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영 미 1
언제부터인가구요? 그것은 바로 자기네 학교를 졸업하고 영웅이 된 군대형님과 상봉모임을 가졌던 바로 그날부터였답니다. 그날부터 용남이의 가슴속에는 남모르는 커다란 그 결심이 바위돌처럼 들어앉게 되였습니다. 지금 용남이는 그 마음을 안고 리수복영웅을 형상한 그림을 쳐다보고있습니다. 매일 아침 학교에 들어설 때마다 꼭꼭 자기들을 맞아주는 리수복영웅아저씨! 불뿜는 적의 화점앞으로 용감하게 돌진해나가는 아저씨의 모습은 볼수록 새힘이 솟구쳐오르게 합니다. 용남이는 원쑤의 화점이 눈앞에 있기라도 한듯이 달려가는 자세를 취하며 가슴을 쑥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손에 묵직이 쥐여져있어야 할 총이 없어 그런지 허전하면서 자세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안되겠어. 총부터 만들어야겠어. 오늘 당장! 멋진 따발총을 말이야.》 《응, 만들자.》 뒤에 섰던 인수가 벙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기나서 교실에 들어선 용남이는 걸상에 털썩 앉았습니다. 《삐걱ㅡ》 걸상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용남이는 들은둥만둥 다시 벌떡 일어났습니다. 걸상을 책상옆에 내다놓고 거꾸로 돌아앉아 등받이를 량손으로 쥐고 말타듯 몸을 들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걸상은 기우뚱거리며 뚜꺽뚜꺽 소리를 냅니다. 용남이는 지금 걸상이 아니라 《말》을 타고 《힘차게》 달리고있었습니다. 《소년장수》에서 나오는 예동이나 날새처럼 채찍을 휘두르면 하늘이라도 날것 같았습니다. 눈이 올롱해진 녀자애들이 용남이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마나, 정말 세찬이다야.》 《걸상이 견뎌내겠니?》 인수도 곁에서 보다 못해 한마디 했습니다. 《용남아, 이젠 그만둬.》 용남이는 자기의 붕ㅡ 뜬 기분을 연기처럼 날려보내려는 인수를 보며 코웃음쳤습니다. 《잔소리 많은 할머니》처럼 또 훈시를 하려드니 말입니다. 늘 그런다니까… 제가 무슨 선생님이라고 통제까지 하면서 그래? 《됐어됐어ㅡ 난 지금 <말>을 타고 달린단 말이야. 쩌ㅡ쩌쩌ㅡ 누가 우릴 당하랴 말을 몰아가자 말을 몰아가자 소년장수야.》 용남이는 걸상다리로 말발굽소리를 울리고 손바닥으로 책상까지 쳐대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바로 그때 따르릉, 따르릉 수업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제김에 놀라 벌떡 일어서던 용남이는 《아이쿠.》하고 비명소리를 내질렀습니다. 엉치쪽에서 《뿌욱ㅡ》하는 소리가 들려왔기때문이였습니다. 《엉?!》 이걸 어쩝니까, 글쎄 바지가 못에 그만… 걸상을 흔들 때마다 솔금솔금 올라온 못이 바지를 물어뜯을줄이야… 용남이는 짧은 목을 가까스로 돌리며 소리난곳을 손더듬해보았습니다. 손가락이 세개나 들어갈만큼이나 째졌는데 그 짬으로는 파란 운동복이 들여다보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야, 이거 어쩌니?…》 《하하하, 고놈의 못이 성났구나, 하하하.》 《걸상을 마구 흔드니까 그러지.…》 여기저기서 입모아 놀려대는 소리들이 들려오자 용남이는 얼른 손바닥으로 째진 바지구멍을 가리우고 커다래진 눈으로 교실을 한바퀴 휘둘러보았습니다. 수업준비를 하느라고 부산을 피우던 아이들의 눈길이 자기의 째진 바지에 모여 바글거리자 그만 얼굴이 수수떡처럼 시뻘개졌습니다. 이때 교실 앞문이 열렸습니다. 용남이는 바삐 걸상우에 책을 올려놓고서야 자리에 앉을수 있었습니다.
