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장 성 철

 

많고많은 아이들중 나처럼 그렇게 억울한 경우에 부닥쳐본 애가 글쎄 몇이나 되겠는가.

처음에는 너무도 기분이 잡쳐 입술이 나팔꽃처럼 삐죽 나오고 얼굴까지 화끈 달아올랐다.

사실 그날은 무척 기쁘고 즐거운 날이였는데…

꼬마로만 불리우던 소학교시절을 마치고 어엿한 중학생이 된 첫날 수업시간에 바로 그 일이 터졌다.

첫 수업은 수학시간이여서 눈처럼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받쳐입은 처녀선생님이 제일먼저 교실에 들어서시였다.

선생님은 출석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을 부르는대로 기운찬 대답소리들이 쨍쨍 울리던중 드디여 내 차례가 되였다.

《리남학생!》

《옛.》

나는 힘있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뒤에서 《와그르르》하고 왕밤알 쏟아지는것 같은 소리를 내며 아이들이 웃어대는게 아닌가. 왜 그럴가… 둥그래진 눈으로 뒤를 돌아본 나는 그만 얼굴을 찌프리고말았다. 글쎄 뒤에서 키가 전주대처럼 꺽두룩한 애가 우뚝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게 아닌가. 마치도 뻐스줄에 제멋대로 끼여드는 버릇없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처럼…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키가 큰 저 애도 남이인게지? 처음 보는 애다야…》

《응, 저 애는 연구소에 올라온 아버지를 따라 얼마전에 우리 동에 이사온 애야…》

《챠, 우리 학급에 <쌍둥이>가 생겼구나. 그런데 우습지. 한 애는 크고 한 애는 쬐꼬맣고… 꼭 높은 도와 낮은 도 같지 않니. 쿵짝쿵ㅡ짝 이렇게 말이야.》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져올랐다. 재미난 일이 생겼으니 우스울것이다.

그런데 뒤에 선 큰 남이까지 나를 보며 킬킬 웃어대는것만은 정말 참을수 없었다.

자기는 웃음거리의 주인공이 아닌것처럼 그렇게 웃어대다니… 정말이지 미소어린 눈길로 나를 바라보시는 선생님만 아니라면 그 애에게 《흥, 키가 큰게 뭐가 그리 대단하니.》하며 혀라도 쑥 내밀고싶었다.

《야, 이거 복잡하다야, 이름이 같으니까.》

《글쎄말이야, 출석을 부를 때마다 삭갈리겠지?》

《됐습니다. 학급에 이름이 같은 <쌍둥이>가 있다는걸 미처 몰랐군요. 다음부터는 키가 큰 남이학생이 먼저 대답하세요.》

선생님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해주었지만 내 머리는 반대로 아주 복잡해졌다. 뒤에 앉은 애가 먼저 대답하다니…

정말 별치 않은것 같지만 마음에 딱 걸리는 일이였다. 그다음에 일어난 우스운 일들때문에 더 그러했다.

첫 수업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되자 익살꾸러기 해성이가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얘들아, 출석은 출석이고 우리가 부를 때도 삭갈리지 말아야 하지 않겠니. 그저 리남이 하고 부르면 칭찬받을 일이건 욕먹을 일이건 둘 다 달려올게 아니가.》

아이들이 해성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옳아,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을가.》

해성이가 제법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듯 눈을 꼭 감고 입가에 남실거리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가만 내가 한것처럼 하는게 어때. 언제인가 우리 어머니가 말이야. 치솔을 두개 사와서 나와 동생에게 나누어주었는데 글쎄 어찌나 꼭같이 생겼는지 자꾸 삭갈리더란 말이야. 그래서 난 동생의 치솔을 짧게 뚝 분질러놨거던.》

무슨 기발한 착상이라도 나오나 해서 바라보던 애들은 모두 맹랑한 표정들을 지었다.

《저 앤 참 어처구니 없다야. 그렇다구 누굴 분질러놓겠니…》

《아니야. 내 말은 저 애들을 분지르자는게 아니라 아예 이름을 수리해주자는거야.…》

《뭐 이름? 어떻게?…》

아이들은 한참 찧고 까불고 하더니 키가 큰 애는 대남이, 키가 작은 나는 소남이로 부르자고 저네끼리 아예 락착을 지어버리고말았다.

