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111(2022)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함께 달리자
전 별
(제 2 회)
2
물에 비낀 반달이 쉬임없이 따라서는 상원천의 맑은 물을 바라보며 한 소년이 강뚝우를 달려가고있었다. 덕빈이였다. 유적마을앞다리까지 벌써 세번째나 왕복주로를 달렸다.
《거 덕빈이 아니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순범이가 기다렸던듯 불쑥 덕빈이의 앞에 나타났다.
《야! 너희들 열성이 대단하구나!》
순범이가 다가서며 부러움과 감동에 젖어 하는 말이였다.
《너희들? 여긴 나 혼자뿐인걸 뭐.》
덕빈이는 의아해하며 순범이에게 물었다.
《체, 아닌보살하지 말어. 그래 친구가 되자는 약속은 같이하구 금메달선수가 되자는 약속은 너희들끼리 따로 했다는거니?》
《뭐?! 순범아, 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니?》
덕빈이는 더욱 커지는 의문을 감추지 못하며 순범이에게 물었다.
《너 아직두…》
순범이가 오히려 제켠에서 어이가 없는듯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지금 저 학교운동장에서 야간훈련을 하고있는 철수도 그렇구 이 강뚝우를 달리면서 훈련을 하고있는 너는 또 뭐란 말이냐?》
《철수가 운동장에서?!…》
덕빈이는 정말 뜻밖이라는듯 눈을 둥실하게 뜨고 순범이에게 물었다.
《아니, 그럼 너 정말 철수가 저 운동장에서 매일 밤마다 훈련하고있었다는걸 몰랐단 말이야?》
이번에는 순범이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덕빈이는 풀리지 않은 의문을 두눈에 가득 담은채 순범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순범이의 다음말이 덕빈이를 더욱 놀래웠다.
《그래두 철수는 너와 약속을 했다고 말하던데?》
《뭐? 철수가 나와 약속을?!…》
《응, 내가 물으니 너와 금메달선수가 되자구 약속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너도 자기도 밤마다 이렇게 야간훈련을 한다는거지뭐.》
《아니, 뭐라구?》
사실 덕빈이의 야간훈련은 철수의 첫눈에 띄는 실력으로부터 흔들리우는 1번선수로서의 지위를 지켜내기 위한 단순한 열성에 지나지 않는것이였다.
《생각이 있으면 너도 어서 따라서.》
덕빈이는 저도 모르게 유적마을쪽이 아니라 학교를 향하여 달리였다. 순범이의 성급한 발자국소리가 뒤따라왔다.
덕빈이의 머리속에는 좀전에 순범이에게서 들은 철수가 했다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깊은 생각에 잠겨 달리던 덕빈이는 갑자기 무릎을 꺾으며 앞으로 나자빠졌다. 재수없게 돌부리에 걸채인것이였다.
《아니, 덕빈아! 왜 그러니?》
뒤따라오던 순범이가 놀라와하며 급히 다가와 부축해주었다.
발목이 시큰해왔다. 순범이를 외면한채 학교쪽만 바라보고있던 덕빈이는 별수없이 순범이의 팔에 의지하여 절뚝거리며 학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학교에 다달으니 운동장둘레에 소소리 솟은 황철나무들을 슬쩍슬쩍 에돌기도 하고 운동장주로옆에 설치되여있는 장애물들을 훌쩍훌쩍 뛰여넘으며 훈련에 열중하고있는 철수가 어둠속에서도 또렷이 보였다. 철수는 그야말로 질적이고 강도높은 훈련을 하고있었던것이다.
《찾을가?》
순범이가 덕빈이에게 묻는듯 말했다.
《그만둬.》
덕빈이는 자기를 부축한 순범이의 손을 뿌리치고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순범이마저 마주보기가 부끄러웠던것이다. 야간훈련의 목적에서나 훈련의 질적정도에서도 철수가 확실히 자기를 앞서고있다는것을 충분히 깨달았기때문이였다.
…
덕빈이와 철수가 함께 생활해오고있는지도 벌써 한달이라는 기간이 지나갔다. 언제부터인지 소조애들은 철수를 두고 《로케트》라고 불렀다. 그대신 덕빈이를 가리켜 부르던 1번선수라는 말이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철수가 훈련 첫날에 갱신한 1 000m구간에서의 새 기록을 그애는 평상시훈련에서 계속 정상수준으로 유지하고있었다. 엊그제 훈련에서는 덕빈이가 이미 세워놓았던 3 000m기록을 또 밀어제꼈다.
한편 덕빈이의 실력은 이미 세운 기록에서 더 전진을 모르고있었다.
실력의 차이는 덕빈이와 철수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놓기 시작하였다. 남달리 승벽심이 센 덕빈이의 일방적인 침묵이 원인이였다.
오늘훈련은 반마라손구간달리기였다.
오늘훈련이 여느때와 다른것은 훈련주로가 읍을 벗어나 높이 솟아있는 북대봉의 정점을 통과하여 돌아오도록 정해진것이였다.
즉 평지와 산지를 다같이 달려야 하는 헐치 않은 훈련이였다.
