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박명철

안녕하세요, 형님.

지금 이 시각도 푸른 숲 설레이는 대학교정에서 낮과 밤이 따로없는 학습전투를 벌리고있을 형님을 그리며 이 글을 씁니다.

형님은 김형직사범대학에서 공부하는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늘쌍 이렇게 말하군 했지요.

《명진아, 세상에 이름난 명인들의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스승이 있어. 이런 명인들을 키워내는 교육사업이야말로 얼마나 보람있고 행복한 일이야, 안그래?》

그럴 때마다 나는 아래입술을 삐주름히 내밀며 대꾸했지요.

《헹, 같은 값이면 세상에 뜨르르하게 이름 떨치는 사람이 더 좋지 뭘 그래요. 형님은 확실히 선택을 잘못했어.》

그러면서 나는 앞으로 꼭 김책공업종합대학에 가서 이름난 과학자가 되겠다고 엄지손가락을 휘두르군 했지요. 물론 아버지, 어머니는 더 말할것도 없고 형님도 나의 이 희망을 지지해주었지요. 아마 나의 기질이나 성격이 남을 가르치길 좋아하는 형이 아니라 조용히 앉아 관찰하고 사색하길 좋아하는 형이라고 한 아버지의 말씀을 존중해서였겠지요.

형님, 아버지의 생각이 정말 옳은것 같애요.

기뻐하세요, 형님. 나는 이번에 진행한 전국 학생소년들의 《과학환상작품 및 솜씨전람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중학교 4학년생인 내가 이런 큰 영예를 지녔으니 형님도 깜짝 놀라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예요.

나는 우리 나라의 강과 호수에 더 많은 물고기를 번식시키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물고기알 자화방법》이라는것을 연구했어요. 전기적인 방법으로 물고기알을 《자화》시켜 알깨우기사름률이 훨씬 높고 깨여난 물고기들이 더 빨리 크게 하는것인데 모두들 하나의 《발명》이나 같대요.

그런데 그것이 《학생과학》잡지에 크게 소개될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미래의 생물학박사》라는 커다란 제목과 함께 내 사진이 소개되고 연구내용이 옹근 두페지나 실렸어요. 우리 도1중학교의 모든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기뻐서 나를 열렬히 축하해주었어요.

생각해볼수록 꿈만 같아요. 정말이지 잠들수 없는 밤이예요.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도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그런데 나는 이 기쁜 소식을 맨 먼저 아버지, 어머니에게가 아니라 저를 이렇게 키워준 모교의 선생님에게 썼어요. 다음순서로 미래의 선생님이 될 형님에게 지금 쓰는 길이예요. 그다음에야 아버지, 어머니에게 쓰겠는데 집에선 나를 리해할거예요. 왜냐구요? 그걸 이제 이야기하자는거예요. 아직은 연구성과를 상상도 할수 없는 중학생인 나를 이토록 올려세워주신분에 대해서 말이예요.

이제 미래의 교육자로 될 형님에게 더구나 이야기하고프구요. 또 나의 또래 중학생들도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들에게서 배우고있으며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얼마나 깡그리 바치고있는가를 잘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형님, 우리가 고향에 있는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니 새 담임선생님이 맡는게 아니겠어요.

이름은 리현심이라고 불렀는데 형님이 다니는 김형직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학교에 새로 오신거예요. 내가 더욱 기뻐한것은 우리 담임선생님이 새로 배우게 되는 생물과목을 맡은거예요.

소학교때부터 여러가지 동식물에 대해 남다른 호기심을 가지고있던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어요. 앞으로 어머니와 같은 생물학자가, 아니 그보다 더 큰 과학자로 되고싶었던 나는 나의 희망의 전부가 이 과목에 있는듯이 생각하고있었거든요.

그처럼 마음속으로 기다리던 생물시간이 왔어요.

