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6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반 상 서
아침 6시, 일어날 시간이 가까와오는 이 시각 영련이는 잔등에 온돌의 따스함을 느끼며 꿈을 꾸고있었습니다. 《여기 반장동무네 량주가 종축장일도 잘할뿐아니라 집에서도 토끼를 많이 기르고있다는데 보고갑시다.》 눈보라가 휘뿌려진 언덕길을 걸어내리며 하시는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의 말씀이시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올리는 인사에 이어 영련이와 영옥이의 인사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이름이랑 나이랑 알아보시고나서 물으시였습니다. 《그래 최우등을 했나?》 《옛, 저도 최우등을 했고 영옥이도 최우등을 했습니다.》 영련이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또랑또랑 말씀올리였습니다. 《아주 좋아. 학생은 우선 공부를 잘해야 해. 공부 잘하는 학생이 제일이야.》 《아버지장군님! 그 말씀을 꼭 명심하겠습니다.》… 영련이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소리쳐부르며 잠을 깨였습니다. 가슴이 울렁이였습니다. 마치도 아버지장군님께서 찾아오셨던 그날처럼 또다시 눈앞에 뵈온것 같았습니다. 영련이는 옆에서 자고있는 동생 영옥이가 깨여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날 온 가족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이 모셔져있는 벽앞에 가섰습니다. 이제는 벌써 일년전 일이지만 그때 일이 정녕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니, 날이 갈수록 더욱더 새롭게 그날이 생각됩니다. 그래서 방금전에도 눈앞에 선히 보이는 꿈을 꾸었는가 봅니다. 부엌에서 주고받는 아버지,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보, 내가 먼저 나가니 당신도 인차 뒤따라 나오우.》 《예ㅡ》 어머니의 대답에 이어 문 여닫기는 소리가 났습니다. 영련이는 (농장 토끼종축장에서 바쁜 일이 생긴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피뜩 들며 마음이 조급해났습니다. 농장일로 바쁜 부모님들을 빨리 도와야 했습니다. 농장에서 새해공동사설을 받들고 결의모임을 가진 후 영련이네도 집에서 가족모임을 하였습니다. 그 모임에서 아버지, 어머니는 온 가족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셨던 영광을 지닌 사람들답게 새로운 혁명적대고조를 일으키기 위한 올해의 전투에서도 농장의 앞장에 서자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대로 하지 못하고있는것이였습니다. 영련이는 부엌으로 나갔습니다. 어머니가 소랭이를 앞에 놓고 감자를 깎고있었습니다. 《어머니, 부엌일은 저한테 맡기고 어서 가보세요.》 어머니옆에 가앉은 영련이는 감자칼을 쥐고있는 어머니의 손을 따뜻이 잡았습니다. 토끼를 잘 길러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 아버지, 어머니! 정말이지 한없이 귀중한 부모님들이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일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애쓰고있는 영련이였습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안됐다, 영련아. 너한테 이렇게 아침밥까지 시켜놔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우리 집이야 다른 집하고 다르지 않나요.》 어머니는 맏딸의 말과 행동이 대견스러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네 말이 맞다. 우리는 항상 그런 자각을 안고 살아야 한다.》 영련이는 감자를 썰어 국을 안쳐놓고 토끼우리로 갔습니다. 토끼들을 돌보아야 했던것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토끼들에 대해서는 자기들 자매가 맡아 관리하기로 했던것입니다. 영련이는 비자루로 우리안을 쓸어내며 토끼들을 유심히 관찰해보았습니다. 자기 동무가 먹는 풀을 잘라먹지도 않으면서 우리 한옆에 옹크리고 앉아있는것은 먹은것이 잘 소화되지 않는 토끼이고 거불거불 조는것은 이미 병이 깊어져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할 토끼입니다. 엄지토끼들에 한해서는 가슴의 털을 뽑거나 봄날의 제비들처럼 벼짚이나 검불을 물고 이리뛰고 저리뛰며 안절부절하는 토끼를 찾아봐야 합니다. 새끼낳이준비를 하기때문입니다. 영련이는 우글대는 토끼들을 정신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토끼들이 사랑스러웠습니다. 토끼들이 어느 때가 제일 고운가 하면 그것은 서로 앞다투어 열심히 먹어댈 때입니다. 이때는 남의 주둥이에서 풀을 뽑아내여 호물대는 모양새도 곱고 오또기처럼 앉은 모양새도 재롱스럽습니다. 토끼에 정신팔고있던 영련이는 문득 정신이 펄쩍 들었습니다. 동생 영옥이를 깨우는것을 잊고있었던것입니다. 가족모임에서 언니와 함께 토끼관리를 할것을 결의한 영옥이였습니다. 이제 깨나면 늦게 깨웠다고 투정질할것입니다. 영련이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습니다.
