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8(2009)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영 식

 

1

 

평양에는 많고많은 거리들이 있다.

금성거리, 영광거리, 버드나무거리 그리고 광복거리와 통일거리…

거리마다 제각각 나름대로의 모양새를 가지고있지만 어느 거리에나 꼭같은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가 하나같이 밝고 깨끗하고 아름답다는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거리는 무엇으로 하여 그렇듯 아름다운것인가?

아직은 꼭 짚어 말할수는 없지만 땅에서 풀이 돋아나고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내리는것처럼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붉은넥타이가 펄럭이는 가슴에다 소년단휘장을 단 두 소녀가 학교정문을 나서고있었다. 중학생들인 지연이와 시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연이는 자기보다 키도 크고 성미도 괄괄한 영희와 나란히 이 정문을 나섰었다.

며칠전 지연이와 영희는 청년동맹가맹을 앞두고 소년단조직으로부터 특별분공을 받았었다. 특별분공이란 소학교꼬마들속에서 종종 나타나군 하는, 옷차림을 되는대로 하고 다니거나 자기가 사는 거리와 마을을 어지럽히는 현상들을 바로잡을데 대한것이였다.

그랬었는데 영희가 전학가는 바람에 오늘은 갈람한 몸매에 인상도 무척 차분한 시내와 짝패가 된것이였다.

(이 애와 함께 이번 분공을 꽤 수행해낼가?)

그도 그럴것이 지연이가 아는 시내는 별찮은 일에도 부끄럼을 잘 타고 먼발치에서 털벌레만 보아도 기겁을 하는 마음 약한 애였던것이다.

(할수 없지. 내가 더 힘들더라도 같이 할수밖에…)

이런 생각은 지연이의 어깨를 으쓱하게 그리고 무겁게도 하였다.

지연이는 학교정문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대원들앞에 나선 지휘관마냥 틀진 자세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시내야! 이번 분공을 잘 수행하자면 첫째도 둘째도 원칙적이고 엄격해야 해. 여긴 우리가 사는 거리인것만큼 모르는 애들보다 아는 애들이 더 많아. 그래서 딱한 경우가 자주 생길수 있는데 조금도 양보를 해서는 안돼. 그래서 지도원선생님도 특별분공이라고 강조하신거야.》

순간 살갗 맑은 시내의 얼굴이 빨갛게 되였다.

《지연아, 내가 꽤 해낼수 있을가? 막 떨리는구나야.》

《일없어. 그저 내가 하는대로만 보조를 맞춰주면 돼. 자, 앞으로!》

지연이는 우쭐해서 남자애들처럼 씨엉씨엉 걸음을 내짚었다.

시내의 선망에 찬 눈길을 등뒤에 받으며…

한낮에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함씬 미역을 감은 거리는 한결 맑고 깨끗해졌다.

먼지 한점 없는 걸음길, 물기에 젖어 번쩍거리는 차길, 길가의 가로수들과 꽃나무들의 야들야들 한 잎사귀에서 도르륵 굴러내리는 물방울들…

흰색과 빨간색으로 곱게 단장한 궤도전차가 《따르릉―》 경적을 울리며 경쾌하게 달리고 맵시나는 승용차들은 꼬리를 물고 달린다. 하르르한 달린옷을 산뜻하게 차려입은 언니들이 까르르 웃으며 지나간다.

책을 든 대학생오빠, 언니들이 무슨 론쟁인지 열변을 토하며 걷고있다.

서로 툭툭 치며 부잡스럽게 걸어오던 두 애가 지연이네를 보자 우뚝 멈춰서더니 자기들의 옷차림부터 살펴보았다. 바로 엊그제 지연이에게서 꾸지람을 들었던 소학반 아이들이였다.

지연이는 못 본척 얼른 고개를 돌려 시내에게 해쭉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시내의 얼굴은 순간에 빨간 사과가 되였다. 마치도 자기자신이 무엇인가 잘못을 저질러서 그 애들에게 걸려들기라도 한것처럼…

이때 앞에서 어린애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간 모자에 빨간 조끼를 입고 새까만 바지가랭이에도 역시 빨간 끝동을 단 유치원어린애가 자기 어머니의 손목을 잡아끌며 투정질을 해대고있었다.

지연이와 시내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리로 걸어갔다.

알고보니 애는 소담하게 피여난 무궁화꽃 한송이를 꺾어달라고 어머니한테 졸라대는중이였다.

