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111(2022)년 제11호에 실린 글

 

우 화 

 너구리의 말재주

원 경 옥

 

밤나무골 오소리네 집에 얹혀살다가 일하기 싫어하고 말만 잘해서 쫓겨나다싶이한 너구리는 씨근덕거리며 고개너머 다래골로 갔습니다.

분김에 짐까지 싸메고 떠나오긴 했지만 당장 거처할데가 없는 너구리는 이제 닥쳐올 겨울이 걱정스러웠습니다.

엉큼한 눈길로 골안을 둘러보던 너구리는 땅굴을 파느라 여념이 없는 꼬마토끼형제들에게로 슬금슬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땅굴집물계에 훤한듯이 훈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여나 처음 제손으로 땅굴을 파보는 꼬마토끼네들은 너구리가 더부살이하던 오소리네 땅굴집에 대해 말해주는줄도 모르고 부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선생님으로 모실테니 그 방법을 어서 배워줘요.》

토끼형제들은 자기들이 따들인 머루, 다래며 밤, 도토리까지 한가득 안고와서 졸라댔습니다.

너구리는 자기를 선생님으로까지 모시겠다는 바람에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토끼네들의 손을 빌어 이 선생님의 집부터 먼저 마련해야지. 말만 잘하면야… 히히.)

너구리는 자기의 속심을 가리우고 짐짓 선심이나 쓰듯 말했습니다.

《에라, 새 동네에 와서 처음 만난 이웃들인데 배워줘야지. 래일 아침 저 너럭바위밑으로 오너라.》

다음날 아침 토끼형제들은 너구리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땅굴집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땅굴집은 너구리의 구수한 말처럼 잘되지 않았습니다. 한겻이 지나도록 굴입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너구리 《선생》의 지청구소리만 더 높아졌습니다.

토끼형제들은 너무 힘들어 풀썩풀썩 주저앉았습니다.

《너구리아저씨, 아저씨가 실지동작으로 좀 배워주세요.》

형토끼가 곡괭이를 너구리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습니다.

너구리는 별수없이 곡괭이를 들고나섰습니다. 하지만 해보지 않은 너구리 《선생》의 곡괭이질은 서툴기 그지없었습니다.

그걸 보고 토끼 형제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저 너구리 〈선생〉이 정말 땅굴집을 지을줄 알긴 알아?》

이때였습니다.

《너희들이 바쁜 때 일은 안하고 여기 모여서 뭘하고있니?》하는 소리와 함께 밤나무골 재빛토끼삼촌이 토끼형제들앞에 척 나타났습니다.

새 집을 짓는 조카들을 도와주러 왔던 재빛토끼는 그들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혀 허허 웃었습니다.

《아니, 뭐? 굴팔줄도 몰라 오소리네 집 곁방살이를 하다가 일 안하고 말새질만 잘해서 쫓겨나다싶이한 너구리한테서 무슨 집짓는 법을 배운다는거냐?》

《뭐라구요?》

토끼형제들은 빨간 눈들이 동그래져 서로 마주보기만 했습니다.

《글쎄… 어쩐지… 말이 반찬이라 했지. 기가 막혀서…》

토끼네들은 화가 나서 가버렸습니다.

재빛토끼가 나타났을 때부터 부끄러워 비좁은 굴입구에 큰 몸을 옹송그리고있던 너구리는 그제야 얼굴을 내밀고 토끼네들의 꽁지만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흉측한 속심이 다 드러나 다래골에서도 살지 못하게 된 너구리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습니다.

《어휴, 어쩐다? 말재간이 이젠 통하지 않는구나. 닥쳐오는 겨울을 말재주로 살아갈수도 없구… 야단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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