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101(2012)년 제1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다시 받은 점수

                                                최 정 심

수업이 시작되였습니다. 좀전까지 왁작 떠들던 교실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습니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머루알같은 서른여섯쌍의 눈동자들이 선생님을 쳐다보고있었습니다.

《학생동무들… 이 시간에는 먼저〈오〉자로 시작되는 단어를 찾아봅시다. 모두 잘 생각해서 대답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 바쁘게 여기저기서 야무진 목소리들이 총알처럼 튀여나왔습니다.

《오이》, 《오리》, 《오가리》…

《예, 잘 찾았어요. 그리구 또?…》

그러자 또다시 《오동나무》, 《오토바이》하며 큰소리로 불러댔습니다. 어떤 애들은 생각이 잘 안 떠오르는지 게사니처럼 한껏 목을 빼들고 《오-》하고 소리만 내며 뒤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크게 소리치는지 교실이 다 떠나갈듯싶습니다. 그중에서도 훈이의 목소리는 류별나게 크고 쨋쨋하게 들렸습니다.

《오각별.》

《훈이학생이 아주 잘 찾았어요.》

선생님의 말씀에 훈이는 우쭐해서 코밑을 훔치고나서 아이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또 다른 단어…》

선생님의 물음은 계속되였습니다.

칭찬을 독차지할 생각에 마음이 들떠난 훈이는 또 다른 단어를 찾아내고싶어 애썼습니다.

그렇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아 《또… 또…》하고 연송 갑자르기만 하였습니다.

《좀 조용해. 어디 생각이나 해보겠니? 계속 또… 또 하면서.》

듣다못해 철국이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퉁을 놓았습니다.

그 바람에 와뜰 놀란 훈이는 더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또 오리발이 있습니다.》

불쑥 튀여나온 말에 아이들은 와그르 웃어댔습니다.

놀려대기 좋아하는 몇몇 애들이 《오리발, 오리발》하면서 그냥 외워대며 키득대는 소리가 귀따갑게 들려왔습니다.

《쳇, 저희들은 찾지도 못하면서. 밸이 꼬이는거지?》

훈이는 캐득캐득 웃어대는 아이들을 향해 입술을 삐쭉 내밀어보였습니다.

(이제야… 나를 따를 애가 없을걸… 내가 제일 많이 찾았거던.)

사기가 난 훈이는 자기가 찾은 단어들을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보동보동한 손가락을 구부렸다폈다하면서 세여보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애들보다 그래도 많이 찾았다고 생각한 훈이는 이쯤되였으니 더 찾고픈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한것은 책상안에서 마저 봐주기를 기다리는 재미나는 그림동화 《꾀많은 토끼》가 훈이의 마음을 솔솔 끌어당겼던것입니다.

(여우의 옹노에 걸린 토끼가 이제 어떻게 될가? 잡혀먹힐가? 아니면… 분명히 빠져나올텐데… 어떤 꾀를 썼을가?)

호기심이 바글바글 끓어올라 훈이는 엉치까지 들썩였습니다. 국어시간이 시작되는 바람에 하는수없이 밀어넣었던 그림책이였으니까요.

훈이는 더 참지 못하고 선생님의 얼굴만 핼끔핼끔 훔쳐보면서 책상안으로 손을 쏙 들이밀었습니다.

《난 이젠 실컷 찾았으니 너희들이나 마저 찾으라, 잉?》

이렇게 중얼거린 훈이는 살그머니 그림책을 끄당겨 펼쳐보기 시작했습니다.

앞에 앉은 윤남이가 기린처럼 목을 한껏 빼들고 앉아있는데다 자긴 책상우에 납죽 엎드리기까지 하니 선생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것입니다.

《저거, 너 수업시간에 그림책 봐도 되니?》

철국이가 놀라서 붕어눈을 해가지고 바라봅니다.

《쉿, 조용해.》

훈이는 다급히 입에 손가락을 세우며 두릿두릿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리고는 철국이에게 조용히 속살거렸습니다.

《난 많이 찾았으니까 일없어. 한개두 못 찾은 애들도 수두룩한데 뭐. 그저 선생님한테 들키지 않으면 돼.》

훈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히쭉 웃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때 윤남이의 쨍쨍한 목소리가 훈이를 깜짝 놀래웠습니다.

《오-또-기》

그러자 훈이는 속으로 힝 하고 코바람을 내불었습니다.

