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2 장

2

 

…나라가 해방되기 전해 초여름 어느날이였다. 변부호는 해도 뜨지 않은 신새벽에 처마를 나란히 하고 이웃에 사는 소꿉친구 형욱이를 불러냈다.

형욱이는 잠을 채 깨지 못했는지 하품을 길게 하고는 저쪽 울바자있는 곳에 가서 오줌을 싸갈겼다.

《왜 이렇게 일찍 찾니? 잠도 못 자게스리.…》

《너 내가 찾는게 싫니?》

《싫긴, 너무 졸리니까 그러지 뭐.》

《좋은 일이 있어 찾았다. 형욱아, 너 그림그릴줄 아니?》

《무슨 그림?》

《그림이 그림이지 무슨 그림이라는것두 있니?》

《있지 않으문. 사람을 그렸으면 사람그림이구 너희네 그 얼룩이를 그렸으면 짐승그림이구 음… 그리구 저 우리 집 뒤쪽에 있는 호수를 그렸으면 호수그림이 아니가?》

《네 말을 듣구보니 정말 그렇다야.》

《씨, 알지도 못하면서…》

형욱은 떨어지려는 누런 코를 훌쩍 들이키고 때국이 꾀죄죄한 팔소매로 쑥 훔치며 부호를 흘겨보았다.

그들 둘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해서부터 소꿉친구로 다정하게 지냈다. 여름이면 아래에 달린 꼬투리를 다 드러내놓고 개울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자맥질을 하고 고기잡이도 했다. 겨울이면 깊은 얼음구멍에 풍덩 빠진다고 부모들이 너무 아부재기를 쳐서 광포호수에는 못 나가고 논에 물을 채워서 만든 얼음판에서 종일 썰매를 탔다.

새둥지는 또 얼마나 털었던가. 그런 때면 형욱이가 항상 높은 곳이나 나무에 오르고 부호는 두다리를 뻗치고 등을 구부려서 그우에 자기의 딱친구를 올려놓군 하였다.

《아직 멀었니?》

수수떡빛이 된 낯을 들지 못하고 궁둥이를 하늘공중에 내댄 부호가 두다리와 두팔을 파들파들 떨며 소리치군 했다.

《씨- 좀더 참으려무나. 왜 이렇게 흔들흔들하니. 사내꼬랑지라는게 그렇게두 맥을 못 추니? 다 잡게 됐는데…》

남은 힘들어 죽겠다는데 형욱은 오히려 부호의 등을 딛고올라서가지고도 제편에서 볼부은 소리를 했다.

《나한테 두마리는 줘야 돼.》

《가만있어. 잡기두 전부터…》

그렇게 해서 털어낸것이 새알이면 둘이 똑같이 이발로 쪼아 후르륵하고 마셔버렸고 새끼면 오지랖에 싸안고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그리고는 마주보며 좋아서 흐득흐득 웃었다.

철없던 시절에 무슨 일인들 없었으랴.

그런 둘사이여서 사실 부호가 찾아온것은 조금도 이상하거나 기분나쁠것이 없었다.

《부호, 좋은 일이라는건 뭐야?》

형욱은 또 한번 입이 째지게 하품을 하고나서 궁금해서 물었다.

《너 지도그림그릴줄 아니?》

《지도그림이란건?》

《네가 이자 방금 말하지 않았니. 사람그림두 있구 나무그림두 있구… 그러니 지도그림이라는것두 있을게 아니가?》

《?…》

형욱은 제 입으로 한 말이 있는지라 그렇지 않다고도 못하고 눈만 뜨부럭거렸다.

《저리 좀 가자.》

부호는 그러는 형욱의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둘은 굴뚝모퉁이의 좀 으슥진데로 갔다.

