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4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리 림 수
방금전 다락밭과 과수원에 둘러싸인 오붓한 마을이 차창으로 내다보이더니 이제는 봄빛이 짙은 농장벌이 길옆에 무연하게 펼쳐졌다. 오늘 아버지 김일성원수님께서는 우리 나라를 방문중인 아프리카나라의 한 대통령과 동행하시여 지방참관을 떠나시는 길이였다. 원수님께서는 밖을 내다보시더니 즐거이 웃으시였다. 붉은넥타이를 맨 여러명의 아이들이 길가에서 무슨 일인가 부지런히 하고있었던것이였다. 《봄이면 우리 애들은 늘 저렇게 분주합니다. 저것 보십시오. 저 애들이 꽃밭을 만들고 나무도 심고있습니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좋은 일을 하는 그 애들이 못내 기특하시여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이 순간 원수님께서는 해방직후 몸소 문수봉에 오르시여 손수 나무를 심으시던 일이 마치도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추억되시였다. 아름다운 조국의 산과 들이 더욱 푸르러지기를 항상 바라고 또 바라시는 아버지원수님이시였다. 그래서 애들이 좋은일하기운동으로 《소년단림》을 잘 가꿀데 대한 문제를 당중앙위원회 회의에서까지 말씀하셨는데 오늘 이렇게 꽃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애들을 보시자 언젠가 친히 만나주셨던 아이들이 또한 문득 생각나시였다.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을 가시던 그날, 일부러 차를 세우시고 그리도 기뻐하시며 그들을 칭찬하신것은 바로 그날에도 애들이 오늘처럼 길가에 나와 좋은 일을 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대통령한테 우리 애들을 자꾸만 자꾸만 자랑하고싶으시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애들이 저런 일을 잘하고있습니다. 길가에 심어놓은 나무들과 꽃들은 저 애들이 키웠습니다.》 소매넓은 흰 옷에 흰 모자를 쓴 대통령도 애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눈빛이 은근하고 표정이 사색적인 대통령은 말에 앞서 팔을 약간 벌려보였다. 비행장과 연도환영의 꽃물결속에서 눈을 끌던 아이들, 김일성경기장에 펼쳐지던 대집단체조, 화려한 평양학생소년궁전 무대에서 본 그 또래의 아이들이였다. 《이 나라에서 제일 인상적인것은 아이들입니다. 곱고 명랑하고 규률있고 례절바른 아이들입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모두 천사같습니다. 부지런한 저 애들은 또한 제비같습니다.》 대통령은 먼 적도의 땅에서 흠모해마지 않던 아버지원수님을 몸가까이 뵈옵는 기쁨을 안고 그것을 진심으로 말하였다. 그것은 대통령이 교원가정에서 출생했고 또 자신이 한때 교원생활을 한바도 있는지라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때문인지도 몰랐다. 원수님께서는 어제 군중대회에서 대통령에게 따뜻한 연설을 해주시던 그때처럼 소탈하신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대통령각하가 우리 애들을 그렇게 보시니 저도 기쁩니다. 나는 우리 귀염둥이애들과 함께 있을 때가 늘 제일 기쁩니다.》 (귀염둥이애들…) 입속으로 그 말씀을 가만히 외워보는 대통령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리였다. 어제 오후 미술박물관을 참관했을 때 오래도록 발길을 뗄수 없었던 한폭의 그림이 문득 생생히 생각났기때문이였다. 세발자전거에 올라앉은 한 애는 아버지원수님의 커다란 여름모자에 얼굴전체가 가리워져있고 또 한 애는 원수님께서 앉아계신 의자우로 게바라오르느라고 신발이 벗어지는줄도 모르고있는 그림이였다. 대통령은 그림을 상기하며 이 나라 아이들은 주석님을 왜 그리도 각별히 따를가 하고 생각에 잠겼다. 승용차는 해빛에 차창을 번쩍이며 아지랑이 피여나는 들판을 지나 푸른 숲이 우거진 나지막한 령길에 들어섰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줄곧 애들에 대한 생각을 하고계시였다. 학교뒤산에 《소년단림》을 꾸려놓고 애써 가꾼 잣을 선물로 올린 어느 한 두메산골마을 애들을 한품에 안아주시던 일이 오래도록 생각되시였다. 새봄을 맞은 지금 누구보다 바쁘고 부지런한것은 아이들의 《향토애호근위대》활동인것이였다. 꽃을 심고 나무를 심고… 방금전에 지나온 령너머마을 애들의 모습이 다시금 삼삼히 떠오르시였다. 애들을 생각하시며 조용히 눈을 감고계시던 원수님께서는 문득 밖을 내다보시였다. 