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3. 다시 이어진 시일야방성대곡

 

(1)

 

젊은이들의 몸과 마음을 억세게 키워주던 서당시절은 바야흐로 끝나갔다.

어느 날 량세봉은 아침일찍 일어나 지난밤 억수로 쏟아진 소낙비에 어지러워진 서당마당안팎을 깨끗이 거두고 물도랑도 쳐냈다.

그리고는 마을앞의 방축을 감돌아흐르는 시내가에 나가 세면을 하고 집에 달려가 풋강냉이 세이삭으로 아침을 굼때고는 서당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서당에 들어서니 여느때없이 강서명훈장이 상투를 풀어헤치고 꿇어앉아 꺼이꺼이 흐느끼며 방바닥을 주먹으로 치고있었다.

량세봉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훈장님댁에 상가가 났는가?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생각이였다.

훈장님식솔이라 해야 갓 마흔을 넘긴 부인과 평양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방학이 되여 내려와 한달째 집에 머무르고있는 외동딸 강연희밖에 없다. 어제저녁에 나무 한짐 지고 갔다가 그들이 아무 탈없이 터밭김을 매고있는것을 보고 왔다.

강연희가 내미는 랭국 한사발까지 밑굽을 내고 돌아섰다.

《선생님! 어인 일이옵니까?》

량세봉은 그의 등뒤에로 조심히 다가갔다. 강서명은 두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칠념이 없이 량세봉의 손을 덥석 잡아쥐고 그를 한동안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쳐다보았다.

잠시후 강서명이 서당이 떠나갈듯 큰소리로 분부하였다.

《세봉아! 종을 쳐라! 세봉아, 어서!

온 마을사람들이 다 듣게 길게 쳐라. 어서 힘껏 쳐라!》

때없이 흥분된 강서명의 부르짖음에 량세봉은 영문을 알바없이 마당으로 후닥닥 뛰여나갔다. 마당가운데 무성한 가지들을 떠이고 서있는 미루나무가지에 구리종이 매달려있었다. 량세봉은 끈을 쥐고 이쪽저쪽으로 힘껏 흔들었다.

아침 여덟시경에만 서당학생들을 불러들이며 노래처럼 울리던 종이였다.

마치도 그 무슨 재변을 알리는듯 한 야무지면서도 다급한 종소리가 아침대기를 마구 휘저으며 마을사람들을 불러냈다.

말끔히 정리된 서당마당에 글방학생들과 마을사람들이 꽉 찰 때까지 량세봉은 넉가래같은 손에 종끈을 감아쥐고 그냥 구리종을 울렸다.

《사람들이 다 모여왔습니다.》

서당의 학급장인 량세봉이 다시 방에 들어서서 조심스럽게 아뢰였다.

삿자리에 맥없이 두팔을 늘어뜨리고 실신한 사람마냥 앉아있던 강서명이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량세봉이 허우적거리는 강서명을 부축하여 토방에 나섰다.

강서명은 량세봉의 억센 손에 한팔을 잡힌채 자기를 의아쩍은 눈으로 쳐다보는 마을사람들을 잠시토록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굽어보았다.

《음-》

신음소리같은 코소리가 길게 뿜어져나왔다.

이윽고 강서명이 후들거리는 한팔을 기치창검처럼 결연히 머리우로 번쩍 들어올리더니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여러분 세리고을어르신들! 사랑하는 학도여러분!》

이렇게 무겁게 다물린 입에서 고함치듯 떨어져나온 그의 목소리는 어제날의 준수하고 고루한 고을훈장의 목소리같지 않았다.

팔을 쳐들고 어깨앞으로 흘러내린 긴 머리칼을 바람에 기발처럼 날리고있는 그의 모습에는 장히 그 어떤 준엄한 결전에로 수하장병들을 불러일으키는 거인장수를 방불케 하는 비장하고도 엄정한것이 비껴있어 마당을 꽉 채운 사람들의 가슴을 쿵 흔들어놓고도 남음이 있었다.

사실 강서명은 서당방에 여생을 묻고저 찾아든 선비가 아니였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마저 변성명하고 남도에서 올라온 유생출신의 의병이였다.

일찌기 동학교인으로 있다가 삼남을 휩쓸었던 리강년의병장의 휘하에서 일본놈들에게로 살을 날리던 강서명은 의병부대가 왜놈들의 《토벌》로 뿔뿔이 헤쳐지자 처자를 찾아가지고 의주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곳에도 잠적해버린 의병들을 찾고있는 왜놈들의 마수가 뻗어있어 인차 왜놈들과 내통한 관헌들의 눈을 피하여 다시 철산군의 오지라 할수 있는 세리면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뒤로 침략자들에게 맞세울수 있는 후비들을 키우는 일에 심혼을 깡그리 바쳐왔던것이다.

그가 서당에 공자와 맹자의 초상을 걸어놓고 수업전에 학생들과 함께 인사를 하고 글방교재로 유교경전을 선택한것은 자기의 신분과 서당교육의 목적을 가리우기 위한 짙은 안개에 불과하였다.

강서명의 서당교육의 목적은 애국에 사는 후대를 키워내는것이였다.

강서명은 이 순간 장검을 내린 후 여러해동안 가슴 한켠에 눌러붙이고 참고참아왔던 섬오랑캐들에 대한 울분을 깡그리 퍼내여 모닥불처럼 활활 타올렸다.

《여러분들은 엊그제, 바로 8월 29일을 가슴마다에 새겨두시오. 절대로 지워지지 않게 깊이깊이 새기시오.

8월 29일!

