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8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경일, 그림 류명구 1
숙제를 함께 하자고 해연이네 집에 갔던 은애는 그만 배를 그러쥐고 웃을번 했습니다. 처음엔 깜짝 놀랐지요. 해연이가 책상우에 어머니의 사진을 놓고 앉아 울고있었거던요. 마치 엄마가 돌아올수 없는 길로 멀리멀리 떠나가기나 한듯이 말이예요. 하긴 멀리 가기야 갔지요 뭐. 그의 어머니가 아침에 100리나 넘는 외가집에 갔으니까요. 그렇다고 울다니요. 래일쯤엔 꼭 돌아오겠는데… 자기도 어머니가 벌써 한달째나 발전소 언제건설장에 가있어 너무 보고싶어서 가끔 눈물이 날 때가 있긴 했지만 저렇게까지 울지는 않았답니다. 어쨌든 은애는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해연아! 너 왜 그러니? 엄마가 보고싶어서?…》 두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해연이가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재차 물으니 해연이는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럼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니?》 《아_니,》 해연이가 울먹이며 다시 도리를 저었습니다. 《그럼 왜?》 《글쎄 엄마들이 그러는데 내가 우리 엄마를 하나도 안 닮았대. 아기때 산원에서 다른 애와 바뀐 모양이래. 그게 정말일가? 그럼 진짜 우리 아빠, 엄만 어디에 있을가?…》 그리고는 팔굽에 코를 박고 또다시 흐느끼는것이였습니다. 죄스럽게도 은애가 깔깔 웃어버린건 이때였답니다. 좋은 일, 슬픈 일 함께 나누자고 약속했던걸 까맣게 잊고말입니다. 글쎄 은애가 어떻게 참을수 있습니까. 배를 그러쥘 정도로 웃음이 나오는걸… 참, 엄마들은 다른 집 아이들을 놀려주기가 무척 재미나는 모양입니다. 은애도 이미전에 겪어보았으니까요. 언젠가 하루 은애가 개울가를 지나는데 빨래하던 엄마들이 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은애야, 너도 이젠 소학교졸업반인데 친엄마를 찾아가야 되지 않니?》 순간 은애는 가슴이 섬찍했습니다. 《친엄마라니요?》 《아니, 저 애가 아직 모르는구만.》 《누가 대주지 않으면 알턱이 있나. 원 쯔쯔…》 은애는 금시 얼굴이 빨개지며 맵짜게 눈을 치떴습니다. 《거짓말 말아요! 난 우리 엄마를 꼭 닮았는데요 뭐!》 그리고는 제비처럼 집으로 날아들어와 어머니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번갈아보았습니다. 곱게 쌍까풀진 눈에 휘여진 속눈섭, 오똑하게 솟은 코날, 앵두알같은 입술… 어느 하나 어머니와 비슷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흥!》 마침내 은애는 재봉기앞에 앉아있던 어머니가 깜짝 놀랄만큼 요란하게 코웃음을 쳤습니다. 후엔 그 일을 씻은듯 잊어버리고말았습니다. 그런데 해연인 롱담 세찬 어머니들한테 멋있게 걸려든셈입니다. 하긴 해연이의 생김생김이 엄마를 적게 닮은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남의 어머니라니요. 해연이 엄마가 얼마나 딸을 애지중지 고와한다구요. 게다가 생물학연구사인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머리가 또한 얼마나 좋다구요. 은애가 만약 시치미를 떼고 《해연아, 네 실력이 학급에서 세번째쯤 될가?》하고 물어보면 아마 노여워서 며칠동안 자기와 말도 안할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은애는 해연이를 겨우 달래서 함께 숙제도 하고 공기돌놀이, 줄넘기도 했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은애는 문득 생각이 나서 액틀속의 가족사진을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사진속에서 고운 미소를 머금은 어머니가 살뜰히 은애를 바라봅니다. 그곁에선 어머니의 청신한 아름다움을 쏙 빼여닮은 은애가 행복에 겨워 웃고있습니다. (참, 나도 만약 우리 엄마를 닮지 못했으면 마음이 어떨가.…) 그제야 은애는 해연이의 슬픔이 자연히 리해되였습니다. 정말 해연이가 엄마를 닮지 않았다니 가슴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한편 새삼스러운 기쁨과 긍지가 가슴가득 차올랐습니다. (난 세상에서 제일 고운 우리 엄마를 꼭 닮았다. 야, 정말 기뻐!) 그런 생각을 하니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또다시 강물처럼 밀려듭니다. 보름이면 온다던 어머니가 또 다른 보름이 지나도록 오지 않으니 은애는 애가 타고 야속하기까지 했습니다. 공부시간에도 가끔 엄마가 생각나 멍하니 창문을 내다볼 때도 있습니다. 몇번씩이나 그러니 선생님한테 엄하게 지적을 당하기도 했답니다. 은애는 호, 한숨을 내긋고나서 책상앞에 다가갔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참!…》하고 이마를 쳤습니다. 어제 저녁에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책상우에 그대로 댕그라니 놓여있었거던요. 아버지가 오늘 꼭 부치라고 했는데 그만 깜빡 잊어버렸던것입니다. 은애는 편지의 속지를 다시 꺼내보았습니다. 은애의 글씨로 또박또박 쓴것이지만 실은 자기것이 정말 옳을가 하고 의문이 가는 편지였답니다. 은애는 소리내여 읽어보았습니다.