참 억울하기 짝이 없는노릇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키도 작고 몸도 약해서 기분이 나빴는데 이름마저 작은 남이로 불리우게 되였으니 참… 소남이가 뭐야, 소남이.… 대남이는 척 듣기에도 듬직한 이름인데… 하지만 억울해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 그 애가 큰것은 사실이니까ㅡ

정말 대남이는 키가 큰 아이였다. 어떤 아이들은 사이체조시간이나 아침모임에 늦은 때면 전주대처럼 꺽두룩한 그 애의 머리를 보고 자기 학급을 찾군 했다.

나처럼 꼬맹이들은 그 애와 마주서서 한참만 이야기를 나누어도 뒤목이 뻣뻣해질 정도였다.

그러니 작은 남이로 불리울수밖에… 그러나 나의 억울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안있어 진행된 학급실력판정에서 내가 단연 1등을 하였던것이다.

(흥, 공부를 잘하는게 진짜 큰아이지…)

나는 겨우 꼬리를 면하고 풀이 죽어 앉아있는 대남이 보란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대남이는 정직하고 괜찮은 아이였다. 그애는 나에게 《넌 공부를 참 잘하는구나. 나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 제일 부럽더라.》하고 말하는것이였다.

그 말에 억울했던 감정은 봄눈녹듯 사라져버리고 나는 인정많은 그 애와 아주 딱친구가 되였다.

지내볼수록 대남이는 좋은 아이였다. 몸이 약해서 《감기정류소》로 불리울만큼 자주 앓군 하는 나를 위해 약이며 색다른 간식도 가져다주고 학교에 못 나가는 날이면 밀린 공부를 보충하라고 저녁마다 우리 집에 찾아오군 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다고 나 역시 대남이를 위해 무던히도 극성을 부렸다.

그쯤 되니 우리 사이에는 대남이로 불리우건 소남이로 불리우건 상관없었고 키가 크고작은것도 개의치 않게 되였다.

그런데 몇달후 나와 대남이의 관계는 바로 그 크고작은 키때문에 전혀 생각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였다.

 

×

 

즐거운 여름방학도 다 지나가고 새학기가 시작되여 두달남짓이 흘러간 어느날 갑자기 날씨가 차졌다. 첫추위는 남새밭이며 풀판들에 하얀 서리꽃을 피워놓고 쌩한 찬바람을 몰아왔다.

그것뿐이면 좋기나 하겠다. 글쎄 나한테는 또 돌림감기라는 반갑지 않은 《선사품》까지 넌떡 안겨주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 감기는 특별히 지독한것이여서 나는 사흘동안이나 학교에 못 나가게 되였다.

겨우 감기를 쫓아버리고 일어난 날 아침일찌기 대남이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어제 저녁엔 말이야, 갑자기 집에 김장무우가 들어오는 바람에 오지 못했어. 그래서…》

바로 그래서 어제 배운 학과목내용을 알려주자고 찾아온 대남이였다.

《고마워. 흑…》

흑 소리는 고마와서 흐느끼는 소리가 아니라 코물을 들이키는 소리였다.

《너 아직 깨깨 낫지 않았구나.》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털모자와 털신 그리고 솜옷으로 완전《중무장》을 하고 대남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학교로 가면서 대남이는 어제 배운 수학응용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 열성스레 설명했지만 아직도 감기기운이 남아있어 뗑한 나의 머리속으로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대남이도 약간 짜증이 나 하는듯 했다. 사실 자기는 나보다 수학실력이 퍽 낮으면서 말이다.

《자, 다시 들어봐. 사과가 한 광주리 있어. 그속에 사과가 몇알 있는가 하면…》

문제를 다 설명해준 다음 대남이는 불이 나게 대답을 독촉했다.

《자, 이젠 대답해봐. 동무들한테 나누어준 사과가 도대체 몇알이냐 말이야?》

바로 그때 등뒤에서 불쑥 대남이의것보다 더 커다란 목소리가 날아왔다.

《너희들은 아침부터 웬 싱갱이질이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웬 할아버지가 엄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보아하니 저 혼자 먹은게 아니구 제 동무들한테 사과를 좀 나누어준 모양인데… 그렇다고 해서 동생을 그렇게 윽박지르면 되냐? 형이라는게…》

우리들이 어리뻥뻥해 있는데 할아버지는 갑자기 벙싯 웃으며 대남이의 어깨를 다정하게 잡았다.