《어제밤 함흥에 있는 우리 6촌형이 왔단 말이야. 너 우리 그 형님 알지? 일본건너가 사각모자쓰고 학교다니던 형, 얼마나 유식한지 아니? 꼬부랑말도 한다.》

《방학때 너희집에 와서 구상리체네하구 련애하던 형 말이가?》

《히히… 지금은 벌써 이렇게 됐다.》

부호는 제 배를 내밀고 손으로 불렀다는 시늉을 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자, 이걸 한알 먹어라.》

《이게 뭔데?》

《사탕이야. 형님이 나 먹으라구 이만큼 가져왔다. 너니까 주지 뒤집 쫄보는 어림도 없어. 얼마나 달달한지 혀까지 껴묻어 넘어간다. 어서 먹어보라는데.》

부호는 그러며 빨락지에 싼 사탕을 발가 입에 넣었다.

형욱은 난생처음 보는것이여서 손에 받아들기는 했지만 어찌했으면 좋을지 몰라 쭈밋거렸다. 부호가 주머니에서 다른것을 한알 발가보였다.

《자, 이렇게 하면 돼, 아- 하라. 내가 넣어줄게.》

시키는대로 하자 형욱의 한쪽볼이 삽시에 불룩해졌다.

《달달하지? 깨물지 말아. 와작와작 깨물어서 먹지 말구 살살 녹여가며 오래 먹어야 돼.》

부호는 입안의 달달한 물을 꼴깍 넘기고 사탕알을 이쪽저쪽 볼로 굴렸다.

《옛다.》

부호는 사탕 세알을 꺼내서 또 형욱이에게 주었다.

《이렇게 많이?》

《형욱이 너니까 주지 뒤집 쫄보는 안돼.》

부호는 으시대며 이번에는 한손에 들고있던것을 쳐들었다.

《우리 형님이 나한테 이 공책과 그림그리는것도 가져다주었단 말이야.》

부호는 갑뚜껑까지 열었다.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연필대보다 좀더 굵고 길이는 짧은것이 8개나 들어있지 않는가. 그것도 형욱이로서는 처음 보는것이였다. 사탕을 볼 때보다 더 눈이 둥그래졌다. 머리까지 기웃거렸다.

《부호, 친형도 아닌데 너한테 이런것까지 사준단 말이야?》

《으응- 그 형님은 내 친형이나 같애. 우리 큰어머니가 그 형을 낳고 젖이 없어서 우리 어머니젖을 먹구 자랐단 말이야.》

《으응- 그렇댔구나.》

형욱은 머리를 끄덕끄덕하며 부러운 눈길로 부호의 손에 들려있는 크레용을 또 들여다보았다.

《형님이 이걸 주면서 나보구 우리 나라 지도같은거랑 한번 그려보라고 했다. 그런거랑 잘 그리면 다음해에 학교에두 보내주겠다는거야.》

《히야- 학교에두?》

그러다가 형욱은 인차 시들해졌다. 짚신을 걸친 한쪽발로 땅바닥을 툭툭 찼다.

《그러면 너하구 새둥지털라랑 미역감으러랑 못 다니겠구나.》

《너두 학교에 가면 되잖니?》

《내가 어떻게 가니? 우리 집에 돈이 있니?》

《우리 그 형님이 말하는데 학교에 가서 배워야 장사하는거랑 돈버는거랑 잘할수 있대. 그건 그렇구 형욱아, 너 나하구 지도그림 그려볼래 안 볼래?》

《우리 나라지?》

《그럼, 여기 다 있어. 보구 고대로 그리면 돼.》

부호는 크레용갑과 함께 들고있던 공책을 툭툭 두드렸다.

형욱은 조선지도라면 자신이 있었다. 지난해 가을인가 자기 집에 외삼촌이 와서 며칠 묵어간 일이 있었다. 그는 외삼촌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외삼촌한테 물어도 그저 빙그레 웃을뿐이였다. 아버지, 어머니는 외삼촌과 관련한 말을 입밖에 내지 못하게 하였다. 동네에 나가서 외삼촌이 왔다는 말도 못하게 다짐을 받았다.

