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4호에 실린 글
◇동물소설◇
믿음을 안고 산 용감이 고대성 이 이야기는 어느 한 사냥군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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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사냥차비를 하고 나서자 오래동안 마당지기나 하던 용감이는 날듯이 기뻤습니다. 너무 기뻐 껑충껑충 뛰여오르기도 하고 할아버지보다 앞서 냅다 달려나가다 홱 돌아서 다시 맹렬한 속도로 네굽을 박차며 달려오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왜 안그러겠어요. 오래간만에 사냥을 떠난 기쁨에 마음이 마냥 들떴으니까요. 《용감아, 그러지 말아. 벌써부터 기운을 다 빼버리면 사냥은 무슨 힘으로 하겠니.》 할아버지가 은근히 타이르자 그제야 용감이는 들뜬 가슴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뒤따랐습니다. 이렇게 용감이는 자기를 키워준 주인인 할아버지의 말을 신통히도 잘 알아듣는답니다. 일행에는 할아버지의 맏손자 호남이도 끼여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떠난 호남이는 사냥이 여간 신비해보이지 않는지 연신 재잘거립니다. 무슨 짐승을 잡으러 가나요, 할아버지 어깨에 멘 총을 나도 한번 쏴볼수 있나요, 용감이가 저 혼자서도 사냥을 할수 있나요 하면서 말입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미소를 담고 짤막짤막히 대답해주었습니다. 농장에서 메돼지피해를 본다기에 메돼지사냥을 간다, 이제 총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랄 네가 총을 어떻게 쏘겠느냐, 용감이는 이름 그대로 용감한 개다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용감이는 할아버지가 자기보고 용감한 개라고 할 때 속이 으쓱해졌습니다. 사냥엔 자신있다고 꼬리도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여러달만에 사냥을 떠나게 된 용감이는 지난 겨울 혼자서 여우를 잡은것처럼 이번에도 큼직하게 사냥해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어느덧 목적지인 석청산입구의 나지막한 릉선에 이르렀습니다. 석청산은 그닥 험한 산이 아니였습니다. 석청산앞의 밋밋한 릉선을 따라 협동농장의 강냉이밭이 눈아래로 끝간데 없이 펼쳐져있는걸 봐도 짐작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강냉이밭에 요즘 난데없이 소처럼 큰 메돼지가 나타나 해를 준다는것입니다. 이젠 년로보장을 받고 집에서 쉬고있지만 젊어서부터 사냥에 능한 할아버지는 관리위원회로부터 그 메돼지를 없애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더니 《쉿!》하고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습니다. 그 소리에 용감이는 등뒤의 털끝을 곤두세우며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아직 영문을 모르고 앞으로 나서려는 호남이를 할아버지는 한손으로 잡아 뒤로 밀어놓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어깨에서 사냥총을 벗겨들더니 어깨우에 총탁을 대고 공중을 묘준하였습니다. 용감이는 버릇대로 할아버지가 겨눈 총끝을 바라보았습니다. 총끝앞으로 소리개 한마리가 점으로 보이며 가물거렸습니다. 아마 농장축산반 병아리를 본 모양인지 소리개는 그 자리에 딱 멈추어 섰습니다. 순간 《땅》하는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방금 내려꽂히려던 소리개가 던져진 돌덩이처럼 땅우로 빙글빙글 돌며 떨어져내렸습니다. 《용감이, 물어왓.》 할아버지의 명령이 무슨 필요겠어요. 용감이는 벌써 총소리와 함께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사냥개는 여러가지랍니다. 혼자서 짐승사냥을 할수 있는 개, 총에 맞은 기러기나 물오리같은 날새를 찾아 물어오는 개, 메토끼나 노루같은 짐승을 숲속에서 찾아내여 몰아오는 개 등으로 말입니다. 용감이는 이 모든 일을 다할줄 안답니다. 