그리운 어머니에게. 어머니, 안녕하십니까. 언제공사장에 가계신 어머니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앓지나 않으시는지요. 나도 건강하여 공부도 조직생활도 잘합니다. 선생님에게서 꾸지람 한번 듣지 않고 숙제도 잘하고 맡겨진 학과학습도 아주 잘 합니다. 아버지도 건강한 몸으로 기관차를 몰고있습니다. 어머니, 집걱정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그래야 어머니는 떳떳한 혁신자가 될수 있습니다. 발전소가 빨리 일떠서야 우리 원산시내 인민들뿐만아니라 우리 가정의 행복도 더욱 꽃펴납니다. 위훈을 세우고 돌아올 어머니를 손꼽아 기다리며 이만 쓰겠습니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딸 송은애 올림.
두번세번 읽어보았지만 이 편지는 은애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꼭 남의 편지를 읽은 기분입니다. 한참 골똘히 생각하던 은애는 결심한듯 의자에 앉아 편지의 남은 뒤면에 더 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편지라는건 꼭 이렇게 써야 하나요? 우에 쓴건 어제 밤에 아버지가 다 불러준거예요. 피, 아버지 미워. 거짓말만 쓰게 하는거. 난 열한살이기때문에 편지를 혼자서 제대로 못 쓴다는거예요. 엄마, 보고싶어요. 어제 아침에 보니까 해연이가 글쎄 엄마 손 잡고 학교에 가지요 뭐. 그걸 본 나는 문득 엄마 생각이 또 났어요. 그래 나무뒤에 서서 한참이나 발전소가 있는 하늘가를 바라보며 엄마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랑 애들이 교실에 못 들어가고있었어요. 청소당번인 나한테 열쇠가 있었거던요. 선생님이 《은애, 요새 어떻게 된거예요. 매일 지각하지, 숙제도 잘 안해오지. 한번 어머닐 만나봐야겠어요.》하고 말씀했어요. 아직 선생님은 어머니가 발전소건설장에 간걸 몰라요. 내가 그만 눈물이 나서 입술을 깨무니까 선생님은 《은애, 좀 봐요. 그렇게 마음이 약해가지고야 어데 쓰겠어요.》하면서 나에게 다가와 잔등을 쓸어주는것이였어요. 엄마, 승무에 나간 아버진 오늘 저녁에 못 들어온댔어요. 그럼 래일 아침엔 또 나 혼자 밥해먹어야 하고 머리태를 땋아야 해요. 엄마, 이젠 밥도 나 혼자 할수 있고 빨래도 내절로 해요. 그런데 잘은 못해요. 엄마, 나 보고싶지 않나요? 보고싶지요? 이제 두밤만 더 자면 벌써 한달이야요. 빨리 와요. 어머니, 한번만이라도 어머니를 꼭 안아보고싶어요.…
2
오늘 하루는 은애에게 있어서 정말 기분나쁜 날입니다. 아침부터 그랬습니다. 밥을 안치고 아버지의 승무복을 정성다해 다린다는노릇이 그만 팔소매를 태워먹었거던요. 주먹만 한 밤색얼룩이 진하게 났습니다. 아버지의 다른 승무복은 빨래줄에서 물을 뚝뚝 떨구고있습니다. 《이걸 어쩌나!》 금시 울가망이 되여 버릇처럼 입술을 깨무는데 이번엔 마당청소를 하고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다급히 소리칩니다. 《은애야! 이거 밥이 타지 않니?》 아야야, 밥가마!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나가는데 벌써 매캐한 밥탄내가 쿡 코를 찌릅니다. 《앗! 따가.》하며 가마를 열어보니 이게 뭐겠어요. 희귀한 검은찹쌀밥을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 해도 진저리를 칠만큼 밥은 까맣게 타버린 뒤였습니다. (야단났구나! 차라리 어제처럼 설기나 했으면!…) 이젠 새로 지을 시간도 없습니다. 