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3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장 성 철
아마 혁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뽐이나 되는 동침이나 주사바늘이라고 할겁니다. 또 제일 무서운 곳도 병원이라고 할거구요. 왜냐면 지난해 여름 어느날 유원지에 놀러 갔던 혁이는 장난삼아 설익은 살구를 따먹고 그만 배가 아파 병원에 실려간적이 있었답니다. 그때 여기저기 배를 만져보며 진찰하던 할아버지의사선생님은 혁이의 주머니에서 굴러나온 설익은 살구를 보고는 긴 눈섭을 쭝깃 추켜올렸습니다. 《이녀석, 넌 선생님들과 부모들의 말을 안듣고 익지도 않은 살구를 따먹은 못된 녀석이로구나. 병보다 먼저 그 나쁜 버릇부터 뚝 떼줘야겠다.》 하면서 글쎄 원주필속대만 한 싯누런 동침을 꺼내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혁이는 기겁해서 비명까지 내질렀습니다. 이따금 예방주사를 맞을 때에도 정말 할수없이 팔을 내미는 혁이인데 그 굵고도 긴 침은 주사바늘과는 대비도 안되게 무서웠습니다. 겁기를 잔뜩 빼물고 안 맞겠다고 도리질하던 혁이는 의사할아버지의 엄한 눈초리에 기가 죽어 할수없이 배꼽이 드러나도록 런닝그를 말아올리며 사정하듯 말했습니다. 《좀 살랑살랑 찌르라요.》 그러나 그 《살랑살랑》이라는 말이 의사할아버지에게는 반대로 들린 모양입니다. 동침은 인정사정이라고는 꼬물만큼도 없이 혁이의 배속을 파고들어갔습니다. 혁이는 동침이 아예 배속으로 다 들어가버리지 않았나 해서 머리를 들어 내려다보기까지 했답니다. 혁이는 그때 얼마나 혼이 났는지 침을 다 맞은 후 좀전의 엄한 기상이라고는 아침안개 걷히듯 싹 사라져버린 의사할아버지가 《이제 조금 있으면 인차 나을게다. 허허, 엄살꾸러기같은 녀석…》하고 정답게 웃어주었지만 도망치듯 달아나버렸답니다. 그때부터 혁이는 하얀 위생복을 입은 의사선생님들을 보기만 해도 동침이나 주사바늘을 보는것 같아 흠칫흠칫 놀라군 했습니다. 그래서 군사놀이를 할 때에도 한마을에 사는 송이가 빨간 더하기가 그려진 위생가방을 메고 나오는것조차 싫어했습니다. 《쳇, 감나무중대 녀성고사포병이나 월미도 영옥누나처럼 무전수를 할게지 간호원을 할건 뭐야. 뾰족한 바늘로 제편만 아프게 찌르는 간호원을 말이야. 우리에겐 부상병이 없으니 넌 다른편에 가라.》 그때 송이는 발로 땅바닥을 호비작거리며 《안영애영웅도 간호원이였어.》하고 말하였지만 대장인 혁이는 막무가내로 송이를 대렬에서 밀어냈습니다. 뾰족한 주사바늘에 아픔을 당하기보다는 용감하게 《자폭》하는것이 더 영예롭다는것이지요.… 이런 혁이가 지금은 병원으로 갑니다. 병원에는 혁이의 딱친구 오성이가 입원해 있었답니다. 물론 갈가말가하며 계속 망설이다가 이틀만에야 크게 마음먹고 떠난 길입니다. 오성이는 혁이가 부러워하는것이면 무엇이나 다 주는 정말 마음 착한 동무랍니다. 연필이면 연필, 그림책이면 그림책 그리고 삐뚤어진 자기의 오리발자국같은 글자를 새겨넣기에는 미안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멋있는 학습장도 아낌없이 주었답니다. 그런데 딱 한번, 바로 며칠전 첫눈이 내린 날 오성이는 처음으로 깍쟁이를 부린 일이 있었습니다. 탁아소때부터 소학교 1학년생이 된 지금까지 맺아진 굳고굳은 우정에 금이 갈 정도로 말입니다. 그날 숙제를 같이하려고 찾아갔던 혁이는 꽃뿌리를 심어놓은 여러개의 화분을 가꾸고있는 오성이를 보고 두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오성아, 이건 무슨 꽃인데 이 추운 겨울에 심었니?―》 오성이는 여린 볼에 보조개가 함뿍 패이도록 싱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응, 진주꽃뿌리야. 집에다 작은 온실을 만들어놓고 꽃을 키우려고 그래. 내 손으로 꽃을 키워서 2월 1 6일날 꽃다발을 만들어 아버지장군님의 현지지도사적비앞에 드릴테야.》 《히야, 굉장한데. 정말 멋진 생각이야.…》 혁이는 손벽을 치며 환성을 올렸습니다. 《오성아, 그 꽃뿌리를 나에게두 좀 주렴.…》 《참, 네 생각을 못하구 다 심어버렸구나.…》 오성이는 흙묻은 손으로 제 이마를 탁 치며 난처한 인상을 지어보였습니다. 《뭐야… 엥이.》 