그만큼 사냥의 명수지요. 소리개를 찾은 용감이는 무엇이라 이름할수 없는 기쁨으로 하여 가슴을 울렁이였습니다. 사냥의 첫 마수거리가 괜찮았기때문입니다. 용감이는 소리개를 앞에 놓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사냥의 기쁨을 한껏 맛보았습니다. 마치 자기가 잡기라도 한듯이 말입니다. 그다음에야 용감이는 소리개를 덥석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송곳이를 박아 물 용감이가 아니랍니다. 사냥물에 손상이 안가게 물어야 한다는걸 용감이는 잘 안답니다. 소리개를 물고 날듯이 돌아오던 용감이는 그만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박은듯이 멈춰섰습니다. 글쎄 메돼지란 놈이 용감이를 마중오는 호남이를 덮치려고 딱 견주고있는게 아니겠어요. (저... 저런, 저놈이...) 용감이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여간만 귀가 밝지 않은 메돼지가 먹을걸 찾다가 호남이의 발자국소리를 들은 모양이였습니다. 그래 위험을 느끼고 동정을 살피기 시작한것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그처럼 사랑하는 손자 호남이가 위험했습니다. (어쩐다! 할아버지는 저쯤에 멀리 있으니...) 용감이는 짧은 순간 주저하였습니다. 메돼지의 땅에 박힐듯이 길쭉한 주둥이엔 굵은 소나무도 뚝뚝 꺾인다는 시허연 송곳이 한쌍이 무섬증을 일으키며 삐쭉 삐여져나와있었습니다. 엉뎅이폭에 비해 두배나 넓게 가슴이 퍼진 메돼지의 몸통은 용감이에 비해 형편없이 컸습니다. 한 이백키로쯤 되여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용감해야 한다. 할아버지한테 알리느니 나 혼자서라도 덤벼들어보자.) 이런 생각이 용감이의 머리속에 짜릿하고 흘렀습니다. 용감이는 입에 문 소리개를 다박솔밑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쉬며 메돼지를 쏘아보았습니다. (옳지, 내가 선데는 메돼지가 있는데보다 약간 높구나. 그리고 메돼지의 저쪽 옆에는 경사가 진 비탈지구나. 됐다.) 용감이는 후닥닥 자리를 차고 달려나갔습니다. 《으왕- 왕- 왕-》 용감이가 짖는 소리에 할아버지가 총을 들고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용감이는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달려나가던 힘으로 메돼지몸통에 콱 부딪쳤습니다. 호남이한테만 정신을 팔고있던 메돼지는 뜻밖에도 옆으로 달려드는 용감이의 첫 타격을 받고 비칠거렸습니다. 다음순간 메돼지의 발이 경사지로 미끄러지면서 그놈이 허궁 자빠졌습니다. 용감이는 넘어진 메돼지우에 날아올라 멱부터 찾아 물었습니다. 《왝 왜- 액-》 귀청을 째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메돼지가 곧은 목을 몸채로 이리저리 내저었습니다. 그 바람에 메돼지의 멱을 물었던 용감이는 땅에 떨어져 나뒹굴었습니다. 불의의 습격에 얼혼이 나간 메돼지는 내뛰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메돼지는 겁이 많다고 하지만 또 전혀 없기도 한 짐승입니다. 가랑잎 굴러가는 바스락소리에도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리는 겁쟁이지만 일단 위험을 피할수 없다고 느꼈을 때는 총구앞으로도 서슴없이 뛰여드는 미욱한 짐승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겁에 질려서 냅다 달아납니다. 용감이는 혼자서 메돼지사냥을 하게 되였다는 기쁨을 안고 신바람나서 뒤따랐습니다. (이제 할아버지두 따라올거야.) 달려오는 할아버지를 피끗 띄여보고 용감이는 우쭐해서 뒤쫓아갔습니다. 메돼지가 달리는 속도는 보통이 아니였습니다. 메돼지는 가시덤불이면 가시덤불, 풀숲이면 풀숲 가리지 않았습니다. 지어 웬간한 나무들은 뿌리채 뽑으며 길을 냈습니다. 게다가 앞발이 긴 메돼지는 내리받이, 올리받이를 평지처럼 잘 달렸습니다. 그 바람에 할아버지가 있는데서 퍼그나 떨어지게 되였습니다. 메돼지가 아무리 빨라도 생길을 내며 뛰는 그놈보다 그뒤로 따라가는 용감이가 쉬웠습니다. 둘사이는 점점 가까와졌습니다. 두 짐승이 달리기경주나 하듯 퍼그나 멀리 달렸을 때 앞선 메돼지가 갑자기 탁 멈춰섰습니다. 그 바람에 바투 다가들었던 용감이는 메돼지와 콱 부딪쳤습니다. 