해결책이 아버지의 얼굴에 씌여있기나 한듯 은애는 기대가 간절하게 어린 눈빛으로 아버지를 올려다봅니다. 아버지는 그만 허거프게 웃어버렸습니다. 《어쨌든 우리 은애 모두 잘하는것뿐이야. 선밥, 탄밥 잘하고 그릇 잘 깨고 늦잠 잘 자고… 확실히 엄마보다 나아.》 은애는 지금껏 어머니가 음식을 태우거나 부주의로 그릇을 떨구거나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걸 본적도 들은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말은 말끔히 거꾸로 들어야 할판입니다. 엄마보다 낫단 말도 실은 엄마보다 못하다는 말이고 엄마를 전혀 닮지 않았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여느때 같으면 이런 창피를 은애는 펑펑 쏟뜨리는 《눈물》로 깨끗이 헹구었을것입니다. 얼리느라 쩔쩔매는 아버지의 모양을 얼굴 가리운 손가락짬으로 깨고소하게 훔쳐보면서 말이지요.
마침내 그 시각이 왔습니다. 첫순간엔 아버지도 기막힌듯 아무말없이 내려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더니 태운 옷을 쳐들고 한참 보다가 머리를 기웃거렸습니다. 《옷을 잘 다리느라고 밥을 태웠다.… 이래야 문법상 맞는데 이건 뭘가. 옷을 태우느라고 밥도 태웠다… 에이, 우리 은애가 하는 일은 풍부한 조선말로도 표현이 잘 안되는구나, 허허…》 무안해하는 애를 보고 아버지가 사려깊게 주사맞은 자리 비벼주듯이 우스개를 피웠습니다. 《아니예요, 아버지. <옷을 태우고 너무 속상해하다나니 밥이 타는줄도 몰랐다.>어때요?》 《오, 맞았다! 우리 은애가 신통한데?》 아버지에게는 은애의 기발한 표현력이 밥 태우고 옷 태운게 대수롭지 않을만큼 흠뻑 대견한 모양입니다. 밖에선 소륵소륵 가을비가 내리고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탄 자리를 가리우려고 작업하러 가듯이 소매를 걷어입고 출근길에 나섭니다. 그걸 보자 은애는 제자신이 미워났습니다. (난 왜 자꾸 이런 일만 치게 되는걸가.…) 그날 공부가 끝난 다음이였습니다.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은 오늘 저녁에 학부형회의가 있다는걸 다시금 강조했습니다. 은애는 그만 속상해졌습니다. 아버지에게 말도 비쳐보지 못했거던요. 하긴 뭐 말했대도 승무에 나간 아버지가 오지 못할건 당연했기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인차 집으로 돌아왔지만 근심에 잠겨 숙제마저 제대로 할수가 없었습니다. 마당에서 혼자 서있는데 인민반장어머니가 대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은애야, 너 왜 그러니?》 《큰어머니, 우린 학부형회의를 해요. 그런데 갈 사람이 없어서…》 반장어머니는 은애의 볼을 닦아주고 꼭 껴안아주었습니다. 《내가 참 무관심했구나. 너의 엄마를 이제 무슨 낯으로 보겠니.… 나하고 같이 가자.》 《큰어머니, 정말이나요?…》 《그래, 이제부터라두 내 큰엄마구실을 진짜로 하마.》 은애는 반장어머니의 손목을 꼭 잡고 콩콩 뛰며 학교에 갔습니다. 학부형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반장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은애야, 엄마 보고싶지 않니?》 그러자 은애는 금시에 새무룩해졌습니다. 《우리 엄마 말이예요. 내 친엄마가 아니라는 말이 맞는것 같애요. 그래서 내가 곱지 않나봐요. 발전소에 가서 인차 오지두 않구… 아예 오지 않을지두 몰라요.》 《호호호.》 반장어머니가 그만 동네가 떠나갈듯이 내는 웃음소리였습니다. 