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7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기 범
《편지글쓰기》 이것은 내가 칠판에 써놓은 수업제목이였다. 한동안 떠들던 학생들도 지금은 편지들을 쓰느라 여념이 없다. 교실안은 조용하였고 오직 만년필 놀리는 소리, 또 필갑뚜껑을 여닫는 소리만이 도간도간 들려올뿐이였다. 나는 뒤짐을 지고 천천히 책상사이를 거닐었다. 그러다가는 이따금씩 멈춰서서 학생들의 어깨너머로 편지글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틀린 글자를 고쳐주기도 하였다. 편지를 처음 써보는 학생들은 몹시 즐거워하는듯싶었다. 자기가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자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자기의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고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엉치를 툭툭 두드려주면서 어떤 응석이라도 다 받아주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제일 보고싶었던 모양이였다. 문득 어디선가 《키드득.》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책상쪽으로 다가갔다. 웃음을 자아낸 원인의 그 편지를 읽어보는 나도 그만에야 웃고말았다. 편지는 우리 나라의 이름난 롱구선수아저씨에게 보내는것이였다. 《…아저씨, 아저씨는 무얼 많이 잡수어서 그렇게 키가 컸나요? 나도 아저씨처럼 키가 커서 으뜸가는 롱구선수가 되고싶어요. 그래서 키가 크려구 밥도 많이 먹고 콩우유도 꼭꼭 먹지만 계속 난쟁이라고 놀림받습니다. 참 속상해요.…》 얼마나 천진란만한 학생들인가. 거짓도 모르고 가식도 모르는 이 애들은 자기의 생각을 그대로 편지에 담는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순진한것이 아이들이라고 하는것이 아닌가. 내가 웃음짓는것을 보자 편지의 주인도 얼굴을 붉히며 히쭉 웃는다. 저도 우스운 모양인지… 그러던 애가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이 편지를 롱구선수아저씨에게 보낼수 있습니까?》 《예, 편지를 잘만 쓰면 선생님이 직접 보내주겠습니다.》 《야!》 내 말에 학생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환성을 올렸다. 나는 다시 뒤짐을 지고 조용히 책상사이를 거닐기 시작하였다. 문득 내 눈에 한 녀학생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비쳐들었다.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앉아 책상우에 놓인 종이장만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학생. 내가 옆에 다가가도 그는 그냥 한모양이였다.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일순 어두워졌다. 《순정학생.》 나는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그래도 그는 꼼짝도 안했다. 거듭 불러서야 그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말없이 순정이가 들여다보는 종이장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출장으로 집을 멀리 떠났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한자한자 또박또박 박아쓴 글자들, 자를 대고 그은듯이 곱게 그어진 글자획들과 재간을 부려 그려넣은 두송이의 꽃송이들. 한눈에도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썼다는것을 알수 있는 편지였다. 그런데 가운데에 두곳이나 동그랗게 젖어있는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순정이의 눈물자욱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며칠전에 급병으로 세상을 떠난것이다. 순정이의 아버지는 과학원에서 연구사로 일하고있었다. 집을 떠나 머나먼 지방에 가서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자기의 맡은 연구사업을 하였다고 한다. 순정이의 아버지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만 같았다. 순간 내 눈앞에는 왜서인지 밝게 웃던 순정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학급의 본보기가 될수 있도록 편지를 쓸 준비를 잘해오라고 과업을 주던 그날 《예.》