《나처럼 오각별을 찾지 못하구 탁아소애기들처럼 장난감이나 찾아내누나.》

여느때같으면 수업시간이라는것까지 잊고 《애기》, 《애기》하고 놀려댔을 훈이지만 오늘만은 그러고픈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보다 더 재미난것은 그림책이였으니까요.

다시 그림책에 파묻힌 훈이는 귀를 떼가도 모를 지경이였습니다.

이때 한 애가 《오-소-리》하고 찾아내서 칭찬을 받았는데 인철이란 애가 발딱 일어서며 물었습니다.

《선생님, 오소린 뭡니까?》

《네-인철학생이 오소리를 잘 모르는것 같은데 자신있게 대답할수 있는 학생?》

《옛!》

《옛!》

저마끔 튀여나오는 야무진 목소리와 함께 훈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철국이가 손을 쳐드느라 훈이의 팔을 툭 다쳐놓았기때문입니다.

그림책에서 눈길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니 하얗고 보동보동한 손들이 경쟁이나 하듯 책상우로 불쑥불쑥 솟아오르는게 아닙니까.

철국이도 제법 손을 높이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보고있었습니다.

훈이는 선생님의 질문을 듣지 못했으나 철국이한테 뒤질세라 손을 버쩍 들었습니다.

철국이앞에서 무엇이든 뽐을 내야 시원해하는 훈이가 손을 들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을수 없었거던요.

(이자 금방 윤남이가 《오또기》를 찾아냈으니 틀림없이 그걸 묻는게야.)

이렇게 생각한 훈이는 선생님이 자기를 짚어주셨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의 귀여운 얼굴을 하나하나 눈여겨살피시던 선생님의 눈길이 다른 애들보다 총창처럼 어방없이 높이 쳐든 훈이의 손에 와 멎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미처 부르기도 전에 용수철 튕기듯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장난감입니다.》

훈이의 왕청같은 대답에 교실안에는 까르르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오소리가 장난감이래.》

《정말 우습다야.》

(엉? 오소리? 오소린 또 뭐야?)

훈이는 눈이 퀭해져 배를 그러쥐고 웃어대는 아이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사방에서 터진 웃음소리에 훈이는 귀가 다 멍멍해지는듯싶었습니다.

그럴수록 훈이의 오동통한 두볼은 구운 가재빛이 되였습니다.

《훈이학생, 오소리가 장난감이예요? 그러니까 훈이학생은 선생님의 설명을 또 귀담아듣지 않은 모양이군요. 훈이도 이젠 유치원생이 아니라 소학교 1학년생입니다.

학생은 수업시간에 똑바로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훈이학생은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나쁜 버릇을 언제 가면 고칠수 있을가요?》

선생님은 다정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타이르고나서 철국이를 불렀습니다.

《훈이학생이 잘 모르는것 같은데 곁에 앉은 철국학생.》

그러자 탁구공튀듯 발딱 일어난 철국이가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오소리는 산에서 너구리랑 함께 사는 짐승입니다.》

《예, 철국학생이 아주 잘 대답했어요.》

선생님이 다정히 등을 두드려주시자 철국이는 훈이를 흘끔 내려다보며 시뚝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눈길은 마치도 《어때? 내가 대답 잘했지?》하고 은근히 뻐기는듯싶어 훈이는 밸이 꼬여났습니다. 게다가 부러움에 가득찬 눈길들이 철국이의 얼굴로 날아가는것을 보자 훈이의 입은 새끼메돼지입처럼 뿌죽이 삐여져나왔습니다.

(씨, 나두 멋지게 대답할수 있는건데…)

마치도 자기가 받아야 할 칭찬을 철국이가 빼앗은것만 같아 시샘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래서 가뜩이나 통통한 두볼에 밤알을 두알씩이나 물고 애꿎은 철국이에게 찔 눈을 흘기였습니다.

《훈이학생, 이젠 알겠지요?》

《예.》

훈이는 김빠진 공처럼 맥없이 대답했습니다.

《〈오〉자로 시작되는 단어가 이뿐일가요?》

선생님의 물음에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뭐가 또 있을가?》

온 교실이 떠나갈듯이 높아가던 목소리들도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무들도 어제 텔레비죤으로 보았지요? 거기서 돌쇠가 아랑이에게 뭘로 만든 약을 주었나요?》

선생님이 피뜩 튕겨주시자 찌뿌둥해 앉아있던 훈이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옛!》

훈이는 칭찬을 누구에게 다시금 떼울것만 같아 손을 높이 쳐들었습니다.