바로 그날은 우리 조선이, 반만년의 맥을 이어온 조선이 저 간특하고 악독한 쪽발이놈들에게 먹히우고만 망국의 날, 치욕의 국치일이요!

조선은 망했습니다. 금수강산 내 나라는 세상에 없어져버렸습니다.

저 현해탄너머 개, 돼지보다 못한 쪽발이들이 엊그제 한일합병조약이라는 도깨비문서를 날조해가지고 우리 나라를 아예 삼켜버리고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나라 전체 백성들이 을사년에 온 나라를 진감시켰던 시일야방성대곡과 같은 호곡으로 숨이 꺼진 내 나라를 조상하고있습니다.

이 나라 백성이라면 의당히 떨쳐나 피같은 눈물과 호곡을 하늘땅에 뿌려야 합니다! 우리도 모두 숨이 꺼진 내 나라를 조상합시다.

통분하도다! 으흐흑- 통분하도다! 으흐흑 내나라 조선아!

강서명은 이렇게 다시 통곡을 터뜨리며 토방에 주저앉아 두주먹으로 토방을 내리쳤다.

청천벽력같은 강서명의 부르짖음에 마을사람들과 학생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눈이 퀭해 묵묵부답으로 듣고만 있었다. 미구하여 강서명의 비통한 눈물과 울분의 의미가 짚이우자 모두가 일제히 마당에 주저앉아 강서명을 따라 땅바닥을 치며 애고대고 큰소리로 통곡하였다.

한동안 수십명이 일제히 쏟아놓는 울음소리가 마을을 진동하였다.

때아닌 아침녘에 터져나온 통곡에 집집의 문들이 열리고 마을의 젊은이들과 늙은이들, 아낙네들과 아이들까지 떨쳐나왔다.

그들도 서당마당에 펼쳐진 눈물의 바다에 덩달아 눈물을 쏟으며 목소리를 합쳤다.

통곡이 고조되여갈 때 강서명이 다시 토방에서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는 목이 쉬여가지고도 격조를 높여 이야기를 이었다.

《여러분! 세리마을 남녀로소 여러분!

우리는 이제 망국민이 되였습니다. 2천만 단군의 자손들이 저 난쟁이 섬오랑캐들의 족쇄와 수갑을 찬 머슴이 되였습니다.

선조들의 유골이 묻혀있는 우리 강토는 왜놈들의 더러운 발굽에 짓밟히게 되였습니다.

말 못하는 금수도 제 보금자리는 지키거늘 저 개, 돼지보다 못한 리완용, 리근택, 박제순, 권중현, 리지용과 같은 조정안의 역적무리들이 을사5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더니 오늘에는 아예 우리 조선을 일본놈들에게 통채로 넘겨주었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지고 세계지도에도 내 나라 국호가 없어지게 되였습니다.

멀지 않아 여기에도 왜놈들이 기여들어 구장, 촌장, 면장, 군수노릇을 하고 치안도 제 마음대로 하며 나라명줄을 한손에 거머쥐게 될것입니다.

따라서 이 나라의 반만년 유구한 력사와 문화도 끊어지고 우리 말과 글도 못쓰게 될것입니다. 그러니 조선백성이 고개들고 살 곳이 어디 이겠습니까?!》

강서명이 침략자의 발굽에 짓밟혀 보다 참혹하게 짓이겨질 민족의 래일을 놓고 이렇게 저저이 기염을 토하자 서당마당과 서당울바자밖에 장사진을 친 마을사람들은 《한일합병》이라는 치욕스러운 망국의 의미를 더욱 똑똑히 깨닫고 눈물을 또다시 펑펑 쏟았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 팔을 부여잡고 머리를 떨었다.

이날 강서명은 서당문을 닫아걸게 하고 량세봉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진종일 앉은뱅이책상앞에 앉아 깊은 상념에 골똘해있었다.

그는 민족이 당하는 대재변앞에서 자기의 여생을 두고 고민하였다.

이튿날 아침 학생들은 변함없이 자기 시간에 서당에 와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량세봉도 글방학우들의 출석정형을 점검하고 강서명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어험-》하고 건기침을 톺아올리는 소리가 마당에서 들리고 이어 훈장이 나드는 방사이문으로 강서명이 들어섰다.

학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량세봉은 여느때처럼 강서명이 자그마한 교탁앞에 단정한 자세로 나서자 《선생님, 다 왔습니다.》하고 출석보고를 하였다.

그러자 강서명은 간단히 수인사로 답례하고는 학생들을 세워놓은채 담담한 어조로 선포하였다.

《학생들! 나는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 시각부터 서당문을 닫게 된다는것을 알립니다. 여러분들의 글공부는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그 소리에 학생들이 웅성거리였다.

망국과 더불어 또다시 학생들의 머리에 떨어진 청천벽력이였다.

나어린 아이들 몇이 일시에 엉엉 소리내여 울기 시작하자 이어 모든 학생들이 눈물을 줄줄이 떨구며 울었다.

량세봉도 련이어 닥쳐드는 절통한 재변에 가슴이 찢기는듯 아파나고 두볼이 진한 눈물로 젖어들었다.

《선생님! 어인 일입니까?!》

량세봉은 이렇게 부르짖으며 무릎을 꿇고앉았다.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하고 일제히 목메여 부르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강서명은 삽시에 눈물이 그렁해서 소리쳤다.

《학생들! 진정하오. 학생들!》

《선생님!》

《학생들!》

강서명과 학생들은 서로 애달프게 찾고 부르며 비감에 잠겨 울었다.

잠시후 량세봉이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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