그날 아침 나는 학교길에서 진달래꽃이 곱게 핀 산기슭에 엉금엉금 기여가는 두꺼비 한마리를 잡아 가방에 넣고 교실에 들어왔어요. 생물수업을 앞두고 나는 그것을 꺼내여 책상안에 슬그머니 넣고 만지작거렸는데 수업이 한창일 때 글쎄 그놈이 《끄르륵―》하는 괴상한 소리를 낼줄이야…

두리번두리번 교실을 휘둘러보던 애들의 눈길이 나에게 모두 멈추어졌어요.

가슴이 막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어요.

나는 끝내 일을 저질렀구나 하는 두려움과 조바심으로 가슴을 죄였어요. 이어 선생님이 조용히 내곁으로 다가왔어요. 까만 한컬레의 구두가 책상밑에 가지런히 놓이고 하얀 저고리 옷고름끝이 학습장우에 차분히 놓여졌어요.

나는 귀뿌리가 쭈볏해지며 인차 따갑게 달아올랐어요.

《명진학생, 어서 꺼내놓아요.》

엄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 목소리가 나를 더 당황케 했어요. 나는 엉거주춤 일어났어요. 차마 두꺼비를 꺼내놓을수가 없어 주저주저하는데 잠시 서계시던 선생님이 허리를 굽히십니다.

형님, 그때 내 마음이 어떠했겠나요?

이제 터져오를 선생님의 비명소리… 와― 하고 터질 아이들의 웃음소리…

눈을 꼭 감았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기겁하지 않았어요. 조금도 놀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소름끼칠 두꺼비를 깨끗하고 포동포동한 왼손바닥에 착 앉혀가지고 교탁앞으로 다가가셨습니다. 거무틱틱한 잔등에 울룩불룩 도드라져나온 검은 혹들이며 툭 삐여져 나온 눈두덩이, 주글주글하고 훌쭉한 배와 걸레쪼박같은 네 발가락… 정말 보기만 해도 끔찍하기 그지없었어요.

《동무들, 보세요. 올봄에 처음 세상구경 나온 동물이예요. 우리 간석지벌에는 이런 두꺼비가 개구리보다 더 많아요. 혁철학생!》

선생님은 즐겁게 말씀하시다가 문득 가운데줄에 앉은 혁철이를 지명했어요.

《혁철학생은 이 두꺼비가 어떻게 보입니까. 례하면 생김새나 습성, 리로운 점에서…》

《저, 제일 못생겼습니다.…》

와― 아이들의 웃음보가 터졌어요. 혁철이는 멋적어 머리를 긁적거리구요.

《명진학생!》

나는 방금 있은 일도 잊고 벌떡 일어났어요.

《두꺼비는 못생겼지만 성질이 순하고 리로운 동물입니다. 먹이사냥은 주로 밤에만 합니다. 그리고 특이한 언어수단을 가지고있습니다.…》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두꺼비가 자기 무리들을 찾는 울음소리까지 내며 대답했어요.

《옳아요. 이 두꺼비는 개구리에 비해 거의 3배나 되는 나쁜 벌레를 잡아먹는 아주 리로운 동물입니다. 아마 명진학생은 자기 집 뒤울안에서 두꺼비를 서식시키면서 많은것을 관찰한것 같아요.…》

나는 무척 놀랐습니다.

어떻게 새로 오신 선생님이 나의 취미와 우리 집에서 기르는 두꺼비들을 다 아셨을가요?

비록 수업시간분위기를 깨친것으로 하여 마감에 꾸지람을 들었지만 두꺼비상식까지 재미나게 설명하시며 나의 취미를 돋구어주고 칭찬까지 해주시는 선생님이 얼마나 고마왔던지 몰라요.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나는 생물시간을 은근히 기다렸고 여러가지 동식물관찰에 더 열성을 냈어요. 앞으로 생물학자가 되려는 꿈이 이루어질 희망이 보였거던요. 그래서 기는 짐승, 나는 짐승, 네발이건 두발이건 동물이라고 생긴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인진쑥, 조뱅이 같은 하찮은 풀까지 닥치는대로 관찰하여 《관찰일지》에 적어넣었어요.

