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오 광 혁
1. 물벼락
토끼들이 뛰여다니는 속에 내가 서있습니다. 옆에는 엄지손가락을 쑥 쳐든 토끼조각도 있고요. 유정이랑 대룡이랑 학급동무들이 빙 둘러서서 나를 축하하며 짜락짜락 손벽을 칩니다. 그러면서 재미난 노래를 부릅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며는 우리 엄만 물어요 몇점 맞았니 나는나는 꽃잎손 활짝 펼쳐요 다섯손가락 다섯손가락
내가 아마 동무들의 칭찬과 부러움을 받을만 한 큰일을 한것 같습니다. 내가 조각토끼의것보다 더 큰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빙빙 돌아갑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몸은 잠간사이에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둥둥 떠서 돌아가는 나의 몸을 누군가 휘여잡고 마구 흔들어대다가 내동댕이치는것이 아닙니까. 어이쿠! 이게 뭐야? 눈을 뜨고보니 꿈이였습니다. 앞에는 할머니가 서있구요. 《송일아, 이젠 그만 자구 일어나려무나. 해가 한기장 떠오른걸 보렴.》 할머니는 나를 흔들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아래집 유정이를 보아라.》 야 참, 할머니는 또 유정이와 대비하려고 합니다. 유정이 그 애는 나와 한학급 소학반 2학년생입니다. 유치원시절부터 지금까지 한책상에서 공부하고있는 동무이지요. 아무리 봐도 나보다 별로 잘하는것 같지 않은데 할머니의 입에서는 언제나 《유정이 보아라.》가 떨어지지 않는답니다. 학교에 갈 때도, 숙제를 할 때도, 동무들과 놀 때도… 하지만 나는 일어나기가 싫었습니다. 《싫어, 싫어. 좀더 잘래요.》 정말이지 따끈한 아래목이 좋았습니다. 나는 몸을 흔들며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썼습니다. 진짜 일어나기가 싫었거던요. 달콤한 꿀잠에서 깨여난것만도 아쉬운데… 《이녀석, 일어나지 못하겠니. 어제 저녁 아버지와 한 약속은 어떻게 하겠니. 그래가지구두 뭐 이다음에 커서 영웅이 되겠다구. 요만한 잠도 이기지 못하는 애가…》 《흐응, 조꼼만 더 잘래.》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얘얘, 아까 보니 유정이는 바께쯔를 들고 학교토끼우리건설장으로 가는것 같더라.》 《예ㅡ에? 토끼우리건설장에요?》 나는 그 말에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습니다. 어제 저녁일이 떠올랐습니다. 보도시간에 텔레비죤에는 토끼목장을 현지지도하시는 아버지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모셔졌습니다. 멋있게 꾸려진 커다란 우리에서 큰 토끼들이 무리지어 뛰노는 모습, 그것들을 돌아보시며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는 아버지장군님.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송일아, 앞으로는 공부도 더 잘하고 토끼를 기르는 일에도 앞장서야 한다. 지금 너희 학교 토끼우리를 더 크고 멋있게 짓던데 이 아버지도 잘 도와주마.》 《야! 아버지, 고마워요. 나도 열성껏 도울래요.》 그러면서 나는 활짝 웃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에게 받을 칭찬과 벽보에 크게 새겨질 이름, 그것을 보며 부러워할 동무들을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즐거웠기때문이였습니다. 그런데 늦잠을 자다니… 빨리 나가야지. 방문을 열고 뛰여나가려던 나는 주춤거렸습니다. 글쎄 아무리 급하다 해도 속옷바람으로야 어떻게 나갑니까? 이때 뜨개질감을 잡으시던 할머니가 허허 웃으며 옷걸이에서 내 옷을 벗겨주었습니다. 《에그, 콩밭에 서슬칠라. 유정이처럼 좀 차근차근 행동해라.》 정말 말끝마다 유정이와 대비합니다. (씨, 그렇게 고우면 유정이 할머니가 되고말지.) 할머니가 주는 운동복을 입고 마당에 나온 나는 엊저녁에 미리 내놓아두었던 애기바께쯔를 손에 들었습니다. 냅다 뛰여가서 따라잡을테야. 그런데 유정인 어떻게 알았을가? 참 모를 일이였습니다. 두눈을 동글동글 굴리며 생각해봤지만 알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대주었을가. 아니야, 어제 저녁부터 할머니는 나하고 있었는데 뭐. 뛰여가려던 나는 손에 쥔 바께쯔를 바라보았습니다. 왜 그런지 너무나 작아보였습니다. (에ㅡ 큰것으로 물을 길을테다. 그러면 한번에 두곱, 아니 세곱을 할거야.) 재빨리 마당가를 훑어보는 나의 눈이 수도가에서 멎었습니다. 입을 항 벌리고있는 파란 바께쯔가 눈에 띄였거던요. 