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4 장

1

(1)

 

대형려객기의 시창쪽에 변사향은 자리를 잡았다.

함께 가는 동료가 없는 그에게는 말동무가 없었다.

대양과 대륙을 넘는 먼 하늘길을 가자면 아무리 현대과학과 기술이 만들어낸 빠른 비행기라 해도 장시간 걸려야 한다. 조선으로 가는 길은 직행항로도 아니고 비행기를 몇번씩 갈아타야 했다.

관광이나 다른 일로 가는 사람이라면 무척 지루하거나 무료할수 있다.

그렇지만 사향에게는 오히려 동료나 말동무가 없는것이 마침이였다.

그처럼 별러오던 조선에 대한 방문을 위해 비행기를 탄 기회에 워싱톤거리를 달리는 택시안에서 해오던 아버지가 들려준 가정사를 계속 더듬어보고싶었다.

시창밖은 아무리 내다보아야 아무것도 없고 이따금 흩날리듯 하는 구름뿐이다.

사향은 두눈을 감았다. 운명직전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분명 심중에 풀지 못한 원한이 있는듯 괴로운 표정이였다.

누구에 대한 원망때문이였을가. 자신에 대한 자책이나 버러지처럼 짓밟히며 살았다는 가슴아픈 추억때문이였을가.

해방전, 그러니까 사향이 아직은 세상에 태여나기 전 일이라고 한다.

외양쇠와 달근의 집뒤켠에 경찰서장 고노라는 놈이 살았다.

형욱이와 부호또래인 쫄보놈의 애비였다.

나이 마흔을 넘겼는데 꼭 어른상체에다 아이다리를 붙여놓은것 같아 뒤에서는 병신아이인줄로 잘못 보고 안할 실수를 해서 곤욕을 치른 사람이 적지 않았다. 잰내비상통에다 털까지 부숭부숭한 놈이 어찌나 악착하고 포악한지 마을사람들은 먼발치에서 보기만 해도 길을 피했고 울던 아이들도 《고노가 오겠다.》하면 울음을 딱 그쳤다. 이놈은 조선사람을 버러지만큼도 여기지 않았다.

어느해 여름에 달근이 이놈의 자전거를 수리해야 할 일이 생긴적이 있었다.

술을 처마시고 타고가다가 도랑창에 구겨박았던것 같았다. 바퀴가 다 터지고 축이 엿가락같이 휘였다. 앞바퀴고 뒤바퀴고 살도 여러대나 꺾어졌고 사슬까지 몇토막 났다.

고노는 그런것을 누구한테 들려가지고 와서 다짜고짜로 고쳐내라고 하였다.

달근이 가만보니 자전거꼴이 험상한데다가 그걸 고치자면 얼마 벌지도 못하는 제 돈을 약차하게 밀어넣어야 했다.

괘씸한 생각이 굴뚝같이 치솟았다. 사방사처로 개싸다니듯 하며 마을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놈이 다른때도 쩍하면 자전거를 끌고와서 쥬브를 때내라, 기름칠을 하라 하며 돈 한푼 내는 법 없이 제 머슴부리듯 하는것인데 이번에도 공짜로 고쳐놓으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듣기 좋게 좀 시까슬렀다.

《서장나으리, 이렇게 모질게 망가진건 고치는것보다 새것을 한대 사는것이 나을것 같습니다.》

《새것? 새것이나 있는가?》

《나한테야 어디… 서장나으리가 함흥 같은데 한번 가면 어련할라구요.》

《함흥이나 가깝지만 그래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변상더러 고치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한테야 어디 변변한 부속이 있는가요. 이 사슬이나 살같은것을 사오자면 돈을 이렇게 차고 어디든 다녀봐야 하는데…》

《말이나 많다. 그러게 다니든 사오든 고치라고 하지 않는가.》

《정 고쳐서라도 타겠다면 부속을 살 돈이라도 얼마간 있어야 할텐데…》

《돈? 돈이나 있어야 한단 말이지. 좋아, 이따가 우리 집으로 오라.》

그리고는 힝 바람을 일구며 가버렸다.

그놈이 디뚝거리며 사라진 다음 달근은 나오지 않는 가래를 요란스레 톺아 퉤- 하고 뱉았다. 옆에 끌어다놓은 자전거를 발길로 힘껏 차넘겨뜨렸다.

손에 일이 잡히지 않고 속이 요글요글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놈이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던 말이 귀를 간지럽혀서 미련이 없지 않았다.