하고 대답하던 때의 순정의 모습이 안겨왔기때문이였다. 순정이는 우리 학급에서 글짓기를 제일 잘하였다. 그의 꿈은 앞으로 크며는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며칠후에 있게 될 편지글쓰기시간에 순정이의 편지를 본보기로 읽어줄 생각밑에 그를 불러 과업을 주었던것이다. 《선생님, 누구에게 써야 합니까?》 《순정이가 제일 먼저 쓰고싶은 사람에게 쓰십시오.》 내 말에 순정이는 반색을 지었다. 《야! 선생님, 그럼 전 울아버지에게 쓰겠습니다. 맡은 일을 빨리 끝내고 오라구…》 그리고는 깡충깡충 뛰여가는것이였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되돌아섰다. 《왜 그럽니까?》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저 선생님… 제가 쓴 편지 아버지에게 꼭 보내줍니까?》 나는 그제서야 그가 되돌아선 까닭을 리해할수 있었다. 《그래, 보내주구말구. 그런데 잘 써야 합니다. 아버지가 받아보고 기뻐하시게. 더구나 순정이는 우리 학급의 꼬마작가인것만큼 남들보다 더 잘 써야 합니다.》 《예.》곱게 패여진 순정이의 볼우물은 내 마음을 즐겁게 했다. 그런데 오늘은… 편지에 떨어진 두방울의 눈물은 내 마음도 축축히 적시였다. 나는 가볍게 그 애의 어깨를 눌러 제자리에 앉힌 다음 자리를 떠났다.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길게 울리자 나는 교탁우에 있던 책들을 주섬주섬 거두면서 말하였다. 《다음주 국어시간까지 편지들을 다 써가지고 와야 하겠습니다. 그 시간에는 잘된 편지들을 발표하고 주소대로 보냅시다.》 내 말에 학생들은 좋아라고 환성을 올렸다. 교실문을 나서기 앞서 나는 얼핏 순정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애는 여전히 한모양대로 앉아있었다. 나는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교실을 나섰다. 그날 점심때였다. 수업이 다 끝나고 총화를 지으려고 교실에 들어선 나는 순정이의 눈시울이 빨갛게 부어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보매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던상싶었다. 학생들도 모두다 순정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그 어떤 알지 못할 불안을 느끼면서 총화를 지었다. 총화를 다 짓고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때 나는 순정이를 남겨놓았다. 그런데 나는 교실청소당번학생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였다. 국어시간이 끝난 후 애들은 모두가 자기들이 쓰고있는 편지에 대하여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의 편지를 빼앗아서는 기발처럼 흔들면서 교실이 좁다하게 뛰여다니는 애도 있었고 그 애를 붙잡으려고 달리는 애도 있었다. 이때 누구인가가 순정이의 옆에 앉은 애에게 물었다. 《순정인 누구에게 썼던?》 《자기 아버지에게 썼어. 정말 잘 썼어.》 《그 애야 뭐 글짓기를 제일 잘하지 않니.》 《암만 잘 쓰면 뭘하니. 보내지 못할 편진데.》 이때 그들곁을 지나가던 순정이가 이 말을 듣게 되였다. 순정이는 눈물이 차오르는 눈으로 한동안 그애들을 쏘아보더니 목갈린 소리로 말하였다. 《아니야. 난 편지를 보낼수 있어. 우리 아버지한테 보낼수 있단 말이야. 울아버진…》 그리고는 입술을 꽉 깨물고 휙 돌아서서 제자리로 뛰여가서는 털썩 주저앉아 두손에 얼굴을 묻었다. 동무들이 다가가서 그를 달래고 변명하느라고 애를 썼지만 순정이의 동그란 어깨는 세차게 오르내릴뿐이였다. 그리고는 수업이 끝나도록 한마디 없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래도록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때의 순정이의 아픈 마음이 나에게도 느껴왔던것이다. 보내지 못하는 편지… 아버지 잃은 아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기 아버지자랑을 신이 나서 하던 순정이가 아니였던가. 정말 그의 연약한 가슴을 너무도 세차게 두드려놓았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깊이 남겨놓은것이였다. 나는 내앞에 잠자코 서있는 순정이를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문득 내 눈은 순정이의 오른쪽손가락에 가멎었다. 순간 눈시울이 화끈했다. 붕대로 돌돌 싸매여져있었던것이다. 《순정학생, 그 손을 왜 상했습니까?》 《…》 순정이는 자기 손을 슬그머니 감추었다. 《왜 상했습니까? 어디 좀 봅시다.》 순정이는 오히려 입을 꼭 다물고 여전히 손을 등뒤에 감추었다. 