이번엔 절대로 엉터리대답을 하지 않으리라 단단히 마음먹으면서 말입니다.

《훈이학생이 이번엔 제대로 대답하나 봅시다. 훈이학생!》

선생님이 믿음어린 목소리로 훈이를 불렀습니다.

《오미자로 만든 약입니다.》

《옳아요. 훈이학생이 어제 그 아동영화를 주의깊게 잘 보았구만요.》

선생님이 칭찬해주시자 훈이는 다시금 사기가 났습니다.

아까는 비록 그림책을 보는 정신에 왕청같은 대답을 하긴 했지만 이번엔 칭찬까지 받았으니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제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앞에 가슴 쭉 펴고 떳떳이 자랑할수 있습니다.

물론 망신당한 일만은 쏙 빼여놓고 말입니다.

훈이는 신이 나서 철국이가 보란듯이 벌쭉 웃어보였습니다.

그런데 철국이는 훈이쪽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줄곧 선생님만 말끄러미 쳐다보고있었습니다.

아마 칭찬을 또 받지 못한것이 못내 분한 모양입니다.

(흥, 너만 칭찬받는줄 알았지. 나두 받는걸…)

훈이가 속으로 흥흥거리고있을 때였습니다.

철국이가 냉큼 일어났습니다.

《선생님, 오산덕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성산도…》

챙챙한 철국이의 목소리가 흠흠해 앉아있던 훈이의 귀전을 찰싹 후려쳤습니다.

《예, 철국학생이 정말 훌륭한 단어를 찾아냈구만요. 동무들도 오산덕과 오성산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있겠지요?》

《예.》

아이들은 목소리를 합쳐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의 거듭되는 칭찬에 철국이의 어깨는 잔뜩 올라갔습니다.

《야, 철국인 정말 잘한다야.》

《어쩜 멋진 단어를 두개씩이나 단꺼번에 찾아냈을가?》

《그러게 말이야.》

부러움에 닭알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선생님 몰래 소곤대는 소리가 훈이의 넙죽한 귀바퀴안으로 솔금솔금 흘러들어왔습
니다.

(철국이한테 또 졌는데… 저 앤 나하구 꼭같이 배우는데 어떻게 그런 단어만 척척 생각해낼가?)

기분이 잡쳐버린 훈이는 그림책을 책상안으로 쥐여뿌리며 중얼거렸습니다.

다음번엔 꼭 철국이보다 더 멋진걸 많이 찾아내고말리라 속으로 별렀습니다.

어느덧 수업이 끝났습니다.

언제나 재미나기만 하던 국어시간이였지만 오늘은 참 재미없었습니다.

지금껏 철국이한테 별로 져본적은 없었는데…

밖에 나갔다들어온 훈이는 이제 시작될 수학시간을 기다리며 숙제장을 뒤적거리는 철국이를 내려다보면서 입술만 감빨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철국일 꾹 눌러놓을수 있을가?)

훈이의 머리속에서는 이런 생각만이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그러던 훈이는 피뜩 떠오르는 그럴듯 한 생각에 철국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철국아, 넌 참 좋겠구나. 나보다 칭찬을 많이 받았으니 말이야.》

그 말에 철국이는 더 우쭐해져서 뻐기듯이 웃음을 지었습니다. 훈이까지 부러워하니 아마도 기뻐난 모양입니다. 그러자 훈이는 말했습니다.

《우리 단어찾기를 계속하는게 어때?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찾나 내기해보잔 말이야.》

《단어찾기? 인차 선생님이 들어오시겠는데…》

《제꺽하면 되지 않니?》

《그래도…》

《쳇,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그러지? 맞지?》

훈이가 시까스르자 바싹 약이 오른 철국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아, 할테면 하자. 까짓거, 누가 무서워 할줄 알구? 어떻게 하자니?》

《내가 문제를 내겠어.》

훈이가 제꺽 대답하자 철국이는 두손을 홰홰 내흔드는것이였습니다.

아마도 훈이의 약삭바른 속마음을 들여다본 모양이였습니다.

