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림 순 석

 

(이거 어떻게 된거야?)

강범이는 붕어눈같이 동그란 눈을 껌뻑거리며 코앞에 앉아있는 선영이에게 눈길을 보냈습니다. 선영이는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채 무엇인가 열심히 읽고있습니다. 기분이 몹시 상해진 강범이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금 마지막수업이 끝났을 때였습니다. 선생님이 어제 있은 수학시험등수를 발표했습니다. 강범이는 1등은 응당 자기일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글쎄 선생님이 《1등, 김선영학생.》하고 부른것이 아니겠습니까.

(응?!)

강범이는 눈이 둥그래서 한참이나 고개를 기웃거렸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학급에서 1등자리는 언제나 자기것이였습니다. 수학에서도 국어에서도 체육에서도…

그도 그럴것이 앞으로 인민군대의 큰 부대장이 되겠다는 강범이니까요. 땅크부대 대대장인 아버지처럼 말이예요. 그런데 그만 1등자리에서 밀려나고만것입니다. 다른 애도 아니고 유치원시절부터 앞뒤집에서 살면서 늘 자기보다 뒤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 조금만 지부렁거려도 눈총을 쏘며 패뜩하군 해서 《새침데기》라고 놀려주던 선영이한테 말입니다.

(흥, 어디 두고 보자.)

집으로 돌아갈 때였습니다.

마을이 가까와지자 강범이는 불쑥 아이들앞에 막대기로 금을 쭉 긋고나서 말했습니다.

《자, 이건 출발선이다. 달리기경기. 저기 앞에 보이는 대추나무에 먼저 손대는 아이가 1등, 어때?》

《좋다.》

인철이가 방울코를 벌름거리며 선참 나섰습니다. 복실이도 주먹을 꼭 쥐며 뒤따랐습니다. 그런데 선영이만은 눈을 내리깔고 입술만 감빨고있습니다.

《왜, 자신없니? 가만, 그런걸 어른들이 뭐라 하더라. 자신없어 물러서는걸… 오! 기권, 선영이 넌 기권하면 꼴등이야.》

《꼴등》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던지 선영이가 입술을 꼭 물고 출발선에 섰습니다.

《하나, 둘, 셋!》

아이들은 두주먹을 부르쥐고 내달렸습니다.

맨 선참 대추나무그루에 손을 댄것은 강범이였습니다. 그 다음은 인철이, 선영이는 맨 마지막에야 닿았습니다.

《에, <도토리>는 할수 없구나.》

강범이가 우쭐렁거리며 선영이를 시까스르는 말이였습니다. 선영이는 귀방울까지 빨개졌습니다.

넷가운데서 키가 제일 크고 몸매가 늘씬한것은 강범이였습니다. 선영이는 키가 작달막했습니다. 넷가운데서만이 아니라 학급적으로도 작은축에 속했습니다.

선영이는 강범이가 자기를 놀려댄다는것을 대뜸 알아차렸습니다. 참을수 없었습니다. 무슨 말로든 콱 쏴주고싶었습니다. 순간 누구에게서인가 들었던 《손가락다툼》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선영이는 총알처럼 내쏘았습니다.

《내가 <도토리>면 넌 <가운데손가락>이가?》

《뭐, 가운데손가락?》

강범이가 손바닥을 펴고 앞뒤로 돌려보더니 싱글거렸습니다.

《헤헤, 가운데손가락이면 좋구나 뭐. 제일 가운데 있구, 제일 크지 않니? 나처럼 말이야.》

그 모양에 선영이의 입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호호호.》

강범이의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왜 웃니?》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좋다니까 그러지.》

《그래, 무슨 뜻이가?》

복실이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뭔지 어서 말해.》

강범이가 선영이앞으로 다가들었습니다.

《그럼 성내지 않겠니?》

《성까지야 뭐…》

《정말? 약속하지?》

《이거 날 어떻게 보구 그래. 약속한다.》

《어서 말하라. 약속한다지 않니.》

인철이도 은근히 호기심을 내비쳤습니다.