어느날이였어요.

나는 늪가에서 자라는 부들방망이 몇대를 꺾어들고 장난질로 아이들을 혼내주려고 운동장에 나왔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뛰노는 곁에 가서 팡― 터뜨려놓았어요. 온 운동장에 금시 솜꽃이 하얗게 피여오르고 아이들은 그 《봉변》을 피하느라 와― 달아났어요. 활짝 열어놓았던 창문들이 쾅쾅 닫기는 소리도 들리구요.

우리 마을 소학반 별이는 하얀 솜꽃을 함뿍 뒤집어쓰고 오또기눈을 부릅뜨며 연방 붕어입을 오물거렸어요. 어떤 조무래기들은 《퉤퉤》조갑지같은 손바닥에 침을 묻혀 옷을 문지르느라 야단이예요. 형님도 알고있지만 그것이 한번 옷이나 얼굴에 묻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선생님이 나오시다가 그 《봉변》을 당할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선생님의 흰 저고리와 까만 치마에 솜꽃들이 다닥다닥 붙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옷을 털 생각을 않으시고 곧장 나에게로 다가오셨어요.

《명진학생, 지금 쥐고있는것이 뭐예요?》

《?!》

이 고장에 부들방망이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가?

그것도 우리 선생님이…

《저… 부들방망이입니다.》

《옳아요. 명진인 지금 보물을 쥐고있다는것을 알아요?》

(보물?!…)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손에 쥔것을 내려다 봤어요.

《미래의 생물학박사가 되겠다는 명진이가 보물을 들고 이렇게 장난질만 하고있으니 정말 한심해요. 내가 오늘 명진이에게 숙제를 주겠어요.…》

선생님은 그것이 왜 《보물》이 되는가를 래일까지 알아오라고 하셨어요. 그날 저녁 나는 구들우에 방망이를 놓고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았어요. 이 보잘것없는 물건이 어떻게 보물이라는 값비싼 이름을 가질가? 참 알수 없었어요.

그래도 숙제는 해야 했어요. 그러나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어요. 끙끙 갑자르고있는데 웃방에서 책을 펴놓고 뭔가 연구하시던 아버지가 이젠 그만 자라고 베개를 내려다주었어요. 무심결에 그 베개를 쥐는 순간 번쩍― 떠오르는것이 있었어요. 나는 벌떡 일어나 웃방 침대우에 있는 침대요를 꾹꾹 찔러보고 다시 베개를 만져보았어요.

막 환성을 지르고싶었어요.

(야!― 찾았다!)

폭신한 베개와 침대요는 벼겨나 솜이 아니라 이 부들방망이를 넣어 만든것들이였어요. 좀 무거울따름이지 솜이나 벼겨보다 더 좋은 《솜》이였거던요. 그 부들방망이를 화학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연구도입하면 그것은 분명 목화솜과 당당히 견줄수 있는 진짜보물이였던거예요.

이것을 통해 아무런 사색이나 탐구심이 없이 무턱대고 장난만 좋아하는 애들은 그 어떤 값진 보물도 깡통처럼 발로 차버린다는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였어요.

정말 우리 선생님은 발명이란 그 무슨 요란하고 대단한데서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자연세계에서 조금만 머리를 쓰면 능히 할수 있다는것을 인식시켜준 고마운 스승이였어요.

형님, 전 이렇게 우리 선생님에 의해 발명의 첫걸음 떼는 법을 배웠습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편지 쓰는 나의 눈앞에는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르고 깨끗하고 흰눈처럼 하얀 저고리 옷고름끝이 편지우에 놓여지는것만 같아요.

달같이 환한 얼굴에 호수같이 유정한 눈, 그것을 포근히 덮고있는 부채살같은 눈섭, 웃으실 때마다 살짝 엿보이는 덧이…

우리 선생님에게는 남다른 특징이 두가지 있어요.

