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6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장 혁
(남철이가 난로당번인데 나왔을가?) 훈이는 걱정주머니가 또 커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배불뚝이난로가 자꾸 얼른거렸기때문이다. 그때는 전후복구건설시기여서 도시학교들에서도 난로불을 피웠다. 훈이는 지금 난로불이 걱정되여 아침 일찌기 학교로 가는 길이다. 여기저기 구름이불을 덮은 별들은 쌔근쌔근 잠들었지만 덮지 못한 별들은 추워서 바르르 떠는것 같았다. 밤새껏 내린 눈이 총탄자리가 벌둥지처럼 숭숭한 1백화점에도, 서문골목에 반나마 쌓아올린 3층벽돌집에도 흰 모자를 씌워놓았다. 집집마다 굴뚝들에서 연기가 몰몰 피여오르다가는 갑자기 놀란듯 하얀 보자기를 씌워놓은것 같은 지붕우에로 흐트러지군 한다. 눈보라가 훈이의 발목을 감았다. 발밑에서 바드득바드득 눈밟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마치 《훈이야, 훈이야, 어서 가, 어서 가.》 하는것 같았다. 그러면 그는 속으로 《그래그래. 알겠어, 알겠어.》하고 대답했다. 하늘의 별이 내려앉은듯 전기불이 환한 건설장방송에서 복구건설의 우렁찬 노래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는 노래소리에 발을 맞추었다. 땀이 나는지 동그란 토끼털귀걸이를 훌 벗어 휘휘 저으며 담차게 걷더니 솜옷단추까지 활짝 열어제꼈다. 어른들이 입던것을 줄인것인지 훌렁했다. 고무공처럼 통통한 두볼은 사과알처럼 빨갛게 얼었다. 훈이는 난로불이 잘 피고 안 피는것은 학급장인 자기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얼마전에 평양제4인민학교(당시)에 전학해오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모시고 공부하는 기쁨을 안고있는 훈이였으니까. 학교에 등교하시던 첫날 《김정일이라구 부른다. 함께 공부하자.》 라고 하시며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던 그 손길, 활달하신 몸가짐, 영채도는 두눈… 정말 훈이는 마음의 전부가 끌리였다. 장군님을 모신 학급에서 공부하는 자랑이 봄풀싹처럼 머리를 들더니 이제는 잎이 무성하게 자라 수풀을 이루었다. 그래서 훈이의 마음은 난로불에 더 가는것 같다. 학급장인 자기의 솜씨가 그 난로불에서 보이는것처럼… 전에는 학급담임인 연화선생님이 혼자 난로불을 보군 하였다. 그러던것을 장군님께서 학생들이 난로당번을 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그때 훈이는 지난날 담임선생님이 난로불을 살릴 때마다 앉아서 구경만 하던 일이 떠올라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는 학급장으로서 난로당번조직이라도 한번 본때있게 해보려고 단단히 결심했다. 그런데 어제 당번인 남철이의 잘못으로 난로가 체기를 받을줄이야! 어제 아침이였다. 훈이가 교실에 들어서니 뽀얀 내굴이 꽉 들어찼다. 난로에서는 기관차굴뚝처럼 내굴이 뭉굴뭉글 솟구쳤다. 난로밑을 들여다보니 장작이 꽉 메였다. 그제 늦게 나와 탄재를 털어내여 불을 죽인 남철이에게 벌당번으로 어제 다시 세웠는데 또 늦다나니 죽어가는 탄불을 살리겠다고 장작을 너무 많이 쓸어넣었던것이다. 에이, 정말 한심해, 난로불 하나 볼줄 모르다니, 이틀째 불을 죽이니 이건 정말… 좀 빨리 나와 불을 보면 되겠는데 당번이라는게 늦게 나오니 그렇지.… 훈이는 난로옆에 서있는 남철을 흘겨보다가 그를 밀치고 급히 장작을 꺼냈다. 그리고 난로밑에 있는 아궁이앞에 무릎을 꺾고 엎디였다. 궁둥이가 우로 솟았다. 푸ㅡ푸ㅡ 있는 힘을 다해 불었다. 그러나 불길은 오르지 않고 난로안에서 연기가 콱 몰켜나와 훈이의 코구멍과 두눈을 콕콕 찔러주었다. 《캑, 캑.》 연기를 들이마신 훈이는 기침을 연거퍼 했다. 그래도 또 푸ㅡ우 푸ㅡ우 불었다. 이젠 눈도 뜨기 힘들었다. 막 쓰렸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눈을 비비고 다시 불었다. 《빨간 불길아, 제발 좀 올라와주렴. 응?》 훈이는 시커먼 난로안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불길은 오르지 않았다. (콱, 그저!) 훈이는 난로에 주먹떡을 안겼다. 《아야야.》 손이나 아플뿐이였다. 그래서 이번엔 막대꼬치로 난로밑을 쑤시고 또 불었다. 교실안은 천정부터 연기가 차기 시작하더니 점차점차 아래로 내려왔다. 