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4호에 실린 글
☆백두산전설☆
동 귀 신
아시아의 《맹주》가 될 어리석은 망상으로 고무풍선처럼 부풀어있던 일제는 광대한 중국대륙을 깡그리 삼켜보려고 마지막발악을 하고있었다. 그런데 김일성장군유격대에 번번이 발목을 잡혀 아우성을 쳤다. 김일성장군유격대를 《소멸》하지 않고서는 저들의 야망을 실현하기 어렵다는것을 깨달은 일제는 제놈들의 군대, 경찰들을 총동원하여 일격에 없애버릴 《동기대토벌》작전을 폈다. 그해 겨울은 수십년이래 처음 보는 강설과 매일과 같이 눈보라가 기승을 부렸고 령하 40℃를 오르내려 얼어죽은 짐승들의 시체가 발에 걸채였다. 왜놈들은 제놈들의 《토벌작전》으로 하여 유격대는 《얼어죽고말것》이라고 했다. 어느 한 지구 《토벌》대를 책임진 하시모도사령관은 유격대소부대의 꼬리를 쥐자 내심 괘재를 올렸다. 이 겨울은 우리 《황군》에게 행운의 겨울이 될것이다. 온몸을 눈만 내놓고는 털로 칭칭 감은 왜놈들은 검질기게 유격대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쫓느라면 언젠가는 유격대가 허기지고 지쳐 쓰러져 얼어죽고말것이라고 《토벌》대사령관 하시모도는 생각했다. 유격대도 인간이다, 그럴진대 먹고 입어야 할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지금 유격대의 형편은 어떠한가. 저들의 형편에 비해볼 때 너무도 곤난한 처지에 놓여있다. 검질기게 꼬리를 쥐고 놓지 말라! 박달나무도 쩡쩡 얼어터지는 어느날의 깊은 밤 부관이 흐뭇한 보고를 가지고 들어왔다. 《보고! 또 한명의 유격대가 쓰러져 부축되는것을 척후대가 발견했습니다.》 《그래?!... 또 한명이라...》 어제도 그런 보고가 들어왔었다. 분명 유격대에 식량이 떨어진것이다. 먹지 못하고서야 몇날을 갈텐가. 《좋아, 좋아. 우등불을 피우고 몸들을 녹이게 하라!》 《핫!》 얼마 안 있어 《토벌》대의 숙영지들에서 모닥불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온종일 몸들이 얼어든 졸병들이 꽥꽥 고아대며 서로 불을 쪼이겠다고 아귀다툼이다. 그런데 별안간 사방에서 콩볶듯 하는 소리가 터지더니 귀전으로 탄알이 쌩쌩 지나갔다. 《유격대다!》 그 자리에 머리를 구겨박는 놈, 산으로 들구 뛰다 꼬꾸라지는 놈, 공중에 대고 헛총질을 하는 놈, 아비규환이 일었다. 총소리가 멎은 뒤에도 어디서 또 유격대가 나타날지 몰라 온밤 불도 피우지 못하고 지내였다. 어찌된 일인지 밤이 되여 불만 피우면 어김없이 유격대가 나타나는것이였다. 이제는 불을 못 피운지도 며칠이 잘되였다. 이제는 밤잠도 제대로 잘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시모도는 새벽이 되면 영낙없이 졸병들을 다시 일으켜세워 《토벌》에로 내몰았다. 이번에는 기어코 유격대를 전몰시키고말겠다는 야심이 가슴속에 홰불처럼 활활 타오르고있었다. 졸병들이 눈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얼어죽는다고 우는소리를 해도 하시모도는 검질긴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하시모도는 장교들에게 이렇게 지껄이군 했다. 《조금만 더 참아내라. 우리 형편이 이러하니 유격대는 곱절이나 더 지쳤을것이다. 며칠째 낟알구경도 못한 놈들이니 이제 얼마 못가서 다 쓰러지고말것이다. 자, 행군속도를 높이라.-》 하시모도사령관은 한편 척후대에 유격대의 꼬리를 바싹 따라서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척후대에서 들어온 보고에 그는 아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보고! 유격대는 지금 오락회를 벌리고있습니다.》 《오락회?!...》 하시모도는 머리를 흔들었다. 유격대가 며칠째 잠을 못 자더니 정신착란이 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다 쓰러질 때가 됐으리라 믿었는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있다니... 