《형이 되기는 쉬워두 형구실하기는 쉽지 않느니라. 그러니 잘 타일러줘라.》

할아버지는 무슨 뜻인지 대남이에게 눈까지 끔벅 해보이고는 씨엉씨엉 제 갈길을 걸어갔다.

할아버지가 멀리 간 다음에야 나는 저도 모르게 분통을 터뜨려놓았다.

《뭐, 내가 동생? 야, 이거 너하구 붙어다니다가 별망신을 다 하는구나야. 야, 넌 왜 그렇게 커가지구 나까지 에이참… 그 할아버지가 너한테 눈까지 끔벅하시는걸 봤지?》

그러자 대남이는 사뭇 미안한 기색이 되여 중얼거렸다.

《내가 잘못했어.》

《쳇, 네가 잘못한거야 뭐 있니?》

나는 다시금 누그러져서 미안해하며 황급히 말했다.

《하긴 그래. 얘, 그럼 이제부터 우리 따로따로 떨어져 다닐가?》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 다툰 아이들처럼 떨어져 다닐건 또 뭐란 말인가.

호기심이 노상 바글바글한 아이들이 웬일인가 해서 캐고들기 시작하면 내가 《동생》이 되였던 일까지 말짱 다 알게 될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이자보다 더 큰 망신거리가 생겨날것이다.

《가만! 좋은 수가 있다.》

대남이가 내 어깨를 탁 때리며 큰소리를 쳤다.

나는 어깨가 되게 아팠지만 좋은 수가 있다는 바람에 얼굴을 찡그릴새도 없었다.

《너도 이제부터 아침마다 달리기와 뜀줄운동을 하란 말이야.》

《아침달리기? 뜀줄? 그럼 너두 매일 그걸 하니?》

《그렇지 않구. 난 소학교때부터 하거던.》

《그렇게 하면 정말 키가 커질가? 난 원래부터 키가 작은데…》

내가 우물쭈물하자 대남이도 약간 주저하는듯 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커. 사실 넌 몸까지 약하니까 더 작아보인단 말이야. 해성이를 봐라. 그 애도 작지만 몸이야 얼마나 단단하니. 어제 우리 집에 실어온 무우들이 아주 멋있는데 꼭 해성이 몸집같은것이 수두룩하더라. 하하하… 그리구 아침운동은 감기도 예방하거던… 너처럼 꿀이랑 토끼곰이랑 계속 먹어도 좋아지지 않던 몸을 아침운동이 좋아지게 할지 알겠니.》

대남이는 만족스러운듯 활짝 웃었다.

다음날 새벽이였다.

《남이야, 일어나거라. 밑에서 널 찾는다.》

할머니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였다.

《아… 함… 누가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큰 남이 같구나.》

그제야 생각났다. 하지만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오기가 정말 싫었다.

새벽이라지만 밖은 아직도 깊은 밤처럼 캄캄했다.

《그런데 웬일이냐? 이 새벽에…》

내가 사연을 말하자 할머니는 대뜸 걱정스러운 기색이 되였다.

《그러다 또 감기에 걸리지 않겠니?》

참 우습기도 했다. 대남이는 감기예방이라고 했는데 할머니는 감기걸릴 걱정을 하니 말이다.

애기때부터 나를 깨지기 쉬운 전구알 혹은 금방 까난 병아리처럼 무던히도 애지중지 해온 할머니였다. 더구나 나는 소학교때에 갑자기 급병을 만나 몇달동안 되게 앓은적이 있었다. 게다가 지질연구사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노상 나가살다싶이하니 할머니는 나를 끔찍이도 귀해하였던것이다.

《어쨌든 약속을 했다니 나가봐라. 그런데 옷을 두툼히 입어라.》

원래의 《중무장》에 할머니의 목도리까지 두르고 밖에 나오니 한창 제자리달리기를 하고있던 대남이가 깔깔 웃어댔다.

《아니, 넌 아침운동 나왔니, 북극탐험하러 나왔니?》

그 말에 나는 새된 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엣취!》하고…

《아이쿠, 또 재채기로구나. 자, 빨리 달리자.》

나는 대남이의 몸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이운것처럼 털썩털썩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꽤 달릴만 하더니 차츰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머리속에 딴생각이 슬금슬금 기여들었다.

