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8. 왜놈 천놈

 

(2)

 

무장대 대원들은 인차 대장기발이 꽂혀있는 귀틀막으로 량세봉을 데리고 갔다.

대장 최시흥이 그를 맞았다.

량세봉이 생전 처음으로 맞다드는 조선땅의 무장대대장을 두려우면서도 다소 신비스러운 눈으로 살펴보니 볼과 턱에 구레나릇이 한벌 덮이여 인차 그 나이가 짐작되지 않았다.

훤칠하게 벗겨진 희고 말쑥한 이마아래서 마치도 시커먼 누에 두마리가 금시 좌우로 기여가는듯 한 눈섭이 인상적이였다.

그밑의 류달리 맑고 정기가 도는 눈에 인정이 어려 왜놈들이 이름만 들어도 홍찌를 갈긴다는 무장이 마음 무던한 촌유생같은 생각부터 앞서게 한다.

최시흥은 대원들의 보고를 들은지라 량세봉의 아래우를 찬찬히 훑고나서 심문조로 물었다.

《성함은 어떻게 부르오?》

《량세봉이라 합니다.》

《어떻게 되여 이 깊은 산중에 들어왔는가?》

량세봉은 이미 독립단들과 대상해보았고 이 사람들의 체질도 인차 파악이 되자 솔직하면서도 꿋꿋하게 대답을 하였다.

《난 철산군 세리면에서 살다가 몇해전에 흥경현쪽에 가서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독립단의 일을 해주다가 그 사람들이 나한테 큰 오해가 생겨서 잡아죽이려 한다는 급보를 들었습니다. 그래 고향에 와서 숨을가 하고 왔다가 그저 숨어지낼수 없다는 생각에 되돌아가는 길이올시다.》

《독립단에 당신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최시흥이 꾸밈없이 말하는 량세봉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겨난듯 물었다.

《죄는 무슨 죄겠습니까. 독립단사람들이 잘못 알고 그런거지요. 군량미를 조달하여 그 사람들이 지정해준 사람 집에 보관시켰는데 군량미를 맡은 사람이 뒤거래를 좀 하다가 현보안대에 걸려 몽땅 털리웠지요. 그런데 독립단에서는 내가 그 사람과 짜고들어 장사질을 했다고 판단한것 같습니다. 그래 그 사람 집에 들이닥쳐 반주검을 만들어놓고 나까지 잡아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이제 가면 일없다는거요? 돌아갈걸 흥경에선 왜 도망쳐왔단 말이요?》

《글쎄요.… 모를 일이지요. 왜놈들에게 잡혀죽는다면 억울할게 없겠는데 그 사람들에게 잡혀죽는다면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고향에 오니 내 글방친구들이 적지 않게 독립군에 가서 총을 잡았다나요. 그래 나도 돌아가면 참군할 작정입니다. 만주에 숱한 독립군이 있는데 이 한몸 받아줄 독립군이 없겠습니까.》

《어흠… 그렇다?》

최시흥은 언변이 류창하고 두뇌도 명석해보이며 기골이 든든하고 어깨와 가슴근육이 울뚝불뚝 삐여져나온 량세봉을 욕심이 나서 뜯어보았다. 사실 지금 량세봉은 이미 량심의 결단을 내렸고 더는 방황하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다지였다.

(독립군에 가서 싸우자. 조선의 사나이답게 망국의 한을 총검으로 풀고 독립성전으로 나라를 광복하는데 내 피와 생명을 바치자.)

드디여 최시흥도 결심을 내렸다.

《좋네! 량세봉씨, 우리 함께 여기서 싸워보지 않겠나?》

《저를 정말 받아주시겠습니까?》

《아무렴! 왜놈들을 깡그리 쓸어버릴 때까지 혈전길을 함께 달려보자구. 그 길이 천리가 되겠는지 만리가 되겠는지 단언할수는 없네. 하지만 조선백성이 이제 혈전장에 너두나두 나선다면 기필코 왜놈들을 이겨낼걸세. 임진왜란때 우리의 군사들은 7년간 싸움을 벌렸네. 이제 십년을 목표하고 피흘려보느라면 결딴이 날테지. 어떤가, 량세봉?》

《싸우겠습니다. 혈전만리를 대장님을 따라 달려보겠습니다. 저는 그길에서 죽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량세봉은 저으기 흥분되여 비장한 어조로 자기 결심을 피력하였다.

