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6. 꽃샘잎샘계절

 

(1)

 

윤재순이 열세살되던 해가 다 저물어가던 어느 겨울날이였다.

량기화는 이날 아침상을 물리자 량세봉에게 어랑산에 가자고 하였다.

어랑산은 마을에서 이십리되는 곳에 있었다.

량세봉은 군말없이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김씨가 전날에 남편에게서 말을 들었는지 강냉이가루에다 보드라운 쌀겨를 섞어서 꼬장떡을 빚었다. 꼬장떡에 절인 오이를 점심으로 싸주는것을 량세봉이 지게다리에 매달고 도끼와 낫을 얹어가지고 아침 일찌기 산으로 향하였다.

이해따라 눈이 많이 내렸다.

섣달눈이 쌓여있어 무릎까지 푹푹 빠져들었다.

어느 펑퍼짐한 등판에 이른 량기화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여기가 맞춤한 자리라고 하면서 아들에게 솔가지를 한짐 다듬어오라고 일렀다.

자신은 이미 마련해온 말총을 꺼내 옹노를 만들었다.

량세봉이 잔솔가지를 한짐 지고오자 널직하게 자리를 잡고 솔가지를 촘촘히 꽃으라고 하였다.

량기화는 솔가지에 말총오리 옹노를 단단히 비끄러매고 도간도간 나드는 문을 만들고 거기에 옹노를 드리워놓았다. 가운데에 콩알을 뿌려놓았다. 이러한 옹노터를 세개 더 만들고 아들에게 다른 골짜기에 가서 나무를 하자고 일렀다.

그들은 진대나무와 삭정이를 도끼로 찍고 다듬어 한짐씩 해가지고 읍거리로 나갔다.

한식경이 되여 돌아와보니 옹노에 걸린 놈은 한놈도 없는데 솔가지를 박아세운 울타리옆을 맴돈 꿩의 발자국이 간간이 나있었다.

그들은 떡심이 풀렸으나 다른 골짜기에 넘어가 부시로 불을 일구어 나무불을 피워놓고 꼬장떡을 구워먹었다.

눈 깔린 산판에서 불기운에 꼬들꼬들 구워진 꼬장떡을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들이 나무 한짐씩 또 해가지고 골짜기를 넘어 옹노터로 가보니 아직도 걸려든 놈은 한놈도 없었다.

《하, 우리 마음이 조급하니 일이 안되는가부다. 꿩이라는 놈도 미련한것 같아도 대가리가 있는 놈이니 다 제 생각이 있을게 아니냐. 눈에 익힌 등판에 난데없이 솔가지울타리가 생겨나고 그속에 먹음직한 콩알이 보이는게 이상스러웠을거야. 그러니 옹노를 쳐놓은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뱅뱅 돌며 낌새를 보았을거다. 오늘은 이렇게 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량기화는 이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아버지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런데 읍거리로 가는것이 어떻습니까. 이 나무도 팔아야 설차림을 마련할게 아닙니까.》

《오냐, 네 생각대로 하자꾸나.》

량기화는 읍거리로 가자면 집으로 가는 길이 좀 에도는데다가 이날은 두번째로 가는 길이여서 힘에 부칠것이였지만 량세봉의 말이라 흔연히 대꾸하였다.

그는 이제는 거밋거밋 수염발이 잡힌 아들앞에서 함부로 하대를 하지 못하고 그의 말이라면 대체로 그대로 따르군 하였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뼈대가 한창 자라고있는 윤재순을 생각하며 가늘게 한숨을 내쉬였다. 아직도 저애들이 성례를 치르게 하자면 작히 이태는 기다려야 할것같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늘 불시에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훈장님아씨 강연희의 모습이다. 또다시 한숨이 새여나온다.

돌이켜볼수록 자기가 불민했던탓으로 자식의 앞길에 재를 뿌려놓은것같기도 하였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훈장과 작별한지도 여러해가 되여온다.

(그 아씨가 참 고왔는데… 훈장님은 어데 가서 어떻게 지내는지.)