《안돼, 네가 내선 안돼.》

《그럼?》

두눈이 올롱해서 묻는 훈이의 말에 앞책상에 있던 윤남이가 제꺽 나섰습니다.

《그럼 문젤 내가 내겠어.》

《좋아, 아무거나 낼테면 내라.》

《응 그래, 음― 뭘 낼가?》

《두글자짜리든 세글자짜리든…》

《네글자짜리도 자신있니?》

《응, 있어.》

윤남이의 물음에 훈이가 제꺽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윤남이는 메밀알같이 가느스름한 눈을 잠시 깜빡거리고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앞으로 되겠다는 박사있지? 그 〈박〉자로 시작되는 단어 말이야. 두글자짜리, 세글자짜리, 네글자짜리를 각각 다섯개이상씩 찾으라. 내가 말한 박사는 빼놓구…》

《멋있다!―》

윤남이의 말에 철국이가 먼저 환성을 올렸습니다.

《좋아, 해보자.》

두 애는 제꺽 학습장을 끄당겨 맨 뒤장에다 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박수, 박자, 박쥐, 박새, 박꽃. 박물관, 박사원, 박우물. 박수갈채, 박하기름, 박하사탕, 박사메달, 박사동이…》

얼음판에 박밀듯 슬슬 달리던 훈이의 연필은 얼마 못 가서 뚝 멈춰서고말았습니다. 그다음엔 잘 떠오르지 않았던것입니다. 두글자짜리, 네글자짜리는 다 찾았으나 세글자짜리단어는 아직도 두개가 모자랐습니다.

철국이도 몇개 못 썼는지 연필방아를 찧기도 하고 귀바퀴를 살살 문지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한다? 무조건 철국일 이겨야 할텐데, 내가 내기를 걸었으니깐.…)

훈이가 연필방아를 톡톡 찧는데 제법 심판원답게 뒤짐을 척 지고 이쪽저쪽을 기웃이 넘겨다보던 윤남이가 말했습니다.

《아니, 훈이야. 넌 내가 쓰지 말라는건 왜 썼니?》

《뭘?》

《내가 말했지. 박사자는 쓰지 말라고… 그런데 이게 뭐니? 박사원, 박사메달, 박사동이…》

《아니, 내가 뭐 박사를 썼니? 세글자, 네글자짜리를 찾아서 썼지.》

《그래도 그렇지. 박사라는 말이 들어간거니까 그건 뽑아야 돼.》

《체, 넌 괜히 그러누나.》

《괜히가 아니야. 철국이도 그런건 하나도 안썼단 말이야. 그렇지?》

철국이도 그렇다는듯이 히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습니다. 보아하니 아주 자신만만해하는 자세였습니다. 그러니 훈이는 더더욱 조바심이 났습니다.

이때 따르릉― 하고 종이 울리더니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바빠난 훈이는 선생님을 힐끗 곁눈질해보며 나직이 속살거렸습니다.

《수학시간이 끝난 다음에 마저하자.》

《응, 그러자.》

수업이 시작되여 칠판에 문제를 쓰신 선생님은 그 풀이방법에 대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였습니다.

하지만 훈이의 귀에는 선생님의 설명이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머리속에선 여전히 《박》자로 시작된 단어들이 무엇이 또 있을가 하는 생각만이 맴돌이 칠뿐이였습니다.

(가만가만, 박격포가 있지? 히야, 멋있는데!… 으응, 또 박하껌. 쳇, 요놈의 박하껌은 왜 숨어있다가 이제야 머릴 내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껌인데…)

훈이는 힘들게 찾아낸 단어를 하나라도 잃어버릴것 같아 제꺽제꺽 학습장에 옮겨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얼굴은 멍하니 칠판을 쳐다보면서 말입니다.

그러다나니 훈이는 그만 선생님이 내준 문제풀이에서 3점을 맞고말았습니다. 계산방법을 다 설명해준 선생님이 풀어보라고 내준걸 제대로 풀수 없었던것입니다.

밉고미운 기러기가 자기 학습장에 넌떡 날아와 앉은걸 본 훈이는 대번에 울상이 되였습니다.

문뜩 머리속엔 어머니가 늘 당부하던 말씀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훈이, 학생이란 언제나 공부에서 5점만 맞고 매일매일 좋은일하기에서랑 모든 일에서 앞장에 서야 해요. 알았나요?》

이런 어머니이기에 저녁이면 믿음과 사랑어린 눈길로 묻군 하셨답니다.

