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3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류 명 남
참말 즐거운 일이란, 기쁨으로 가슴까지 호드득 뛸만큼 반가운 일이란 바로 이런것이 아닐가. 세상에 태여나 열두해만에 처음으로 만난 아이,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와서 바로 엊그제부터 나와 한학급에서 공부하게 된 그 광수가 글쎄 내가 세상에 태여나기도 전부터 우리 집과 깊은 인연을 맺은 기계공장 고문할아버지의 외손자라니 참… 더구나 나를 기쁘게 한것은 광수가 무척 똑똑하고 공부도 잘한다는 바로 그것이였다. 지나간 이틀동안 광수는 자기의 말과 행동에서 그것을 넉근히 짐작하게 해주었던것이였다.그런데 우리는 옹근 이틀간이나 서로 모르고 지내지 않았는가. 그러고보면 우습기도 한 일이였다.아침 일찌기 나는 급히 학교로 향했다. 한시바삐 광수를 만나 영화나 소설책에 나오는것처럼 얼싸안고 돌아가는 그런 멋있는 상봉을 하고싶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교문으로 들어서는데 바로 그 광수가 다른 곳도 아닌 운동장 한복판에서 명석이와 꼿꼿한 자세로 마주서있는것이 아닌가. 얼핏 보기에도 무슨 일로인가 아웅다웅하는것이 분명했다. (저건 또 뭐야?) 즐겁게 설레이던 가슴이 후두둑 뛰는것이였다. 광수는 광수고 나는 바로 그 애들의 학급장이 아닌가. 냅다 달려간 나는 명석이와 광수의 팔꿈치를 덥석 잡았다.《왜 그래? 너희들…》 두 애가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둘 다 온곱지 않은 눈찌들이였는데 광수가 먼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길남아, 너희 아버지가 바로 우리 할아버지의 견습생이였더구나.》 하지만 나는 마주 웃어줄수가 없었다. 다른 애도 아니고 바로 광수에게, 그것도 전학온지 기껏 이틀만에 누군가와 아웅다웅할 일이 생겼다는것은 정말이지 즐거운 일이 아니기때문이였다.《무슨 일이야?》 나는 명석이를 견주고 따지듯 캐물었다. 명석이는 이미 주눅이 든 기색이였다. 광수가 한 그 《견습생》소리에 벌써 우리 둘사이의 범상치 않은 인연을 눈치챘는지 입안의 소리로 중얼거리는것이였다.《얘가 어제 아무 말도 없이 학습반에 오지 않았길래…》명석이는 광수가 속한 소년단반의 반장이였다. 조그마한 잘못에도 에누리를 모르는 엄격한 반장인 명석이였다. 《집에 가니까 어머니가 도배를 시작했더구나. 그래서 그걸 돕느라구…》 바로 그것이 광수가 학습반에 빠진 리유였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럴 땐 뭐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반장으로서 응당한 규률을 세우려는 명석이, 새집꾸리기를 돕느라고 전학와서 두번째 날의 학습반에 빠진 광수…정말이지 나무랄수도 없고 그렇다고 편들어주기도 딱한 광수와 명석이 두 애가 내앞에 서있었다. 《됐어, 그만하구 들어가자꾸나.》 나에게는 그 말밖에 할것이 없었다. 광수도 더 다른 말이 없고 명석이도 눈을 쓱 내리깔고 제 먼저 교실로 들어갔다.그가 간 다음 나와 광수는 싱긋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광수야!》 《길남아!》 서로 얼싸안으려던것이 손이나 맞잡는것으로 바뀌였지만 첫 상봉의 기쁨은 컸다. 그날 나와 광수는 짬만 생기면 마주서서 많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군사복무를 마치고 우리 아버지가 사회생활의 첫발을 떼던 그때부터 친아들처럼 도와주고 이끌어주고 대학공부까지 하게 해준 광수네 할아버지며(그때 광수네 할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네 직장장이였다.) 처녀시절의 광수 어머니가 멀리 서해의 어로공에게 시집을 갈 때 우리 어머니가 이것저것 도와준거며 여기로 이사오기 전까지 광수네가 살아온 바다가마을이야기랑 시간가는줄 모르고 주고받았다.지나간 이야기도 좋았다. 하지만 그 인연이 수십년세월이 지나간 오늘도 끊기지 않고 오히려 더 든든하게 이어진것이 더욱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짐작했던대로 광수는 머리도 좋고 말 또한 재미나게 할줄 아는 아이였다. 류다른 즐거움에 푹 빠지다나니 나는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말았다.하지만 사흘도 못 가서 그 사건을 다시한번 되새겨보게 될줄은 꿈에도 모르고있었다.