물기가 번지르 내돋은 이끼푸른 돌벼랑이 앞에 불쑥 나타나고 그우에 푸른 숲을 배경으로 《소년단림》이라고 쓴 흰 글발이 유표하게 확 안겨왔다. 《주석각하, 저 글은 무슨 구호입니까?》 아버지원수님의 밝으신 두눈에 웃음이 해빛처럼 비끼시였다. 《저것은 구호가 아닙니다. 저기가 바로<소년단림>입니다. 저기가 저희들의 숲이라고 애들이 저렇게 써놓았습니다.》 《아니, 저기가 애들의 숲입니까? 저 숲이 애들의것입니까?!》 대통령은 놀람과 의문이 깊어졌다. 이 나라는 애들한테 궁전과 공원만이 아니라 저렇게 푸른 숲까지 주는구나! 그런데 저 푸른 숲에서는 애들이 무엇을 할가? 그에 대한 대답인듯 원수님께서는 즐거이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애들은 제 손으로 나무도 심고 열매도 따고 새둥지도 만든답니다. 저런 <소년단림>은 애들이 있는 모든 곳에 다 있습니다.》 순간 대통령은 흥미가 동하였다. 작은 애들이 가꾸는 숲을 한번 구경하고싶었던것이였다. 《주석각하, 저 숲을 좀 보고 갈수 없을가요?》 그러자 원수님께서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시더니 대통령을 향해 몸을 돌리시였다. 《지금 시간에 저 숲에서 애들을 볼수 있겠는지…》 《아닙니다. 저는 애들을 보자는게 아닙니다.…》 《허허, 그렇습니까? 그런데 우리 애들의<소년단림>은 열대림같지 않습니다. 뭐 보실게 있겠는지… 나는 그저 대통령각하가 우리 애들을 보셨으면 합니다. 우리 애들이 재미있습니다.》 대통령은 원수님의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잘 알수가 없었다. 이 나라 애들의 즐겁고 행복한 모습은 이미 다른 곳들에서 수많이 보았는데 저 숲에서 애들이야 못 본들…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했던것이였다. 《대통령각하의 요청이니 그럼 잠간 들렸다 갑시다. 나도 이자 오면서 애들의 <소년단림>을 좀 생각하던 참이였는데 마침 잘됐습니다.》 차에서 내리신 원수님께서는 허리에 손을 올리시고 주위를 바라보시였다. 이름모를 들꽃을 찾아 꿀벌들이 부지런히 날았다. 풀끝에 나래를 접고 앉아 한가하게 졸고있는 호랑나비들도 보였다. 원수님께서는 바로 그 풀대밑에서 문득 애들의 고무총 하나를 찾아내시였다. 《아, 고무총이로군.》 원수님께서 고무총을 쳐들어보실 때 통역은 고무줄이 매달린 그 조그마한 짝지발이나무가지를 애들이 어떻게 갖고노는가를 대통령한테 재빨리 설명해올리였다. 그리고 만경대고향집에 들이닥친 왜놈들을 향해 쏜 어린시절 원수님의 고무총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활쏘기와 창던지기를 하던 자신의 어린시절까지도 새삼스레 생각나서 즐거운 기분으로 머리를 끄덕이였다. 원수님께서는 풀밑에서 찾아낸 고무총을 그냥 손에 드신채 유유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대통령은 숲속의 여기저기를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어디서나 애들의 알뜰한 손흔적을 찾아볼수 있었다. 대통령은 나무밑둥에 동그랗게 둘러놓은 조약돌앞에도 한동안 서있어보고 갓 심은 애기나무에 매달아놓은 조그만 나무판대기에 써놓은 글도 통역한테 물어 알아보았다. 이어 산그림자가 서늘하게 깔려있는 바위밑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통나무를 다듬어 만든 투박한 의자가 다리를 땅에 깊숙이 박고 서있었다. 그앞에 지붕을 얹은 작은 게시판이 세워져있었다. 게시판에는 《소년단림》략도를 무슨 지도처럼 붙여놓았는데 거기에 이러한 수자들도 정성스레 씌여있었다. 애기잣나무… 232그루 수삼나무… 20그루 새둥지… 50개 지어 그 략도에는 불개미둥지의 위치까지도 구체적으로 표시되여있었다. 《보십시오. 우리 애들의 재산이 굉장합니다.》 원수님께서는 대통령과 수원들을 바라보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러시던 원수님께서 게시판앞으로 더 바투 다가서시여 다시한번 주의깊게 바라보시는것이였다. 《음, 얼마 오래지 않았군. 그때 왔으면 여기서 나무심는 애들을 만날수 있었을텐데.》 게시판에는 식수한 날자까지 맨 아래쪽에 또박또박 씌여있었던것이였다. 《수령님, 이제는 시간이…》 부관아저씨가 다시 말씀올리였다. 시계를 보니 지금은 참관지인 기계공장에 거의 당도해야 할 시간이였다. 원수님께서는 대통령을 향해 미안한 웃음을 웃으시였다. 《대통령각하, 모처럼 <소년단림>에 들리셨는데 우리 애들을 보시지 못하고 가게 되여 참 안됐습니다.》 그무렵 저쪽 산기슭에서 갑자기 나무숲이 와실랑거리더니 소년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그 애는 게시판앞에 서있는 여러 어른들을 피뜩 보자 어깨에 멨던 막대기를 슬그머니 내리우며 멎어섰다. 소년은 머리에 떡갈나무잎으로 만든 고깔모자를 쓰고있었다. 