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5. 머리에 마른풀 얹은 소녀

 

(2)

 

사나이는 량기화의 후한 심덕에 닭똥같은 눈물을 쭈르륵 쏟아놓고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윤재순의 아버지 윤길주는 여기서 멀리 떨어져있는 한 어촌마을에서 살아왔다.

선주놈은 교활하고 악착한 놈이였다.

한푼이라도 더 갉아먹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다.

우선 년중 바다일 날자를 추석과 설날을 제외한 363일로 잡고 돈을 빨아냈다.

매생이만 한 작은 목선을 타고 사나운 파도우에서 해야 하는 바다일이란 추운 겨울이나 바람계절에는 못하는것으로 되여있다.

바다란 계절과 기후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갈개므로 웬간한 배들은 조금만 파도가 일어도 나서지 못한다. 그래서 배군들은 먹는 밥은 사자밥이요 등에 진것은 칠성판이라고 신세타령을 한다.

게다가 낡아빠진 나무배와 그물은 줄창 수리해야 한다.

이래저래 떼내고보면 1년에 150일정도 기껏해서 200일이상은 바다에 나갈수가 없게 되였다.

그런데 선주놈은 363일을 바다에 몸을 잠그라고 하니 이건 말그대로 죽으라는 소리나 다른게 없다.

흥정을 붙여볼라하면 두세마디 안팎에 배를 쓰겠다는 사람은 많으니 배에서 내리라고 을러멨다.

울며 겨자먹기로 어느 하루도 배에서 내릴수가 없었다.

윤길주가 바다에 나가면 그의 처는 혼자서 간석지에 나가 조개주이를 하고 갈게도 잡아 생계를 근근히 이어갔다.

바다에 나가지 않는 날에는 윤길주도 처와 함께 조개를 잡아 선주에게 바칠 돈을 마련하였다.

윤재순이 4살되던 해 늦가을 어느날이였다.

이날도 윤길주는 바다길에 오르고 그의 처는 딸을 옆집에 맡기고 간석지에 나갔다.

밀물이 나가면 간석지가 거의 10~15리정도나 드러난다.

그러면 마을사람들이 떨쳐나 조개주이를 하였다.

이날따라 서해는 바람세가 몹시 사나왔다.

녀인은 쇠줄을 구부려 묶은 세가닥의 《조개손》을 들고 조개를 하나둘 캐면서 저도모르게 멀리까지 나갔다.

조개를 캐며 여기저기를 헤매이다보니 자기가 떠나온 방향을 찾을수 없었다.

해를 보니 밀물시간이 가까와왔다.

녀인은 당황해서 멀리 보이는 산발을 목표로 조개구럭을 지고 주먹을 부르쥐고 뛰였다. 벌써 깊은 곬으로 바다물이 쏴- 쏴- 스산한 소리를 지르며 쓸어들었다.

물을 따라 날아든 갈매기들이 끼륵끼륵 안타까이 울면서 녀인의 머리우를 감돌았다. 녀인은 될수록 둔덕진 곳으로 오르려고 하였으나 바다물은 산지사방에서 밀려들었다. 끝내 녀인은 회오리치는 물결에 휘말려들고말았다.

이튿날 깊은 개골에서 조개구럭을 둘러멘채 굳어진 녀인의 시체가 발견되였다.

《이렇게 되여 재순이 네살때 어머니를 여의였지요. 그래서 내가 저애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군 했지요. 재순이는 배에서 컸습니다.》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김씨가 아버지곁에서 떨어질세라 손목을 꼭 잡고 오도카니 앉아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며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재순이를 옆으로 슬그머니 끌어당겨 품에 담쑥 안으며 그의 머리를 어루쓰다듬어주었다.

윤길주는 량기화가 말아준 써레기담배를 입에 물고 몇모금 달게 들이빨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 어찌하든 이애를 내손으로 키워 사위를 맞아 술 한잔 받아보는것이 일생소원이고 비명에 묻힌 처앞에서 제 도리를 지키는 일이라는것을 번연히 압니다. 헌데 이놈의 세상이 우리같은 가난뱅이는 죽으라고만 하니 살래야 살수가 있습니까.