×
그날은 사실 더없이 재미나는 날이였다. 수업이 끝난 뒤에 우리 2학년 1반과 3반 아이들간에 축구경기를 했던것이다. 《좋구나!》 《좋다!》 《붙어보자, 붙어보자.》 아직 한번도 붙어본적이 없고 그래서 이길지 질지도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신바람이 났다. 체육경기의 승벽심이란 언제나 그런 법이 아닐가.…녀자애들까지 괜히 좋아서 떠들썩거리였다. 유정이란 애는 얼음이 둥둥 뜨는 백두산들쭉단물을 한바께쯔 가져오겠다고 나섰다. 유정이의 뒤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한바께쯔 가지고 될가? 땀을 흠썩 흘리고나면 모두 한사발씩 쭉쭉 들이킬거구 녀자애들도 목이 터지게 응원하고나면 목이 마를텐데…》《이기기만 하라지. 우리 몫까지 다 주자.》 녀자애들속에서 누군가 한마디 하자 참새무리들이 내군 하는 그런 소리가 교실안에 꽉 들어찼다. 《그래그래, 다 주자!》 《얘얘, 지면 어쩌니?》 《어쩌긴, 한방울도 못 먹지!》 《하하하.》 《호호호.》 (챠, 이거 졌다간 또 굉장하겠구나야.) 나는 은근히 걱정되여 스무명 잘되는 남자애들을 둘러보았다. 공을 괜찮게 다룰수 있을만 한 애는 겨우 서너명밖에 안되였다. 나머지는 괜히 윽윽거리기만 했지 실력은 뻔하였다. 그러던 나의 눈길은 문득 광수에게 가서 멎었다. 광수는 떠들어대는 아이들쪽은 본척도 않고 책만 들여다보고있었다. 어제부터 보기 시작한 무척 재미난 상식책이라는것을 나도 알고있었다. (가만있자, 혹시?) 나는 급히 광수에게로 다가갔다. 《광수야, 넌 축구실력이 어떻니? 경기에 나가보지 않을래?》 《히― 나야 뭐…》 광수는 별나게 웃으며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나는 슬며시 돌아서고말았다. (얘도 축구는 한심한 모양이구나.) 《참, 길남아, 나 운동장에 안 나가면 안되니? 오늘중에 이 책 다 보구파서 그래.》 광수의 곱살한 얼굴에는 웃음이 남실거리고있었다. 《이것두 학급적인 사업인데 안 나가면 어쩌니? 운동장에 나와서 보렴.》 《오― 그래두 되겠구나.》 광수는 좋아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때 물 마시러 갔던 세룡이가 커다란 비밀하나를 《렴탐》해가지고 교실에 들어섰다. 《길남아, 길남아, 이제 오면서 듣자니까 말이야 3반 애들이… 그 무슨… 4.3.3체계요 뭐요 하면서 수군덕거리더구나. 그게 무슨 소릴가?》 그러자 광수가 제꺽 대주었다. 《그건 바로 축구전술체계야.》 《흥!》 세룡이는 요란하게 코방귀를 내불었다. 《도제 4.3.3이야? 그렇다면 우린 10.3.3체계쯤 하자꾸나 뭐.》 그 바람에 와 ㅡ 하고 웃음판이 터져올랐다. 하지만 나는 웃을수가 없었다. 벌써 4.3.3체계소리까지 나오는걸 보면 3반에는 축구실력이 괜찮은 아이들이 많은 모양인데 우리 학급에는 아직까지도 10.3.3체계를 웨치는 축구무식쟁이까지 있으니 야단이 아닌가. 나의 걱정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그날 우리 학급은 3 대 0이라는 압도적점수차이로 패하고말았다. 축구실력도 실력이지만 보다는 다들 제멋대로 놀아댄것이 더 큰 문제였다. 제가 꼴을 넣겠다고 제편 선수의 공을 우격다짐으로 빼앗는 애가 있는가 하면 독판치기로 정신없이 돌아치다나니 제편 꼴문대를 향해 거꾸로 번개같이 육박해들어가는 선수까지 있었다.결국 3반 애들은 축구도 기분좋게 치르고 한편으로는 재미나는 《희극영화》까지 본셈이였다. 글쎄 3반의 문지기는 공도 몇번 만져보지 못한 대신 땅바닥에 퍼더버리고앉아 배를 그러안고 웃기까지 하였으니 이런 망신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유정이가 경기끝날무렵에 갖고온 들쭉단물은 한방울도 축나지 않았다. 그렇게 되니 지면 한방울도 마시지 말라던 녀자애들이 오히려 사정을 하였다.《어서들 마시렴. 이 많은걸 다 어떻게 하니?》 《야― 참, 다음번에 이기믄 되잖니?》 그러고보면 우리 반 녀자애들은 다들 마음고운 아이들이였다. 할수없이 내가 먼저 고뿌를 받아들고 쓴약인듯 오만상을 찌프리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러자 하나둘 눈치를 보며 유정이에게 다가가더니 잠간새에 통을 바닥냈다. 정말이지 오늘은 기분상하는 날이였다. 그런데 더욱 기분상하는 일은 그 다음날에 생겼다. 수업이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명석이가 나에게로 다가왔다.《길남아, 난 너한테 꼭 말해야 하겠어.》