2
공부를 끝내고 학교정문을 나선 영련이는 눈부시게 쏟아지는 해빛에 눈이 시려 이마우에 손채양을 하고 산과 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봄볕은 나날이 따스해지고있었습니다. 하여 엊그제까지만 해도 작고 뿌옇던 사라구며 냉이잎들이 오늘에는 톱날형의 가생이를 살쿠고 반질반질 윤기를 내였습니다. 영련이와 영옥이는 우정 최뚝으로 길을 잡아 집으로 가며 토끼풀을 뜯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 봄풀들을 뜯어다주면 겨우내 즙이 없는 건사료만을 먹던 토끼들이 여간만 좋아하지 않을것입니다. 영련이는 앞발을 마주비비며 호물대는 토끼들의 재롱스러운 모습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습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얼마 가지 못하였습니다. 풀뜯기가 점점 힘들어졌던것입니다. 여기저기 눈에 띄우는 사라구며 냉이며 메싹들은 많았지만 워낙 연하고 작은 봄싹들이여서 부지런히 뜯는것에 비해 량은 좀처럼 불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토끼들을 위해서는 풀을 하나라도 더 뜯어야 했습니다. 마을쪽에서는 어느새 점심을 먹고나와 줄넘기놀이를 시작한 애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영련이와 영옥이는 재미나게 노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영옥이가 시들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언니야, 배고프다야.》 영련이도 배가 고팠습니다. 그렇지만 토끼풀은 지금 꼭 하루량을 뜯어야만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 이제 그만하고 집으로 간다면 점심을 먹고 또 풀 뜯으러 나와야 하고 그러면 공부할 시간을 잘리우게 되는것입니다. 공부도 하고 토끼도 키우고… 이것은 어느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할 자기들의 임무였습니다. 영련이는 슬쩍 물었습니다. 《영옥아, 너 지금 참을수 없게 배가 고프니?》 《그렇진 않아.》 《그러면 좀더 참자. 참을수 있지?》 《응.》 《야, 영옥아. 네앞에 있는 사라구가 꽤나 크구나야. 너 왜 그걸 보지 못하니?》 《봤댔어. 언니앞에도 있구나, 뭐.》 《정말!》 이렇게 서로 흥을 돋구어주며 영련이와 영옥이는 토끼풀을 한구럭씩 채워가지고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유치원앞 공지에서는 영련이와 한학급 동무인 정금이가 주동이 되여 여러 애들과 줄넘기놀이를 재미나게 하고있었습니다. 줄넘기놀이로 얼굴이 빨개진 정금이가 영련이의 토끼풀구럭에 눈길을 주며 물었습니다. 《토끼풀 뜯어오니? 점심도 안 먹고?》 《응, 넌 안 뜯니?》 《어제 한번 뜯어보았는데 아직은… 힘들더구나. 그래서 며칠 더 있다가 뜯기로 했어.》 《…》 《밥먹고 인차 나올래?》 《그럴새 없을것 같애.》 영련이는 더 긴말을 하지 않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뒤따라서던 동생이 종알거렸습니다. 《저 언닌 놀부야.》 정금이를 보고 하는 말이였습니다. 《놀부! 언니보고 놀부?…》 영련이는 속이 좋지 않아졌습니다. 정금이는 솔직하고 마음씨가 착한 애입니다. 