몹시 아쉬워서 화분들을 부럽게 바라보던 혁이의 얼굴이 갑자기 확 밝아졌습니다. 《옳지. 오성아, 이 화분에 심은 꽃뿌리를 파내자꾸나.… 세뿌리만 말이야. 보라, 너한테 하 나, 둘, 셋, 넷… 일곱개씩이나 있지 않니?》 《정신있니? 그건 안돼. 꽃뿌리가 죽을수 있어.…》 오성이는 불에 덴듯이 놀라는 시늉을 해보였습니다. 《뭘 죽는다구 그러니.… 너 주기 싫으니까 그러지?》 《아니야, 혁이야. 내가 다른걸 인차 얻어다 줄게.…》 《피, 거짓말…》 《정말이야…》 《됐어, 됐어. 싫으면 그만둬…》 혁이는 아래입술을 삐죽해보이고는 오성이네 집에서 나와버렸습니다. 오성이가 혁이네 집앞에까지 따라왔지만 혁이는 곁눈질도 안했습니다. 《혁이야, 내 제꺽 웃마을에 있는 우리 삼촌한테 좀 갔다올게, 응?》 한동안 머밋거리던 오성이가 주변농장으로 통하는 지름길쪽으로 가면서 하는 말이였습니다. (흥, 새빠지게 별걸 다 말하누나.… 거기 가는게 나와 무슨 상관이람.…) 대답도 안하고 집으로 들어온 혁이는 따스한 아래목에 앉아 달콤한 알사탕만 쫄쫄 빨았습니다. 그러다가 오성이가 금방 개울을 건너야 하는 지름길로 갔다는 생각이 문뜩 났습니다. 혁이는 어제 개울을 건느다가 세번째 징검돌이 기우뚱하는 바람에 하마트면 개울에 빠질번했던것입니다. 보기만 해도 으시시 몸이 떨리는 찬물속에 말입니다. 마당으로 달려나와보니 오성이는 암만 소리쳐도 듣지 못할만큼이나 멀리 가고있었습니다. (뛰여가서 말해줄가.… 에이, 저 깍쟁이도 나처럼 날쌔게 뛰여넘겠지 뭐.…) 혁이는 쌀쌀한 바람에 못이겨 어깨를 옴츠리며 집으로 들어오고말았습니다. 그런데 걱정했던 징검다리가 끝내 일을 칠줄이야.… 오성이는 그때 다친 발목과 센 감기때문에 병원에 입원까지 했답니다. 뭐 독감이라는 무서운 감기라나요. (쳇, 징검돌 하나 날아넘지 못하면서 거기로는 왜 갔담.…) 물살에 밀려 움직이는 징검돌을 건느다가 물에 빠져 어푸어푸하며 허우적거렸을 오성이의 모습이 혁이의 마음속에 아프게 안겨왔습니다. (그럴줄 알았으면 그때 뛰여가 알려줬을걸.…) 혁이는 오성이가 병원에 입원한것이 마치도 자기의 탓처럼 생각되여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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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병원현관앞에서 혁이는 한참이나 들어갈념을 못하고 걱정방아를 찧기만 하였습니다. 동침을 손에 든 눈섭이 긴 의사할아버지가 자꾸만 눈에 얼른거렸기때문입니다. (야― 요럴 땐 오성이가 좀 나와있었으면… 에이.) 혁이의 얼굴은 쓴 약이나 먹은것처럼 잔뜩 찌프러져있었습니다. 그러던 혁이는 갑자기 불에 덴 송아지처럼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답니다. 혹시 자기의 찌프린 얼굴을 의사선생님이 보면 아파서 그러는줄 알고 무작정 데리고가서 침이나 주사를 놓자고 할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혁이는 태연한척 하려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 현관문우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정+성》이라고 쓴 빨간 글자를 따라읽었습니다. 《정 더하기 성.》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글자는 참으로 이상한것이였습니다. (우리 말 글자도 수학처럼 더하기로 하나뭐.… 수학에서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되는것처럼 저걸 더하면 음… 정성이 되는구나 뭐. 정성이 뭘가.… 음… 정은 무슨 약을 말하는것이고 성은 그 뾰족한 주사바늘을 말하는것이겠지. 어쨌든… 아마 정성은 아픈걸 말하는것일거야. 그러면 덜기도 있을가.… 저걸 덜면 뭐가 될가?) 정말 알것 같으면서도 모를 일이였어요. 한참이나 이렇게저렇게 생각해보던 혁이는 (에이, 모르겠다.… 래일 선생님에게 물어봐야지.…) 하고는 현관안으로 냉큼 들어섰습니다. 여러가지 약냄새가 뒤섞인 《병원냄새》가 혁이의 코를 꽉 메워놓았습니다. 