《학송아, 그러면 안돼. 꽃은 보라는거지 꺾으라는게 아니야.》

《꺾어달라, 꺾어달라―》

학송이라는 애는 막무가내로 떼를 쓴다.

그것을 보고 지연이가 두눈을 짐짓 부릅뜨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면 못써요!》

하지만 애는 코숭이가 살짝 쳐들린 풀빛운동화로 땅을 탁탁 걷어차며 그냥 떼를 썼다.

《꺾어달라!》

《한송이 꺾어줄가?》

지연이는 시내를 돌아보며 소곤거렸다.

그런데 시내는 대답대신 학송이앞에 무릎을 꿇고 마주앉는것이였다.

《학송어린이,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거리에서 고운 꽃을 함부로 꺾으면 안된다고 하셨지요? 저 꽃들도 우리 거리가 고우라고 활짝 피여났는데 마구 꺾으면 어쩌나요? 꽃도 아파서 울고 거리도 미워지겠지요?》

꼬마떼군의 숱진 눈섭아래 까만 머루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정말이나요?》

《그럼, 정말 아니구.》

《에, 그럼 이제부터 꽃을 꺾지 않을래요! 진짜예요.》

기특한 꼬마의 희고 오동통한 얼굴에는 처녀애처럼 고운 웃음이 피여났다.

《용쿠나. 우린 네가 이렇게 곱게 행동했다는걸 선생님한테 알려주어야겠구나. 그럼 얼마나 칭찬하시겠니.》

그러자 꼬마는 더욱 기쁨에 넘쳤다.

《진짜 알려줘야 해요. 난 갈림길유치원 낮은1반 김학송이야요.》

《호호, 알았어. 꼭 알려줄게. 그럼 다음부터는 엄마말 잘 듣고 떼를 쓰면 안돼요.》

《응!》

꼬마애는 머리까지 끄덕이며 엄마를 쳐다보았다.

애어머니도 웃음띤 얼굴로 시내를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럼 어서 가봐요.》

《안녕히―》

손까지 흔든 그 애는 엄마의 손목을 잡고 장한듯 걸어갔다.

지연이는 눈이 둥그래서 그 모양을 보다가 말했다.

《야― 너한테 그런 재간도 있었니? 딱 유치원 교양원 같구나!》

그러고보면 자기는 이번에도 짝패를 잘 만난것 같았다. 마음속에 얹혔던 걱정덩어리가 서서히 사라져가는것 같았다.

지연이의 얼굴에는 또다시 웃음꽃이 피여났다.

즐거운 시간은 언제나 빨리 지나가는 법이다.

어느덧 저녁해가 아빠트꼭대기에 걸터앉아 작별인사를 하고있었다.

그러나 지연이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시내가 갑자기 엉뚱한 말을 했기때문이였다.

《지연아, 저것 봐. 어제 밤에 내린 소나기와 센 바람때문에 꽃들이 못쓰게 됐구나. 우리가 좀 손질을 할가?》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 학생도서관앞 꽃밭의 다리아 몇대가 부러져있었다.

《야― 우리야 맡은 분공이 있지 않니? 그리구 빨리 가서 학과경연준비도 해야지? 저건 이제 관리원어머니들이 다 하지 않으리. 빨리 가서 공부나 하자.》

지연이는 시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시내는 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지연이의 의견에 선뜻 응해나서는 기색은 아니였다.

지연이는 왜서인지 속이 좋지 않았다. 그저 얌전하고 참한 애인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조련치 않은 시내였다.

그새 산너머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해는 머리만 빠끔히 내밀고 두 소녀를 내려다보고있었다.

 

2

 

그 이튿날 오후.

(시내가 왜 아직 안 올가?)

시내를 기다리는 지연이의 마음은 점점 앵돌아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이제 2분밖에 안 남았는데도 나타나지 않는것이였다.

(이 애가 혹시 어제 내가 자기 말을 안 들었다고 토라진게 아니야? 설마…)

이때 시내가 저쪽에서 종주먹을 부르쥐고 달려왔다. 코잔등에 뽀질뽀질 내돋는 땀방울과 씨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니 옹쳤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그러다가 자기가 《구대원》이라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눈을 흡뜨게 하였다.

《지금 몇신데 이제야 오니?》

《내가 늦었니? 시간을 지키느라 뛰여왔는데…》

시내가 쫓기던 참새처럼 가슴을 할딱거리며 하는 말이였다.