얼마 있더니 그는 알릴듯말듯하게 입을 열었다. 《동생이 졸라서 메가폰을 만들다가…》 《메가폰을 네가?》 나는 놀랐다. 저 작은 손으로 메가폰을 만들다니? 생각할수록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필경 동생이 어머니에게 가을철소년운동회를 맞으며 메가폰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칭얼대자 순정이는 제가 만들어주겠다고 나섰으리라.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를 더 괴롭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자리잡았기때문에 손에 가위를 들었으리라… 아직도 어머니무릎에서 동생과 함께 어리광을 부려야 할 순정이가 너무도 일찌기 철이 드는가싶었다. 《순정학생.》 나는 머리를 푹 수그리고있는 순정이를 또다시 조용히 찾았다. 《요즘 학생은 동무들과 말도 잘하지 않고 늘 우울하게 생활한다는데 그 말이 옳습니까?》 《…》 《물론 가슴이 아프지요. 그러나 순정학생은 인차 슬픔을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순정이 아버지는 순정이가 침울하게 지내는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모두가 순정이를 위해주고 아껴주려고 얼마나 마음들을 쓰고있습니까. 아버지가 없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절대로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을것입니다.》 나는 마지막말에 힘을 주었다. 순정이는 여전히 아무 말없이 머리를 수그리고있었다.
메가폰을 받아들며 생글생글 웃음지을 순정이동생의 모습과 좋아라 손벽칠 순정이의 곱게 패인 보조개를 그려보며 나는 일손을 다그쳤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오른 나는 다 만들어진 메가폰을 손에 들고 순정이의 집으로 향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집에 가니 문을 열어준것은 순정이의 남동생이였다. 물어보니 어머니는 저녁밥을 해놓고 할머니네 집에 갔는데 늦게 돌아온다는것이였고 누나는 지금 공부하다가 잠들었다는것이였다. 나는 방안에 들어서면서 메가폰을 우정 등뒤에 감추었다. 깜짝 놀래우기 위해서였다. 《순일아, 내가 좋은걸 하나 줄가?》 그 애는 눈이 올롱해서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에는 (무얼가?) 하는 호기심이 강렬하게 내비쳐있었다. 《자 봐라, 네가 가지고싶어하던거란다.》 나는 순일이의 가슴에 메가폰을 안겨주었다. 《야! 메가폰.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늘은 메가폰풍년이구나.》 《메가폰풍년이라니?》 나는 기뻐 어쩔줄 몰라하는 순일이를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선생님, 저한테 메가폰이 이것까지 세개 있습니다. 하나는 옆집아버지가 만들어준거구 다른 하나는 울아버지네 세포비서아저씨가 만들어준것이구 또 하나는 선생님이 주었습니다. 해해해.》 아니나다를가 방 한구석에는 정성스레 색칠까지 곱게 한 크기가 다른 두개의 메가폰들이 포개있었다. 순일이는 세번째 메가폰을 그곁에 세워놓았다. 《그래 순일인 참 좋겠구나. 선생님이 그만 지각했는데.》 내 말에 순일이는 그저 해해 웃기만 한다. 나는 순정이가 자고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순정이는 해죽이 웃으면서 쌔근쌔근 숨을 쉬고있었다. 얼굴에는 눈물자욱이 말끔히 지워져있었다. 나는 방안을 빙 살펴보았다. 방바닥에는 순일이가 공부하느라고 벌려놓은 교과서며 학습장, 필갑, 연필 등이 한가득 널려있었고 책상우에는 깨끗이 닦아놓은 재털이 한개가 주인을 잃고 한구석에 놓여있었다. 문득 벽에 걸려있는 액틀속에 한장의 사진이 눈에 띄였다. 작업복을 입고 동무들과 함께 찍은 순정이 아버지의 활짝 웃는 모습이였다. 문득 나의 머리속에는 순정이 아버지를 만나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분과실에 앉아 교수안을 쓰고있을 때였다. 퇴근시간이 지났기때문에 다른 선생님들은 이미 다 집에 가고 나 혼자 앉아있었다. 이때 누군가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분과실에 들어선 사람은 중년의 남자였다. 보통키에 체소한 몸, 약간 길쑴한 얼굴을 가진 남자였다. 특히 그 사람의 칼날처럼 빳빳이 세운 바지주름이 나의 주의를 끌었다. 머리카락은 한오리도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히 손질되여있었다. 