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2 장

3

 

사향은 그후 다음과 같은 사연도 알게 되였다.

사향의 할아버지 변달근은 누구에게서 배운것도 없는데 손재간이 좋았다.

구멍이 펑 뚫린 남비나 가마 같은것을 그한테 맡기면 잠간사이에 새것처럼 만들어놓았다.

아무리 망가진 괘종이나 회중시계, 자전거 같은것도 그의 손이 가기만 하면 되살아났다.

파철이나 고무신짝 같은것을 주어다가 엿가락과 바꾸어 팔던 선친과 달리 그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보잘것없기는 하지만 철물가게 비슷한것을 차려놓고 그 재간을 써먹었다.

하지만 해방전 세월에야 그 재간이나 기술이 무슨 소용있었으랴. 어떤 때에는 그것이 오히려 우환거리이기도 했다.

달근은 나라를 빼앗은 일본놈들과 그에 붙어사는 사람같지 않은것들이 권세있고 돈있다고 거들먹거리는것이 눈꼴사납고 그런 놈들의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입에 풀칠을 해야겠기에 아득바득하고 어떤 때에는 놀랄만 한 기질을 발휘하기도 했다. 외양쇠가 머슴살던 집 지주 황택구놈이 어데 가서 낡은 회중시계 한개를 얻어찬적이 있었다. 그놈은 시계가 도금한것이 여러군데 벗겨지고 문자판이 누렇게 변색되였는데도 마을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나 누가 찾아오면 그것이 인품을 올리기나하는것처럼 제법 호기를 부리며 꺼내보군 하였다.

《어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가.》

이런 선소리까지 하였다.

그러던것인데 그만 덜컥 고장났다. 하루는 그것을 들고 황택구놈이 변달근이앞에 나타났다.

《자네 이걸 좀 봐주게나.》

린색하기로 소문난 이놈은 돈나가는것이 아깝다고 제집 터밭에다 담배를 심어 입초를 피우는 좀스러운 인간인데 이날은 가치담배까지 한대 꺼내주면서 삽삽하게 굴었다.

달근이 담배를 받기는 했으나 옆에 놓고 제할일을 하며 시답지 않게 말을 받았다.

《제가 지주어른의 그 귀중품에 어떻게 손을 대겠소이까?》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자네 손재간이면 못 고치는게 없다던데?》

《싫수다.》

《싫어? 그건 왜?》

《글쎄 고칠지 못 고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주어른네 기물이야 암만 고쳐드려도 동전 한잎 못 받는것이니 어데 마음이 동해야지요.》

《그건 무슨 소린가?》

이 앙큼한 지주놈은 그 속내를 말짱 알고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모르쇠를 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한달전에 이젠 쓰지 못하겠다고 지주어른이 팽개치다싶이 했다는 그 헌 괘종을 그 자리에서 뗑, 뗑 소리가 나게 고쳐놨는데 찾으러 온 마님이 값은커녕 입을 싹 씻으며 고맙다는 말한마디도 없이 들고 올라갔지, 댁의 놋양푼과 가마를 때준것만두 쌓아놓으면 이렇게 되겠는뎁쇼. (그때 달근은 일하던 손을 높이 쳐들기까지 했다.) 아무리 지주어른일을 잘해주는 이 달근이지만 나두 이젠 그런 공치는 일은 싫수다.》

변달근은 받았던 가치담배를 지주앞으로 약간 밀어놓았다.

《그런 일이 있었나? 나야 안주인들이 하는 일을 알기나 하는 사람인가. 큰일만 보자고 해도 해가 모자라는데…》

《하긴 그렇겠지요. 그러니 오늘은 아셨으니까 반재기로라도 회계를 쳐주겠소이까?》

달근은 괴여올리는척 하며 한술 더 떴다. 그렇지만 지주 황택구도 마구 미끼를 무는 망둥이는 아니였다.

《아따, 자네 언제부터 그렇게 옴니암니 리문만 따지는 사람이 됐나?》

《옴니암니 리문만 따지다니요? 그런 공나가는 일만 죽기내기로 하다가는 입에 거미줄을 치게요?》

《이보게 달근이, 내 이 시계를 고쳐주면 알도리가 있어. 지난번것까지 다 합쳐서 깨깨 회계해봄세.》

《지주어른, 정말인가요?》

달근은 어리숙한체 하며 반색을 했다가 머리를 기웃거렸다.