최시흥이 가까이 다가서더니 량세봉의 떡판같은 허리를 꽉 그러안았다.

《좋네, 좋아. 그래 임자가 살아온 얘기나 해보게. 부모님들은 어디 계시구 고향은 왜 버리고 만주로 갔나.》

량세봉은 자기가 살아온 경위에 대하여 세세히 이야기하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시흥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곡절많은 운명사를 다 듣고나서 비감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자도 그렇게 피맺힌 경난을 당했구만. 그래, 나이는 스무살을 넘어섰겠지?》

《예, 올해 스물여섯입니다.》

《그래, 좀 나이가 있어가지고 싸움판에 나서는군. 하지만 바빠할것은 없네. 쓸어버릴 왜놈들은 많고많으니 이제부터 천놈의 왜놈목을 목표로 칼을 휘두르고 총탄을 날리라구. 그래, 총을 쏠줄 아나?》

《모릅니다. 검은 자신이 있습니다.》

《음, 좋네. 그러나 검술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네. 여긴 칼을 휘두르고 활을 날리던 의병대가 아니네. 총탄을 날릴줄 알아야 하네. 총쏘는 법은 당장 오후시간에 배워주도록 명령하겠네. 임자 고향땅에서 특별히 한을 남긴 놈은 없었나?》

《있습니다.》

량세봉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한풀이를 하자고 했으나 삼촌도 어머니도 말려 원한을 안은채 고향을 떴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오래전에 저세상으로 떠나간 아버지의 최후를 더듬어가느라니 박치서지주놈과 그놈의 아들 박창해 그리고 철산군 경찰서장놈의 상통이 떠올라 목소리가 비분에 젖고 억대우같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최시흥도 격분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후두두 떨고있는 량세봉의 팔을 꽉 그러잡으며 부르짖었다.

《철천지원쑤 왜놈들과 지주놈들! 그 날강도들을 어찌하면 좋을가! 한풀이도 해야지. 해야 하구말구. 우리 어찌 가슴에 품은 한을 참고만 있을수 있는가!》

최시흥의 부모도 숨어다니다가 작년봄에 왜놈들에게 잡혀 참형을 당하였다. 그후에는 처와 어린 자식들까지 왜놈들이 다 죽여버렸다.

《세봉이, 우리에게는 누구에게나 왜놈들과 그 앞잡이들과 결판을 봐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네. 우리가 피로써 결산을 치르지 않는다면 어찌 단군의 피를 받은 조선의 후손들이겠나. 안 그런가?》

《옳습니다! 저는 끝까지 원쑤들과 싸우겠다는것을 맹세합니다.》

《음, 우리 약속하세. 원쑤 왜놈들앞에서 피해선다면 이 대장도 배신자로 사정없이 목을 치게. 나도 임자가 왜놈들앞에서 시라소니구실을 한다면 사정없이 목을 치겠네. 이건 우리 천마산무장대의 군률이고 민족앞에 다진 맹약일세. 맹세하게!》

《맹세합니다.》

량세봉은 엄숙하게 화답하였다.

《좋네!》

최시흥은 량세봉의 대답에 만족하여 이렇게 치하하고는 그를 데리고 어느 한 귀틀집으로 갔다.

《소대장, 이 사람에게 총쏘는 법과 제식동작을 가르쳐주게. 오후에는 임자에게도 총을 주겠으니 총쏘는 법부터 잘 배워야 해. 그리고 1소대장, 2소대장더러 각각 대원 세명씩 데리고 내게로 오라고 전하게.》

《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이 사람을 저의 소대에 주시겠습니까?》

소대장은 량세봉의 끌끌한 몸이 탐나서 물었다.

《그건 소대장이 얼마나 총쏘는 훈련을 잘 시키는가 하는걸 보고 결정하겠네.》

소대장이 량세봉을 흘끔 건너보다가 놀라움에 차서 소리쳤다.