거울처럼 알른거리는 복도를 따라 하얀 위생복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선생님들과 주사통과 약봉투가 들어있는 함을 손에 든 간호원누나들이 분주히 혁이의 옆을 지나다녔습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방금 본 그 《정+성》이 대학생형님, 누나들이 달고다니는 대학휘장처럼 소중히 붙어있었습니다. 콩콩거리는 가슴을 붙안고 조심히 걸어가던 혁이는 《얘야, 넌 누굴 찾아왔니?》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두눈이 왕밤알만큼이나 커졌습니다. 글쎄 뒤에서 흰 위생복을 입은 곱게 생긴 간호원누나가 다가오는데 그의 손에서 반짝거리는것은 주사기통이였으니까요. 그의 가슴에도 《정+성》이라고 쓴 글자와 함께 《리해연》이라는 이름이 찍혀져있었습니다. 《나…난 아파서 오지 않았어요. 여기에 우리 반 애가 왔길래…》 여차하면 들구뛸 자세로 슬슬 뒤걸음치는 혁이를 보고 간호원누나는 생글생글 웃기만 합니다. 《얘야, 왜 그러니… 너 이름이 뭐지?》 간호원누나의 물음에 혁이는 줄곧 주사기통만 바라보며 겨우 혀아래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혀―어―기.》 《오! 혁이. 그런데 혁이는 여기에 어떻게 왔나요?》 맑은 물 흐르는 소리같은 누나의 말에 혁이는 마음속에 도사리고있던 얼음이 조금 녹는것 같았습니다. 《오성이가 아파서 입원했어요. 그래서…》 《오성이, 오성이가 누구니?…》 간호원누나가 오성이를 모른다는 소리에 혁이는 저도 모르게 혀를 빼물고 입술을 감빨았습니다. 혹시 자기를 병원에 아무 일없이 막 들어온 장난꾸러긴줄 알고 전번 눈섭이 긴 의사할아버지처럼 동침으로 버릇을 떼주겠다면 야단이 아닙니까. 《오성이는 우리 반 애예요. 턱밑에 까만 김이 있는데…》 혁이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바라보는 간호원누나에게 바지주머니에 불룩한 알사탕봉지도 보이고 손에 든 그림책도 내밀어보이면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진짜예요. 오성이가… 아파서, 내가 그림책이랑 주려구…》 《응, 알겠다. 그런데 오성이가 무슨 과에 입원했니?》 간호원누나의 말에 혁이는 입을 딱 벌렸습니다. 《그런건 몰라요. 골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서 그런대요. 오성인 나와 한학급에서 공부해요. 영광소학교 1학년 3반…》 혁이는 동침이 무서워 병원에 올 생각도 못했던 사실을 말할수 없었습니다. 《얘 혁이야, 면회를 오려면 무슨 과에 입원했는지 정확히 알아가지고 와야 한단다. 알겠니?》 혁이는 간호원누나와 빨리 헤여지고싶어서 《알겠어요.》하고 제꺽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갈줄 알았던 간호원누나가 혁이의 조그마한 손을 꼭 잡으며 말하는것이였습니다. 《혁이야, 이왕 왔으니 나하고 같이 찾아보자꾸나.…》 정말 혁이는 이 누나에게 잘못 걸린것 같았어요. 혁이는 모자라도 걸릴만큼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간호원누나의 뒤를 따라갑니다. 괜히 혼자 병원에 왔다는 후회가 혁이의 머리를 바늘처럼 콕콕 찔러댑니다. 어떻게 하든 달아나야겠는데… 긴 복도를 지나 계단우에 올라섰을 때 혁이에게 달아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간호원누나가 혁이의 손을 놔주고 어떤 호실문을 열고는 《여기에 영광소학교 1학년생 오성이가 없습니까?》하며 돌아서 있었거던요. 《그런 애는 여기에 없는데요.》하는 소리를 등뒤로 들으며 혁이는 날쌔게 뛰여 계단옆에 있는 큰 기둥뒤에 숨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리는 누나를 몰래 내다보며 새물새물 웃음지었습니다. (헹… 나 혼자서는 뭐 오성이를 못 찾을줄 알구?…) 혁이는 간호원누나를 또 만나기 전에 빨리 오성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제 간호원누나를 다시 만나면 달아난 사연을 설명해야겠는데 그러면 망신스럽게도 설익은 살구를 따먹고 동침한테 혼나던 이야기를 해야 할것입니다. 《오성아― 오성아―》 혁이는 복도에 서서 어림짐작으로 소리쳐 찾아보았습니다. 