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5. 머리에 마른풀 얹은 소녀

 

(1)

 

어느날 김씨가 무명 한필을 팔아 등잔석유와 양재물을 사려고 장마당에 갔다.

세리장마당은 마을에서 시오리가량 잘되는 면에 있었다.

김씨가 점포에 들려 무명을 팔고 양재물을 사려고 점포를 나서는데 점포옆에 수염이 더부룩한 사나이가 허리를 구부정히 하고 처량하게 소리치고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소녀애를 사시오. 소녀애를 팔겠습니다. 소녀애를 사주시오.》

사나이는 고저가 없는 나직한 목소리로 오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애원하고있었다.

볕과 추위와 바다바람에 타고 생활고에 쩌들은 인생의 람루가 그대로 엿보이는 사나이였다. 훌쭉 패인 볼따귀에 때이른 굵은 주름이 얼기설기 서리고 세상만사를 체념한듯 눈시울을 축 내리깔고 그냥 한본새로 소녀애를 사달라는 소리만 곱씹는다.

김씨는 사나이의 가긍한 처지를 무심히 지나칠수 없어 가까이로 다가갔다.

사나이에게 손목을 잡히고 눈물로 볼을 적시고있는 소녀애는 여라문살 돼보였다. 머리에는 마른 풀검불이 얹혀있었다.

그것은 팔려고 하는 아이라는 표식이였다. 그래도 새까만 머리는 곱게 빗어넘기였는데 그우에서 한오리의 풀검불이 봄바람에 한들거렸다.

소녀는 연신 손등으로 눈물을 씻으며 소리없이 흐느껴울고있었다.

김씨는 부녀의 정상에 눈물부터 앞서 그들의 앞을 지나갈수 없었다.

옷고름에 꼬깃꼬깃 비끄러맨 동전을 다 털어주고싶건만 무명 한필 돈으로써야 어떻게 저 소녀의 몸값을 대신할수 있으랴.

어깨를 늘어뜨리고 인간불륜의 애원을 하던 사나이가 김씨가 자기 딸을 찬찬히 보고있는것을 알아본듯 고개를 들었다.

김씨는 무엇보다도 소녀애의 정상이 눈물겹게 불쌍하였다.

그리고 제 딸을 팔려고 하는 그 사나이가 더없이 측은해보이였다.

그 어떤 재난이 저 사나이를 불륜의 막다른 골목에로 몰아넣은게 분명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눈을 펀히 뜨고 제 딸을 팔아버릴 생각을 어이 할수 있겠는가.

《가만…》

김씨는 문득 한가지 생각이 뇌리에 떠올랐다.

맏이의 생각이였다.

이애를 데리고가서 몇해 지나 맏이와 짝을 맞추어준다면 어떠랴.

《애가 몇살이지요?》

《올해 열살입니다.》

《열살?》

나이에 비하면 키꼴도 좋고 몸매도 곱다. 얼굴생김도 둥글넙적한게 정차보인다.

맏이 나이가 스물이 가까와온다.

총각나이 스물이고 보면 한물 넘긴 나이로 통하는 세월이였다.

빨리 장가를 들여야겠는데 어데서 며느리 데려올 여력이 없었다.

김씨는 소녀애를 찬찬히 살펴보며 마음을 정하였다.

(그래, 이애를 키워서 며느리로 삼자.)

이렇게 속구구를 하고난 김씨는 《여보세요, 내가 이애를 데려가겠습니다.》하고 례절있게 말했다.

그러자 마주선 녀인이 그대로 지나갈가봐 은근히 마음을 조이며 서있던 사나이가 얼른 허리부터 굽석 굽히며 인사부터 하였다.

《예. 고맙습니다.》

《얼마를 치르면 될가요?》

김씨는 집안의 장손을 맡아줄 며느리감을 돈으로 사는것이 차마 입에 올리기 베찼으나 사람을 팔고 사는것이 흔히 장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장사일이라 흔연히 흥정을 붙였다.

《뭐, 적당히 알아서 주시오. 하두 사정이 각박해서 이렇게 사람 못할짓을 하는겁니다.》

사나이는 이렇게 목멘 소리로 대답하며 허리를 굽힌다.