《정말 아니문… 이 황택구가 거짓말하는걸 봤나?》

《에이, 싫수다. 지주어른은 말은 그렇게 했다가두 이 손바닥뒤집듯 잘은 뒤집습디다.》

《에끼 이 사람, 어른앞에서 무슨 말버릇이내가 언제 손바닥뒤집듯 했단 말인가?》

볼이 홀쪽하게 담배를 빨던 택구가 눈이 올롱해지며 성을 냈다.

미처 들이키지 못한 담배연기가 입에서 폴폴 피여나왔다.

《내가 없는 말을 지어내겠소이까? 언젠가 뭘 고쳐주면 소작지를 제일먼저 주겠다고 해서 손까지 상하면서 해놓았더니 언제 그런 말을 했던가싶게 수염을 내리쓸며 돌아앉습디다. 그래서 안사람이 가서 열어주지 않는 대문을 발로 차며 한두번 행풀이를 했다구 일본순사까지 끌고왔지요? 엥이, 싫수다. 이번에두 약속은 찰떡같이 하구 훌떡 뒤집으면 나같이 권세없는 놈이야 뭘 주고 뺨 맞는 격이 되고말게 아닌가요. 그럴바에는 못 고친다 하구 가만있는게 낫지.》

달근은 또 한번 아까보다 약간 더 가치담배를 황택구앞으로 내밀어놓았다. 아무리 낯가죽이 두텁고 얘비진 택구지만 그 말에는 상판이 불그레해졌다. 그는 나오지 않는 기침을 몇번 콩콩 짖고는 한걸음 더 다가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게 달근이, 그럼 이번엔 말약속을 그만두구 문서를 만들어놓읍세.》

《문서를 만들다니요?》

《아무날 아무시에 련포리지주 황택구와 철공소집 변달근이 이런이런 약조를 했는데 지키지 않는 놈은 쇠아들놈이다 이렇게 글로 적어두잔 말이야.》

《싫수다.》

《그것두 싫어? 아하- 되운 재셀한다.》

《재셀하는게 아니라 나야 쇠아들이요 개아들놈이요 하고 쌍욕을 먹어두 되지만 지주어른을 그렇게 욕했다가 류치장밥을 먹게요?》

《글쎄 일없대두.》

《그런 욕이나 하는 문서는 싫수다. 지주어른이 땅을 소작줄 때 만드는 문서같은것이면 몰라두…》

《소작줄 때 문서?!》

《아- 거 있지 않소이까. 누구에게 얼마만 한 땅을 얼마만 한 기간으로 소작을 주는데 소작료는 몇할로 하고 그것을 어기였을 때는 어떻게 한다는 식으로 계약을 맺는 문서 말이오다.》

《아따, 달근이, 자네 손재간만 있는줄 알았더니 이것도 뱅글뱅글 돌아.》

택구는 한손을 들어 머리를 가리키며 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럼 그런 식으로 문서를 만드세나. 그래 어떻게 하자나?》

《내가 시계를 새것처럼 만들어놓는 대신 지주어른은 상답으로 몇백평 소작으로 준다구 해주시우다.》

《이걸 고치구 몇백평의 상답을?》

택구는 조끼주머니에서 꺼내 들고있던 회중시계를 새삼스레 들여다보며 놀랐다.

《싫으면 그만두시우다.》

달근은 제법 배를 튕기며 받았던 가치담배를 또 조금 택구앞으로 밀어놓았다. 집어가지고 물러가든지 그냥 가든지 하라는것이다.

《자네가 이걸 못 고치면 어찌겠나?》

《그야 뭐 지주어른 맘대로 하시우다. 머슴으로 데려가든 이 철물가게를 못하게 일본사람들한테 끌어가든.…》

《정말인가?》

《정말아니면 아래에 달린것이 있는 사내가 한입가지고 두말하겠소이까?》

《좋네, 그럼 그렇게 합세.》

그들은 약속대로 적어 문서를 꾸미였다. 지주 황택구는 제 이름자옆에 상아에다 새긴 네모배기도장을 우들우들 떨며 찍었고 달근은 기름과 쇠녹이 묻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에다 인즙을 넉넉히 발라 주저없이 꾹 눌렀다.

