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7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전 성 철
골짜기의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힐무렵이였다. 뾰족산중턱의 잣나무숲에서 흰 옷을 입은 한 소년이 뛰여나왔다. 사방을 휙ㅡ 둘러본 소년은 산 경사면아래로 허겁지겁 달려내려왔다. 소년은 산기슭 너럭바위앞에 이르자 날쌔게 엎드렸다. 바위우에 얼굴을 반쯤 내민 소년은 건너편 산기슭에 있는 텅 빈 근거지마을을 허둥지둥 살피였다. 소년의 초조한 눈길은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져있는 돌각담을 둘러친 집앞에서 멎어섰다. 잔디처럼 총세게 일어선 머리카락, 넓은 이마에 흙먼지로 얼룩진 비지땀, 갱핏한 얼굴에 만만치 않게 보이는 가느스름한 눈매, 그는 내동근거지 아동단나팔수 만호였다. 만호는 그 무엇을 결심한듯 벌떡 몸을 솟구쳤다. 만호의 허리춤에 매달린 구리빛 아동단나팔도 힘차게 그를 따라 솟구쳤다. 《땅.》 그때 골안에 아츠럽게 총소리가 울렸다. 적 《토벌》대가 달려들기 시작한것이다. 만호는 분한듯 작은 주먹으로 바위를 힘껏 내리쳤다. (에익, 내가 다래생각을 왜 미처 못했을가?) 어뜩새벽 만호는 마을 뒤산으로 보초근무 나갔었다. 그런데 맞은켠 뾰족산에서 적 《토벌》대가 기여든다는 수기신호가 왔다. 만호는 속이 덜컹하였다. 온몸이 갑자기 땅으로 꺼져들어가는것만 같았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유격대아저씨들은 일제놈들을 치러 근거지를 떠나가고 없었다. 마을에는 늙은 로인들과 녀인들 그리고 애어린 아이들만 남아있었다. 총을 들고 싸울수 있는 사람이라야 마을에 남은 몇 안되는 부상자아저씨들뿐이였다. 만호는 어떻게 마을로 달려내려왔는지 몰랐다. 만호는 아동단원들과 함께 마을사람들을 뾰족산으로 피난시키느라고 집집마다 뛰여다녔다. 그러다나니 바구니에 담아 집뒤울안 돌각담밑에 놓아둔 다래생각을 감감 잊어버렸던것이다. (에익 참…) 《토벌》대가 달려들기 전에 다래를 가져가자고 생각했던 만호는 정말 분하기 그지없었다. (다래를 두고가야 한단 말인가?) 만호는 뾰족산마루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안돼!) 만호는 머리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그 다래는 유격대아저씨들에게 주자고 만호가 따온것이였다. 그해따라 근거지마을에는 식량이 매우 긴장하였다. 산에 일군 뙈기밭들에 봄부터 심한 가물이 들어 씨붙임이 잘되지 않은데다가 적들의 토벌에 수수랑 조랑 모두 불에 타버렸다. 그래서 근거지마을에는 죽물을 우려먹을 식량조차 없는 집들이 태반이였다. 유격대아저씨들까지도 풀죽으로 끼니를 에우군 하였다. 아동단에서는 회의를 열고 산열매랑 산나물이랑 따서 장만했다가 유격대아저씨들이 싸움에서 돌아오면 안겨주자고 결정했다. 그런데 낟알구경하기조차 힘들게 된 근거지사람들이 얼마나 산판을 뒤졌는지 하루종일 헤매도 나무에 달린 돌배 한알 얻어내기 힘들었다. 그래서 처녀애들은 산골짜기를 참빗질하여 이틀만에야 버섯을 겨우 한바구니 채울수 있었다. 어떤 남자애들은 이삭주이하듯 가랑잎을 헤치고 떨어진 돌배를 한알두알 주었다. 만호는 다른 애들과는 달리 산봉우리 두개나 넘어 다래골에까지 갔다왔다. 다래철이 지난 뒤였지만 운수좋게도 다래를 반배낭 잘되게 주어왔다. 숲이 우거져 한번 발을 잘못 옮기면 길을 잃기가 쉬워 누구도 가기 저어하는 다래골까지 만호가 기를 쓰고 갔다온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어느때부터 생긴지는 딱히 알수 없으나 이름없던 그 골짜기가 다래골로 불리우게 된것은 살길찾아 두만강을 건너와 이곳에 보짐을 풀어놓은 화전민들이 떠나온 조국산천을 잊지 말자고 고향땅의 다래를 심어 퍼친 때부터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 다래는 다른 다래들보다 훨씬 크고 향기 또한 그윽하기 이를데 없었다. 만호가 이 골짜기의 다래맛을 처음 본것은 근거지에 들어오기 한해전이였다. 그때 만호네는 광산마을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광산지하조직 책임자였다. 며칠에 한번씩 어데론가 다녀오군 하던 아버지는 어느날 이른새벽 집에 들어섰다. 