《아니, 이게 누구야? 량형이구만!》

그는 소리치며 량세봉을 와락 부둥켜안았다.

그제야 량세봉도 무장대옷을 입은 소대장을 알아보았다.

《아니?! 석태무! 네가 여기 와있었구나.》

그들은 얼싸안고 돌아갔다.

최시흥은 두사람의 뜻밖의 포옹에 어리둥절하여 석태무에게 물었다.

《소대장이 아는 사람이요?》

《예. 글방친구입니다. 형님처럼, 스승처럼 섬겼지요.》

《자식, 설레발을 치지 말라구. 스승은 무슨 스승.》

량세봉은 자기를 추켜주는것이 게면쩍어 석태무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쿡 찔렀다.

《그렇다면 소대장의 욕심대로 하게나. 밑에 두고 잘 싸워보세.》

그러자 이번에는 석태무가 손을 내저으며 엄살스럽게 뒤걸음쳤다.

《아, 아니. 대장님, 안되겠습니다. 제가 이 친구의 상급이 되다니요? 이 친구가 얼른 잠간 내 자리를 가로채겠는데요.》

그러자 최시흥은 껄껄 웃었다.

량세봉이 석태무의 넉살좋은 아부재기에 대장의 결심이 돌아설가봐 얼른 부탁하였다.

《대장님, 이 석소대장의 휘하에 저를 넣어주십시오. 소대장을 잘 받들어 싸우겠습니다.》

《아, 아니. 대장님, 이 량형은 서당방에서 서당훈장님의 칭찬만 받던 장수감이였습니다. 모든데서 우리보다는 썩 앞서있던 글방친구입니다. 힘들게 얻은 내 자리 탐내면 어쩌겠습니까.》

석태무가 여전히 반죽좋게 엉너리를 쳤다.

《대장님, 석소대장의 말을 다 듣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꼭 석소대장의 휘하에서 싸우겠습니다.》

량세봉이 진지한 어조로 말하자 최시흥은 껄껄 웃고나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였다.

《허허. 가까운 사람들끼리 함께 지내면 좀 좋을라구. 소대장, 하여튼 내 생각해보겠네.》

이렇게 량세봉은 정식으로 천마산무장대 대원이 되여 무장을 잡게 되였다.

량세봉은 오후시간에 최시흥에게서 륙혈포 한자루를 받아가지고 석태무에게로 갔다.

석태무는 량세봉을 끌고 병영뒤에 있는 숲속으로 갔다.

그들은 호젓한 자리에서 량세봉이 고향을 떠난 이후 저들이 걸어온 경로를 서로 묻고 대답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총쏘는 훈련을 시작하였다.

석태무는 먼저 신식보총과 륙혈포를 분해결합하는 방법과 총쏘는 요령을 가르쳐주고 제식동작들도 배워주었다.

저녁무렵에 최시흥이 조준련습을 하고있는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대장님, 량형을 저의 소대에 눌러주십시오.》

《허, 아까는 함께 있지 않겠다고 하더니 어찌된 일이야? 저 사람에게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임자뿐인줄 아나. 헌데 자리떼우면 어쩔라구. 안되네.》

최시흥이 일부러 딱 잡아떼는척 했다.

《아 대장님, 우리 소대가 전번 박천전투때 손실이 크지 않았습니까. 저 사람은 이제 열, 스물맞잡이로 싸움을 잘할것입니다. 그리구 이 량형은 소대장자리쯤은 욕심나지 않는답니다.》

그 소리에 세사람은 폭소를 터뜨렸다.

《허, 그래… 좋아. 임자 정 욕심나면 소대에 받게. 참, 저 사람 식자는 어떠한가?》

《예. 그건 당자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식자가 사실인즉 대단합니다.》

최시흥은 석태무의 말을 듣고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사흘후였다.

최시흥이 량세봉을 자기의 귀틀막으로 불렀다. 그가 도착보고를 하자 최시흥이 자리에서 일어나 량세봉을 데리고 산기슭으로 갔다.