그 순간 두 짐승은 그만 낭떠러지로 함께 굴러 떨어졌습니다. 바로 앞이 낭떠러지였던것입니다. 메돼지도 아마 그걸 보고 걸음을 멈추었던 모양입니다. 사람한테도 댓길이 넘는 벼랑이였습니다. 《깽-》 메돼지와 함께 벼랑에서 떨어진 용감이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정신을 차려 일어서려던 용감이는 《끙》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뒤다리 하나가 꼬챙이로 쑤시는듯이 아팠던것입니다. 메돼지한테 깔렸댔는지 정갱이 뼈마디가 퉁겨졌습니다. 그런데 메돼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메돼지를 놓쳤구나.) 다리아픔도 아픔이려니와 메돼지를 놓친것이 아수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호남이를 구원했다는 생각이 그 아쉬움을 밀어냈습니다. 《용감아, 용타. 네가 호남이를 살렸구나.》 머리를 다독이며 칭찬할 할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할아버지가 기다리겠구나.) 문득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 용감이는 세발걸음으로 껑충거리며 돌아갈 길을 찾았습니다. 벼랑은 꽤 넓은 폭으로 길게 놓여있었습니다. 벼랑을 에돌아 산기슭에 올리붙는데도 한참이나 걸렸습니다. 할아버지가 있는데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 가늠하기 힘들었습니다. 코로 쿵쿵 소리를 내며 냄새를 맡아보았으나 기억해둔 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퍼그나 멀리 온 모양인데... 그래서 할아버지도 안 보이댔구나.) 하긴 메돼지와 달리기경기를 하듯 했으니 그럴만도 하였습니다. 용감이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세발걸음은 여간 말째고 힘든것이 아니였습니다. 바른 걸음이 못되고 껑충껑충 뜀걸음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 어떤 땐 풀숲에 숨겨져있는 칡넌출에 걸려 비칠거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대로 한동안 그렇게 달리던 용감이는 정말 산딸기넌출에 발이 걸려 턱을 밀며 앞으로 푹 꼬꾸라졌습니다. 숨이 차올라 헐떡거렸습니다. (에라, 엎어진 김에 쉬여간다구 숨이나 좀 돌려서 가자.) 용감이는 누운채로 아픈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이 다릴 보면 걱정할거야. 그래두 할아버지손이 닿으면 고칠수 있어. 할아버진 지금 뭘 할가? 내가 메돼지를 놓치는 바람에 사냥도 실패했겠는데.... 집으로 가지나 않았을가? 아니, 그냥 날 찾을거야. 에이, 내가 멱통을 단단히 물고 놓치지 말었어야 하는건데...) 용감이가 이런 생각을 굴리고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웬 짐승일가?) 용감이는 슬며시 머리를 들어 둘러보았습니다. (아니, 곰?!) 뜻밖이였습니다. 맹수를 보니 머리털이 쭈삣 일어섰습니다. 언젠가 곰때문에 할아버지한테 되게 경을 치던 일이 불쑥 생각키웠습니다. 세다리를 가지고는 달아날수도 없다는 생각도 련달아 들었습니다. 어쩐다? 용감이는 할아버지가 배워준 방법을 써보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그것은 죽은체 하는것입니다. 곰은 대체로 죽은 짐승의 고기를 다치지 않는답니다. 용감이는 얼른 눈을 딱 감고 네다리의 맥을 탁 놓았습니다. 이어 곰이 다가오더니 용감이의 몸에 코를 대고 씩씩 숨소리를 내며 냄새를 맡았습니다. 정말 죽었나 확인하듯 앞발로 용감이를 굴려보기도 하였습니다. 용감이는 까딱하지 않고 곰이 하는대로 몸을 맡기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용감이의 성한 뒤다리에서 뿌직 소리가 나며 칼로 베는듯 한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깽-》 용감이는 참지 못하고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켰습니다. 깜짝 놀란 곰이 화닥닥 달아났습니다. 그 순간 용감이의 성한 뒤다리가 뚝- 소리를 냈습니다. 용감이의 아츠러운 비명소리에 놀란 곰이 힘을 줄 때 그 뒤발통에 밟힌 다리가 부러진것 같았습니다. 