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1. 서당지기

 

(1)

 

량세봉은 평안북도 철산군 세리면 연산동에서 태여났다.

서해가 팔을 뻗치면 적셔들듯 가까이에서 바라보이는 고장이였다.

그곳 사람들은 대를 이어 벼와 콩, 보리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바다에서 고기잡이도 해서 농량을 보태기도 하였다.

량세봉의 아버지 량기화는 원래 자작농이였다. 그런데 량세봉이 태여난 이듬해부터 지주에게 땅을 떼우고 가세가 기울어졌다. 행여나 하고 벌이가 될만 한 일판을 찾아다니다가 때마침 번창해지기 시작한 운산금광에 가서 금을 캐서 생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광주놈의 악착한 착취로 해서 돈 한푼 얻어쥐지 못하고 도로 고향에 와서 물고기잡이를 하였다. 갈갬질하는 창파를 쪽배를 타고 넘나드는 바다일이란 칠성판을 등에 지고다니는 사지판이였다.

량기화는 이 일도 몇해간 해보다가 빈손을 털고 나앉고말았다.

결국은 다시 찾아든것이 지주집에서 땅을 얻어가지고 평생을 허리를 굽히며 살아야 하는 소작살이였다.

량기화는 다시는 떠살이를 하지 않고 기어이 제손으로 령락한 집안을 일떠세우리라 굳이 결심하고 농사일에 몸을 적시였다. 그는 비록 생존을 위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허우적거리며 살아왔어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그 누구에게 뒤짐이 없이 지극하였다.

서당에 하루도 가본적은 없었으나 우리 글을 좔좔 읽고 천자문도 젊은시절에 뗐다. 조선의 력사와 지리에 대하여서도 한나절 엮어댈수 있었다.

조상을 거슬러오르면 당대에 이름날린 문인도 있다고 했는데 전해져온 족보가 없으니 누구였던지 명함은 딱히 모른다.

량기화는 일개 농사군이였으나 나라앞의 백성된 도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있었고 제나름으로 지키려고 애를 썼다.

그는 당시 왜놈들이 매국역신들을 회유, 강박하여 《을사5조약》을 날조공포하고 애국자들을 체포하여 무참하게 학살하는데 대하여 자식들에게 들려주며 주먹으로 방바닥을 두드리기도 하였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에 대한 숭배심도 남달리 높았다.

집에는 어느 조상때부터 가보로 물려온 단군초상이 세월을 이어 전해지고있었다.

명절날이면 량기화는 농짝밑에 소중히 건사해온 단군초상을 벽에 걸어놓고 제사를 지내며 처와 자식들이 자기를 따라 구름노전우에 엎드려 절을 하게 하였다.

워낙 말수더구가 적은 사람이였으나 단군초상밑에서 시큼털털한 막걸리를 몇사발 걸치고나서 일단 그 무거운 입을 열면 애국의 열이 얼찐거리는 이야기가 밤이 새도록 흘러나왔다.

《너희들은 우리 나라를 허술히 여겨서는 안된다. 우리 나라는 세상에 보기 드물게 오랜 력사를 가진 나라이다.

단군이라는분이 나라를 세운이래 나라가 우로는 만리를 뻗어갔다. 그때부터 우리 백성들도 사람답게 옷을 입고 농사도 지으며 화목하게 살아왔다. 이방사람들도 우리 나라를 무예를 숭상하고 장수가 많은 군자의 나라라고 불렀다. 건드릴념을 못했지.

우리 단군민족은 남의 땅을 엿보거나 가로타고앉는 더러운짓은 하지 않았지만 절대로 오랑캐들이 이 땅을 엿보고 침노하는것을 용서치 않았다.

멀리로는 고구려의 맹장들인 을지문덕장군이며 연개소문장군, 고려의 강감찬장군이며 서희장군이 나라에 침노한 오랑캐들을 본때있게 다스려 나라를 지켜냈다.

왜적들이 이 나라를 노릴 때에는 리순신장군이며 권률, 곽재우, 정문부 같은 장수들이 일떠서서 섬오랑캐들을 쫓아버렸다.

왜놈들이 지금 그 옛날 제놈들의 조상무리들이 우리 지경에 기여들었다가 혼쌀나던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일시로 힘이 세졌다고 우쭐대면서 까불고있는데 조만간에 저놈들이 쫓겨날 때가 온다.

10여년전에는 왜놈들이 무엄하게도 우리네 명성황후까지 살해하였다.

조정의 간신배들인 리완용과 리근택, 리지용, 권중현, 박제순을 협박하여 을사5조약이라는 괴문서를 날조해가지고 우리 임금을 허재비로 만들어버렸는데 이게 오래야 가겠느냐.

지금 북남 삼천리에 의병기발이 수풀처럼 솟아올라 우리 철산고을에서도 적지 않은 청년들이 의병에 들어가 싸우고있다. 듣자하니 함경도에서는 홍범도대장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왜놈들을 치고있는데 우리도 때가 되면 그분들을 지원해야겠다.