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미는것 같은 소리에 나는 눈이 둥그래졌다. 《무슨 말?》 명석이는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한번 힐끗 돌아보더니 다시 내 귀에 입을 갖다댔다. 《광수 말이야, 어쩌면 그럴수 있니?》 나는 저도 모르게 명석이처럼 고개를 돌려 책가방을 정돈하고있는 광수를 보았다. 《왜? 또 학습반에 안 나왔던?》 《아 ㅡ 니, 그런게 아니구. 어제 광수가 축구할 때 책만 읽지 않았니.》 《그랬던가?》 《그랬지 뭐. 그런데 알고보니 광수가 축구를 괜찮게 한다더구나.》《뭐라구?》 나는 그만 얼떠름해지고말았다. 혹시 명석이가 처음부터 광수를 밉게 본 나머지 오해를 한게 아닐가.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따지고들었다. 《넌 그걸 어떻게 알았니?》 《광수 동생 인수가 제 동무들한테 자랑했더구나 뭐.》 《그 애 말만 듣구 믿을수 있니?》 《마저 들어봐. 3반 공격수 정민이 있잖아. 그 앤 어제 저녁에 광수가 뽈 다루는걸 직접 보기까지 했대.》 나는 다리맥이 스르르 빠져나가는것을 느끼며 걸상에 털썩 주저앉았다.이쯤되면 헛소문일수야 없지 않는가. 나의 눈앞으로는 지난 며칠간에 있었던 일들이 고속화면처럼 피뜩피뜩 스쳐지나갔다. 학습반에 빠진 광수, (지금에 와서는 왜 갑자기 그 애가 도배때문이 아니라 오기 싫어 빠진것이라고 생각되는걸가.) 축구실력을 물었을 때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책이나 읽겠다던 광수, 게다가 운동장에 나와서는 저희 반이 이기는지 어쩌는지 알려고도 않고 책만 읽었다지…(광수, 네가 정말?…) 가슴속에 시커먼 구름장같은것이 갈마드는가싶더니 인츰 얼얼해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맛보는 감정이였다. 분한 생각일가, 아니면 괘씸한 생각?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광수는 동무들과 섭쓸리기 싫어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같았다. 오늘 아침 학교에 올 때에도 동네애들 몇이 함께 오기로 약속하였었다. 그런데 나타나지 않기에 지각하는가 했는데 벌써 저 혼자 교실에 와있지 않았던가.그런 애를 글쎄 누가 좋아하겠는가. 다른 애라면 몰라도 하필이면 광수가 그런 애라니 참… 나는 얼굴을 찌프리고 흠― 하고 긴 숨을 내쉬였다. 《됐어, 길남아. 너 혼자만 알고있으라. 나두 누구한테 말하지 않을래.》명석이가 위로해주는 말이였다. 내가 멍하니 쳐다보자 그는 이렇게 덧붙이는것이였다. 《너하구 광수하구야 보통사이가 아니지 않니?》 명석이 말이 옳았다. 우리는 정말이지 보통사이가 아니였다. 나는 광수네 할아버지가 친아들처럼 도와준 사람의 아들이였고 광수는 우리 아버지가 친아버지처럼 존경하는분의 손자였다. 《좋아, 그렇게 하자.》 나는 단마디로 시원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마음은 시원해지지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광수가 다른 애로 될리는 만무하지 않는가. 나는 어깨가 축 처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집에는 뜻밖에도 사촌누나가 와있었다. 누나는 우리 학교 소년단지도원인데 이모인 우리 어머니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 모른다. 오늘도 속탈로 이따금 앓는 어머니의 약을 구해가지고 왔던것이다.그런데 마음을 숨길수 없게 비쳐주는 거울이 바로 얼굴이라더니 누나가 어느새 나의 기색을 엿보고 조용히 물었다.《길남아, 너 무슨 일이 있었니?》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렸지만 누나의 눈은 속일수 없었다. 하는수없이 나는 요 며칠사이에 있은 광수 이야기를 자초지종 털어놓았다. 내 말을 다 듣고난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중한 어조로 말했다.《나도 알고있었다. 그래서 너에게 이야기해주려던 참이였다. 광수가 그러면 안되겠는데… 오래동안 외진 바다가마을에서 살다나니 그런 습성이 붙은 모양이구나.》 문득 누나는 약간 밝아진 기색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 보기엔 광수가 아직 자기가 잘못하구있다는걸 모르고있는것 같구나. 