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2. 하늘땅에 다진 맹세

 

(1)

 

량세봉은 서당생활을 직심스럽게 하였다.

원체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근면한 그의 성품이 서당에 와서 그대로 나타났다.

매일 저녁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도 강서명이 가르쳐준 《명심보감》을 외우고 땅바닥에 천자문을 쓰고 지우며 머리에 새겨넣었다.

량세봉은 머리가 무척 총명하고 암기력도 좋았다.

한번 그의 눈을 스쳐간 글들은 좀체로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강서명이 들려준 이야기들도 책갈피처럼 기억이라는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졌다.

이렇게 되여 서당생활을 시작하여 석달후에는 천자문을 다 떼고 이태이상 글공부를 해야 읽을수 있다는 《맹자》며 《시경》, 《춘추》 등 한자풀이가 힘든 책들도 척척 읽어보고 외웠다.

그는 서당지기로서의 소임도 허물잡을 구석이 없이 잘했다.

밤에는 경비를 서면서 서당안을 깨끗이 쓸고닦아 그가 서당에 자리잡은 후부터 서당안은 장난꾸러기들이 모여들어 배우고 놀음질하는 교실같지 않게 먼지 한점없이 정갈해졌다.

동창이 푸름해오면 마당에 나가 철봉과 평행봉에 매달려 몸을 날려보고는 마당을 깨끗이 쓸었다.

겨울이 오면 누가 다시 손을 댈세라 눈을 반반히 쓸어냈다.

량세봉의 부지런하고도 깐진 일솜씨며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공부실력을 보면서 강서명은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학생들에게 그를 따라배우라고 내세워주군 하였다.

량세봉은 서당에서 맡겨진 일을 착실히 하면서도 틈을 내 집으로 달려와서는 부모님들의 일손을 도와 김도 매고 거름도 져나르군 하였다.

뿐더러 동생들에게 배운 글을 가르쳐주고 강서명이 간간이 들려주는 이야기들도 재미나게 전해주었다. 서당에서 배운 창가나 춤도 배워주었다.

그는 아이들이 글공부에 지쳐 턱방아를 찧기 시작하면 그들을 데리고 마당에 나가 철봉과 평행봉을 배워주고 체조동작도 익히게 하였다.

그런가 하면 반만년을 이어온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며 지리에 대하여 배워주었다.

강서명의 력사이야기는 멀리 고조선과 고구려로부터 시작하여 애국명장들의 무훈과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폭정으로 악명을 떨쳐온 통치배들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강토를 지켜 한목숨바쳐 싸운 인민들의 슬기와 애국적장거에 대한 일화들이였다.

거기에는 첨성대며 훈민정음이며 리순신의 거북선과 최무선의 화약무기발견을 비롯한 선조들이 이룩한 빛나는 창조물들에 대한 긍지로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강서명은 글방아이들에게 그때 류행되던 창가도 배워주고 춤도 배워주어 서당교육을 흥미진진하게 엮어나갔다.

어느새 철산군 세리고을의 자그마한 서당이 아근에 소문이 널리 퍼져 다른 고을들에서도 좁쌀을 지고와서 하숙까지 하면서 공부하는 애들이 적지 않았다.

강서명은 력사와 지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끝에 늘 이런 내용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세상만방에 조선의 슬기와 넋을 떨쳐왔다.

그런데 우리 대에 이르러 저 철천지원쑤 왜놈들에게 야금야금 먹히워들다가 이젠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이르렀다.

이제 이 나라를 지켜갈 사람들은 누구들인가.

바로 이자리에 앉아있는 학생여러분들이다.

여러분들이 글을 깨우치는것도 한시바삐 우리 백의민족이 문명해져서 세계의 선진국대렬에 들어서고 저 도적놈무리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자는데 있다.

우리 백의민족이 섬오랑캐들보다 못한게 하나도 없다.

왜놈들에게 나라세우는 법을 가르치고 농사짓는 법이며 집짓고 사는 법도 배워주었다. 지어는 절간도 지어주고 무덤의 벽화도 그려주었다.

그러던 조선이 분하게도 근래에 와서 조정이 병들어 쇄국을 하는 바람에 백성이 세상을 모르는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여 몽매해지고 결국 후진국으로 되고말았다.

우리가 대문을 꽉 닫아매고 우매해질 때 왜놈들은 《명치유신》이래 서방의 문물을 받아들여 철선을 바다에 띄우고 대포를 부어내고 끝내는 힘이 세져서 우리의 주권을 송두리채 빼앗아내고있다.

우리가 하루속히 후진국대렬에서 벗어나려면 첫째도 둘째도 백성들모두가 문명개화되여야 한다.

그러니 글자 한자라도 더 빨리, 더 많이 깨우치는것이 애국의 첫걸음이라는걸 명심해야 한다. …

강서명은 며칠에 한번씩 시국이 돌아가는 형편도 알려주었다.

