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2호에 실린 글

 

    □ 유 년 소 설 □

 

      

                                                윤  정  심

                                               

유치원에서 돌아온 용이는 책상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거기에는 두툼한 그림종이로 만든 딱지 세개가 놓여있었습니다.

《이거면 주일이 딱지를 다 딸수 있어.》

용이는 딱지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그 자리에 가방을 벗어놓았습니다.

때마침 밖에서 《용이야ㅡ》하고 부르는 주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용이는 창문에 대고 《나갈게, 먼저 가.》하고 소리친 다음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찾아 신었습니다.

집을 나서 동무들이 기다리는 놀이터로 갈 때였습니다. 살랑살랑 옷깃을 흔들며 어리광바람이 불어오더니 무엇인가가 용이의 머리를 톡 때렸습니다.

《아가, 이게 뭐야.》

뭐긴 뭐야, 나지 하는듯 노랗고 동그란것이 용이의 발앞으로 도로록 굴러왔습니다.

《야, 살구!》

용이는 얼른 집어 한입에 냠냠 먹어치웠습니다.

시크러웠지만 참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먹은것 같지 않았습니다.

용이는 슬며시 머리를 들어 살구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큰것, 작은것… 살구는 참으로 많이도 달렸습니다. 한알 더 떨어지지 않을가 해서 한참이나 쳐다보았지만 떨어지기는커녕 목만 아팠습니다.

그런데 향기로운 살구냄새만은 자꾸자꾸 풍겨왔습니다. 바람에 팔랑이는 잎사귀들은 《어서 올라 와.》하고 꼬드기는것만 같았습니다.

《에라, 한알 더 먹구 가자.》

용이는 주위를 살피고나서 다람쥐처럼 발발 나무잡이를 했습니다.

올라가자마자 아지에 걸터앉아 큰것들로 연방 따먹기 시작했습니다.

살구는 꽤나 시크러웠습니다. 용이는 또 한알 따서 한입 베먹으며 《아, 시다.》하고 중얼거렷습니다.

그런데 이때 문득 나무아래에서 《누구예요? 선살구를 따먹는게?》

(들켰구나.)

용이는 당장에 겁먹은 《토끼》가 되였습니다.

빨리 도망칠 생각에 나무를 타고 주르르 미끄러져내렸습니다. 꽝 하고 엉덩방아를 찧은건 더 말할것 없구요.

《아니, 얘, 어디 다치지 않았니?》

커다란 가방을 멘 아지미가 눈을 크게 뜨고 다가왔습니다.

아지미는 용이가 흘린 딱지를 집어들었습니다.

용이는 엉거주춤 일어나 《잘…못했어요.》하며 뒤걸음치다가 냅다 달아났습니다.

뒤에서 《얘, 섯거라!》하는 목소리가 뒤쫓아왔습니다. 용이는 꽁무니가 빳빳해서 달아났습니다.

다행 한마을에 사는 아지미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올 때 배가 콕콕 아프고 시큼한 살구가 목구멍으로 올리뜀을 하는것만 같았습니다. 게다가 머리까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배를 쓸어주며 《너 뭘 다른걸 먹지 않았니?》하고 근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여느때 같으면 《아니요.》하고 말을 했을테지만 오늘은 그럴수 없었습니다.

정말 어머니말대로 《다른것》을, 그것도 몰래 훔쳐먹었으니 말입니다.

솔직히 털어놓으면 어머니에게서 또 《에이구, 이 철딱서니 없는것아.》하고 지청구를 들을것입니다.

글쎄 철딱서니라는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없다는것은 꼭 있어야 할것이 없다는것일겁니다.

용이는 그 말이 욕보다 더 듣기 싫었습니다.

그런데 《철딱서니 없는》배는 점점 더 아파지고 나중에는 밸이 끊어질 지경이였습니다.

마침내 용이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가게 되였습니다.

《병원냄새》가 코를 찌르고 하얀 천을 씌운 딱딱한 침대에 눕자 용이는 살구나무에서처럼 겁이 더럭 났습니다.

하얀 위생복을 입은 의사선생님이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진찰하려던 선생님도 누워있던 용이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글쎄 아까 살구나무아래서 만났던 그 아지미가 의사선생님일건 뭡니까.

어머니가 영문을 몰라 의사선생님과 용이를 번갈아 바라봅니다.

아픈중에도 용이는 부끄러워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좋은 살구도 익기 전에 몰래 따먹으면 나쁜 살구가 된답니다.》

의사선생님은 부드러운 손으로 용이의 배를 눌러보고 쓸어주더니 큰 쇠통을 《절그럭》하고 꺼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침대를 꺼내들며 말했습니다.

《이 침으로 배속에 매달린 나쁜 살구를 뚝 떼버려야 하겠어요.》

그제야 짐작이 가는듯 아니, 다 알만 하다는듯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의 손에 든 침대를 보며 용이는 눈을 꼭 감았습니다.

때끔, 배가 따벌에게 쏘였을 때처럼 아팠습니다.

그러나 침을 맞고나니 배가 시원했습니다.

그보다도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용이는 침을 다 맞고 침대에서 일어나서 생각하였습니다.

(아니야, 살구는 나쁘지 않아. 선 살구를 따러 나무에 몰래 올라갔던 내가 나쁜 애야.)

용이의 마음을 안듯 의사선생님은 가방에서 딱지를 꺼내주었습니다.

《자, 이걸 받아요.》

용이는 부끄러워 머밋거리다 마침내는 씩 웃으며 딱지를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머리를 굽석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 인사는 자기의 잘못과 배아픔을 고쳐준 고마운 의사선생님에게 드리는 인사였습니다.

어머니와 의사선생님은 서로 마주보며 즐겁게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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