《량세봉, 가까이 가서 저놈 상통을 들여다보게. 임자 부친을 페인으로 만든 철산군 경찰서장놈이 맞는가.》

《예?! 그러면 저놈이?》

량세봉은 놀랐다. 철산군 경찰서장이 어떻게 여기에 붙잡혀와있는가.

《어서 가보라구.》

대장의 말에 량세봉은 산기슭의 소나무에 묶이여있는 시꺼먼 경찰복을 입은 놈에게로 다가갔다.

량세봉이 가까이 다가가자 놈은 피자박이 된 상통을 들고 초점잃은 눈으로 쳐다보다가 앞에 다가선 인물이 량세봉인줄 알아보고 기절초풍하여 고개를 떨구었다.

틀림없는 철산군의 왜놈경찰서장 고무라였다.

량세봉은 《이놈아!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하고 추상같이 소리쳤다.

《골통을 들어라. 나를 봐라. 아버지를 죽인 철천지원쑤!》

그의 눈에서 불이 일었다. 량세봉이 연방 호령을 하자 그놈은 다시 고개를 들었는데 두눈에서 팥죽같이 걸죽한 눈물이 쭈룩쭈룩 흘러내리고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놈! 조선사람들이 그래 밟혀죽을줄만 알았더냐.》

량세봉의 추상같은 호령에 얼혼이 쭉 빠져있던 그놈의 상통이 꺾어질듯 털썩 아래로 떨어졌다.

《돌아오게.》

최시흥이 불러서 돌아서니 언제 왔는지 무장대 대원들이 기슭에 횡대로 나란히 서있었다.

《경찰서장놈이 맞던가?》

최시흥이 물었다.

량세봉은 분노로 주먹을 부르르 떨며 크게 대답하였다.

《옳습니다. 바로 저놈입니다.》

《그렇군. 자, 이걸 보게. 자네에게 보내는 세리면 박지주놈의 편지일세.》

최시흥은 이렇게 말하며 그에게 접혀있는 한장의 참지를 내밀었다.

《박지주놈 편지라구요? 저에게 썼다는겁니까?》

량세봉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박치서놈이 내게 편지를 쓰다니? 언제, 어디서, 어째서?

보고 듣는게 너무도 뜻밖이고 신기하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량기화의 아들 량세봉 전상서.

나는 량기화를 왜놈들에게 고발한 죄로 죽으니 한을 씻어주게. 철산군 세리면 지주 박치서.》

량세봉은 련이어 접하는 꿈같은 일에 더구나 어리둥절해졌다. 최시흥이 사흘전에 자기를 만나 한을 남긴게 뭐냐고 물었을 때 이미 거사가 결정된 모양이다. 고마왔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백리길을 가서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무장대 대원들의 수고에 눈물이 앞섰다.

최시흥이 간단히 설명하였다.

《자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우린 여섯명의 대원들을 보내여 각각 철산군 경찰서장 고무라놈과 세리면 지주 박치서놈을 체포해오기로 하였지. 그런데 두놈을 다 끌고오는것이 힘들어 박지주놈은 도중에서 이 편지를 씌운 후에 징벌을 내리고 저 고무라놈만 끌고왔네. 분통한것은 박지주놈의 아들놈을 놓친거야. 아들놈 이름이 뭐라고?》

《박창해라고 했습니다.》

《그래, 박창해라고 했지. 그놈도 조만간에 잡아다가 처단합세. 우리에게는 그럴만 한 힘이 있네. 박창해도 일본헌병이 돼서 평안북도에서 못되게 돌아친다고 하네. 석태무소대장의 보고일세. 그러니 그놈도 용서치 말아야지. 오면서 우리 사람들이 박지주놈의 집을 불사르고 거기에다가 경고장까지 붙이고 왔네. 자네의 이름으로 말일세.》

이어 그는 소나무에 결박되여있는 경찰서장놈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사격훈련을 하였겠지?》

《예, 총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놈을 여기서 단방에 맞힐수 있겠나?》

자신있습니다. 단방에 죽여버리겠습니다.》

량세봉은 복수의 갈망에 불타올라 저력있게 대답하였다.

《쏘게. 그놈의 심장에 아버지의 한을 담아, 어머니의 한을 담아 총탄을 날리게.》

최시흥은 량세봉에게서 물러나 대렬앞으로 무겁게 걸어갔다. 그리고 자기를 지켜보는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소대장, 분대장들! 대원들!