말하자면 무의식적인 결함이랄가…》 나는 얼른 누나의 무릎앞에 바투 다가앉았다. 《맞아요. 그래서 나하구 명석인 약속했어요. 우리끼리만 알구있자구 말이예요. 그저 내가 광수한테 조용히 말해주자는거예요.》그러자 누나의 어조는 대번에 엄해졌다. 《아―니, 넌 잘못 생각하구있다. 우리끼리라는게 뭐냐? 그게 그래 너하구 명석이 그리고 광수한테만 해당되는 끼리끼리문제인줄 아니?》 나는 영문을 몰라 눈이 둥그래졌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광수보다 너와 명석이의 잘못이 더 크다. 왜 그런가 하면 이건 단순히 광수 한 애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너와 명석이 그리고 광수랑 다 모여 이루어진 〈우리 학급〉에 대한 문제다. 딱친구 하나를 생각하기 전에 집단을 먼저 생각해야지. 더구나 축구경기를 보아도 너희 학급 애들이 한마음한뜻으로 뭉쳐지지 못하였다는것을 말해주지 않느냐.》누나는 잠시 노을비낀 창문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길남아, 명심해라. 아버지와 광수 할아버지가 그렇게 깊은 인연을 맺고있는것도 우리 둘사이만 좋으면 된다 하고 끼리끼리 감싸주고 덮어준 결과가 아니란다. 나도 엊그제 어머니에게서 들었는데 광수 할아버지한테 아버지가 처음엔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더구나. 왜냐하면 광수 할아버지는 바로 아버지 하나만 잘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안겨사는 고마운 조국을 위해 더욱 큰일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서였기때문이지. 길남아, 이걸 잊지 말아야 해.》 노을은 점점 더 붉게 타오르고있었다. 그 붉고 아름다운 빛갈 한폭이 누나의 당부와 함께 나의 가슴속으로 깊이깊이 스며드는것 같았다.나와 광수 그리고 명석이와 세룡이며 유정이랑 다 모여 이루어진 우리 학급… 저 하나를 먼저 생각할 때엔 작고도 보잘것없는 학급으로 되지만 자기보다 먼저 집단전체를 생각하고 귀중히 여길 때엔 크고도 강한 학급으로 될거야, 그 학급에서 생활하는 우리 동무들은 조국을 위해 큰일할 사람으로 자랄것이고… 새로운 깨달음과 새로운 결심으로 하여 나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올랐다. 이제는 그속에 시커먼 구름장같은것은 한쪼각도 남아있지 않았다.그 다음날에 있은 분단모임시간이였다. 나는 우리 분단 동무들을 빙 둘러보고나서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신광수동무를 비판하겠습니다.》 깜짝 놀라는 광수, 어리둥절해진 눈빛으로 나와 광수를 번갈아 쳐다보는 명석이… 그러나 나는 굳게 믿고있었다. 이제 몇분후면 그 애들도 지금의 나와 꼭같은 생각을 하게 될것이라는것을…×
《…전 오늘 우리 분단이라는 네 글자에 담긴 뜻을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진심담아 절절히 자기비판한 광수… 《…저도 학급을 생각하기 전에 개인적감정을 먼저 앞세우며 나쁘게만 보려 하고 뒤소리만 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자기비판을 한 명석이… 그 두 애가 지금 서로 손을 맞잡고 경기장에 나섰다. 경기장에 나선 우리 팀 선수들도 그랬지만 경기장밖에 어깨성을 쌓고 선 우리 팀 응원대의 기세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승벽이 센 유정이가 주동이 되여 차고 시원한 들쭉단물이며 당과류까지 준비한 녀자애들이 더 기세를 올리고있었다. 《나간다, 나간다. 우리 학급 나간다!》 3반과 다시한번 붙어보게 된 오늘의 축구경기… 여기서는 틀림없이 우리가 이길것이다. 만약 진다 해도 아쉬울것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벌써 한마음한뜻으로 뭉쳐진 강한 학급이 되였으니 말이다. 야무진 호각소리가 울리는 순간 광수와 명석이가 번개같이 공격해나간다. 그뒤에는 나 길남이가 서있다. 하늘은 맑고 해빛은 눈부시다. 바람결도 시원하다. 멋있다! 참말 즐거운 일이란, 기쁨으로 하여 가슴이 뿌듯해질만큼 좋은 일이란 바로 이런것이 아닐가.
(황해북도 장풍군식료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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