어디선가 오성이가 듣고 제꺽 나타났으면 좋으련만… 이때 어느 한 방의 문이 열리더니 글쎄 하얀위생복을 입은 뚱뚱한 의사선생님이 나와 혁이에게 눈을 뚝 부릅떠보이는것이 아니겠어요. 혁이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얘야, 여기 병원에서는 그렇게 떠들면 안된다.…》 혁이는 《잘못했어요.》하며 푹 수그렸던 머리를 들어 의사선생님의 오른쪽가슴을 가재미눈을 하고 힐끔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의 가슴에는 《정+성》이없고 《리발사》라는 글자표가 달려있는게 아니겠어요. 혁이는 그때에야 《리발실》이라고 벽에 쓴 명판을 보았습니다. 리발사어머니가 들어가자 혁이는 호― 하고 큰숨을 내쉬고는 문이 조금 열려져있는 호실안을 살그머니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자기와 같은 또래의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는데 옆에서는 의사선생님이 밥을 먹여주고있었습니다. 《선생님, 이젠 안 먹을래요.》 아버지처럼 밥을 먹여주는데 제법 투정을 합니다. 《이것만 마저 먹자꾸나. 철이야, 밥을 많이 먹어야 빨리 일어난단다.… 자―》 그 애는 도리질을 하지 않고 아― 하고 입을벌렸습니다. 《옳지, 정말 용쿠나. 자, 한숟가락만 더… 옳지.》 혁이는 그 철이라고 불리운 애가 입을 벌릴 때마다 자기도 아― 하고 입을 따라 벌리기까지 했습니다. (저 애는 아버지, 어머니가 없을가.… 왜 의사선생님이 밥을 먹여줄가?) 혁이는 발끝걸음으로 다른 호실들도 살며시 들여다보군 했습니다. 그러던 혁이는 어느 호실앞에서 문득 멈추어섰습니다. 그 호실에도 파란 줄이 간 환자옷을 입은 중학생형님이 있었는데 머리가 하얀 의사선생님이 그를 둘쳐업고있었습니다. 《자, 이번까지 치료를 하면 다 나을수 있단다. 자, 어서 가자요.―》 의사선생님은 등에 업은 그 형님의 엉치를 손으로 다독여주면서 나오고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혁이는 저도 모르게 키드득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자기보다 더 큰 형님을 애기처럼 얼리고있으니까요. 자기의 웃음소리에 얼굴을 돌리는 의사선생님을 바라본 혁이는 깜짝 놀라 뒤걸음질쳤습니다. 글쎄 전에 혁이에게 무서운 동침으로 설익은 살구를 따먹는 버릇을 떼준 그 눈섭이 길다란 할아버지선생님이였던것입니다. 혁이는 달팽이처럼 몸을 옹송그리며 재빨리 달아나면서도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저 할아버진 침으로 아프게만 하는줄 알았는데… 이상하구나.) 혁이가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앞에 웬 할머니가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연방 눈굽을 찍어내며 눈물을 흘리고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눈물을 본 혁이의 가슴에서는 또다시 방망이질이 시작되였습니다. (역시 병원은 병원이야. 얼마나 아팠으면 저렇게 우실가.…) 혁이는 텔레비죤에 나오는 영화를 내놓고는 이렇게 나이많은 할머니가 우는것을 처음 봅니다. 혁이는 슬그머니 다가가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물었습니다. 《할머니, 왜 그러시나요? 침을 맞았나요? 막 아프나요?…》 할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혁이를 보았습니다. 《난 그래서 우는게 아니다. 의사선생님들의 정성이 너무 고마와서 그런다.…》 정말 모를 일이였습니다. 더하기에서 나온 답, 그 정성이 고맙다니요?… 이때 조금전에 철이라고 불리운 애한테 밥을 먹여주던 그 의사선생님이 다가왔습니다. 《아니, 철이 할머니, 아직 돌아가지 않으셨군요, 참 할머니두… 이젠 그만 돌아가 보십시오.》 《선생님, 난 우리 철이를 간호하느라 며칠밤을 꼬박 밝히면서 고생한 그 해연이란 간호원을 꼭 만나야겠수다.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 발길이…》 《할머니, 해연동무는 지금 치료중입니다.》 