하나는 언제나 곱게 차려입는 검고 흰 치마저고리와 그에 어울리게 받쳐신는 새까만 구두예요. 언제봐야 먼지 한점없이 반들거리는 까만 구두,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시려 이 책상, 저 책상으로 오갈 때 조심스럽게 울리는 구두소리… 그 구두소리는 문제풀이를 제대로 못해 활랑거리는 가슴을 다독여주는 소리였고 늦장을 부리지 말라 재촉하는 시계의 초침소리같았어요.

다른 하나의 특징은 며칠에 한번씩 성적별 등수로 정해진 출석을 부르는것이였어요. 1번에 누구, 2번에 누구…

참 재미있으면서도 좋은 출석부였어요. 매일매일 자기 실력의 높이를 알게 해주는 출석부거던요. 서로 승벽을 겨루다나니 학습분위기는 더욱 좋아지고 모두의 학과목실력은 껑충 뛰여올랐어요. 웃기는 애들이 종종 부르군 하던 별명 비슷한 이름들도 전혀 없어지고 당당한 수자 《이름》이 서로 오가니 공부를 더 잘해야겠다는 자각이 순간순간 들군 했어요.

성적별 등수에서 1번은 언제나 이 김명진이였어요. 그렇지만 언제나 내가 1등의 자리를 차지한것은 아니였어요. 그렇게 뻐기던 1등의 성적이 점점 떨어져 꼴찌로 내려갈번 하였거던요.

아버지는 늘 농장포전에서 살다싶이 하였고 어머니는 새 품종연구사업으로 집에서 30여리나 떨어진 새 간석지로 배낭을 지고 떠났어요. 그래서 나는 순희와 함께 터밭도 가꾸고 밥도 지어야 했고 빨래도 해야 했어요. 게다가 장난이 세차고 놀기를 좋아하던 나였던지라 어머니까지 없으니 풀어놓은 망아지 한가지였지요. 그러다보니 숙제도 때때로 못했고 어떤 날에는 오후에 학교에 가지 못했어요.

5번, 10번, 20번…

마지막자리가 어서 오라고 부르는것만 같았어요. 언제나 차지하던 지난날의 1등순서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젠 머리까지 떳떳이 들수 없었어요. 나는 어떻게 하나 잃어진 시간을 찾아보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지만 안되였어요.

《지어먹은 마음 사흘도 못 간다》는 속담그대로였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이였어요. 순남이랑 동네애들이 귀가 항― 열리는 《비밀》을 나에게 대주었어요. 저 간석지늪가에 왕가물치가 알을 쓸었는데 얼마나 능청스러운지 아무리 낚시로 잡으려 해도 그 누구도 못 잡는다는거예요.

나는 그날 오후 학교에 가지 않고 그리로 갔어요. 조무래기들까지 휘동질해가지구요.

정말 가보니 새파란 말풀우에 노란 알들이 강냉이지짐짝처럼 놓여있지 않겠어요? 왕가물치가 분명했어요. 나는 낚시를 그 《지짐짝》우에 턱 던져보았어요. 얼마 있어 《철썩!》하는 놀라운 소리와 함께 부채만 한 꼬리가 낚시를 보기좋게 쳐버렸어요. 나는 자신있었어요. 방금 던진 낚시는 가물치가 정말 이 알을 지키고있는지 그리고 그 크기와 성격을 가늠해보는 《시험낚시》였으니까요.

깍지무릎을 한 조무래기들도 숨을 죽이고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있었어요. 본때를 보여주리라 마음먹고 다시 낚시에 미끼를 꿰는데 이게 웬일이겠어요. 선생님이 가까이 오셨습니다.

(야단났구나!)