우리는 비록 경성에서 멀리 떨어져있어도 한시도 시름많으실 우리 임금님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서 빨리 왜놈들을 내쫓고 임금님을 다시 옥좌에 모시고 임금정사를 받들어나갈 생각만 해야 한다. 이게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의 충의이다.

백성들이 살아가는데는 예로부터 다섯가지 계률이 있다고 전해온다. 그게 뭔고 하니 나라에 충정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동료들과의 의리를 지키고 곤난앞에서 물러서지 않으며 나라위한 싸움에 재산의 유무, 신분의 차별, 남녀의 구별이 없이 나서야 한다는것이다. 알겠느냐, 첫째야?》

량기화가 밤새도록 이어질것 같은 훈계를 마치고 자못 비분강개한 어조로 물으면 량세봉은 무릎을 꿇고앉아 머리를 조아렸다.

《알았습니다, 아버지.》

《둘째는?》

량기화가 량세봉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눈에 졸음이 실려 꺼떡거리기 시작하는 둘째아들 량원봉과 셋째아들 량시봉, 넷째아들 량정봉 그리고 딸인 량봉녀에게까지 엄하게 눈망울을 굴리며 오금박듯 일일이 따져물었다.

그러면 그들도 량세봉처럼 앉음새를 바꾸어가지고 아직은 그 의미가 가슴에 박혀들지 않아도 쟁쟁한 소리로 알았노라고 대답하였다.

량기화는 자식들의 대답소리가 자못 대견해서 그들의 머리를 쓸어주며 준비해두었던 엿가락 하나씩 쥐여주고는 껄껄 웃었다.

량기화가 이무렵에 제일 마음을 쓴것은 동네 제또래들중에서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몸집도 실팍하며 생각하고 말하는 품이 어른들 찜쪄먹을 량세봉에게 공부를 시키지 못하는것이였다.

당시에 경성은 물론 지방고을들에도 문명개화의 거센 조류가 밀려들고있었다. 계몽운동이 활발히 벌어져 동네마다 서당이 생겨났다.

아이들이 거기서 《하늘 천, 땅 지, 누를 황…》을 익히고 《가갸거겨…》를 외우며 애국이라는 범상치 않은 교양을 받고있었다.

량기화도 올해는, 래년에는… 하면서 강심을 다지며 맏이 하나만은 어떻게 하든지 서당공부를 시켜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서당에 들어갈 때는 물론이거니와 다달이 좁쌀 몇되박씩 내야 했으므로 그게 째지게 가난한 살림에는 엄두내지 못할 일이였다.

어느해 봄날이였다.

이날 해떨어질무렵 동구밖 소작지의 조밭김을 매던 량세봉이 허리를 펴더니 뒤따라오는 량기화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나두 공부할래요.》

량세봉이 불쑥 뱉아놓은 소리에 량기화는 밭이랑에 호미를 박은채 그에게로 고개를 들었다.

량세봉의 간절한 눈길과 마주치자 량기화는 얼른 푸른 하늘 저 멀리로 고개를 돌리였다. 그는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하고있다가 구슬픈 어조로 대꾸하였다.

《나도 늘 그 생각이다. 그런데 말이다. 서당에 들어가자면 우선 좁쌀 한말을 바쳐야 한다. 헌데… 후- 어디…》

량기화는 말끝에 가슴이 꺼질듯 한 긴 한숨을 처량하게 달았다. 자식앞에 죄를 지은듯싶어 다시 고개를 이랑에 묻고 호미질을 와락와락 세차게 하였다. 명치에 가시처럼 박혀든 아픔중에 큰 아픔을 량세봉이 불쑥 쑤셔놓은것이다.

그렇다고 한바탕 꾸중을 할수도 없고 맏이의 소망을 풀어줄 대답도 당장은 입에 올릴수 없다.

한뽐이나 자란 조대가 여러 포기 량기화의 기가 오른 호미질에 넘어졌다.

《아버지, 조가…》

량세봉이 조이랑을 훌떡 넘어와 눈물이 그렁해서 고개를 푹 떨구고 호미질을 하는 아버지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아버지, 좁쌀을 바치지 않아도 날 받아주겠대요. 훈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소리에 량기화는 고개를 들고 간절한 애원의 빛이 어린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얼마나 공부하고싶으면…)

생각할수록 명치가 쭝해오르고 또다시 더운것이 눈굽으로 치밀어오른다.

량기화는 여러번 맏이가 서당방 토방에 쭈그리고앉아 방안에서 훈장의 가르침을 큰소리로 따라외우는 서당학생들의 목소리에 제 소리도 합치는것을 보았다. 그때마다 그의 가슴은 갈가리 찢기듯 하였으나 무슨 뾰족한 수가 없어 그자리를 도망치듯 피해 물러나군 하였다.

지금 량세봉의 절절한 청을 받고보니 다시금 가슴속깊이에 피눈물이 고여들고있었다.