그때 아버지는 등에 지고온 망태기에서 서너웅큼 되는 다래를 꺼내놓았다. 《이게 조국의 다래다. 저 산너머 근거지마을뒤산에 조국의 다래가 있었더구나. 남의 나라 땅에 씨앗을 싹틔웠지만 분명 내 고향의 다래맛이더구나. 이제 나라가 해방되면 두만강을 건너 고향에 가자꾸나. 거기엔 어느 산이나 이런 다래가 주렁주렁하단다.》 《야, 어서 빨리 고향에 갔으면 좋겠네.》 만호는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두살적에 어머니등에 업혀 이국땅에 와서 자라면서 아버지에게서 늘 자장가처럼 새겨듣던 고향이였다. 만호는 고향의 다래인듯 너무 기뻐 두손으로 담쑥 담아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얼굴을 묻었다. 달콤한 다래향기가 온 가슴속으로 흘러들었다. 마음속에는 청신한 고향의 향기가 그들먹하게 차고넘쳤다. 그때부터 만호는 늘 다래를 생각하였다. 그러면 가슴속에 고향의 따스한 봄빛이 흘러들어 배고픔도 추위도 어느새 다 사라지고 기운이 부쩍부쩍 솟았다. 그래서 만호는 조국의 다래를 유격대아저씨들에게도 안겨주고싶었다. 그러면 자기처럼 배고픔도 싸움의 피로도 다 잊을것만 같았다. 근거지를 떠나 멀리 싸움길을 간다 해도 언제나 고향을 생각하게 될것이고 일제놈들을 더 많이, 더 빨리 족칠것만 같았다. 그렇다. 만호는 일제놈들을 하루빨리 쳐부시고 그리운 고향으로 가고싶었다. (다래를 그냥 두고는 절대로 갈수 없어.) 생각에서 깨여난 만호는 두주먹을 불끈 쥐였다. 만호는 마을어구에 서있는 소나무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땅… 땅.》 총소리가 울렸다. 만호는 소나무아래 후미진 곳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뿅ㅡ 뽕.》 귀청을 째는듯 한 아츠러운 소리가 나더니 총알에 맞아 부러진 나무가지가 그의 잔등에 떨어졌다. 만호는 몸을 흠칫 떨었다. 온몸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잔등에서는 땀이 빠질빠질 돋았다. 적 《토벌》대가 벌써 마을 코앞에까지 온것이 분명하였다. 만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번뜩이는 총창, 번들거리는 철갑모와 누런 군복들… 마을길로 들어서는 골어구에 《토벌》대놈들이 한벌 쭉 덮여있었다. 흉물스러운 일제놈들의 상판대기가 똑똑히 보여왔다. 공포에 질린 졸병놈들은 까투리처럼 땅바닥에 대가리를 처박고 헛총질만 해댔다. 장교인듯 한 놈은 손에 권총을 빼들고 악에 받쳐 일본말로 뭐라고 지껄여대고있었다. 만호의 눈에서는 시퍼런 불이 펑끗 일었다. 숯불처럼 이글거리는 만호의 눈앞에는 광산마을주인의 아들놈인 기무라의 상통이 얼른거렸다. 《조선놈, 너희 새끼들에겐 조국이란것이 없단 말이야.》 대나무칼로 사정없이 머리를 내리치며 지껄이던 기무라의 새된 목소리가 다시금 귀전에 살아났다. 그날은 만호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였다.… 반쯤 열린 뙤창으로 한줄기 해빛이 들어와 따스한 느낌을 주는 구들우에서 새우잠에 들었던 만호가 눈을 뜨니 머리맡에는 가둑나무잎에 소복이 담긴 다래가 있었다. 아버지가 또 왔다간것이 분명했다. 만호는 너무 좋아 다래를 안고 문밖을 나섰다. 동네애들에게 조국의 다래를 골고루 나누어주고싶었다. 마침 시든 호박잎처럼 얼굴이 누렇게 뜬 애들이 양지쪽에 오구구 모여앉아 해바라기를 하고있었다. 아이들은 다래를 안고온 만호를 보자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자, 이게 조국의 다래라는거야. 우리 아버지가 가져왔어.》 만호가 자랑을 늘어놓자 아이들은 저마다 달려와 코를 벌름거리며 향내를 맡았다. 《야, 정말 향기가 기딱 막히구나.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다 부른것 같다야.》 아이들은 부러 불쑥 내민 배를 손으로 슬슬 어루만지며 좋아라고 떠들어댔다. 바로 이때였다. 길다란 대나무칼이 다래를 쥔 만호의 손을 내리쳤다. 《앗ㅡ》 비명소리와 함께 다래들이 땅바닥에 좌르르 흩어졌다. 만호는 땅바닥에 흩어진 다래를 두팔을 벌려 울타리를 치고 막아나서며 고개를 버쩍 들어 쳐다보았다. 깜짝 놀란 아이들은 어느새 사방으로 달아나버렸다. 어느 골목에서 나타났는지 술 처먹은 놈처럼 불깃불깃한 얼굴에 량쪽끝이 우로 치째져올라간 뱁새눈이 깨고소하다는듯 히물히물 웃고있었다. 