다른 짐승과 달리 별스레 몸을 뚱기적거리며 달아나는 곰의 뒤모습을 쏘아보는 용감이의 두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제는 두다리가 다 말을 듣지 않게 된것입니다. (이젠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아, 할아버지.) 용감이는 컹컹 울부짖었습니다. 풀대를 마구 뭉개며 몸부림쳤습니다. 다리의 아픔이 온몸의 맥을 쭉 뽑았습니다. 이윽하여 용감이는 기진맥진하여 늘어졌습니다. 끙끙거리는 앓음소리가 연방 흘러나왔습니다. 어디선가 딱딱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용감이는 혹시 할아버지가 아닌가 하여 고개를 들었습니다. 키가 껑충한 노루였습니다. 용감이를 발견한 노루의 깜장코가 발름거렸습니다. 《노루야, 좀 도와주려마.》 용감이는 컹컹 소리쳐 짖었습니다.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 모르는 노루는 위험을 느끼고 홱 돌아섰습니다. 그리고는 냅다 달아났습니다. 한번 뒤돌아보지도 않고 다리를 쭉쭉 내뻗치며 기운차게 달렸습니다. (흥, 다리 부러진 나를 무서워하다니! 허참.) 용감이는 허거프게 웃었습니다. 지난날 달아나는 노루도 뒤따라잡았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몸으로는 눈으로 바래우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빨리 달아나는 노루의 튼튼한 다리가 부럽기만 하였습니다. (할아버지한테 가면 내 다리가 단번에 나을수 있으련만... 할아버지가 날 찾느라 고생하겠지....) 용감이는 할아버지네 집에서 강아지때부터 지금껏 다섯살을 넘겼습니다.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속에 사냥개로 자랐고 사냥명수로 이름냈습니다. 맛있는 과자 한쪼박이 생겨도 나누어주던 할아버지의 사랑이 갈피갈피 되새겨지며 눈물이 방울졌습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는 용감이를 눈먼 사랑으로만 키운것은 아니랍니다. 대바르고 결패있게 그리고 용감하게 키워주었습니다. 언젠가 할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갔던 용감이는 곰을 만나자 비실비실 쫓기웠습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새끼곰이였습니다. 아직 사냥경험이 어린 용감이는 맹수를 보자 겁부터 앞세운것입니다. 그때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달려드는 그 곰에게 사냥군의 능숙한 솜씨로 총을 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모릅니다. 《이놈아, 절 키운 주인을 내버리고 혼자서만 달아나? 그래도 난 널 믿었는데… 의리가 없는 놈.》 할아버지는 회초리를 꺾어 용감이를 후려쳤습니다. 용감이는 매를 맞는 아픔도 아픔이려니와 할아버지의 욕설이 더 가슴을 긁었습니다. 의리가 없는 놈이라던 할아버지의 그 말. 그때부터 이 말은 용감이의 가슴속에 깊이 그리고 든든히 자리잡았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이어가느라니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사무쳤습니다. (나는 가야 해. 기여서라도… 할아버지가 날 꼭 기다릴거야.) 용감이는 이렇게 결심을 다졌습니다. 그사이 상한 두다리는 더 팅팅 부어오르고 못 견디게 사정없이 쿡쿡 쏘았습니다. 그러나 용감이는 앞으로, 앞으로만 기여나갔습니다. 두앞발을 내밀어 풀뿌리에 발톱을 박고 어금이를 앙다물며 기고 또 기였습니다. 어느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용감이는 갑자기 환성을 터드릴번 하였습니다. 낯익은 다박솔이 눈앞에 보였기때문이였습니다. 분명 자기가 소리개를 감춰두었던 그 다박솔밑이였습니다. 그때 그 다박솔뒤에서 뚤뚤거리는 메돼지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엉, 저놈이?) 아침에 용감이와 싸우다 낭떠러지에서 함께 떨어졌던 그 메돼지였습니다. 목덜미에 시뻘건 상처자리가 난걸 보니 틀림이 없었습니다. 용감이는 정신이 아뜩해졌습니다. 자기는 이렇게 두다리를 못쓰게 되였는데 메돼지는 저렇게 그냥 펀펀해서 움직이는것이였습니다. (저놈이 어떻게 여기 또 나타났을가?) 