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리 준 길
소조활동이 끝나자 학생소년궁전은 호젓해졌다. 소조실을 정돈하고나서 옥련이는 다른 애들보다 뒤늦게야 궁전문을 나섰다. 《도미쏠 미쏠미 도도씨라쏠…》 어제부터 지어보기 시작한 새 곡을 흥얼거리며 뻐스정류소를 향해 천천히 내림길을 걸어내려오던 옥련이는 그만 걸음을 멈추지 않을수 없었다. 길 한복판을 따라 알뜰하고 규모있게 꾸려진 꽃밭이 오늘따라 별로 더 시선을 끈다. 저 무수한 꽃송이마다에 아름다운 노래가 깃들어있을것이라는데 문득 생각이 미치였다. 채송화, 저 귀염둥이는 뭔가 조용하고 애잔한 선률을 가지고있을상싶다. 그런가 하면 신통히도 수닭의 볏을 방불케 하는 저 맨드라미꽃송이들은 뭔가 흥떡이고 건드러진 그런 선률을 가지고있을것이다. 틀림없이 그건 굿거리장단이겠는데… 하다면 홰불모양의 저 꽃에는 어떤 선률이 깃들어있을가? 거기서는 서쪽하늘가에 불타는 저녁해와도 비슷한 장중하고 열정적인 선률이 감촉되였다. 하면서도 그 선률들이 딱히 잡히지 않는것이 옥련이로서는 여간만 안타깝지 않았다. 꽃들아, 고운 꽃들아, 감춰둘것 없이 그 선률을 한번씩만 듣게 해주렴. 왜 그렇게 입들을 꼭 다물고있니, 응?… 했건만 그의 마음엔 아랑곳없이 꽃들은 여전히 방글방글 웃고만있다. 아무튼 옥련이는 그 꽃송이들이 마냥 부러워났다. 모양도 갖가지, 색갈도 갖가지… 하면서도 얼마나 하나같이 예쁘게 피여났는가. 그런데 자기는 그러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자 절로 한숨이 나갔다. 아버지장군님께서 찾아주시고 싹틔워주신 그 소중한 희망을 언제면 저 꽃송이들처럼 활짝 피워낼수 있을가. 지난해 봄날의 일이 짜릿한 흥분과 더불어 어제런듯 눈앞에 삼삼히 되살아올랐다. 그날 옥련이는 교외에 있는 외할머니네 집에 갔다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외손녀한테 한가지라도 더 맛있는걸 해먹이지 못해 마음쓰는 할머니의 다심한 사랑에 빠져 시간가는줄 모르고있다가 그만에야 통근렬차시간을 놓쳐버린것이였다. 하지만 일없어, 그까짓 집으로 가는 길인데 뭐가 힘들다구, 이런 좋은 봄날에 차라리 걷는편이 더 좋지.… 옥련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씽씽 걸음을 다그쳤다.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길섶에 노랗게 피여난 냉이꽃, 민들레꽃… 아지랑이 아물거리는 하늘가에서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종달새가 쉬임없이 우짖는다. (흥, 저만 노래부를줄 아나부지.) 옥련이의 작은 입에서도 맑은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늘에 나는 기러기들아 내 소식 전해주려마 초소에 차넘치는 이 자랑 이 기쁨 고향의 부모들께 전해주려마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뽑으면서 둔덕길에 올라서던 그는 그만에야 노래도 발걸음도 한꺼번에 다 멈추고말았다. 둔덕아래 서있는 여러대의 승용차들, 그런데 그 한가운데 서계신분은?!… 갑자기 가슴이 널뛰듯 했다. 꿈이 아닌가? 꼭 아버지장군님 같으신데… 정말 장군님 같으신데… 《얘야, 이리 오너라.》 까만 승용차곁에 서계시던 아버지장군님께서 손짓해 부르시였다. 그제서야 옥련이는 그분이 틀림없는 아버지장군님이시고 이것이 꿈아닌 현실임을 알아차릴수 있었다. 《어서 오라니까.》 장군님의 재촉을 받고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둔덕아래로 달려내려갔다. 《귀엽게 생겼구만.》 옥련의 인사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옥련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고 어깨를 다독여주시였다. 오전에 한 인민군구분대를 현지시찰하신 장군님께서는 지금 평양으로 가시는 길이였다. 가시는 길에 여기에 내리시여 둔덕의 과수원을 돌아보시고 과일나무들을 잘 가꿀데 대한 몇가지 중요한 말씀을 주시고나서 막 떠나시려던참에 그 노래소리를 듣게 되시였다. 그 노래가 세상에 나온지 이제는 벌써 스무해 가까이 된다. 그런데 어린 소녀가 노래에 담겨진 감정을 잘 살려 부르는것이 너무도 기쁘고 대견하시여 소녀를 기다려주신것이였다. 《그러니 평양애였구만. 좋은 길동무를 만났는걸. 차에 타거라. 함께 가자.》