선영이는 드디여 《손가락다툼》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다섯손가락가운데서 키가 껑충한 가운데손가락이 저만 잘난듯이 우쭐렁거리며 제옆의 손가락들을 걸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키가 작고 몸이 통통한 엄지손가락에게 이렇게 빈정거렸습니다.

《넌 작고 통통해서 볼품도 없는게 나와 함께 있으면서 뭘하니?》

그러자 엄지손가락이 담차게 대들었습니다.

《말두 마. 제일 으뜸인걸 자랑할 때 내가 나서지 네가 나서니?》

가운데손가락은 그 소리에 아무 대꾸도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제옆에 딱 붙어있는 두번째손가락을 건드렸습니다.

《넌 내옆에 딱 붙어서 뭘하니?》

성미가 칼날같은 둘째손가락이 면바로 내쏘았습니다.

《총을 쏠 땐 바루 내가 나선단 말이야. 무엇을 가리킬 때에두…》

기가 죽은 가운데손가락이 이번엔 반대쪽에 있는 약손가락에게 지부렁거렸습니다.

《그럼 네가 내옆에 붙어서 하는 일 없겠구나.》

그러자 여느때는 참하던 약손가락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그따위 싱거운 소린 하지두 말아. 금빛은빛으로 반짝이는 가락지들이 나한테 끼워진단 말이야.》

가운데손가락은 마지막으로 키도 작고 몸도 약한 애기손가락을 흘겨보았습니다.

《넌 쪼꼬만게 나한테 붙어살면서…》

그러자 애기손가락이 코방귀를 내불면서 되알지게 소리쳤습니다.

《흥, 키만 꺽두룩해가지구 함부로 남을 깔보면서. 약속이나 맹세를 할 때 날 찾지 누굴 찾니?》

더는 할말이 없어진 가운데손가락은 너무도 부끄러워 마디를 접어버렸답니다.…

《하하.》

《호호호.》

인철이와 복실이가 개미허리를 하고 깔깔거렸습니다. 그러나 강범이만은 웃을수 없었습니다. 얼굴만 지지벌개져서 선영이의 쌍태머리 꽁지라도 한번 탁 건드려주고싶었습니다. 하지만 꾹 참았습니다. 아이들이 다 보는데서 약속을 했으니까요.

그대신 속으로 이렇게 별렀습니다.

(너 수학시험에서 1등했다구 꽤나 쫄랑대누나. 래일은 어림없어.)

 

×

 

다음날 국어시간입니다.

칠판에는 《눈》, 《산》, 《신문》, 《연》 이런 단어들이 의좋은 형제들처럼 한줄에 나란히 씌여있었습니다.

흰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받쳐입은 선생님이 칠판지우개로 그 글자들을 지우고나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번시간에 <ㄴ>받침이 들어간 글자를 배웠습니다. 그럼 배운 글자들을 내놓고 <ㄴ>받침의 글자가 들어간 새 단어들을 찾아봅시다. 누가 먼저 찾나 보자요.》

순간 교실은 물을 뿌린듯 조용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먼저 찾으려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오늘은 내가 1등할테다.)

강범이는 조급한 마음을 앞세우며 눈을 깜빡거렸습니다. 그런데 선영이가 손을 쳐들며 용수철에 튕기듯 일어나는것이였습니다. 별처럼 반짝이는 그 애의 눈은 칠판우에 높이 모셔진 아버지장군님의 초상화를 우러르고있었습니다.

이윽고 선영이의 짜랑짜랑한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장군님, 아버지장군님.》

순간 아이들속에서 《야!》하고 감탄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예, 선영학생이 제일먼저 제일 훌륭한 단어를 찾았습니다.》

선생님이 동그스름한 얼굴에 웃음을 담고 《장군님.》하고 칠판에 큼직하게 써놓았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자리에 앉으려던 선영이가 다시 허리를 곧게 펴며 말하는것이였습니다.