그후 변달근은 지주 황택구의 시계를 정말 새것처럼 만들어놓았다. 고장나서 서있던것을 채깍채깍 소리를 내며 돌아가게 고쳐놓은것은 더말할것도 없고 누렇던 문자판을 흰색으로 말쑥하게 한 다음 글자가 도글도글 살아나보이게 하였다. 얼룩얼룩 칠이 벗겨진 시계테며 뚜껑도 번쩍번쩍 금빛이 나게 하였다. 정말 새 시계처럼 만들어놓았다.

황택구는 너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칭찬하였다. 문서에 밝힌대로 땅 300평인가 400평인가를 소작지로 줄 때는 속이 좀 알찌근했지만 크게 손해본것은 없다고 제딴에 무릎을 쳤다.

변달근은 또 그대로 속으로 잘코사니야 하고 택구놈의 땅을 소작지로나마 떼낸것을 좋아하였다. 그는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일본순사들이나 마을의 유지라고 거들먹거리는자들의 돈이나 재물을 곧잘 뽑아냈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았던것이다.

얼마나 바라던 세상이였던가. 망국노의 운명을 벗어던지고 나라의 주인이 되였다. 땜쟁이나 쟁인바치라고 천대하는 사람이 있기를 하나 못살게 구는 놈이 있길 하나 오히려 남들이 달근의 재간을 부러워하고 칭찬하였다.

《허허… 자네 손재간은 귀신도 울고 가겠네. 이다음 죽어 무덤에 갈 때 그 손만은 나한테 넘겨주고가게나.》

《에끼 망할놈 털보같으니, 나많은 사람보구 한다는 수작질이… 왜 너한테 이 재간을 넘겨줘. 내 아들이 눈이 퍼래 살아있는데…》

《아따, 이 형님 되운 값을 올리우다.》

《그럼 반재기라도 해줄가?》

땜질할거나 뭘 고칠것을 가지고왔던 사람들이 그가 일하는것을 보고 혀를 차면서 롱질하면 달근은 밉지 않게 흘겨보며 뼈가 없는 말로 그것을 받아주었다.

한번은 해방후에 흥남기계제작소에서 일하는 유형욱의 외삼촌이 무슨 일로 매부네 집에 왔다가 변달근이 일하는 모습을 띠여보았다. 해방전에도 몇번 나왔다가 만난적이 있어서 초면은 아니였다. 매부한테서 듣던바도 있고 해서 들려보았는데 과연 소문그대로였다.

《변형은 그 재간이면 우리 공장의 기계도 척척 다루겠습니다. 거기에 와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볼 생각은 없는가요?》

기술자나 기능공이 귀한 때라 이렇게 권유해보았던것이다.

그때 달근은 그 버들잎같이 작은 눈이 보이지 않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내 성덕형의 처남되는이가 흥남에서 큰일을 보는분이라는건 알고있소다. 해방전에 숨어다닐 때부터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다 하구 생각하구있었지요.

그런이가 나를 중히 써주겠다는건 고마운 일이우다. 하지만 선친들의 뼈가 묻혀있는 고향땅을 뜨고싶지 않수다. 나라가 해방되여 땜쟁이요, 쟁인바치요 하며 천대와 수모를 받던 나같은 천덕꾸러기도 사람값에 들구 살림이 쭉 펴이였는데 이걸 두고 어디로 떠요?》

《허허… 그래요? 난 기계속내에 이처럼 밝은 형님이 자기 한 집보다 나라를 위한 일에 한몸 바쳤으면 더 좋을것 같아서 그러는데…》

《그건 걱정마시우다. 내 여기서두 나라에 리나는 일을 하면 했지 해되는 일이야 하리까?》

달근은 그가 권하는 담배까지 받아 맛스레 피우며 제법 씨가 박힌 소리를 하였다.