《얘야, 이리 오너라.》 아버지원수님께서 웃으시며 손짓하시였다. 소년은 얼굴에 놀라움이 확 비껴 입을 반쯤 벌리다가 풀숲에 막대기를 내던지고 허둥지둥 뛰여와서는 꼿꼿이 섰다. 《아버지원수님!》 소년은 이 말을 겨우 했을뿐 다음말은 종내 잇지 못하였다. 원수님께서는 빨간 물이 든 소년의 작은 두손을 쥐여주시면서 령리하게 생긴 까만 눈을 사랑스레 바라보시였다. 빨간 물은 그 애 옷섶에도 점점이 떨어져있었다. 《얘야, 인사올려라. 아프리카에서 오신 대통령선생님이시다.》 원수님께서는 소년을 이렇게 인사까지 시키신 후 그를 데리시고 통나무의자에 가앉으시였다. 《참, 이게 네 고무총이 아니냐?》 원수님께서 고무총을 내들어보이시자 소년은 그것을 받아들고 기뻐했다. 《야, 원수님, 이 고무총을 어떻게… 글쎄 이때껏 찾아다녔댔는데…》 《내가 저 풀밭에서 주었지. 그래 <소년단림>에는 너 혼자 왔느냐?》 《형하고 둘이서 왔습니다.》 《형은 어데 있느냐?》 《우리 형은 지금 저 아래켠 샘터에 가있습니다. 애기나무에 물을 주자고…》 소년은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원수님께서는 그 애 머리를 쓸어주시고 빨갛게 물이 든 작은 두손을 바라보시며 웃으시였다. 《손에는 무슨 물감칠을 그렇게 잔뜩 해놨느냐?》 《이건 물감이 아닙니다. 고무총을 찾아다니다가 빨간약병을 쏟아뜨려서 그만 이렇게…》 소년은 어줍게 웃으며 빨간 제 손과 옷섶을 굽어보는것이였다. 그 애가 호주머니에서 꺼내든 조그만 병에는 빨간약물이 조금밖에 남아있지 못했다. 《네가 빨간약은 어데다 쓰려구?》 《우리 형의 무릎에서 피가 났습니다.》 《물을 긷다 그렇게 됐느냐?》 《아닙니다. 저… 나때문에…》 소년은 떠듬떠듬하며 뒤더수기를 뻑뻑 긁었다. 그 손에 나무잎고깔모자가 잡히자 소년은 그걸 얼른 벗어서 풀속에 내던지는것이였다. 원수님께서는 소년의 수수께끼같은 말에 흥미를 가지시고 수원들을 돌아보시며 모두 가까이 와서 이 애 말을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소년은 좀 당황해진 얼굴로 입술을 감빨고 서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듯 한 표정을 짓는것이였다. 아마도 그 얘기는 아버지원수님께 해올릴만 한 자랑거리가 못되는 모양이다. 더구나 다른 나라 대통령선생님까지 있는 곳에서 망신스러운 그 얘기를 어떻게 한담, 이런 눈치가 분명했다. 원수님께서는 그 애 사정을 벌써 짐작하신듯 웃으시였다. 《허, 일없다. 어서 말해봐라. 대통령선생님도 네 얘기를 재미나게 들으실게다.》 원수님께서 다정히 어깨까지 두드려주시자 소년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 창남이는 전에도 몇번이나 형을 따라 《소년단림》에 와보고싶어했다. 그럴 때마다 창일이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는 동생이 《소년단림》에 따라와서 장난을 할가봐 얼씬도 못하게 잡도리했던것이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창남이는 아직 철모르는 앤지라 애기나무가 귀한줄도, 새들이 고운줄도 모를게 뻔해 하고 동생을 늘쌍 눈밖으로 봤던것이였다. 그래서 창일이가 《넌 아무것도 몰라.》 이렇게 숙보면 창남이는 오히려 코방귀를 뀌며 뇌까렸다. 《체, 모른다구? 난 다 알아, 뭐든지 다 알아.》 다 안다는 말은 그 애 입에 노상 올라있었다. 그는 정말 눈치빠르기가 창일이까지도 찜쪄먹을 정도였다. 그는 창일이가 바께쯔를 찾아들고 나서자 어느새 알아먹고 앞질러 물었다. 《형은<소년단림>에 가지? 내가 다 알아. 나무들에 물을 주려구… 난 다 알아.》 《너 그딴 소리 하겠니? 난 <소년단림>에 가지 않아. 거긴 뭣하러 간단 말이가, 참 어처구니없지. 내가 뭐 <소년단림>에 간다구?》 창일이는 펄쩍 놀라 주위부터 살피며 이말저말 했다. 쥐도새도 모르게 《소년단림》에 몰래 가자고 했던것인데 동생이 알아채자 그만 속이 켕기여 이말저말 하는것이였다. 창일이가 오늘《소년단림》에 몰래 가는것은 그럴만 한 까닭이 있어서였다. 그것은 동생한테도 애들한테도 터놓고 말할수 없는 비밀이였다. 눈치빠른 창남이도 그 비밀만은 냄새맡지 못하였다. 《너 그딴 말을 두번다시 입밖에 내봐라. 넌 아무것도 몰라.》 《난 다 알아.》 《아무것도 모른단 말야.》 창일이는 동생한테 꽥 소리치고 주먹질을 해보인 후 사라졌다. (흥, 어디 보자. 《소년단림》에 가나 안 가나 밝혀내고말테야.) 창남이는 형의 뒤를 멀찌감치 딱 붙어 《소년단림》에까지 오고야말았다. 그는 덤불뒤에 감쪽같이 숨어 형이 뭘하나 지켜보고앉았다. 발꿈치에 껴묻어 따라온 강아지는 숲에 오자 코끝을 땅에 대고 여기저기 냄새맡으며 돌아쳤다. 강아지한테 놀란 새가 갑자기 창남이의 코앞에서 총알처럼 포르릉 날아났다. (야, 새둥지!) 풀속에 묻힌 구새먹은 나무등걸의 구멍안에 새둥지가 있었다. 