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7. 방황하는 넋

 

(1)

 

일제의 야수적인 탄압과 착취에 살길이 막힌 농민들이 남부녀대하고 조상의 땅과 피눈물로 리별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갔다.

특히 《한일합병조약》이 날조된 후에는 망국노가 되기를 원치 않으며 조선독립을 모색하여 간도에 독립진지를 꾸릴 애국의 열망을 안은 수많은 지사들이 독립의 꿈을 안고 강을 건넜다.

20세기초부터 이주민수는 해마다 급속히 늘어나 이 시기에는 수십만명에 이르렀다.

이 시기 민간에서는 《정감설》까지 나돌았다. 스님이였던 정감의 예언에는 낟알을 먹으려면 삼풍으로 가며 사람을 얻으려면 이백으로 가라는 말이 있었다.

삼풍이란 압록강이북의 상풍, 중풍, 하풍을 가리키는 말이고 이백이란 백두산과 장백산을 가리키는 말이였다. 가난한 백성들은 이 삼풍과 이백을 찾아 인간락원에 대한 꿈을 안고 정든 고향을 떠나갔다.

《송풍락원설》도 돌아갔다. 압록강과 두만강류역의 넓고 평평하고 기름진 땅은 송백이 바다처럼 설레이며 풍경이 수려하고 기후도 농사에 알맞춤한 무릉도원이라는것이였다.

그러나 결코 간도는 무릉도원이 아니였다.

압록강을 넘은 량세봉의 일가는 눅거리주막집을 옮겨가다가 고향을 떠난지 달포가 지난 어느날 한 중국농가의 뜰안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떨면서 새우잠을 잤다.

날이 밝아 길을 떠나자고 하니 모두가 기진맥진해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량세봉은 될수록 압록강에서 심산오지로 한발자국이라도 더 깊이 들어가려고 했으나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고 어머니와 동생들이 발이 부르터 더 걸을수 없게 되여 이곳의 중국인농가에 보따리를 내려놓는수밖에 없었다. 마침 맞다든 집주인은 마음씨가 무던한 농사군이였다.

주인은 중국말을 번질줄 아는 량세봉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정심이 부쩍 동한듯 이 근방에도 조선이주민들이 살고있으니 여기서 함께 살아보자고 권하였다.

그는 이날 세끼를 먹여주면서 그들이 근방에서 초가집 한채를 얻어 살림을 펴도록 도와주었다.

집주인은 겨울에는 이 고장에 흔한 땔나무를 하여 장마당에 나가 팔면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나갈수 있다고 하면서 봄철에 나가서는 자기 집 땅 얼마를 빌려주겠다는 약속까지 하였다.

며칠후에 량씨성을 가진 조선이주민이 좁쌀 한말을 지고 찾아왔다. 그 사람에게서 조선에서 이주민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동네의 조선이주민들도 밀려들었다.

그들은 누구나 좁쌀 한두말과 조선김치를 퍼가지고 와서 낯을 익히고 량세봉에게서 고국땅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러저러한 조언도 주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위로하고 성의껏 부조하는 조상전래의 미풍량속이 이역의 하늘밑에서는 더욱 눈물겹게 이어져 이주민들을 단합시키고 그들의 삶을 개척하는 힘이 되고 기상으로 된다.

량세봉은 그들의 인정이 참으로 고마왔다.

생소한 고장에서 삶을 개척하기 위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였다.

량세봉일가는 부지런히 일하였다.

겨울에는 산에 올라가 땔나무를 해가지고 장마당에 나가 팔았는데 그것으로 생계는 이을수 있었다.

봄철이 되자 주인은 약속대로 밭을 떼주었다.

량세봉이 자기가 넘겨받은 밭주변을 살펴보니 옆으로는 시내물이 흘러가는데 퍼올리면 얼마든지 논으로 풀것 같았다.

주인에게 그 말을 했더니 손을 내두르며 만류하였다. 조선사람들이 강을 넘어와 벼를 심어 부자가 됐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아직 이 영릉일대에서는 벼농사에 성공했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는것이였다.

량세봉이 한번 해보자고 하니 주인은 그러다가 첫해농사부터 페농이 되면 어쩌겠는가고 한길되게 뛰였다.