《훈이, 오늘은?…》

그럴 때마다 훈이는 그날 꽃피운 자랑에 대하여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하기도 하고 5점맞은 학습장을 척 내보이군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환히 웃으시면서 학습장을 보고 또 보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좋은 일을 한데 대해서 칭찬도 해주시구요.

헌데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5점은커녕 3점만 맞았으니…

더구나 공부 잘하면 새로 나온 그림책들을 련속 가져다주시겠다는 약속도 하였는데 말입니다.

(내가 3점맞은건 다 이 그림책때문이야. 이것만 아니래두 나도 5점을 맞을수 있었을텐데…)

투닥투닥 그림책을 두들기던 훈이는 곧 도리머리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그건 다 내탓이야. 내가 그림책을 안 봤어도… 아니, 학교에 가져가지 말라던 엄마의 말을 들었어야 했을걸.)

사실 아침에 훈이는 어머니 몰래 그림책을 갖고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안될 때라 그림책을 가방에 슬쩍 넣는것을 어머니가 보게 되였습니다.

《그림책을 가져가지 말라는데두 그러누나. 넌 그러지 않아도 집중력이 없는데 가지고가면 공부시간에 그걸 보느라 선생님의 설명을 안 들을건 뻔해.》

《안예요. 수업시간엔 절대 안 봐요. 휴식시간에만 보구…》

《아니, 공부에 지장이 되니 저녁에 와서 봐라. 책을 꺼내라, 어서.》

어머니가 엄하게 꾸짖어서야 훈이는 하는수없이 그림책을 도로 꺼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직장에 나가시자마자 그것을 다시 몰래 가지고왔던것입니다.

어머니말씀을 미리 들었더라면…

훈이는 생각할수록 후회가 났습니다.

꼴보기 싫은 기러기점수를 어머니가 보시면 야단입니다. 어머닌 아마 대뜸 욕부터 하실겁니다. 그리고 가져오셨던 그림책도 도로 가져가실것이고…

욕도 먹고 그림책도 못 보게 됐으니 글쎄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에라, 아예 없애버리고말아야지.)

이렇게 생각한 훈이는 더 생각할새없이 기러기가 나래편 학습장을 뿍― 찢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철국이가 밤알만 해진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아니? 너… 너 그걸 찢으면 어떻게 하니?》

《체, 그럼 이따위 망신스러운 기러기를 그냥 데리고 다니겠니?》

《그렇다구 학습장을 찢으면 욕먹지 않니?》

《일없어. 어머닌 보지 못했으니까 모를거란 말이야. 선생님도 수표받아오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다신 안 볼거란 말이야.》

《그래두… 이렇게 하는건 나빠. 아버지랑 어머니랑 그리구 선생님이랑 다 속이는거니까.》

《속이는거라구?》

《그래, 그건 나쁜짓이야.》

《나쁜짓? 그럼 내가 나쁜 애라는거니?》

《나쁜 애?》

철국이는 눈이 올롱해졌습니다.

늘쌍 앞을 다투며 경쟁은 해왔어도 자기 동무 훈이를 나쁜 애라고 생각해본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하여튼… 점수를 매긴 학습장을 찢는건 나쁜거야.》

《집에 가서 욕먹을텐데…》

《그래두…》

걱정스러운 얼굴로 돌아앉는 철국이를 보자 훈이는 웬일인지 가슴이 활랑거려났습니다.

(그럼 내가 나쁜 애가 되였단 말이야? 내가…)

더럭 겁이 난 훈이는 슬며시 구겨넣은 종이장을 꺼내 펼쳐들었습니다.

꾸불꾸불해진 기러기가 훈이를 사납게 올려다보며 이렇게 내쏘고있는것만 같았습니다.

《흥, 나를 찢어버렸다구 네가 3점맞은걸 누가 모를줄 아니? 제 잘못을 감추려고 하는 넌 정말 나쁜 애야.》

휙 종이장을 뒤집어 기러기를 덮어버린 훈이는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운동장에선 숱한 애들이 마음껏 찧고까불며 뛰여놀고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수업규률을 잘 지켜 5점을 맞고 또 칭찬까지 받아 기쁨과 자랑에 넘쳐있는 애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3점을 맞은데다 그것을 감추려고 학습장을 찢어버리기까지 했으니…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과 수업규률을 잘 지켜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안 들었기때문에 3점까지 맞다못해 그걸 찢어버리는 나쁜 행동을 하였던것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하여 훈이의 마음속에는 걱정이 쌓였습니다. 불룩해진 걱정주머니때문에 훈이는 철국이처럼 밖에 나가 뛰여놀고픈 생각도 없어졌습니다.

