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3 장

5

(1)

  

온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른것 같았다. 넓은 방안의 그 어디라없이 누운채로 빙빙 떠다니는것 같았다. 손을 뻗쳐 아무것이나 잡아보려고 했으나 손가락이 닿을듯말듯 스치다가는 지나쳐버렸다. 내려놓아달라고 애걸하기는 하지만 목이 꽉 잠겨서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어지럼증도 나고 안타깝기도 해서 막 울고싶었다.

마침 누군가 아래에서 훌쩍 높이 뛰여올라 옷자락을 잡는것 같았다.

안깐힘을 써가며 당겨 침대에 도로 눕혀주었다. 그러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뒤모습만 안겨왔다.

군모를 쓴 머리모양새랑 앉음새랑 꼭 남편같았다.

《아니, 철림이 아버지가 아니세요?》

반가움이 앞서 이렇게 소리쳐불렀다. 그런데 들은체 않고 그 사람은 자기를 왁살스레 침대에 눕힌 다음 어디서 가져온것인지 붕대같기도 하고 굵은 바오래기같기도 한것으로 몸을 칭칭 돌려감았다.

《철림이 아버지! 철림이 아버지가 아니세요?》

다시 또 불렀으나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을 못 보게 외면하는것 같았다.

《아이, 왜 이래요? 놔요.》

몸을 뒤틀며 일어나려고 했으나 침대채로 꽁꽁 묶인 몸은 옴짝달싹 할수 없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머리를 숙여 얼굴을 감춘채 문을 향해 징겅징겅 걸어나갔다.

《아니, 여보세요, 당…신은… 누군데 날 이렇게 묶어놓구…》

그 사람은 달아나 나가면서 저쯤에서 피뜩 몸을 돌리는데 낯은 온통 수염투성이고 두눈에서는 퍼런 불빛같은것이 펀뜩이였다.

소름이 쭉 끼쳤다.

그가 나가면서 닫는 문소리가 탕- 하고 울리고 지진이 났을 때처럼 방안이 몹시 흔들렸다.

경림은 눈을 번쩍 떴다. 제일먼저 안겨오는것이 하얀 천정이다.

아스라하게 높아보였다. 몇번 힘들게 눈시울을 깜빡깜빡하고 다시 보니 분명 자기가 누워있는 입원실이다. 우유빛갓을 씌운 조명등이 매달려있었다. 저 앞쪽에 하얀 비닐보를 씌운 원탁이 있고 그우에 간호원이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정성을 기울이는 그래서 류달리 싱싱하게 자라는 알로에선인장화분이 있다.

입원실이 틀림없었다.

창문으로 석양이 비껴드는 방안은 밝고 아늑하였다. 몸을 뒤틀어보았다· 칭칭 돌려감은것 같은 바줄은 없었다.

(내가 꿈을 꿨는가? 아니면 저승문턱에 갔다가 되돌아온것인가?)

방금전의 일이 너무 생시같고 또 섬찍했다. 가뜩이나 기력이 없는 몸의 마지막힘까지 다 뽑아간것 같았다. 이마와 등골에 촉촉히 땀이 내돋았다.

몸에 병이 드니 마음도 약해지는것 같았다.

경림은 이래서는 안된다고 마음을 다잡고 병치료에 전심하느라고 하지만 어쩐지 자기 몸은 점점 기울어지는것 같았다.

머리맡에 놓여있는 타올수건을 끄당겨 얼굴을 자근자근 누르고 목덜미와 앞가슴의 땀을 훔쳤다.

오늘따라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밀물처럼 차올랐다.

다른 때와 달리 면회를 바랄수 없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마음이 씌여졌다.

(이즈음 건강은 어떠한지…)

나들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한호실에 입원해있는 환자가 들어왔다.

그는 며칠전에 충수염으로 갑자기 실려들어와 수술을 받았다.

의사들이 하루이틀은 가만히 누워서 안정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는데도 젊어서 그런지 수술한 다음날부터 수술부위를 두손으로 꼭 누르고 허리를 꼬부릴사한채 살룩살룩하며 잘 돌아다녔다.

남편이 어느 출판사인가 신문사의 기자를 한다는 그 녀자는 소식통이였다. 휴계실에 가서 텔레비죤을 보고 오기도 하고 떠돌아가는 소리를 듣고와서는 재미나게 펼쳐놓았다.

지금도 그는 어데 갔다가 오는지 들어서는 걸음으로 경림이의 침대를 살피더니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언니, 더 아파요? 아이, 이땀 좀 봐.…》

그는 경림이 손에서 타올수건을 뺏아서는 얼굴이며 목부위를 깐깐히 닦아주었다.