더 생각할새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들고 씽하니 대문을 나선 나는 총알같이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길에 나섰습니다. 쩡 하고 속이 열렸습니다. 따뜻하던 아래목의 기운은 순간에 사라지고 머리는 대번에 거뜬해졌습니다. 오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유정이앞에서 엄지손가락을 쳐들어보이면서 자랑해야지. 그러면 아마 유정인 부러워할거야. 나는 막 신이 났습니다. 길옆의 집들에서는 아침밥 짓는 흰 연기가 몽골몽골 피여오릅니다. 유정이가 암만 먼저 나갔어두 1등은 내가 될걸… 벌씬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뛰여가면서도 엄지손가락을 슬쩍 가슴에 대보았습니다. 꿈에서 놀던 모습처럼 말입니다. 학교정문앞에 이른 나는 길옆으로 졸졸졸 흐르는 시내가에 훌쩍 뛰여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바께쯔를 물에 풍덩 잠그었다가 쑥 쳐들었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듯 물속에 잠기였던 바께쯔는 넘쳐나는 물을 은구슬처럼 쫘르르 떨구며 쉽게 따라올랐습니다. 그런데 쑥 올라오던 바께쯔는 나와 힘내기라도 하자는듯 내 팔을 막 잡아당기였습니다. 야, 죽신히 무거운데… 혹시 너도 유정이처럼 나를 골탕먹이려는게 아니야? 누가 이기나 보자.
하나, 둘, 셋 하고 셈세기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께쯔가 쉽게 떴습니다. (어떻게 된거야?) 눈을 번쩍 뜨고보니 유정이가 곁에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바라봅니다. 힝, 나는 코바람을 불었습니다. 그리고는 유정이한테 도움을 받은 나를 누가 볼세라 두리번거렸습니다. 《이걸 놔, 내 절로 갈테야.》 나는 그 애의 손을 밀쳐버렸습니다. 《왜 그러니, 도와주는데…》 영문을 알수 없다는듯 유정이는 쌍까풀진 고운 눈을 깜박이였습니다. 《너의 도움 안 받아두 돼.》 나는 바께쯔를 움켜쥐고 뒤뚱뒤뚱 발자국을 뗐습니다. 한발자국, 두발자국, 세발자국… 숨이 몹시 차올랐습니다. 나는 입까지 하 벌리고 쌔근거렸습니다. (야, 아버지가 와서 좀 도와주었으면…) 게사니처럼 머리를 쑥 쳐들고 토끼우리건설장을 바라보니 아버지는 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물이 딸릴텐데…)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우리 학교 토끼우리는 세배나 더 크게 확장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거기에 쓸 블로크가 얼마나 많아야 하겠습니까. 아마 지금 토끼우리만큼은 찍어야 할거야. 그러니 힘들더라도 내가 기어이 들고가야지. 뒤를 돌아보니 유정이가 타박타박 따라옵니다. 마치도 나보다 앞서겠다는듯이… 다시 힘을 내여 무거운 바께쯔를 가까스로 들고가던 나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푹 꼬꾸라졌습니다. 그러자 단번에 물벼락이 들씌워졌습니다. 여느때라면 이쯤한것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툭툭 털고 일어나겠지만 유정이앞에서 이 모양이 됐으니 어떻게 합니까? 물에 빠진 수닭처럼 됐다고 놀려줄거야. 헹, 웃겠으면 실컷 웃으라지. 나는 가까스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유정이는 웃음대신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고집쟁이같은거. 송일아, 넌 어서 집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한 유정은 다시 타박타박 걸어갔습니다. 고거 이제 아버지랑 선생님한테랑 다 대주겠지. 이어 몸이 오슬오슬 떨렸습니다. 할머니가 입혀준 운동복이 화락하니 젖었으니까요. 막 집으로 가고싶었어요. 이때 허ㅡ하는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요쯤한 일에 울상이 되다니… 자, 나와 함께 들고가자.》 나는 그 말에 다시 용기가 솟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와 함께 바께쯔로 물을 길어갔습니다. 이렇게 딱 한번밖에 물을 긷지 못하였습니다. 일이 다 끝났으니까요.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이게 뭐람, 난 참 한심한 애야, 그러니 물참봉이 됐지. 유정이한테까지 떨어지면서 말이야. 이 일을 할머니가 알면 또 유정이와 대비할거야. 체, 하겠으면 하라지, 다음부턴 꼭 앞설테야.