《저 1학년 5반 선생님이 아니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안녕하십니까, 제가 순정이 아버지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갑게 맞아들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순정의 아버지를 보았다. 말을 들으니 그는 연구사업때문에 줄곧 지방에 오래동안 가있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학부형총회때도 순정이네 집에서는 어머니가 참가하군 했으며 그때마다 순정이가 자기 아버지를 다 잊어버릴것 같다고 《하소연》하군 했던것이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뭐 별로 특별한 일이란것은 없습니다. 자식을 맡겨놓고 한번도 찾아뵙지 못한 잘못을 빌자고 왔습니다. 이자 방금 출장지에서 오는길입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옆에는 트렁크가 놓여있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순정이가 이제 아버지를 보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허허, 쩍하면 출장가는 이 아버지를… 기뻐할게 뭡니까.》 너무나도 소탈한 그의 말이였다. 다음 우리들은 얼마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화제에 올린것은 순정이의 학습과 생활에 대한것이였다. 그는 자기의 귀여운 딸에 대하여 많은것을 그리고 또 구체적으로 알고싶어하였고 나 역시 그에게 순정이에 대한 나의 속생각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의 눈길은 자주 순정이아버지의 상처난 손가락에 멎군 하였다. 거기에 싸매여진 하얀 붕대는 피타는 연구로 한생을 살아오는 한 과학자의 모습을 보여주는듯 했다. 수첩을 펴들고 깐깐스레 적어나가던 그는 시계를 흘끔 스쳐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너무 오래 지체했구만요. 선생님의 귀중한 시간을 제가 렴치없이 빼앗았습니다. 하하ㅡ》 《원, 별말씀을…》 순정이 아버지의 가식없는 롱말은 나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선생님, 처음으로 만났는데 뭐 드릴것이 없구만요. 이거라도 받아주십시오. 제가 발명을 했다고 표창으로 받은것입니다.》 나는 내앞으로 내밀어진 새 만년필을 보자 바삐 손을 흔들었다. 《아니, 이러지 마십시오. 그거야 순정이 아버지가 받은건데.》 《허허… 만년필이 좋지 못해서 그럽니까?》 그의 웃음섞인 롱말에 나는 그만 웃고말았다. 순정이 아버지는 웃음을 거두고나서 의미깊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저보다 더 힘드실겝니다. 전 그저 기껏해야 말 못하는 쇠덩이나 붙들고 앉아있지만 선생님이야 우리의 귀중한 자식들을 참된 인간으로 키우려고 애쓰지 않습니까.》 진정어린 그 말에 나는 그만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나 속이 깊은 사람인가. 얼마나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인가. 나는 그 만년필을 받았다. 그때 내 눈에는 또다시 그 하얀 붕대가 띄였다. 순정이 아버지는 분과실문을 나서기 전에 나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선생님, 마침 래일이 일요일이니 저녁에 우리 집에 오십시오. 래일은 저도 집에 있겠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눕시다.》 순정이 아버지는 사람좋게 웃으며 문을 나섰다. 눈처럼 깨끗한 그의 흰 옷이 학교정문을 지나 아빠트에 가리워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첫인상이 아주 깊었던것이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일요일이지만 일찍 출근한 나는 분과실에 앉아 교수안을 쓰고있었다. 이때 문득 분과실문이 열리며 순정이가 들어서는것이였다. 《어떻게 왔습니까?》 나는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가 또 출장갔습니다.》 《출장이라니? 순정이 아버진 어제 오시지 않았습니까?》 나의 놀란 표정을 보자 순정이는 시무룩하니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한창 텔레비죤을 보고있는데 웬 아저씨가 찾아왔습니다. 그 아저씨가 아버지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니까 아버지는 엄마와 나에게 잘 있으라고 하구서는 그 아저씨와 함께 떠나갔습니다. 가면서 나보구 선생님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안됐다는 말을 꼭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다시금 순정이 아버지를 그려보았다. 