《맏이야, 그게 네가 가엾어 해보는 소리지. 세상에 공짜라는게 있느냐. 서당훈장님이 보아하니 점잖고 생각이 깊은 사람같더라만 빈손에 공부시켜주소 하면 우리 체면은 뭐가 되겠느냐.》

한생토록 땀을 묻어온 땅처럼 순하고 어질고 티없이 깨끗한 량기화였다. 언제나 제 몫을 챙기기 전에 그로 해서 줄어들 남의 몫부터 생각한다.

그러나 량세봉은 아버지의 팔을 놓아주지 않고 절절하게 부르짖었다.

《아니예요, 아버지! 공짜가 아니예요. 서당에서 문지기를 구한다고 해요. 그래서 어제밤 내가 서당에 가서 훈장님을 만나보았어요.

밤에는 서당을 지키고 낮에는 글공부배우게 해달라고 사정드렸어요.

훈장님이 저더러 밤중에 홀로 서당에서 도적을 쫓아버릴수 있느냐고 물으시기에 난 얼마든지 그럴수 있다고 했어요.

마당옆에 있는 큰돌을 머리우에 들고 마당을 한바퀴 돌았더니 훈장님이 큰소리로 웃으시더군요.

그리고는 아버지의 승인을 받으라고 하셨어요. 훈장님말씀이 분명하였어요. 밤에는 서당에서 자면서 집을 지켜라. 그러면 네 소원대로 낮에는 글배우게 해주마.하구요. 아버지, 허락해주세요.》

량세봉은 아버지의 팔을 흔들며 열차게 부르짖었다.

《그게 정말이냐?》

량기화는 거짓말이라고는 여적 한번도 입에 올리지 않은 정직한 아들의 말이였지만 그가 꺼낸 이야기가 실말같지 않아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정말 아니구요. 선생님이 말씀하는데 밤에 잠을 설치면 낮에 글공부하기가 조련치 않다고 해요.

그렇지만 전 할수 있다고 했어요. 제가 그동안 서당문밖에서 배운걸 훈장님이 아시고 몇가지 물어보시기에 대답드렸더니 기뻐했어요. 아버지, 절 두고보세요. 서당도 잘 지키면서 다른 애들보다 공부를 더 잘하겠어요. 저를 믿어줘요.》

량기화는 자기의 허락을 받아내기 전에는 팔을 놓아주지 않을듯 꽉 그러잡고 안타까이 다짐하는 량세봉의 말에 그제야 실감이 간듯 호미를 들고 밭고랑에서 움쭉 일어났다.

《훈장님이 고맙구나! 그렇게 하자. 이제 당장 서당에 가서 찾아뵙자.》

량기화는 조밭에서 나와 제가 앞서서 반달음으로 집으로 갔다.

싸리로 엮어만든 삽짝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마당에서 유유히 모이를 쫏고있던 영계 세마리가 그들을 마중하듯 다가왔다.

두석달전에 장마당에서 병아리 다섯마리를 사왔는데 그중 한놈은 옆집의 개가 물어삼키고 또 한마리는 매가 덮쳐가서 세마리가 남았다.

량기화가 아기작거리며 걸어오는 영계들을 보다가 앞선 놈을 잡자고 손을 뻗쳤다.

그러자 닭이 홰를 치며 달아났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량세봉은 아버지의 생각에 짐작이 갔으나 내키지 않아 물었다.

《서당에 널 받아주겠다고 하는데 빈손으로 갈수가 있니?》

《아버지, 공짜가 아니라지 않나요.》

《그래도 사람이 량심이 있지. 남들은 좁쌀 한말도 적어 다달이 토끼요, 닭이요 잡아들고 가는데 제 아들을 거저 받아주겠다는 고마운 훈장님께 빈손으로야 어떻게 가냐.…》

량기화는 이렇게 설명하고는 두말 말라는듯 다시 닭을 찾아 발을 옮겼다.

량세봉은 햇병아리들을 사다놓고 앞으로 키워서 알받아 팔아 고구마싹을 사오고 봉녀에게 꽃신도 한컬레 사다줄 의논을 하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들이 떠올라 눈뿌리가 화끈 달아올랐다.

그래 닭잡는 일을 거들어달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도 내키지 않아 마루에 올라 방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얼마후 세마리의 영계를 넣은 중태기를 어깨에 걸친 량기화가 량세봉을 향하여 시원스럽게 소리쳤다.

《세봉아, 뭘하느냐. 어서 가자.》

량세봉이 마침내 서당지기가 되여 글공부도 하게 된다는 소리에 량세봉의 어머니 김씨가 눈물이 글썽해서 삽짝문가에 나와서 손을 흔들어 바래워주었다.

동생들도 싱글벙글거리는 형을 따라가겠다고 오구구 몰려나왔다가 아버지가 너희들까지 설레발을 치는게 아니라고 엄하게 소리치는 바람에 도로 울바자안에 들어가 어머니곁에서 손들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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