(에이, 이렇게 힘든게 무슨 운동이람. 좀 재미나야지.)

가쁜숨이 목구멍으로 점점 기여올라오자 《딴생각》도 점점 커졌다.

(쳇, 키는 그다지 커서 뭘해. 몸은 또?… 물독처럼 뚱뚱해지면 내가 뭐 유술선수가 될가? 이런시간이면 공부나 더 하겠다.)

그래도 이틀동안은 억지로 아침운동을 했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에는 눈까지 펑펑 쏟아져 내렸다.

(에익ㅡ 오늘은 그만두자.)

날이 밝았지만 나는 아예 이불속에 푹 파묻혀 나오지 않았다. 공원입구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대남이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있을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아침밥을 먹고 학교갈 차비를 하느라니 문득 한가지 걱정이 솟구쳐올랐다.

(대남이 이 애가 약속을 어겼다고 시시한 애니 뭐니 할테지? 아니, 도제 3일만에 물러섰다고 《변절자》딱지를 붙여줄지도 몰라. 에 참, 그런건 왜 시작해가지구 요렇게 마음고생을 한담.…)

나는 대남이가 오기 전에 먼저 냅다 달려 학교로 갔다. 그러느라니 막 숨이 차고 다리가 매시시했다. 그러고보면 오늘 아침도 달리기는 한셈이였다.

(이런 식으로 아침달리기를 해도 되지 않을가?)

나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제꺽 자리에 가서 시치미를 뻑 따고 앉아있었다.

이제 대남이가 나타나면 분명 잔소리부터 막 쏟아놓을것이다. 아니나다를가 뒤늦게 교실에 들어선 대남이의 얼굴은 우거지상이였다.

그런데 그 앤 앉자마자 잔소리가 아니라 뚱딴지같이 걱정거리를 털어놓는것이였다.

《남이야, 너 수학숙제 5번문제하구 8번문제를 풀었니?》

《그래 풀었어. 왜?》

《난 종내 못 풀었어. 야 난 왜 요렇게 수학골이 돌지 않을가?》

대남이 말이 옳았다. 그 애는 다른 과목은 그럭저럭 따라가는데 수학만은 무척 힘들어하였다.

내가 앓을 때마다 꼭꼭 우리 집에 찾아온것도 사실은 밀린 과정안을 대주는것보다 수학숙제를 도움받기 위해서 그랬던것이다.

《아, 그럼 왜 날 찾아오지 않았니? 전화라도 하던가.》

《창피해서… 오늘 아침 달리기를 할 때 물어보자구 했지뭐… 참 미안해. 아무말없이 안 나와서 너 혼자 달렸겠구나?》

(아니, 그럼 대남이도?…)

순간 나는 키드득 웃음이 나오려는것을 겨우 참았다.

《사실은 새벽에 일찍 일어났는데 그 문제가 풀릴듯 하기에 그놈하고 씨름질을 하느라구…》

그 순간 나는 대남이의 어깨를 탁 때렸다. 며칠전 그 애가 내 어깨를 때리던것처럼…

《가만 좋은 수가 있어.》

참말 그것은 좋은 수였다.

지금껏 진정으로 나를 도와준 좋은 동무 대남이, 오는 떡이 크면 가는 떡도 크다는데 나는 한번도 씨원하게 도와준적이 없지 않는가?… 그러니 바로 이런 때 내가 그 애를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대남이 역시 아파할새도 없이 입을 하 벌린채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좋은 수란 뭘가 하는 물음이 그 애의 얼굴에 확연히 그려져있었다.

《이제부터 하루 한시간씩 나하구 수학공부를 하잔 말이야. 그것도 졸리기만 하는 저녁시간이 아니라 상쾌한 새벽시간에 말이야. 어때?》

말해놓고보니 더 《멋진》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을 구실로 아침달리기도 어물쩍 해치울수 있지 않겠는가.

결국 돌 한개를 던져 두마리의 새를 잡는 격이 된것이였다.

《야, 그러믄 고맙지 뭐.》

대남이의 둥실한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여났다.