《선생님, 난 여기서 기다리겠수다. 꼭 해연간호원을 만나고 가게 해주시우.…》 의사선생님은 할머니의 고집을 돌려세울수 없다는듯 머리를 흔들며 인차 다시 오겠다면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혁이는 할머니가 그 철이란 애의 할머니라는것보다 바로 이자 자기가 피해 달아난 그 누나에 대해 말하는것에 놀랐습니다. (그 간호원누나가 철이를 낫게 해준 모양이구나.…) 혁이는 머루알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할머니를 보며 물었습니다. 《할머니, 해연간호원누나가 철이의 병을 고쳤나요, 정말?…》 할머니는 눈물어린 눈으로 혁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였습니다. (하, 그러고보니 참말 마음이 고운 누나로구나.…) 그런 누나인줄도 모르고 아까 숨던 생각을 하니 피씩― 웃음이 났습니다. 이때였습니다.
혁이는 아까 도망쳤던 일이 마음에 걸렸지만 다시는 숨지 않았습니다. 《아니 혁이야.… 너 어디 갔댔니. 애두 참… 오성이를 찾았다.》 순간 혁이는 《야!》하고 환성을 올리며 짝자그르 박수를 치고나서 할머니에게 귀속말로 이야기해주는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이 누나가 해연간호원누나예요.》 《그래!…》 할머니는 너무도 반가와 누나의 손을 와락 잡았습니다. 《간호원체네… 내 임자가 며칠밤을 새우며 간호해준 철이 할머니일세.…》 《어마나, 그러세요? 야! 할머니, 먼길을 오시느라 얼마나 수고많으셨겠어요. 철이가 할머니를 얼마나 보고싶어하였는지 모릅니다.… 그앤 참, 그저 할머니밖에 모르더군요. 철이 아버지랑 어머니랑 철이때문에 걱정이 여간 아니실텐데…》 할머니는 간호원누나의 손을 잡고 또 눈물만 흘렸습니다. 《이 할머니나 부모가 다 뭔가. 정말 병원선생님들이 아니였더라면… 내 다 들었네, 저런! 며칠밤을 꼬박 새우느라 눈에 피발이 다 섰구만, 얼마나…》 끝내 말끝을 맺지 못하는 할머니앞에 해연누나는 얼굴이 장미꽃처럼 빨개졌습니다. 《할머니, 이러지 마세요.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한거예요.》 할머니는 연방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아네, 알아. 사회주의 우리 나라의 고마운 은덕이지. 암, 다른 나라 같으면야 내 손주가 어떻게 살아났겠나.》 할머니의 눈물은 끝이 없을것 같았습니다. 병원선생님들에 대한 칭찬도 끝이 없었습니다. 혁이는 새삼스레 바삐 오가는 흰 옷 입은 선생님들을 눈여겨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러던 혁이는 언제인가 자기가 이발이 아프던 때를 생각했습니다. 그때 아프다고 칭얼대는 자기를 품에 안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러게 왜 잘 때도 사탕을 물고자느냐. 어머니 말 안 들으니 그렇지…》 아버지는 또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엄살이 그렇게 많아가지고 어떻게 군대에 나가겠니? 그쳐라. 그러다 일없다. 어른이 되려구그래… 아, 참으란데…》하시고는 그냥 책만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이발짬에 몇번이나 약을 넣어주었지만 인차 낫지 않았댔습니다. 혁이는 생각했습니다. (그때 내가 여기에 왔댔으면 그렇게까지 아프지 않았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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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이가 입원한 호실은 맨 웃층에 있는 《림상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은 병동가운데 있었습니다. 해연간호원누나의 손을 잡고 호실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오성이는 상한 발목을 의사선생님에게서 치료받고있었습니다. 《야! 혁이로구나.