2. 손 칼
책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교실에 들어서는데 동무들이 벽보앞에 몰려가 와짝 떠들어댑니다. 나도 호기심에 이끌려 그속에 끼였습니다. 《착한 일. 박유정, 김송일.》이라는 글발이 눈에 확 안겨왔습니다. 야, 빠른데… 어느새 알았을가. 거기에는 유정이와 내가 학교토끼우리건설을 도와 한몫 하였다고 크게 실려있었습니다. 고작 한바께쯔밖에 물을 긷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내 이름이 유정이 다음에 놓여있는게 아니겠어요. 벽보에 씌여진대로 한다면 유정이는 좋은 일하기에서 첫번째이고 나는 두번째입니다. 《야! 송일아, 너 언제 그런 좋은 일을 했니?》 《우리한테도 좀 알려줄게지.》 아이들은 나를 빙 둘러싸고 왁작 떠들었으나 나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래일 아침엔 더 일찍 나갈테야. 꼭… 나는 슬쩍 유정이가 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내 생각을 알고 또 앞설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애의 자리에는 파란 가방만이 얌전하게 앉아있었습니다. 이때 따르릉 따르릉… 예비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좀 있어 유정이가 쏙 들어오고 길게 울리는 수업종과 함께 선생님이 들어오시였습니다. 첫 시간은 재미나는 국어시간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또랑또랑 읽기도 하고 또박또박 우리 글도 곱게 쓴답니다. 선생님은 칠판에 제목을 곱게 써나갔습니다.
제11과 얼룩곰의 겨울나이차비 나는 제목을 보며 해해 하고 웃었습니다. 곰이 겨울날 차비를 어떻게 했을가? 제목부터 내 마음에 호기심을 잔뜩 불어넣었습니다. 무척 재미있는 내용이였습니다. 엉터리 얼룩곰이 동무들의 말을 듣지 않고 한알 두알 새는것쯤이야 하고 생각하다가 도토리를 몽땅 잃어버리는 이야기였습니다. 읽기와 쓰기에 이어 마감시간에는 짧은글짓기를 하였습니다. 《동무》라는 단어를 가지고 두개 문장의 짧은글을 지어야 합니다. 나는 제일먼저 지어내려고 연필로 두볼을 살살 긁었습니다. 옳지, 이렇게 지어야지. 《동무ㅡ 얼룩곰은 참 한심합니다. 그것은 동무들의 말을 듣지 않아 도토리를 한알도 가져가지 못했기때문입니다.》 나는 슬쩍 옆에 앉은 유정의 학습장을 건너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유정이는 제목만 써놓고는 나만 빤히 쳐다보는것이였습니다. 《송일아, 손칼 좀 빌려주렴. 연필심이 다 닳아서 그래.》 《다른 연필로 쓰려마.》 《다른 연필들은 아까 필갑을 떨어뜨리면서 속심이 다 부러졌어.》 책상밑에 있는 필갑에서 칼을 꺼내주려던 나는 주춤 손을 멈추었습니다. 가만 있자, 이제 칼을 주면 이 애가 나보다 먼저 5점을 맞을수 있어. 돌돌 굴러가는 생각은 꺼내던 필갑을 도로 제자리에 밀어넣게 하였습니다. 《손칼을 못 가져왔구나. 권총을 깎다가 그만 집에다…》 나는 뒤말을 얼버무렸습니다. 유정이는 할수없이 건너편에 있는 대룡이에게 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가지고 연필을 깎는 벙어리흉내를 내였습니다. 잘코사니… 이번엔 내가 앞섰지. 하지만 일은 내가 바라던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학습장을 다 보시고난 선생님은 방시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는것이였습니다. 《짧은글을 제일 잘 지은 유정학생의 글을 발표하겠습니다. <동무ㅡ 나는 우리 학급동무들을 모두 사랑합니다. 그래서 서로 돕고 이끌면서 공부도 잘하고 좋은 일도 더 많이 하겠습니다.> 보세요. 얼마나 잘썼나요. 자, 우리모두 박수로 짧은글을 잘 지은 유정학생을 축하해줍시다.》 선생님의 말씀에 이어 울리는 박수소리는 온 교실을 들었다놓았습니다. 참 맹랑하게 되였습니다. 나는 앞서려고 하는데 왜 자꾸 떨어질가? 하루공부가 끝났습니다. 교과서, 학습장들을 가방안에 부지런히 넣던 나는 그만 덤비다가 필갑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바람에 필갑뚜껑이 열리면서 유정이에게 없다고 했던 물고기처럼 생긴 손칼이 하얀 배를 내밀고 착 나타났습니다. 