둥지에는 흰 점이 박힌 재빛알이 조롱조롱 차있었다. 창남이는 까만 바지를 걸친 엉뎅이를 하늘로 솟구고 엎디여 새둥지를 정신없이 들여다보느라고 강아지가 나무가지에 앉은 새를 쳐다보며 으르릉대는줄도 짖는줄도 몰랐다. 정말이지 해종일 보아도 혀를 찰만큼 재간싸고 깜찍하니 생겨먹은 둥지였다. 새알은 더 깜찍했다. 창남이는 깨질가봐 저어하며 손가락을 새알로 조심조심 가져갔다. 그런 때 뒤에서 누가 왁살스럽게 뒤덜미를 나꿔챘다. 그것은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뛰여온 창일이였다. 창일이는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가슴을 풀떡풀떡 했다. 《너 정신있니? 어데다 막 손을 대는거냐?》 창남이는 와뜰 놀라 일어섰다. 《누가 따라오랬니? 빨리 냉큼 사라져라. 글쎄 웬 강아지가 짖는가 해서 뛰여와보니… 에참, 한심도 하지. 빨리 강아지를 데리고 썩 돌아가지 못하겠니?》 창남이는 뒤덜미가 벌겋게 욕만 잔뜩 벌어가지고 새둥지앞에서 어정어정 돌아섰다. (강아지를 괜히 데리고왔어. 고게 짖는 소릴 듣고 형이 뛰여왔구나. 그러지 않았으면 새둥지를 좀더 봤을텐데.) 창남이는 아수함을 누를길 없어 얼마쯤 터벅거리며 가다가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나무등걸앞에 딱 붙어서서 지켜보던 형의 모습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늙은 까마귀가 그 나무등걸우에 너풀대며 날아와앉더니 청승맞은 소리로 까욱까욱 울어댔다. (아니, 저놈의 까마귀가 새알을 훔쳐먹자고 온게 아니야?) 창남이는 주먹을 부르쥐고 뛰여갔다. 어느새 강아지가 저만치 앞섰다. 강아지의 눈에도 까마귀놈은 아주 얄밉게 보였던 모양이다. 《옳지, 저놈을 냉큼 물어라, 물어.》 그런데 강아지는 까마귀를 쫓아가며 그냥 왈왈왈 짖기부터 했다. 창남이는 가슴이 섬뜩해서 강아지한테 돌을 던졌다. 《짖지 말아, 짖지 말아. 그저 물란 말이야.》 그런데 강아지는 까마귀를 쫓아가며 그냥 왈왈왈 짖어댔다. 그러니 창일이도 강아지가 기를 쓰고 짖는 그 소리를 못 들었을리 없는것이다. 《창남아, 너 상기도 안 돌아갔구나. 너 진짜 혼나봐야 알겠니?》 숲속에서 창일이가 뛰여나오며 을러메는 소리였다. 《이크!》 창남이는 덤불속에 냉큼 엎드려 까투리처럼 머리부터 박았다. 《창남아, 너 썩 나서지 못하겠니?》 창일이는 숨어버린 동생을 찾느라고 여기저기 돌아치다가 그만 바위옹두라지에 무릎을 짓박아놓기까지 했다. 무릎에서 피가 났다. 그는 더 화가 나서 씨근씨근 했다. 창남이는 그냥 숨을 딱 죽이고 엎드렸다. 강아지가 냄새맡고 뛰여왔다. 창남이는 강아지한테 눈총을 쏘며 어서 물러가라고 뒤발질했다. 그런데 눈치없는 강아지는 그 뒤발질이 욕인줄도 몰랐다. 오히려 저하고 노는것으로 알고 주위를 맴돌며 얄밉게 굴었다. 글쎄 나중에는 어처구니없이 모자까지 물어 잡아채가는 바람에… 그 모자를 보고 창일이가 뛰여왔다. 창남이는 더 어쩌지 못하고 강아지한테서 모자를 빼앗아 꾹 눌러쓰고는 부시시 일어났다.
창일이는 떽떽거리며 호주머니랑 검사했다. 그 애 호주머니안에 벌써 새알이 들어갔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호주머니안에서는 새알그림자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창일이는 동생을 그냥 다몰아세웠다. 《말해봐, 너 새알을 훔치자고 왔지? 그래서 새둥지가 있는 곳에 와서 쥐처럼 숨었지?》 창남이는 쥐라는 말을 듣자 얼굴을 활딱 붉히면서 발끈 대들었다. 쥐로 말하면 까마귀보다 그가 더 얄밉게 보는데 글쎄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참는담. 《뭐, 쥐처럼 숨었다구? 난 쥐처럼 숨지 않았어, 난 새둥지가 있는 곳에…》 창일이는 동생의 말을 더 들으려고도 안했다. 그는 주먹을 내흔들며 발을 탕 굴렀다. 《듣기 싫어. 새둥지가 있는 곳에 또 왔다만 봐라.》 … 아직도 할 얘기가 더 있는지 창남이는 눈을 내리깔며 잠간 숨을 돌리였다. 원수님께서는 웃으시며 창남이의 어깨에 한손을 가볍게 얹으시였다. 《그래 너는 형한테 끝내 쫓겨가고말았단 말이지?》 《그래도 또 왔는걸요 뭐. 형이 나때문에 무릎에 상처까지 냈는데 빨간약을 갖다주려구… 그리고 저 강아지는… 또 따라오자고 해서 목끈을 걸어 집에 매놨지요뭐.》 《허, 그러니 이제는 강아지때문에 말썽이 일어날 념려는 없겠구나.》 원수님께서 호탕한 웃음을 웃으시자 창남이는 그저 뒤머리만 슬슬 만졌다. 《그래 형이 이번에는 널보고 뭐라 하더냐?》 《형은 상기도 샘터에서 안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허, 그러니 아직도 이 숲속이 평화롭지는 못하겠군. 좋아, 그럼 내가 형한테 잘 말해주지. 네 고무총을 보면 그 애가 또 의심을 살수도 있거던. 사실은 네가 그 고무총으로 까마귀를 쏘자고 들고왔을텐데.》 