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옥련이는 까딱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나도 엄청난 일이라 두세걸음 물러나기까지 했다. 했지만 장군님께서 손까지 잡아 이끄시는바람에 그는 차에 오르지 않을수 없었다. 승용차는 소리없이 미끄러지기 시작하였다. 《자, 편히 앉아라. 이름이 뭐냐?》 《채옥련입니다.》 《옥련이, 이름이 좋구나. 몇살이지?》 《열세살입니다.》 《음, 나인 어린데 그 힘든 곡을 아주 잘 부르는구나. 어디 그 노래를 한번 더 불러봐라.》 옥련이의 얼굴은 발깃해졌다. 《장군님, 잘하진 못합니다.》 응석스레 웃으며 그는 입술을 감빨았다. 《어서 부르라니까.》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주시였다. 옥련이는 침을 꼴깍 삼키였다. 마침내 노래를 뗐다.
하늘에 나는 기러기들아 내 소식 전해주려마 …
《잘한다, 정말 잘해.》 노래가 끝나기 바쁘게 장군님께서는 박수를 쳐주시였다. 《음정두 정확하구 박자두 정확하구… 그보다두 감정을 잘 살려 부르는게 참 좋구나. 그 노랠 학교에서 배워줬니?》 《아닙니다.》 《그럼?》 《아버지한테서 배웠습니다. 그 노랜 우리 아버지가 작곡한겁니다.》 장군님의 표정은 한순간에 굳어졌다. 《그럼… 그럼 네가 채성린의 딸이냐?》 《녜.》 《원, 이런 참.… 그래, 그때 외동딸이 있다는 말을 들은 생각이 난다. 어머닌 잘계시냐?》 《녜.》 《음, 너의 아버진 참 재간있는 작곡가였는데… 너의 아버지야말로 인간생활은 물론 자연계의 모든 새와 곤충, 꽃, 물, 나무들 하구두 말할줄 알구 거기서 독특한 선률을 찾아낼줄 아는 작곡가였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벌써 좋은 곡을 많이 지었지. 그래서 음악대학에 불러다 공부시키구 작곡가로 키웠는데… 그런데 그만 나쁜 병을 만나 너무나도 일찌기 갔어.… 그런데 어딜 다녀가는 길이냐?》
《꽃모를? 무슨 귀한 꽃인게지?》 《은방울꽃입니다.》 옥련이는 무릎우에 받쳐들고있던 비닐박막꾸레미의 한끝을 헤쳐서 장군님께 보여드렸다. 《그래, 은방울꽃모가 옳구나. 은방울꽃! 좋은 꽃이지. 어디에 심자구 그러느냐?》 《학교에 있는 아버지대원수님 현지교시판앞에 심을겁니다.》 《오, 그래!》 장군님께서는 대견하신듯 옥련이의 손을 꼭 잡아주시였다. 《은방울꽃을 곱게 피우면서 우리 옥련이두 그렇게 곱게 펴야 할텐데… 공부두 잘하구 체육두 잘하구 예술적인 재능두 키우구… 너의 아버지처럼 음악가가 되려는건 아니냐?》 《아닙니다.》 《아니라구? 그럼?》 옥련이는 대답없이 입술만 감빨았다. 《왜 아직 정해둔게 없는게지?》 《녜.》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몰랐다. 이것저것 돼보고싶은것은 적지 않았지만 꼭 붙들어둔 희망은 아직 없었던것이다. 《그래두 뭔가 취미가 있을테지. 무슨 과목을 제일 좋아하느냐?》 《국어랑 력사랑 음악이랑…》 《그럴테지. 작곡가의 딸이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리는 없거던. 그런데… 너 작곡가가 되자구 생각해본적은 없느냐?》 《하기는… 했댔습니다.》 옥련이는 얼굴을 들었다. 사실 그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영향때문이라고 할수 있었다. 작곡가인 아버지는 창작으로 늘 바삐 지내면서도 외동딸에 대한 음악교육을 위해서라면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서너살때부터 좋은 명곡들을 늘 귀에 익혀주었으며 음악의 기초적인 상식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했지만 딸을 작곡가로 키우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은 그것으로 끝나고말았다. 옥련이가 유치원도 마치기 전에 그만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것이였다. 《음, 그렇게 됐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음악을 안하게 됐느냐?》 장군님께서 갈리신 어조로 물으시였다. 옥련이는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채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아버지를 보낸것두 가슴아픈 일이지만 그때문에 네 꿈이 사그라져버리구만게 난 더 가슴이 아프구나. 