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101(2012)년 제1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1 등
류 경 철
위대한 대원수님의 탄생 100돐을 앞두고 학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발표되게 될 첫 론문을 안고 지금 두 대학생청년이 룡남산마루로 숭엄히 발걸음을 옮겨짚고있었다.
금혁이와 운성이였다.
흘러온 자기들의 중학시절을 더듬어보며 그들은 해빛찬란한 룡남산마루로 한걸음 두걸음 오르고있었다.
×
학교에서 돌아온 운성이는 도무지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힐수 없었다.
《운성아, 그러지 말고 어서 저녁밥을 먹으렴.》
벌써 세번째나 되는 어머니의 독촉이였다. 하지만 운성이는 방바닥에 아예 벌렁 드러눕고말았다.
입맛이 써도 여간만 쓰지 않은 운성이였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도 학년적으로 단 한번 1등의 자리를 다른 애들에게 양보할줄 모르던 운성이가 3학년생이 되여 꼭 넉달만에 1등의 자리를 내놓게 된것때문이였다. 그것도 별로 시답지 않게 여기던 금혁이한테…
운성이는 이마살을 찌프리고 그냥 씨근거렸다.
운성이네 학교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꼭꼭 학년별로 다과목시험을 치군 했다. 그리고는 학년별로 매 학생들의 종합점수와 등수를 커다란 성적게시판에 올리군 했다.
운성이는 지금껏 선생님들과 동무들속에서 확고히 공인된 1번수였다. 그런데 이번달 시험성적결과는 운성이뿐아니라 온 학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다른 애들의 말대로 한다면 그야말로 대지각변동이 일어난것이였다.
운성이보다 키도 작고 처녀애처럼 곱살하게 생긴 한학급 금혁이가 단연 1등의 영예를 쟁취했던것이다. 지금까지 늘쌍 5등계선에서 맴돌군 해서 운성이가 경쟁자로도 여기지 않던 바로 그 금혁이가.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어 운성이는 그냥 입만 다셨다.
그의 눈앞에는 오똑한 금혁이의 코날이 자꾸만 얼른거렸다.
무엇이 과연 금혁이를 단번에 1등의 자리에 올려세웠을가? 금혁이의 지식의 키가 어떻게 그리도 부쩍 솟구쳤을가?…
운성이는 팔베개를 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금혁이! 어디 두고보자!)
운성이는 아래입술을 꼭 옥물었다.
마을로 향한 둔덕길에 들어서던 운성이는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자기앞에서 총총히 걸음발을 다그치는 금혁이의 모습이 눈에 띄였기때문이였다.
그러자 첫 수업이 끝난 뒤 휴식시간에 있었던 일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지각변동이 있은 다음날이여서 교실안은 수업시작전부터 떠들썩했다. 교실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금혁이의 손을 맞잡고 막 흔들어대는 아이들, 축하의 꽃송이까지 척 안고온 녀동무들, 명랑한 웃음소리…
《너무 이러지들 마.》
얼굴이 빨갛게 익은 속에서도 한껏 긍지에 넘친 금혁이의 모습이 퍽 의젓하게 안겨왔다.
운성이도 금혁이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하면서도 다음달에는 금혁이에게서 꼭 1등의 자리를 되찾으리라 더욱 단단히 마음다졌다.
그런데 일은 첫번째 수업이 끝난 뒤에 일어났다.
운성이와 한책상에 앉는 딱친구 수일이가 갑자기 엉뚱한 생각을 해냈기때문이였다. 아까부터 그냥 금혁이쪽을 흘끔흘끔 곁눈질해보던 그 애가 무슨 감투끈인지 온 학급동무들앞에서 다짜고짜 운성이와 금혁이사이에 팔씨름경기를 선포했던것이다.
학교적으로 소문난 익살꾸러기인 수일이!
키가 쑥 빠진 수일이는 만년필을 입가에 척 가져다대고 우습강스럽게 입귀를 실룩거렸다.