《야전차! 인민군대,》

《예, 선영학생이 연거퍼 또 찾아냈습니다.》

선생님의 얼굴에 만족한 표정이 어리였습니다.

강범이는 더는 가만히 있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영이의 등에 대고 이렇게 종알댔습니다.

《요건… <인민군대>는 내가 대답하려던건데. 내걸 훔치면서…》

선영이가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습니다.

《단어두 네것이 따로 있니?》

《있잖구. <군대>는 꼭 내가 대답하구싶었단 말이야.》

선영이가 뒤를 돌아보며 입술을 비쭉 내밀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땅크병이 된다고 우쭐대더니 《군대》가 들어간 단어는 다 제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럼 네가 1등으로 일어서라마.》

《요건…》

말문이 막힌 강범이는 선영이의 쌍태머리꽁지를 탁 채주려다가 굳어졌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기때문입니다.

《자, 누가 또 찾아보겠습니까?》

《너 이따 좀 보자, 잉?》

강범이는 주먹을 슬쩍 들어보였습니다. 그런데 글쎄 선영이가 또다시 발딱 일어나 소리치는것이였습니다.

《선생님.》

강범이는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습니다.

(아이쿠, 선영이가 다 일러바치면…)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선생님이 태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습니다.

《선영학생은 벌써 네개쨉니다. 옳습니다. <선생님>이라는 단어의 <선>자에도 <ㄴ>받침이 있지요?》

강범이는 《챠ㅡ》하고 제 이마를 찰싹 때렸습니다. 여느 애들도 《장군님》,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먼저 찾아내지 못한것을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빤히 보면서도 눈뜬 소경처럼 찾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강범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군관》, 《군관》, 《군관!》

목청을 돋구어 세번씩이나 연방 불러댔습니다.

뒤따라 아이들이 승벽내기로 일어서며 소리쳤습니다.

《안경》, 《단물》, 《순대》…

《하하하.》

웃음보따리가 활 터졌습니다.

선생님도 방그레 웃음을 지었습니다.

다들 잘 찾았어요. 그중에서도 선영학생이 제일먼저 네개씩이나 찾아냈습니다. 선영학생에게 5점을 주겠습니다.

선영학생은 수학시험에서 1등을 했는데 오늘 국어공부에서도 1등입니다. 동무들도 선영학생처럼 공부를 잘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강범이는 오늘도 선영이에게 지고만셈입니다.

(에이… 정말 어처구니 없는데…)

고개를 기웃거리던 강범이의 머리에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공부가 끝나기 바쁘게 강범이는 눈금이 새겨진 자막대기를 손에 집어들었습니다. 그다음 선영이를 향해 슬그머니 몸을 굽혔습니다.

귀가에 무엇이 닿는것을 느꼈는지 선영이가 고개를 홱 돌렸습니다.

《왜 그러니?》

강범이는 벌쭉 웃었습니다.

《겁쟁이, 네 귀를 좀 재보려구 그래. 너 모르지? 우리 누나가 그러는데 왼쪽귀가 오른쪽귀보다 크면 수학골이구 작으면 국어골이래. 그런데 넌 수학두 국어두 5점만 맞지 않니. 그래서 좀 보자는거야.》

《피ㅡ 거짓말. 귀가 공부하니? 마음과 머리가 공부하지.》

《뭐, 마음과 머리? 하여튼 한번만 재보자마.》

사정하듯 하는 말에 선영이가 웃음을 참지 못하며 얌전하게 귀를 내맡겼습니다.

잠시후 강범이는 머리를 끄덕거렸습니다.

《알만 해.ㅡ 그러니까 네가 수학이랑 국어랑 다 잘하댔구나. 넌 왼쪽, 오른쪽귀가 꼭 같단 말이야.》

선영이가 허리를 꺾으며 깔깔거렸습니다.

《호호호, 엉터리, 엉터리.》

 

×

 

며칠이 지나 토요일이 되였습니다. 강범이가 기다리고 기다려온 날입니다.