그 단정한 모습과 대조를 이룬 하얀 붕대가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순정이를 바라보았다. 그 애의 얼굴에는 이루 말할수 없는 섭섭한 기색이 비껴있었다. 나를 마주 쳐다보는 그 애의 눈에는 (우리 아버지는 왜 과학자가 되였을가?) 하는 속생각이 뚜렷이 드러나있었다. 《그래 아버지는 인차 오신답니까?》 나는 순정이의 그늘진 마음을 밝게 해주려고 웃음을 띠우며 물었다. 《예, 이제 몇밤만 자면 온다고 했습니다.》 순정이는 다시 본래의 활달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다시 울려나왔다. 《그런데 선생님, 우리 아버지가 출장을 떠나면서 아버지장군님께 큰 기쁨을 드리고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 애는 내가 자기의 말을 믿지 않을가봐 겁내기라도 하는듯이 다짐을 두며 힘주어 말했다. 나는 순정이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었다. 《순정이 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니까 꼭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겁니다.》 내 말에 순정이는 해죽이 웃었는데 고운 보조개가 얼굴에 옴폭 패이는것이였다. 그런데 몇밤 자면 돌아온다던 아버지가 영영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결국 나도 순정이 아버지를 만난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였던것이다. 회상에서 깨여난 나는 조용히 순정의 머리맡에 앉았다. 문득 펼쳐놓은 한권의 학습장이 눈에 띄였다. 가까이 끄당겨놓고 보니 일기장이였다. 나는 무심히 순정이의 고운 글씨가 또박또박 씌여진 일기장을 읽어보았다. 《오늘 우리 집에는 메가폰이 두개씩이나 생겼다. 하나는 옆집아버지가 만들어주신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네 세포비서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셨다가 만들어주신것이다. 동생은 가지고싶던 메가폰이 한꺼번에 두개씩이나 생기자 너무 좋아서 콩당콩당 뛰였다. 나도 기뻤다. 이러는 우리 형제를 바라보며 세포비서아저씨가 이야기하였다. <얘들아, 절대로 슬퍼하지 말아라. 너희들에게는 아버지가 계신다. 아버지장군님께서 계시고 우리들이 있고 선생님과 동무들이 있지 않느냐. 그렇지? 순정아.>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정말이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얼마나 많은 아저씨들이 찾아와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던가. 또 선생님과 동무들은 나를 위해주고있지 않는가. 나는 래일부터 절대로 울지 않겠다. 동생도 잘 돌보고 어머니 일손을 힘껏 돕겠다.》 나는 코마루가 찡했다. 너희들에게는 아버지가 계신다고 쓴 구절이 웬일인지 가슴을 세차게 두드려주었다. (그래 순정아, 너에게는 아버지가 많단다. 그래서 메가폰풍년이 든게 아니겠니. 나도 너의 부모가 되여주마!) 나는 순정이를 다시금 내려다보았다. 그 애는 여전히 자면서 웃고있었다. 다음날 아침 내가 교실에 들어서니 교실안은 여느때없이 떠들썩하였다. 나를 보자마자 한 녀학생이 깜짝 놀랄 정도로 소리쳤다. 《선생님, 우리 나라에서 인공지구위성을 발사했습니다!》 그 애는 마치나 저 혼자만이 알고있던 중요한 비밀을 알려준듯이 우쭐해서 동무들을 둘러보았다. 아침방송을 통하여 이미 알고있는 소식이였지만 나는 몹시 기뻤다. 지구를 진동시키며 날아오른 우리의 첫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 위대한 조국, 자랑높은 민족에 대한 긍지로 하여, 자부심으로 하여 나의 가슴은 부풀어 터질것만 같았다. 교실안은 벅적 끓고 소란스러웠으나 나는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오히려 내 자신이 학생들과 함께 우리의 승리를 경축하고싶은 심정이 아닌가. 이윽고 나는 학생들을 자리에 앉히고나서 인공지구위성에 대하여 알고있는껏 이야기하였다. 위성의 개발과 그 발전력사, 《광명성1호》의 발사가 가지는 중요성과 그 의의에 대하여 나는 나의 지식과 능력을 깡그리 발동하여 설명하였다. 부잡스럽기 그지없던 장난꾸러기들도 그때만은 까딱도 안하고 나의 이야기를 욕심스럽게 들었다. 지어 어떤 애는 내 말을 가까이에서 듣겠다고 뒤줄에서부터 앞줄에까지 나와 앉는것이였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학생들은 일시에 약속이나 한듯이 《야!》하고 환성을 올렸다. 한 학생은 벌떡 일어나 《선생님, 전 과학자가 되겠습니다.》