그까짓 내같은거야 살만큼 살아봤으니 이제라도 죽은들 무슨 대수겠습니까. 그저 애가 불쌍해서 죽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내가 죽으면 선주한테 진 빚이 이애한테 다 넘어가겠는데 내가 어찌 그래놓고 저승살이를 편히 할수 있겠습니까.》

윤길주는 이따금 숨이 막히는듯 가슴을 텅텅 두드리면서도 그냥 장탄식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얼마전에 바다기슭의 큰 바위돌에 매놓았던 배가 큰 파도에 떠밀려 덜컥 마사지지 않았겠습니까. 선주가 잡아먹을것처럼 행패질을 하는데 당장 배값을 내놓으라는겁니다. 한달기한을 달라고 사정을 해두 막무가내입니다. 배값을 내지 않으면 이애를 데려가겠다는겁니다.

선주놈은 전에도 우리 배군친구들의 어린애들을 빚값으로 빼앗아가군하였습니다. 그애들이 끌려가 두세해 넘기지 못하고 매질과 힘든 일에 숨이 졌습니다.

그래 며칠토록 이 생각, 저 생각에 시달리다 둘이 함께 풍덩 바다물에 뛰여들 생각도 했는데 정작 바다절벽까지 갔다가 이애 어미가 울며 내 바지를 잡는것 같아서 끝내 돌아섰답니다.

또 며칠 생각던 끝에 차라리 마음 무던한이를 만나 애를 넘겨주면 선주놈에게 주는것보다는 나을듯싶어 발버둥치는 이애를 겨우 얼려가지고 머리에 마른 풀을 얹어주고 나왔던겁니다.

이애가 어떻게 지내겠는지 다 제 팔자니 어찌할수 없겠지만 부탁컨대 하루 한끼 먹여줘도 좋으니 너무 구박마시고 애를 때리지만 말아주시우. 우리 딸이 못 먹고 못 입고 살아왔지만 아직 매 한대 건사하지 못하고 살아왔답니다. 애는 원체 마음씨가 어지고 노래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일손도 여무져서 크게 애먹이지 않을겁니다.》

량기화는 마디마디 비통한 윤길주의 인생담에 눈물이 글썽해있다가 윤길주의 부탁에 진정을 담아 위로하였다.

《이보소 윤서방, 그런 념려는 마소. 실은 우리 집에 열아홉에 나는 총각이 있수다. 이제 몇해가 지나 저애가 녀자구실하게 될 때면 맏이 짝으로 세워놓을 생각이니 너무 걱정마소. 남의 귀한 딸 데려다가 구박이란 말 당치않수다. 더구나 저애는 장차 우리 량씨가문 종가집 장손며느리로 될 앤데 우리도 귀하게 키우겠수다.》

그러자 윤길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량기화에게 넙적 엎드려 절을 하였다.

《주인어른, 고맙습니다. 저의 절을 받아주시우. 주인내외분은 내게도 재순에게도 백번 고마운 귀인들입니다.》

그러자 량기화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갈노전우에 이마를 박고있는 윤길주를 부축하여 일으켜주며 나무람하였다.

《이러지 마시우. 이런 절 받으면 우린 인사불성이 되우다. 우리 이제는 사돈간이 되는셈이 아니웨까. 어서 편히 앉으시우. 피차에 우리도 다 큰 자식을 장가들일 걱정이 컸는데 이렇게 하늘에서 내린듯 귀한 며느리감이 찾아들었으니 우리도 복을 받은셈이지요. 그러니 감사한 마음으로 볼것 같으면 같고같은셈이지요.》

김씨는 부엌에서 성의를 다하여 저녁상을 차렸다.