이때 아이들이 삼삼오오 교실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실에 들어서던 아이들이 연방 재채기를 《애취, 애ㅡ취.》 하였다. 어떤 애는 이마살을 찌프리고 어떤 애는 눈도 뜨지 못하였다. 제자리에 앉았다가 일어서던 키큰 아이의 머리는 연기속에 쑥 들어갔다. 그러자 그는 얼른 앉았다. 연기가 점점 낮아졌다. 어떤 애는 연기를 피해 책상우에 엎디고 어떤 애는 책상밑으로 기여들어갔다. 《숨 넘어가겠다야.》 《야, 문 좀 열라마.》 《이거 어디 눈 뜨간?》 아이들은 벅작 고아대더니 창문을 활짝 열었다. 연기는 창문을 향해 느물느물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창문을 여니 이번엔 교실이 추웠다. 아이들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목없는 사람처럼 어깨를 잔뜩 올렸다. 발이 시렸다. 두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 일어서서 뜀뛰기하는 아이, 두손을 비비는 아이, 난로주위에서 맴도는 아이, 난로밑을 들여다보는 아이… 교실은 수라장이 되였다. 이때 소년단실에 들리셨던 장군님께서 교실에 들어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분단위원장사업을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교실을 둘러보고 놀라시였다. 그러시더니 급히 난로로 다가가시였다. 어떻게 하셨는지 불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좋아라 박수까지 쳤다. 그러나 훈이는 어쩔바를 몰라했다. 전날도 남철이가 난로불을 죽였을 때 장군님께서 살리셨던것이다. 연기가 채 빠지지 않았는데 수업종이 울렸다. 깜장치마저고리를 입은 연화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벌떡벌떡 일어섰다. 고개를 별스레 쳐드는 아이, 몸을 고슴도치처럼 옹송그린 아이… 연화선생님은 동그스름한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교실안을 빙ㅡ 둘러보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손을 엉치에 갖다붙이며 차렷자세를 하였다. 연화선생님은 입술이 새파랗게 언 아이들을 보더니 창문을 닫았다. 훈이도 속이 막 떨려왔다. 손이 시려 주머니에 넣고싶었지만 그럴수없어 주먹을 꼭 쥐였다. 새별같이 반짝이던 아이들의 눈에서 연기때문에 눈물이 솟아올랐다. 《앉으세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교실안에 정답게 퍼졌다. 연화선생님은 난로로 다가가 뚜껑을 열어보더니 훈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훈이는 그냥 앉아있을수 없어 발딱 일어섰다. 《선생님, 남철이가 오늘 또 늦었습니다. 당번이라는게 아직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훈이는 남철이를 힐끗 돌아보고 털썩 자리에 앉았다. 연화선생님은 아무말없이 남철이를 보면서 칠판으로 돌아섰다. 《아무래도 선생님이 다시 난로불을 봐야겠군요.》 연화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자 남철은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다. 《아, 아닙니다. 선생님,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그러자 연화선생님은 머리만 끄덕이며 두손을 한참 주무르더니 칠판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아니?! 방실방실 웃는것처럼 곱게곱게 쓰던 글자는 어디 가고 꼬부랑못이 나타나지 않는가. 훈이는 눈이 동그래졌다. (선생님도 손이 시린게구나.…) 훈이는 머리를 숙이였다. 학급장인 자기 잘못으로만 생각되여 얼른 장군님을 돌아보았다. 장군님께서도 근심어린 눈길로 칠판을 바라보고계시였다. 훈이는 고추눈으로 남철이를 쏘아보았다. (에이, 두고보자.) 훈이는 입술을 꽉 깨물며 속으로 별렀다. (한 열흘쯤 곱배기 시킬테다.) 아이들은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 학습장에 쓴 글자들이 모두 오리발이 되였던것이다. 한참 지나니 연기도 사라지고 난로안에서 뿌직뿌직 석탄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훈이의 마음을 더 흔들어놓았다. 