그러나 량세봉은 슬근슬근 물방아를 만들고 밭을 논으로 풀수 있도록 물길을 탄탄하게 내고 뚝도 만들었다.

김씨도 한사코 주인이 반대하자 아들의 일을 달가와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반대는 하지 않고 제 할 일을 찾아 부지런히 논을 풀었다.

온 가족이 생사를 걸고 그냥 장작짐을 져서 돈을 벌고 논농사에 달라붙었다.

량세봉은 봄철부터 내내 논판에 나가 살면서 한편으로는 황무지를 일구어 논을 곱으로 늘구고 논을 풀수 없는 밭에는 수수와 콩을 심었다.

동생들은 물론 김씨와 윤재순이까지 노상 논밭에 나가 살았다.

모든 식솔이 손이 항상 부르터있고 얼굴이 새까매서 돌아갔다.

주인집과 린근의 중국사람들은 량세봉일가가 억척같이 일하는것을 보고 모두 감탄해마지않았다. 특히 녀인들까지 논밭에 나가 남정네들과 함께 논밭을 뚜지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는것을 보자 조선녀자들이 정말 일을 잘한다고 칭찬하고 부러워하였다.

중국녀자들은 전족을 한탓으로 밭일을 하지 못하고 집안일만 맡아하는것이 고작이였다.

이역땅에서의 첫해농사가 풍성하였다. 벼는 땅이 꺼질듯 잘되고 황무지를 일구어 씨앗을 박았던 수수, 콩도 풍작이였다.

주인집은 조와 수수가 엉성하게 나던 밭에서 벼가 우거져 설레이고 잡관목이 들어찼던 황무지에 수수와 콩알이 알차게 여문것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내흔들며 조선농사군이 으뜸이라고 좋아하였다.

주변동네의 조선사람들과 중국사람들이 매일처럼 몰려들어 논벼풍작을 이룬 경험을 듣고 영릉에서도 얼마든지 벼를 심어 높은 소출을 낼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갔다.

그런데 추석이 지나 논밭에 낫을 대려고 나서는데 말을 탄 중국사람 두명이 불시에 나타났다. 주인이 귀띔하기를 《점산호》라고 하였다.

《점산호》란 일본인들의 수탈과 식민지화정책으로 조선이주민들이 갑자기 늘어나 압록강이북지역이 대대적으로 개척되자 중국조정에서 이를 통제하기 위하여 증명서를 한장씩 주어 부랴부랴 파견한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황무지주변에다가 말뚝을 박아 제땅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다음부터는 땅임자가 되여 그 황무지를 개간하는 조선이주민들에게서 토지사용료를 받아가고 나중에는 지주로 둔갑하는 건달망나니들이였다.

《점산호》들은 누런나락이 넘실거리는 논과 수수, 조 할것없이 알알이 알차게 영근 밭을 보자 입이 헹하게 벌어져가지고 땅세를 내야 한다고 을러메기 시작하였다.

그놈들은 논 다섯마지기와 밭곡식전부에 한해서 3 대 7이라는 엄청난 비률로 땅세를 정하였다.

주인이 나서서 황무지는 올해에 개간했는데 이태는 원래 봐주게 되지 않았느냐고 따지고들었다.

첫해에 그것도 높은 세률로 땅세를 받아내는 까닭이 뭐냐?!

그러자 《점산호》들은 어깨에 메고 거들거리던 렵총을 흔들면서 그것은 자기들과 계약하기탓이라고 하였다.

자기들과는 아무런 협의도 없이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었으니 저들이 부르는대로 땅세를 내야 한다고, 그게 까닭이라고 그냥 으름장을 놓았다.

그자들은 막무가내였다.

정 땅세를 물기 싫으면 관가에 일러 중국법에 도전하는 《죄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조선으로 쫓아보내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중국조정과 조선정부가 합의한 사항이라고 협박하였다.

그런 실례가 종종 있었다. 무심히 넘길수 없는 일이였다.

하는수없이 량세봉은 그해 농사의 일곱몫을 돈으로 전환시켜 그자들에게 바쳐야 하였다.

량세봉은 이 일을 당하자 논풀이와 황무지개간에 들인 공력은 아까왔으나 이곳에서 더이상 살고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이 동네에는 조선사람이라고는 자기들뿐이여서 업수임을 당하여도 하소할 곳이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장은 중국말을 모르니 불편한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한해동안 그들을 살펴주던 주인이 몹시 섭섭해하였다.