선생님이 따뜻한 눈길로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학생동무들, 선생님이 엊그제 준 과제를 잊지 않았지요?》

《예.》

하나같이 맑고 챙챙한 목소리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강범이의 목소리가 류달리 크고 높았습니다. 오늘은 기어이 1등을 하리라는 배심이 든든한 모양입니다.

이틀전 선생님은 오는 토요일 그림그리기경연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집, 땅크, 물고기, 꽃, 토끼 등을 재간껏 그려오라고 했던것입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강범이는 지금도 웃음집이 흔들거립니다. 글쎄 선영이가 고개를 갸웃하고있다가 냉큼 일어서더니 이렇게 물었던것입니다.

《선생님, 자동차를 그려도 됩니까?》

《선영학생은 자동차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지요? 좋아요. 맘껏 그리세요.》

선생님이 미소를 머금고 말씀했습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강범이는 선영이를 내려다보며 《하하하.》 웃어줄번 했습니다. 땅크나 비행기라면 몰라도 기껏해서 자동차를 그리겠다니 말입니다.

(난 땅크를 그릴테야. 그래서 이번엔 꼭!…)

이렇게 마음을 다졌던 강범이입니다.

《자, 그럼 자기가 그려온 그림들을 책상에 펴놓으세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저마끔 그림들을 내놓았습니다.

인철이가 옆에 앉은 강범이의 그림을 보더니 입을 딱 벌렸습니다.

《야, 굉장하구나!》

《정말 멋있지, 잉?》

강범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선영이의 그림을 넘겨다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기미를 챘는지 선영이가 팔굽으로 그림을 가리웠습니다.

(흥, 오늘은 자신 없는 모양이지.)

강범이는 다시한번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선생님이 책상줄을 따라가며 차례로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창문쪽자리에서 아이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낚시질을 잘하는 할아버지를 자랑하던 명수가 얼굴이 꽈리빛이 되여 쩔쩔매고있었습니다.

《명수학생, 이건 무엇을 그린건가요?》

《…》

명수가 쭈밋거리자 아이들이 소곤거렸습니다.

《꿀꿀이 아니가?》

《옛날에 쓰던 단지같애.》

《동무들이 하는 소릴 들어보세요. 명수학생은 물고기를 그린것 같은데 그것을 보고도 잘 알수 없지 않아요. 대가리, 몸통, 꼬리… 이런것들을 비례가 맞게 그려야 해요. 그렇지 않구 몸통만 똥똥하게 그렸으니 되겠어요? 우리는 한장의 그림을 그려도 잘 관찰하고 성의껏 그려야 합니다.》

꿀벌 나비 찾아든 고운 꽃송이들과 아담한 여러가지 모양의 집들…

선생님은 아이들의 그림을 찬찬히 여겨보면서 잘된 그림들을 골라 손에 들었습니다.

(야, 빨리 내 차례가 되였으면.)

강범이는 몇번이나 선생님쪽을 돌아보았습니다. 이윽고 그의 차례가 되였습니다.

조용히 옆에 다가서서 그림을 내려다보시던 선생님이 입가에 손을 가져갔습니다.

《호호, 아주 굉장한 <땅크>구만요.》

강범이의 《땅크》는 정말 굉장했습니다. 굵고 길죽한 포신이 하나가 아니라 셋씩이나 달려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시뻘건 불줄기가 쭉쭉 뻗어나갔습니다. 포탑우에서는 공화국기발이 펄펄 휘날리고요. 그런데 포신들이 너무 요란하다나니 무한궤도와 바퀴들이 좀 작아보였습니다.

선생님이 그림을 집어들며 말했습니다.

《강범학생은 아버지처럼 훌륭한 땅크병이 되려는 모양이군요.》

강범이는 흐뭇해서 입이 벙글써해졌습니다.

다음은 선영이 차례였습니다. 선영이가 두팔을 살그머니 책상에서 뗐습니다.

그러자 한장의 그림이 나타났습니다. 순간 선생님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여나왔습니다.