훈이는 남철이를 쏘아보았다. 왜 난로불 하나 제대로 피우지 못하여 장군님께서 매일 아침 불을 보게 하는가고 따지고싶었다. 그러나 수업시간이여서 말도 못하고 그저 씩씩거리기만 하였다. 수업이 끝나자 장군님께서 분단위원장사업일지를 드시고 교실을 나서시였다. 이때라고 생각한 훈이는 교탁에 나서서 아이들을 다 제자리에 앉히였다. 남철이의 버릇을 한번 단단히 떼주리라 마음먹었다. 남철은 머리를 푹 숙이고있었다. 《남철아, 너 좀 일어나라.》 훈이가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교실안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남철이는 머리만 더 숙일뿐 움직이지 않았다. 《야ㅡ 일어나라!》 훈이는 남철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다시한번 소리쳤다. 《빨리 일어나라마.》 《일어나라마.》 교실안의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말했다. 《넌 왜 난로당번이라는게 아침 일찍 나오지 못하니? 그러니까 계속 불을 죽이지? 좋아, 넌 불을 잘 살릴 때까지 열흘동안 곱배기야.》 훈이는 남철이가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러자 남철은 발딱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구운 가재처럼 되였다. 피빛의 얼굴은 점차 해쓱해지더니 눈시울이 바르르 떨리고 코방울이 벌름거렸다. 《저…》 파르르 떨리는 눈섭에 눈물이 한방울 매달려 번쩍거리다가 뺨으로 흘러내렸다. 《저… 네가 한번 난로당번을 서보려마, 난 아무리 해도 자꾸 불이…》 《뭐야? 야, 남철아. 학급장이 뭐 난로당번이나 대신 서는 아이가? 너 말 다핸?》 남철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말 다했다! 내가 뭐 우정 불을 죽였니?》 《그럼 좀 일찌기 나오려마. 늦으니까 그러지. 그러니 불을 우정 죽인거나 같지 뭐!》 《뭐야?! 내가 우정 불을 죽여? 난 우리 어머니가 앓아서 그래, 씨ㅡ》 남철은 털썩 자리에 앉더니 책보를 싸가지고 출입문쪽으로 씽 나갔다. 《야ㅡ 서라.》 훈이가 먼저 출입문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남철이가 훈이앞에 마주섰다. 《못 비키겠다. 너 정말 다야?》 《다야, 왜?》 《뭐야?!》 훈이는 남철이의 어깨를 잡아챘다. 그러자 남철은 훈이의 손을 탁 치고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야, 남철아ㅡ 남철아ㅡ》 훈이가 뒤따랐으나 남철은 벌써 운동장에 나서고있었다. 이때 장군님께서 교실로 들어서시다가 울면서 운동장을 달려가는 남철이를 보시였다.… 생각깊으신 눈길로 교실에 들어서시던 장군님의 그 모습이 훈이의 눈앞에 자꾸 떠올랐다. 훈이는 어제 울면서 달아난 남철이가 오늘 난로당번을 안 나올것이 뻔하기때문에 이렇게 아침 일찌기 학교로 가는것이다. (쳇, 학급장이 뭐 난로불이나 대신 봐주는 아이야?) 훈이는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어제 남철이를 줴박지 못한것이 분했다. 두고보자. 오늘은 버릇을 떼고야말겠다. 훈이는 반달음쳐 학교운동장에 들어섰다. 학교청사를 보니 교실마다 창문으로 굴뚝들이 삐죽삐죽 나온것이 어슴푸레 보이였다. 마치 군함에 있는 대포같았다. 당장 꽝 하고 포알들이 나올것 같았다. 자기 교실 창가로 눈길을 돌리던 훈이는 깜짝 놀랐다. 교실에 벌써 불이 켜진것이였다! 창문을 뚫고 삐죽이 나온 양철통으로는 흰 연기가 뭉클뭉클 솟구치고… 훈이의 얼굴에 기쁨의 물결이 찰랑거렸다. 벌쭉 웃고난 그는 걸음을 다그쳤다. 내가 어제 남철이에게 너무했어. 괜히… 아니야. 내가 어제 꽥 했으니까 나왔을지도 몰라. 아이들은 그저 꽉 눌러놔야 돼… 어쨌든 남철이가 나온것이 고마왔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 나왔단 말야? 어머니가 앓는다더니…) 훈이의 가슴속에서는 기쁨의 물결과 함께 의문의 물결이 번갈아가며 처절썩거렸다. 훈이는 교실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었다. 난로 저쪽에서 불을 피우는 남철이의 잔등이 보였다. 난로는 마치 어마어마하게 큰 도토리속을 다 파내고 세워놓은것 같기도 하고 자그마한 김장독을 세워놓은것 같기도 하였다. 훈이는 난로로 다가갔다. 《남철아, 수고했어. 정말… 어젠 안됐어.…》 그러나 그는 머리를 들지 않고 난로밑만 들여다보았다. 