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1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리 창 봉
《충국아, 너 좋겠다야.》 방학숙제장을 검열하던 선생님이 잠간 고개를 돌린 사이에 옆에 앉은 유성이가 속삭이였습니다. 《왜?》 유성이는 나직이 물었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시산림경영소에 간다지?》 《응, 그래서!》 머리를 끄덕이는 충국이의 입이 벙글써 열리며 함박꽃같은 웃음이 피여났습니다. 이번에는 충국이가 유성이의 귀를 간지럽히며 소곤거렸습니다. 《내가 이사간 다음에 놀러오라. 우리야 둘도 없는 딱친구가 아니니.》 선생님이 돌아서자 두 아이는 놀란 자라들처럼 목을 움츠렸습니다. 의진리산림감독원을 하는 충국이 아버지가 시산림경영소로 조동된다는것은 온 마을이 아는 사실입니다. 충국이네가 사는 마을은 강계시에서 50리가량 떨어진 산골마을입니다. 학교도 작은 분교였습니다. 쉬는 날 강계시에 사는 삼촌네 집에 놀러갈 때면 충국이는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층층이 높이 솟은 아빠트들과 번듯한 거리, 교통보안원의 지휘봉에 따라 씽씽 달리는 물매미같은 승용차들과 대형화물차들, 밤이면 별무리가 내려앉은것 같은 장자강반의 불야성. 보면 볼수록 감탄을 자아내고 희한하기만 하였습니다. 그가운데서도 충국이의 마음을 제일 끈것은 풍치수려한 곳에 자리잡고있는 강계 2.16예술전문학교였습니다. 이름난 가수가 되려는 꿈을 안고있는 충국이는 예술전문학교의 성악실창문앞에서 한참씩이나 서있다가 돌아서군 하였습니다. 《내가 합격되였을가? 빨리 여기 와서 공부했으면…》 충국이는 학교에서는 물론 군적으로도 손꼽히는 꼬마독창가수입니다. 지난 봄에는 도에서 진행된 꼬마들의 독창경연에서 2등을 했고 예술전문학교입학시험까지 쳤던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에도 하늘에서 별이 뚝 떨어진것 같은 놀랍고도 기쁜 일이 두가지씩이나 생겼습니다. 예술전문학교에서 입학통지서가 날아오고 아버지가 시산림경영소로 소환되여간다는것이였습니다. (야, 정말 멋있구나!) 충국이는 몸도 마음도 하늘높이 둥둥 떠오르는것만 같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도 예술전문학교에서 마음껏 희망을 꽃피울수 있게 된것입니다. (오늘 아버지가 소환장을 받아온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지. 빨리 수업이 끝나야 되겠는데.) 충국이는 자꾸만 엉치를 궁싯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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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버지가 오셨어요?》 충국이는 대문을 열어제끼며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재빨리 방문앞을 훑어보았습니다. 문앞에는 아버지의 신발이 놓여있지 않았습니다. 부엌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가 혀를 찼습니다. 《원 애두, 며칠 안 있어 예술전문학교학생이 되겠는데 옷주제가 그게 뭐냐. 아버지는 오시자마자 산에 올라가셨다.》 충국이는 벌쭉 웃으며 옆으로 돌아간 넥타이를 바로 잡았습니다. 《어머니, 우린 언제 이사간대요?》 《이산 무슨 이사냐. 아버지가 한두해 더 있다가 경영소로 올라가겠다고 토론했다더라.》 《예?!》 충국이의 둥그스름한 얼굴이 대번에 시펄뚱해졌습니다. 《아버지가 왜 그러신대요?》 어머니가 충국이의 옷깃을 바로 잡아주며 말했습니다. 《너의 아버진 저 농계골의 돌산에 나무를 마저 심고야 올라가겠다는거다.》 《농계골이요?!》 충국이는 어깨가 축 처져 방안으로 들어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봄내 여름내 늘 산에서 살며 나무모를 키우고 나무를 심어온 아버지, 어느 골짜기에 이깔나무가 몇대 있고 어느 산에 잣나무가 몇대 있다는것까지 손금보듯 아는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온 도가 다 알고 누구나 존경하는 산림감독원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돌이 너무 많고 척박해서 나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돌산때문에… 충국이의 눈에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러니 아버진 내 희망보다두…) 충국이는 맥없이 책상에 턱을 고이고 앉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고까운 생각이 밀물처럼 마음속에 차올랐습니다. 소학교 2학년때 있었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 어느 여름날 충국이는 유성이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그애 이름을 부르며 대문을 열던 충국이의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놀라움과 함께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야, 멋있구나!》 