하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옆에 앉은 애가 《체, 자기는 롱구선수가 되겠다구 하구선.》하고 퉁을 주자 그애는 목을 움츠리면서 눈만 깜빡일뿐이였다. 그 모양이 우스워 나도 웃고 학생들도 웃었다. 세계의 경탄과 환희를 싣고 무한대한 우주로 날아오른 인공지구위성은 우리 학생들의 가슴속에 기쁨과 희망을 싣고 날아온것이다. 얼마나 꿈이 많은 학생들인가. 바로 학생들의 이러한 꿈을 찾아내고 이끌어주어야 할 커다란 의무가 우리 교원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있는것이다. 《옳습니다. 누구나 커다란 희망과 포부를 안고 살아야 합니다. 유명한 과학자가 되고 이름난 체육인이 되고 또 용감한 인민군대가 되여서 우리 나라를 세상에서 제일 센 나라로, 언제나 이기는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 학생들이 말입니다.》 내 말은 학생들에게 큰 감명을 준것 같았다. 과학자가 되겠다고 하던 학생도 그옆에 앉은 학생도 또 순정이를 비롯한 서른다섯쌍의 눈동자들이 앞날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희망으로 반짝이고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순정이와 함께 길을 걷게 되였다. 왜서인지 순정이가 정문에서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그때는 밤하늘에 뭇별들이 총총했을 때였다. 순정이는 말없이 밤하늘만 쳐다보았다. 그의 맑은 눈동자에는 아름다운 은하수가 비껴있었다. 나는 순정이가 왜 나를 기다리고있었을가 하고 제나름대로의 추측을 해가며 발걸음만 옮겼다. 이렇게 얼마동안 가느라니 순정이가 나를 쳐다보는것이였다. 《선생님, 우리 어머니가 그러는데 인공지구위성을 발사한 곳이 우리 아버지가 오래동안 가있군 하던 곳이랍니다.》 《?!》 나는 놀랐다. (그럼 혹시?) 나의 이 생각을 알아맞춘듯 순정이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선생님, 그 인공지구위성을 우리 아버지랑 만들지 않았습니까?》 나를 바라보는 순정이의 눈에서도 그렇다고 대답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빛이 담겨져있었다. 바로 나의 대답을 들으려고 순정이는 오래동안 밖에서 기다린것이다. 한순간 나는 망설이였다. 과학자들이라고 하여 누구나 다 《광명성1호》를 제작하는데 참가했다고 볼수 없고 또 우연히 그곳에 가있었을수도 있는것을 놓고 순정이가 바라는 대답을 줄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하여 《아니다.》라고 대답하기에는 순정이의 눈빛이 너무도 간절했던것이다. 《옳습니다. 순정이 아버지랑 만든것입니다. 그전에 아버지가 나와 만났을 때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을 하고난 나는 제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어보였다. 순정이 아버지는 인공지구위성에 대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순정이에게 거짓말을 하였으니… 하지만 그것은 량심이 용서해준 거짓말이였다. 아닐세라 내 말을 듣고난 순정이는 너무 기뻐 깡충깡충 뛰는것이였다. 《야! 선생님, 전 우리 엄마에게 말하겠습니다. 선생님이 맞다고 대답했다고 말입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오래간만에 나는 순정이의 얼굴에 곱게 패여진 보조개를, 또 그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본것이였다. 그 다음날, 나는 늘 하던대로 학급학생들의 일기장을 검열하였다. 일기를 매일 쓰는 습관을 키워주기 위해서 나는 한주일에 한번은 꼭꼭 학생들의 일기장을 검열하군 했던것이다. 제일 처음으로 나는 순정이의 일기장을 펼쳤다. 《오늘 나는 선생님과 헤여져 집에 오자바람으로 아버지가 남기고간 일기장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아버지가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을가 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말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섭섭해만 지던 나는 문득 어느 한 일기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져있었다. <나는 오늘 순정이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오늘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 순정이가 글짓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딸이 작가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작가! 