그런 다음 냅다 방송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자, 3학년 1반동무들! 이제부터 공훈방송원 길수일동무가 현지실황중계를 해드리겠습니다. 자자, 집중해서 들으십시오. 동무들도 다 알다싶이 최첨단과학과 기술의 시대인 오늘날 영예의 1번수자리를 끝까지 고수해낸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그 1번수의 자리를 향해 용약 도전해나선다는것도 참으로 커다란 용기와 노력, 투지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것입니다.
그럼 우리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인 박운성동무와 김금혁동무의 마음속에서 지금 어떤 말들이 소용돌이치고있는지, 어떤 불같은 결의들이 끓고있는지 짧은 휴식시간의 팔씨름경기를 통하여 보고 듣도록 해보겠습니다.
자자, 조용하시오. 경기는 날씨에 관계없이 즉시 진행될것이며 꼭 단판으로 승부가 결정될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방송에 길수일 공훈방송원이였습니다. 청취자여러분! 고맙습니다!》
그 애의 능청스러운 말솜씨와 익살궂은 몸동작에 모두들 깔깔 허리를 꺾고 돌아갔다.
한순간 아연하여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던 운성이와 금혁이는 마침내 결심이 선듯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교실 한가운데의 책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섰다. 어깨성을 쌓은 동무들이 편을 갈라 와와 응원들을 했다.
키가 크고 몸집이 다부진 운성이와 달리 금혁이는 체소해보였다. 그러나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와 상큼한 코날은 어딘가 록록치 않은 인상을 안겨주고있었다.
두 아이는 드디여 서로 마주앉았다. 책상우에 팔굽을 잔뜩 고이고 자세들을 바로했다.
길수일 공훈방송원이 경기심판까지 도맡아나섰다.
그런데 수일이가 막 경기시작을 알리려는찰나 금혁이가 《가만!》 하고 소리쳤다.
《운성아, 우리 오른팔이 아니라 왼팔로 경길 하자!》
운성이는 그 말에 두눈을 치떴다.
《그건 왜?》
《난 원래 왼손잡이야. 단판경기라는데 난 지고싶지 않거던.》
금혁이는 한쪽눈까지 찡긋해보이며 저 먼저 왼쪽팔소매를 쓱쓱 걷어붙이는것이였다.
운성이는 한순간 어리벙벙했으나 인차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말았다. 누군들 경기에서 지자고 하겠는가? 금혁이의 마음이 충분히 리해되였다.
하지만… 안될걸! 아무렴 이 운성이가 오른팔이든 왼팔이든 팔씨름에서야 금혁이를 납작하게 눌러놓지 못할가? 애초에 나한테는 어림도 없을걸!
《좋아! 금혁아, 그건 너 좋을대로 하려무나.》
운성이는 너그럽게 웃어보이며 책상우에서 오른팔을 내리웠다. 그러며 먼저 책상우에 뻗쳐놓은 금혁이의 왼팔뚝곁에 제 팔뚝을 가져다댔다.
금혁이의 팔목은 운성이에 비해 역시 형편없이 가늘어보였다. 운성이는 동무들을 향해 히쭉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데 일두 참!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어찌된 일인지 운성이는 좀처럼 힘을 쓸수가 없었다. 생각밖으로 금혁이의 왼손아귀힘이며 팔뚝힘이 어지간히 억세였던것이다.
운성이의 이마에 좁쌀알같은 땀방울이 맺히는것이 보였다. 으스러지게 틀어쥔 두 애의 손이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그때 《따르릉!》 하고 다음번수업을 알리는 예비종소리가 울렸다. 운성이가 그 소리에 피뜩 고개를 돌리는찰나였다.
한순간을 노리던 금혁이가 때를 놓치지 않고 운성이의 손목을 드세게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손목을 꺾이운 운성이가 아무리 모지름을 써봤으나 금혁이의 그 힘에 도저히 견디여낼수 없었다.
마침내 운성이의 손이 먼저 쾅 하고 책상우에 떨어지고야말았다.