왜놈을 족치는 우리의 싸움은 어찌보면 복수전이기도 하오. 멀리로는 임진왜란때부터 가깝게는 록두장군의 농민전쟁에 이르기까지 왜놈들때문에 비명에 죽은 조선사람들이 몇천몇만이요.

저놈은 우리의 무장대에 들어선 량세봉의 아버지를 죽이고 숱한 철산군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철산군 경찰서장 고무라놈이요. 저놈에게 우리 천마산무장대는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 집행을 량세봉이 직접 하기로 했소. 량세봉, 쏘게! 단방에 저놈의 염통을 뚫으라구!

이건 천놈의 왜놈을 목표로 하여 날리는 임자의 첫 총탄이 될걸세.》

최시흥이 도도한 연설을 마치고 물러서자 량세봉이 륙혈포를 들고 나무가지를 얼기설기 펴놓은 사격좌지에로 나갔다. 그는 무릎을 땅에 박고 륙혈포를 쳐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숨소리를 죽여가면서 목표를 노려보았다. 총신끝으로 넋을 잃고 자기를 바라보는 고무라놈의 상통이 똑똑히 보였다.

원쑤 쪽발이놈! 네놈이 현해탄을 건너올 때 이런 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네놈이 우리 아버지를 페인으로 만들 때 이런 종말이 차례지리라는것을 생각도 못했겠지.

받으라! 복수다! 조선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그렇다. 천놈의 왜놈을 목표로 하는 나의 총의 첫 총탄이다.

량세봉은 원쑤의 가슴팍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땅!》

총소리가 났다. 왜놈을 향해 날린 첫 총성.

그러자 고무라놈이 고개를 떨구고 축 늘어졌다.

량세봉은 녹아붙은듯 자리에서 인차 일어나지 못하였다.

가슴이 그냥 후두둑 들뛰여오르고 입술이 후두두 떨었다.

량세봉은 소나무밑둥에 허리를 칭칭 묶이운채 축 늘어져있는 왜놈을 시퍼런 불이 쏟아지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의 눈앞으로 불현듯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놈의 손에 맞고 터지고 끝내 왜놈을 저주하며 숨이 진 불쌍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의 원쑤를 갚았습니다!)

그의 눈앞으로 또 다른 모습이 떠올랐다.

강서명의 모습이였다. 룡천검을 넘겨주며 그가 들려주던 담담한 이야기가 금시 귀전에 울렸다.

《세봉이, 우린 아마도 언제인가는 한길에 오를것 같네.》

한길… 선생님이 바라던 한길이란 바로 항일의 길, 독립전의 길이였을것이다.

지금도 그 어디에선가 독립의 가시덤불길을 헤쳐가고있을 강서명을 그려볼 때면 언제나 가슴을 치는 죄의식을 덜수 없었던 량세봉이였다.

(선생님! 드디여 이 량세봉이도 선생님께서 바라시던 길, 선생님께서 가시는 길에 올랐습니다.

오늘 저는 왜놈을 향해 첫 총탄을 날렸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왜놈 천놈을 목치라 했습니다. 오늘은 최시흥대장도 그렇게 명령했습니다.)

량세봉은 마음속으로 분연히 부르짖었다.

나는 쏠것이다. 앞으로도 절대로 원쑤를 빗맞히지 않을것이다. 왜놈 천놈을 쓸어눕히라. 이건 강서명, 최시흥대장의 엄명이다. 그래, 나는 기어이 원쑤 천놈을 쓰러뜨리고야말것이다. 천번째 놈은 왜왕이 될것이다. 왜놈들아, 해보자!

결사전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량세봉은 그냥 땅바닥에 한무릎을 박고 앉아서 이를 갈며 가슴속깊이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뒤에서 대원들이 신입대원이 첫방에 왜놈가슴팍에 맞구멍을 냈다고 환성을 지르고있었으나 량세봉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채 여전히 대갈통을 늘어뜨린 왜놈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분노를 터뜨리고있었다.

 

련 재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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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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