음악을 그냥 했어야 할걸 그랬다. 아버진 가셨지만 우리에겐 당이 있지 않느냐. 당의 품이 있는데야 못할게 뭐냐, 응?》 장군님의 다정하신 말씀은 옥련이의 가슴을 쩡 울리였다. 목이 꽉 메여올라 인차 대답을 올릴수가 없었다. 이윽해서야 얼굴빛을 밝게 가지며 대답했다. 《장군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 음악을 할 재목이 못되기때문에 일없습니다.》 《음악을 할 재목이 못되다니, 그건 네 소리냐, 누구한테서 들은 소리냐?》 《우리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옥련이의 이 말에 장군님께서는 놀라시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한동안 어머니는 딸의 음악수업에 관심이 컸다. 그러던 어머니의 열성이 무슨 일로 해서인지 차츰차츰 식어가기 시작했다. 하더니 하루는 딸을 붙들어앉히고 이렇게 말했다. 《옥련아, 내 깊이 생각해보구서 하는 말인데 아무래두 음악을 그만둬야 할가부구나. 예술이란건 타구난데두 있어야지 마음만 먹는다고 누구나 다 되는게 아니야. 음악을 하자면 너의 아버지처럼 감정이 풍부하구 뜨거워야겠는데… 그런데 넌 나를 닮아 그런지 차구 새침하기만 한게 어떻게 음악을 한다구 그러니. 그런대루 아버지나 곁에 있어가지구 늘 부추겨준대도 모르겠는데…》 그것은 어린 옥련에게 있어서 청천벽력과도 같은것이였다. 음악을 못하다니… 어떻게 음악을 버릴수 있단 말인가. 《싫어요. 난 음악을 할래요.》 이렇게 세워보기는 했지만 속마음은 편치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산란해졌다. 아버지는 정말 보기 드문 정열가였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그래서 음악을 그렇게 잘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와는 반대로 자기에게는 새침데기란 별명이 붙어있다. 참 속상한 일이다. 어째서 아버지를 닮지 않고 하필이면 어머니를 닮았담. 거울에 비치는 제모습을 볼 때면 절로 호 하고 한숨이 나갔다. 하얀 얼굴, 깔끔한 눈매, 뾰주름한 턱… 생김새부터가 역시 새침데긴 새침데기구나. 웃음보따리란 별명을 가진 짝패동무 태실이가 은근히 부러워났다. 아무데나 성큼성큼 나서기 좋아하고 무슨 일에서나 남먼저 끓기 잘하는 그 애 같으면 참 얼마나 좋을가. 그래서 그 애 성미를 닮아보려고 없는 노죽까지 부려가면서 한동안 애써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하루이틀은 좀 돼가는듯 하다가 매양 도루메기가 되여버리군 하는것이였다. 그의 생각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한걸음, 두걸음 어머니의 의견이 옳다는데로 기울어져갔다. 그럼 무엇이 될가? 무엇이 돼야 좋을가?… 어떤 때는 이모처럼 국어교원이 되고싶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력사학자, 기자, 재단사를 꿈꾸어보기도 했다. 《음, 그래서 네가 음악공부하는것을 그만두었구나.》 장군님께서는 아쉬운 표정으로 차창앞을 내다보시였다. 차는 벌써 평양을 가까이하고있었다. 소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나지막한 산언덕너머로 주체사상탑의 봉화가 손에 잡힐듯 빤히 보였다. 《허ㅡ 벌써 다 왔는가. 우린 얘기를 더 해야겠는데…》 장군님께서는 차를 좀 천천히 몰라고 운전사에게 이르시였다. 승용차는 곧 속도를 늦추었다. 《그런데말이다. 너의 어머니말씀이 일리가 있긴 하지만… 하지만 사람은 겉만 보구선 잘 모른다.》 장군님께서는 알릴듯말듯 고개를 저으시더니 말씀을 이으시였다. 《네가 얌전하구 새침해보이는건 사실이지만… 그렇지만 속은 그런것 같지 않아. 감정두 있구 뜨거운데가 있어.》 순간 옥련이는 터질듯이 가슴이 뻐근해올랐다.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가! 정말이지 얼마나 좋을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 들으셨어요? 겉은 새침데기래두 난 속은 그렇지 않대요. 뜨거운데가 있대요, 장군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봄은 한껏 무르녹고있었다. 남먼저 바지런히 노란꽃을 피워들었던 길가 최뚝의 고운 꽃들은 어느새 벌써 파란 옷으로 갈아입고있었다. 