《돈을 집에 가서 드릴터이니 저와 같이 갑시다. 우리 집은 저 재등너머 첫 동네랍니다.》

김씨는 겁에 질려 눈을 두릿두릿거리는 소녀애의 손목을 정을 담아 꼭잡았다.

《얘야, 이름을 어떻게 부르느냐?》

《윤재순…》

소녀애가 김씨의 따뜻한 손에서 무엇인가 위안을 느꼈던지 흐느낌을 멈추고 눈물이 섞인 어조로 대답하였다.

《얘 재순아, 무서워말아라. 우리 집에는 네또래의 동무도 있다. 우리 집에 가면 네 오빠벌 되는 사내애들이 넷이 있는데 널 때려줄 애는 없다. 모두 마음씨가 착하단다. 그러니 겁을 먹지 말고 우리 집에 가서 함께 살아보자.》

김씨가 차분한 어조로 달래여주자 윤재순은 다소 마음이 진정되는지 손등으로 두눈굽에 가랑가랑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김씨는 그들을 앞세우고 장마당을 나섰다.

장마당이 있는 세리면 소재지에서 조금 동북쪽으로 걸어 달구지길이 우불구불하게 뻗어간 재등을 넘어야 한다.

재등은 10년전까지는 새초와 잡관목이 우거진 산등판이였다.

근래에 세리면의 돈량이 있는 부자들이 몇뙈기씩 밭으로 일구어 조나 보리를 심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등판전체가 한벌 벗기여 밭으로 되여버렸다.

김씨는 누렇게 익어간 조이삭들이 고개를 숙이고 우실렁거리는 등판에서 풍겨오는 낟알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새로운 걱정에 골똘히 잠겨있었다.

남편이 사전의논없이 데리고오는 며느리감을 어떻게 맞아들이겠는가 하는 걱정이였다.

가뜩이나 궁한 살림에 입 하나 늘어나는게 작은 부담이 아니다.

저애가 자라나 제구실 할 때가 되자면 적어도 5, 6년은 잘 걸려야 한다. 그는 량기화가 자기가 한 일을 놓고 도리질을 하지 않겠는지 자신이 없었다.

안팎으로 곱던 훈장집아씨에 대한 남편의 말까지 곁묻어나와 김씨는 그냥 속이 초들초들해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언제인가 김씨는 남편으로부터 훈장집아씨가 우리 세봉에게 어울리겠다고 한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물론 량기화는 안해가 속이 알찌근해질것 같아 청혼을 마다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김씨는 꿈같은 소리라고 한마디로 받아넘겼지만 그 말이 가슴에 새겨졌다. 남편이 괜스레 그런 말을 꺼내놓은게 아닐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량세봉을 끔찍이 아껴주고 내세워주며 앞날을 크게 보던 훈장이고보면 아무튼 세봉이를 놓치고싶지 않았을것이다.

훈장아씨는 비바람에 떨고있는 풋병아리같은 저애에 비하면 봉황이라 할수 있다.

곱게 자라 곱게 안겨드는 봉황은 황황히 마다하고 뼈대가 굳기 전에 못된 세상의 찬서리를 맞아야 하는 풋병아리를 맏이의 짝으로 받아들이는것이 아무튼 가슴이 쓰린 일이다.

《후-》

김씨는 저도모르게 입새로 한숨이 길게 나갔다.

그러나 눈물겨운 정상을 그냥 남겨두고 돌아서는것도 인정이 아니였다.

가난뱅이는 가난뱅이들이 도와야 한다고 늘 이야기하는 남편이다.

그런대로 맏이의 짝을 쉽게 구하고 장차 사돈으로 될 사람은 마음 어져보이니 남편이 제발 받아주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이렇게 자기가 만들어낸 시름에 겨워 10리재등을 넘어서 동네에 들어서니 마냥 걸음이 무거웠다.

집에 들어선 김씨는 우선 소녀애와 사나이에게 점심으로 남겨놓았던 보리감자범벅을 파국에 받쳐 상을 차려주었다.

