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3호에 실린 글
□ 문학교실 □
작고 평범한 생활속에서 찾아낸 큰 작품
해님이 한껏 뿌려주는 빛발을 받아 아름다운 꽃들이 피여나듯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의 따사로운 해발아래 재능의 꽃으로 활짝 피여나고있는 학생동무들! 동무들속에는 문학공부를 많이 하여 재미나는 동화, 우화랑 단편소설까지 척척 써내고있는 동무들이 있겠지요. 앞으로 이름난 작가로 될 큰 꿈을 안고 문학수업을 하고있는 동무들을 위해 아동단편소설창작에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간단히 이야기하렵니다. 단편소설을 창작하자면 우선 이미전에 창작발표된 성과작들이 어떻게 씌여졌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럼 오늘은 동무들속에 널리 알려진 단편소설 《땅크놀음》에 대하여 보기로 합시다.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습니다. 《아동문학일수록 기발하고 특색이 있어야 한다.》 이 단편소설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기발하고 특색있게 씌여졌습니다. 주인공인 령남이와 그의 동무들이 《땅크놀음》이라는 군사놀이하는 장면을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땅크놀음은 아이들이 한줄로 나란히 서서 량손에 새끼줄을 늘여쥐고 달리는 놀음입니다. 맨앞에 선 애가 운전수이고 새끼줄을 쥔 량손을 빙빙 돌리며 뒤에 선 아이들은 《무한궤도》입니다. 《우르릉, 우르릉, 우르릉…》하고 한입모아 제법 무서운 《땅크소리》까지 내면서 말이지요. 령남이네 《땅크》는 원쑤들이 파놓은 전호구뎅이를 뛰여넘듯이 개울창에 철버덕거리며 마구 뛰여들기도 합니다. 뿐만아니라 저희 집마당으로 덤벼들어 누나가 곱게 엮어세운 꽃밭울타리를 마구 걷어차고 나갑니다. 마치 미군놈들의 철조망을 짓뭉개듯이 말입니다. 방에서 뛰쳐나온 누나가 꾸지람을 하자 자기들은 《땅크》라고 큰소리칩니다. 누나가 《땅크라면 인민군대땅크겠지?》하고 묻는 말에 령남이며 아이들은 인차 깨닫습니다. 인민군대땅크는 인민들의 재산을 함부로 짓뭉개지 않는다는것을 말입니다. 이어 땅크대렬은 다시 땅을 구르며 언덕을 넘고 개울창을 건너뛰면서 달립니다. 하지만 꽃밭과 남새밭은 아예 다치지 않으면서 말이지요. 작품의 내용은 이렇게 별로 큰 이야기도 아니고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창작된 작품인데도 오늘까지 명작으로 일러지고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있는가를 생각해봅시다. 작가 황민선생님은 우선 아이들이 흔히 벌리는 군사놀이와 같은 작고 평범한 생활에서 의의있는 인간문제를 발견한것입니다. 개울창이며 산언덕이며 못 가는데가 없는 《땅크》는 용감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못 가는데가 없는 《땅크》가 아니라 못 가는데가 있는 《땅크》를 그려낸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발견해낸 새로운 문제성입니다. 즉 고향의 부모형제들이 가꾸어낸 꽃 한포기, 남새 한포기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줄 아는 사람만이 참으로 용감한 인민군대땅크병이 될수 있다는것입니다. 이렇듯 작가선생님은 참된 용감성은 고향과 인민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나온다는 종자를 찾아쥐고 아이들의 평범하면서도 자그마한 놀음속에 큰 문제를 심어 그려낸것입니다. 소설은 이렇게 새롭게 찾아낸 종자와 문제성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 의의있는 문제를 주인공을 비롯한 작중인물들의 성격을 통하여 형상으로 꽃피워야 합니다. 작가는 자기가 말하려는 기본문제를 주인공의 성격에 체현시켜 형상해나갑니다. 아무리 좋은 문제라 해도 생동한 인간성격으로 풀어내지 못하면 그러루한 소설로 되고맙니다. 때문에 작가선생님은 령남이라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정하고 그의 성격을 생동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럼 성격화된 주인공을 어떻게 그려놓았는가를 보기로 합시다. 우선 령남이를 미군놈들에게 어머니를 빼앗긴 아이로 설정했습니다. 그는 어서 커서 인민군대가 되여 어머니의 원쑤를 갚을 마음으로 불타고있습니다. 다음은 령남이를 인민군대 땅크병형님을 가진 아이로 설정했습니다. 때문에 자기도 앞으로 용감한 땅크병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림을 그려도 땅크를 그리고 이야기를 해도 땅크병아저씨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군사놀이를 해도 땅크놀음만 합니다. 또한 령남이를 매우 착하고 령리한 소년으로 설정하였습니다. 어머니를 대신하여 자기를 그토록 아끼고 사랑해주는 누나의 말을 착실히 듣는 아이입니다. 그리고 생각없이 꽃밭을 짓뭉개는 나쁜짓을 했으니 인민군대땅크병감이 못된다는 후회와 눈물을 짓게 하는 다정다감한 아이로 그렸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주인공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설정해놓고 그의 성격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짧은 단편소설에서는 성격발전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릴수 없습니다. 