나는 낚시대를 거두며 안절부절 못하고섰어요. 당장 선생님이 내 손목을 이끌고 학교로 가자고 할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가까이 오시자 하얀 손수건으로 송골송골 돋아난 땀을 꼭꼭 찍으시며 지나가던 사람처럼 말풀우의 《지짐짝》을 한동안 바라보셨어요. 나는 선생님의 무언에 더 마음이 조마조마했어요.

《명진이, 저 가물치알을 보면 크기를 안다는데 대략 얼마나 큰 놈일가요?》

정말 뜻밖입니다. 가슴을 조이며 서있는 내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어요. 선생님이 사근사근하게 대할수록 내가 왜 이 지경이 되였을가 하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지금은 쑤어놓은 죽이였어요.

《왜 그러고섰어요? 이렇게 온김에 명진이 솜씨를 구경하자요.》

에라 모르겠다. 이럴바엔 선생님앞에서 솜씨를 보여야지.

나는 머리를 들었어요. 그리고 대답했어요.

《선생님, 저만 한 알둥지면 네댓키로는 될겁니다.》

《야! 그래요? 정말 요란하게 큰 놈이구만요.》

선생님이 감탄하며 내곁으로 바싹 다가오셨습니다.

《가물치는 왜 알둥지를 꼭 지킬가요?》

선생님은 정말 알고싶은 심정인것 같았어요.

원래 물고기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나에게 있어서 선생님의 물음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가물치알은 연하고 맛이 좋습니다. 그래서 준치나 날치들이 가물치알만 보면 기어코 먹어버리기때문에 잠시도 둥지를 비우지 않는것입니다.》

《그래요? 개구리도 저 알을 먹는가요?》

《개구리는 가물치알을 먹지 않습니다. 대신 가물치는 개구리를 제일 좋아합니다.》

선생님은 웬일인지 나를 자세히 보시며 머리를 끄덕이시였습니다.

나는 지금 저 알둥지를 지키는 놈은 암컷이라는것, 2시간에 한번씩 교대한다는것 그리고 암컷은 수컷보다 서너배나 크다는것까지 자세히 설명해드렸어요.

선생님은 또 머리를 끄덕이시였습니다.

나는 이것을 선생님께 꼭 증명해드리고싶어 낚시를 던져넣었어요. 이번에는 아까처럼 알둥지에 직접 넣는것이 아니라 반대로 멀리에서 접근해오는 흉내를 내려구요.

당장 가물치알들을 다 요정내려는듯이 입을 짝 벌리게 한 고기를 미끼로 끼운 낚시가 알둥지로 접근하였습니다.

담방담방… 때로는 개구리습관처럼 잠간씩 멈추어서기도 하면서…

거의 알둥지에 접근하려는찰나 《왈찌락》하는 요란한 소리가 조용하던 늪가를 들었다놓았어요.

나는 긴장했던 나머지 《아이쿠!》하고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았어요. 선생님도 얼마나 놀라셨는지 두손을 가슴에 모아잡고 낚시에 물려 퍼들쩍거리는 왕가물치를 두려운 눈길로 쳐다보셨습니다. 정말 보기만 해도 끔찍한 가물치였어요.

이어 《야!― 잡았다―》하는 조무래기들의 환성과 함께 짜락짜락 박수소리가 늪가로 울려갔어요.

나 역시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어요. 남들이 못잡는다던 왕가물치를 그것도 선생님과 숱한 애들앞에서 잡았으니 말이예요.

그날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은 대동강이 한눈에 보이는 동뚝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으셨어요.

《…명진이, 요새 힘이 들지요?》

대번에 마음을 울려주는 다정한 음성이였어요.

《그럴거예요. 아버진 늘 벌에 사시고 또 어머닌 멀리 가계시구… 하지만 명진인 부모님들이 왜 그토록 이 땅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면서 극성스레 일하는지 알지요?》

선생님은 말씀을 끊고 진짜 내가 그것을 알고있는가를 따져보려는듯이 나의 얼굴을 찬찬히 보시는것이였어요.

나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숙였어요. 그것을 내가 왜 모르겠나요.