그때면 저으기 비분강개한 어조로 망해가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두주먹을 가슴팍에 올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강서명이 배워주는 글이 눈과 귀에 익어 뇌리에 새겨졌다면 그가 들려주는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은 이 시대 인간들의 삶의 진로에 대해 말없이 깨우쳐주고있었다.

강서명의 가슴에 타오르고있는 애국의 불길은 량세봉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평생토록 꺼지지 않을 애국의 불씨로 심어졌다.

달과 해를 넘길수록 량세봉에 대한 강서명의 관심과 기대가 더욱 유별해져갔다.

나이로 보나 서당에서 배운 달수로 보나 제일 어린 축이고 뒤졌던 량세봉이 두세해의 서당년륜이 감겨들자 누구도 견줄 엄두도 못내는 단연 첫자리에 우뚝 서게 되였던것이다.

강서명은 량세봉에게 학급장자리도 맡겨주었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이들앞에서 량세봉을 칭찬해주고 그의 열의를 북돋아주면서 그가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더 높은 속도로 내달리게 하였다.

《너희들 세봉이를 따라배워라. 세봉이는 밤을 밝히며 서당을 지키고 서당안팎을 청소하고 산에서 나무를 해와 불을 때는 우리 서당의 신역을 다 맡아해준다.

그러면서도 글공부에서 따를이가 없게 되였다.

이제 지켜봐라. 저런 아이들이 자라나 큰 인재가 된다. 과거보던 시절같으면 세봉이는 장원급제하여 큰 벼슬길에 올랐을게다.》

강서명은 량기화를 만나면 분명 량씨가문에 큰 인물이 났다고 량세봉을 버쩍 추켜올리면서 앞으로 무예도 가르쳐 나라의 큰 장수로 키워보겠노라고 흥분되여 열을 올려 다짐하군 하였다

훌륭한 스승밑에 훌륭한 제자가 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였다.

량세봉이 강서명같은 다재다능하고 열정적이며 뜻이 큰 훈장을 스승으로 둔것은 참말로 그의 평생을 빛내여준 빛이요 자양분이요 행운이였다.

량세봉은 소년시절을 벗어나면서 기골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장대해졌다

그에 따라 용력도 드센데다가 머리회전도 비상하여 씨름판에 나가 벌써 상씨름군들을 둘러메치군 하였다.

철산의 힘장수로 소문이 돌아갔다.

서당아이들은 아침이면 모두 모여 뒤산마루까지 한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것이 하나의 일과로 되여있었다

다른 애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가까스로 올랐으나 량세봉만은 같은 시간에 두세번 노루처럼 껑충껑충 가볍게 오르내려 동무들과 마을사람들을 놀래웠다.

량세봉에게 늘 눈길을 박고 그의 성장에 왼심을 쓰는 강서명은 이따금 서당에 남아 밤늦도록 동무해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장시간 들려주군 하였다.

그러면서 커서는 기어이 나라위한 큰 싸움에 뛰쳐나서야 한다고 그루를 박아 이야기해주군 하였다. 이를테면 량세봉에 대한 보다 높은 단계의 교육이였다.

어떤 때는 몇년전에 활발히 벌어진 의병대들의 활동에 대하여 일일이 들려주었다. 자기나름으로 그들의 투쟁의 우단점을 찾아내여 설명하기도 하였다

강서명의 고무와 관심속에 량세봉은 더 극성스럽게 글공부를 하였다.

량세봉이 서당지기로 된 다음부터 서당에서는 밤늦도록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

첫 며칠은 어유등을 켰는데 기름값을 댈수 없어 그만두었다.

산에 가서 광솔을 꺾어다가 고콜불을 켜놓으니 서당안에 그을음내가 나고 인차 천정이 시커매져서 그것도 며칠 해보고는 걷어치웠다.

생각던 끝에 삼대속을 기름심지대용으로 리용하여보았다.

8월경이면 동네의 여러 집들에서 삼낳이를 하려고 가꾸는 삼을 수확한다. 밭에서 땅가마에 쪄내고는 물에 불구었다가 껍질을 벗겨 녀인들이 삼낳이를 한다.

껍질벗긴 삼대속은 연기도 나지 않고 불땀도 좋았다.

량세봉은 삼대속을 적당히 토막쳐가지고 거기에다가 들깨묵을 발라 불을 켜보았다.

그랬더니 연기도 나지 않고 오래 타서 등불로는 제격이였다.

들깨의 고소한 냄새까지 풍겨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다.

저녁에 강서명이 서당에서 돌아가면 아래동생인 량원봉이 동생들을 데리고 동무해준다고 찾아와서는 량세봉의 일을 거들어주었다.

일을 마치면 량세봉은 강서명이 하듯이 흑판에 글을 써가며 동생들의 까막눈을 틔워주고 강서명에게서 들은 재미나는 력사일화들을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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