글쎄 유성이네 집 뜨락에 딸기밭이 쭉 펼쳐져있고 애기주먹만큼이나 큰 딸기들이 소담하게 달려있는것이였습니다. 마당에서 딸기를 따먹던 유성이가 충국이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먹을 복이 있는데. 어서 먹어봐. 막 새큼달달해.》 유성이는 딸기 한알을 충국이의 입에 밀어넣었습니다. 《정말 맛있구나.》 충국이는 입을 짭짭 다시였습니다. 딸기가 절로 슬슬 녹으며 달달한 물이 목젖을 간지럽히는것이였습니다. 유성이와 경쟁이라도 하듯 딸기를 따먹고난 충국이는 부러운 눈길로 딸기밭을 둘러보았습니다. 《넌 좋겠다야. 이렇게 집앞에서 딸기를 따먹으니.》 《응.》 유성이가 조개살같은 혀로 빨간 입술을 핥으며 머리를 까딱거렸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심어준거야. 너두 아버지보구 딸기를 심어달라구 하려마.》 충국이는 입을 뾰족하게 내밀었습니다. 《피, 우리 집앞엔 맨 나무모야. 아버진 마당에도 나무모를 심었거던.》 유성이는 알수 없다는듯 눈을 깜박거리며 말했습니다. 《체, 그래두 딸기 몇포기 심을 자리야 없겠니. 내가 다음해에 딸기모를 다섯포기 줄테니 심어보라마.》 유성이는 큰 선심이나 쓰듯 몽툭한 다섯손가락을 펴서 내밀었습니다. 《정말이야?! 약속했어.》 충국이는 기뻐서 깡충 뛰기까지 하였습니다. 《자, 우리 손가락을 걸자.》 《좋아.》 《약속을 어기면 동무가 아니다.》 두 아이는 목소리를 합쳐 맹세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깔깔 웃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려던 충국이는 오똑 멈춰서서 말했습니다. 《유성아, 아예 이제 주려마. 다음해에 네 마음이 변하면 어쩌니.》 《뭐 이제?》 유성이의 눈이 딸기알만큼 커졌습니다. 《얘, 얘. 딸기는 봄에 꼭 심어야 해.》 《그래도 알겠니. 이제 심어도 살겠는지.》 유성이는 허리에 손까지 척 얹으며 장담하였습니다. 《걱정말아. 이 유성이가 한번 주겠다면 주는거지.》 《정말 줘야 해.》 충국이는 한번 더 다짐을 받고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봄이 빨리 왔으면.) 드디여 다음해 봄이 왔습니다. 충국이는 눈이 녹기 바쁘게 유성이를 다그어대다가 어른들이 밭갈이를 시작할 때 제손으로 직접 다섯포기를 옮겨왔습니다. (내가 직접 심어야지.) 맞춤한 자리를 찾아 앞마당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어디라없이 어린 나무모들이 촘촘히 서있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요까짓거 몇대가 없다구 큰일날가.) 충국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이깔나무모를 몇대 들추어냈습니다. 그리고는 정성껏 딸기모를 심었습니다. 이마에 보송보송 맺힌 땀방울을 씻으며 충국이는 흐뭇한 마음으로 자기의 《딸기밭》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딸기밭》이 아버지를 크게 노엽힐줄이야… 저녁에 산에서 내려온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고 어성을 높였습니다. 《이 녀석, 이게 무슨짓이냐, 응? 나무모를 뽑고 딸기를 심어? 이 못난 녀석.》 충국이의 입이 병아리부리처럼 삐죽이 나왔습니다. 《유성이는 아버지가 딸기밭을 만들어주었는데. 난 그래도 내 손으로 심었어요.》 충국이는 불시에 서러운 생각이 들어 엉엉 울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럼 다른 곳에 심어야지. 이렇게 나무모를 못쓰게 하면 되냐 말이다.》 아버지는 충국이의 눈물은 아랑곳없이 뿌리가 상한 나무모들을 쓸어만지며 못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버진 나보다 나무모가 더 귀한 모양이구나.) 뾰로통해진 충국이의 마음은 다음날에야 풀렸습니다. 새벽에 아버지가 집뒤의 땅을 일쿠고 딸기모를 옮겨심은것이였습니다. 어데서 얻어왔는지 서른포기씩이나 말입니다.… 《충국아, 어서 밥 먹자.》 어머니가 밥상을 올려다놓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충국이는 밥상은 쳐다보지도 않고 어머니의 팔에 매달렸습니다. 《어머니, 우리 당장 이사가자요. 예?》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충국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충국아, 아버지가 농계골 돌산때문에 마음쓰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니?》 《그 돌산이야 원래부터 나무가 없지 않았나요. 그 돌산 아니래두 아버지가 심어가꾼 나무가 얼마나 많다구…》 충국이의 말은 사실이였습니다. 어느적에 그랬는지 농계골에서는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자그마한 돌산이 생겨났습니다. 그 돌투성이 산에는 잡초와 잡관목만이 쓸쓸하게 돋아나있을뿐이였습니다. 충국이 아버지는 2년전부터 돌을 추어내고 흙을 날라다메우는 일을 하고있었던것입니다. 