광산마을 주인의 아들놈인 기무라였다. 그옆에는 야구방망이를 든 쪽발이 애새끼들이 빙 둘러서있었다. 기무라는 읍거리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는데 방학이면 애비가 경영하는 광산마을에 내려와 제법 주인행세를 하며 돌아치군 하는 《새끼광주》놈이였다. 며칠전에 만호에게서 당했던 일의 《복수》를 하러온것이 분명했다. 그때 만호는 개울가에서 동네애들과 함께 고기를 잡고있었다. 《야, 잡았다.》 더벅머리애가 번쩍 반두를 쳐들자 그물안에서 버들치의 은빛비늘이 번뜩거렸다. 만호는 어느새 버들치를 손으로 덥석 잡아들었다. 《버들치다!》 아이들은 환성을 올렸다. 《우리 살던 고향에도 이런 고기가 많대. 그저 시내면 시내, 강이면 강, 한벌 쫙 깔려서 막 욱실거린다지 뭐. 그리고 산마다엔 왕다래며 갖가지 과일들이 쫘ㅡ악 덮였대. 우리 아버지가 그랬거던.》
아이들은 입을 하 벌린채 신이 나서 자랑을 늘어놓는 만호의 얼굴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그때 광산마을로 방학을 놀러오던 기무라가 개울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떠드는 아이들을 보고 달려왔다. 《야, 그거 이리 가져와.》 중학생복을 쭉 빼입고 번쩍거리는 가죽구두를 신은 기무라는 손을 앞으로 뻗쳐내밀고 무섭게 눈알을 굴렸다. 와짝 떠들어대던 아이들은 갑자기 서리맞은 풀잎처럼 고개를 떨구고 서로 슬슬 눈치를 보았다. 《안돼. 이건 우리가 잡은 고기야.》 만호는 옆의 애가 들고있던 고기바구니를 빼앗아 등뒤로 가져갔다. 《뭐야. 야 이 거지새끼야, 여긴 우리 아버지 땅이란 말이야. 그러니 그 땅의 개울도, 그 개울의 고기도 다 내거란 말이야.》 기무라는 어처구니없는듯 코웃음을 치며 마치 개처럼 으르릉거렸다. 《야, 이게 어디 너의 땅이냐. 너의 땅은 바다건너 저 일본이란 말이야.》 기무라의 말에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만호를 보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아이들도 힘이 솟아 고개를 버쩍 들며 만호두리에 모여들었다. 서슬이 퍼래서 딩딩거리던 기무라는 만호랑 조선아이들의 기세에 겁을 먹었는지 갑자기 반벙어리가 되고말았다. 《어디… 두… 두고… 보자.》 얼굴이 뻘개진 기무라는 비실비실 뒤걸음치며 달아나고야말았다. 《만호야, 너 무섭지 않던?》 더벅머리애가 겁에 질린 눈으로 만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섭긴 뭐가 무섭니. 얘들아,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저 산너머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세워주신 유격근거지가 있대. 지금 거기에선 유격대아저씨들이 손에 총을 잡구 왜놈들을 막 족쳐댄대. 이제 머지않아 왜놈들을 몰아내고 나라가 해방되면 우리도 고향에 간대. 난 그때 너희들을 다 우리 고향에 데리고갈테야.》 《야ㅡ》 아이들은 너무 좋아 짜락짜락 손벽을 쳤다. 기세높은 아이들을 힐끔힐끔 돌아보며 저만큼 달아빼던 기무라가 어디에 걸챘는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하하하…》 뺑소니치는 기무라의 그 꼴이 우스워 아이들은 배를 그러쥐고 웃어댔다. 바빠맞은 기무라는 허둥지둥 마을길로 꽁지가 빳빳해서 달아났다.… 《야 이 거지새끼야, 전번에 개울가에서처럼 또 지껄여봐. 뭐, 다래? 고향? 조선놈. 너희새끼들에겐 조국도 고향도 없단 말이야. 조선도 만주도 다 일본땅이란 말이야. 다 이 기무라땅이란 말이야.》 살기가 뻗친 기무라는 구두발로 다래를 마구 짓밟아버렸다. 《안된다, 안돼.》 만호가 기무라의 멱살을 움켜잡는 순간 어느새 먼저 기무라의 대나무칼이 만호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옆의 왜놈의 새끼들도 이리떼처럼 만호에게 달려들었다. 쪽발이들의 발길질에, 대나무칼질에 만호는 그만 피투성이가 되였다. 그러나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매맞은 아픔보다 왜놈새끼들의 구두발에 짓이겨진 다래를 보는것이 더 가슴아팠다. 만호는 너무도 분해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물었다. (내 네놈의 새끼들을 가만두지 않을테다. 