《야! 금혁동무가 이겼다!》
일시에 터져오른 환성으로 교실안은 떠나갈듯 했다.
수일이는 뻑뻑 뒤더수기만 긁고 운성이도 그만 멍하니 굳어져버리고…
그날 깊은 밤이였다.
하늘에서는 쟁반같이 크고 둥근 달이 유유히 헤염쳐가고있었다.
하지만 운성이는 가도가도 끝없는 수학문제풀이바다를 힘겹게 헤쳐가고있었다.
소조선생님이 오늘 과제로 내준 문제들가운데서 아직 열문제나 못 풀었던것이다. 풀이방법이 어찌나 묘하고 까다로운지 벌써 한시간이 넘도록 좀처럼 풀이열쇠를 내놓지 않는 문제들이였다.
(야, 이거 정말 죽여주는데…)
시계바늘은 벌써 11시를 넘어 자정으로 찰칵찰칵 달려가고있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운성이는 찬물에 어푸어푸 세면을 하고 다시금 문제풀이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그만 피곤에 못이겨 끄덕끄덕 졸기까지 했다. 후닥닥 놀라 깨여나 허벅다리를 아프도록 꼬집었다.
문득 금혁이 생각이 났다.
(금혁인 이 문제들을 다 풀었을가? 다 풀었다면 어떤 방법으로 풀었을가?)
몹시 궁금해났다.
(한번 전화 걸어볼가?)
책상우의 전화기를 끄당겨 앞으로 가져오던 운성이의 손이 갑자기 굳어져버렸다.
금혁이가 먼저 잠자리에 들었는지도 모르는데다가 자존심이 불쑥 살아났던것이였다.
(지금까지 1번수이던 내가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람.)
운성이는 다시 두눈을 부비고 문제풀이에 달라붙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가?
전화종소리가 은은히 울리는 바람에 운성이는 문제풀이장우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이 깊은 밤중에 누굴가?)
졸음이 가득 실린 눈을 번쩍 뜨고 송수화기를 들자 뜻밖에도 금혁이의 반가움에 찬 목소리가 울려나오는것이였다.
《야, 운성이로구나! 난 또 네가 먼저 잠들었으면 어쩌나 했지. 그래 소조선생님이 오늘 내준 수학문제들을 다 풀었니? 못 풀었다구? 응, 그럴수 있어. 풀이방법이 얼마나 묘한지 나도 방금전에야 수수께끼를 풀었어. 풀이방법을 찾고나니 불쑥 네 생각이 들더구나. 운성이도 지금 이 문제들때문에 속태우고있지 않을가 하고 말이야.
그래, 운성아! 밤이 너무 깊어 방해되지 않는다면 우리 둘이서 그 문제들을 함께 풀어보는게 어때? 내 당장 너의 집에 건너갈테니.》
운성이는 그만 코허리가 시큰해졌다.
금혁이에 비하면 자기는 정말 옹졸했다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갈마들었다.
운성이는 서둘러 송수화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금혁아, 정말 고마워. 그러나 네가 발걸음을 하지는 말아. 내가 이제 당장 너의 집으로 달려가겠어. 바로 이 제자가 말이야.》
운성이는 금혁이가 뭐라고 말릴 사이도 없이 송수화기를 놓고 자리에서 뛰쳐일어났다.
그리고는 한달음에 큰길을 사이에 둔 금혁이네 집으로 달음질쳐갔다.
대문밖에까지 나와 그를 기다리고있던 금혁이가 운성이를 얼싸안고 돌아갔다.
밤하늘에서는 둥근달도 벙글벙글 웃고있었다.
금혁이의 방에 들어서는 첫 순간부터 운성이는 정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눈에 피발이 잡혀가지고도 밝게밝게 웃음짓는 금혁이, 한쪽벽면을 꽉 채운 책장들이며 금혁이의 결심을 그대로 적어놓은듯 한 커다란 족자들…
그 족자들에서는 막 꿈틀대며 살아움직이는듯 한 붉은색글발들이 눈부시게 빛을 뿌리고있었다.