어머니는 충국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하게 말하였습니다. 《됐다, 어서 밥먹고 음악공부나 해라.》 충국이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씨, 내가 아버지에게 말해야지.》 《얘 충국아!》 어머니가 말릴 사이도 없이 충국이는 씽 뛰쳐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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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국이는 아버지를 찾아 농계골로 터벅터벅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붓으로 꼭꼭 찍어놓은듯 한 눈섭, 선이 굵은 코마루, 어딘가 고집스러운 인상을 주는 얼굴에 의문스러운 빛이 가득 어려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가 없었습니다. 산골에서 살며 산림감독원을 그만큼 했으면 됐지 왜 떠나려 하지 않는지 말입니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 아버지는 군대에서 제대되여 대학을 졸업하고 시산림경영소에 배치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진리산림감독원이 없다는것을 알고 자진해서 여기로 이사를 왔다는것이였습니다. 아버지는 늘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봄철이면 산불이 날가봐 산불막이보호선을 치느라 고생하고 여름철이면 산사태가 날가봐 뛰여다니는 아버지입니다. 가을철이면 산짐승들이 겨울나이를 잘하도록 자연동굴과 땅굴들도 손질해주고 겨울이면 채벌할 나무들을 선목하느라 숫눈길을 헤치는 아버지입니다. 길이 아니라 산우를 보며 걷는것이 아버지의 습관이였습니다. 두손을 바지주머니에 지르고 애꿎은 돌멩이를 툭툭 걷어차며 걷던 충국이는 갑자기 씩 웃었습니다. 며칠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던것입니다. … 날이 거의 밝을무렵. 침대에서 곤하게 쉬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습니다. 《여보, 산불!》 그바람에 콜콜 단잠을 자던 충국이도 부시시 잠을 깨였습니다. 뜨락에서 남새를 다듬던 어머니가 뛰여들어왔습니다. 《아니, 어디 산불이예요?》 아버지가 코를 벌름거렸습니다. 《이거 타는 냄새가 나지 않소?》 《예?!》 어머니와 충국이도 코숨을 들이쉬며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잠시후 어머니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호호호, 밥이 타서 방금 가마를 내놓았어요. 난 또…》 《뭐요? 허참.》 아버지는 허허 웃었습니다. 충국이도 뒤로 발랑 넘어져 깔깔거리구요. … 충국이가 생각하던대로 아버지는 돌산에서 일하고있었습니다. 산림리용반어머니들과 함께 돌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검스레한 흙을 채우고있었습니다. 《아버지!》 충국이는 다람쥐처럼 아버지에게 쪼르르 달려올라갔습니다. 질통에서 흙을 쏟고난 아버지가 마주내려왔습니다. 《아니, 네가 어떻게?…》 아버지는 의아해서 충국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충국이는 숨을 가라앉히고나서 물었습니다. 《아버지! 우리 이사 못 간다는거 정말이나요?》 《이사?! 허허.》 아버지는 충국이의 잔등을 철썩 때렸습니다. 《그래서 예까지 달려왔니?》 아버지의 너부죽한 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피여났습니다. 충국이의 이마에 난 좁쌀알같은 땀을 씻어준 아버지는 나직이 말했습니다. 《우리 저기 가서 좀 앉자.》 그들은 큰 너럭바위우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솨ㅡ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아버지가 충국이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 충국인 앞으로 커서 훌륭한 가수가 되겠다고 했지. 그것도 공훈국가합창단의 가수.》 《그러지 않구요. 그래서 예술전문학교시험에서 합격까지 되지 않았나요. 아버지, 빨리 이사가자요, 네?》 충국이는 간절한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전문학교야 삼촌네 집에서 다녀두 되지 않니. 삼촌이랑 삼촌어머니랑하구 이미 의논이 된거구.》 《그렇지만 아버지, 어머니랑 함께 있으면 더 좋지 않나요.》 충국이는 슬그머니 고개를 외로 비틀었습니다. 사랑스러운 눈길로 충국이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넌지시 물었습니다. 《충국아, 아버지가 무슨 노래를 좋아하더라?ㅡ》 《예?!》 충국이는 아버지가 사랑하고 즐겨부르는 노래를 잘 알고있었던것입니다.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이지요 뭐.》 충국이는 시틋해서 어깨까지 으쓱거렸습니다. 《그럼 어디 한번 불러봐라.》 충국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기분이 나야 노래를 부르지요.》 아버지가 충국이의 잔등을 철썩 쳤습니다. 《이 녀석 가수가 되겠다면서… 아버지가 청하는데 불러야지.》 충국이는 머리를 번쩍 들었습니다. 이 기회에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 아버지를 감동시키고 다시 졸라댈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부르겠어요.》 충국이는 앞가슴을 턱 내밀고 잠시 푸른 하늘과 련련히 뻗어간 산발들을 바라보며 감정을 잡고나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대가 한그루 나무라며는 이 몸은 아지에 피는 잎사귀 찬바람 불어와 떨어진대도 흙이 되여 뿌리 덮어주리라