산짐승들은 자기의 활동구역이 일정하게 구획져있답니다. 용감이한테 혼쭐이 난 메돼지도 제 보금자리에 누웠다가 정 배가 고파나 자기 활동구역에 다시 나타난것이랍니다. 메돼지는 지금 코에 미쳐오는 소리개냄새를 따라 이곳으로 다가들고있었습니다. 메돼지는 초식동물처럼 두개의 발쪽을 가진 짐승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를 먹는 잡식동물입니다. 식물질이건 동물질이건 다 먹는답니다. 이런 메돼지여서 여간 예민하지 않는 코에 풍겨드는 고기냄새를 놓칠리 없었습니다. 툴툴거리며 다박솔 있는데로 다가들었습니다. 용감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놈이 소리개를 탐내누나. 할아버지의 사냥물을…) 용감이의 두눈에서 홰불이 펄 일어났습니다. 맥이 다 빠졌던 몸에 젖먹은 힘까지 되살아났습니다. 용감이는 메돼지가 다박솔밑으로 들어서는 순간 온몸의 힘을 다 내뻗치며 용감하게 뛰여올랐습니다. 말 안듣는 뒤다리를 뻗치며 어떻게 껑충 뛰여올랐는지 용감이도 모릅니다. 어쨌든 단번에 메돼지의 멱을 물고늘어졌습니다. 이번엔 기어이 놓치지 않으려고 송곳이에 힘을 주었습니다. 한번 또 한번 힘을 주자 《푹-》하고 용감이의 날카로운 송곳이는 메돼지의 멱살에 깊숙이 들이박혔습니다. 《왝 왝- 왝-》 돼지멱따는 소리라더니 정말 메돼지의 비명은 산판을 들었다놓았습니다. 목에서 쩝쩔한 피가 콸콸 쏟아졌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습격에 기겁을 한데다가 용감이가 송곳이를 어찌나 깊숙이 들이박았는지 덴겁한 메돼지는 뛸념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돌며 몸부림만 쳤습니다. 용감이는 상한 뒤다리에 지독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할아버지의 사냥물을 지켜야 한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키워준 할아버지의 사랑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용감이는 아픔으로 하여 가물거리는 정신을 이렇게 가다듬었습니다. 이때 땅- 하고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할아버지가 메돼지를 쏜것입니다. 드디여 메돼지가 푸르럭거리며 게거품을 내뿜었습니다. 육중한 몸이 모로 털썩 자빠지였습니다. (끝내 지켜냈구나.)하는 안도감이 드는 순간 용감이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할아버지, 용감이가 정신을 차려요.》 호남이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용감이의 두눈을 번쩍 뜨게 하였습니다. 기쁨에 찬 할아버지와 호남이가 한눈에 안겨왔습니다. 《장하다, 용감아. 너야말로 용감한 개다.》 《할아버지, 용감인 정말 용감해요. 두다리를 상하고도 어떻게 저렇게 큰놈과 싸워 이겼는지 모르겠어요.》 호남이가 눈을 반짝이며 할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허허. 호남아 봐라, 내 그러지 않더냐. 용감이는 이 다박솔밑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올거라구. 그렇게 믿은 보람이 있어 이렇게 놓쳤던 메돼지도 끝내 잡고야말지 않았니. 오늘 사냥은 모두 용감이의 공로다. 용감아, 정말 용타, 용해.》 할아버지는 용감이를 버쩍 추켜올려 품안에 꼭 껴안으며 또 이렇게 되뇌이는것이였습니다. 《아무렴, 말 못하는 짐승이래두 사랑과 믿음을 쉽게 저버리지는 않는 법이지. 허허.》 호남이도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거렸습니다. 용감이는 그저 두눈만 슴벅거리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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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안고살며 그 믿음에 보답하려고 애쓰는 용감이의 이야기는 이것 하나뿐만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소학교 어린 학생인 나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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