《이 앤 엉뚱하기란… 그런 허망한 말을 하면 못써. 너의 엄마가 들었단 까무라치겠다. 너도 알지 않니. 지금 발전소건설로 이 원산시만 아니라 온 도가 부글부글 끓고있는걸… 숱한 녀맹원들중에서 너의 엄마가 맨처음 건설장에 지원나간걸 너도 알지 않니. 쉽지 않은 일이야. 은앤 그런 엄말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돼.》 은애는 숨을 죽이고 솔깃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은앤 정말 엄마를 닮지 않은것 같애.》 《예? 내가요?…》 《응, 그래. 이악하고 정열적인거랑, 승벽이 센거랑.》 은애는 대뜸 입안에 밤알을 두알씩이나 물었습니다. 《왜요, 큰엄마. 모두 내가 엄마를 꼭 닮았다는데…》 《겉이나 닮으면 뭘해. 이자 선생님한테서 듣자니 요새 실력도 퍽 떨어진대? 동무들과도 다투구… 엄마를 보렴. 살뜰하지, 인정있지, 어려운 일엔 남먼저 뛰여들지… 은애도 엄마같은 사람이 돼야지?…》 이날 밤 은애는 인차 잠자리에 들수가 없었습니다. 반장어머니의 말이 자꾸 귀전에 울려왔으니까요. 지금껏 엄마를 꼭 닮았다고 해서 얼마나 긍지를 느껴온 은애였습니까. 그런데 하나도 닮지 않았다니… (큰어머닌 엉터리야. 안 닮긴 뭐 안 닮아. 생김새가 꼭같으면 닮은거지. 속마음은 이담에 크게 되면 저절로 닮게 될걸.…) 은애가 혼자 텔레비죤을 보고있는데 뜻밖에도 선생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은애는 와뜰 놀라 뛰쳐일어났습니다. 글쎄 선생님이 량손에다 과일이랑 먹음직한 간식이랑 가득 들고 들어서는것이였어요. 《은앤 나빠요. 어머니가 멀리 가셨단 말도 안하고… 하긴 내가 미리 알았어야 하는건데…》 그러자 은애의 입귀가 저도 모르게 실그러지고 급기야 구슬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내렸습니다. 《못나게 또 울어요? 자, 어서 책을 꺼내놔요. 우선 공부부터 하자요.》 한참이나 어려운 문제들을 차근차근 설명해준 선생님은 자체로 풀어보라고 하시고는 부엌에 나갔습니다. 은애가 그렇게도 팔소매를 당기는데도 선생님은 가마랑 반짝반짝하게 닦고 부엌을 알뜰히 거두어놓았습니다. 《자, 선생님이 매일 저녁 들릴테니 함께 복습도 하고 예습도 하자요. 알았지요?》 《예.》 은애의 가슴엔 크나큰 기쁨이 이랑지며 파도쳐왔습니다. 그렇지만 대문가에 한참이나 서서 선생님을 바래울 때엔 그 기쁨이 인차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둠속을 헤치며 총총히 걸어가시는 선생님을 보았기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집에도 식구들이 많은데다 두살난 애기까지 있는데 밤늦게까지 자기때문에 애쓰고계셨으니…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제부턴 공부랑 잘하고 집일이랑 잘하겠습니다.… 정말 모든걸 잘해서 선생님이 바라는 훌륭한 사람이 꼭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젠 마음을 놓으십시오.)
3
푸른 하늘이 더욱더 높아보이는 상쾌한 아침입니다. 좋은 일은 마치 꼬리잡이하듯 련이어 찾아드는듯싶습니다.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가 아침일찌기 왔기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돌아온것보다는 퍽 못했지만 그래도 은애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는 덤벼치며 숨가쁘게 편지를 펼쳐들었습니다.