《음악은 인간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거다.》 장군님께서는 생각깊으신 표정으로 말씀하시였다. 《음악이 없는 생활이란 있을수 없다. 좋은 노래는 사람들에게 삶의 보람과 기쁨을 주고 신심과 용기와 희망을 주거던. 그래서 난 음악을 즐겨듣군 한다. 명곡을 꽝꽝 지어내는 재간둥이작곡가들이 더 나와야겠는데…》 옥련이는 자기 몸에 그 어떤 알지 못할 힘이 기운차게 뻗쳐오름을 느꼈다. 《아버지장군님! 음악을 하겠습니다. 꼭 작곡가가 되겠습니다.》 그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힘있게 말씀드렸다. 《정말 해낼만 하냐?》 《녜, 자신있습니다.》 《좋다. 그럼 믿겠다. 우선 기초부터 든든히 닦아야 돼. 시창이랑 청음훈련이랑 절대로 게을리해선 안된다. 그리구 습작두 부지런히 하거라. 어려서부터 자꾸 곡을 지어버릇하느라면 미립이 트는 법이야. 그럼 나하구 약속하자. 언제쯤이면 나한테 노래를 지어 보내주겠니?》 옥련이는 입술을 감빨았다. 참 언제쯤이면 좋은 노래를 짓게 될가?… 《래년 이맘때면 되겠니?》 《녜.》 한해동안이면 아주 넉근하다고 옥련이는 생각했다. 《그때까진 정말 자신있습니다.》 《해낼수 있단 말이지. 좋구만, 좋아. 그런데 옥련이한테 뭐 줄만 한게 아무것두 없구나. 노래라두 한곡 선물할가? 미래의 녀류작곡가를 축복해서…》 하시며 장군님께서는 차에 달린 록음기의 스위치를 넣으시였다. 맑은 음향이 차안을 가득히 울리였다. 봄에 대한 노래였다. 옥련이의 가슴속에서는 꼭 훌륭한 작곡가가 되려는 소중한 꿈이 이른봄의 풀싹마냥 소리없이 자라오르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옥련이의 가슴속에서는 그 맑은 음향이 그대로 울린다. (언제면, 언제면 좋은 노래를 지어 아버지장군님께 기쁨드릴수 있을가.) 옥련이는 안타까왔다. 잊을수 없는 그 봄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장군님께서는 두차례나 옥련이의 음악공부에 대해 알아보시고 학생소년궁전 음악소조에 들어가 배우도록 해주시였다. 그런데 장군님께 약속드린 계절이 다가왔지만 아직 내놓을만 한 곡을 짓지 못하고있었다. 사실 그는 지난해 못 잊을 그날로부터 어느 하루도 헛되이 시간을 보낸적이 없었다. 늘 사색하고 흥얼거리였다. 그러다가 뭔가 언뜻 잡히기만 하면 수첩을 꺼내들고 부리나케 연필을 달리였다. 그렇게 지어본것이 벌써 여라문곡은 잘된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된것은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였다. 한창 열을 올려 곡을 쓸 때는 아주 훌륭해보이던 선률이였지만 그 흥분이 사그라진 다음 다시 음미해보면 매양 귀맛이 당기지 않고 정이 떨어지군 하는것이였다. 옥련이는 안타까와 저도 모르게 한숨까지 호ㅡ 하고 내그었다. 바로 이때였다. 《옥련이ㅡ》 누구인가 부르는 소리에 그는 얼른 허리를 폈다. 돌아보니 부총장선생님이시였다. 《옥련이, 빨리! 어서 오라는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는지 부총장선생님은 평소의 느린 성미와는 판판 다르게 발까지 구르며 재촉을 한다. 옥련이는 의아한 얼굴로 달려갔다. 《아, 네가 옥련이냐?》 부총장선생님곁에 서있던 안경을 낀 낯모를 선생님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누굴가? 누군데 내 이름을 알고있을가? 영문을 알수 없어 연신 눈을 삼박거리기는 했으나 옥련이는 크나큰 영광의 시각이 눈앞에 바투 다가왔음을 꿈에도 알수 없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친히 옥련이를 몸가까이 부르신것이였다. 그 시각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청사앞 정원에서 옥련이를 기다리고계시였다. 어제 인민군구분대에서 예술소품공연을 보신 다음부터 옥련이생각이 더 나시였다. 그 예술소품가운데 옥련이 아버지가 병사시절에 지은 노래가 한곡 들어있었다. 인민군병사들의 랑만이 흘러넘치는 좋은 노래였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우리 병사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얼마나 많이 지어냈을것인가. 병사들의 사격연습과 훈련을 보시면서도, 펄펄 끓어오르는 취사장의 국가마를 보시면서도 장군님께서는 자꾸 음악을 생각하게 되시였다. 병사들의 생활에야말로 얼마나 노래가 많은가. 