멍하니 종이장을 내려다보던 훈이는 조가비같은 두손으로 박박 쓸고 또 쓸었습니다. 그다음엔 쫙 펴진 종이를 제자리에 다시 끼워넣었습니다. 그랬더니 무겁던 마음이 좀 가벼워졌습니다.

(그래, 난 절대로 나쁜 애가 안될테야.)

이제라도 자기가 잘못한것을 선생님과 어머님에게 다 말하리라 마음다졌습니다.

훈이는 발딱 일어나 학습장을 들고 선생님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모두 모여서 무슨 회의를 하고있었습니다. 하는수없이 다시 교실에 돌아와 물끄러미 학습장을 내려다보던 훈이는 눈을 반짝이며 연필을 꺼내들었습니다. 3점맞은 그 문제들을 다시 풀어보려고 말입니다. 그날 배운것은 무조건 그날로 다 알고 넘어가야 한다던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고 그것을 다시 꼭 맞게 푼것을 보면 어머니도 욕을 조끔 할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진 훈이는 교과서랑 보면서 다시 문제를 풀어나갔습니다. 모를것이 있으면 철국이에게 마구 뛰여가서 풀이방법을 알아가지고는 다시 풀군 하였습니다.

이때 앞문이 조용히 열리며 선생님이 들어오시였습니다.

《아니, 훈이학생. 과외시간인데 나가 놀지 않고 교실에서 무얼 하나요?》

그러자 훈이는 엉거주춤 일어나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왜 그러나요?》

선생님은 훈이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며 물으셨습니다.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훈이는 찢어진 종이장을 선생님앞에 펼쳐놓으며 혀아래소리로 말씀드렸습니다. 훈이가 내미는 종이장을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던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물으시였습니다.

《그래, 훈이학생은 무엇을 잘못했나요?》

훈이는 아까 수업시간과 휴식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자초지종 이야기했습니다.

주의깊게 다 들어주신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훈이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주시였습니다.

《음, 그랬댔군요. 선생님도 짐작했어요. 훈이학생은 확실히 집중력이 없다나니 수업규률을 잘 지키지 못해요. 그러니 봐요. 3점까지 맞았고 나중엔 그것을 감추려다가 거짓말쟁이, 나쁜 애가 될번 하지 않았나요.》

선생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훈이의 가슴속엔 바늘로 콕콕 찔러 새겨넣듯이 또박또박 자리잡았습니다. 공부할 때면 언제봐야 집중력이 없다고 늘쌍 타이르시던 어머니의 말씀과 선생님의 말씀은 어쩌면 그리도 꼭같을가요.

어머니가 수업시간에 집중하여야 공부를 더 잘할수 있다고 깨우쳐주시면 훈이는 그때마다 《예, 예. 알아요, 알아요.》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습니다.

또 선생님이 일깨워주실 때에도 깊이 새겨듣지 않았습니다. 그런 결과 오늘 어떻게 되였습니까.

《선생님,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좋아요. 학생이란 잘못을 제때에 깨닫고 고쳐나갈줄 알아야만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수 있어요. 그런데 훈이학생은 자기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고쳐나가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그 마음이 기특해서 다시 점수를 매겨주겠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며 선생님은 그의 학습장에 5점을 크게크게 매겨주시였습니다.

《야― 좋구나!》

훈이는 기쁨이 함뿍 실린 눈으로 학습장을 들여다보며 손벽까지 짜락짜락 쳤습니다.

3점짜리가 틀고앉았던 학습장에 다시 찾아온 5점이 훈이를 올려다보며 하하하 웃음을 보내는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흥떠난 훈이는 언제 운동장에 뛰여나왔는지, 언제 집으로 달려가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가슴속에선 앞으로 수업규률을 잘 지켜 공부를 더 잘하리라는 결심이 가득가득 차올랐습니다.

훈이의 결심을 축복하는듯 목화송이같은 눈송이들이 꽃보라마냥 하늘하늘 춤추며 내리고있었습니다.

(평양시 룡성구역 백양동)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