《그렇다면 더 권고하지 않겠습니다. 아무쪼록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십시오.》

형욱이 외삼촌은 그를 미덥게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달근은 그후 돈버는 재미가 늘자 그때 자기 입으로 한 그 말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비싼것인가를 점차 잊기 시작했다.

칼은 육체를 죽이고 돈은 정신을 죽인다고 하지 않는가.

달근은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자기가 형욱이의 외삼촌에게 한 말대로 살지 못하였다.

변달근은 함께 잡혀들어온 외양쇠 성덕이와는 달리 감방에 들어와 뭇매질을 몇번 당하자 우들우들 떨며 우는소리로 중이 념불외우듯 자꾸 중얼거렸다. 어떤 때는 성덕이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토설하기도 했다.

《성덕이, 이젠 어떡허면 좋아? 응? 말 좀 하라구. 저 아까운 집과 재산을 두고 어떻게 죽어, 응? 해방덕에 좀 떵떵거리며 살아볼만 하니… 우리야 미국사람들에게 돌멩이 한개 던져본적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죄없는 우리를 잡아가두구 왜 이 지랄인가 말이야. 황택구놈에게 한번 말해볼가? 목숨만 건지게 해달라구.》

《…》

성덕은 어린 형욱이를 품에 안고 앉아 눈을 꾹 감은채 아무 말도 없었다.

달근이의 넉두리는 계속되였다.

《…저놈이 나한테 와서 다 망가진 회중시계를 고쳐달라구 손이야 발이야 빌 땐 언젠데 그것까지 거들어가며 오늘은 죽이겠다구 을러메니 이런 기막힌 일이 어데 있나 말이야?

세상이 이렇게 뒤집히다니… 이보게 성덕이, 말 좀 하라구. 우리야 무슨 죄가 있다구. 죽은 정승 산 개만도 못하다는데 우선 살구봐야 그렇다는것두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할것 아닌가.》

《쓸개빠진 넉두리는 그만하게!》

두눈을 감고 입에 빗장을 지른듯 앉아있던 성덕이 몸을 벌떡하며 소리질렀다. 품에 안겼던 어린 형욱이도 놀라고 달근이도 입을 다물었다.

불이 펄펄 이는 눈으로 달근이를 쏘아보던 성덕이 기상과는 달리 퍽 조용한 목소리로 일렀다.

《달근이, 해방전 버러지처럼 산 목숨이 그렇게도 아깝나? 자네 아버지가 지금의 자네 꼴을 보면 뭐라 하겠나?

난 자네 아버지를 잘 알아. 대바르고 의협심이 많고 마음무던하면서도 자네처럼 비굴하지는 않았어. 그래서 지금껏 마음속에 은인으로 여기고있고 자네하고도 처마를 나란히 하고 친지처럼 살아왔어.

그런데 어려운 때를 당하고보니 자넨 아버지같지 않구 우리 둘사이도 멀어진것 같애.》

《성덕이, 내 자기 아버지를 모르고 자네를 모르겠나? 그렇지만 강약이 부동이라고 지금 별수 있나? 미군이 압록강가까이까지 쫙 덮였다 하구 우린 이렇게 잡힌 몸이 아닌가.》

《아니야!》

성덕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떤 놈이 자네 귀에다 그런 나발을 불어대? 우리에겐 김일성장군님이 계신단 말이야. 그런데 감히 그따위 수작질에 귀를 기울인단 말인가. 자네나 나나 해방후에야 사람값에 들고 행복하게 살지 않았나. 그런데 공화국을 그렇게 쉽게 버리자고 해? 말같잖은 소리…》

성덕은 무섭게 격노해서 그렇게 말하고는 삑 돌아앉았다.

《성덕이, 내 자네 말이 그르다는게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어린 형욱이와 부호까지 다 죽이면 우린 어쩐다는건가?》

달근은 무릎걸음으로 성덕이에게 다시 매달렸다.

《물론 우리 목숨도 중하고 이 애들까지 잃는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네.

하지만 해방전처럼 버러지같이 짓밟혀 산다면 백년, 천년을 산들 무슨 참다운 인생이겠나.

