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2 장

1

 

철에 비해 이른감이 나는 덧옷으로 입은 얇은 연미색외투자락을 펄럭이며 한 녀자가 기자구락부 앞마당에 서있었다.

어깨에 부인용보다 큰 묵직한 무엇이 들어있는 칙칙한 밤색가방을 메였다. 망원렌즈가 크고 긴 촬영기도 두개나 걸쳤다.

그는 지금 국무성청사로 가려고 하였다. 그가 CNN텔레비죤방송본사에서 워싱톤으로 올라온데는 두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언제부터 신청한 북조선에 대한 방문허가를 꼭 얻자는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바로 며칠전에 일본의 NHK텔레비죤방송이 날린 북조선에 대한 특대뉴스를 대하는 워싱톤의 동향을 알고싶어서였다.

그때 약삭바르기로 소문난, 그래서 통신보도계의 이목을 모으기도 하고 미움깨를 받기도 하는 NHK텔레비죤방송은 이렇게 소문을 퍼뜨렸다.

《북조선의 북동부에 새로 건설되고있는 미싸일발사기지에서 지난 1월 렬차를 리용해서 운반되는 물체가 발견되였다.

남조선소식통은 우리 NHK텔레비죤방송기자에게 지난 1월, 이 기지에 렬차로 원통형물체가 운반되여왔으며 여러대의 차량이 빈번히 드나드는것이 미국의 정찰위성에 의해 발견되였다고 밝혔다. 원통형물체가 정확히 미싸일인가 하는것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아직까지는 액체연료를 주입하는것과 같은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남조선소식통은 북조선이 미싸일의 발사준비를 추진하고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남조선은 지금 미국과 련계를 취하면서 동향을 주시하고있다고 한다.》

조선에 이미전부터 《악의 축》이요, 《테로지원국》이요, 《불량배국가》, 《폭정의 전초기지》요 하는 따위의 감투를 잔뜩 만들어 씌워놓고 무슨 건덕지를 잡지 못해 눈에 피발이 서고 안달이 났던 미국정객들과 그의 하수인들은 그 소리에 제 궁둥이에 불이라도 달린것처럼 와들짝 놀라 분주탕을 피우기 시작했다.

세계의 신문, 통신, 방송, 출판물들이 때를 만난것처럼 입을 모아 떠들었다.

NHK텔레비죤방송원이 화면에 나타나 횡설수설한지 몇분도 되지 않았는데 로씨야의 중앙텔레비죤방송이 제꺽 받아물었다.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있는 로씨야가 그 나라의 미싸일을 무서워하거나 걱정하는감은 없고 오히려 미국본토를 타격할수 있는것이라고 슬쩍 보태기까지 하는것을 보면 은근히 깨고소해하고 미국을 야유하는것 같았다.

이러한 때에 미국의 CNN텔레비죤방송이 침묵하고있을수 없었다.

다음날 밤 CNN텔레비죤방송은 자못 신빙성의 무게를 더 실어 이렇게 보도했다.

《북조선이 이제 곧 미국본토까지 날아오는 장거리미싸일을 시험적으로 발사할수 있다고 한다. 남조선과 일본의 보도기관은 북조선이 탄도미싸일발사준비를 추진하는 모양이라고 보도했다. 새로 건설되고있는 미싸일발사기지에 커다란 물체가 렬차로 운반되였다고 한다. 북조선은 한주일전에 남조선과의 합의를 파기하고 조선반도는 전쟁접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바 있다.》

각이한 대륙의 제노라고 하는 신문, 통신, 텔레비죤방송들이 날린 소식은 미국이나 일본, 남조선과 같이 북조선과 앙숙인 나라들을 벌둥지 쑤셔놓은것처럼 만든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지구라는 행성전체를 끓어번지게 하였다.

조선에서 무슨 대응하는 소리라도 있어야 하겠는데 당자는 가랑잎들이 잘은 바스락댄다는것인지 아직은 침묵하고 뫼부리처럼 끄떡없이 대척하고있다.