나의 얼굴은 대번에 불앞에 갔을 때처럼 화끈해졌습니다. 《넌 칼이 있으면서도 주지 않았구나.》 유정이의 목소리가 쨍 하고 울렸습니다. 그러자 집으로 가려던 동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너는 왜 손칼을 안 가지고 다니니?》 동무들앞에서 유정이에게 진다는게 말이 됩니까. 그만에야 유정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핑 하고 돌았습니다. 동무들은 언제나 다정하던 나와 유정이가 수닭처럼 톡톡 맞설내기를 하자 이상하다는듯 머리들을 갸웃갸웃했습니다. 유정이는 쌩 하고 교실을 나갔습니다. 실컷 그래봐, 누가 꿈쩍이나 할줄 알구… 나도 가방을 둘러메고 교실을 나섰습니다. 비록 4점을 맞았지만 유정이를 꼼짝 못하게 했다는 생각에 흥얼거리며 집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대문앞에 있었습니다. 성난 얼굴을 하고말입니다. 나는 속이 덜컥했습니다. (할머니가 왜 저렇게 성났을가?) 《송일아, 가방 좀 보자.》 《예? 가방을요?》 나는 눈이 둥그래서 가방을 벗어 할머니에게 내밀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방을 열더니 제꺽 필갑을 꺼냈습니다. 에이 참, 일이 별나게 되여가는데. 나는 앞발끝으로 돌멩이를 툭툭 찼습니다. 먼저 집에 온 유정이가 할머니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바친것이 분명했습니다. 나의 목은 자라목이 되고 머리는 점점 땅으로 수그러들었습니다. 소나기처럼 한바탕 욕을 퍼부을거야. 오늘은 욕만 먹는 날인가. 《송일아, 그럼 못쓴다. 제일 친하다고 하던 유정이에게 손칼도 안 빌려주면 되겠니? 너 혼자만 제일 잘하면 된다더냐, 다같이 잘해야지. 원… 학생이라는게 언제야 철이 들겠는지.》 할머니의 목소리는 차츰 낮아졌습니다. 그러자 나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수그렸습니다. 제일 잘한다는게 뭘가. 엄지손가락을 흔들며 자랑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가.
3. 토끼풀
오늘부터 우리 학급은 오후마다 학습반을 끝내고 토끼풀 뜯는 일을 벌리기로 하였습니다. 학교 토끼를 도맡아 키우는 형님, 누나들을 잘 돕기로 했거던요. 우리 학교에서는 올해에 600마리의 토끼를 키우자고 결의했답니다. 경사스러운 2월의 명절을 맞으며 입단한 우리도 그 일에 한몫하고싶었습니다. 학교앞으로 흐르는 시내물을 건느면 배밭이 있습니다. 나지막한 둔덕에 자리잡은 배나무들은 우리가 대렬행진을 할 때처럼 규모있게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배나무들도 나와 같은 늦잠꾸러기들인지 아직 새싹을 틔우지 않고있습니다. 그것과 대조되게 땅에 깔려있는 풀들은 따스한 해빛을 받아 뾰족뾰족 새싹을 부지런히 올리밀고있었습니다. 여기서 토끼풀을 뜯기로 하였습니다. 유정이도 콩당콩당 뛰여갑니다. 많이 해야겠는데 풀이 많은 곳이 이쪽일가 저쪽일가. 아니야, 저 마루에 가면 많을거야. 나는 뜀박질을 하며 씽씽 올라갔습니다. 숨이 넘어갈듯 가쁜숨을 내쉬며 뛰여올라간 나는 금시에 다리맥이 풀렸습니다. 대단히 많으리라고 생각했던 토끼풀은 드문드문 박혀있고 배나무락엽만이 바람결에 하느작거렸습니다. 야, 이거 허탕이구나. 이젠 어디로 간다? 다시 내려온 나는 토끼풀이 있음직한 오른쪽 양지바른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합니까? 글쎄 유정이가 얌전히 앉아서 토끼풀을 뜯고있었습니다. 그 애의 주위에는 토끼들이 호물호물 맛있게 먹을 파아란 풀들이 한벌 쭉 깔려있었습니다. (또 떨어졌구나.) 나는 금시라도 달려가 토끼풀을 막 뜯고싶었습니다. 하지만 유정이가 자리를 내여줄것 같지 않았습니다. 시치미를 뚝 따고 뜯어볼가. 그러면 유정인 못뜯게 할거야. 자기가 먼저 찾아 맡아놓은 곳이라고.…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가려고 홱 돌아서는데 유정이의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송일아, 어디 가니. 