량세봉은 식솔들을 데리고 흥경현에 있는 조선인집단거주지역인 흥묘자로 이사하였다.

흥경현성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조선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그들은 대체로 지난 세기 중엽부터 이곳에 발을 붙이고 정착한 이주민들이였다.

청나라시기부터 흥경과 그 부근의 통화, 환인, 관전 등 20개 현을 동변도라고 불렀다. 이곳은 청나라정부가 이른바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운 왕의 조상들이 살아온 땅이라고 하여 이 고장을 《천군흥경》(하늘이 흥경을 돌보아준다는 뜻.)이라고 떠들면서 성을 지키는 관리들만 살게 하고 일체 외부인원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봉금》구역으로 선포한 곳이였다.

이 고장이 조선국경과 가깝고 땅이 기름져서 조선이주민들은 이곳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싶어 하였다.

량세봉이 흥묘자로 이주한 당시에는 중국조정에서 청조시기 실시된 《봉금》제한을 완화시켰으므로 이곳에 이미 몇십호의 조선이주민들이 살고있었다.

조국을 떠나온지 반세기가 넘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이미 중국국적을 가지고 부농의 수준으로 살고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합방》후에 넘어온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아직 잘살지는 못해도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있었다.

출신도들은 황해도,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등 각이하였으나 타향에서 서로 의지하며 사이좋게 지내고있었다.

량세봉은 조선이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우선 몸을 펼수 있는 자그마한 집부터 지었다.

집이 다 되여 깃을 펼 보금자리가 생기자 량세봉은 이 고장의 《점산호》를 찾아갔다. 몇해사이에 관청을 끼고 8칸기와집을 쓰고 지주로 둔갑한자였다.

량세봉은 그자에게서 황무지를 받았다. 이태후부터 땅세를 낸다는 계약을 가까스로 하였다. 가을에 가서 갚는다는 조건으로 종자와 농기구를 살 돈을 꾸고 소 한마리까지 빌려왔다. 소까지 생기자 량세봉은 일자리를 푹푹 냈다.

세세년년 묵여온 땅이라 비옥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나무뿌리와 잡초들이 뒤엉켜 황무지를 경작지로 만드는것이 쉽지는 않았다. 량세봉과 식솔모두가 괭이와 낫을 들고 이를 악물고 나무뿌리를 캐내고 황무지땅을 갈아엎었다.

찍어낸 나무와 땅에서 뽑아낸 나무뿌리를 태워서는 다시 땅에 뿌려 옥토로 만들었다.

끝내 그들은 피타는 노력끝에 나무와 잡초가 무성하던 황무지에 씨앗을 뿌리고야말았다.

이곳에서도 량세봉은 풍작을 거두었다.

이해 농사를 끝낸 량세봉은 아래마을에서 열리는 조선이주민들의 서당에 시봉이와 정봉이를 보내 글을 배우게 하였다.

원봉이는 그런대로 글을 깨쳤으므로 그아래 두 동생을 보냈는데 학비는 현금으로 바쳐야 하였다.

그 돈을 벌기 위하여 김씨는 또다시 길쌈을 시작하고 량세봉과 량원봉은 겨우내 나무짐을 해서 장마당으로 나가군 하였다.

한편 량세봉은 재순이와 친해진 이주민의 딸을 맞아들여 원봉이와 결혼하게 하였다.

이해의 가을걷이가 끝나자 그 아래동생 시봉이도 장가를 들여 처가살이로 내보냈다.

농사에 묻혀 여러해가 흘러갔다. 삼천리를 진감했던 3. 1인민봉기의 함성이 잦아든 어느해 지주집에서 빌려온 소 한마리가 연줄이 되여 량세봉은 처음으로 독립운동단체와 마주치게 되였다.

하루는 식솔이 다 밭에 나갔다 돌아오니 난데없이 마당에 편지 한통이 떨어져있었다.

편지의 봉투에는 《독립단》이라는 커다란 인장까지 박혀져있었다. 생전에 처음 받아보는 편지가 돼서 김씨와 온 가족이 호기심을 가지고 봉투를 뜯었다. 편지에는 그 무슨 설명이나 문안구절도 없이 이렇게 협박조로 써있었다.