아니, 저들이라고 무쇠로 만든 인간이 아닐진대 어떻게?... 하시모도사령관은 그길로 척후대가 차지한 계선으로 나갔다. 제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서는 믿기 어려웠던것이다. 그곳에서 유격대의 숙영지가 지척인듯 보였다. 우등불이 환하게 타오르는 속에서 하모니카소리가 울리고 그 박자에 맞춰 춤을 추고 돌아가는 유격대가 보였다. 이거야말로 귀신이 곡할노릇이다. 하시모도는 자기가 꿈을 꾸고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꼭 어떤 귀신에게 홀리운것 같은 미심쩍은 예감이 등골을 선뜩하게 했다. 자기들은 유격대가 무서워 불도 못 피우고 추위에 떨며 이밤을 새우고있는데 유격대는 태평스럽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하시모도사령관은 겨우 자기 몸을 가다듬고 숙영지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되는대로 쪼그리고앉거나 자빠져 떨고있는 졸병들이 발에 걸채였다. 가까이에서 소곤소곤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라다, 마사무네, 자네들 귀신이야기 아는가?》 《귀신?!》 《무슨 귀신이란 말인가?》 《이 만주땅엔 귀신이나 아주 많다. 산에 가면 산귀신이 있고 물있는 곳에 가면 물귀신이 있다. 모두 사람을 잡아먹고산다. 우리 황군만 잡아먹는단 말이다.》 《재수없게스리 무슨 왕청같은 귀신소린가?...》 듣는 놈도 무섬증이 나는지 불평했다. 그러나 귀신소리를 꺼낸 놈은 계속 지껄여댄다. 《그러나 그쯤한건 념려할것 없다. 이런 밀림에서 제일로 무서운것은 동귀신이다. 우리 사령관님이 언제인가 수하병졸들을 동귀신에게 다 먹히우고 가까스로 살아남은걸 아는가?》 하시모도사령관은 저도 모르게 손이 칼집에 갔다. 순식간에 여기에 모인 놈들의 목을 뎅겅뎅겅 베여버리고싶었다. 그러나 그놈들이 하는 이야기가 가슴을 섬찍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어 가까스로 참아냈다. 참으로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 하시모도는 《토벌》대를 이끌고 지금처럼 유격대를 찾아 헤매던중에 부후물등판에서 김일성장군부대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것을 목표로 기를 쓰고 추격전을 벌렸다. 꼬박 사흘간을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피오줌을 싸면서... 그런데 방금 지나간듯 한 발자국은 있으나 유격대는 통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나 정신없이 따라왔는지 자기들은 깊고깊은 원시림속에 들어와있었고 방향도 가늠할수 없었다. 달빛도 별빛도 이밤에는 사라지고말았다. 마침내 그 발자국마저 없어졌다. 하시모도는 자기가 귀신에게 홀리웠다고 생각했다. 하늘로 올랐는가? 땅으로 잦아들었는가? 사방에서 우- 우- 하는 승냥이울음소리만이 들려왔다. 이때였다. 갑자기 앞쪽에서 걸어가던 한 졸병이 윽 하며 외마디비명을 지르고 자빠지는것이였다. 《뭐야?》 하시모도가 졸병을 일으켜세웠다. 그런데 졸병놈은 반정신이 나갔는지 손가락으로 밀림속 한곳을 가리키며 《귀신이다! 동귀신이다!-》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하시모도는 무섬증이 오싹했으나 참고견디며 졸병놈의 따귀를 쳤다. 《귀신이나 무슨 귀신이 있다고 그러는가?》 《사...사령관님! 저기 흰 옷 입은 귀신이... 오락가락합니다요.》 《흰 옷 입은 귀신?》 하시모도는 사방을 깐깐히 둘러보았다. 분명 밀림속 나무들사이로 무엇인가가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는듯 했다. 백곰인가? 