그리구 누구든 세상에 한번 났다가 한번은 죽기마련인데 제 목숨이나 건져보겠다고 참된 인생을 준 공화국을 배반하고 미국놈들이나 황택구같은 놈에게 굽어든단 말인가? 그건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 얼굴에 침뱉는것보다 더 욕된짓일세.

그렇게 살아남아서는 뭘하고 자네 아들 부호의 얼굴은 어떻게 대하겠나!》

《어이구, 그러니 어쩜 좋단 말인가.》

달근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며 머리를 제 사타구니에 틀어박았다.

그랬는데 때식을 가지고 면회를 왔던 친척에게 무슨 련락을 했는지 하루는 함흥에서 산다는 그의 5촌조카가 나타났다. 그를 만나고 들어온 달근은 전보다 더 울상이 된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생기가 살아난것 같기도 해가지고 또 성덕이가까이에 다가앉았다. 그리고는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이보게 성덕이, 끝내 변이 터졌어. 미국놈들이 우리 조선땅에다 원자탄을 떨군대.》

달근은 오금을 세우고 앉은 한쪽다리와 성덕이의 귀에 오그려댄 손을 와들와들 떨며 방금전에 조카녀석을 만나서 들었다는 소리를 전했다.

달근의 5촌조카라는 녀석은 해방전에 일본에 가 공부하면서 영어깨나 배웠다고 미국놈들이 들어오자 통역이 되였다. 그는 달근이와 감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목숨을 건지겠으면 공화국이 나쁘다는 소리를 하고 놓여나오라고 감언리설했다. 그러면서 이제 미국사람들이 이 땅에다 인차 원자탄을 쓴다고 엄포를 놓았다.

《미국사람들이 조선땅을 다 먹었다면서 원자탄은 왜 떨군다는거냐?》

《챠, 이 삼촌이 머리가 이렇게 아둔하면서 남의 등은 어떻게 쳐잡쉈소?》

《에끼, 이 버르장머리없는 녀석, 아무리 일본놈들한테 붙어살다싶이 한 과부데기 자식이로서니 제 삼촌을 보고 한다는 수작질이 그게 다냐?

난 남의 등을 쳐먹은게 없다. 제 기술과 제 육신을 가지고 벌어먹었다. 그러면서두 해방전엔 천대와 멸시만 받았어.

해방후 우리 공화국이 날 사람답게 살게 해주구 먹여주구 재산까지 불구어주었단 말이다. 그런데 뭐 등을 쳐먹었다구? 괘씸한 녀석같으니…》

《그럼 공화국에서 산 덕을 보시구려. 이 감방안에 계시다가 저승에 가면 될것 아니겠소. 사람을 띄워 바쁜 사람을 찾긴 왜 찾았어요?》

《아이구, 나라가 곤욕을 당하니 집안도 망하는가부다. 조카라는 녀석이 제 삼촌머리에 올라앉아 똥을 싸니…》

《삼촌, 내 말을 똑똑히 들어요. 미국사람들이 원자탄을 쓴다고 할 때야 짐작해야지요?》

《뭘 짐작하라는거야?》

《아직은 절대로 누구에게든 발설하면 안돼요. 그땐 쥐도 새도 모르게…》

조카녀석은 손가락으로 달근의 가슴을 겨누었다가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하였다. 달근은 혼이 빠진것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그의 귀에 대고 조카녀석이 수군거렸다.

《압록강까지 올라갔다던 미군이 쫓기기 시작했어요.》

《쫓기다니?》

《인민군대가 파죽지세로 다시 진격해나온단 말이예요. 미국사람들이 제가 죽겠는데 가만있겠대요? 빨리 달아빼고 이 땅에다는 그것을 떨군단 말이예요.》

달근은 이런 사실을 알려주며 성덕을 잡아흔들었다.

그때까지 두눈을 감고 듣는척 않던 성덕이 갑자기 몸을 솟구며 달근의 손을 맞잡았다.