그런데 어린 동생이 그런 정금이한테 함부로 나쁜 말을 갖다붙이고있는것입니다. 그냥 들어넘길수가 없었습니다. 영련이는 은근히 캐물었습니다. 《너 놀부라는 말이 어디서부터 나온것인지 알기나 하고 그런 말을 하니?》 《알아. 옛말 <흥부와 놀부>에서 나오는 심보 고약한 놈이지 뭐.》 《그래 그 놀부가 어떻게 놀던?》 《심술꾸러기이고 욕심쟁이야. 저 혼자만 잘 먹고 잘살겠다고 친동생도 몰라보는 나쁜 놈이야.》 《응, 알긴 아는구나. 그래 정금이가 그런 놀부야?》 《…》 영옥이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영련이는 물론 동생이 정금이를 보고 진짜 《놀부》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 아님을 잘 알고있었습니다. 자기들은 점심도 제때에 못 먹으면서 토끼풀을 하고있는데 마음 편히 놀고만 있는 정금이가 눈에 거슬렸기때문에 한 말이였던것입니다. 그렇지만 영련이는 자기의 그런 속생각은 덮어두고 오금을 박아 말했습니다. 《영옥아, 제 눈에 거슬린다고 해서 언니들보고 아무 말이나 탕탕 하는건 좋지 않은거야. 그러니 앞으로는 주의해.》 영옥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영련이도 그 대답을 더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3
저녁이 가까울무렵 정금이가 찾아왔습니다. 정금이는 걱정에 잠겨 말했습니다. 《영련아, 우리 집에 빨리 좀 가자. 갓 낳은 토끼새끼들이 다 죽어가고있어.》 《뭐라구?! 어서 가보자!》 영련이는 보던 소설책을 접어놓고 성큼 일어섰습니다. 《전번 엄지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이번 엄지는 어떻게 된 일인지 털도 뽑지 않고 차거운 맨 바닥에 그냥 새끼들을 낳았구나. 그래서 갓 낳은 새끼들이 사방으로 기여가서 얼어죽어가고있어. 일곱마리중 지금 숨이 붙어있는건 두마리뿐이야. 그것도 살지말지야. 새끼건사도 할줄 모르는 미물같은것.》 옆에서 따라오며 하는 정금이의 말이였습니다. 정말 정금이네 집에 도착해보니 엄지는 지금에야 가슴의 털을 입으로 물어뽑고있었습니다. 털을 얼마나 사정없이 뽑고있는지 가슴의 살이 벌겋게 드러났습니다. 정금이는 숨쉬는 두마리만 그 털속에 묻어놓고 숨기운이 없는 다섯마리는 맨몸뚱이 그대로 우리우에 나란히 올려놓고있었습니다. 《너두 참, 새끼들을 이렇게 내버려두면 어떻게 하니?》 영련이는 다섯마리의 새끼들을 손안에 한꺼번에 감싸쥐며 재촉했습니다. 《빨리 따뜻한 물을 한 소랭이 떠와.》 영련이는 다섯마리중에서 세마리를 갈라내여 한 손안에는 두마리를, 다른 손안에는 한마리를 살며시 감싸쥔 다음 소랭이안의 따뜻한 물속에 잠그었습니다. 《너도 어서 저 두마리를 나처럼 해. 숨은 쉴수 있게 코까지는 담그지 말고.》 《이렇게 하면 죽었던것이 살아나니?》 정금이도 서둘러 영련이처럼 하며 눈이 둥그래서 물었습니다. 《완전히 죽지 않았으면 살아나.》 그 다음부터 영련이와 정금이는 물속에 잠그고있는 토끼들만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마나, 왼쪽것이 옴지락거린다야. 이것 봐라, 오른쪽것도…》 이윽해서 정금이가 먼저 환성을 올렸습니다. 《거참 놀랍구나. 죽어가던 새끼토끼들을 그렇게 살려내는걸 난 정말 처음 보는구나.》 방금 농장일을 끝내고와서 지켜보고있던 정금이 어머니는 희한해 했습니다. 영련이는 방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한테서 배웠어요.》 