형님이 태여난 고향은 평양이지요?

농업과학원에서 일하던 아버지, 어머니는 형님을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내내 이 영사등벌에 내려와 연구사업을 하셨다고 했지요.

그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맡은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다시 과학원에 올라가려고 짐을 꾸렸지요. 그런데 그해에 경애하는 대원수님께서 그만…

언제나 농사일을 두시고 그처럼 걱정하시던 경애하는 대원수님의 유훈을 받들어가자고 부모님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짐을 풀었다지요.

《보라요. 명진이 부모님들은 얼마나 훌륭한 부모님들이예요. 그 훌륭한 부모님들처럼 되자면 명진인 공부를 더 잘해야 하지 않을가요?…》

이미 다 알고있는 일이였지만 절절한 목소리로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은 나의 가슴을 찡―하게 울려주었어요.

나는 그날 선생님의 모습을 새롭게 보았어요.

치마저고리를 단정하게 입으시고 뜨겁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꼭 어머니의 다정한 모습이였어요.

그후 선생님은 자주 우리 집을 찾아오셨어요. 먼저 집안을 깨끗이 거두고 나와 순희의 학습을 밤늦도록 도와주었어요. 그 과정에 나는 한칸두칸 사다리에 오르듯 성적등수가 올라 얼마후에는 내놓았던 1번자리에 다시 오르고야말았어요.

이러한 때에 학교와 마을에는 도1중학교선발예비시험이 인차 있다는 소문이 났어요.

그러던 어느날 저녁이였어요. 그날은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는 몹시 추운 날이였는데 선생님이 빨갛게 언 얼굴에 웃음을 함뿍 담고 집에 들어섰어요.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이 김명진이를 예비시험에 1번으로 추천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어요. 나와 순희는 너무 기뻐 집안이라는것도 잊고 두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아갔고 아버지도 얼굴에서 노상 웃음이 떨어질줄 몰랐어요.

우리 선생님은 웬만해서는 사사로운 말과 웃음이 별로 없었는데 글쎄 그날은 통통한 손잔등으로 입을 가리우며(덧이때문에 굳어진 습관이예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시는지…

그뿐인가요? 형님이 학교다닐 때 애용하던 기타까지 벽에서 내리워 노래도 불렀어요. 얼마나 노래도 잘 부르고 기타를 기막히게 타던지 나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때의 노래선률이 지금도 가슴속에 울려와요.

 

따뜻한 창가에 피는 꽃을 보면

전선길 저 멀리 아버지 생각이 나네

고지엔 흰눈이 고요히 내리는데

조용조용 들려오네 장군님 발자국소리

 

창밖에서는 바람이 세차고 진눈까비가 날렸어요.

나는 가슴이 뭉클해났어요. 언제나 아버지장군님을 그리며 우리들을 참된 아들딸로 키우시기 위해 밤낮으로 마음쓰시는 선생님!

선생님의 호수같은 두눈에 맑은것이 고였어요.

아버지도 순희도 나도 함께 따라불렀어요.

 

너와 나 정답게 부르는 아버지

온 나라 가정에 귀중한 우리 아버지

하늘땅 끝까지 따라서 가는 길에

너도나도 안고살자 장군님 발자국소리

 

이 뜨거운 노래선률을 타고 고대하던 그날이 왔어요. 여기서 60여리나 되는 제1중학교까지 따라오신 선생님은 그저 의미있는 눈빛으로 시험장으로 나의 등을 떠밀어주었어요. 나는 시험장에 들어가기 앞서 뒤를 한번 돌아보았어요. 그렇게 추운 날인데도 치마저고리를 산뜻하게 입으시고 학부형들속에 끼워 정다운 눈길로 어서 들어가 시험을 잘 치라고 마음속으로 떠밀어주시는 우리 선생님!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시험표를 보는 순간 가슴이 막 방망이질하고 온몸이 매시시해지며 졸지에 식은땀이 등골을 적시였습니다.