《아침부터 장마당에서 맘고생하며 있었겠는데 찬이 없는대로 우선 요기부터 하세요.》

김씨는 귀한 손님을 조촐하게 대접하는게 미안쩍어 이렇게 권하였다.

《뭘요, 아침은 먹었는데요.》

사나이는 김씨의 후한 인심에 사양하면서도 딸만은 상앞에 떠민다.

김씨가 또 한번 각근하게 권하자 그도 더는 마다하지 않고 상을 받았다.

윤재순은 범벅 한그릇을 파국에 말아 게눈 감추듯 해버렸다.

그제야 소녀는 인사차릴 경황이 생겼는지 얼굴이 새빨개지며 《고마와요.》하고 수집게 말하며 상에서 비켜앉았다.

《얘 봉녀야, 앞덕의 조밭에 가서 아버지를 빨리 들어오시라고 여쭈어라. 긴한 일이 있어 그러니 급히 오시라고 전해라.》

웃방에서 막내동생과 놀던 고명딸 봉녀가 《예-》하고 냉큼 일어나 정주방으로 내려왔다.

그애는 밥상에서 물러앉은 제또래의 윤재순이를 흘끔흘끔 보면서 집을 나섰다.

이윽고 량기화가 긴한 일이라는 김씨의 전갈에 급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김씨는 소녀애를 데리고온 사연을 조심스럽게 꺼내놓고는 남편의 눈치를 살피였다.

아직 인사가 없이 아래구석에 딸의 손목을 꼭 잡고있는 사나이가 집주인의 대답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고있었다.

량기화는 잠시 처녀애를 눈여겨보다가 자기도 어쩔새없이 《후-》하고 모두숨을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그 순간 량기화는 부지불식간에 훈장집 딸 강연희의 분꽃같은 얼굴이 떠올랐던것이다.

세상에 흔치 않을 며느리감을 마다하고 아직은 공으로 쳐도 반갑지 않을 젖비린내가 나는 천덕꾸러기 소녀를 사들이다니…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하지만 무슨 수가 있다더냐. 맏이에게 비록 몇해후에라도 짝을 맞춰놓게 된다는것만 해도 다행이라 아니할수 없지 않느냐.

후유- 이것도 하늘이 맏이의 정상을 가긍히 여겨 점지해준 연분이 아닐가.

량기화는 또다시 긴숨을 토하다가 자기가 지금 사돈이 될 사람앞에서 방정맞은 생각을 한다는 생각이 펀뜩 나서 얼른 눈을 뜨고 벽에 걸어놓은 태통을 내려 써레기담배를 꽁꽁 다져넣었다.

그리고는 천성그대로 인정이 뚝뚝 돋는 어조로 흔연히 말하였다.

《마누라가 집에 데려온건 잘한 일이요. 인정에 목이 메는게 사람이라지 않소.》

남편의 소리에 김씨는 우선 마음이 놓여 안도의 숨을 기쁘게 내쉬였다.

사나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량기화에게 꾸벅 절을 하였다.

《주인장어른, 정말 고맙습니다.》

량기화가 서둘러 손을 내둘렀다.

량기화는 사나이의 인사까지 받고보니 다소 면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는 의미로 보면 자기 역시 인사법도를 차려야 할 일이다.

이 일로 덕을 보는게 저 사람뿐인가. 저애가 장차 제구실을 하면 량씨집 종가며느리로 돼주어 조상들앞에 제상을 차려줄 후손들을 세워주겠는데 고맙다는 인사로 말하면 우리쪽에서 먼저 꺼내놓아야 법도라 하겠다.

《앉으시우, 어서 앉으시우다. 고맙다는 인사는 피장파장이우다. 우리한테도 귀인이 생각밖으로 나타났으니 이 아니 경사이겠소. 그집에서는 귀한 딸 내놓아야 할 리유가 있을게고 우리에겐 우리대로 따님건사 해줘야 할 리유가 있쉐다.》

이런 자리에서는 흔히 돈 한푼이라도 옭아낼 건덕지를 만들어내는게 상책이라 한다. 하지만 량기화는 아직 피지도 못한 제 딸을 팔아야 하는 상대의 궁색한 처지를 념려해서 이렇게 인정에 무른 그대로 상대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느라고 왼심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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