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6. 꽃샘잎샘계절

 

(3)

 

량세봉은 철산군경찰서에서 아버지를 업어내왔다.

그렇게 건장하던 아버지가 열흘만에 운신할수 없는 페인이 되여버렸다. 박지주놈과 박창해가 얼마나 앙심을 먹고 왜놈경찰서장 고무라놈의 귀에 못을 박아넣었는지 그놈은 량기화를 붙잡아온 첫날부터 제놈 부하들에게 《푼수도 모르는 이 쌍놈의 얼을 쭉 뽑아놓으라.》고 명령하였다.

박지주와 박창해가 경찰서장에게 뢰물까지 먹이면서 량씨집안이 설날부터 단군초상을 벽에 걸어놓고 독립군가까지 불러대는 반일기운이 높은 집안이니 아예 량기화도 가족들도 몰살해버려야 한다고 악을 썼다.

《이놈아, 아직도 단군이야? 일본과 조선이 합병한지도 여러해 지났는데 뭐 아직도 독립군가야?》

량기화는 이렇게 뇌까리는 고무라서장놈과 왜놈경찰놈들에게 둘러싸여 지난 열흘동안 내처 중죄인취급을 당하면서 뭇매를 맞았다.

량기화는 자기 《죄》란 어랑산이 《국유림》인줄 알고 꿩 4마리를 잡아오고 말라버린 나무 둬대 꺾어온것밖에 없다고 대들었으나 왜놈들은 아직도 기가 살아있다며 그냥 가죽채찍으로 벌거벗긴 량기화를 후려쳤다.

왜놈들이 류치장앞에 내동댕이친 아버지를 끌어안은 량세봉은 너무도 끔찍하게 변한 아버지를 보며 울부짖었다.

《아버지, 정신차리세요! 어느놈이예요?! 어느놈이 아버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까!》

량세봉이 당장 경찰서에 짓쳐들어가서 결판을 치르려고 분노로 몸을 떨었다. 간신히 눈을 뜬 량기화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렸다.

《세봉아, 참아라. 함부로 덤비지 말아. 강약부동이라지 않느냐. 저놈들은 총과 칼을 든 강도들이다. 맨주먹으로 그것도 너 홀로 어떻게 당한단 말이냐. 여기서 몸을 상해서는 안된다. 어서 집으로 가자.》

량기화는 부들부들 떨고있는 아들의 손목을 더듬어잡으며 꺼져드는 소리로 곡진하게 타일렀다.

《쪽발이놈들! 어디 두고보자. 네놈들과 칼쌈을 벌릴 때가 올게다!》

량세봉은 아버지손에 잡힌채 절통하게 부르짖었다.

량세봉은 아버지를 업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이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석태무와 최현수가 말발구를 가지고 마중을 왔다. 그들도 량기화의 처참한 몸을 보고서는 치를 떨었다.

량기화가 경찰서에서 페인이 되여왔다는 소리를 듣고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불행에는 함께 울며 살아오는 이웃들이였다.

닭알 서너개 들고오는 사람도 있고 찹쌀 한보시기 들고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웃방에 누워 숨을 헐떡거리는 량기화를 보자 왜놈쪽발이들과 박치서놈의 야수적인 만행을 저주하며 망국의 한을 통탄하였다.

량기화의 병구완에 온 집안이 떨쳐나섰다.

김씨는 밑빠지게 가난한 살림에도 식솔들 몰래 량세봉의 잔치준비로 푼푼이 모아오던 돈을 다 털어내여 어혈을 뽑고 병을 호전시킨다는 약들을 구해왔다.

량세봉도 아버지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있는 정성을 다하였다.

그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이해의 농사일을 맡아야 하는 몸으로도 짬을 내여 민물고기도 잡아오고 품팔이도 억척같이 하여 아버지의 병구완에 좋다는 약이라면 100리길도 단숨에 달려가 사가지고왔다.

윤재순과 봉녀도 익모초며 쑥잎, 솔잎을 뜯어다 아버지에게 찜질을 해드리고 달여서 마시도록 했다.