(설마? 혹시? )

달근은 바재이다가 밑져야 본전이겠지 하고 찾아가보기로 용단을 내렸다.

마침 고노는 점심밥을 처먹고 마루에 나와 앉아 부채질을 하며 누런 버덩이발을 열성스레 쑤시고있었다. 반주까지 했는지 얼굴이 불그레하고 두구멍이 휑하니 들여다보이는 코는 주독이 올라 더 새빨개졌다.

《네놈이 왔는가?》

달근을 보자 고노의 게슴츠레하던 눈이 대뜸 살기를 띠였다. 마루아래에 있는 게다짝에 발을 꿰더니 일어나 달근이더러 따라오라고 손짓하였다.

집대문곁에 있는 우리에서 목에 사슬을 건 말승냥이같은 개가 뛰쳐나와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고 앞발을 쳐들고 길길이 뛰며 사납게 짖어댔다. 고노가 뭐라뭐라 해서야 좀 잠잠해졌는데 그래도 경계심은 늦추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달근은 그런 개쪽을 흘끔흘끔 보며 조심조심 고노의 뒤를 따라갔다.

(이놈이 자전거부속을 사올 돈이나 좀 주면 되겠는데 방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어디로 끌고가는거야. 혹시 무슨 내 힘이나 손을 빌릴 일이 생겼는가?)

달근은 미심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조금 더 가니 구린내가 물씬 풍겼다.

고노놈네 변소간같았다. 앞서걷던 고노놈은 아닐세라 변소문을 활 열어젖히고 달근을 돌아보았다.

《야, 이놈아, 여기 엎드려 이거나 핥아라. 그러면 돈이나 준다.》

고노는 일본말과 조선말을 섞어가며 씨벌이더니 대뜸 뒤따라선 달근의 멱살을 잡아 태를 쳤다. 체통은 병신같아도 칼을 찬 순사라고 유도흉내는 내는것 같았다.

너무도 뜻밖이고 무방비상태던 달근은 개구리처럼 두다리와 두팔을 짝 벌리며 변소앞에 어푸러졌다.

《사람값에도 못 가는 조선놈이 나더러 돈을 내라? 그 잴잴거리던 혀바닥으로 저걸 핥아라. 그러면 돈을 준다.》

고노는 변소바닥을 가리켰다.

《서장나으리, 이거 왜 이러시오. 서장나으리 자전거를 고칠 부속살 돈이 필요하다는데 이런 법이 어디있소?》

《달근이, 아직도 입이 살았구나. 이런 법이 어디있는가구? 이게 너희들을 다루는 우리 일본법이야.》

고노는 게다짝을 신은 한쪽발로 달근의 머리를 내리눌렀다. 달근이 얼굴을 땅에 닿지 않겠다고 목대를 꿋꿋이 쳐들며 소리질렀다.

《돈을 안 주면 말것이지 이런 짐승보다 못한짓을 한단 말이요. 이놈아-》

달근의 입에서 황소울음소리같은 피타는 절규가 흘러나왔다.

《칙쇼, 데메마데 오터오 부죠끄스루 끼까?》(개자식, 너까지 나를 모욕할셈인가?)

고노놈은 그 밭은 다리를 들어 달근의 머리며 잔등이며를 죽어라고 짓밟았다. 변소에서는 악취가 사정없이 풍겨나왔다. 나중에는 말승냥이같은 개를 풀어놓아 물어뜯게 하였다.

달근이 피투성이가 되고 실신했을 때에야 끌어다 대문밖에 내던졌다.

날이 어득어득해오는 때에 이 사실을 안 외양쇠와 마을사람들이 달려와 그를 업어갔다.

《달근아, 달근아. 정신차려라.》

외양쇠가 목에 걸었던 토목수건으로 피거품이 흐르는 달근의 입술과 상처자리에 엉켜붙은 피자국과 흙덩이들을 닦아주었다.

정신을 차리고 외양쇠와 마을사람들을 알아본 달근이 가슴을 두드렸다.

《외양쇠야, 우린 어째 이렇게 살아야 하니. 저 고노놈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아- 원통하다. 우린 왜 버러지만도 못하단 말이냐.》…

그때 아버지는 사향이에게 나라가 없던 세월 할아버지가 당했던 이런 사실을 알려주며 가슴아픈 후회의 말도 했다.

《이렇게 살아온 할아버지나 나에게 사람대접을 해준건 우리가 떠나온 저 북쪽의 공화국이였다. 할아버지의 기술과 재간도 중히 여겨주고 사람답게 살게 해주었지.

