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5. 머리에 마른풀 얹은 소녀

 

(4)

 

봄철이 되자 온 집안이 농사일에 달라붙었다.

봉녀와 윤재순도 막내동생의 손목을 각각 잡고 산과 들에 나가 부지런히 나물을 뜯었다.

가난한 농사군집안에서는 나물이 농량이였다.

식솔이 많은데다가 한창 돌이라도 삭일 사내들이 여럿이니 그들이 아무리 부지런히 나물을 뜯어와도 남아돌아가지 못한다.

《봉녀야, 오늘은 둥굴레뿌리를 캐볼가?》

《그러자.》

《어머니보고 범벅을 만들어먹자고 하자.》

《범벅?… 그래.》

어린아이들이였으나 모르는 나물이 없고 그를 료리하는 방법도 휑하니 알고있었다.

가난은 아이들을 조숙하게 하는 모양이다.

이윽고 밭에 나선 그들은 둥굴레순을 뜯고 뿌리를 캐느라고 바쁘게 돌아갔다. 여러해 겨울을 난 둥굴레뿌리가 실해서 인차 바구니가 찼다.

그들이 바구니에 둥굴레순과 뿌리를 가득 채워가지고 시내가에서 말끔히 씻어가지고 들어오자 김씨의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너희들이 용쿠나. 둥굴레뿌리까지 캐오고.》

《언니가 캐오자고 했어요.》

봉녀가 자랑스럽게 윤재순을 내세웠다.

《그래?… 원, 둥굴레뿌리 캐올 생각까지 하다니…》

《범벅을 해먹자요.》

윤재순의 소리였다.

《그러자꾸나. 이제 메뿌리와 갈뿌리랑 캐다가 범벅을 만들어주마. 그러지 않아도 맛이 좋은 범벅을 한번 너희들에게 배불리 먹여주자고 도토리 한되박을 구해왔다.》

《야, 좋네. 봉녀야, 오후에 우리 메싹 캐러 가자. 메싹은 모래가 많은 땅에 가야 많이 캘수 있어. 바다가에 나가서 갈뿌리도 캐오자. 갈 때 다래끼도 가지고가서 갈게도 주어오자.》

《응. 그래그래.》

윤재순과 봉녀는 이렇게 김씨의 칭찬을 받고나서 신나서 재잘거렸다. 이날 오후에 두 소녀는 바구니와 다래끼를 어깨에 걸치고 손을 잡고 들로 나갔다.

그들은 메뿌리를 캐고 간석지에 나가 갈뿌리도 햇것으로 뜯었다. 그리고 갈게들도 잡아 다래끼를 채웠다.

그들이 메뿌리와 갈뿌리를 캐오고 갈게까지 잡아오자 김씨는 마당에 걸어놓은 가마에 불을 달아 도토리를 푹 삶아서 물에 우려냈다.

둥굴레는 보약재로도 많이 써온다. 달여서 마시면 기침에 특효가 있다. 단백질이 많은 둥굴레뿌리를 구우면 달큰해서 거저 먹어도 좋았다.

메뿌리와 갈뿌리를 함께 끓이다가 삶아 우린 도토리를 대강 찧어서 다시 끓이면 먹기도 좋고 근기가 있는 범벅이 된다.

거기에 송기를 푹 끓여서 잘게 찧어 함께 끓이면 쌉쌀하면서도 독특한 소나무의 향기까지 풍겨 제법 별미다. 그래서 아이건 어른이건 다 좋아한다.

이것이 농량으로 되기도 하지만 가정생활을 즐겁게 하는것이여서 김씨는 별식을 만들어내느라고 자꾸만 생각을 굴리고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거기에 한창 철없이 뛰노는 재순이와 봉녀까지 눈썰미있게 나서주니 집안에 웃음이 피여나군 한다.

남편과 자식들의 웃음을 위해서 구슬땀을 기꺼이 바치고 고달픔도 자랑으로, 행복으로 받아들이는게 이 나라의 녀인들이다.

김씨는 날과 달이 바뀌면서 윤재순에게 정이 가고 사랑스러워지기만 하였다. 윤재순이는 천성적으로 총명하고 활달한 성격이였으며 눈치가 빠르고 손기가 날래였다.

무엇이나 한두번 보면 그것을 눈에 담고 머리에 새기였으며 손에 익히였다.

한번은 윤재순이 김씨를 깜짝 놀래운 일이 있었다.

어느날 윤재순은 김씨가 메주를 담그는 일을 두고 미처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걱정하는 소리를 여겨들었다.

소녀는 어머니를 잃은 뒤에 바다로 떠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옆집에서 며칠씩 지내군 했는데 그 집 할머니가 메주를 담그던 일을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가 김씨를 대신하여 메주장을 담그어보리라고 결심하였다.

메주덩이들을 잘게 부스러뜨려 장독에 넣고 서슬기를 뺀 소금물을 적당히 부어넣었다.

봉녀가 윤재순이 시키는대로 옆에서 조력을 하였다.

저녁에 밭에서 들어온 김씨는 재순이의 말을 듣고 이제는 메주를 못쓰게 만들고 장맛을 들이지 못하게 되였다고 속으로 한탄하였다.

쪼꼬만게 어벌도 크다고 혀를 찼다.

농촌집에서는 한해 절반 식량이라고 하는 장이 랑패가 될듯싶어 념려스러웠던것이다.

그렇지만 윤재순의 밝은 모습이 흐려질세라 내색은 하지 않고 일단 용타고 칭찬을 해주었다.

김씨는 간을 제대로 맞추었는지 걱정스러워 소금물맛부터 보았는데 맞춤하였다.

윤재순에게 물어보니 소금을 채에다 담고 물을 약간 뿌려 서슬기를 뽑은 다음 단지에 넣었다고 한다. 서슬은 건사해놓았다가 이다음에 두부할 때 쓰면 된다는것이였다.

생각이 제법이였다. 간도 딱 맞고 물과 메주 비례도 알맞춤하게 되여 있었다. 그제서야 김씨는 숨이 나갔다. 한켠으로는 어린 윤재순이 대견스러워졌다.

(참, 애도… 담도 크고 일손도 탐스럽구나. 녀자들이 메주를 쑤고 장을 맛들게 담그면 제구실을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흐뭇하게 생각한 김씨는 어린 윤재순에게 김치를 비롯한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고 옷을 말구고 바느질하는 등 세간살이묘기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그리고는 된장, 간장을 아예 윤재순에게 맡겨주었다.

한달이 지나 메주물이 새까맣게 우러나오자 윤재순이 그것을 따로 퍼내여 베보자기를 겹으로 펴놓고 받아내니 색갈고운 간장이 되였다.

간장맛이 달고 된장 또한 구수하였다.

량기화도 김씨도 두리반에 모여앉아 장국을 들 때마다 재순의 재간에 한해 맛스러운 장을 먹는다고 노상 칭찬하였다.

량기화량주는 윤재순이 머리에 마른 풀대를 올려놓고있던 가냘픈 모습을 털어버리고 싱싱하게 자라는것이 기쁘기 이를데없었던것이다.

윤재순도 하나하나 제손으로 구해들이고 새로운것을 만들어내고 그래서 식구들을 기쁘게 하고 아버지, 어머니의 칭찬을 받는것에 성수가 났다.

윤재순은 이렇게 새로운 생활의 보금자리에 깃을 내리고 사는 재미를 터득하면서 량씨가정의 한식솔로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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