《그만둬. 미영 엄마, 별일 없어.…》

경림은 그 녀자의 손목을 잡고 사양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언니, 가만있으라요. 온몸이 땀에 떴는데…》

《철림이 어머니, 더 편찮으십니까?》

그의 등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이, 미영이 아버지도 오셨군요.》

경림은 급히 머리를 비다듬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지 마세요. 가만 누워계셔요.》

미영 엄마는 경림이 일어나지 못하게 팔을 가볍게 눌러 도로 그채로 눕게 했다.

《우리 미영이 아버지가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왔어요. 나도 방금 텔레비죤을 보면서 알고요.》

《어떤 소식인데?》

정세가 더 긴장해져서 무슨 중대조치가 취해진것인가.

미영이 엄마는 아침까지만 해도 어데 나갔다오더니 요즈음 정세가 여간 팽팽하지 않다고 했다. 미국놈들과 괴뢰들이 침략전쟁연습을 미친듯이 벌려놓고있다고 했다.

(정세가 긴장하다면 철림이 아버지는 더 바쁘겠구나. 그래서 이번에 더 지체될지도 모르지.)

이런 걱정이 자기도 모르게 가슴속에 갈마들어서 방금전에 그런 무아몽중에서 헤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새 소식이란 뭘가?

미영 엄마는 샐쭉 웃으며 남편얼굴을 쳐다보았다. 기쁜 일 같다.

미영이 아버지는 선채로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철림이 어머니, (그는 안해한테서 경림이 딸이름을 알아둔것 같다.) 기뻐하십시오. 이제 곧 우리 나라에서 인공지구위성 광명성-2호를 쏴올리게 됩니다.》

《나도 텔레비죤에서 들었어요.》

미영 엄마가 뒤질세라 뒤따랐다.

《그래요?!》

경림은 놀라며 또 한번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그냥 누워계십시오.》

《미영 엄마, 의자를 가져와요. 미영이 아버지가 앉게…》

《너무 기쁜김에…》

미영 엄마는 원탁앞에 놓여있는 쪽의자 하나를 들어다가 경림이 침대가까이에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자기도 제 침대 한편에 두손으로 포개고 앉았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가 기뻐서 막 끓어번지고있습니다.》

《그렇군요!》

경림은 가슴이 후두둑 뛰고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미영이 아버지는 안해가 가져다놓은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아 계속했다.

《우리의 이 경사를 놓고 적들은 몹시 못되게 놀고있습니다. 탄도미싸일시험이라고 얼토당토않게 우기면서 그 무슨 요격까지 하겠다고 미쳐날뛰고있지요. 어처구니없는 놈들이지요.

아마 군복입은 철림이 아버지랑은 요즈음 정세가 긴장하니 더 바쁘실겁니다.》

《그럴가요?》

《철림이 어머니, 병치료를 잘해서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십시오. 우리의 인공지구위성이 우주에로 솟구쳐오르는 날 목청껏 만세를 불러봅시다.》

《고마와요.》

《우리 미영 엄마는 한 이틀후면 퇴원해도 별일 없겠답니다.》

《음- 나없이 동자질도 하고 애 시중도 들면서 한번 혼나봐야 이 안해 귀한줄 아는건데… 난 철림이 어머니와 며칠 더 있을래요.》

미영 엄마는 남편을 곱게 흘겨보며 입을 샐쭉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남편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였다. 안해에 비해서 체소하고 눈길을 끌게 잘생긴데는 없지만 기자라는 직업에 어울리게 온몸에서 지성이 풍기는것 같고 인정미가 느껴졌다.

남편이 돌아간 다음 미영 엄마는 그가 오면서 들고왔던 비닐구럭에서 사과 두알을 꺼냈다. 한알을 깨끗이 닦아 경림이에게 권했다.

《언니, 시원하게 들어요.》

《고마와. 반쪽만 줘요.》

《여기 또 있지 않아요?》

그는 다른 한알도 그렇게 닦아 제먼저 와삭 한입 깨물었다.

《아, 시원하다. 언니, 어서요.》

《이제 먹겠어.》

경림은 이젠 환자같지 않게 모든 행동이 자유롭고 활달한 그를 미소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받은 사과를 입에 가져갔다.

《언니, 오늘 저녁부터는 퇴원하기 전까지 언니와 밤새껏 이야기를 나누고파.…》

《그래요?》

《지금까지는 언니가 너무 괴로와하는것 같아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는데… 이제 헤여지면 언제 이렇게 침대를 나란히 놓은 방에서 함께 누워 지내보겠어요?》

《아이, 별소릴 다… 이렇게 알게 되였으니 자주 만나게 되겠지요 뭐… 집이 옥류동이라고 했던가요?》

《그래요.》

《우리 집은 석봉동에 있으니 시간이 생기면 놀러오세요.》

《정말?!》

《정말아니면 겉소리를 할가?》

《아이, 좋아라. 내먼저 퇴원해나가서 인차 면회를 오겠어요.》

《이렇게 함께 지냈는데 면회는 무슨…》

《그래두… 그리고 언니가 퇴원할 때는 나한테 알려야 해요. 약속하지요?》

경림은 이번에는 대답대신 물기가 촉촉한 두눈을 끔쩍하며 베개우에 놓은 머리를 끄덕였다.