《아, 이젠 좀 쉬라는데, 내가 할테니. 자 어서 빨리.》 훈이는 그의 잔등을 툭 쳤다. 《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에 훈이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버리고말았다. 《아니?!》 난로불을 보시는분은 뜻밖에도 장군님이시였다. 《어떻게 분단위원장동무가?!》 훈이는 입을 딱 벌리며 어쩔줄 몰라했다. 추운 날씨에 혼자서 석탄과 흙을 파오시고 물을 길어오시고 재를 털어내셨을 장군님! 훈이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또 학급장구실을 제대로 못했구나.) 훈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장군님께서 웃으시며 허리를 펴시였다. 《오ㅡ 훈이구나. 마침 잘 왔어. 책임성 높은 학급장이 다르거던. 하하…》 《아, 아니, 저…》 훈이는 손을 저으며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이마우로 흘러내린 몇오리의 머리카락, 별빛같이 반짝이는 눈, 광채가 뿜어져나오는 두눈밑에서 시원스레 웃으시는 입, 팔소매를 걷어올려붙이고 단추를 열어제낀 수수한 대마직학생복과 분단위원장열성자표식… 그 모든것은 훈이를 더욱 당황하게 하였다. 《난 남철인줄…》 《아, 됐어, 됐어.》 장군님께서는 다시 난로쪽으로 돌아서시였다. 훈이는 급히 가방을 책상에 가져다놓았다. 장군님의 책상우에는 풀색책보가 놓여있었다. (분단위원장동무는 왜 가방을 가지고다니지 않고 책보를 가지고다닐가?) 훈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난로로 다가갔다. 그의 입안에서는 언제부터 물어보고싶었던 말이 맴돌았다. 그는 왜 가방을 들고다니지 않고 책보를 가지고다니시는가 물어보았다. 장군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더니 없어서 그런다고 하시였다. 훈이는 설마 그럴수 있겠는가고 장군님을 쳐다보았다.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가방이 있다고 해도 나는 들고다닐수 없어. 아이들이 다 못 들고다니는데 내 마음이 편하겠니? 차라리 보자기를 가지고다니는것이 나는 더 좋아.》 훈이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기는 학급장이라고 우쭐거리면서 학급에서 혼자 가방을 들고다녔던것이다. 아버지에게 졸라서… 훈이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로를 보았다. 난로옆에는 통나무를 잘게 팬 장작과 불쏘시개가 착착 쌓여있었다. 난로아궁이앞에는 금방 털어낸 재가 무둑히 쌓여있고 거기에 물을 뿌렸는지 김이 몰몰 올랐다. (남철인 오늘도 또 늦게 나오는구나.… 아니, 안 나올지도 몰라. 오늘은 가만두지 않을테다.) 훈이는 급히 난로앞에 앉았다. 《가만… 내가 할게. 분단위원장동문…》 훈이는 마음이 조급해나서 옆에 있는 장작을 얼른 난로밑에 넣었다. 《아니, 훈이야. 또 체하겠어.》 장군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훈이를 바라보시였다. 《이젠 석탄을 넣어야 해.》 그러자 훈이는 부삽에 석탄을 무둑히 떠서 난로에 넣으려고 닁큼 들었다. 《자, 검은 석탄아, 어서 빨간 불길로 되여주렴. 응?》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난로안에 석탄을 막 넣으려고 하였다. 《하하… 넌 정말 웃기는구나. 석탄과 말까지 하구… 그런데 가만.》 장군님께서 부삽자루를 잡으시였다. 《불에도 숨이 있어.》 《뭐? 숨? 불에 무슨 목숨이… 하하… 분단위원장동문…》 《불도 사람처럼 자기를 곱다고 해야 열을 잘 내주거던.…》 그러자 훈이는 난로안을 들여다보며 장난기어린 투로 말했다. 《불길아, 불길아. 너 정말 곱구나. 정말 곱구나. 어서 피여나라마. 하하…》 《하하하…》 장군님께서도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훈이는 걱정어린 눈길로 난로안의 석탄덩이를 바라보았다. 수수떡같은것이 살아날것 같지 않았다. 《불이 살수 있겠나?》 그는 걱정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죽긴 왜? 훈이가 이자 곱다고 했는데?》 장군님께서 빙그레 웃으시였다. 그러시더니 훈이가 부삽에 가득 담았던 석탄을 탄통에 던지시고 주먹만 하게 다시 이기시여 난로안에 서너번 떠넣으시였다. 칙ㅡ칙ㅡ 물김이 올랐다. 《지금은 불담이 약해. 