외삼촌은 집에 온 날부터 밤을 내놓고는 밖에 나가는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형욱은 외삼촌이 좋았다. 자기를 무르팍에 앉혀놓고 머리를 쓸어주며 재미나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무척 고와했던것이다. 기계기름냄새가 날사한 외삼촌의 품에 안겨있을 때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편하였다.

외삼촌은 아버지, 어머니가 밭에 일하러 나간 때면 집안에서 혼자 무슨 그림같은것을 펴놓고 주의깊이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잠기군 했다.

하루는 형욱이 밖에서 숨박곡질을 하며 놀다가 목이 말라 부엌에 들어와 바가지로 물을 떠 정신없이 마시고나서 정지방을 올려다보니 외삼촌이 그때에도 그 그림을 들여다보고있었다. 형욱이 슬그머니 방안으로 올라가 그의 곁에 앉았다.

《외삼촌, 이게 뭐나요?》

《음- 이게 우리 나라 지도라는거다.》

《지도요? 우리 나라가 이렇게 생겼나?》

형욱은 외삼촌이 보고있던 그림을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며 보았다.

자기로서는 통 어떻게 된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얼기설기 그물같은 선이 그어져있고 불그스레한것과 퍼르끼레한것이 꽉 차있는 그림에는 알지 못할 글자와 수자, 무슨 동그라미와 점, 우불구불하게 그려놓은것들이 많았다.

볼줄을 몰라 서해가 아래쪽에, 동해가 웃쪽에 올라가게 놓은 그림을 바로잡아주며 외삼촌은 나직이 뇌이였다.

《똑똑히 봐둬라. 이게 우리 나라란다. 여기가 백두산이구 거기에서 시작하여 이쪽으로 흐르는 강이 압록강, 저쪽으로 흐르는 강이 두만강이란다. 우리 나라는 북에서 남으로 삼천리나 된다. 지하자원이 많고 물이 맑고 아름다와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하지. 그런것을 이 바다건너에 있는 왜놈들이 강탈해서 타고앉았다.》

외삼촌은 검푸르게 칠해놓은 오른쪽으로 치우친 한곳에 못생겨먹은 또 다른 그림(일본령토)을 가리키며 좀 성나듯 해서 말했다.

《빼앗긴 우리 나라를 되찾자고 여기 백두산에서 일성장군님이 군대를 무어 싸우신단다.

형욱아, 마음을 굳게 먹구 주눅이 들지 말고 살아라. 너희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잘살 날이 이제 꼭 온다.》

외삼촌은 그러며 또 머리를 쓸어주었다.

《외삼촌, 나 우리 나라를 한번 그려볼래요. 그래도 되지요?》

《어서 그래라.》

그날 외삼촌이 가지고왔던 보짐속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주었다. 그리고는 형욱이의 손을 꼭 감싸잡고 지도그리는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런 형욱이여서 우리 나라 지도그리기라면 자신이 있었다. 물론 외삼촌한테서 배웠다는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런것을 모르는 부호는 제법 으시대며 형욱이에게 일렀다.

《그럼 아침밥먹구 저 동벌 우리가 놀러나가던 솔밭에 가자. 뒤집 일본순사네 쫄보한테 말하면 안돼. 그 자식은 나보다 이만큼 크구 주먹이 세다고 쩍하면 을러메.》

《건 네가 무서워하며 비실비실 피하니까 더하지. 나처럼 한번 코피가 터지더라두 달라붙어 혼찌검을 내란 말이야. 그럼 어따 대구 을러메.》

《오늘 지도그림이나 그린 다음 한번 해볼테야. 형욱아, 그럴 때 네가 곁에 좀 있어주려마.》

《좋아, 그러자.》

그들은 이런 약속까지 하고 헤여졌다.

그랬다가 아침밥술을 놓기 바쁘게 동벌 소나무숲속으로 갔다.

《히히… 너 그림그릴줄 모른다면서 제법이다야.》

부호는 넙적한 판대기같은것을 들고온 형욱이를 보자 웃으면서 시까슬렀다.