《야, 원수님,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창남이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원수님을 놀랍게 쳐다보았다. 제 마음을 그리도 잘 알아주시는 원수님의 그 말씀이 창남이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게 들렸던 모양이다. 《네가 이제 고무총으로 까마귀를 쏘는걸 보면야 형도 너를 달리 보겠지. 어때, 안 그러냐?》 《근데 글쎄 고무총을 잃어먹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원수님께서 찾아주셔서 이젠 됐습니다.》 《소년단림》에 고운 새들만 깃들라고, 까마귀같은 놈은 아예 날아들지 못하게 하겠노라고 고무총까지 꼬나들고 다시 여기로 뛰여온 창남이였던것이다. 숲속에서 산비둘기울음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왔다. 대통령은 통나무의자에서 기분좋게 일어났다. 추억많은 자신의 먼 어린시절까지도 웃음을 머금고 되돌아보게 하는 참으로 흥미있는 애들이였다. 《주석각하, 풀냄새가 싱그럽습니다. 새들도 재미나게 웁니다.》 대통령이 미소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먼 산발우로 흰 떼구름이 마치 커다란 비누거품처럼 부풀어올랐다. 구름과 조화되여있는 봄하늘은 아주 새파랗게 보였다. 부관아저씨가 초조한 얼굴로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이를 눈치채신 원수님께서는 대통령한테 량해를 구하시듯 말씀하시였다. 《대통령각하, 제가 지방참관을 약속한 시간이 뜻밖의 일로 이렇게 지체돼서 참 안됐습니다.》 대통령은 그제사 가야 할 기계공장이 문득 생각났다. 《아, 저는 깜박 잊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곳은 예견치 않던 좋은 참관으로 됐습니다. 이 <소년단림>은 아주 흥미있는 곳입니다.》 대통령은 이곳에서 지체한 시간을 조금도 아쉽게 여기지 않았다. 이곳에 들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이 나라에 와서 얼마나 훌륭한 애들을 못 보고 갈번 했는가. 원수님께서 우리 애들이 재미있다고 하시던 말씀을 대통령은 이제서야 잘 알수 있게 되였다. 《감사합니다. 우리 애들의 일이 대통령각하한테 흥미있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는 공장으로 떠납시다.》 원수님께서 천천히 통나무의자에서 일어서실 때 몹시 당황해한것은 창남이였다. 그는 형이 샘터에서 빨리 돌아와 아버지원수님을 뵈왔으면 하여 산밑을 연신 눈이 까매 살피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아, 원수님, 원수님. 우리 형이 저기 옵니다.》 하고는 그쪽으로 곤두박질하며 뛰여갔다. 원수님께서는 웃으시며 대통령을 돌아보시였다. 대통령은 마주웃었다. 《주석각하, 저 애들때문에 늦는 시간은 저한테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마음놓고 아이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내가 저 꼬마한테 약속한 일도 있는데…》 원수님께서는 다시 통나무의자에 앉으시며 애들이 오기를 기다리시였다. 바로 그무렵에 창남이는 형앞에 이르렀다. 물이 가득찬 바께쯔를 이쪽저쪽 엇갈아들고 뒤뚱거리며 발을 옮겨놓던 창일이는 동생을 보자 당장 눈이 가로 섰다. 《야 참, 너 아직도 안 갔니? 내가 글쎄 몇번이나 말했니? 에익, 썩 돌아가지 못하겠니?》 그런데 창남이는 아닌밤중에 홍두깨처럼 천만뜻밖의 말을 불쑥 내번지는것이였다. 《형 형, 아버지원수님께서 오셨어. 빨리빨리 뛰여가서 인사드려. 아버지원수님께서 지금 떠나가시려는 참이야. 뭘하니, 빨리빨리…》 창일이는 깜짝 놀라 바께쯔를 내던지고 사방을 두릿거리더니 《아버지원수님!》하면서 엎어질듯 뛰여왔다. 《음, 네가 창일이로구나. 저런 넘어지겠다. 어서 이리 오너라. 자, 창남인 나하고 같이 앉자.》 원수님께서는 옆으로 약간 물러나앉으시며 황홀해 서있는 창일이와 창남이를 더 가까이 손짓하시였다. 창남이는 아무 꺼리낌도 없이 아버지원수님곁에 와앉았다. 대통령은 통역한테 조용히 귀띔했다. 《이제부터 저 애들의 얘기는 한마디도 빼놓지 마시오.》 하고는 새로 나타난 아이를 유심히 바라보는것이였다. 얼마나 의젓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인가. 대통령은 이 나라에 와서 이미 많은 아이들을 보아왔었다. 꽃다발을 안겨주던 례절바른 고운 애들,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귀여운 애들, 그런데 오늘은 또 이렇게 이마에 구슬땀이 잔뜩 내돋은 한 소년의 근면한 모습도 보게 된것이다. (어릴 때부터 일하기를 즐겨하는 이 애는 이제 자라서 유명한 천리마를 타고 하늘을 날으겠구나.) 