영련이는 그렇게 살린 토끼들을 마른 천으로 깨끗이 닦아내고 따뜻한 구들우에 놓았습니다. 그다음 엄지가 뽑아놓은 털로 포근한 《요람》을 만들고 그안에 일곱마리의 새끼들을 모두 넣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엄지가 새끼들을 잘 돌볼거야.》 일을 끝내고나서 정금이네 집을 나서던 영련이는 구경삼아 젖떼기를 금방 끝냈다는 새끼토끼우리로 갔습니다. 아홉마리의 새끼들이 구석짬에 오구구 모여있었습니다. 상태가 신통치 않아보였습니다. 영련이는 물었습니다. 《이 새끼토끼들은 왜서인지 주접이 들었구나.》 《글쎄 모르겠어. 병이 든것 같지는 않은데 오늘 아침부터 별나게 굴어.》 《먹이를 줘봤니?》 《줬지 뭐, 지금도 있지 않니.》 정금이는 토끼들한테 겨우내 먹이고있는 건사료가 들어있는 먹이그릇을 턱짓했습니다. 《어제도 이 건사료를 먹였니?》 《어제는 내가 뜯어왔던 냉이랑 사라구랑 먹였댔어.》 《그런데 오늘은 그런 새풀이 없구나.》 《응, 어제 해보니까 아직은 봄풀뜯기가 힘들더구나. 그래서 오늘은 뜯지 않았어.》 영련이는 낮에 유치원앞공지에서 줄넘기를 하며 노는 정금이를 만났던 일이 생각키웠습니다. 그때 영옥이는 토끼풀도 뜯지 않고 놀기만 하는 정금이를 보고 《놀부》라고 했었고 자기는 언니들을 대하는 동생의 버릇없는 태도가 거슬려 꾸짖었댔습니다. 그랬었지만 지금은 영련이도 새끼토끼들이 먹이를 잘 먹지 않고있는데도 심상해있는 정금이가 달리 보였습니다. 영련이는 저도 모르게 정금이를 탓했습니다. 《너두 참, 힘들더라도 오늘 봄풀을 뜯어왔어야 했을걸.》 정금이는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영련이는 정금이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있음을 알고 조용히 말을 이었습니다. 《정금아, 새끼토끼들은 응석꾸러기여서 한번 봄풀맛을 보며는 다른 풀을 더 먹으려하지 않는단다. 말하자면 투정질하며 밸을 쓰는거지.》 《으ㅡ응, 정말 그렇겠구나.》 정금이는 그제야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영련이는 창문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느새 날은 새까매지고있었습니다. 이제 들에 나가 봄풀을 뜯는다는것은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밤은 이 새끼토끼들이 굶겠구나.) 영련이는 아홉마리의 새끼토끼들이 하루밤을 굶게 된것이 가슴아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정들에서도 많이 키워야 한다고 하신 토끼들인것입니다. 영련이는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오면서 영옥이와 함께 집에 뜯어다놓은 봄풀에로 생각이 달리였습니다. 사라구며 냉이며 새끼토끼들한텐 보약과 같은 봄풀이였습니다. 그 풀이면 정금이네 새끼토끼들도 굶기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영련이는 그 풀을 나누어가져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잠간만 기다려. 내 얼른 집에 갔다올게. 우리 집에는 오늘 뜯은 봄풀이 있거던.》 《그건 너네 새끼토끼들한테 먹일거겠는데…》 영련이와 영옥이가 그 풀을 어떻게 뜯었으리라는것을 잘 알고있는 정금이는 몹시 미안해했습니다. 《일없어. 나누어먹이지 뭐.》 영련이는 스스럼없이 방그레 웃어보이며 정금이네 집을 나섰습니다.