2
용남이의 마음은 인수를 내놓고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가슴속에 움터나 점점 크게 자라나는 그 마음, 꼭 영웅이 되여서 어른들을 깜짝 놀래울 하늘같은 욕망을 말입니다. 아마 용남이를 제일 잘 알고 제일 사랑하는 어머니도 그 마음을 다는 모를겁니다. 그저 딱친구인 인수와 단둘이서 어서 커서 꼭 영웅이 되자고 약속했으니까요. 망치, 판자, 못, 대패 등 한마당 가득 널어놓은 용남이는 지금 한창 톱질을 하고있습니다. 앞에는 서툴게 그린 따발총그림까지 척 놓여있습니다. 오늘 휴식시간마다 짬짬이 무던히도 애를 써서 그린 따발총입니다. 그림은 서툴지만 만들기는 멋있게 만들어볼 결심이였습니다. 한참이나 톱을 쥐고 땀을 흘리며 씩씩거리던 용남이는 펄썩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에ㅡ참 힘들구나. 하루밤에 한살씩 먹는 그런 약은 좀 없나? 그럼 하나, 둘, 셋… 열밤만 자면 나도 어른이 되여 힘을 꽝꽝 쓸텐데…》 그러고있을 때 인수가 나타났습니다. 《용남아, 뭘하니?》 용남이는 구원자라도 만난듯 기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의 손에 망치와 뻰찌가 들려있기에 더구나 반가왔습니다. 《왜 인제야 오니? 눈 빠지게 기다렸는데…》 《그런데 이건 뭘 잔뜩 벌려놨니?》 《아니, 뭐 잔뜩?… 넌 그럼 그 공구들은 왜 들고왔니?》 그러자 인수는 제편에서 눈이 동그래집니다. 《아까 약속하지 않았니? 교실 옷걸개…》 《옷걸개? 으응, 그렇구나.》 그제야 생각났습니다. 아까 학교에서 돌아오며 인수와 주고받은 이야기가 말입니다. 《용남아, 우리 오후에 학교에 갔다오지 않을래?》 《학교에? 왜?》 《응, 옷걸개가 거들거리더구나. 못이 빠져나온것 같애. 우리 소년단반이 이번주 청소당번이 아니니?》 《야ㅡ 청소당번이 뭐 그것까지 해야 하니? 목수아저씨도 있는데…》 《그런거야 간단한데 우리 손으로도 할수 있지 뭐. 그통에 네 걸상도 고치잔 말이야. 삐걱소리가 나지 않게…》 《하긴 그래. 헤헤, 거참 말을 탈 땐 좋은데 삐걱삐걱 신음소리를 내는건 싫더란 말이야. 내 바지를 찢어놓는건 더구나 싫어.》 용남이는 혹시 누가 자기의 째진 바지구멍을 발견하지나 않겠나 해서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가서 고쳐놓자, 잉?》 《응, 그래 그래.》 이렇게 찰떡같이 약속해놓고도 냉큼 까먹어버리고 밥술을 놓자마자 따발총만들기에 달라붙었던것입니다. 《그런데 인수야, 너도 따발총을 함께 만들자고 하지 않았니.》 《그거야 학교에 갔다와서 만들어도 되지 뭐.》 《그럴가?》 용남이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잔뜩 벌려놓은것들을 내려다보다가 졸라대듯이 말했습니다. 《인수야, 괜히 오늘 또 갔다올거 있니. 래일 아침 일찍 나가서 하자마.…》 《애두 참, 학교가 뭐 그리 멀다고 래일로 미룬단 말이냐.》 그래도 용남이가 일어날념을 안하자 인수도 고개를 기웃거렸습니다. 《그렇게 하자마. 빨리 가서 나무토막들을 있는대로 좀 갖고와. 우리 집엔 요것밖에 없어서 그래. 네것도 함께 만들자, 응?》 그러자 인수는 할수 없다는듯 돌아서 집으로 갔습니다. 용남이는 다시 톱질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손재간이 서툴다나니 따발총은 맵시는커녕 점점 보기 흉하게 되였습니다. (에ㅡ참, 이것도 헐친 않구나.) 아까 제손으로 따발총을 만든다고 판을 벌려놓자 어머니가 하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얘얘, 눈엔 익어도 손엔 설다고 했다. 네가 꽤 만들어내겠니?》 그 말씀이 맞는것 같았습니다. (에ㅡ 암만 해도 내 재간으론 안되겠어.) 용남이는 자기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군 하던 뒤집할아버지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벌려놓았던 잡동사니들을 와락와락 걷어안았습니다. (그런데 이 앤 왜 아직 안 오는거야. 아마 그애도 자신이 없는게지?) 그럴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용남이처럼 제가 좋아하는 옆집형님을 찾아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3