하긴 강이 깊으면 물은 조용히 흐른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때에 국교는 고사하고 첫째가는 적대관계에 있는 조선이 미국공민이며 기자인 나를 함부로 들여놓을가?

하지만 CNN인 경우는 좀 다르지 않을가. 이미 조선에서 공화국창건 50돐을 성대히 경축하던 때에 평양에 가서 난생처음 보는 조선인민군의 열병식이며 군중시위를 생방하여 미국땅은 더 말할것도 없고 세계를 들었다놓지 않았던가.

그때 나는 비록 조선에 가지 못했지만 취재진에 속했던 마이클 취노이나 세퍼드의 말에 의하면 그 나라의 현실은 정말 놀라왔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조선사람들도 CNN텔레비죤방송기자들을 나쁘게 대하지 않는것 같다고 했다. 북조선사람들은 제 나라에 해되는 일을 하지 않고 나라의 현실을 보태지도 덜지도 말고 진실만을 세계에 알린다면 환영한다고 했다.

마이클 취노이는 그때에 본 조선의 현실이 얼마나 놀라왔던지 흥분하여 방문소감을 동료들앞에서 이렇게 피력하였다.

《조선은 일본을 타승하고 자기 나라를 찾은 때로부터 미국이 일으킨 전쟁과 전후복구건설, 최근 서방의 제재와 자연피해에 의한 경제적난관, 미국, 일본, 남조선과의 계속되는 정치군사적긴장 등으로 하여 실로 순탄하지 않는 로정을 걸어왔다.

그러나 이 모든것이 북조선을 허물지 못하였다.

령도자와 인민이 한덩어리로 된 특이한 정치제도는 북조선의 가장 큰 위력이다. 사실 서방은 이것때문에 북조선을 무서워하고있으며 핵무기를 가지고있으면서도 이 나라를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고있는것이다.

또한 조선민족은 간단치 않은 민족이며 함부로 건드릴수 없는 존재라는것을 시위하였다. 력사는 언제나 신념이 있는 사람들에게 영광과 존엄을 가져다주었다.》

가치관이 이북사람들과 다른 마이클 취노이는 무엇에 이처럼 경탄한것일가.

내가 조선에 가보려고 마음먹은지는 오래다. 선친들의 태가 묻혀있는 고국에 꼭 찾아가보라고 한것은 아버지가 눈을 감으면서 남긴 유언이였다.

마이클 취노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할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왜 그러한 나라를 떠나 이국민이 된것일가.

마이클 취노이의 북조선방문소감은 붙는 불에 키질하는 격으로 그 녀자의 마음을 몹시 든장질하였고 오늘에 와서 더는 참을수 없는것으로 만들었다.

가야 한다. 꼭 가봐야 한다!

그 녀자의 가슴에서는 이런 결심이 더 굳어졌다.

그는 웃입술을 감쳐물고 오른쪽어깨에 멘 가방을 추스른 다음 택시를 불러타고 국무성청사로 향했다.

꼬리를 물고 미친듯이 질주하는 승용차들, 시퍼런 대낮에 남녀가 껴안고 입술을 감빨기도 하고 동성이 붙안고 해괴망칙한짓을 하는 그때문에 걸음이 뜬 무리들을 비집고 빠져나오기도 하며 사람들이 물결처럼 흐르는 거리, 백인도 있고 황색인도 있고 흑인도 있고 혼혈아도 있는 그래서 더 잡탕스러워보이는 거리, 눈뿌리를 뽑는 고층건물들과 번쩍거리는 광고판들이 땅우에서 바글거리는 그 모든것을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위협하는것 같기도 하고 유혹하는것 같기도 하다. 경찰차가 미친듯이 질주하며 숨넘어가듯 경적을 울렸다. 어데서 또 살인이 나거나 강도들이 은행을 턴 모양이다.

세상에 태여나서부터 보아왔고 이제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그 어데서건 놀랍거나 이상한것이 전혀없는 광경이여서 그 녀자는 범상하게 여겨졌다.

이 시각 그 녀자는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그 모든것에는 흥미가 없고 전혀 다른것을 생각하고있었다.