어서 여기 와 함께 뜯자마.》 유정이가 손을 흔들며 나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선뜻 발걸음을 뗄수 없었습니다. 얼어붙은듯 서있던 나는 다시 유정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얼어붙든 굳어지든 상관없이 유정이는 방글방글 웃으면서 나에게로 다가왔습니다. 《빨리 가자, 우리 둘이 뜯고도 남을거야.》 나는 코밑을 뻑 훔치였습니다. 그리고는 유정이의 뒤를 조촘조촘 따라나섰습니다. 《정말 내가 뜯어도 일없니? 너 혼자 뜯으면 1등을 하고 선생님 칭찬도 받겠는데.》 《뭐라구?… 호호호.》 유정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방울소리처럼 산너머로 굴러갔습니다. 《이렇게 많지 않니. 우리 함께 많이 뜯자.》 유정이는 내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나는 유정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아침 힘들어하는 나를 도와준 유정이, 자기가 찾은 풀판의 풀도 나누어뜯자고 하는 유정이. 정말 돋보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애였습니까. 나혼자만 1등, 아니 선생님의 칭찬을 독차지하는 엄지손가락이 되겠다고 하였으니… 나는 손더듬으로 주머니의 손칼을 더듬어보았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였구나. 할머니가 말끝마다 《유정이 보아라.》되풀이하시던 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야, 나는 왜 그것을 싫어했을가. 유정이는 참말 좋은 아이였습니다. 우리는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토끼풀을 뜯어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참말 좋았습니다. 이때 동무들이 입을 모아 우리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송일아ㅡ 유정아ㅡ》 우리도 동무들을 소리쳐불렀습니다. 《얘들아, 이리 와.》 동무들이 콩당콩당 뛰여왔습니다. 물론 그 애들도 토끼풀을 애기바구니에 한가득 뜯어가지구요. 그렇지만 오구구 모여온 동무들은 유정이와 내가 제일 많이 했다고 막 부러워합니다. 우리는 손에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며 토끼우리로 향했습니다.
우리 엄마 기뻐서 잡아주던 손 오늘은야 장군님 잡아주셨지 …
학교토끼우리에 이른 우리들은 소조원 형님, 누나들에게 애기바구니들을 쑥쑥 내밀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얼마나 칭찬해주는지 몰랐습니다. 입에 침이 마르면 어떻게 할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말입니다. 내 바구니를 받던 형님은 벌씬 웃었습니다. 《우리 송일이가 제일 많이 했구나. 이거다, 이거.》 형님은 엄지손가락을 높이 쳐들며 나를 내세워주었습니다. 그 바람에 나는 무척 기뻤습니다. 동무들도 좋아서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습니다. 그중에서도 유정이가 제일 기뻐하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방실거립니다. 순간 나는 토끼우리앞에 세워져있는 엄지손가락을 쳐든 토끼조각을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큰것을 알게 된 하루였습니다. 나 하나만을 위한 엄지손가락, 그것은 새끼손가락이였구나. 물론 무슨 일에서나 엄지손가락이 돼야 하지만 동무들에게 손해를 주는 엄지손가락은 나쁜것이야. 나는 서쪽으로 멀어져가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해님은 큰것을 알게 된 나를 축하하듯 방글방글 웃어주었습니다.
(연산군 신락중학교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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