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8. 왜놈 천놈

 

(1)

 

어느해 여름 마을에는 이전에 만났던 독립단과는 갈래가 다른 독립단이 찾아왔다.

3.1인민봉기가 왜놈들의 총칼에 진압된 후 국내의 도처에서 활동하던 애국자들은 적들의 탄압을 피하여 결사반일항전을 맹약하고 피눈물을 뿌리며 압록강을 건너왔다. 이 시기에 광범하게 불리워진 《압록강의 노래》가 그 시기 애국렬사들의 동북이주와 그들의 비장한 결의를 그대로 담고있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그들은 압록강을 건너 흥경과 관전, 통화, 환인, 집안, 연길 등지에서 반일성전을 여러가지 형태로 벌려나갔다.

동북지역을 장악하고있던 중국반동군벌행정부가 일본놈들의 압력을 받아 조선애국자들의 반일애국활동을 억누르지만 날이 갈수록 반일투쟁은 만주전역에 료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다.

흥경현에서 조선사람이 집중되여있던 곳은 왕청문이였다. 여기서는 조선사람들이 촌장으로 선출되여 행정업무도 보고있었다.

일제의 침략정책이 심화됨에 따라 조선독립운동을 표방하는 단체들이 수많이 조직되여 합쳐졌다가는 분렬되고 다시 합쳐지기를 거듭하였다.

이미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된 후 한국독립단이 조직되여 활동하고 이어 류하현 삼원포에서 서로군정서가 조직되고 몇년후에는 광한단, 신흥학우단, 대한청년단련합회 그리고 오동진이 중심이 된 광복군총영, 보합단 등 수많은 무장단체들도 조직되였다.

이러한 독립운동단체들은 조선독립이라는 하나의 구호를 들었지만 정치적립장이나 투쟁방법은 각이하였다.

어떤 조직은 단군을 신봉하여 조선왕조의 복구를 목표로 하는가 하면 어떤 단체는 독립전쟁을 진행하여 일제를 몰아내고 부르죠아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떠들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단체는 천도교의 창시자인 최제우를 신봉하여 덕을 널리 펴서 나라를 광복하고 백성을 구제하고 조선을 대동안락의 세계로 만들자고 제창하였다.

과거 조선의 실학사상을 내들고 인재배양을 위해 서당이나 학교를 도처에 꾸려 조선사람들속에서 걸출한 인재를 육성하여 나라의 광복을 달성해야 한다고 선전하는 단체도 있었다.

어떤 단체는 1919년에 상해의 프랑스조계지에서 수립된 상해림시정부의 정강과 운동방법을 지지한다고 떠들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단체는 쏘련의 10월혁명승리의 경험을 따라배워 일제를 몰아내고 당장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자고 하면서 맑스주의를 선전하였다.

운동방법도 각이하였다.

자주 집회를 열고 여기저기서 자기 단체의 리념과 운동방식을 선전하기도 하였으며 가가호호 열심히 찾아다니며 자기의 단체를 지지하여달라고 호소하기도 하였다.

당리당략을 위하여 자주 충돌하며 서로 맞불질을 하는 일도 빈번하군 하였다.

여하간 만주의 모든 지역과 그곳에 뿌리를 내린 조선이주민들은 매일같이 어느 단체든지 목청을 돋구는 독립과 애국의 호소를 들으며 항일열의를 높이고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에 온갖 성의를 다하였다.

량세봉도 다를바가 없었다.

그의 고민은 커져갔다.

독립단에 갔다온 후 시름겹던 생각이 나날이 커지고 하루도 건느지 않고 맞다드는 각이한 독립단체의 사람들을 만나볼 때마다 자신이 시대의 거세찬 흐름속에서 소외당하고 조선독립운동을 기피하고 지내는듯 한 죄의식이 깊어지군 하였다.

그리고 자기를 반일운동에로 내세우기 위하여 크게 뜻과 기대를 걸고있던 강서명에게 더없이 죄스러워지군 하였다.

어느날 그의 집에 또다시 8명의 독립단 소부대가 찾아왔다.

자기들은 오동진이라는 사람이 조직한 광복군총영에 소속되여있는 독립단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량세봉에게 마을의 촌장에게 안내하여달라고 부탁하였다.

량세봉은 그들을 안내하여 촌장집으로 갔다.

소부대의 대장은 오광이라는 텁석부리였다. 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자기의 소속과 직무, 이름을 밝히고는 대뜸 이렇게 선언하는것이였다.

《오늘부터 이 마을의 모든 집들에서 18살이상 되는 남자들은 독립단 단비를 한해에 1원 50전씩 내고 다른 집들에서는 해마다 5원씩 내야 하오.》

그는 촌장이 두말을 못하게 엄하게 눈을 부라리며 말하였다. 촌장은 그들의 요구를 쾌히 받아들였다.

《당신들이 일본놈들과 목숨바쳐 싸우고있는데 우리 백성들은 마땅히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독립단의 단비와 기부금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현금이 당장 없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대장은 즉석에서 방도를 내놓았다.