이런 땐 밑으로 덧불을 때야 하거던.》 장군님께서 난로뚜껑을 덮으시더니 불쏘시개를 아궁이에 넣으시고 불을 붙이시였다. 빨간 불길이 날름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우에 장작을 한가치씩 올려놓으시였다. 불길은 점점 세게 오르기 시작했다. 훈이는 입을 하 벌리고 재미나게 구경하였다. 정말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였다. 장작의 빨간 불길이 석탄을 달구기 시작했다. 불길은 난로안에서 활ㅡ활ㅡ 소리까지 냈다. 장군님께서 난로뚜껑을 열고 석탄을 또 떠넣으시였다. 《자, 됐어. 이제 이 왕도토리(난로)도 빨간 치마를 입을거야.》 장군님께서는 난로뚜껑을 닫으시더니 탄재를 바께쯔에 담으려고 하시였다. 그러나 훈이는 얼른 부삽을 빼앗아 담았다. 장군님께서 먼저 바께쯔를 드시였다. 훈이는 바께쯔를 맞들어 탄재를 내다버리고 들어왔다. 훈이가 반바께쯔정도 남은 탄재를 마저 담자 장군님께서 얼른 바께쯔를 드시였다. 《아, 내가…》훈이가 급히 바께쯔손잡이를 잡았다. 《됐어, 됐어. 무겁지도 않은데 뭐.》 장군님께서는 훈이의 손을 밀어내시고 문을 나서시였다. 훈이는 두눈을 슴벅거렸다. 동무들을 위한 장군님의 뜨거운 마음이 이랑이랑 물결쳐왔던것이다. 그럴수록 남철이의 생각이 더 떠올랐다. (남철이… 그 앤 정말…) 훈이는 장군님께서 들어오시자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고야말았다. 《분단위원장동무, 그런데… 남철인…》 훈이는 남철이의 잘못이 꼭 자기때문인것 같았다. 《내가 남철이의 버릇을 뚝 떼놓고야말겠어.》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의 빨간 불길만 바라보시였다. 배불뚝이 난로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장군님께서 훈이에게 돌아서시였다. 《난 저 빨간 불길이 아이들의 웃는 얼굴같애. 아마 선생님도 오늘은 글씨를 곱게 쓰실거야. 우리도 공부가 잘되고… 동무들의 마음이 합쳐지고… 그럼 5점 맞구…》 장군님께서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난 그러니 동무들이 공부를 잘 할수만 있다면 매일이라두 난로당번을 서고싶어, 매일이라두.》 《매일이라두?!》 훈이는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쿵ㅡ 하고 울리는것만 같았다. (그래서였구나!) 난로당번을 처음 짤 때였다. 연화선생님과 훈이는 장군님을 당번에 넣지 않았다. 그때 장군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귀가에 쟁쟁 울려왔다. 《선생님, 저라고 왜 당번을 서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저도 난로당번을 서겠습니다. 동무들을 위해서…》 훈이는 그 말씀이 떠올라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분단위원장동무!》 그는 장군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래서 오늘은 남철이대신 이렇게…》 그의 두눈에 물기가 핑 어렸다. 장군님께서는 교탁의 먼지를 닦으시며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러면 왜 우리 교실 난로불이 제대로 피지 못했을가. 그건 다 동무들을 위해, 학급을 위해 자기를 바치려는 마음들이 모자랐기때문이라구 생각해. 그래서 남철이두…》 장군님의 말씀은 훈이의 가슴을 쿵쿵 울려주었다. 훈이의 가슴속에서는 그 무엇인가 뜨거운것이 꽉 차오르는것 같았다. (난… 난… 그저 남철이를 욱박지르기만 했어. 또 학급장이라고 난로당번을 서지도 않구…) 훈이는 머리를 들었다. 방안은 고요한 정적속에 잠겼다. 창유리로는 물방울들이 소리없이 도르륵도르륵 굴러내렸다. 뿌지직ㅡ 석탄타는 소리가 조용한 교실에 울렸다. 이때였다. 《흑…》 문가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잔잔한 호수가에 돌이 떨어져 잔파도가 퍼지듯 정적을 깨뜨리며 교실에 퍼져갔다. 《아니?》 훈이는 의아하여 머리를 돌렸다. 등에 불살개나무를 한짐 진 남철이가 서있는것이 아닌가. 남철은 머리를 들지 못했다. 훈이는 아니꼬운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이제야 나와? 체ㅡ) 이런 생각을 한 훈이는 《너때문에 분단위원장동무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것을 참았다. 남철이의 떠듬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분단위원장동무, 내가… 내가…》 장군님께서는 남철이를 반기시였다. 《남철이구나. 어서 여기 와 불을 쪼이렴. 춥겠구나. 어머닌 좀 어떻니?》 장군님께서는 남철이의 손을 잡아이끄시였다. 《나때문에…》 남철이의 두눈에 눈물이 반짝이였다. 《어머닌 분단위원장동무가 가져온 약을 잡숫구 일어나셨어. 오늘 아침엔 난로불을 꼭 살리라구 불살개나무까지 패주었어. 좀더 일찌기 온다는게 이 나무때문에…》 《응?》