대통령은 이 나라의 수도에서 보았던 그 유명한 천리마동상을 상기하였다. 하늘가에 팔을 높이 추켜든 천리마기수와 벼단을 안은 천리마기수ㅡ 그들의 어린시절도 바로 이 애들과 다름없었을것이라고 대통령은 생각했다. 대통령은 소년의 사랑스러운 모습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였다. 소년은 아버지원수님을 만나뵈온 기쁨에 동생의 어떠한 잘못도 용서해줄듯 한 그런 기분에 휩싸여있는게 분명했다. 원수님께서는 어린 꼬마하고 약속하신대로 그 애를 형한테 잘 말해주시였다. 《얘야, 나는 네 동생한테서 재미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단다. 들어보니 저 애는 정말 착한 애더라.》 창일이는 놀란 눈으로 동생을 힐끔 돌아보는것이였다. 자기한테는 뻑뻑 맞서기도 하고 또 애꾸러기처럼 미움도 사던 동생이 원수님의 칭찬을 받고는 헤벌쭉이 웃기까지 하자 창일이는 그만 밸이 꼴려 칠면조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마뜩지 않은 눈길로 동생의 뒤모습을 노려보았다. 대통령은 속으로 웃었다. (허허, 재미나는 다툼질이였군.) 그런데 창남이는 형의 눈짓에 놀라 의자끝으로 냉큼 물러나앉는것이였다. 《너 왜 그렇게 나앉느냐? 떨어지겠다.》 대통령은 그만 웃고말았다. 《자, 창남인 내곁에 바싹 다가앉아라.》 하시며 원수님께서는 대통령한테 슬쩍 눈짓해보이시는것이였다. 원수님께서는 자애롭게 웃으시며 주눅이 들지 않는 창남이의 조그만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시였다. 《이 애를 자꾸 욱박지르지 말아라. 창남이야 내가 잘 알지. 네 동생은 아주 참한 애다. 얼마나 참한지 넌 아직 잘 모르는것 같다. 우선 네 무릎부터 좀 보자. 상처난게 왼쪽무릎이지? 어서 보자.》 원수님께서 그 무릎을 보자고 하실 때 창일이는 당황해서 뒤걸음질로 물러섰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저 좀 벗겨졌을뿐인데요뭐.》 《그것봐라, 그런데도 얘는 너를 끔찍이도 생각했지. 약병까지 들고 뛰여왔단다. 얼마나 착한 동생이냐. 그리고 또 고무총까지 갖고왔단다. 창남아, 그 고무총을 형한테도 보여라.》 창남이가 고무총을 내들자 창일이는 눈을 흡뜨고 바라보는것이였다. 강아지를 달고와서 새들을 놀래주더니 이제는 또 고무총까지 들고와서 새들을 쏘자는게 아니야? 하는 걱정때문일거라고 대통령은 짐작했다. 원수님께서는 창남이쪽에 몸을 조금 낮추시고 나직이 물으시는것이였다. 《네 입으로 어서 말해봐라. 네가 나쁜 마음먹고 고무총을 들고온건 아니겠지?》 창남이는 펄쩍 뛰며 큰소리로 대답을 올리는것이였다. 《아닙니다. 원수님, 나쁜 고무총이 아닙니다. 고운 새들은 안 쏩니다. 그저 까마귀를 쏩니다.》 《봐라, 창남이는 이런 애란다. 창남이는 너희들의 <소년단림>에서 까마귀같은걸 내쫓고싶어하는 애란다. 너희들의 <소년단림>에 고운 새들만 깃들라고 말이다. 이 애는 너희들처럼 <소년단림>의 주인이 되고싶어하는 애란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분이 아이들의 조그만 다툼질을 이같이 화해시킬 때 대통령은 실로 느낌이 컸다. (너희들은 정말 행복한 애들이다. 너희들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애들이다!) 대통령은 그 애들을 품에 안고 이 말을 뜨겁게 속삭여주고싶은 심정이였다. 원수님께서는 동생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는 그 애한테 더 살뜰한 정으로 눈을 띄워주시였다. 《창일이는 형인데 어린 동생들을 그저 나쁘게만 봐서는 안되지, 안돼.》 《아버지원수님, 잘못했습니다.》 그의 수그린 고개밑에서 부끄러워하는 대답이 울려나왔다. 《음 됐다, 됐어. 너는 참 훌륭한 애다. 일요일날에도 <소년단림>에 와서 나무들에 물을 준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지.》 원수님께서는 창일이를 칭찬하시였다. 《아버지원수님…》 창일이는 중얼거리듯 입을 떼다 말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보시오. 우리 애들은 이렇습니다. 이런 애들이 바로 소년단원입니다. <소년단림>의 주인입니다.》 원수님께서는 창일이를 수원들앞에 내세워주시며 몹시 기뻐하시는것이였다. 그런데 창일이는 아버지원수님의 칭찬을 들을수록 더 고통스러운 얼굴을 했다. 《아버지원수님, 저…》 《왜 그러냐? 어서 말해라.》 《원수님, 저는 나쁜 앱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원수님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허허, 네가 어떻게 나쁜 애란 말이냐. 