《고마울게 뭐 있니? 남이야, 우리 이렇게 하자. 뭐니뭐니해도 학생은 공부를 잘해야 해. 솔직히 말해서…》

나는 문득 말허리를 뚝 끊었다. 괜히 내 편에서 먼저 몸단련이 필요없다는 말을 꺼내고싶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런 눈치도 채지 못한듯 대남이는 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넌 키가 작아도 속은 크구나. 에라, 이제부턴 네가 진짜 큰 남이다.》

그만에야 나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요행수를 써서라도 작은 남이에서 더 작아지지나 말자던노릇이 왕청같이 큰 남이로 바뀌운것이 아닌가.

내가 왜 웃는지도 모르고 대남이도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웃었다.

하지만 나의 즐거움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돌멩이》에 맞은것은 두마리의 새가 아니라 바로 나 작은 남이였던것이다.

 

×

 

정말 신통하게도 꼭같은 이틀이 되였다.

내가 아침운동을 나간것도 이틀, 그다음 내 편에서 대남이를 도와준것도 기껏 이틀뿐이였다.

사흘째 되는 날 오후 대남이네 집에 가 앉았을 때 머리가 핑 돌면서 줄기침이 터져나왔다.

사실 아침부터 뼈마디가 지끈지끈 하면서 조금씩 기침이 나오더랬는데 갑자기 심해지는것이였다.

방은 후끈한데도 몸은 오슬오슬 떨리기만 하였다.

《아이구… 아구…》 나는 쓰러지듯 방바닥에 누워버리고말았다.

《남이야, 너 왜 그러니?》

대남이가 눈이 커지며 내 이마를 짚어보더니 난로라도 만진듯 와뜰 놀랬다.

《이게 뭐야. 막 따겁구나.》

대남이는 급히 약함을 꺼내놓고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무슨 약을 먹어야 하니? 이건 뭐야? 데라미찐? 이걸 먹으렴…》

바보, 아무 약이나 막 먹으면 되는줄 아는게지…

나는 대답하기도 싫어서 그저 머리만 가로저었다.

대남이는 왈칵 성을 냈다.

《바보처럼 놀지 말아. 써도 약은 먹어야 해. 쪼꼬만 애들처럼 약먹기 싫어하면 병을 못 고쳐. 자, 입을 벌려라.》

나는 사정하듯 말했다.

《그건 배 아플 때 먹는 약이야.… 아니, 설사할 때…》

《뭐라구? 아이쿠.》대남이는 자기 머리를 때렸다.

《아스피린을 찾아봐라.…》

나의 말에 대남이의 눈은 밥사발만큼이나 커졌다.

《뭐, 아이스크림?… 너 정신있니. 이 추운 겨울에…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린다야.…》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였다. 약이름도 몰라서 크림과 삭갈리다니… 아프지만 않다면 한껏 웃어주었을걸… 하긴 저 애는 나처럼 앓지 않으니까 모를수 있지.

대남이는 눈물까지 그렁해져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대남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기 있는데로 우당탕 달려가 번호판을 눌러댔다.

《할머니나요? 남이가 고장났어요. 아니, 아니 쓰러졌어요. 불덩이예요. 아이스크림이 먹구싶대요. 예.… 아 빨리요.》

달카닥 송수화기를 놓은 대남이는 무릎을 꿇고앉더니 나를 애기처럼 둘쳐업었다.

그 애의 잔등은 넓기도 했다.

그때부터 얼마후 나는 병원침대에 누워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엉치에 주사를 두대씩이나 맞고 지금은 팔에 꽂은 주사바늘에 련결된 수지관으로 커다란 병속의 액체가 한방울 두방울 흘러내리고있었다.

이제는 열도 퍼그나 내리고 아프던 머리도 시원해지고있었다.

《에그ㅡ 무슨 애가 이렇게 약골인지… 글쎄 보약이라는 보약은 다 먹이는데 감기를 앓다 못해 페염에까지 걸리다니…》

머리맡에 앉은 할머니의 푸념이였다.

《할머니두 참, 약골로 났을게 뭐예요. 너무 어루만지기만 하구 단련을 시키지 않아서 그렇지…》

그것은 방금전 주사를 놔준 의사선생님의 책망이였다.

《의사선생은 어떻게 아나? 내가 어루만지기만 했다는걸 말일세.》

동네사람들도 늘 할머니를 보고 날 지내 어루만진다고 말했던것이다.