(내가 아버지의 고국과 자기 고향에 대하여 관심을 두기 시작한것은 과연 언제부터였던가.)

슬하에 자식으로 외동딸 하나를 남기고 지극히도 사랑해준 아버지. 하면서도 살아온 과거나 고향을 불문에 붙이며 몰래 한숨짓군 하던 아버지의 무거운 마음속 음영을 알기 시작한것은 철없던 때였던가, 철들기 시작해서였던가.

자기가 태여나고 자기가 살고있는 미국이라는 나라, 미국사회를 혐오스러워하고 저주하기 시작한것은 백주에 거리에서 할머니와 어머니를 깡패들의 총탄에 잃고 아버지의 가슴을 두드리며 태질하던 그때부터였던가.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마실줄도 몰랐다. 혹 한잔 드는 때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하였다. 그렇지만 마음은 그지없이 너그러워졌다. 평상시에는 빗장을 지르고있던 입을 열어 딸이 묻는 말에 대답도 했고 깊이 묻어두고있던 심중을 터놓기도 했다.

사향은 철없던 시절 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엉뚱한 말을 한적이 있었다. 동심에 항상 의문으로 새겨져있던것이기도 했다.

《아버지, 우리 나라에는 왜 눈알이 노란 사람도 있고 나처럼 까만 사람도 있나요? 그리구 얼굴이 흰 사람두 있구 검은 사람도 있구 말하는것도 달라요. 개나 고양이, 승냥이, 닭들이 모두 한우리에서 와글거리며 사는것 같아요.》

《허허허… 너 이젠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내 말이 틀리나요? 우습나요?》

취기가 올라 상혈된 아버지의 눈길이 사향의 얼굴을 살폈다.

《너 이자 우리 나라라고 했지?》

《예. 우리가 살고있는 이 미국 말이예요.》

《우리 나라? 허허… 우리 나라라…》

아버지는 허거프게 웃었다. 다른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또 물었다.

《아버지, 내 고향은 어디고 아버지고향은 어디나요?》

이번에는 아버지가 좀 놀라는듯 하며 또 한참이나 딸을 내려다보았다.

《고향?… 네 고향이야 여기 애틀란타가 아니냐.아버지의 고향은 묻지 말아. 아버지는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땅이 꺼질듯 한 한숨이 뒤따랐다.

《고향이 없는 사람도 있나요?》

《사향아, 아버지의 가슴을 허비지 말아. 내 이제 네가 다 크고 철이 들면 말해주마. 말해주구 말구. 지금은 들어도 알수 없고 알아도 소용없다.》

아버지는 마실줄 모르는 술을 또 한잔 들이켰다. 그리고는 마디가 굵은 껄껄한 손으로 사향의 머리를 자꾸 쓰다듬었다. 애리애리한 두볼에 뜨끈한 물방울같은것이 떨어졌다. 아버지의 눈물이였다.

그러나 그때 사향은 아버지가 왜 우는지 몰랐다.

아버지의 고향이 어디며 분명 동양인인 자기들이 어찌하여 눈확이 우묵하고 코가 비쭉한 양키무리들속에서 수모를 당하며 사는지 알고싶었으나 묵묵부답이였다. 그대신 딸에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만은 싫증이 나도록 말해주군 했다.

《이 나라에서는 돈이 없으면 못살고 남을 물어뜯고서라도 디디고 올라서지 않으면 짓밟히고만다. 황금만능과 약육강식의 나라다. 그러니 무슨 일에서건 누구에게 절대로 져선 안된다. 그렇다고 못살고 마음착한 사람들에게 악한짓을 할 생각은 말아라.》

그러던 아버지가 한번은 우정 기회를 마련하여 의미가 자못 깊은 말을 한적이 있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마실줄 모르는 술을 한잔 든것 같았다.

《사향아, 이리 오너라. 너도 이젠 어지간히 철이 들었으니 아버지로서 한가지 알고싶은게 있다.