너는 훌륭한 애다.》 《아닙니다. 저는 나쁜 앱니다. 남들은 모두 물을 제대로 주고갔습니다. 그런데 전 그대로 안하고 집으로 갔습니다.…》 애들은 《소년단림》에 와서 식수한 그날 제가 심은 나무들에 물을 다섯바께쯔씩 주고가기로 했다. 그런데 창일이는 참 야단났다. 수첩을 펴보니 깨가 쏟아지게 재미날 아동영화시간이 거의 돼오는데 아직도 한바께쯔 더 길어와야 다섯바께쯔로 되는것이다. 그는 날마다 그 수첩에 래일의 텔레비죤순서를 꼭꼭 적었다가 아동영화시간만 되면 백리밖에 갔다가도 집으로 곤두박질해 뛰여올만 한 열성을 보였다. 그래서 애들도 창일이가 오금에서 바람을 내면 《벌써 아동영화시간이냐?》 하고 묻는 말이 이제는 입에 버릇처럼 올라있었다. 《얘들아, 창일이가 벌써 토끼처럼 뛰는걸 봐라. 우리도 빨리빨리 물을 주고 아동영화구경가자.》하고 애들이 샘터를 향해 갈 때 창일이는 거무칙칙한 하늘을 쳐다보며 종시 한바께쯔를 슬그머니 게눈감추듯 해버리고는 마을로 껑충껑충 뛰여갔다. (일없어, 이제 비가 곧 올텐데 뭘.) 창일이는 비구름을 믿고 제가 한바께쯔 모자라게 주고온 물에 대해서는 어느새 까먹고말았다. 그런데 다음날도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구름발은 간데없이 하늘은 창창하게 높아지더니 눈이 새그러울 정도로 해가 쨍쨍하게 내려비치는것이였다. 그러자 어린 나무들에 제가 골숨하게 주고온 물이 암만해도 속에 맺혀 내려가지 않았다. 때마침 방송에서는 날씨를 알려주면서 앞으로도 며칠동안은 가물이 계속될것이라고 하였다.… 《음, 그래서 물을 마저 주러 <소년단림>으로 다시 왔단 말이지?》 창일이의 얘기를 다 듣고나신 원수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창남이는 수리부엉이처럼 머리를 꾹 박고앉은 형의 뒤잔등을 송곳눈을 해서 흘겨보며 제법 맵짜게 뇌까리는것이였다. 《형은 나빠, 아주 나빠. 나같음 안 그랬을거야. 다섯바께쯔 꼭 줬을거야.》 원수님께서는 어린 동생의 이 비판을 유쾌하게 들으시였다. 《창일아, 너는 지금 저 애 말을 듣고 뭘 생각하느냐?》 《원수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재미나는 영화시간이 돼도 하던 일을 다하기 전에는 절대로 집으로 뛰여가지 않겠습니다.》 원수님께서는 잘못을 뉘우치는 창일이의 그 씩씩한 대답을 아주 대견하게 들으시였다. 《대통령각하, 이 애가 어떻습니까?》 《저는 그저 놀랄뿐입니다. 애들이 어쩌면 이렇게 솔직할수 있는지.》 대통령은 생각에 잠겼다. 누구도 모르는 잘못을 제스스로 말할수 있는 그 용기는 어디서 생기는것일가? 누구한테도 다 말할수 없었던 그 사실을 어떻게 원수님앞에서는 다 말할수 있었을가? 원수님의 눈빛에는 무한한 희열이 넘쳐있었다. 《참으로 즐거운 하루입니다. 나는 오늘 <소년단림>에서 만난 이 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창일아, 너한테는 정말 기특한 동생이 있다. 그리고 창남이한테는 훌륭한 형이 있지. 너는 애들한테 형을 자랑해라. 그리고 너는 애들한테 동생을 자랑해라.》 《그런데 애들이 내 말을 믿지 않으면 어쩝니까?》 창남이가 걱정스러워하자 주위에 웃음이 터졌다. 《허허, 그러면 야단이로군.》 원수님께서는 즐거이 웃으시다가 문득 생각을 달리하신 모양이다. 아마도 어린 소년의 작은 걱정을 그저 웃음으로 스쳐버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신것 같다. 원수님께서는 수원들을 돌아보시며 우선우선한 얼굴로 얘기하시는것이였다. 《어떻소? 내가 이 애들의 보증을 서주는게… 오늘 <소년단림>에 와서 수고한 이 애들의 일이야 내가 잘 아니까.》 순간 대통령은 놀람과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아버지원수님, 고맙습니다!》 대통령은 애들의 이 인사가 참으로 진정이라고 생각했다. 원수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시였다. 《자, 그럼 이제는 너희들과 헤여질 시간이 다 됐구나.》 애들은 발목에 잠기는 풀숲을 헤치며 벌써 저만침 달려나갔다. 원수님께서는 아이들의 뒤로 즐거이 걸음을 옮기시였다. 떨어져 쌓인 해묵은 나무잎들이 거멓게 고삭아 부석부석해진 그우로는 슴슴한 흙냄새가 떠돌고있었다. 구부정한 늙은 소나무밑에서는 송진냄새가 잔뜩 풍기고 숲속의 그 어데서는 맑고 싱싱한 기분으로 물소리가 돌돌돌 들려왔다. 《아버지원수님, 여기 풀밭에 진탕이 있습니다.》 창남이가 밝은 얼굴을 나무가지사이로 빠끔히 내밀며 말씀올렸다. 《오냐, 내 걱정은 말고 어서 걸어라.》 이번에는 두 아이가 손잡고 새끼곰처럼 뛰여가더니 키가 쭉 빠진 물황철나무앞에서 또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원수님, 여기 가시나무가 있습니다.》 