《달근이, 그게 정말이지? 미국놈들이 두들겨맞고 쫓겨간다는게. 그러면 그렇겠지.》

《큰소리를 치지 말게, 조카녀석이 한 소리라네.》

《그건 우리 인민군대가 이기고있다는거야. 우리 세상이 다시 왔다는 소리야!》

《우리 세상이 다시 오면 뭘해. 미국사람들이 원자탄을 쓴다는데. 그러면 자네나 나나 이 애들도 다 죽어.》

《그러니 그 잘난 목숨을 건져보겠다구 이번엔 어디로 달아나겠다는거냐?

아니야! 원자탄이 아니라 그 하내비를 쓴대도 우리 공화국은 없앨수 없어!

달근이, 명심해두라구. 자네가 우리 공화국을 버리고 이 지구상의 그 어디에 간들 마음편히 살것 같애?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살수 있을것 같은가 말이야.

너에게 우리 공화국이 준 인간다운 존엄과 행복 같은것은 꿈도 꾸지 말아!》

달근은 또 머리를 푹 숙이였다. 그곁에 아버지의 팔을 붙안고 앉은 어린 변부호가 두눈을 초롱초롱 빛내이며 성덕이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렇지만 달근은 끝내 미국놈들이 쫓겨가면서 퍼뜨린 원자탄위협설에 겁을 먹고 솔가도주했던것이다.

사향은 그런 할아버지가 보물처럼 건사하다가 림종때 아버지에게 넘겨준 고삭은 버들고리짝안에 있던 오래된 한장의 사진도 보았다. 성덕이네 집에 있는것과 꼭같은 사진이였다. 조선바지저고리에 조끼까지 덧입고 좀 거만스레 서있는이가 사향의 할아버지고 그옆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무릎까지 껑충 올라간 잠뱅이를 입은이가 처마를 나란히 맞대고 살던 이웃이라고 한다. 그때 아버지는 그 이웃할아버지의 아들과 송아지동무였는데 그날 따라가서 그와 어깨를 겯고 머리를 서로 안쪽으로 갸웃이한채 찍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얼마나 자주 보고 오래 간수했는지 누렇게 변색된것은 더말할것도 없고 가녁은 보풀이 일고 다스러졌다. 사진뒤에는 《송아지 친구 유형욱이네 벼낟가리앞에서. 1946. 11.》이라는 후날 글을 갓 깨치고 삐뚤삐뚤하게 쓴 아버지의 필적도 있었다.

그 사진이 오늘은 사향이에게 넘어와있다.

(아- 할아버지는 목숨이 그렇게 귀해서 정든 고향과 제 나라 땅을 훌쩍 떠났을가? 아니, 쉽게 마음먹고 내짚은 걸음이야 아니였겠지. 나라가 해방된 다음 난생처음으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행복을 누려 본것이 꿈같이 달아서, 그것을 잃고 죽는다는것이 너무도 아쉽고 애통하고 더럭 겁까지 나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목숨만 붙어있으면 어데 가서든 그걸 다시 누릴수 있으리라고 생각한것은 아닐가?

죽더라도 끝까지 믿고 지켜야 한다던 유성덕로인의 주장과는 달리 목숨을 우선 건지고 살고봐야 한다던 할아버지의 주장은 출발점에서 그 방향각이 다르다보니 오늘에 와서는 이런 엄청나게 다른 종착점에 와닿은것이 아닐가?

제딴에는 목숨도, 인간의 존엄도 지키려고 발버둥쳤건만 종당에는 뜻을 이루기는커녕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이슬처럼 사라져버린 선친들…)

택시좌석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꼭 감은 사향의 두눈이 촉촉히 젖어들었다.

《아가씨, 다 왔는데요.》

운전사가 기척없이 앉아있는 사향을 돌아보며 상념을 깨웠다.

그 녀자는 황황히 손수건으로 눈물흔적을 없애고 차에서 내렸다.

국무성에서는 사향의 북조선방문신청이 승인되였다는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있었다.

눈이 류달리 파란 금발머리녀인이 새 오바마행정부의 국무장관이 된 힐러리 클린톤까지 나서서 CNN텔레비죤방송의 녀기자인 변사향의 려권발급에 관심을 두었노라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사향은 워싱톤걸음을 때마침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은근히 안고있던 시름이 덜어지며 마음이 안정되였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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