《그건 걱정할게 없소. 흥묘자에 서세명이란 사람이 경영하는 상점이 있소. 서세명씨는 우리의 일을 뒤에서 봐주는 사람이요. 그러니 돈이 없는 사람들은 우선 그 상점으로 가서 차용증서를 써서 돈을 바꾸고 후에 돈이 마련되면 그에게 주고 차용증서를 없애면 되오.》

이어 대장은 불량스러워보이는 눈을 희뜩거리며 촌장에게 오금을 박았다.

《마을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소문내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두시오. 만약 발설하는 놈이 있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오.》

텁석부리가 을러메는 소리에 촌장은 연신 허리를 굽석거렸다.

촌장은 그들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여러 집에 분산시켜 류숙하게 하였다.

다음날 소부대 대장은 촌장에게 길안내원을 부탁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량세봉이 자기가 하겠다고 기꺼이 나섰다.

량세봉은 소부대를 안내하여 환인현까지 갔다.

가는 길에 산속에서 저들끼리 밥도 해먹으면서 산길을 탔다. 헤여질 때 소부대 대장은 량세봉에게 호감을 느끼고 독립단의 지역단원이 되여 독립단선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부금징수도 맡아달라고 제의하였다.

도리질을 한다면 당장 목쳐버릴 기상이여서 량세봉은 선뜻 그 일을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이리하여 량세봉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독립단에 대한 선전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독립단을 도울것을 호소하였다.

곁에서 사는 80여명의 청년들이 이에 동조하여나섰다.

량세봉은 그들과 함께 조선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군량미도 모아들였다. 모은 곡식은 독립단에서 제정해준 정재생이라는 이웃고을의 농민집에 숨겨두었다. 이렇게 량세봉은 독립운동에 한발자국한발자국 잠겨들었다.

어느날 이웃마을의 한 로인이 새벽바람에 헐떡거리며 마당에 들어서서 다급히 찾았다.

《세봉이 있나?》

량세봉이 얼른 베잠뱅이바람으로 토방에 나서니 로인이 인사받을새도 없이 소리를 낮추며 일러주었다.

《이 사람 세봉이, 얼른 피하게. 독립단에서 임잘 잡으러 왔다누만. 네댓명이 실히 되네. 전일에 왔던 오광이라는 사람이 왔는데 그 사람눈에 걸리면 목이 성한 사람이 없다고 하네.》

《저를? 왜요?》

량세봉의 큰눈이 떼꾼해졌다.

《모르겠네. 불문곡직하고 얼른 피하게, 멀리로. 일이 난 다음에 총을 든 사람들과 무슨 말시비가 따로 있겠나. 우리 집에 지금 정재생이 잡혀왔는데 벌써 오광의 주먹에 피를 토하고 반주검이 되였네. 아예 꺼질것 같네.》

량세봉은 인차 사태가 짚이웠다.

정재생이 그동안 낟알이 고간에 넘쳐나도록 들어오자 욕심이 동해 그중 일부를 바깥으로 빼돌렸던것이다. 이 소식이 한입두입 건너가 흥경현의 보안대장의 귀에까지 흘러갔다. 보안대놈들이 대장의 명령을 받고 정재생의 집에 달려들어 서른섬이나 되는 곡식을 다 털어갔다. 그래 독립단에서 량세봉이 정재생과 짜고들어 군량미를 가지고 장사질을 하였다고 벼르고있었던것이다.

이것을 알고있던 량세봉은 정재생을 붙들고 가서 사건의 전말을 그대로 토설하게 하리라고 작정하고있었다. 그런데 일이 사전에 터져 맹랑하게 되였다.

량세봉은 사태가 엄중하고 위험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해법이 당장 나오지 않아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을 굴리였다.

독립단의 일로 해서 두번째로 겪게 되는 맹랑한 모함이였다. 그런데 전번일은 너무도 명백하여 쉽게 풀릴수 있었으나 이번 일은 문제가 다를것 같았다.

크건작건 자기에게도 죄가 있었다.

량곡이 들어오는족족 독립단에 알려 실어가도록 해야겠으나 정재생의 집에 쌓아두고있은것이 우선 잘못되였다.

그다음에는 정재생의 죄를 사전에 막아내지 못한것도 정재생의 협잡을 제때에 독립단에 통보하지 않은것도 옳지 않았다.

지금 극도로 흥분한 독립단사람들이 나의 설명을 듣고 죄과의 경중을 리해하고 나의 청백을 인정해줄수 있을가?

정재생이 저의 흑심과 죄과를 다소라도 덜어보려고 나를 공범자로 물어넣을수 있다는것도 생각해야 했다.

그러면 자기를 변명할 그 어떤 여지도 없이 독립단이 내리는 무자비한 징벌을 받아야 했다.

점차 량세봉도 불안하고 공포에 질려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전에 만났던 오광이라는 사람의 텁석부리 얼굴이 눈앞에서 스산하게 얼른거렸다.

시커먼 털이 더부룩한데다가 말이발같은 크고 누런 대문이가 번뜩거리고 꼬리가 쳐들린 두눈이 비수처럼 섬뜩한감을 주는게 초면에도 불량스럽기 그지없었는데 거기에 로인의 겁질린 소리까지 겹쳐져 간담이 서늘하여 도무지 자신을 진정할수 없었다.