원수님께서는 웃으시며 어서 걸으라고 손짓하시였다. 《산에서 싸울 때 왜놈들이 짓밟아 쓰러뜨린 어린 나무 한그루를 보아도 그걸 일으켜세워주고야 우리는 다시 행군을 계속하군 했습니다. 나라가 해방되고 할 일이 많은 그때에도 우리가 문수봉에 올라 나무를 심던 일이 꼭 어제만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저 애들이 우리가 하던 일을 계속하고있습니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구름사이로 밝은 해살이 쏟아져내리는 먼 하늘을 이윽히 바라보시다가 다시 아이들한테로 시선을 돌리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한테 저 애들이 없다면 아마 이 땅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지나 다름없을것입니다. 저 애들이야말로 우리의 숲입니다. 이 숲을 잘 가꾸는것은 우리 혁명에서 기본입니다.》 원수님께서는 차들이 서있는 큰길쪽을 향하여 천천히 발걸음을 이어나가시였다. 잠시후ㅡ 달리는 승용차를 따라 그냥그냥 소리치며 따라오던 두 아이의 모습도 이제는 숲속 멀리에 사라지고말았다. (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이분을 저 애들은 그저 아버지라고 했지, 아버지라고…) 아버지라는 그 말은 너무도 례사롭고 소박한것이였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그 말이 이제는 대통령한테도 친숙해졌다. 대통령의 얼굴에는 형용할수 없는 느낌이 어려있었다. 《이 나라 애들이 주석각하를 아버지로 따르는 그 마음은 참으로 진심입니다.》 원수님께서는 천진한 아이들의 세계를 지금도 그리시듯 생각이 어린 눈길로 먼 차창밖을 내다보시며 소박한 말씀을 하시였다. 《우리가 오늘 참관하게 되는 그 기계공장을 세우던 때만 해도 우리는 혁명을 힘들게 했고 건설도 어렵게 했습니다. 애들까지 <꼬마계획>활동을 벌려 <소년호>기중기를 만들고 <소년호>뜨락또르도 만들어 나라일을 도왔습니다. 밖에서는 미제놈들이 책동하고 안에서는 나쁜 놈들이 준동했지만 애들이 씩씩하고 명랑하고 기특하게 자라는걸 보면 온갖 시름을 다 잊군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한테 큰힘으로 되였습니다.》 순간 대통령은 감동어린 마음으로 아버지원수님의 이 말씀을 열렬히 긍정하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주석각하의 말씀을 들으니 나한테도 신심이 생깁니다. 우리한테도 그렇게 자랄수 있는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대통령은 확신에 넘쳐 말하였다. 이것은 대통령이 오늘 새롭게 찾은 진리였다. 대통령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올랐다. 《우리 애들한테도 <소년단림>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나라 애들처럼…》 대통령은 어느 한 저수지를 돌아보면서 아프리카에서도 조선처럼 대자연을 개조할수 있다는 큰 결심이 섰을 때처럼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이 나라 아이들도 모두 야자나무 우거진 그 땅으로 데려가고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대통령은 마치도 시인처럼 흥분에 넘쳐 말하였다. 《내가 행복한 이 나라에서 한 어린아이로 다시 인생을 시작할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대통령을 그만두고싶습니다.》 대통령은 손짓으로 자기 의사를 강조하며 즐거이 웃음을 터쳤다. 《허허, 그렇습니까. 나도 그런 때가 있습니다. 다시 동요시절로…》 대통령은 손을 흔들어 반대의 뜻을 표했다.
《허허,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나는 그저 우리 애들의 아버지일따름입니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대통령을 향해 조용히 웃으시였다. 대통령은 세계 여러 나라 많은 국가수반들을 만났지만 오늘처럼 유쾌하고 따뜻한 담화는 없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사랑을 주고 아이들은 우리한테 기쁨을 줍니다.》 아버지원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끝났다. 승용차는 어느덧 환영의 꽃다발이 물결치는 공장어구에 서서히 들어서고있었다.
주체80(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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