《아니?!…》

눈처럼 하얀 종이에는 승용차 몇대가 그려져있었습니다. 령길을 달리는 무게있게 보이는 차체와 힘차게 굴러가는 바퀴들, 그가운데서도 제일 크게 그려진 차에서는 류달리 밝은 두줄기 불빛이 앞을 환히 밝히고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선영학생은 자동차를 그리겠다고 했댔군요. 정말 장해요!》

선생님이 감탄을 금치 못하며 하는 말이였습니다. 학처럼 목을 길게 뺀 강범이의 입에서 탄성이 튀여나왔습니다.

《야, 야전차! 아버지장군님께서 타신 야전차로구나!》

선생님이 그림을 높이 쳐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강범학생도 알아봤군요.

학생동무들, 선영학생은 아버지장군님께서 인민군부대들을 찾아 달리고 또 달리시는 야전차를 그렸습니다!》

《야!》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해했습니다.

잠시후 선생님이 여러장의 그림들을 칠판에 내붙였습니다. 첫자리에 선영이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의견도 물으며 매 그림들을 평가하면서 붉은 크레용으로 점수를 매겨주었습니다. 선영이의 그림도 강범이의 그림도 5점이였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정답게 바라보고나서 선영이의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여기에 잘 그린 그림들이 여러장 됩니다. 땅크, 집, 토끼, 꽃…

그러나 이렇듯 훌륭한 그림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우리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 학생들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차디찬 눈비를 가리지 않으시고 쉼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의 야전차! 착상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림은 또 얼마나 정성껏 잘 그렸습니까.

우리는 한편의 글, 한폭의 그림에도 그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럼 이 그림에 선영학생의 어떤 마음이 깃들어있는지, 어떻게 되여 이런 훌륭한 그림을 그릴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는것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아이들의 힘찬 대답이였습니다.

《선영학생.》

선생님이 사랑과 기대가 어린 눈길로 선영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선영이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가슴이 마구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고개를 갸웃하고 빨간 입술을 짓씹던 선영이는 눈길을 들어 앞에 높이 모신 아버지장군님의 초상화를 우러러보았습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자기들을 정답게 내려다보고계셨습니다.

그러자 여느때없이 들먹이던 가슴이 진정되는듯싶었습니다.

이윽고 마음을 가다듬고난 선영이는 앵두입술을 열었습니다.

 양력설이 갓 지난 어느날 저녁이였습니다.

선영이는 두손을 앞가슴에 모아잡고 눈이 동그래서 텔레비죤을 보고있었습니다. 화면에서는 지난해 정초 례성강발전소 건설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최전연초소들, 공장과 협동농장을 찾아 쉬임없이 현지지도의 먼길을 걷고 또 걸으시는 아버지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모셔지고있었습니다.

《아버지장군님!》

선영이는 입속으로 조용히 부르며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습니다.

조금 지나 화면이 어두워지더니 험산준령을 굽이굽이 감돌며 뻗은 험한 령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어둠을 밝히며 내달리는 까만 승용차들이 보였습니다.

선영이는 화면을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 저 차에 타고계시지요?》

《그럼. 우리 장군님께서 깊은 밤에도 저렇게 높고 험한 령을 넘고계시누나.》

아버지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있었습니다.

《야, 아버지장군님께서… 얼마나 힘드실가.》

선영이의 목소리도 젖어들었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더는 저런 멀고 험한 길을 걷지 않으시게 해야 할텐데…》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버지가 선영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절절하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구실을 바로해야 한다. 아버지, 어머니들은 더 많은 일을 하고 선영이는 꼭꼭 5점만 맞고…》

선영이는 금시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지난해 4월, 축복의 꽃보라속에 소학교 교정으로 들어서며 다졌던 결심대로 하지 못했던것입니다. 학습장에는 5점만이 아니라 4점도 여러개 있었으니까요.

선영이는 달리는 야전차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제부터 난 꼭 5점만 맞을래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습니다. 창밖에 어둠이 깃들자 선영이는 그만 꿈나라에서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누구인가 어깨를 흔들며 부르는것이였습니다.