용남이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했습니다. 걸을 때마다 기분좋게 잔등을 두드려주는 멋진 따발총, 뒤따라선 아이들이 한번만 메여보자고 저저마다 졸라댑니다. 그만큼 용남이의 따발총은 멋이 있었습니다. 뒤집 전쟁로병할아버지가 얼마나 품을 들여 만든 총이라구요. 할아버지는 아무리 나무총이래도 무게가 있어야 한다면서 용남이가 가져간 나무대신 단단한 자작나무로 총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격발기는 손으로 돌리면 따륵 따르륵소리가 나고 까만색과 밤색칠을 하고 양초로 대우까지 내니 멀리서 보면 진짜총같았습니다. 게다가 묵직하기까지 해서 마치 리수복아저씨의 따발총을 넘겨받아멘 기분이였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따발총을 용남이는 군사놀이를 시작하면서 인수더러 메게 했습니다. 오늘 군사놀이는 서로 상대편 《작전문건》을 탈취하는 놀이인데 용남이는 대장이기때문에 권총을 차고 《지휘부》에서 전투지휘를 하게 되였던것입니다. 아이들이 너도나도 따발총을 자기에게 넘겨달라고 사정했지만 용남이는 곁에 서서 말 한마디 안하는 인수에게 다가가 총을 안겨주었습니다. 왜 그랬느냐구요. 그것은 어제 오후 인수가 자기 총을 만들지 못하면서도 학교에 가서 옷걸개와 함께 용남이의 걸상까지 고쳐놓았기때문입니다. 인수는 용남이의 말대로 집으로 돌아가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학교로 갔던것이였습니다. 오늘 아침 용남이가 교실에 들어서서 자기 자리에 앉으니 그 듣기 싫은 삐걱소리가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니 누군가 기윽자모양의 각철까지 대고 못질을 해놓은것이 얼른 알렸습니다. (이걸 누가 했을가?) 사실 용남이는 걸상을 수리하려고 못과 망치를 가지고 남먼저 학교에 나온 걸음이였습니다. 그가 텅 빈 교실을 둘러보는데 마침 인수가 들어왔습니다. 인수는 눈이 퀭해진 용남이를 보며 싱글싱글 웃으면서 노란 칠감병을 꺼내놓았습니다. 《아니?… 그럼 인수 네가 이걸…》 그제야 모든걸 알아차린 용남이는 뒤머리를 슬슬 긁었습니다. 《너두 참… 내가 해야 할걸… 하여튼 고맙다.》 서로 마주보며 벌씬벌씬 웃던 두 아이는 시꺼먼 각철에 노란 색칠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걸상의 색갈과 같아져 철판 댄것이 잘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용남이가 누구에게 총을 주겠습니까. 이어 공원 한쪽구석에서 군사놀이가 시작되였습니다. 누가 먼저 상대편《지휘부》를 점령하는가에 따라 전투의 승패가 결정됩니다. 용남이네가 먼저 몰래 《지휘부》로 기여드는 《적》의 정찰병들을 몽땅 요정냈습니다. 용남이는 자기편 보초병들과 호위병들까지 쓰러지자 성난 호랑이처럼 나머지 두명의 적정찰병들을 단숨에 쳐눕혔습니다. 그리고는 숨돌릴새없이 상대편《지휘부》로 냅다 돌격했습니다. 거기서도 두편사이에 치렬한 전투가 벌어지고있었습니다. 자기네 보초병들이 다 쓰러지자 대장인 철호는 《작전문건》이 든 가방을 안고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용남이가 길을 차단하며 덤벼들자 도로 《지휘부》나무밑으로 밀리여갔습니다. 이젠 다 먹은 떡이라고 생각한 용남이네가 철호를 포위하고 한걸음한걸음 좁혀들어갔습니다. 이때 뜻밖의 정황이 생겼습니다. 