그 모든 선률을 남김없이 다 찾아내여 병사들에게 주고싶으시였다. 옥련이가 당중앙위원회청사앞에 이른것은 석양녘이였다. 하얀 샤쯔에 곤색조끼치마를 받쳐입은 얼굴이 갸름한 소녀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장군님께서는 지난해 봄비 내리는 언덕길에서 만나시였던 그 귀여운 옥련이임을 대번에 알아보시였다. 《옥련아!》 그지없이 부드럽고 정겨운, 너무나도 귀익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반사적으로 정원쪽에 눈길을 돌린 옥련이는 순간에 그 자리에 굳어져버리고말았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서 오라고 손짓해주시는것이 아닌가. 《아버지장군님!》 옥련이는 엎어질듯 장군님께로 달려가 인사를 드리고 팔에 매달렸다. 《우리 옥련이가 한해사이에 몰라보게 컸는걸.》 장군님께서는 옥련이를 곁에 앉히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어제 군부대에 나갔다가 예술소품공연을 봤는데 병사들이 그전에 너의 아버지가 지은 노래를 부르지 않겠니. 그때부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그래서 오라구 했다. 그래 음악공부는 잘되느냐?》 《녜.…》 옥련이의 대답은 자신없이 울리였다. 그는 눈을 내리깔았다. 약속한 기일이 지나도록 노래를 짓지 못한 죄책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조여들었다. 《그럼 그동안 옥련이가 음악공부를 해온 얘기나 좀 들어볼가.》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서야 옥련이는 고개를 들고 그동안 음악공부를 해온 이야기를 자상히 말씀드리였다. 음악리론을 깊이 파고든 이야기며 청음훈련과 시창훈련을 부지런히 한 덕으로 이제는 웬만한 곡은 채보까지 할수 있게 된 이야기며… 《오, 그래 대단하구나. 벌써 채보까지 하는 정도면 발전이 이만저만 빠르지 않아.》 하지만 장군님께서 칭찬해주실수록 옥련이의 마음은 점점 더 송구하기만 했다. 그는 머리를 푹 수그리며 기여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작곡이…》 《그래 작곡이 잘 안된단 말이지.… 그러니 나하구 약속한것을 지키지 못했겠구만, 응?》 장군님께서는 자애로운 눈길로 옥련이를 바라보며 말씀하시였다. 《작곡수첩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지. 그걸 좀 보여줄수 없겠니?》 옥련이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동무들한테도 내놓기 쑥스럽던 그 한심한것들을 장군님께 어떻게 보여드린단 말인가. 그는 어쩔줄 몰라 쭈밋거리다가 품속에서 퍼그나 두툼한 수첩을 꺼내였다. 《울려가라 나의 노래여》라고 쓴 표지를 번지면 첫장부터 모두 습작한 곡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옥련이의 수첩을 받아드시고 한장 또 한장 번지며 보시다가 어떤 선률을 소리내여 불러도 보시였다. 옥련이의 가슴이 조여들었다. 실망하고계실 장군님을 뵙기가 어려워 고개를 들지도 못하였다. 참, 수첩은 왜 꺼내드렸담. 보실만 한것이 못된다고 애당초 드리지 말았어야 할건데… 그런데 바로 이때였다. 《잘 보았다. 네가 참 용쿠나.》 뜻밖에도 장군님께서 이렇게 치하하시는 바람에 옥련이는 놀란 얼굴을 번쩍 들었다. 내가 용타니?… 너무 섭섭해할가봐 그래주시는게 아닐가? 그런데 고개를 들어보니 정말로 장군님께서는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대견한 눈길로 굽어보고계시는것이였다. 《어린 나이에 이만한 수준이면 대단해. 물론 네가 지은 곡들이 아직 서툰건 사실이야. 그런데 내가 왜 좋다고 하는지 아느냐? 그건 이 곡들이 이미 나온 곡들을 흉내내지 않구 뭔가 새롭게 해보려구 했기때문이야. 창작이란 원래 그렇게 돼야 하거던. 그리구 내가 또 좋게 생각하는건 네가 지금의 이 수준에서 만족하지 않고 자기에 대한 요구성을 높이면서 더 높이 날아오르지 못해 속을 썩이는거야. 사실 난 오늘 네가 음악공부를 어떻게 하고있는지 궁금해서 너를 불렀댔다. 용타, 창작이란 원래 그래야 돼. 그런 속에서 명작이 나오는 법이거던.》 장군님께서는 옥련이에게 수첩을 넘겨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옥련이를 차에 태워온 그 일군을 부르시였다. 