나무앞에서 오래도록 서계셨다는구나.》

아저씨는 손을 들어 언제쪽으로 뻗은 도로옆에 서있는 이깔나무를 가리켰다.

《예?! 저 이깔나무앞에요?》

애들도 그 이깔나무를 알고있었다. 거기에 깃든 사연도 잘 알고있었다. 지난해 봄 언제로 뻗어갈 도로를 건설하던 인민군대아저씨들앞에 뿌리가 반나마 드러난 이깔나무 한그루가 나타났었다. 도로설계대로 하자면 그 이깔나무는 꼭 뽑아버려야 했다. 하지만 군인건설자아저씨들은 그 나무 한그루를 살려내기 위해 설계를 고치고 도로를 에돌아 뽑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드러난 뿌리우에 질좋은 흙을 한자동차나 날라 다지고 그 둘레에는 특색있는 모양의 돌화분까지 정히 쌓아주었던것이였다.

대범이와 학송이는 약속이나 한듯 그 이깔나무앞에 다가섰다. 등뒤에 다가온 화가아저씨가 그들의 어깨에 따스한 손을 얹었다.

《얘들아 , 이 이깔나무앞에 서고보니 아버지장군님의 심중의 말씀이 나에겐 이렇게 들려오는것만 같구나. 여기에 바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진실한 애국심이 다 비껴있다고… 비록 한그루 나무일지라도 그것을 조국의 귀중한 재부로 여기고 애지중지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이 진짜배기애국심이며 바로 그런 애국심이 억년기초를 이루어 저 언제는 저렇듯 높고 억세인것이며 우리의 조국은 영원히 부강번영할것이라고…》

아이들의 가슴은 쿵쿵 높뛰였다.

진짜배기애국심… 그 기초우에 굳건히 솟아있는 우리의 조국…

문득 대범이는 학송이의 손을 꼭 잡았다. 꼭 잡은 손길을 통해 대범이의 마음속 뉘우침이 학송이에게로 흘러가고있었다.…

그런데 우린 너무나도 몰랐었지.

열매 몇알은 아까와하면서도 그 열매를 자래운 뿌리에 대해서는 감감 잊고있었지.…

고향의 당당한 주인이 되여 어깨으쓱 자랑할 마음은 앞세우면서도 떳떳한 주인의 자격을 안겨주는 그렇듯 진실하고 깨끗한 애국심은 생각도 못했었지.…

《학송아!》

대범이는 낮으나 힘있는 목소리로 불렀다.

《대범아!》

학송이도 마주 부르며 대범이와 눈길을 마주쳤다. 대범이는 그의 눈빛속에서 자기와 꼭같은 속마음을 읽고있었다. 더 말이 없어도 똑똑히 알수 있는 가슴속의 새 결심… 문득 대범이는 가슴이 그들먹해지고 키가 훌쩍 커지는것만 같았다. 자기의 마음속에 하나의 언제가 우쩍우쩍 솟구쳐오르는것을 끝없는 기쁨속에 느끼고있었다.

《학송아, 가자.》

《그래, 어서 가자.》

두 소년은 손에 손을 맞잡고 씨엉씨엉 힘차게 걸음을 내짚었다.

《아니, 얘들아, 갑자기 웬일이냐?》

어리둥절해진 화가아저씨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날아왔다.

《아저씨, 우린 나무뜨러 가요.》

《아저씨, 우린 이 언덕우에 감나무를 옮겨심겠어요.》

아직은 화가아저씨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다는 모른다. 이제 알게 되면 아마 아저씨의 화판에 앞으로의 대범이와 학송이의 모습도 그려질수 있을것이다. 먼 후날의 그 모습이 화려한 유람선의 끌끌한 선장일지 혹은 소년단야영소의 소장선생님일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명백한것은 고향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자기 살점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진실한 애국자의 모습, 앞날의 당당한 주인의 모습이라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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