운성이를 더 놀라게 한것은 금혁이의 책상우에 무드기 쌓여있는 높은 수준의 참고서들이였다.
그속에는 여러권의 국제수학올림픽문제집이며 속독법에 대한 책까지 있었다.
운성이는 금혁이앞에 절로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는 기껏해야 전국수학경연 1등을 바라보고있었지만 금혁이는 벌써 국제수학올림픽경연까지 내다보고있지 않는가.
자기는 또 과학과 기술의 정보량이 하루에만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오늘날 남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려면 책을 많이 보는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책을 빨리 보고 리해하는 능력이 높아야 한다며 속독법을 익힐데 대한 선생님의 말씀을 후날에 해도 늦지 않는다는 식으로 귀담아듣지 않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금혁이는 그것까지 벌써 알심있게 파고들고있는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금혁이는 운성이를 멀리 앞서 쏜살같이 달려나가고있었다. 아니, 힘껏 나래를 퍼덕이며 저 하늘높이 훨훨 날아가고있었다.
끊임없이 높은 목표를 세우고 이악하게, 꾸준하게, 정열적으로!
운성이는 금혁이를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금껏 자기보다 키도 작고 몸도 약해보이던 그 애가 더없이 의젓하고 름름하게 돋보이는것이였다.
(그래, 난 지금껏 우물안의 개구리였어. 금혁이의 1등은 너무도 응당한거야.)
운성이는 금혁이처럼 끝없이 높은 목표를 세우고 피나게 노력해오지 못한 자신을 아프게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한동안 굳어진듯 움직일줄 모르던 운성이는 금혁이가 팔굽을 툭 건드려서야 생각에서 깨여났다.
《운성아,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니?》
《으―응? 그저 좀…》
운성이는 히쭉 웃어보였다.
《오늘 아침 팔씨름경기때 내가 너에게 진것이 응당하다고 생각하던중이야.》
《뭐라구? 너두 참… 하하하.》
둘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난 운성이는 금혁이의 손을 꼭 감싸쥐며 물었다.
《그런데 금혁아, 너 어떻게 수학문제풀이방법을 놓고 나에게 전화해줄 생각을 다 했니? 저, 뭐라고 말할가… 우리야 사실 경쟁자가 아니니?》
《경쟁자? 그 말은 맞아. 지금 경애하는 아버지장군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온 나라에 경쟁열풍이 힘차게 불고있는것만 봐도 그렇지. 하지만 우리의 모든 경쟁이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경쟁인지를 한번 생각해보렴. 우리 나라를 온 세상에 높이 우뚝 일떠세우시려는 아버지장군님의 그 리상을 너와 나 모두가 더 활짝 꽃피우기 위한 그런 경쟁이 아니겠니.
우리 이 길에서 함께 1등의 패권을 쥐자는거야.》
금혁이는 주먹까지 내흔들며 불을 토하듯 웨치는것이였다.
운성이는 붉어진 눈시울을 그냥 슴벅거리며 꽉 틀어쥔 금혁이의 그 주먹을 힘껏 부여잡았다.
《금혁아!》
《운성아!》
두 아이는 서로 굳은 결심을 다진채 어른들처럼 또다시 힘차게 끌어안았다.
×
다음해!
금혁이와 운성이는 드디여 전국수학경연에서 특등과 1등을, 전국중학생들의 다과목경연에서는 1등과 2등을 쟁취했다.
또한 그 다음해부터는 국제수학올림픽에 참가하여 금혁이는 두번씩이나 단연 1등의 영예를, 운성이도 1등의 영예를 떨침으로써 세계의 하늘가에 공화국기발을 펄펄 휘날리고 아버지장군님께 크나큰 기쁨을 안겨드리였다.
오늘은 온 나라의 축복속에 그 이름도 자랑높은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세계적인 과학자로 자라날 푸른 꿈을 안고 배움의 나래를 더 활짝 펼쳐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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