《로인님,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저는 정말 쌀 한되박도 빼낸게 없습니다.》

량세봉의 목소리는 울분에 차서 처절하게 울렸다.

《얼른 달아나게. 난 임자의 바른 심지를 알기에 찾아왔네. 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면 미처 손써보지도 못하고 매타작에 목숨을 건지지 못할걸세. 정재생이 저꼴이 됐으니 보증해나설 사람도 없지 않나. 임자의 곧은 량심을 버선목이라고 뒤집어보일가.》

로인은 손세까지 써가며 아직까지 두발을 땅에 박은듯 움직이지 않고있는 량세봉을 다그어댔다.

《이런 때는 삼십륙계줄행랑이 으뜸수일세. 자, 난 가네. 여기에 왔다는걸 알면 독립단에서 나도 가만두지 않을거네.》

로인은 황황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버렸다.

량세봉은 미처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채 우두커니 굳어져서 다시 곰곰히 생각에 잠기였다. 로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와주었으니 망정이지 오늘로 목숨이 결딴나고말았을것이다.

평소에 량세봉은 이웃들을 위함이라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도와왔다.

량세봉은 바쁜 농사철에는 손이 모자라는 집에 가서 논밭갈이를 해주고 물도랑도 쳐주고 모내기도 같이 해주어 동네는 물론 주변마을에서도 량세봉을 사랑하고 아껴준다. 량세봉은 로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정재생이 죽고나면 자기의 결백을 말해줄 사람이 없을것이다. 독립단사람들은 불의를 제일 미워하며 배신자에 대하여서는 기어이 따라가서 마땅한 징벌을 가한다고 한다.

량세봉은 윤재순을 조용히 불러내여 대강 사건을 추려서 이야기하고 이길로 멀리 가있겠다고 하였다.

뜻밖에도 윤재순은 그 소리에 크게 놀라지도 않고 어서 떠나라고 재촉하면서 얼른 방에 들어가 농짝에서 시어머니 몰래 모아둔 돈을 꺼내왔다.

량세봉은 어머니에게는 독립단일때문에 며칠 가있겠다고 말하고는 곧바로 길을 떠났다.

그는 보름동안이나 산길을 타고 압록강을 건너 고향으로 갔다.

몇해사이에 고향은 몹시도 변해있었다.

마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왜놈들과 그와 결탁한 지주놈들의 등쌀에 살래야 살수가 없어 고향을 등지고 압록강을 건너갔다. 그리고 옛 글방친구들중에서 십여명이 여러 반일무장조직들에 들어가 총을 들고 싸운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였던 석태무와 최현수네도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갔다고 하였다.

그밖의 장정들은 대체로 돈을 벌려고 금전판으로 혹은 고기잡이나 공사장을 찾아 떠났다고 하였다.

고향에는 늙은이들과 녀인들과 아이들만 남아있었다.

량세봉은 며칠동안 동네늙은이들이 끄는대로 이집저집에서 지내다가 다시 돌아섰다.

그는 죽더라도 독립단에 가서 자기를 변호하고 어엿하게 독립전에 나서고싶었던것이다.

이렇게 독립단의 눈을 피해 살수는 없었다. 아무때나 한번은 부닥쳐봐야 할 일인것 같았다. 그런바에는 이제 곧바로 독립단에 찾아가야 속이 편할것 같았다.

량세봉이 고향을 떠나 천마산의 수림길을 걷고있을 때 갑자기 숲속에서 륙혈포를 든 사람들이 뛰쳐나와 그의 앞을 가로막아나섰다.

《뭘 하러 떠다니는 사람이요?》

량세봉은 조금 놀라긴 했으나 왜놈족속들이 아닌것이 분명해서 데퉁스럽게 대꾸하였다.

《동냥다니는 사람이요.》

《뭐 동냥? 거짓말. 당신은 왜놈밀정같소.》

마주선 사람들이 번듯하게 생긴 사나이가 동냥다닌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아 량세봉의 아래우를 매섭게 훑으며 따지고들었다.

《왜놈밀정이라니? 말을 해도 그런 막말은 하지도 마시오. 내가 밀정노릇 한다구? 난 흥경현에 사는 이주민이요. 고향땅에 일보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요.》

《그런데 왜 이 깊은 산골에 들어섰소?》

《로자가 떨어져 지름길을 잡은거웨다.》

《좋소. 우리한테 함께 갑시다레.》

그들은 퉁퉁 막힘없이 대답하는 량세봉에게 다소 의심이 풀렸던지 총을 내리우고 앞뒤로 서서 고개 하나를 넘었다.

이들은 평북도지방에서 왜놈들을 공포에 벌벌 떨게 하던 천마산무장대 대원들이였다.

천마산무장대는 반일독립운동자 최시흥에 의하여 조직된 무장부대였다.

량세봉도 천마산무장대에 대한 소식을 여러번 들은바가 있었다.

그들은 여러해동안 평안북도의 험준한 산발들에 의거하여 왜놈들과 그 앞잡이들을 무자비하게 족치고있었다.

 

련 재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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