《난 이런것밖에 없어…》

형욱은 시들하게 말하면서 게면쩍어했다.

《일없어. 종이랑 연필이랑 여기 다 있잖니? 그리고 이건 색칠할 때 쓰자.》

쫄보와 싸움할 때 곁에서 도와주겠다고 해서 그런지 부호는 오늘 무척 마음을 푹푹 썼다.

드디여 그들은 모래불에 엎디여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형욱은 외삼촌이 집에 왔을 때 그려본적이 있는지라 부호가 펴놓은 지도를 곁눈질해 더러 보기는 했지만 제법이였다.

그렇지만 부호는 도무지 잘 안되는지 그렸다가는 지우고 지웠다가는 또 그리며 끙끙 갑잘랐다. 그 아까운 백로지를 두장이나 구겨던졌다. 이따금 황새목을 해가지고 형욱이 그리는것을 훔쳐보기도 했다.

《너 지도그림 그릴줄 모른다더니 척척이로구나.》

《헹- 옆에 놓구 보구 그리는것두 못할가.》

형욱은 외삼촌한테서 배웠다는 말이 목젖밑까지 올라온것을 용케 참고 다르게 말하였다. 지도그리던 오른손으로 코밑을 쓱 훔치며 시틋해하기도 했다.

《얘, 연필 좀 바꾸어 써보자마. 내건 영 안돼.》

부호는 심사가 편안치 않아서 공연히 타발질이였다.

《옛다. 바꾸겠으면 바꾸자마.》

형욱은 자기가 쓰던 연필을 넘겨주었다. 자기것이 아니니까 별수가 없기도 한것이다. 그랬는데 조금 있더니 부호가 다시 걸쳤다.

《안되겠어. 본래 쓰던것보다 더 안돼. 도로 달라.》

《야- 이러다 언제 다 그리겐? 옛다. 부호, 이젠 우리 말하지 말구 다 그린 다음 서로 바꾸어 보자마. 누가 더 잘 그렸나 하는건 네 형님 보구 보아달래자.》

《그렇게 하자문 못할줄 알아? 누가 너한테 질줄 아니?》

부호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서로 반대쪽으로 좀 떨어져서 훔쳐보지도 못하게 한손으로 가리우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수그리고 부지런히 제재간을 다 피웠다.

크레용만은 가운데 놓고 같이 썼다.

한참후에 부호가 종이장을 공중 쳐들며 벌떡 일어났다.

《다 그렸다아-》

자기가 한 일이 장한지 그것을 쳐든채 콩당콩당 뛰며 선자리에서 빙빙 돌기까지 했다.

《너만 다 그린줄 아니? 나두 다 그렸다야.》

《어디 좀 보자마.》

《네것두…》

둘은 자기것은 서로 뒤로 감춘채 한손을 내밀었다. 한참 그렇게 싱갱이질을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은 《시작.》해서 엇바꾸었다.

그런데 변부호의 지도를 보던 형욱이 눈이 둥그래졌다. 제가 그린것과 달리 부호가 그린 지도는 우리 나라 땅과 일본땅을 누런 황토색으로 칠해놓았던것이다.

《부호, 너 이게 뭐야? 왜 우리 나라 땅하구 일본땅하구 같은 색을 칠했니?》

《넌 왜 여기다는 빨간색을 칠하구 여기다는 이런 시커먼 색을 칠했니?》

《너 그렇게 까박을 붙이겠니?》

《까박은 무슨 까박, 우리 조선하구 일본이 한나라니까 같은 색을 칠한거지.》

《뭐? 우리 조선이 일본하구 한나라라구? 야, 이 멍텅구리야.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 나라를 강제로 먹은 강도나라란 말이야. 우리 조선하구 왜나라 일본하구 어떻게 같니? 내 그린걸 내라!》

형욱은 부호의 손에 가있던 자기가 그린것을 와락 나꾸채서 그앞에 펼쳐들었다.