수학문제는 문제될것이 없었습니다. 둘째 문제 《붕어의 배지느러미와 엉뎅이지느러미를 자르면 붕어는 어떻게 되는가?》

당황했어요. 이 뜻밖의 문제가 지금까지 공부를 제일 잘한다고 자부하던 나를 이렇게 곤경에 몰아넣을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나요. 첫번째 문제를 순식간에 다 풀어놓고 곰곰히 생각해보았어요. 이 문제는 언제인가 생물숙제에 나온것인데 그때는 세심한 관찰을 못했던거예요. 시간은 자꾸 흘렀어요.

《깍깍깍…》

창밖에선 까치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조롱하듯이 성수가 나서 야단이예요.

《꼴 좋다, 깍… 선생님이 그렇게 애쓰시는데 깍… 공부를 깊이있게 안했으니 골탕먹지. 깍…》

응당한 조롱이였어요. 봉변이였어요. 나는 부랴부랴 이렇게 써놓고 시험장을 나왔어요.

《붕어는 물우에 떠올라 뒤집혀버린다.》

내가 쓴 추상적이고 희떠운 시험답을 보시는 선생님의 밝던 얼굴에 먹장구름이 비꼈어요. 잠시 선생님은 진눈까비 내리는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셨습니다.

형님, 그때 나의 엉터리답을 보신 선생님이 나를 막 때려주었던들, 그렇게 못하겠으면 호되게 꾸짖든가 내 어깨라도 마구 흔들어주셨던들 이렇게 마음이 쓰리고 아픈 추억을 남기겠나요?

다음날이였어요. 그날도 나는 어제 있은 일로 하여 붕어의 지느러미원리를 상상해보고있었어요.

상상으로나 추상으로는 도저히 풀수 없는 문제여서 관찰과 상상이 결합될 때만이 그 원리를 정확히 알수 있는 까다로운 문제였어요.

점심때가 거의 될무렵, 학교에 눈 쓸러 나갔던 순희가 비자루를 들고 숨을 할딱거리며 막 뛰여들어왔어요.

《오빠… 큰… 큰일났어요.… 글쎄…》 숨이 턱에 닿아 갑자르기만 했습니다.

《순희야, 너 왜 그러니? 무슨 일이야…》

《글쎄… 선생님이… 강가에서…》

툴렁! 손에 쥔 책이 퇴마루에 떨어졌어요. 더럭 겁이 났어요. 순희가 바들바들 떨며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어떻게 됐다구? 분조장아저씨의 등에 업혀 리병원으로…

순간 《어제 시험문제때문에 선생님이 물고기를 잡으려고… 바로 명진이, 너때문이다.…》 마음속에서 그 누가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고있었습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병원으로 달렸어요.… 병원복도에 들어서니 위생복을 입은 간호원누나가 분주히 오고갔어요.

《명진이 아니냐?》

교장선생님이였어요. 몹시 침울한 얼굴이였으나 느슨한 웃음을 지으시고 가까이 오셨습니다.

《걱정말아. 치료대책을 세웠으니 별일 없을게다. 이제 선생님이 일어나면 공부를 계속해야지.…》

교장선생님은 내 어깨를 쓸어주시며 머리를 끄떡이시였습니다.

《참, 선생님이 잡은 붕어들을 다 살려놓았다.》

마음놓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교장선생님은 나의 등을 떠밀어주셨습니다. 그러다가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머리를 기웃거리시더니 그냥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나는 갈수가 없었어요. 꼭 보고싶었어요.

마침 간호원누나가 《입원실》이라고 쓴 호실에서 어지러워진 약솜이 담긴 유리그릇을 들고 나오지 않겠나요. 나는 그 호실로 들어갔어요.

《선생님!》

나는 침대곁에 다가서며 목메여 불렀어요. 선생님은 대답이 없었어요. 평시처럼 조용한 모습으로 자는듯이 누워계셨어요. 나는 눈앞이 흐려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어요.