그러나 일생토록 큰탈이 없이 농사일에 뼈를 굳혀온 량기화의 한번 모질게 부러진 죽지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 봄날이였다.

농사일을 도맡아안은 량세봉을 비롯한 자식들이 다 밭으로 나가자 량기화가 김씨를 가까이 불러들였다.

량기화는 안해의 손을 잡고 가르릉거리는 숨소리를 힘겹게 내며 한동안 천정을 초점없는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잠시후에야 기운을 모두어가지고 이렇게 띄염띄염 말하였다.

《여보, 내가 아마도 이젠 명이 다 진한것 같소. 난 일생 당신에게 고생만 시키다가 번한 날을 끝내 보지 못하게 하고 먼저 가는구려. 나를 용서하오.》

그 소리에 김씨는 속이 덜컥 내려앉아 비명지르듯 부르짖었다.

《여보, 어찌 그런 말씀하시오. 내가 아직도 정성이 부족하나 봐요. 그렇지만 이제 멀지 않아 다시 당신도 농사를 짓게 돼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 두고봐요. 우리는 오래오래 살거예요. 세봉이 아이까지 받아가지고 할아버지, 할머니소릴 들으면서 오래오래 살자요.》

물기에 젖은 안해의 이야기에 량기화는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여보, 당신말대로 오래오래 살아야지. 근데 눈을 감자니 저 세봉이가 걱정이요. 이제는 나이찬 총각인데…》

《나도 노상 그 생각이우다. 이제 한두해만 더 기다려보자요. 우리 재순이가 몸이 활짝 피는걸 봐요. 속도 여물어가고. 그래 난 우리 세봉이에게 재순이가 복덩이가 될것 같애서 기다리는게 싫지 않수다. 더두 말고 이태만 기다리자요.》

《여보…》

김씨는 지금 남편이 마지막말을 남기는것 같아서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아주었다.

《더 기운을 뽑지 마세요. 눈을 감고 잠을 청하세요.》

그러자 량기화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숨이 차서 갑자기 쌕쌕 소리를 냈다.

량기화는 눈을 다시 뜨려고 모지름을 쓰는것만 같았다.

《아, 아!…》

량기화는 이렇게 소리를 내다가 힘을 가다듬는듯 입을 다물었다.

《여보, 가만히 계셔요. 한잠 푹 자고나면 기운이 돌아설거예요.》

잠시후 량기화는 마지막기력을 다 모아 입을 열었다.

《여보, 난 어제밤에… 꿈에서 우리 세봉이 큰칼을 차고… 백마에 오르는것을 봤소. 세봉이앞에서… 박지주와 고무라서장놈이무릎을 꿇고있더구만. 나는 믿소. 그럴… 때가 올거요.…》

량기화는 잠시 말을 끊고 힘을 가다듬어 다시 힘겹게 말을 이었다.

《여보, 애들 혼례때에는… 꼭 재순이 상을 잘 차려주오. 그리고 재순의 아버지도 꼭… 찾아오구. 미안해당신께 애들을 다 맡겨놓고 가자니… 음…》

량기화는 입을 닫지 못한채 말을 끝내지 못하였다.

다시 눈도 뜨지 못하였다.

이날 저녁에 량기화는 끝내 저주로운 세상을 하직하였다.

량기화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받은 삼촌이 의주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가 상가일을 주관하였다.

량세봉과 동생들은 하얀 상복과 베감투를 빌려다가 입고 쓰고 아버지의 시신을 지켜드리였다.

량세봉은 풍속에 따라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였다.

장례식이 끝나자 삼촌이 김씨와 함께 량세봉을 불러앉혀놓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너의 아버지는 평생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시였다. 그러니 너도 어머니께 효성을 다하고 여러 동생들이 다 자랄 때까지 아버지를 대신해서 잘 돌봐주어야 한다.》

《예. 삼촌님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삼촌의 절절한 당부에 량세봉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너한테 또 한마디 너의 아버지를 대신해서 할 말이 있다.