《야, 여기에 증원대가 간다ㅡ》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뒤를 보니 네명의 상대편정찰병들이 달려오고있었습니다. 유인조에 속았다는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는 모양입니다. 자기네 편을 보자 철호는 너무 좋아서 《자, 받아라ㅡ》하며 《작전문건》가방을 그 애들에게 던졌습니다. 그런데 너무 높이 던지다나니 아뿔싸 키높은 은행나무가지에 걸리고말았습니다. 용남이는 누가 어쩔새없이 재빨리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휘친휘친한 나무가지를 마구 발로 굴러댔습니다. 그러나 가지끝에 매달린 가방은 춤추기를 하는것이 재미나는지 좀체로 떨어질념을 안했습니다. 좀 더 가지를 타고나가면 손에 잡히겠는데 그러다 꺾어지면 어쩝니까. 두길이나 되는 높은 곳이여서 무섬증이 났습니다. 《작전문건》가방이 《그네뛰기》를 하는바람에 서로 《육박전》을 벌리던 애들도 네편 내편 없이 웅기중기 모여서서 그것만 올려다보고있었습니다. 용남이는 나무가지를 잡고 발볌발볌 접근해갔습니다. 《용남아, 가만있어, 내가 <낚시대>를 가져올게.》 밑에서 올려다보던 인수가 웨치는 소리였습니다. (낚시대라는건 또 뭐야?) 용남이는 이렇게 생각하며 한발두발 앞으로 나갔습니다. 《야ㅡ 대장동무, 그러다 떨어지겠어.》 《조심, 조심, 대장동무!》 용남이네 편 아이들이 벅작 떠들어대는 소리였습니다. 용남이는 더욱더 사기가 올랐습니다. 수많은 대원들의 마음에 떠받들려 대장이 직접 《적진》을 향해 돌진합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용남이는 머리우의 나무가지를 단단히 틀어쥐고 한발작, 두발작 돌진해갔습니다. 이때였습니다. 갑자기 《찌ㅡ익ㅡ》하는 소리와 함께 밟고있던 나무가지가 째지고말았습니다. 《아, 아, 아…》 용남이는 고함을 지르며 나무에서 허양 떨어지고말았습니다. 《아이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던 용남이는 한순간 얼떨떨해졌으나 인차 벌떡 일어났습니다. 대장의 위신과 체면이 먼저 생각되였던것입니다. 《다치지 않았니?》 《정말 일없니?》 어마지두 놀란 아이들이 오구구 모여들었습니다. 용남이는 떨어질 때 땅에 먼저 닿은 왼팔이 몹시 아팠으나 아무렇지도 않은듯 싱긋 웃어보였습니다. 《아프지 않아, 이쯤한거야 뭐.》 《용남이는 정말 대장감이야.》 이때 길다란 낚시대대신 장대를 둘러멘 인수가 비틀거리며 달려왔습니다. 《얘얘, 그건 필요없어.》 《헹, 어른들 말대로 행차뒤 나발이지.》 《응? 벌써 내려왔니?》 《그럼, 자 봐라.》 용남이는 자랑스레 어깨에 멘 《작전문건》가방을 보였습니다. 《아니, 근데 저… 야ㅡ 끝내 가지가 찢어졌구나.》 인수가 걱정하는 말이였습니다. 《뭐 일없어. 나무가지 하나쯤이야 뭘.》 그런데 인수한테 맞장구를 치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야ㅡ 거 멋있는 가지였는데…》 《나무가 아프겠는데…》 《좀 더 기다렸으면 될걸. <낚시대>루 슬쩍하게 말이야.》 하지만 용남이네 편 애들이 이겼다고 만세를 부르는 바람에 아이들모두는 찢어진 나무가지에 대해선 인차 잊고말았습니다. 그러나 애들은 나무가지말고 또 다른 그 무엇이 부러졌다는것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하고있었습니다. 어쨌든 전투에서 승리한 용남이네는 하늘을 찌를듯 기세가 높아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4