꿈결에도 보고싶은 은애야. 엄마대신 집안일도 도맡아하고 아버지도 도와드리느라고 우리 은애가 정말 혼나겠구나. 어리광밖에 모르던 네가 밥을 짓고 빨래하는 모양을 그려보니 웃음이 나기도 하고 눈물겹게 대견하기도 하고… 난생처음 은애가 쓴 편지를 보고 엄만 몹시 기뻤단다. 그런데 엄마 생각나서 가끔 운다니 이 엄만 하루종일 일을 제대로 못했단다. 우리 은애가 좀더 강했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이다. 은애야, 이제 한생을 사느라면 기쁜 날이나 좋은 일도 많지만 넘기 어려운 고비도 있게 된단다. 지금처럼 작은 난관앞에 투정이나 부리고 눈물을 흘려서야 이담에 커서 어떻게 제구실을 하겠니. 엄마넨 아침일찍부터 저녁늦게까지 맞들이와 질통을 지고 언제를 쌓고있어. 밤엔 천막에서 잠을 자고.… 돌격대원들과 엄마들이 이 모든 고생을 왜 달게 여기겠니. 바로 너희들의 앞날을 위해서야. 더 풍만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질 부강조국의 래일을 위해서야. 얼마전에 이 험한 건설장을 찾아주셨던 아버지장군님께선 정말 용타고, 맨손으로 크고도 큰 발전소를 일떠세우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난다고, 자신께선 돌아가서도 잠이 올것 같지 않다고 뜨겁게 말씀하셨단다. 그 말씀을 전달받고 우리 엄마들은 왕왕 울음을 터쳤어. 감격의 눈물을 말이야. 지금은 장군님 보내주신 갖가지 기계들이 온 건설장에 거세찬 동음을 울리고있단다. 은애야, 이 엄만 하루에도 열번, 스무번이나 네가 보고싶어. 그러나 지금처럼 공부도 게을리하고 나약하게 울기 잘하는 네 모습은 보고싶지 않아. 언제나 명랑하고 씩씩하게 살아라. 그러면 어머닌 지치고 힘겹다가도 저절로 새힘이 날것 같애.… 편지를 여기까지 읽었는데 은애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머니가 나약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처럼 당부했는데도 말이예요. (내가 참말 어머니를 하나도 닮지 않은게 아닐가?…) 어머니의 그 뜨겁고 절절한 마음을 은애는 거의나 모르고있은것입니다. 이거야말로 자기가 어머니를 채 닮지 못했다는 뚜렷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은애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엄마, 나 이제부터 공부랑 집안일이랑 더 열심히 할래요. 씩씩하게 자랄래요.) 오후에 은애는 어머니의 편지를 꼭 품은채 해연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활짝 열린 부엌이며 방안에도 해연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터밭에서 남새솎음을 하고있던 할머니가 대주어서야 뒤뜨락에 가보았습니다. 은애는 해연이를 보자 또다시 어리둥절해지고말았습니다. 제 말마따나 해연은 고운 《바다제비》라는데 이건 꼭 굴속에서 금방 기여나온 두더지라고나 할가요. 얼굴은 흙먼지가 올라 덞어지고 손은 온통 새까맣고 엉치엔 도꼬마리씨를 잔뜩 붙인 해연이가 글쎄 맨땅에서 네발걸음을 하고있는거예요. 하여튼 해연이네 집에 오면 매번 웃음나는 일뿐입니다. 그래도 이번엔 간신히 웃음을 꼭 깨물고 물었습니다. 《너 대체 뭘하니? 난 또 꼬마돼지가 우리에서 뛰쳐나왔나 했지?》 해연이는 《조심!》하며 손을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왕청같이 되물었습니다. 《은애야, 너 개미가 어떻게 보는지 아니?》 은애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개미한테 눈이 있을게 뭐야, 눈대신 더듬뿔이 있지 않니.》 해연이는 한숨을 내쉬였습니다. 《너 참 한심하구나. 눈이 없다니, 개미눈을 겹눈이라고 해. 그걸 관찰하는중이야.》 그제야 은애는 깨도가 되였습니다. 부지런하고 꾸준한 개미와 함께 사방 기여다니자니 오죽했을라구요. 굴뚝밑에까지 말이예요. 《넌 아버지가 생물학자니까 곤충들까지 좋아하는구나.》 웬일인지 해연이의 눈은 기쁨과 긍지로 새별처럼 빛났습니다. 《응, 난 꼭 박사가 될래.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내 머리와 관찰력은 아버지를 고대루 닮았대, 일솜씨는 엄마를 닮구. 저길 좀 봐.》 그는 해비치는 옆뜨락을 가리켜보였습니다. 《내가 가꾸는 꽃밭이야.》 금잔화랑 백일홍이랑 여러가지 아름답고 싱싱한 꽃송이들이 해연이를 향해 한들한들 손을 흔드는듯 했습니다. 