얼마나 좋은 꿈인가. 아마 나의 성격을 그대로 닮은 순정이는 한번다진 자기의 결심을 굽히지 않을것이다. 그러면 순일이는 무엇이 될것인가. 나는 순일이가 꼭 과학자로 될것을 원한다. 나는 순일이를 과학자로 키우겠다. 이것은 우리 장군님과 시련을 겪는 우리 조국앞에 지닌 나의 량심이고 의무인것이다.> 아! 우리 아버지는 이런분이시였구나. 얼마나 훌륭한 아버지인가. 아버지…》 여기서 순정이의 일기는 끝났다. 일기를 다 읽고나니 내 눈에는 또다시 순정이아버지의 단정한 모습과 함께 손가락을 싸맸던 하얀 붕대가 떠올랐다. 그로부터 며칠후 나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광명성1호》를 성과적으로 발사하는데 적극 기여한 과학자, 기술자들을 위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손수 차려주신 연회에 순정이와 그의 어머니가 참가했으며 렬사증과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선물을 받아안았다는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 나라에서 첫 인공지구위성을 이 세상에 탄생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자기의 임무를 깡그리 다한 훌륭한 과학자였던것이다. 순정이가 내앞에 자기가 받은 사랑의 선물을 안고 나타났을 때 나는 순정이 아버지가 떠나면서 장군님께 큰 기쁨을 드리고 오겠다고 한 그 말의 깊은 뜻을 그제야 알게 되였다. 정녕 별로 이름없던 한 연구사가 이제는 온 나라가 다 아는 애국렬사가 되였고 순정이는 온 학교, 온 마을 아니, 온 나라가 다 아는 순정이로 되였다. 문득 내 눈앞에는 느닷없이 순정이 아버지의 단정한 모습과 그 하얀 붕대가 또다시 떠올랐다. 만약 순정이 아버지가 살아서 오늘을 본다면 얼마나 기뻐할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나는 나의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순정의 아버지가 나에게 주었던 그 만년필이였다. 《순정학생, 이건 학생의 아버지가 새로운것을 발명하여 표창으로 받았던 만년필입니다. 이걸 학생이 쓰십시오. 이 만년필을 쓰면서 언제나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십시오.》 순정이는 두손으로 받아들었다. 그 만년필에 순정의 맑은 눈물이 한방울 떨어져 구슬처럼 맺히였다. 그날 나는 순정이와 함께 또다시 저녁길을 걷게 되였다. 그날도 역시 맑게 개인 밤이였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쭉 가로질러 건넜고 무수한 뭇별들이 보석을 쥐여뿌린듯이 여기저기 널려져 빛을 뿌리고있었다. 때때로 별찌들이 휙, 꼬리를 길게 끌며 언뜻언뜻 나타나기도 한다. 자그마한 별이 밤하늘을 꿰지르며 쏜살같이 어디론가 날아가고있다. 아름다운 밤하늘의 세계였다. 순정이는 언제인가의 그때처럼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순정이의 눈동자에 별들의 황홀경이 담겨졌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랑 만든 <광명성1호>가 어디에 있습니까?》 순정이의 물음에 나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광명성1호》는 보이지 않고 별들만이 그 무엇을 속삭여주는듯이 끊임없이 깜빡거리였다. 나는 순정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순정아, 저기 저 별들중의 하나가 바로 <광명성1호>란다. 이제 너희들이 어른이 된 그때에 가서는 저 하늘에 <광명성>2호, 3호를 비롯하여 많은 우리의 위성들이 떠있게 될게다. 순정이 아버지가 한생을 바쳐 만든 첫 인공지구위성의 뒤를 이어서 말이다.》 순정이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고요한 밤하늘만 열심히 쳐다보고있었다. 나 역시 순정이와 함께 하늘을 쳐다보며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내 눈에는 저 별빛들이 순정이 아버지의 사색깊은 눈빛같았고 저 하늘 어디선가 순정이 아버지의 선명한 그리고 의미깊은 목소리가 들려오는듯싶었다. 《순정아, 내 이제 장군님께 더 큰 기쁨을 드리고 돌아오마. 잘 있어라.…》 순정이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듯 말없이 걸음만 옮겨짚었다.… 다음주 국어시간이였다. 나는 이미전에 한 약속대로 편지들을 모두다 바치라고 말하였다. 학생들은 앞을 다투어 편지들을 가져왔다. 교탁에는 편지더미가 쌓여졌다. 