하지만 곰같지도 않았고 사람같지도 않았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눈사람이라고 해야 옳을것인데 바람처럼 오락가락하는것이 이상했다. 이때 하시모도의 뇌리를 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언젠가 선임《토벌》사령관이 자기에게 들여준 말, 백두대장수께서는 천변만화의 조화를 부리시는데 눈덩이 하나를 창턱에 빚어놓고 능히 생명을 불어넣어 일본군대를 쓸어버리게 하신다는것이였다. 그러니 필경 저 눈사람들 아니 동귀신들은 백두산대장수께서 조화를 부리시는것들이다. 하시모도는 저도 모르게 권총을 뽑아들었다. 《야, 저기 어슬렁대는것들은 모두 우릴 얼궈죽이려는 동귀신들이다. 모두다 일제사격!》 《토벌》대는 절망에 빠져 몸부림쳤다. 어떤자는 공중에 대고 총을 쏘는가 하면 또 어떤자는 신령님에게 살려주십사 빌고있었다. 그밤 아닌게아니라 동귀신이 덮쳐들었다. 하여 부대의 과반수가 얼어죽고만것이다. 하시모도는 죽은자들의 털외투를 벗기고 그것을 뒤집어쓴채로 몇 안되는 살아남은자들과 함께 수림을 빠져나왔다. ... 지금에 와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였다. 그 불쾌한 일을 되살려준 졸병놈들이 괘씸했다. 정말로 그때의 그 동귀신이 우리를 노려보고있는것이 아닐가. 하시모도는 다시 사위를 둘러보았다. 저 어둠에 덮인 장막의 한쪽에 그때의 동귀신이 웅크리고있는줄 누가 알랴. 생각할수록 머리칼이 쭈볏 일어서는것 같았다. 며칠낮 며칠밤 유격대를 《추격》했다. 아니, 끌려다녔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혹 이것이 동귀신의 작간이 아닌지... 이제는 유격대를 피해 돌아설래야 돌아설수도 없는 신세였고 우등불조차 피울수 없는 형편이였다. 불을 지필라하면 어느새 유격대가 나타나 불벼락을 안기군 했던것이다. 울며 겨자먹는다고 싫든좋든 공손하게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고만것이다. 유격대의 숙영지에선 우등불이 활활 타오르고 노래소리가 울리지만 하시모도의 《토벌》대에서는 동귀신에게 홀리워 얼어죽는 졸병들이 매일밤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시모도는 자신도 이제는 마지막기력이 쇠잔해지고있음을 느꼈다. 아, 이렇게 죽고마는가. 부귀과 출세, 승진일로의 무지개꿈은 과연 어디로 사라져버렸는가? 어느날 밤 유격대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공포에 질려 보고있던 하시모도는 온몸이 땅속으로 잦아드는 환각에 스스로 주저앉았다. 그러다가 번쩍 눈을 떴다. 순간 보기에도 차디찬 얼음발수염에 얼음눈섭을 한 동귀신이 하시모도를 향해 히물히물 웃으며 다가오고있었다. 《다... 당신은 누구요?》 하시모도는 입안이 얼어들어 겨우 이 말을 떠듬거렸다. 《나 이 땅에 사는 동장군이다. 너희들의 말로는 동귀신이고... 너희들은 왜적의 무리로서 신성한 이 땅에 더러운 자욱을 남겼은즉 살아서 돌아가길 바라지 말아라. 이것은 백두산대장수님께서 나에게 직접 주신 과업이다.》 하시모도는 동귀신의 손에서 몸을 빼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였지만 안타깝게도 손가락 하나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 동귀신이라는게 무언가 했더니 이런것이구나. 우리 《황군》만을 데려간다는 동귀신... 하시모도는 종시 눈을 뜨지 못하고 동귀신의 손에 고스란히 운명을 맡기고말았다. 그후 왜놈들속에서는 동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한입두입을 건느는 과정에 보태여지고 가지를 쳐서 누구나 제가 본듯이 말을 하고 제가 겪은듯이 말을 옮기군 했다고 한다.
김 종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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