(분단위원장동무가 준 약이라니?!) 남철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어머닌… 정말 놀랐어… 분단위원장동무가 우리 집에 찾아올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하면서…》 남철이는 머리를 들었다. 《어제 저녁 분단위원장동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난… 난…》 훈이는 모든것을 짐작하였다. (그러니 분단위원장동무가 어제밤 남철이네 집에까지?) 훈이는 가슴이 후더워오르기 시작했다. 《분단위원장동무가 어머니 병치료를 잘 하라고 하면서 나대신 난로당번을 설테니 걱정말라고 할 땐 정말… 정말… 흑…》 남철은 눈굽을 적셨다. 《정말 잘못했어. 사실 난 아침에 자꾸 늦잠을 자서… 꼭 고치겠어. 이제부턴…》 축축히 젖은 남철이의 두눈이 물먹은 머루알같이 반짝거렸다. 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남철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였다. 《됐어, 됐어. 알았으면 됐어. 우리가 있는데 어머니 병치료나 잘해줄게지 왜 나왔니?》 훈이는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 그런데 난… 난…) 훈이는 머리를 들었다. 《분단위원장동무, 내가… 내가… 잘못했어.》 이 말에 남철이는 눈이 커졌다. 《사실 난… 난… 오늘 아침 내가 불을 살릴 생각은 못하구… 남철이의 버릇을 떼주겠다구… 만약 아침에 남철이가 난로당번 나오지 않았으면 집에 찾아가려구…》 훈이는 속생각까지 다 털어놓았다. 《분단위원장동무, 내가 꼭…》 《훈이야!》 장군님께서는 두 아이의 손을 꼭 잡으시였다. 《훈이야, 남철아.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구나. 난로당번을 서는가 안 서는가가 문제가 아니야. 동무들을 위한 귀중한 마음이 있는가 하는거지. 오늘 너희들은 교실의 난로불보다 더 뜨거운 마음의 난로불을 피웠어.》 훈이는 장군님의 말씀이 저 멀리 하늘에서 들려오는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의 난로불?!》 두 아이의 목소리는 감격에 젖어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두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자, 그럼 우리 셋이서 청소를 깨끗이 하자꾸나.》 머리를 끄덕이는 그들의 두눈은 축축했다. 장군님께서는 다시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분단동무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니. 난 우리 학급, 아니 우리 학교, 온 나라 아이들을 위한 이런 난로불을 계속 피우고싶어!》 훈이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전기라도 흐르는듯 찌르르했다. 훈이는 저도 모르게 난로불에 눈길을 보냈다. 빨간 불길, 파란 불길이 너울거리며 솟구쳐올랐다. 교실은 점점 훈훈해지기 시작하였다. 훈이에게는 그 불길이 장군님의 동무들에 대한 사랑의 불길, 동무들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뜨거운 마음의 불길로 보이였다. 훈이는 가슴을 뒤잡아흔드는 격정을 안고 마음속으로 웨쳤다. (나도 난로당번을 설테다! 래일부터 책보를 가지고 다닐래.) 창밖에서는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훈이는 훤히 밝아오는 새벽하늘에서 팔랑거리며 춤추는 눈송이들을 바라보았다. 눈송이들은 이 땅을 포근히 덮어주고있었다.
주체83(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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