성격발전의 한 계기만을 그려야 합니다. 깨닫는것, 즉 자책이나 반성하는것이 심각할수록 작가가 제기한 문제성은 더욱 크고 예리화됩니다. 이 소설에서도 령남이가 용감한 인민군대땅크병이 되자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를 깨닫는 한 장면을 성격발전의 계기로 선택하고 그렸습니다. 때문에 성격발전과정은 그 계기를 중심으로 전반단계와 후반단계로 나누어집니다. 전반단계는 그저 용감한 땅크병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불타는 령남이의 성격과 모습을 그렸습니다. 용감한 땅크병이 될 생각밖에 없는 령남이에게는 그저 유희감정속의 환상세계밖에 없습니다. 《땅크》운전수가 된 그의 눈에 보이는것은 미군놈의 전호나 철조망밖에 없습니다. 개울창이든 꽃밭울타리든 용감한 《땅크》를 가로막을 장애물이란 이 세상에 없다는 환희에 넘쳐 달렸습니다. 이러한 령남이에게 자각의 계기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누나의 깨우침입니다. 누나를 통해 자기들이 벌린 《용감한》 행동이야말로 얼마나 창피스럽고 못된짓이였는가를 깨달았던것입니다. 후반단계는 그저 《땅크병》이 아니라 《인민군대땅크병》으로 새롭게 발전한 령남이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다시금 운전수가 되여 모는 령남이의 《땅크》는 원쑤들을 짓부시며 돌진해갑니다. 유희감정속의 환상세계에 또다시 뛰여든 령남이였지만 처음의 령남이와 얼마나 다릅니까. 꽃밭이나 남새밭은 하나도 다치지 않습니다. 말그대로 인민의 생명재산을 귀중히 여기고 지키는 《인민군대땅크병》으로 자란것입니다. 이렇게 철없던 령남이의 성격은 새롭게 발전하였던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이 작품에서 동심적인 세부를 어떻게 탐구하여 그렸는가를 봅시다. 아이들은 흔히 군사놀이를 할 때마다 서로 대장이 되려고 합니다. 땅크놀이를 할 때도 누구나 맨 앞장에서 달리는 운전수가 되려고 싱갱이를 벌립니다. 령남이도 자기가 운전수가 되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사실 령남이의 형님은 땅크병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본적이 없는 아이들은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령남이는 쩍하면 제가 땅크병이 되기나 한듯이 뻐깁니다. 그리고 마치도 땅크를 운전해본것처럼 땅에다 그림을 그리면서 이건 이렇구 저건 저렇구 하면서 설명을 해댑니다. 하면서 땅크놀이때마다 제가 운전수가 되겠다고 말썽을 부립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운전수자리도 좀처럼 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던차에 전선에 계신 형님으로부터 사진이 왔습니다. 땅크문을 열어젖힌채 름름하게 찍은 형님의 사진으로 하여 사정은 단번에 달라집니다. 아이들은 마치 령남이가 땅크병이나 된듯이 부러워하였고 순간에 운전수자리를 내여줍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동심적인 세부입니까. 땅크놀음을 하면서 운전수가 되려고 쌈하듯이 싱갱이를 벌리는것부터가 동심입니다. 더구나 그 운전수의 자격을 사진 한장으로 인정하고 대뜸 자리를 내주는것은 참으로 동심적입니다. 정말이지 아이들다운 사고방식이며 아이들다운 론리의 세계인것입니다. 론리의 말이 나왔으니 이 문제에 대하여 좀더 보기로 합시다. 작가는 아이들의 단순한 론리적인 세계를 펼쳐보이기 위하여 한가지 기름진 세부를 탐구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누나가 정성을 들여 가꾼 꽃밭과 높이가 몇뽐밖에 안되는 울타리입니다. 울타리는 들어오지 말라는 표식인데 령남이는 짓차고 들어갔습니다. 이 장면에서 두개의 론리가 대립됩니다. 《누나, 난 땅크야!》 즉 땅크는 장애물이 있다 하여 에돌거나 주저앉아서는 안된다는 령남이의 론리입니다. 《땅크면 인민군대땅크겠지?》 즉 인민군대땅크는 인민의 생명재산을 다치지 않는다는 누나의 론리입니다. 작가가 펼쳐보인 이 세부에서는 서로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그 수준상 차이가 있는 두 론리가 섭니다. 말하자면 땅크는 어떤 장애물도 다 에돌지 않는다는 령남이의 생각과 인민군대땅크는 인민의 생명재산을 다치지 말아야 한다는 누나의 생각이 서로 부딪칩니다. 여기서 령남이의 생각은 단순하고 초보적인 론리이고 누나의 생각이 보다 높은 수준의 론리이라는것은 두말할것 없습니다. 때문에 령남이는 자기의 단순한 론리를 버리고 누나의 론리에 공감하며 그것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동하게 되는것입니다. 결국 작가는 이 세부를 통하여 령남이의 성격발전과정을 론리적인 사고의 발전과정과 결부하여 생동하게 그려보이고있습니다. 학생동무들, 우리모두 별치 않은 생활속에서 의의있는 문제성을 찾아서 재미나면서도 인식교양적가치가 크게 형상한 이 작품의 창작경험을 본받읍시다.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생활을 무심히 지나보내지 말고 소설로 만들어봅시다. 그러느라면 좋은 작품들을 련속 써내게 되고 앞으로는 온 나라에 이름이 뜨르르한 작가로 자라나게 될것입니다. 한 탁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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