《그걸 왜 모르겠어요? 이 애 팔이랑 다리랑 만져보세요. 그저 말랑말랑하기만 한게 꼭 근육없는 아이 같지 않아요. 그러니 오는 감기, 가는 감기 다 걸리구 나중엔 페염까지 앓게 되지요?》

그러자 땀에 젖은 얼굴로 나의 발치에 우두커니 서있던 대남이가 기여드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예요. 남인 내 공부를 도와주느라고 애쓰다가… 그래서 병을…》

의사선생님이 그의 말허리를 뚝 분질렀다.

《넌 정말 좋은 동무로구나. 남의 잘못까지 뒤집어쓰는걸 보니.… 진짜 동무라면 그렇게 두던해주지 말구 되게 비판을 해주어야 해. 이 애 병은 어제오늘 생긴게 아니구 어릴 때부터 생긴거란다. 그래 며칠이나 도움을 받았니?》

《오늘까지 3일…》

《호호호.》

의사선생님의 웃음소리가 입원실을 지르릉 울리였다.

나는 창피해서 눈을 꼭 감았다.

눈앞은 가리워졌지만 머리속에는 별의별 《화면》들이 눈에 보이는듯 펼쳐지고있었다.

유치원때부터 오늘까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서 운동을 싫어하고 체육시간을 싫어하고 집일돕기는 더더욱 싫어하던 나의 모습들이 그 《화면》속에 다 들어있었다.

《환자동무, 눈을 감았다고 그 새빨개진 얼굴이 다 가리워지는줄 알아요? 한번 대답해보라요. 뭔가 느껴지는게 없어요?》

느껴지는게 있었다.

그것은 벌써 아까 대남이가 헐떡거리며 나를 업고 올 때부터 가슴이 따끔해지도록 느껴지던 새로운 감정이였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외로 튼채 떠듬떠듬 대답했다.

《몸이 약하면… 동무를… 도와줄대신… 오히려 부담을 준다는것을…》

그만에야 눈굽이 따끈해지더니 역시 따끈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귀구멍으로 기여들어가려 했다.

의사선생님이 다가와 살뜰히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것뿐이 아니야. 보다 중요한게 있어. 네가 이다음에 커서 공부를 잘해 박사가 된다고 해봐라. 몸이 약해서 비틀거리면 어떻게 제구실을 할수 있겠니? 넌 아마 학생이면 공부만 잘해야 된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라. 나라에서 왜 돈 한푼 안 받고 너희들을 공부시켜주고있는가…》

나는 틀었던 고개를 바로 하고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였다.

《앞으로 강성대국의 내 나라를 위해 제구실을 하라고, 앞날의 주인공이 되라고 그러는거야. 그런데 공부만 잘하는 약골, 절름발이가 되여 학창시절을 마친다면 조국이 부르는 초소에 당당히 나설수 있겠니? 없지.… 때문에 너희들의 어린시절은 지덕체를 다 갖춘 값있는 시절로 되여야 하는거란다. 용감한 인민군병사가 <일당백>으로 준비되여야 하는것처럼 너희들도 <지덕체>를 튼튼히 겸비해야 한단다.…》

나는 거꾸로 매달린 약병을 뚫어지게 쳐다보고있었다.

거기서 한방울, 두방울 소리없이 떨어져내리는 주사약…

하지만 그 방울방울은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것 같았다.

(이젠 알았니? 오늘의 지덕체는 앞날의 애국자가 될수 있는 귀중한 밑천이야.)

나는 다시금 눈물이 글썽해지며 어른들처럼 깊은 생각에 잠겼다.

튼튼한 몸은 나라의 보배라고 하신 아버지장군님의 가르치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였고 《지덕체》에 깃들어있는 의미를 새삼스레 생각하게 되였다.

나와 꼭같은 심정이였던지 곁에 앉은 대남이가 말없이 나의 손을 꼭 잡았다.

나도 맞잡은 손에 꽉ㅡ 힘을 주었다.

《아야, 아프구나야ㅡ》

대남이가 괜히 아부재기를 치는 소리였다.

《이제 보니 너두 힘이 세구나 뭐.》

《흥, 이제 두고봐. 내 힘이 너보다 더 세지지 않나ㅡ》

나자신도 놀랄 지경으로 자신만만하고 힘이 넘치는 대답이였다.

《허허허…》

《호호호…》

할머니와 의사선생님이 즐겁게 웃는 소리였다.

우리들도 소리높이 웃음을 터치였다.

《하하하…》

《하하하…》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