꾸역꾸역 밀려드는 애달픈 심회에 잠겨들자 또다시 량기화는 마음이 울적해져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지. 까치야 까치끼리 산다고 했지. 그게 남녀간의 화목과 우애를 도모하는 근본이라 하겠다. 우리 세봉에겐 재순이가 맞아.)

량기화는 이렇게 싱숭생숭해지는 생각을 지워버리느라고 마음을 쓰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읍거리에 가서 나무를 팔고 저녁늦게야 집에 들어섰다.

김씨가 그들을 기다리느라고 지쳐있다가 빈손으로 들어서는 남편과 아들을 보자 즐겁게 소리내여 웃었다.

《호호호… 아니, 밤새껏 자지 않고 말총을 꼬아 옹노를 만들고 이렇게 새까매지도록 들어서지 않아 우리 집에 오늘저녁에는 꿩사태가 날가부다 생각했더니 빈지게가 웬일이요? 호호…》

《허, 꿩비가 내려야 꿩사태가 생겨나지. 이제 두고보오. 오늘저녁 어랑산에 꿩비가 쏟아질거요.》

량기화가 안해의 롱담에 히죽이 웃으며 즐겁게 응수했다.

이튿날에는 량세봉이 혼자 떠나려고 하였다. 량기화가 따라서는것을 량세봉이 만류하였다.

《아버지는 계십시오. 어제 읍에 두행보해서 아버지가 퍽 고단하시겠는데 오늘은 제 혼자 갔다오겠습니다.》

《그럴가. 하기는 몸이 지긋지긋한게… 역시 나이는 속이지 못하겠구나. 그런데 너도 지게를 지고 가지 말고 빈몸으로 갔다가 오렴.》

량기화는 량세봉이 지게를 지고 가는것을 보자 손을 저었다.

《저는 일없습니다. 어랑산에 가는바에야 나무 한짐 지고와야지요. 오늘은 집에서 설맞이에 쓰도록 읍에 나가지 않고 곧바로 집에 메고 오겠습니다.》

량세봉은 넘쳐나는 기운을 쓸데가 없어 하는 시절이라 그냥 지게를 지고 헌걸차게 마당을 나섰다.

량세봉이 삽짝문을 열고 나서는데 《형, 나두 갈래.》하며 손아래 동생 원봉이가 지게를 걸메고 따라나섰다.

량시봉과 량봉녀 그리고 재순이와 막내동생 정봉이까지 옹노구경 가겠다고 줄레줄레 문을 열고 나왔다.

김씨가 《아서라.》하고 소리치며 그들을 막아나서는데 량기화가 껄껄 웃었다.

《놔두오. 설날이 래일모레인데 애들이 그동안 집안에서만 맴돌면서 얼마나 답답하겠소. 산바람을 쏘일겸 맏이의 동무도 할겸 따라가게 하구려.》

김씨가 윤재순과 량봉녀더러는 가지 말라고, 산눈길 헤치는게 쉽지 않다고 타일렀으나 그애들도 기어이 가겠다고 부등부등 량세봉을 따라나섰다.

《에그, 너들 좋을대로 하려무나.》

김씨가 손을 내들며 물러서는 바람에 아이들이 왁자그르 웃고 떠들며 길에 나섰다.

옹노를 놓은 곳에 이르니 꿩 한마리가 옹노를 뒤집어쓰고 퍼득거리고 있었다.

량세봉과 아이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아마 이날 새벽에 걸려든 모양이다. 몸집이 크고 잘 생겨먹은 아롱다롱 고운 장꿩이였다.

막내 정봉이가 자기한테 달라고 징징거려서 량세봉이 다리를 꽁꽁 묶어서 안겨주었다.

장꿩이 야단스럽게 홰를 치며 푸들쩍거렸다. 정봉이가 기겁을 하면서 물러서자 윤재순이 받아들고 품에 안아 대가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꿩은 곧 얌전해졌다. 다른 세개의 옹노터에도 각각 한마리의 꿩들이 옹노에 걸려있었다. 신통히도 몸통이 크고 털빛갈이 눈부신 장꿩들이였다. 그것들은 어제밤에 걸려들었는지 다 꽁꽁 얼어있었다. 아이들이 저마끔 한마리씩 안아보겠다고 덤벼들었다.