그속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롱구선수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었고 신념과 의지의 화신 리인모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도 들어있었다. 또 자기의 삼촌이나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도 많았다. 《자, 이제는 더 없습니까?》 나는 학생들을 한명한명 바라보았다. 이때였다. 순정이가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나더니 하얀 편지봉투를 쥐고서 교탁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낼듯말듯 하더니 그 편지를 꼭 쥐고서 조심스럽게 쳐다보는것이였다. 《저 선생님, 꼭 편지에 씌여진 주소대로 보내줍니까?》 《?》 나는 순정이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애의 눈에는 간절한 빛이 그득하였다. 《그렇구말구. 순정이야 글짓기를 제일 잘하니 선참으로 보내주겠습니다.》 나는 순정이의 마음을 밝게 해주느라고 우정 큰소리로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제서야 순정이는 마음이 놓이는지 내앞으로 손에 쥐고있던 편지를 살며시 내밀었다. 편지봉투에 눈길을 가져가던 나는 그만 흠칫 놀랐다. 글쎄 그 편지의 봉투에는 《우리의 아버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삼가 드립니다.》라고 씌여져있는것이 아닌가. (아니?!)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장군님께 편지를 올렸다는 이야기들은 이미전에 많이 들어왔지만 이렇게 내 눈앞에서 펼쳐질줄은 정말 천만뜻밖이였던것이다. 그 애들은 다 우리 장군님께 큰 기쁨을 드렸거나 나라의 뛰여난 재간둥이라는 자랑을 안고 편지를 올렸지만 순정이는 그렇다할 자랑도 없고 더군다나 얼마전에 아버지까지 잃은 슬픔을 안고있는 한 평범한 소녀가 아닌가. 나는 순정이를 바라보았다. 순정이는 나를 똑바로 마주보면서 챙챙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선생님, 어제 밤에 저는 아버지장군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전 편지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다고 썼습니다. 꼭 장군님께 드려주십시오, 네?》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몇번이나 외운 모양인지 순정이의 입에서는 이 말들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만 가슴이 뭉클했다. 작가가 될것을 열망하던 순정이가 지금은 피타는 연구로 한생을 살아야 할 과학의 길, 아버지가 걸어갔던 그 길에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바라보는것이다. 과학자! 그 순간 나의 눈앞에는 불현듯 순정이 아버지와 순정의 손에 감겨져있던 하얀 붕대가 서로 엇갈려 안겨왔다. 참으로 생활이란 이렇게 묘한것인가? 나는 편지를 읽어보았다. 평범한 중학교 1학년생이 쓴 편지인지라 화려한 글줄도 없고 요란한 표현도 없었다. 지어 어딘가 서툴게 쓴 문장들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밤새껏 생각하고 생각하고 고르고 골라 쓰고 또 쓴 이 편지에는 비록 소박하고 어설프기는 해도 진정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대를 이어 과학과 기술로써 충정을 다해가려는 이름없는 소녀의 불타는 맹세와 진정이 충만되여있었다. 나는 순정이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순정학생, 참 장합니다. 정말 좋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이 편지를 꼭 아버지장군님께 올립시다. 그러면 아버지장군님께서는 정말 기뻐하실겁니다. 그리고 순정이를 칭찬하실겁니다.》 《선생님!》 저으기 흥분된 나를 바라보며 순정이는 활짝 웃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아이답지 않게 제법 근엄한 얼굴로 창밖에 가없이 펼쳐진 하늘 아니, 아득한 우주공간을 바라보는것이였다. 나는 새로운 《광명성2호》 아니, 수많은 위성들이 벌써 이 소녀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지고있음을 잘 알고있었다.
주체88(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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