《선영아, 얘, 선영아.》

선영이는 살풋이 눈을 떴습니다. 아버지의 정다운 얼굴이 내려다보고있었습니다.

《아, 아버지, 나 졸려.》

선영이는 다시 눈을 내리감았습니다.

《일어나거라, 어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전에없이 엄했습니다.

《아이, 졸려죽겠는데. 왜 그러나요?》

응석을 부리며 종알거리던 선영이는 대뜸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자기의 방학숙제장이 들려있었던것입니다.

《얘, 넌 오늘숙제를 마저 하지 못했구나.》

《그건… 래일…》

선영이는 잠기어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뭐라구?! 이래가지구야 어떻게 매일 5점을 꼭꼭 맞겠니.》

그 말에 선영이는 정신이 버쩍 들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차근차근 타이르기 시작했습니다.

《선영아, 무슨 일이나 쉽게 되는 일은 없단다. 공부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마음먹기탓이야.

아무리 힘든 수학문제라도 한번 해서 안되면 열번, 스무번이라도 달라붙으면 왜 안 풀리겠니.

너도 방송에서 들었지. 강선에서 타오른 봉화라는 말을… 강선의 로동자, 기술자아저씨들은 단 몇달만에 멋들어진 새 전기로를 일떠세웠다. 오직 아버지장군님께 기쁨을 드릴 한마음이 아니였다면 어떻게 그런 큰일을 해낼수 있었겠니.

그런데…

선영아, 너야 아버지장군님께서 달리시는 야전차를 눈물겹게 바라보며 마음 다지지 않았니.

우리가 따뜻한 방안에 앉아있는 이 시각도 우리 장군님께서 야전차에 오르시여 높고 험한 령을 넘고계실지 어찌 알겠니.

나이는 비록 어려도 이걸 잊어선 안된다.》

선영이는 잊지 못할 야전차를 눈앞에 그려보며 아버지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아버지, 알겠어요. 어떤 마음을 안고 공부해야 하는지!》

 

×

 

선영이의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아이들은 감탄어린 눈길로 그 애를 지켜보고있었습니다.

강범이의 눈은 왕방울만 해졌습니다.

(야, 그랬댔구나!)

강범이의 머리속에는 방학동안과 며칠전에 자기와 선영이 사이에 오갔던 말들이 문득문득 떠올랐습니다.

 

《넌 왜 책만 들고다니니?》

《왜 들고다니긴, 공불 하지.》

《방학인데?》

《방학이라구 너처럼 놀기만 하면 되니?》

《흥, 내 걱정은 하지두 말아.》

 

《선영아, 눈사람 만들자.》

《싫어, 숙제 마저하구.》

《그렇게 책상에만 붙어있으믄 책벌레가 돼.》

《그럼 넌 놀새가 되겠구나.》

 

《귀가 공부하니? 마음과 머리가 공부하지.》

 

강범이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되여 선영이가 꼭꼭 5점만 맞게 되였는지, 그리고 자기는 왜 1등자리에서 밀려났는지.

몰라보게 달라진 선영이가 자꾸만 돋보였습니다.

선생님의 맑고도 힘있는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동무들, 모두 들었지요.

선영학생은 아버지장군님을 그리는 마음을 안고, 아버지장군님께 기쁨 드릴 고운 마음을 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는 선영이의 그림 한쪽에 크게 새겨진 5점을 가리키며 계속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고싶어요. 이 5점은 선영학생이 아름답고 기특한 마음을 안고 피운 <5점꽃>이라고 말이예요.》

약속이라도 한듯 여기저기서 짜그르 박수소리가 터져올랐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습니다.

《동무들, 우리모두 선영학생처럼 <5점꽃>을 곱게 피우자요.

그렇게 할수 있습니까?》

《예!》

모두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강범이의 목소리가 류달리 크고 높았습니다.

선영이가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를 마주보는 강범이의 얼굴에도 웃음이 벙글거렸습니다.

 

(남포시 지사중학교 교원)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