4
영옥이는 새끼토끼들이 봄풀잎을 호물호물 먹는 모양을 재미나게 지켜보고있었습니다. 풀이 아직 절반가량 남아있었습니다. 다행이였습니다. 《영옥아, 봄풀은 좀 아껴서 먹여야겠어.》 영련이는 남은 풀을 절반 갈라 다래끼에 담으며 말했습니다. 《아니, 언니. 왜 그러나?》 영옥이가 눈이 둥그래서 보았습니다. 《응, 정금이네 새끼토끼들이 굶고있어서 그래.》 《그래서 가져다줄려구?》 영옥이의 얼굴이 대번에 찡그려졌습니다. 《응.》 영련이는 동생의 얼굴표정을 못 본척 했습니다. 그런데 영옥이가 패뜩해서 도달거렸습니다. 《흥, 정금언니네 토끼하구 우리 토끼하구 무슨 상관이람.》 《뭐라구?!》 영련이는 풀을 담던 손을 멈추었습니다. 굶고있는 새끼토끼들을 놓고 《우리 토끼》와 《남의 토끼》를 갈라보겠다는것이 놀라왔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영옥이가 그런 말을 할만도 했습니다. 다른것과 마찬가지로 토끼도 역시 《내것, 네것》이 따로 있는것이였습니다. 영련이는 영옥이를 타일렀습니다. 《영옥아, 지금 정금이네 새끼토끼들이 굶고있으니 어쩌겠니, 서로 나누어먹여야지. 참, 아버지도 우리 집이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앞장에서 들고나가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니. 너도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그건 알아. 하지만 그러면 우리 집 토끼들이 배곯는데두.》 영옥이는 그냥 엇드레질을 하였습니다. 영련이는 그만 성을 내며 내쏘았습니다. 《됐다됐어. 너하구는 정말 말할 재미가 없구나. 맹꽁이같은거.》 《아니, 뭐야? 나도… 나도 토끼를 더 잘 기르려구…》 영옥이의 눈가에 눈물이 가랑가랑 고여올랐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련이는 풀다래끼를 들고 문밖으로 힝 나섰습니다. 밤공기가 차가왔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영련이는 한결 속이 풀리고 힘이 솟았습니다.
5
《어머니, 이제는 새끼토끼들이 다 살아났지요?》 영련이는 새끼토끼들을 한마리한마리 들어보는 어머니한테 웃음어린 눈길을 던졌습니다. 늦도록 들어오지 않는 딸이 걱정되여 정금이네 집으로 찾아들어온 영련이 어머니는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다 살아났구나. 이 토끼들은 죽을번 하다가 다시 살아났으니 아마 더 잘 클게다.》 어머니는 딸이 대견하여 환하게 웃었습니다. 정금이 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 넌지시 끼여들었습니다. 《영련이는 정말 어른이 다 된것 같아요. 일처릴 하는걸 봐두 그래, 말 한마디 하는걸 봐두 그래, 우리 정금이보다 몇살이나 더 들어보이는걸요.》 정금이 어머니는 영련이가 와서 한 일들을 말하며 진심으로 칭찬하였습니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 우리 집에서 늘 보고 듣고 하는 일이 토끼에 대한것이니까 좀 아는거지요 뭐.》 영련이와 영련이 어머니는 한사코 저녁밥상앞으로 이끄는 정금이네 온 가족의 청을 마다하고 집밖으로 나섰습니다. 검푸른 밤하늘 멀리에서 애기별들이 깜빡였습니다. 불빛이 환히 비낀 집집의 창문들에서는 사람들의 즐거운 노래소리며 웃음소리, 말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어느 집이나 행복을 안고있었습니다. 영련이는 어머니의 팔을 살며시 끼였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장군님께서는 이밤도 그 어느 전선길을 걷고계시겠지요?》 어머니와 딸은 더 바싹 팔을 끼였습니다. 《정말이지 아버지장군님께서는 1년 365일 강행군만 하고계시지.…》 어머니는 깊은 감동속에 잠겼습니다. 