추석에 쓰려고 꿍져놓고 건사하여온 기장쌀을 가지고 떡을 치고 집에서 금방 알낳이를 시작한 씨암닭도 잡았다. 둘째아들은 술집에 뛰여가서 탁배기도 한방구리 받아왔다.

상을 물리고나자 김씨는 농짝안에서 무명천에 꽁꽁 싸매두었던 엽전 여덟냥을 꺼냈다.

겨울에 접어들어 시작할 무명낳이에 필요한 고치실을 사려고 1년내 모아들인 돈이였다.

김씨가 닷냥을 떼놓고 얼마 되지 않는 나머지 돈을 다시 무명천에 싸서 농짝밑에 건사하는데 량기화가 한마디 하였다.

《여보, 거기다가 한냥 더 얹어드리오.》

《예, 그러리다.》

김씨는 흔연히 남편의 말을 받으며 또 농짝문을 열었다.

그런데 탁배기 몇사발에 얼근해져서 뿌옇게 흐린 눈으로 김씨를 바라보던 사나이가 정신이 펀뜻 든듯 궁글은 소리로 만류하였다.

《아주머니, 그만두시오. 닷냥도 많습니다. 선주한테 넉냥반만을 물어주면 한고비는 넘깁니다.》

《받으시오. 돈이야 있다가도 없어지고 근력을 쓰면 또 생기기도 하는데…》

량기화가 이렇게 말하자 사나이는 더욱 감지덕지해서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재순아, 난 참 마음이 놓인다. 가는 걸음이 그리 무겁지 않겠다. 난 이제 떠나겠으니 넌 예서 마음씨 좋은 새 부모님들을 모시고 잘살아라. 이 애비는 사람구실 못해서 네 아버지 되기를 그만두었으니 두고두고 나를 욕해라.》

윤길주가 철부지자식을 놓고 자신을 저저이 타매하는데 윤재순이 아버지의 손목을 꼭 잡으며 애원하였다.

《아버지, 여기서 같이 살자. 응?》

《아니다.… 나는 거기로 가야 한다. 선주한테 돈부터 물어주어야 한다. 내 이다음 돈을 많이 벌어서 너한테 새옷 사가지고 오마.》

《새옷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돼. 난 아버지랑 여기서 같이 있고싶어.》

《이것아, 그래서는 못쓴다. 넌 이제부터는 이 집 식솔이다.》

《아버지, 난 싫어! 같이 있자!》

부녀간에 뼈를 깎아내는 실랑이가 오가는데 김씨가 눈물이 앞을 가리워 옷고름을 눈굽에 가져가며 윤길주에게 권했다.

《재순이 아버지, 재순이랑 함께 며칠 계셔요. 그새면 재순이도 우리 애들하고 정붙이게 되겠는데 그걸 보고 떠나야 가슴이 쓰린것도 덜어지지 않겠나요.》

《고맙수다. 그런데 난 한시바삐 돌아가서 선주와 회계를 해야 합니다. 하루를 늦잡으면 그만큼 빚돈이 늘어납니다. 눈을 펀히 뜨고 생돈을 갉아내는걸 어떻게 참아낼수 있겠습니까.》

윤길주는 빨리 떠날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 며칠 더 있다가는 자기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아예 딸한테 녹아붙어 일어날것 같지 못하였던것이다.

아무래도 떠날 걸음이니 한시바삐 딸과 사돈이라고 볼수 있는 인정 후한 사람들앞에서 비천한 제모습을 거두어버리는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럼 하루밤만이라도 딸옆에서 주무시고 떠나세요.》

김씨가 여전히 각근한 어조로 그의 발을 잡았다.

김씨에게는 다른 궁냥이 생겨났던것이다.

하는수없이 윤길주는 목멘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예. 그럼 그러하리다.》

김씨는 윤길주가 대답을 하기 바쁘게 웃방에 있는 자식들을 아래방으로 내보낸 다음 부녀가 마지막밤을 함께 보낼수 있도록 잠자리를 펴주고 정주간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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