용남이네 학급아이들은 와짝 떠들며 학교정문을 나섰습니다. 아이들은 인수가 대장인듯이 빙 둘러싸고서 걷고있습니다. 그런데 어제만 해도 대장이였던 용남이는 풀이 죽어 맨 뒤에서 슬몃슬몃 걸어갑니다. 그의 앞가슴에는 기윽자모양의 부목을 댄 왼팔이 붕대에 매달려있었습니다. 용남이가 왜 팔에 부목을 댔는가구요. 그것은 바로 어제 나무에서 떨어질 때 팔목이 상했기때문이랍니다. 군사놀이가 끝날 때까지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보니 팔목이 점점 부어올랐습니다. 손가락으로 조금만 다쳐도 아픈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래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갔던 용남이의 팔에 부목과 하얀 붕대가 감기게 되였던것입니다. 의사선생님의 말이 한 열흘정도는 그렇게 하고 다녀야 한다는것이였습니다. 용남이는 처음엔 무척 창피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의 용감성을 보여주는 《영예로운 부상》이라고 생각하니 부끄러움도 가뭇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정말 군사놀이에서도 용감했고 또 《부상》을 당하고도 용감하게 학교에 나온 용남이였습니다. 그런 용남이를 학급동무들만아니라 다른 동무들도 모두 놀란 눈길로 바라보기까지 했습니다. 용남이는 순식간에 《용감한 아이》, 《대단한 아이》로 되였습니다. 아침 첫시간에 들어오신 담임선생님도 무척 놀라 엄하게 타이르면서도 《하긴 그만한 용감성이야 있어야지. 앞날의 인민군대인데…》라고 혼자말처럼 하시는 바람에 어깨가 얼마나 올라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더 올라갈수가 없어 안타까와하던 어깨가 지금 더 내려갈 자리가 없어 후줄근해지고말았습니다. 왜냐구요? 방금 하루총화를 하는 시간에 있은 일이랍니다. 선생님이 뜻밖에도 인수를 크게 칭찬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사연인즉 오늘 아침에 공원관리소에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글쎄 인수가 어제 공원에서 진흙과 새끼오리로 꺾어진 나무를 꽁꽁 싸매주고 작대기로 벋침목까지 해주었다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선생님은 인수가 며칠전에 교실의 옷걸이와 다른 동무의 걸상까지 고쳐주었다고 덧붙여 칭찬해주었습니다. 용남이의 얼굴은 삽시에 새빨개지고말았습니다. 인수를 칭찬받게 만든 걸상과 나무가지는 다 자기가 못쓰게 만든것이였으니까 말이예요. 결국 자기는 못쓰게만 만들고 인수는 좋은 일만 하고… (그러니 난 못쓸 아이?… 아니, 아니야.) 그럴 때 선생님이 인수를 불러세웠습니다. 《인수학생, 한번 대답해보세요. 어떻게 되여 그런 좋은 일을 하게 되였는지…》 그런데 선생님의 물음에 언제나 또랑또랑 대답하던 인수가 오늘은 우물쭈물 머리를 수그립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가볍게 웃으시면서 다시 말씀했습니다. 《괜찮아요. 인수학생의 가슴속에 늘쌍 간직되여있을 그 소중한 마음을 어디 한번 말해보세요. 그런 마음이 없이야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을 할수가 있었겠어요.》 그러자 수그러졌던 인수의 머리는 점점 쳐들려졌습니다. 인수는 학급동무들을 빙 둘러보고나서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전 불타는 고지에서 용감하게 싸운 리수복영웅아저씨의 그 마음을 닮고싶었습니다.》 《리수복영웅아저씨?》 용남이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가 다시 슬그머니 아래로 떨구었습니다. 자기도 《말》을 타고 상상속의 소년장수가 되여 힘차게 달릴 때 영웅아저씨를 생각했습니다. 아슬아슬한 나무가지를 타고 《적진》으로 육박할 때에도 영웅아저씨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을 타느라 못쓰게 된 걸상을 고치고 자기가 《용감》하게 싸우느라 부러뜨린 나무가지를 감싸줄 때 인수도 영웅아저씨를 생각했다는것이 아닙니까. 여느때라면 참말 이상하다고 눈이 둥그래졌을 용남이였지만 지금은 고개를 푹 숙이고있습니다.