아버지만 오는 날엔 너희새끼들을 몽땅 개처럼 때려죽일테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던 아버지는 그날 저녁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아침 읍거리에 있는 지하조직에 갔던 아버지는 왜놈들의 매복에 걸려 용감하게 싸우다가 희생되였던것이다. 그로부터 얼마후 만호는 유격대공작원아저씨를 따라 여기 내동근거지마을로 오게 된것이였다. 그날에 다래를 마구 짓밟고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한 조국을 빼앗으려고 미쳐날뛰던 《기무라》들이 오늘은 저렇게 총창을 비껴들고 달려들고있다. 다시는 빼앗길수 없는 다래였다. 고향이였다. 조국이였다. 만호는 땅을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마을길로 힘껏 달리였다. 《땅ㅡ땅.》 만호의 앞뒤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잇달아 울렸다. 그러나 만호는 주저앉지 않았다. 돌각담을 친 집앞에 이른 만호는 뒤울안으로 날쌔게 뛰여들어갔다. 그리고는 다래바구니를 와락 껴안았다. 뒤울안을 뛰여넘은 만호는 마을 뒤산 비탈길로 달려올라갔다. 가쁜숨을 몰아쉬며 달음쳐오르던 만호는 우뚝 멈춰섰다. 웬일인지 총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근거지마을로 달려들던 《토벌》대놈들이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맞은켠 뾰족산으로 은밀히 기여오르고있었던것이였다. 만호는 고개를 들어 뾰족산마루를 쳐다보았다. 근거지에 처음 온 날 다래골로 데리고가서 제일 큰 다래를 골라 따주던 아동단분단장 순옥누나의 얼굴이랑 감기에 걸려 앓아누웠을 때 산천어를 잡아가지고 왔던 순철이 할아버지 얼굴이랑 눈앞으로 언뜻언뜻 스쳐지나갔다. 후더운 고향의 인정을 가슴속에 부어준 근거지마을사람들… 그들은 진정 아버지였고 어머니였고 가슴속에 간직된 고향의 모습이였다. 만호는 다래바구니를 꼭 그러안았다. 물씬물씬 풍기는 다래향기가 금시 온몸에 스며드는것 같았다. 말로는 무엇이라 할수 없는 억센 힘이 가슴속에 불끈 솟아오름을 느꼈다. 만호의 두눈은 번개처럼 번뜩이였다. 아동단나팔수 만호의 손이 어느새 허리에 매여달린 나팔을 힘껏 틀어잡았다. 《따따따.》 나팔소리가 골짜기안에 쩌렁쩌렁 울리였다. 《토벌》대놈들은 나팔소리에 정신을 잃고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살구멍을 찾아헤매던 놈들은 바위뒤에 몸을 숨기고 나팔소리가 울리는쪽에 총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만호는 놈들을 뒤에 달고 비탈길로 치달아올랐다. 총탄은 만호를 향하여 비발치듯 날아왔다. 그러나 만호는 이젠 그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따따따.》 그런데 랑랑히 울리던 나팔소리가 갑자기 뚝 끊어졌다. 다래바구니가 풀숲에 떨어져 나딩굴었다. 어깨가 시큰함을 느낀 만호가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버린것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따따따.》 골안에 힘찬 나팔소리가 또다시 울려퍼졌다. 만호는 조용히 눈을 떴다. 저것은 유격대의 나팔소리다. 그렇게 기다리던 유격대아저씨들이 달려온것이였다. 만호는 다래바구니를 꽉 그러안았다. 《만호야…》 어느새 달려온 유격대아저씨들과 근거지마을사람들이 담장처럼 빙 둘러서서 걱정어린 눈으로 만호를 바라보고있었다. 《아저씨… 다래…》 만호의 발기우리한 량볼에는 웃음이 함뿍 피여올랐다. 다래바구니는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넘어갔다넘어왔다. 다래바구니를 받아든 사람들의 얼굴마다에는 커다란 기쁨의 물결이 일렁이고있었다. 만호가 지켜낸 다래향기! 그것은 진정 그 어떤 총칼로도 빼앗을수 없는것, 만호가 가슴속에 안고산 한없이 귀중한 김일성장군님의 품, 소중한 고향이였고 조국이였다. 다래향기는 물씬물씬… 산넘고 강건너 조국땅으로 풍겨가고있었다.
문천시 강철중학교 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