훈련준비를 서두르고있는 철수에게로 다가간 덕빈이는 한참 머밋머밋하다가 드디여 철수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철수야, 오늘은 제발 그 〈로케트〉를 좀 늦춰주렴. 다름이 아니라 요전번 야간훈련때 다친 발목이 채 낫질 않아서 그래. 너만 앞서나가면 난 또 뭐가 되겠니?》
《그러니 날더러 너의 체면을 생각해달라는거니?》
조용한 물음이였으나 안타까움도 함께 슴배여있는 철수의 물음이였다.
《아니, 그저 슬슬 함께 달리자 그 소리지 뭐.》
덕빈이의 대답이였다.
《뭐? 그저 슬슬 함께 달리자구? 너 그것도 말이라고 해? 절대로 그렇게 못해. 난 오늘도 훈련의 기준이 되겠어!》
철수의 확신에 찬 대답이였다.
《뭐?! 좋아! 그럼 너 혼자 실컷 잘하렴!》
덕빈이는 돌아서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한마디 덧붙였다.
《넌 그래 너의 그 열성이 나한텐 어떤 창피를 주는지도 생각 못하지. 됐어, 이제부터 나한텐 철수라는 동무가 없다!》
못박듯 마쳐오는 철수의 눈길을 뒤에 느끼며 덕빈이는 출발선으로 저 혼자 걸음을 옮겼다. 얼마후 철수도 출발선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것은 마치 자기의 결심에는 단 한치의 드팀도 없다는것을 덕빈이에게만이 아니라 밟고 달리는 땅우에도 쿡쿡 새겨넣는듯했다. 이윽고 훈련이 시작되였다. …
읍을 벗어나 얼마간 달려 북대봉을 가까이하고있을 때 덕빈이는 불현듯 여느때같으면 이미 자기를 앞섰을것이라고 생각되는 철수가 보이지 않는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덕빈이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출발을 앞두고 한 내 말에 뜨끔했을가?)
드디여 산을 톺아오를무렵 얼핏 뒤를 돌아다보니 웬걸, 철수가 불과 5m가량뒤에서 바싹 꼬리를 물고 따라오고있었다. 이미전부터 뒤에서 누군가가 바투 따라서는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긴장감에 떠밀리여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철수가 지금까지 자기 등을 떠밀어온것이였다.
철수로부터 20m가량 뒤쪽에서 순범이가 따라오고있었다.
덕빈이는 마음의 탕개를 더 바싹 조였다. 이번엔 꼭 철수를 앞서서 납작해진 자기의 체면을 일궈세워보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이때 야속하게도 철수가 옆으로 씽 바람을 일구며 덕빈이를 따라앞섰다. 덕빈이는 이를 악물고 철수를 따라잡으려 했으나 그것은 욕망뿐이였다.
철수와의 간격은 점점 더 멀어져갔다.
철수는 뒤 한번 돌아봄이 없이 봉우리정점을 향해 그야말로 《날아》오르고있었다. 덕빈이는 기를 쓰며 따르려 했으나 힘이 점점 더 진해져갔다. 얼마후 덕빈이는 별안간 《아이쿠!》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덤불속에 나자빠졌다.
다음순간 철수에 대한 고까움이 머리꼭뒤까지 치받쳐올랐다. 불같이 타오르는 노여움을 안은채 덤불속에 누워 숨만 씩씩 톺았다.
순범이가 그런 덕빈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물었다.
《덕빈아! 왜 이렇게 됐니?》
《요전번에 상했던 발목이 또 말썽을 부리는구나.》
덕빈이는 상한 발목을 부여잡고 오만상을 찌프린채 대답했다.
《야단났구나. 그런데 철수는 어데쯤에서 뛰고있을가?》
덕빈이는 대답대신 눈길을 들어 저만치 올리뛰고있는 철수를 바라보았다. 덕빈이가 순범이와 이러고있는 사이에 뒤에서 따라오던 소조동무들이 한명 또 한명 덕빈이네를 지나 봉우리정점을 향해 달려오르고있었다. 이때 산릉선의 중턱 어디에선가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철수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덕빈아! 어서 일어나라. 그리구 순범아, 넌 덕빈이를 상관하지 말아.》
덕빈이의 속마음을 알길 없는 순범이가 철수가 사라진쪽을 올려다보며 퉁- 하고 내뱉았다.
《쳇, 저런 애두 딱친구야? 아, 이거야 훈련인데 뭘 그다지나… 제 동무가 발이 상해 넘어졌는데두 저만 냅다 달아나는 애가 어디 있어?》
《…》
얼마후 순범이의 부축을 받아 가까스로 봉우리정점에 다달은 덕빈이는 저 멀리 철수와 다른 애들이 앞서 달려갔을 읍쪽을 바라보았다. 단 한명의 애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버림을 받은채 외딴곳에 홀로 남은듯한 외로움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옆에 순범이마저 없었더라면 자기가 엉엉 소리내여 울었을지도 모를것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러고나니 자기를 본척도 하지 않고 달아나버린 철수에 비한 순범이의 후더운 인정이 저도 모르게 고맙게 느껴졌다. 물건은 새것이 좋고 친구는 오랜 친구가 더 좋다고 했는데 그것도 아마 사람나름인 모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