넌 이제 학교를 졸업하면 무슨 일을 하려니?》

이런 물음은 처음이였다. 그러고보면 아버지는 그동안 딸에 대하여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는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하긴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는 부모가 어데 있으랴. 하물며 어머니없이 불쌍하게 자란 딸자식이 아닌가.

하지만 황금만능과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늘 외우시던 아버지였다.

그러니 무엇을 소원하면 이루기나 할것을 가지고 물으실가.

사향은 머리를 수그리고앉아 입술만 감빨았다.

《너도 한생 아버지품에서만 살수야 없지 않냐. 무던한 총각과 짝을 무어 백년환락했으면 좋으련만 이 사회에서 바랄수 있을는지.… 꿈이라도 꾸어보자꾸나.》

《아버지, 난 아버지없인 못살아요. 정말이예요.》

《고맙다. 하지만 아버지도 이젠 나이가 많다. 어쩌겠니, 자식이 부모의 슬하에서 벗어나게 되는건 인륜법칙인걸… 한생 외기러기로 살수도 없는거구. 물론 무슨 직업같은것도 있어야 할게 아니냐?》

아버지의 말이 하도 진지하고 어떻게 들으면 구슬프기도 해서 사향은 가슴이 덜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나이찬 딸을 둔 아버지로서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차라리 아버지가 마련한 이 자리가 더없이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는 바재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정말 소원을 말하라요?》

《어서 들어보자꾸나.》

사향은 정색해지고 아버지는 마음이 즐거운지 우선우선한 얼굴이였다.

《아버지, 난… 이 세상을 다 다녀보면서 내가 알고팠던것들을 알아보고 희한한 새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고싶어요.》

《?…》

아버지는 놀라운듯 딸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되물었다.

《네가? 녀자가?》

《녀잔 그런 일을 하면 안되나요?》

어찌보면 천진한것 같기도 하고 허황하고 어처구니없는 소리같기도 했다.

아버지는 웃음을 거두고 자못 신중해졌다.

《녀자라고 못한다는 법이야 없지. 네가 어머니없이 이 아버지의 손탁에서만 살다보니 그런 생각을 다 가졌구나.》

아버지는 측은한 눈길로 딸을 또 한동안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깊이 하는것 같았다.

《사향아, 네 꿈이 그렇다면 막지 않으마. 내 가산을 다 팔아서라도 힘써보련다. 그렇지만 한가지만은 명심해두거라.》

아버지는 말을 끊고 담배를 붙여물었다. 몇모금 빨고나서 자기자신에게 하듯 나직이 입을 열었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알려주겠거던 진실만을 말해주어야 한다. 위선과 허위로 유혹해서는 안되느니라.

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거짓선전과 기만에 넘어가 너의 할아버지가 태를 묻은 고향과 고국땅을 버렸고 나나 너는 타향만리의 이국민이 되고말았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이번에는 사향이 놀라운 눈길로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촘촘한 속눈섭이 바르르 떨렸다.

《넌 어릴 때 이 아버지에게 물었지. 왜 우리 나라는 눈알이 노란 사람, 까만 사람, 피부가 흰 사람, 검은 사람이 한데 모여사는, 그래서 개나 고양이, 승냥이, 닭같은것이 다 한우리에 모여 와글거리는것 같은 나라인가고… 여긴 너에게는 몰라도 나에게는 우리 나라가 아니다. 아니, 너에게도 조국은 아니다. 알겠냐?》

《…》

아버지는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더듬어보는듯 하였다.

가슴아픈 추억같았다.

《다른 일들이 많은데도 이국땅에 와서는 어릴 때 내 귀쌈을 때린 소꿉시절친구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왜 점점 더 가슴을 허비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는 방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사향은 탄식조로 하는 그 말속에 비록 어린시절에 있은 일이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한생토록 후회하고 자책하는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후부터 아버지는 기회를 마련하여 딸에게 기구한 자기네 가정사를 한가지씩 들려주군 하였다. 아마 떳떳하지 못하고 수치스러운것이지만 사향이 알 때가 되였다고, 알아야 한다고 여겼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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