《언니, 철림이 아버진 군관이라지요? 몹시 바쁜 모양이지요. 일요일에도 면회 한번 못 오시는걸 보면…》

《지금 부대에 나가있어요.》

남편에 대한 힐난이나 자그마한 섭섭한 소리라도 나올가봐 경림은 서둘러 대답했다.

《언니, 가정생활이 어때요? 재미나요?》

미영이 엄마는 또 샐쭉 웃으며 물었다. 아직도 두볼에 보조개가 옴폭 패이는데 귀염성스럽기까지 하다.

《…》

《난 모르겠어요. 우리 미영 아버진 기자니까 출장이 많은데 그러다보니 가정생활은 별로 재미가 없어요. 출장지에서 돌아와 어쩌다 쉬는 날에도 그저 글글… 밤에도 전기불이 없으면 충전등이나 초불을 켜놓고서라도 글글… 호호호… 군관가정생활은 더할테지요?》

《…》

경림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을 않고 그 녀인의 머리우로 방안의 한곳을 응시하였다.

《언니, 몸이 괴로운게지요?》

《아니…》

경림은 머리를 살래살래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영 엄만 좋겠어.… 미영이 아버지가 신문에 글이랑 척척 써내는 재능있는 사람이 돼서…》

《아이, 언니두… 글쓰는 재간이 아무리 있으면 뭘해요? 생활은 꼭자예요, 꼭자… 그래서 재미없다지 않아요.》

《미영 엄마, 미영 엄마가 말하는 가정생활의 재미란 뭘가? 난 잘 모르겠어.…》

경림은 내친김에 더 쏟아놓을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입안에서는 이런 말이 맴돌았다.

(우리 군관의 안해들은 언제한번 그런 생각을 가져본적이 없어요.… 서로 마음속에 그리움을 안고 살고 총잡은 남편들과 한전호에 서있다는 긍지감으로 살아요.)

 

련 재
[장편소설] 뢰성 (제1회)
[장편소설] 뢰성 (제2회)
[장편소설] 뢰성 (제3회)
[장편소설] 뢰성 (제4회)
[장편소설] 뢰성 (제5회)
[장편소설] 뢰성 (제6회)
[장편소설] 뢰성 (제7회)
[장편소설] 뢰성 (제8회)
[장편소설] 뢰성 (제9회)
[장편소설] 뢰성 (제10회)
[장편소설] 뢰성 (제11회)
[장편소설] 뢰성 (제12회)
[장편소설] 뢰성 (제13회)
[장편소설] 뢰성 (제14회)
[장편소설] 뢰성 (제15회)
[장편소설] 뢰성 (제16회)
[장편소설] 뢰성 (제18회)
[장편소설] 뢰성 (제19회)
[장편소설] 뢰성 (제20회)
[장편소설] 뢰성 (제21회)
[장편소설] 뢰성 (제22회)
[장편소설] 뢰성 (제23회)
[장편소설] 뢰성 (제24회)
[장편소설] 뢰성 (제25회)
[장편소설] 뢰성 (제26회)
[장편소설] 뢰성 (제27회)
[장편소설] 뢰성 (제28회)
[장편소설] 뢰성 (제29회)
[장편소설] 뢰성 (제30회)
[장편소설] 뢰성 (제31회)
[장편소설] 뢰성 (제32회)
[장편소설] 뢰성 (제33회)
[장편소설] 뢰성 (제34회)
[장편소설] 뢰성 (제35회)
[장편소설] 뢰성 (제36회)
[장편소설] 뢰성 (제37회)
[장편소설] 뢰성 (제38회)
[장편소설] 뢰성 (제39회)
[장편소설] 뢰성 (제40회)
[장편소설] 뢰성 (제41회)
[장편소설] 뢰성 (제42회)
[장편소설] 뢰성 (제43회)
[장편소설] 뢰성 (제44회)
[장편소설] 뢰성 (제45회)
[장편소설] 뢰성 (제46회)
[장편소설] 뢰성 (제47회)
[장편소설] 뢰성 (제48회)
[장편소설] 뢰성 (제49회)
[장편소설] 뢰성 (제50회)
[장편소설] 뢰성 (제51회)
[장편소설] 뢰성 (마지막회)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