네가 아버지 한을 묻어둘수 없어 장수같은 네 힘꼴과 젊은 객기를 이기지 못해 우뚤거릴수 있는데 그러다간 패가망신한다는걸 명심해라. 알아듣겠느냐?!》

자기보다 열살이 우인 삼촌의 준절한 소리에 량세봉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는 말없이 그러나 황황 타오르는 눈으로 삼촌을 마주보았다. 그러다 두툼한 아래입술을 꽉 악물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자기를 이겨내기 위하여 안깐힘을 다 쓰고있는 조카의 심정을 알아차린 삼촌이 이내 주를 달았다.

《세봉아, 너는 우리 량씨가문 종가 장손이다. 그리고 너의 어깨에는 어머니와 너의 동생 넷이 달려있다.》

삼촌의 말은 더없이 엄엄하고 간곡하였다.

《삼촌!》

량세봉은 고개를 다시 들고 간절한 빛이 어린 눈으로 삼촌을 쳐다보았다.

가슴속에서는 쌍방망이질이 시작되였다.

사실 아버지를 경찰서에서 업어내온 그날부터 량세봉의 가슴에서는 왜놈 경찰서장 고무라놈과 박지주놈에 대한 증오의 불길이 그냥 일어번지고있었다.

끝내 아버지를 산에 묻고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 들어서니 사무쳐오르던 그 불길이 마침내 하나의 현실적인 계획으로 굳어졌다.

(복수를 할테다! 검을 쓰자. 이런 때 쓰라는게 검이 아닌가. 내 이 원한을 씻지 못한다면 어찌 량세봉이라는 성과 이름을 가지고 이 하늘아래 머리들고 살수 있다더냐!)

그는 어제저녁에 조객들을 받아들이는 번거로운 속에서도 홀로 뒤산기슭으로 갔다.

거기 아름되는 백양나무밑에는 검술을 도간도간 익히다가는 유지로 정하게 싸고 무명천으로 돌려감은 룡천검이 묻혀있었다.

룡천검을 뽑아 번쩍 머리우로 들었을 때 그의 온몸은 천백배의 담력과 용기로 끓어올랐으며 복수의 갈망은 더는 드틸수 없는 결심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바로 삼촌이 자기속을 꿰뚫어보기라도 한듯 앞질러 엄하게 경종을 울려놓는것이 아닌가. 삼촌은 량세봉이 시원스럽게 대답하지 않자 다시 엄하게 오금을 박았다.

《이 사람 조카, 내 말 명심하게. 한두놈 제끼는게 화풀이가 아닐세. 조카는 이다음에 큰일을 치러야 할 사람일세. 한은 속에 깊이 묻어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일세. 지금은 주먹을 아껴야 할 때이네. 눈앞의 작은 일에 혼맹이를 던지지 말고 참고참고 또 참으며 힘을 키우다가 장차 나라찾는 큰일을 이루어나가야 하네.》

량세봉의 삼촌은 오래전부터 독립운동에 나섰던 시대의 선각자였다.

그는 지금 의주에서 천마산무장대 의연금 모집원으로 활약하고있었다.

점점 모를 세워 꾸짖음 절반담아 준절하게 타이르는 삼촌의 훈계에 량세봉도 리성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그의 눈앞으로 문득 강서명이 여러해전에 이곳을 떠나면서 룡천검을 넘겨주고는 자기 손목을 꼭 잡고 타이르던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검이란 밸뚝시대로 아무때 아무나 상대해서 뽑아드는게 아니라는걸 명심하게. 이건 뒤날 섬오랑캐들과 정식으로 맞서게 될 때에만 휘둘러야 하네.》

드디여 량세봉은 철장같이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삼촌님의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삼촌말씀대로 지금은 이 주먹을 아끼겠습니다.》

《그래, 약속하세.》

삼촌은 량세봉의 투실투실 다져진 잔등을 미덥게 두드려주고 떠나갔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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