…》 침대에 누워있는 오성이는 발씬 웃으며 혁이를 반겨맞아주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단정히 인사하는 혁이에게 머리를 끄덕여보이며 오성이침대옆에 의자를 놓아주었습니다. 혁이는 병원에 누워있는 오성이를 보자 그전날 가졌던 고까운 감정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성아, 쎄게 아프니?》 오성이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습니다. 《처음엔 아파서 혼났는데 지금은 일없어.》 의사선생님이 오성이의 발을 치료하면서 혁이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걱정말아. 오성이는 이젠 거의다 나았다.…》 혁이의 눈앞에는 의사선생님들이 고마와 눈물을 흘리던 그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선생님, 내 동무를 고쳐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의사선생님과 해연간호원누나는 서로 마주 바라보며 너무도 어른스러운 혁이의 말에 대견하게 웃었습니다. 《혁이야…》 오성이가 곁에 앉은 혁이의 손에 종이에 싼 무엇인가를 슬그머니 쥐여주었습니다. 《오성아, 이건 뭐가?…》 《은방울꽃씨야. 어서 받아. 어제 어머니가 갖다주겠다는걸 네가 꼭 올줄 알고…》 《그럼 이 꽃씨때문에 삼촌한테 갔댔니?》 혁이는 코마루가 찡해졌습니다. (아, 오성이는 나때문에 그 추운 날 징검돌을 건느다가 이렇게 됐구나.… 그런데 난 징검돌이 위험한걸 알면서도… 오성인 내게 기쁨을 주려고 했는데 난 병을 줬구나.) 혁이는 오성이앞에 얼굴을 들수가 없었습니다. 《오성아, 네가 이렇게 된건 나때문이야. 내가 징검돌이 위험한걸 알면서도 자기만 생각하다가…》 《아니야. 그건 내가 덤빈탓이지 뭐.》 오성이의 고운 얼굴보다 더 고운 웃음이 피여올랐습니다. 선생님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어렸습니다. 혁이는 문득 《정+성》이 다시 생각나 자기들을 대견하게 바라보는 의사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정성이 뭐나요. 왜 더하기를 했나요. 정성에 덜기도 있나요?》 선생님은 그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얘들아, 빨간 더하기는 그 어느 나라 병원에나 다 있단다. 하지만 정성이라는 말은 우리 나라밖에 없단다. 왜냐하면 인간을 제일 귀중히 여기고 천만금보다 더 아끼는 나라는 우리가 사는 나라 바로 너희들이 안겨사는 고마운 우리 사회주의제도이기때문이란다. 이 제도를 더욱 빛내여주시려는 아버지장군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려고 우리 의사, 간호원들이 정성이라는 고운 꽃을 활짝 피우는것이지.…》 《야! 오성아, 그러니 〈정성〉이라는 말과 빨간 더하기는 참말 좋은것이였구나. 난 그런줄도 모르고…》 《나도 그랬어.… 넌 정말 더했더랬지. 송이가 간호원하는것도 못하게 하구…》 그러자 의사선생님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물었습니다. 《아니 얘, 그건 무슨 소리냐?》 오성이가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혁이가 선살구를 따먹고 길다란 침한테 혼난 이야기며 군사놀이할 때 송이를 몰아댄 이야기까지 하자 선생님과 간호원누나는 병원이라는것도 깜빡 잊고 크게 웃었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혁이네도 새물새물 웃었습니다. 혁이는 오늘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저 무섭게 보이기만 하던 의사선생님과 빨간 더하기에 대하여 잘 알게 되였고 동무를 진실로 사랑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더 잘 알게 되였으니까요. 그들은 두손을 꼭 잡고 병원구내를 정답게 보고 또 보았습니다.
(사리원시 구천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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