방울방울 내가 흘리는 눈물처럼 하얀 비닐관으로 약물이 떨어졌습니다.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 빨간 피가 슴배여있는 목에 감긴 두툼한 붕대…

형님, 그때의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가요? 어떻게 되여 목에까지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셨단 말입니까.

다음날에야 선생님이 의식을 회복하셨어요.

후날 교장선생님이 다 이야기해주었어요. 아마 병원에서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둔것 같았어요.

도1중학교예비시험이 있던 그날은 선생님의 아버지 생일이였대요. 아버지는 영예군인이구요. 선생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버지는 늘 기다리군 하셨답니다. 그날 선생님의 아버지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고 지체말고 어서 학교에 나가라고 선생님을 떠밀어주셨대요. 선생님은 그날 감기로 몹시 앓는 몸이였대요. 그 몸으로 눈보라치는 밤길을 더듬어 읍에서 학교에 나오시고 다음날은 또 강으로 나가셨던거예요.

불덩이같은 몸으로 눈보라치는 허허벌판에서 한바께쯔, 두바께쯔 힘겹게 물을 퍼서 붕어들을 잡다가 미끄러지면서 칼날같은 얼음장에 그만…

거름을 운반하던 농장원아저씨들이 달려갔을 때 많은 피가 흘러 얼음장을 붉게 물들였다고 하더군요.

《명진이, 명심해요. 아버지, 어머니처럼 꼭 훌륭한 사람이 되세요. 아버지장군님께서 농사일에 대하여 더는 걱정 안하시게…》

이것은 이듬해 내가 도1중학교로 떠나던 날 우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예요. 선생님은 그날도 평시에처럼 치마저고리를 곱게 입으시고 웃고계셨어요. 나는 선생님얼굴을 찬찬히 더듬어보았어요.

희고 동실한 턱에 난 허물자리, 선생님의 지울수 없는 그 영원한 허물자리를 내 피와 살로 곱게 다듬어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요.

아, 선생님! 낳아준 부모도 미처 몰랐던 재능의 싹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키워주시기 위하여 품들이며 속태우신 낮과 밤은 그 얼마이며 걸으신 길은 또 얼마인가! 어머니같았어요. 자기의 모든것을 바치고도 시름없이 웃는 선생님은 참말 우리 어머니였어요. 나는 생각했어요. 우리들을 아버지장군님께 기쁨드릴 고운 꽃으로 곱게곱게 피워주시는 우리의 선생님들은 숨은 노력가들이며 가장 훌륭한 혁명가라고. 그리고 내가 받아안는 그 모든 영예는 다 우리 선생님께 드려야 한다고

오늘도 선생님은 빛나는 그 모습으로 변함없이 교단에 높이 서계십니다!

형님, 지금도 공부할 때면 내 학습장우에 차분히 놓여집니다. 가야 할 나의 리정표를 곧바로 짚어주시는 선생님의 고운 저고리옷고름끝이…

그리고 들려와요. 눈내리던 그날 선생님 부르시던 노래소리가 말이예요.

아버지장군님 발자국따라 나도 가고 형님도 가자고 하는 노래소리가 심장의 박동처럼 들려옵니다.―

선생님의 정다운 발걸음소리도 들려와요. 정겹게 들려오는 그 모든 소리들은 《앞으로도 자만하지 말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내달려야 해요.》 하는 선생님의 다심하면서도 고무적인 일깨움소리처럼 들려옵니다.

형님, 나는 앞으로 이렇듯 훌륭한 선생님처럼 되기 위해 또 우리의 선생님들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바라는가를 잘 알고 그에 보답하기 위해 시간을 아껴 공부를 하고 또 하겠어요.

형님도 부디 우리 선생님같은 훌륭한 교육자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하겠어요.

형님의 학과학습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기를 바라면서…

 

기숙사호실에서 동생으로부터

2008년 ×월 ×일

 

(황해남도 은천군 복두중학교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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