《꼭 제시간이면 된다는거니? 넌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동시에 들어와도 지각이 아닌줄 아는게 아니야?》

《지연아, 정말 잘못했어. 〈조장동지!〉 꼭 고치겠습니다, 호호.》

시내는 짐짓 차렷자세를 취하며 너스레까지 부리는것이였다.

《뭐, 조장?》

지연이는 눈이 퀭해서 시내를 쳐다보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호호 하고 웃고말았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왁짝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거리에서는 제일 큰 닭알색아빠트앞에 펼쳐진 잔디밭에서 총각애 두명이 뽈을 굴리며 좋아라 새된 소리를 질러대고있었다. 그 애들의 옷은 흙탕물이 튕겨있었고 바지는 주름은커녕 어디서 뒹굴었는지 한심하게 구겨져있었다. 그 애들의 발밑에서는 연한 잔디들이 마구 짓이겨지고있었다.

《아니, 저 애들이…》

지연이가 주먹을 부르쥐고 그 애들쪽으로 뛰여갔다.

이때 한 애가 다급히 소리쳤다.

《야! 〈범누나〉다, 뛰자!》

《뭐?! 〈범누나〉? 》

다른 애는 지연이를 보더니 뛰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그러나 처음 소리친 장난군은 무작정 도망을 치는것이였다.

《너 순남이로구나.》

지연이는 다짜고짜로 그 애를 잔디밭에서 끌어내였다.

순남이는 잡히운 손목이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며 《누나―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하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흥, 다시 그러든 안 그러든 너희들은 혼나봐야 해. 어처구니없구나, 정말… 잔디밭에서 뽈을 차다니! 벌써 두번째지? 그리구 옷차림이 이게 뭐야?》

지연이는 수첩을 펼쳐들었다.

《너희들은 말로만 해서는 안되겠어. 학교에 통보해서 단단히 교양사업을 해야지. 저 길건너 소학교 김순남, 3학년… 너 몇반이더라?》

《누나…》

《어서 말해!》

성난 지연이의 눈총에 주눅이 든 그 애는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주밋거리며 대답했다.

《1반…》

《그리구 이자 도망친 애는?》

순남이는 입을 다물고 발끝만 호비작거리고있었다. 아마도 자기는 붙잡혔어도 제 동무는 일러바치기 싫은 모양이였다.

《어서 말해. 난 그 애도 어디 사는 앤지 알고있단 말이야.》

이때 시내가 순남이의 어깨를 꼭 쥐며 말했다.

《순남아, 그런 비밀이나 지켜주는게 동무를 돕는게 아니란다. 잘못을 감싸주는건 더 큰 잘못이야.》

역시 시내는 아이들을 타이르는데서는 남다른 재간이 있는 애였다.

순남이는 고개를 쳐들고 시내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 앤 우리 학급 철용이예요, 신철용. 저 아빠트에서 살아요.》

순남이는 손을 들어 닭알색아빠트를 가리켜 보였다.

《가만, 무슨 철용이라구?》

지연이가 엄한 목소리로 따져물었다.

정확히 적어야 하기때문이였다.

이름을 확인한 지연이는 그밑에 굵직하게 금까지 그어놓았다.

《그런 애들은 단단히 교양해야 해. 도망까지 치다니…》

그런데 순남이가 문득 싱그레 웃으며 말하는것이였다.

《헤헤, 그 앨 교양할수 없을거야요.》

《왜 없어?》

《철용인 래일 룡흥거리로 이사를 가거든요.》

《?…》

단단히 교양하리라 별렀던것이 허사로 되자 지연이는 괘씸해나는것을 간신히 참으며 수첩에 적었던 그 애의 이름을 쭉 째버렸다.

그때 옆에서 말없이 서있던 시내가 자기 수첩을 꺼내들더니 순남이에게 묻는것이였다.

《순남아, 철용이가 어디서 산다구?》

지연이는 시내에게로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저 닭알색아빠트 2현관 6층 5호예요.》

《그래?! 어서 가봐라. 다시 그러면 안돼.》

《알겠어요.》

순남이는 제법 꾸벅 인사까지 하고 냅다 달려갔다.

순남이를 돌려보낸 시내는 입술을 옴지락거리며 철용이의 이름과 집주소를 꼼꼼히 적는것이였다.

《시내야, 그건 왜 적니?》

지연이가 묻자 시내는 생긋 웃으며 대답하는것이였다.

《찾아가서 혼내줄테야.》

《뭐? 아유― 그만둬. 그 앤 이젠 이 자리에서 다시 놀 애도 아닌데…》

《네 말이 맞아. 다른 거리 아이야. 그렇지만 잘못한거야 잘못한거지 뭐.》

지연이는 눈이 둥그래졌다.