량세봉은 꿩들에게서 옹노를 벗겨주며 동생들에게 설명하였다.

《이렇게 몸이 크고 털이 고운 꿩을 보고 장꿩이라고 한다. 이런건 다 수놈들이야. 이렇게 장꿩들이 걸려든것은 대체로 수놈들이 성미가 급하기때문이다.

암놈들은 까투리라고 하는데 이 장꿩보다 몸통이 작고 겁이 많다. 그 덕에 여기서 빙빙 돌아가다가 분명 수놈들이 걸려들자 날 살려라 하고 저들만 도망쳤을거다. 너희들도 매사에 덤비지 말아야 한다.》

동생들이 형의 사리분명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들은 모여들어 재빨리 나무 두짐을 해가지고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은 걸음에 날개가 돋쳤다. 량세봉형제들은 떠들썩거리며 점심전에 집에 들어섰다.

애들이 꽤 묵직한 꿩을 한마리씩 안고 들어서니 량기화도 김씨도 입이 크게 벌어졌다.

꿩 네마리를 잡아왔으니 이해 설은 섭섭치 않게 쉴수 있게 되였다.

원래 김씨는 여느때는 겨떡과 풀죽으로 근근히 연명하면서도 명절날만은 가난한 살림살이를 짜내여 여느 집 짝지지 않게 차리군 하였다.

설날이 눈앞에 다가오자 김씨는 윤재순과 봉녀를 데리고 물망질로 밀가루를 내고 밀가루반죽에 꿩고기를 다져넣고 만두를 만들어 얼구어놓았다.

흰쌀송편도 빚었다. 그리고 식구들에게 새옷은 못해줘도 깨끗이 빨아서 터진 곳은 깁고 정성들여 다림질도 해서 정갈한 차림으로 새해를 맞도록 마음을 썼다.

량세봉은 량세봉이대로 설준비를 했다.

나무짐을 지고 여러번 읍거리를 왕래하면서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봉녀와 윤재순에게 까만 치마를 만들어줄 천을 사오고 고무신도 두컬레 사왔다. 그다음에는 물감을 구해다가 십장생을 그려 벽에 붙이였다.

십장생이라면 산과 물, 돌, 구름, 해, 소나무, 불로초, 거부기, 학, 사슴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법 그럴듯하게 그렸다.

민족의 시조 단군의 신봉자인 아버지의 취향을 존중해서 대를 이어 물려오는 단군의 초상을 꺼내 종이에 크게 그려 벽에 붙였다.

조상들이 물려준 단군초상은 이제는 색조가 바래서 미감상 좋지 않았다.

량기화가 단군초상을 보고 몽당수염을 내리쓸며 여간 흡족해하지 않았다.

량세봉은 동생을 시켜 국수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대접할 술 한병을 사오게 하였다.

설아침이 되자 량세봉은 동생들을 일찌기 깨워 밤새껏 어머니가 다듬어놓은 깨끗한 옷을 갈아입히였다.

윤재순이와 봉녀에게도 특별히 마련한 설선물을 안겨주었다. 웃방에 올라가 깜장치마를 입고 고무신을 신고 내려온 소녀들이 너무 좋아 갈노전우에서 깡충깡충 뛰였다.

둘째인 원봉이는 설날 집안을 덥히는 일을 맡아가지고 소나무 숯을 만들어 화로에 피워 집안을 덥게 하였다.

옷들을 정히 입자 식전에 온 식솔이 아버지를 가운데 모시고 단군초상앞에 서서 절을 하였다.

설날의 가정의식이 시작된것이다.

아들딸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세배를 하고 저마다 술 한잔씩 올리면서 올해에도 귀체만강하시라고 설인사를 드리였다.

이것으로 설아침 식전가정의식이 끝났다.

그다음에는 온 집안이 화락한 분위기에 휩싸여 어머니가 며칠전부터 준비하여온 설음식상에 모여앉았다.