정말 해연이는 어머니의 일솜씨를 닮은 모양입니다. 그의 어머닌 화초원의 소문난 원예사인데 얼마나 일솜씨가 알뜰한지 모른답니다. 해연이가 다시금 즐겁게 속삭입니다. 《아빠도 닮구 엄마도 닮았다니까 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 은애는 저도 몰래 의기가 소침해졌습니다. 글쎄 요전까지만 하여도 엄마의 얼굴을 안 닮았다고 엉엉 울던 해연이가 지금은 얼마나 행복해보였겠습니까. 그러자 《겉이나 닮으면 뭘해.》하며 타일러주던 반장어머니의 말이 아프게 가슴을 푹 찌릅니다. 아무튼 해연이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러자고 이미 약속한 사이였으니까요.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은애 어머니의 편지도 함께 보았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은애의 가슴속엔 새로운 결의가 솟구쳐올랐습니다. (이제 두고봐. 나도 훌륭한 어머니를 닮은 딸이 꼭 될테야.)
4
은애는 그날부터 내내 어머니를 생각했고 어머니처럼 살려고 애썼습니다.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던 어느날엔 우정 비옷을 입지 않고 학교에 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감기에 걸려 혼나기도 했습니다. 홀로 자는 밤엔 창문을 열어놓고 잠자리에 들군 했습니다. 건설장에서 자는 엄마를 생각하면서요. 공부에도 이악하게 달라붙었습니다. 요전번 학과경연에선 끝내 학년적으로 2등의 영예를 쟁취하고야말았습니다. 선생님은 지금처럼 공부하면 다음엔 1등도 문제없다고 은애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은애는 조금밖에 기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아예 1등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가. 그럼 아버지, 어머니도 몹시 기뻐했을텐데. 우리 엄만 항상 1등인데…) 어느날 저녁 승무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가 은애에게 이젠 혼자서 편지를 쓰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요. 《야, 좋다!》 은애는 기쁨에 겨워 웨쳤습니다. 《아버지! 내가 쓰고싶은 말 다 써두 되지요? 이젠 엄마한테 거짓말 안해두 되지요?》 그러자 아버진 웃으며 말했습니다. 《은애야, 그건 하나도 거짓말이 아니였단다. 아버진 그게 진짜로 될걸 알고있었단다. 네가 얼마나 몰라보게 달라졌는지 아니?…》 은애는 즐거운 마음으로 책상에 마주앉아 고개를 기우뚱거리다가 연필을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 엄마, 나 이젠 밥이랑 잘해요. 기본은 밥물을 잘 잡는거였어요. 가마를 열지 않고 냄새만 맡아도 설었는지 익었는지 다 알아요. 집안거두기도 얼마나 재미나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진 말이예요. 엄마도 알뜰한데 난 어머니 두명 합친것만 하대요. 이제 커서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피가 나게 할거래요. 체! 피가 나면 아프기나 했지 좋을게 뭐예요. 엄마, 어제가 내 생일인거 알지요? 저녁에 아버지직장에서랑 선생님이랑 오셨댔어요. 생일기념품들을 가지고말이예요. 아버지네 세포비서아저씨가 내 학습장이랑 5점맞은 시험지랑 봐주었어요. 내가 거둔 집안팎도 여기저기 다 살펴보겠지요 뭐. 그런 다음 그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지 아나요? 나도 엄마와 함께 발전소를 일떠세우고있대요. 언제가 높아진만큼 내 키도 자랐대요. 난 너무 우스워서 막 웃었지요 뭐. 난 아직 쪼꼬만데… 어제 내 생일을 차려주느라고 왔던 인민반장어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이젠 우리 은애가 엄마를 꼭 닮았구나. 겉만 아니라 속도 말이다.》 이렇게 말씀했어요. 그 말을 듣고 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엄마, 그러니 이젠 마음을 놓으세요. 어머니를 꼭 닮은 딸답게 공부랑 집일이랑 모든걸 다 잘할래요. 반장어머니가 이제 지원물자를 가지고 가는 차편에 같이 가자고 했어요. 