《야, 너 보기와는 영 다르구나. 굉장히 이악한데?》

《네가 말하지 않았니. 우린 마을과 거리를 어지럽히는 애들에게는 양보가 없어야 한다구…》

《그건 그래. 하지만 철용이한텐 소용없어. 다른데로 이사간다니. 글쎄 적는다 한들 무슨 필요가 있니?》

지연이가 열을 올려 말하고있는데 시내는 그 말은 들은둥만둥 딴 곳만 바라보고있었다. 그가 바라보는것은 바로 이 거리에서 제일 큰 그 닭알색아빠트 철용이네 집이였다.

그런데 시내의 눈빛은 도망친 말썽꾸러기에 대한 괘씸한 눈빛이 아니라 잡았던 고운 새를 놓쳐버린것만 같은 아쉬움의 눈빛이였다.

(참 별난 애야.)

 

3

 

저녁해가 아름다운 거리를 마지막해살까지 다 기울여 빨갛게 물들이고있었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연이는 책상앞에 붙어앉았다. 며칠후에 있게 될 수학학과경연에서도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심산이였다.

이때 《따르릉, 따르릉.》하고 짤막짤막하게 울리는 특징적인 부름종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반색을 하며 자리를 차고 일어난 지연이는 얼른 달려가 출입문을 열었다.

《숙제를 하고있었냐?》

어머니의 가방을 받아든 지연이는 쌍까풀진 눈을 곱게 흘기며 말했다.

《숙제야 언제 다했다구요. 이제 며칠후에 최우등생수학학과경연이 있거던요. 학교단위원인 내가 공부에서도 모범이 되여야 하지 않아요!》

《우리 지연이가 참 용쿠나! 공부도 잘하고 분공수행도 잘해. 그런데 이 엄마가 듣자니 온 동네 아이들이 너를 보고 〈범누나〉, 〈범언니〉하며 무서워한다면서?…》

《〈범누나〉,〈범언니〉요? 호호. 그게 어째서요? 우리가 맡은 분공은 그렇게 엄격하고 원칙적이여야 멋있게 수행할수 있는게 아니나요.》

주먹까지 내려그으며 하는 지연이의 대답이였다.

《그래, 엄격하고 원칙적이여야지. 하지만 엄격한것 하고 무서워서 피하는것 하고는 다른 문제란다. 아무튼 생각을 깊이 해봐라.》

어머니는 훈시를 시작할듯 하더니 문득 이렇게 물었다.

《참, 영희가 이사갔으니 다른 짝패겠구나.》

《예, 어제부터 우리옆 아빠트에 사는 시내와 한조가 됐어요.》

《오― 어머니가 그 아빠트 인민반장을 한다는 집 딸 말이지. 곱구 얌전하게 생긴 애…》

《예, 맞아요. 그런데 얌전할게 뭐예요. 얼마나 이악쟁이라구…》

《가만, 언제부터 같이 선다구?》

《어제부터요. 그런데 왜 그러나요?》

《아니, 그런데 오늘 점심시간에 지나가다 보니까 그 애가 학생도서관앞에서 꽃모를 심고있더구나. 관리원엄마들이 그걸 보구 칭찬이 굉장하더라. 그 애가 넌줄 알았는지 날 보고 착한 딸을 두었다고 인사들을 하는데 얼마나 급하던지… 너두 무섭다는 평가보다도 그런 칭찬을 좀 받으려무나.》

순간 지연이의 눈앞에는 눈섭밑의 땀을 훔치며 뛰여오던 시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 시내가 그때?…)

웬일인지 가슴이 무거워지며 호― 긴숨이 흘러나갔다.

꽃 한송이를 두고 어린애를 타이르던 시내, 자기더러 꽃밭을 손질하자고 말하던 시내, 철용이네 집주소를 또박또박 적으며 찾아가서라도 혼내우겠다던 시내의 모습이 번갈아 눈앞에 떠오른다.

정말 그 애가 옳을가, 옳다면 내가 분공에 대해서 잘못 생각했다는것이 아닐가.…

지금 시내는 무엇을 하고있을가?

 

4

 

눈부신 해빛이 쏟아져내리는 아름다운 거리다.

빈자리를 메우고 산들바람에 한들거리는 애어린 꽃모들…

그것이 바로 시내가 옮겨심었다는 그 꽃모들이였다.