영련이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영련이와 어머니는 온 나라 인민들의 행복을 돌보시며 아버지장군님께서 끊임없이 걸으시는 그 길을 생각하는듯 한동안 아무 말없이 걷기만 하였습니다. 이윽고 영련이가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어머니, 나도 앞으로 어머니처럼 훌륭한 수의사가 되겠어요.》 어머니는 대를 이어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나가려는 영련이가 대견스러웠습니다. 하여 머리를 끄덕이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장군님께 그 언제나 기쁨을 드리는 나라의 훌륭한 역군이 될수 있단다.》 《알고있어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도 공부 잘하는 학생이 제일이라고 했어요.》 어머니는 딸이 미더웠습니다. 아버지장군님을 만나뵈온 그날로부터 생각도 행동도 몰라보게 달라지는 영련이였습니다. 《네 말이 맞다. 아버지, 어머니의 일손을 돕는것도 좋고 토끼를 잘 키우는것도 좋은 일이지만 너에게서 첫째가는 임무는 공부란걸 잊지 말아야 한다.》 《어머니도 참… 한 말을 또 하시네.》 어머니는 밝게 웃었습니다. 그러고나서 부러 엄하게 물었습니다. 《한데 네 동생은 왜 울렸니?》 《…》 《영옥이도 머지않아 중학생이 되지 않느냐. 차근차근 일깨워주면 다 알아듣는다. 중학교 2학년생이구 또 단위원인 영련이가 사람과의 사업을 그렇게도 할줄 몰라서야 되겠느냐.》 사랑을 담아 조용히 하는 어머니의 말이였습니다. 영련이는 정말 어머니말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하여 영련이는 자기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그건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채심하겠어요.》 《그래라. 영옥이한테 결함이 좀 있긴 하지만 네가 잘 타일러주면 꼭 고칠수 있을게다. 영옥이도 마음이 고운 애가 아니냐.》 《알겠어요.》 영련이는 어머니의 충고를 성근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속마음을 말끔히 털어놓고싶어 말을 이었습니다. 《저도 영옥이가 고와요. 하지만 그 애가 한가지만은 빨리 고쳐야겠어요.》 《그게 뭐냐?》 《자기것만 자기것이라고 하는 그 옹졸한 마음이예요.》 《그렇긴 하다만 그게 하루이틀에 고쳐질가?》 《물론 힘들수도 있어요. 그러나 토끼를 기르는 일에서만은 그래선 안돼요.》 《그건 무엇때문이냐?》 《아버지, 어머니가 경애하는 장군님께 말씀올리지 않았나요. 모든 집들에서 토끼를 많이 길러 아버지장군님께서 바라시는대로 영양가 높은 토끼고기를 늘 푸짐히 먹을수 있도록 하는데서 우리 집이 앞장서겠다고 말이예요. 토끼는 서로 좋은 경험도 나누고 돕기도 하면서 길러야 더 잘 기를수 있어요.》 영련이 어머니는 가슴이 저릿해졌습니다. 딸의 속이 이렇게 깊은줄 몰랐던것입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네가 그런 깊은 속궁냥을 가지고있는줄은 미처 몰랐구나. 너는 못 잊을 그날의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있었구나.》 《어머니도… 저는 언제면 아버지장군님을 또다시 만나뵈올수 있을가 하는 마음뿐이예요.》 《애두…》 어머니와 딸은 서로 팔을 꼭 끼고 밤길을 자박자박 걸었습니다. 서로 믿음이 가고 의지가 되는 밤, 잊을수 없는 밤이였습니다. 밤하늘 여기저기에서 점점 더 또글또글 여물어가는 애기별들이 반짝반짝 빛을 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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