《어서 계속하세요.》 선생님이 인수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리수복영웅아저씨가 불타는 전호가에서 정성스레 키운 애솔나무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교실에 가벼운 속삭임소리가 봄바람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야, 전호가의 애솔나무!》 《그래그래, 자기들이 마실 귀한 물이랑 부어주면서 키운 나무…》 《야, 인수는 참 생각이 깊은 애였구나.》 (에참, 난 왜 그걸 생각 못했을가. 맨날 리수복영웅아저씨를 따라배우겠다면서 말이야.) 용남이는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꼭 영웅이 되자고 서로 함께 약속했을 때 인수와 달리 자기는 비뚤어진 생각을 가지고있었던것이였습니다. 《인수학생의 말이 옳아요. 영웅의 심장은 용감성보다도 사랑으로 불타야 하는거예요.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 다정한 동무들과 친근한 이웃들… 바로 그 모든것이 우리의 조국이 아니겠어요. 조국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참다운 영웅이 될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의 절절한 목소리가 용남이의 가슴을 쿵쿵 세차게 울려주었습니다.… 지금 용남이의 눈앞에는 영웅아저씨가 화구를 막으면서 억세게 틀어잡은 따발총과 몇모금의 귀한 물까지 부어주며 키운 애솔나무가 삼삼히 그려지고있었습니다. 따발총과 애솔나무! 정말이지 그 애솔나무를 살리기 위해 애쓴 뜨거운 사랑이 가슴속에 불타고있었기에 영웅아저씨는 서슴없이 원쑤의 화점을 막을수 있었던것이 아니겠습니까. 용남이는 슬며시 인수의 손목을 잡았습니다. 《인수야, 넌 정말 괜찮다야. 그런데 난 영웅은커녕 군사놀이대장자격도 없어.》 이것은 용남이의 진심이였습니다. 학급동무들과 함께 용남이는 어제 그 은행나무를 찾아갔습니다. 아이들은 인수가 손질해놓은 나무를 마치 귀한 물건이기라도 한듯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용남이는 나무를 보는 순간 기윽자를 생각했습니다. 길게 뻗은 나무가지와 그것을 떠받든 받침대, 못에 걸려 기윽자로 째졌던 자기의 바지와 인수가 용남의 걸상에 붙인 각철 그리고 지금 자기의 팔목을 얽어매고있는 기윽자부목, 모두 꼭같은 모양의 기윽자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인수의것은 다 좋은것들이고 자기의것은 다 나쁜것들이였습니다. 용남이는 자기의 왼팔을 내려다보며 힘주어 말했습니다. 《인수야, 난 다시는 이따위 나쁜 기윽자들이 생기지 않게 할래.》 《그래, 우리모두 인수를 따라배워야 해. 그래야 영웅이 빨리 될수 있어.》 《그래그래, 우리 앞으로 꼭 영웅이 되자.》 아이들은 은행나무밑에서 손에 손을 맞잡고 맹세를 다졌습니다. 한줄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들을 축복해주듯 공원의 모든 나무들도 정답게 가지를 흔들어주고 활짝 핀 꽃송이들도 한들한들 춤을 추었습니다.
(신계군 수림중학교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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