시원하고 청아한 노래소리가 랑랑히 울려퍼졌습니다. 사색에 잠겨 앞산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참 잘 부르는구나. 그래 <흙이 되여 뿌리 덮어주리라>. 참 좋은 노래야.》 충국이는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여느때없이 생각이 많아진듯 한 아버지입니다. 충국이와 눈을 맞춘 아버지가 마주보이는 푸른 숲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충국아, 저 숲이 어떻게 저처럼 무성해지는것 같니?》 《그거야…》 충국이는 얼결에 입을 열었습니다. 《그거야 땅이 좋으니까 나무들이 잘 자라서 무성한거지요 뭐.》 《그래 옳다. 그럼 땅은 어떻게 좋아지는것 같니?》 충국이는 생물시간에 배운 지식을 더듬어보았습니다. 《가을에 나무잎들이 떨어져 부식토가 되여…》 아버지가 대견한 눈길로 충국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잘 아는구나. 그래 땅은 나무를 품어 키워주고 나무는 그 품에서 푸르싱싱하게 자라고 자기의 잎을 떨구어 땅을 걸구지. 물론 이것은 자연현상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다.》 《예?!》 충국이는 고개를 기웃거렸습니다. 《오래지 않아 우리 충국이가 집을 떠나 예술전문학교에 가서 공부하게 될터인데 내 말을 명심해듣거라. 우리가 안겨사는 조국을 땅에 비유한다면 너와 나는 그 품에서 자라는 나무들이다. 저 땅이 있어 나무들이 푸르싱싱하게 자라 아지를 펼치듯이 우리 조국이 있어 우리모두가 행복하게 사는거다. 그런데 그 품에서 행복만 누려서야 되겠니?》 충국이는 슬며시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아버지가 뜻깊은 어조로 말을 이었습니다. 《충국아, 우린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은혜에 보답하여야 한다. 받아안은 사랑에 보답할줄 모르면 참된 사람이 아니다. 너는 공부를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산림감독원인 아버진 숲을 더 무성하게 가꾸고… 이것이 곧 보답이 아니겠니.》 충국이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때처럼 똑바로 앉아 아버지의 말을 귀담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내 생각, 집안생각만 하면서 이 돌산을 훌렁 버리고 가버리면 어떻게 되겠니. 그렇게 되면 조국을 받드는 아버지의 마음에 빈구석이 생기고 또 네가 부르는 노래도 떳떳하게, 아름답게 울리지 못할거다.》 충국이는 눈을 깜박거렸습니다. 아버지의 말이 콩콩 가슴을 울려주었습니다. 땅과 숲, 조국과 보답… 머리속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고패쳤습니다. 이제부터 난 어떻게 해야 할가? 여기 남아서 아버지를 도와야 하지 않을가. 그럼 예술전문학교는?… 아니야. 돌산에 푸른 숲이 우거진 다음에 가지뭐. 충국이는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난 예술전문학교에 가지 않겠어요.》 《응?!…》 아버지가 꿈쩍 놀라며 물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여기 남아서 아버지를 돕겠어요.》 아버지는 빙그레 웃음을 짓더니 충국이의 어깨를 정답게 두드려주었습니다. 《우리 충국이가 정말 용쿠나. 그런 생각을 다하구. 하지만 아버지가 바라는건 그게 아니다. 네가 그 어디에 가든 노래를 부르든 그림을 그리든 자기 희망, 자기 명예를 생각하기에 앞서 너를 품어주고 키워준 아버지장군님과 조국의 고마움을 잊지 말라는거지. 그리구 거기에 보답할 마음을 안고 살라는거다. 알겠니?》
충국이는 아버지의 넓은 품에 얼굴을 꼭 묻었습니다. 며칠후 달밝은 저녁 충국이네 집에서는 즐거운 모임이 벌어졌습니다. 래일 아침이면 강계로 떠나가게 될 충국이를 축하해주는 모임이였습니다. 유성이랑 다정한 동무들과 이웃들도 모인 자리에서 충국이는 뜨거운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노래, 이제는 자기도 사랑하게 된 노래를!
… 찬바람 불어와 떨어진대도 흙이 되여 뿌리 덮어주리라 아ㅡ 나의 조국아 흙이 되여 뿌리 덮어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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