그것을 바라보며 지연이는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시내야, 난 정말 섭섭하구나. 저 꽃모를 나와 함께 심으면 안되니? 그러면서도 나보구 〈조장〉이라구!》

《지연아, 정말 안됐어.》

시내가 미안스러움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하긴 내가 그때 딱 잘라버렸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구 말이야.》

이때 꽃밭의 배경을 이루고 높이 서있는 닭알색아빠트모퉁이에서 낯익은 두 얼굴이 나타났다.

(아니?)

그 애들은 바로 순남이와 철용이였다.

순간 지연이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두 아이는 지금 지연이와 시내를 향해 걸어오고있었다. 도망쳤던 철용이가 제발로 찾아오는것이였다. 게다가 어제만 하여도 어지럽던 그 애들의 옷이 오늘은 아주 깨끗하였다. 붉은넥타이의 두가락이 곱게 드리워져있었고 바지도 칼날같은 주름이 딱 서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야!》

지연이가 놀라 돌아보니 시내는 상그레 웃고있었다. 다가온 애들은 약속이나 한듯 팔을 올려 소년단인사를 하였다.

이어 철용이가 입안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나, 어제는 정말 잘못했어요. 그렇지만 이제부턴 어디에 가든 잔디밭에서 뽈도 차지 않고 옷차림도 깨끗하게 하겠어요. 우리의 거리를 사랑하겠어요.》

말도 얼마나 어른스럽게 하는지 깜짝 놀랄 지경이였다.

하루밤사이에 애가 이렇게도 달라질수 있을가?

문득 지연이는 가슴을 탁 치는듯 한 충격을 느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시내는 옆에 없었다.

어느새 보았는지 공원의 철봉대에 붙어있는 진흙덩어리들을 꼼꼼히 뜯어내고있었다.

지연이는 갈증을 만난 때처럼 성급히 물었다.

《순남이, 철용이, 어서 말해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러자 철용이가 시내쪽을 한번 돌아보고나서 입을 열었다.

《예. 저 누나가 어제 저녁 우리 집에 찾아와서 선생님처럼 차근차근 타일러줬어요. 어느 거리에서 살건 자기의 거리를 아끼고 사랑하고… 그 다음에 응… 그리구 우리의 마음이 아름답고 깨끗해야 우리 거리도 아름답고 깨끗해진다고 말해주었어요. 그리구 이사짐을 꾸리느라 어머니랑 바쁘시다고 내 옷도 빨아주고 다림질까지 해주었어요. 이사짐 꾸리는것두 도와주구…》

순남이가 철용이의 뒤를 이어 자랑하듯 말했다.

《그 바람에 얜 찔끔 울기까지 했어요.》

(울기까지?)

지연이는 가슴이 그들먹하게 차오른 후더운 숨을 호― 하고 길게 내뿜었다. 자기딴엔 장난꾸러기애들앞에서는 무섭게 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기앞에서는 울기는커녕 언제한번 이렇게 어른스러워진적이 없던 애들이 시내앞에서는 눈물까지 흘렸다니…

지연이는 입술을 꼭 깨물며 시내에게로 다가갔다.

《시내야, 그럼 네가 그래서 철용이네 집엘…》

지연이를 마주보는 시내의 고운 눈에는 말없는 웃음만이 피여있었다.

그런데 나는 혼쌀내워주려는것으로만 알고 보기와는 달리 이악스러운 아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 사랑, 그런 진심을 품고있는줄도 모르고…

《시내야, 난 정말 큰걸 몰랐댔어. 우리가 받은 분공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를 정말 몰랐댔어.》

지연이는 시내의 손을 꼭 잡았다.

《지연아, 난 또 욕을 먹어야 하겠구나. 철용이네 집에도 혼자 갔으니 말이야.》

《아니야, 날 욕해줘. 난 맹꽁이였어.》

지연이는 도리머리를 흔들며 부르짖었다.

《난 이젠 똑똑히 알았어. 우리의 거리가 무엇으로 아름다워지는가를 말이야. 그건 바로 사랑이야. 그 사랑은 바로 깨끗한 애국심이라는걸…》

지연이와 시내, 순남이의 바래움을 받으며 철용이는 떠나갔다. 그러나 어디 가도 끝없이 아름다와야 할 우리의 거리를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살것이다.

지연이와 시내는 류다른 기쁨을 안고 걸음을 옮겨놓았다.

머지 않아 순남이와 철용이가 자라 이 거리의 당당한 주인으로 될 사랑의 거리, 행복의 거리가 지연이와 시내의 앞길에 환하게 펼쳐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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