난 너무도 좋아 방안이라는걸 생각 못하고 콩당콩당 뛰였어요. 이제 가면 난 꼭 키를 대비해볼래요. 언제와 말이예요. 그럼 엄마, 아니 어머니. 기쁘게 만날 그날까지 안녕히 계셔요. 딸 송은애 올림. 주체97(2008)년 ×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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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보름남짓이 지난 어느날, 은애는 인민반장어머니랑 함께 발전소건설장으로 갔습니다. 신바람나게 달리는 뻐스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은애는 저도 모르게 소리높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4월도 봄명절 우리 장군님 초소의 병사들 찾아가는 길 …
마침내 뻐스는 건설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어느새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어머니들이 마구 달려왔습니다. 맨 앞장에서 손에 쥔 머리수건을 날리며 달려오는것은 은애 어머니였습니다. 《엄마!…》 흙냄새가 몽클 풍겨나는 어머니의 품에 은애는 새처럼 날아들었습니다. 꿈결에도 안겨보고싶던 품입니다. 방울방울 눈물이 쏟아지려는 순간 은애는 용케도 입술을 깨물고 참아냈습니다. 다만 어머니의 축간 얼굴을 보고 또 보며 하염없이 불러봅니다. 《엄마… 엄마…》 어머니도 기쁨과 행복에 겨워 딸을 꼭 껴안고 그냥 볼을 비빕니다. 이때 곁에 다가온 어머니들이 은애를 엄마품에서 뺏아냈습니다. 그리고는 저마끔 은애를 붙잡고 탄성을 올립니다. 《네가 은애냐? 아이고, 요 얼굴도 어쩜!…》 《글씨도 곱더니 얼굴은 더 예쁘구나. 은애야, 네 편지를 읽고 우리 엄마들모두 울었단다. 넌 정말 기특해.…》 《그래그래. 너의 편지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힘을 주었는지 모른단다.》 그제야 은애는 제 편지를 다른 엄마들도 다 보았다는걸 알게 되였습니다. 이윽하여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며 은애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물었습니다. 《엄마, 언제가 어데 있나요?》 《앞을 보렴. 저게 바로 언제가 아니냐?》 은애는 우뚝 서버렸습니다. 왜 뻐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솟은 언제를 못 보았을가요. 작아서만 눈에 안 보이는것이 아니였습니다. 너무너무 크고 높아서 은애는 인차 언제를 알아보지 못한거랍니다. 흙이나 돌로 쌓은 사석언제인데다 너무도 까마득히 높이 솟아서 산인줄 알았으니까요.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래졌던 은애는 갑자기 시무룩해졌습니다. 어머니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은애야, 왜 그러니? 어디 아프냐?》 은애는 입술을 삐주름히 내밀고 토달거렸습니다. 《비서아저씬 거짓말쟁이예요. 내가 언제만큼 컸다고 했는데… 내 키가 어디 언제하구 대상이나 되나, 헹.》 그러자 어머니는 소리내여 호호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맑은 눈매로 그윽히 은애를 내려다봅니다. 《비서아저씨가 거짓말한게 아니지 뭐. 그건 네가 저 언제의 기상처럼 담차구 씩씩하게 자라니까 기뻐서 그런거였지. 은애야, 수많은 아저씨들이랑 엄마들이랑 쌓고있는 저 언젠 우리 장군님의 뜻이구 우리 조국의 억센 모습이야. 그래서 엄마도 저 언제를 닮고싶어하는거란다. 하늘같으신 장군님뜻을 담구 억센 조국의 모습을 닮고싶어…》 은애는 다시한번 놀랐습니다. 자기는 그리도 엄마를 닮고싶었는데 엄마는 엄마대로 저 언제를 닮고싶다니 말이예요. 그러고보니 엄마를 닮는다는 말은 결국 아버지장군님의 뜻과 기상을 닮고 내 조국의 모습을 닮는다는 말이나 같았습니다. 은애는 환희와 희망에 넘친 맑고도 순진한 눈빛으로 어머니와 함께 언제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습니다. 산악같이 일떠서는 언제는 은애를 향해 두팔 벌리고 어서 오라 손저어 반기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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