《량씨집주인, 삼일안에 삼십원을 기부하시오. 이를 어긴다면 당신네 소를 죽이겠소.》

량세봉이 다 읽고나서 허구프게 웃으며 옆에 서있는 동생에게 편지를 넘겨주었다.

량원봉이 편지를 눈으로 훑고나서 결이 나서 다시 큰소리로 식솔들이 다 듣게 읽었다.

《무엇이라구? 삼십원을 기부하라구? 어긴다면 소를 죽이겠다구? 아유, 이 일을 어쩐담!》

김씨가 화들짝 놀라 단박에 얼굴이 해쓱해져서 부르짖었다.

모두가 울상이 되여 한마디씩 비명을 내질렀다.

재앙거리치고는 큰 재앙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좁쌀 한말 오십전 할 때에 삼십원을 내라니 이게 될 말인가?

안내면 소까지 죽이겠다니 지주의 소를 잡아버리면 집안재산이 거덜이 날판이다. 량세봉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식구들을 진정시켰다.

《어머니, 겁을 먹지 마세요. 그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소매고있는것을 보고 아마 큰 부자라고 생각한 모양이예요.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설마 백성의 소를 알아보지도 않고 함부로 죽이기야 하겠나요.》

그래도 가족들은 겁에 질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량세봉은 여전히 가족들의 마음을 풀어주느라고 애써 웃으며 김씨에게 말하였다.

《래일 제가 그 사람들을 찾아가겠어요. 사정을 드리면 다 리해할거예요. 걱정마세요.》

이튿날 량세봉은 아침을 일찌기 먹고 독립단이 자리잡고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김씨와 온 식솔이 량세봉이 마치도 사지판을 찾아가는듯싶어 앞길을 막아나섰다. 량세봉은 팔에 매달리는 어머니와 윤재순과 동생들을 가까스로 눌러놓았다. 가족들은 동구밖까지 따라나와 눈물로 바래워주었다.

가는 길에 량세봉은 처음으로 찾아가는 독립단에 맨손으로 갈수가 없어 장마당에 들려 신발 열컬레와 양말도 샀다. 두렵기도 하였다.

그는 걸어가면서 자기를 위로하였다.

(하여튼 그네들도 백의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내걸고 싸우는 독립단이 아닌가. 그들을 도와주는것은 백성으로서 응당한 일이다.)

당시 량세봉이도 이곳에서 활발히 벌어지고있는 독립운동과 운동단체들의 활동소식을 듣고있었다.

리동영과 리희영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이미 만주땅에 발을 붙이고 독립운동의 거점을 꾸리였다.

그들은 장차 무장투쟁을 비롯한 반일독립투쟁을 벌릴 웅대한 포부를 안고 류하현 삼원포에 와서 기지를 꾸려놓았다.

다음해부터는 리시영, 리상영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강을 건너와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라는 학교를 설립하고 이 지역의 청년들에게 교육을 시작하였다.

1918년경부터 흥묘자에 만주에서 처음으로 되는 조선족사립학교인 홍동학교를 설립하였다. 그것은 15개의 교실을 가진 학교였다.

몇년전에 한국독립단이라고 이름을 붙인 무장대가 조직되였으며 환인현과 관전현까지 세력을 뻗치고 200여명의 성원을 가진 집단으로 발전하였다.

독립단은 압록강을 건너가 일본수비대와 경찰지서들을 습격하고 흥경현에 설치된 일본령사관을 기습공격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향이 나쁜 부자들도 건드렸다.

홍동학교나 신흥강습소 그리고 경학사는 남만일대의 청년들을 계몽시키고 반일운동에로 불러일으키는데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조국에서 3. 1인민봉기가 고조되던 시기에 이곳에서는 전체 조선이주민들이 참가한 대규모적인 반일시위가 벌어졌는데 이 학교들이 주최가 되였다.

그때 《조선독립 만세!》를 웨치며 격렬하게 벌어졌던 이 시위대오의 제일 앞장에는 키가 크고 몸집이 우람진 량세봉도 서있었다.

그날 량세봉은 사람들을 다 휘동해가지고 갔었다.

김씨를 제외하고는 량세봉의 형제들과 윤재순이까지 모두 참여하여 목이 쉬게 만세를 부르며 마을과 거리를 누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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