부자집 진수성찬에 대비할바가 못되여도 너나없이 온 식솔의 노력과 지성이 깃들어있는 음식상이라 더없이 흡족하고 풍요한 마음이 앞섰다.

김씨는 꿩고기도 한가마 끓이고 만두도 한버치 삶아내서 이날아침은 누구라없이 실컷 먹도록 하였다.

쫄깃쫄깃 쪄낸 송편도 있고 고사리와 도라지, 밝은쟁이, 더덕 등 이 아근의 산나물들도 다 상에 올랐다.

가을철에 량세봉이 동생들을 데리고 간석지벌에 나가 웅뎅이의 물을 퍼내여 건져온 가물치며 붕어, 잉어 등 민물고기를 말리운것도 구워놓았다. 그 냄새가 구수하기 이를데없었다.

《자, 들자. 꿩고기속으로 빚은 만두는 부자집에서도 맛을 보지 못하는 귀물이다. 달게 먹고 새해에도 앓지 말고 무럭무럭 커라. 자, 상에 바투 나와앉아라.》

량기화가 나무저가락에 만두 한개를 꽂아 막내인 량정봉에게 주며 모두에게 어서 숟가락을 잡으라고 거듭 말하였다.

그리고는 제 먼저 만두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그제야 구수한 음식내에 취해 울대를 움씰거리던 아이들이 숟가락과 저가락에 만두 하나씩 꿰들었다. 우선 한입씩 큼직하게 떼물고 맛있다고 떠들었다.

서로 권하며 받으며 설음식을 배불리 먹고난 뒤에 기분이 뜬 량기화가 《얘 봉녀야, 거문고를 가져오너라.》하고 시키였다.

봉녀가 웃방에 가서 벽 한쪽에 뽀얀 먼지를 들쓰고 걸려있던 거문고를 가지고왔다.

윤재순이 눈치빠르게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는 걸레를 물에 헹구어 꽉 짜가지고와서 거문고의 먼지를 깨끗이 닦아낸 다음 량기화에게 드리였다.

《음, 좋구나. 한가락 튕겨볼가?》

이어 방안에는 음정이 깨끗하고 특색있는 거문고가락이 둥기당당 울리기 시작하였다.

량기화의 손끝에서 이 시기 대중가요로 널리 전파되여있었던 《선죽교》의 비장한 선률이 흘러나오고 이어 그에 대조되는 《양산도》의 흥겨운 노래가락이 울려나왔다.

거문고는 량씨가문의 선친들이 소중히 물려오는 가보였다.

어느 대에 만들어졌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여러대를 이어온것만은 틀림없는 악기였다.

그래서 이 집의 식솔들은 량기화와 량세봉으로부터 봉녀에 이르기까지 거문고를 흥취나게 튕길줄 알았으며 그 가락에 끌려 흥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분위기가 고조되여 량세봉이 양푼을 들고 장단을 맞추어 방안을 덩실덩실 돌아가면 김씨도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놓고 정주간과 웃방을 꿰질러 원을 짓고 팔다리를 흔들며 돌아갔다. 봉녀까지 일어나 달싹달싹 곱게 춤을 추었다.

《재순아, 너도 춤을 추어라. 춤은 꼭 배워야 추는것이 아니다. 나처럼 이렇게 제멋대로 팔다리를 흔들흔들하며 돌아가면 그게 춤이 되는거다.》

김씨가 재순이 손목을 잡아 일궈세웠다.

그러자 재순이가 김씨와 봉녀가 하는대로 팔을 쭉쭉 펴고 선을 크게 그으며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오히려 김씨나 봉녀의 춤보다 훨씬 시원스럽고 멋들어져 모두가 눈들이 둥그래졌다.

한창 흥이 오르자 량세봉이 목청을 돋구어 강서명에게서 배운 독립군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원체 량세봉은 목청이 좋아 노래도 흥취나게 부르고 춤도 건들건들 잘췄다.

동생들이 량세봉의 뒤에 쭉 서서 함께 부르기 시작하였다.

량기화와 김씨도 신명이 나서 손벽을 치며 흥을 돋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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