《너의 음악수업에 뭐 좀 도움이 될게 없을가 하구 생각하다가 마련한건데…》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 일군이 가지고온 록음기를 받아 옥련이에게 내밀어주시였다. 《받아라. 우리 나라와 세계의 명곡들을 다 갖추느라고 했는데… 그리구 너의 아버지가 지은 노래만은 한곡도 빼놓지 않구 다 록음하게 했다. 조선사람의 구미에 맞는 노래를 잘 짓군 하던 아버지처럼 좋은 노래를 많이 짓기를 바란다.》 옥련이는 목이 메여올라 고맙다는 인사의 말씀 한마디 올릴수가 없었다. 한마디라도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는데… 하면서 뜨거운것을 꿀꺽 삼키는데 이번에는 눈물이 핑 돌면서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수원들에게 하시는 장군님의 우렁우렁한 말씀소리만이 귀전에 뜨겁게 울려왔다. 《나라의 앞날인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해줄수 있는건 다 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수령님의 뜻입니다. 수령님께서 얼마나 사랑해오신 우리 아이들입니까. 수령님께서는 서거하셨지만 우리 어린이들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나라의 <왕>으로 살아야 합니다.》 옥련이는 눈물을 씻고 오동나무아래 서계신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렀다. 가슴이 뿌듯해올랐다. 아, 장군님께서 계시여 대원수님의 위업은 해와 달이 다하도록 그대로 이어지고 우리 어린이들은 경애하는 대원수님과 꼭같으신 아버지장군님의 품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행복하게 배우며 자라게 된것이구나.… 《옥련아!》 장군님께서 부르시였다. 《그럼 부디 공부를 잘해서 꼭 훌륭한 녀류작곡가가 되거라. 네가 지은 명곡을 기다리겠다.》 그러시고는 옥련이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장군님말씀대로 꼭…》 옥련이는 이렇게밖에 인사를 드리지 못하였다. 눈물이 왈칵 솟구치면서 잘 가라고 손저어주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더는 뵐수가 없었다. 몇발자국 옮기고나서 다시 눈물을 씻고 장군님 서계신쪽을 뒤돌아보았다. 노을빛을 함뿍 받으시며 손을 흔들어주시는 장군님의 모습은 정녕 친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그 사랑을 어찌 친부모의 사랑에 비길수가 있으랴.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더 따사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어머니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재능의 싹을 장군님께서는 뜨거운 사랑으로 애써 찾아주고 애지중지 키워주시지 않는가! 그러자 가슴속에서 쇠물과도 같은 뜨거운것이 끓어번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버지장군님이시야말로 정녕 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주고 아름답게 꽃피워주는 해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에서 나오는 강렬한 흥분이였다. 그렇다. 아버지장군님은 해님이시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에게는 한없이 곱게 피여날 창창한 앞날이 약속되여있는것이 아닌가! 사랑의 선물을 받아안고 꿈속을 가듯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옥련이의 가슴속에서는 격동적인 선률이 저절로 솟아나 장엄하게 울리였다.
해님처럼 해님처럼 품어주시고 해님처럼 해님처럼 꽃펴주시네 그 품에서 희망은 나래를 펴고 우리의 앞날은 창창하지요
아 우리 아버지 김정일장군님 김정일장군님은 조선의 해님 …
옥련이는 그날 저녁으로 작곡을 끝내였다. 그는 제목을 《해님의 노래》라고 달았다.
주체86(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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