《봐라! 빨간색을 칠한건 우리 조선이구 이 시커멓게 칠한건 나쁜 일본이란 말이야. 멍텅구리같은게…》

《뭐, 멍텅구리? 너 이 새끼 말 다했니?》

《다했다, 왜? 제 나라두 똑똑히 모르는게 멍텅구리가 아니문 밥통이야?》

《야, 형욱이 이 새끼, 너 일본에 가 사각모자쓰고 공부한 우리 형님보다 더 잘 아니? 봐라! 우리 형이 준 지도에두 색갈이 그렇게 돼있지 않니. 조선과 일본은 한나라란 말이야. 네 그림이 틀렸어. 너 이제 쫄보아버지순사가 와 잡아가지 않나 봐라.》

부호는 아직도 남아있는 종이며 모래불우에 그채로 있던 크레용을 와락와락 걷어안으며 형욱에게 대들었다.

그 순간이였다. 부호가 그린 지도를 쫘락쫘락 찢어서 던져버린 형욱이 씽- 하니 맞받아나가며 부호의 귀쌈을 후려갈겼다.

《아이쿠-》

부호가 뺨을 싸쥐고 저쯤 모래판에 나딩굴었다. 어떻게 맞은것인지 시뻘건 코피가 흘러내렸다.

《형욱이 이 새끼, 너 왜 때리니? 사탕주구 연필주구 종이주구 크레용까지 쓰라고 했더니 값이 이거야? 조선과 일본이 한나라라는데 왜 때려?》

부호는 뺨과 코를 싸쥐고 형욱에게 악을 썼다.

《이 멍텅구리야, 일본놈들이 우리 조선사람들을 사람취급도 안하는데 한나라라구 아직도 씨벌대? 이 새끼, 너 아직 정신이 덜 들었구나.》

형욱은 다시 달려들어가며 부호의 다른 뺨을 또 한번 사정없이 들입다쳤다.

그리고는 그가 주었던 종이며 연필을 활 집어던졌다. 주머니를 뒤져서는 아침에 준 사탕 세알까지 찾아 부호를 향해 팽개쳤다.

그런 다음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마을쪽으로 걸어갔다.

《형욱이 너 이 새끼, 두고보자. 응응…》

부호가 모래판에 앉아 발버둥질하며 지르는 고함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이 일이 한생 가슴아프면서도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을줄이야 부호나 형욱이 어찌 알았으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의 눈굽이 번쩍거렸다. 무슨 말이건 한마디만 더하면 눈에서 뜨거운것이 왈칵 쏟아질것 같았다.

사향은 알고싶은것이 많았지만 아버지의 아픈 가슴을 더 허비고싶지 않아 묻는것을 그만두었다. 자리를 펴드리고 눕게 하였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방금 한 이야기와 그 번쩍이는 눈물에 떠나온 고국, 고향을 한생토록 생각하고 절절하게 그리워한 심정과 나이들수록 커가는 후회와 무서운 번민이 슴배여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었다.

철부지시절 무심히 듣고 지금까지 새겨보지 못했던 자기 이름과 관련한 이야기도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떠올랐다.

언젠가 할머니는 사향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탄식하군 했다.

《네 할아버지가 로망을 해서 이런 낯설고 물설은 땅에 우리를 끌고 왔구나. 그래서 지금도 사람값에 못 들고 산다.

네 엄마는 너의 이름을 집안의 금처럼 귀한 딸이라고 금녀라고 짓자고 했지만 네 아비는 제가 태여난 고향을 못 잊어 그 이름을 마다하고 우겨서 사향이라고 지었다. 네 이름엔 고향을 잊지 못하는 우리 집안사람들의 소망이 깃들어있느니라.》

오늘 아버지가 자기 앞날을 걱정하며 하는 말을 들으며 그때 일을 더듬어올리고보니 아버지의 눈물에 어려있는 하많은 사연과 가슴아픔이 얼마나 뼈저린것인가를 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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