너의 할아버지가 내 소꿉친구 형욱이 아버지가 감방안에서 해준 말을 조금만 깊이 새겨들었어도 정든 고향땅을 떠나지 않았을거구 이국땅에 와서 또다시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거다.》

나라없는 백성은 금수의 신세라지만 자기 조국과 민족을 버리고 등진 사람은 버러지보다도 못하였다.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와서 목숨을 이어보려고 무슨 일인들 안해보고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인들 얼마나 쳤던가. 그랬건만 그 땅에서는 빼앗겼던 제 나라, 제 고향에서보다 더한 기아와 빈궁, 멸시와 천대가 뒤따랐다.

사향의 할아버지 변달근은 손재간이 좋고 기술도 있었지만 빈부와 인종차별이 극심하고 약육강식이 살판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사람값에 도저히 들수가 없었다. 그 나라 땅, 사회에서는 인간의 량심이나 의리, 인정 같은것은 꿈에서도 생각할수 없고 권모술수, 사기협잡, 감언리설 등 별의별 악착하고 음흉하고 야비한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라도 남을 딛고 올라서야 살아나갈수 있고 피투성이싸움에서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하였다.

변달근이 고삭은 버들고리짝을 등에 지고 부호의 목숨을 건져보겠다고 원자탄공포증에 남쪽으로 나갔다가 다시 미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이리저리 방랑하던 끝에 정착한 곳이 애틀란타였다.

시작한 첫 일이 쓰레기장 뒤지기였다. 쥐새끼조차 냄새를 맡아보고 피해 달아나는 음식찌꺼기에서 먹을것을 얻어야 했고 몸에 걸칠것도 거기서 주어야 했다. 거처할데가 있을리 만무하였다. 그것 역시 쓰레기장을 뒤져 주어온 지함쪼박을 꿰매고 그우에 비닐쪼박을 씌운 집 아닌 《집》, 그 나라에 흔한 《비닐하우스》라고 할지 《지함집》이라고 할지 한데서 겨우 눈비를 막았다.

버러지취급을 당하던 목숨을 건져보겠다고 정든 고향과 고국을 떠나 타향에 발을 붙이고 받은 첫대접이 쓰레기장 뒤지기와 변소간 인분푸기였다. 그것을 실어나를 손달구지조차 없어 헌 양철바께쯔에 담아 어깨에 메고갔다.

시내변두리에 남새를 심어 팔아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도 짜들대로 짜들어먹고 참새에게 굴레를 씌울만치 약은 놈이여서 달근이 타국에서 온 이주민이라는것을 알고는 헐값으로 쳐주었다.

울며 겨지먹는 격으로 그 일이라도 떼우지 않자니 뻔히 알면서도 어쩔수 없었다.

인분바께쯔를 메고 오가는 길에서 더러운 냄새를 풍긴다고 욕설은 얼마나 듣고 주먹세례는 몇번이나 당했던가.

해방전 고향마을에 살던 일본놈 경찰서장 고노에게서 당하던 멸시와 수모와 다를바 없었다.

그래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달근은 한두해 지나 채마전에 인분을 날라다 파는 연고로 거기서 얼마간의 남새를 얻을수 있었다. 그것으로 안해더러 김치장사를 하게 하였다.

성격이 걸걸하고 일손이 걸싼 함경도태생의 이 녀인은 음식솜씨 또한 어지간한데다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달라붙었다. 노란 배추포기에 낙지나 멸치젓 같은것을 새빨간 고추와 채친 무우를 버무려 소를 만들어넣고 담가서 익힌 통배추김치는 나타나자마자 인기가 대단하였다.

그곳에 건너간 조선사람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양놈이나 흑인들도 곧잘 군침을 삼켰다.

《어- 쩡하다.》, 《어허- 시원하다.》하면서 포기채로 와작와작 씹어 울대뼈가 꿈틀하게 삼키거나 김치물을 들여마시고 입을 다시는 사람이 많았다.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찾아오는 사람, 주문하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났다.

어린 부호조차 어머니의 시중을 드느라 눈코뜰새가 없었다.

(이놈들, 조선사람이 다 죽은줄 알았더냐? 내 비록 제정신이 아니여서 정든 고향을 등지고 떠나오는 미친짓을 했다만 네놈들에게 호락호락할 이 변달근이 아니야.)

달근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반항심이 꿈틀거렸다. 이발을 으드득 갈며 시퍼렇게 마음의 칼을 갈았다.

그는 인분통을 벗어던졌다. 이국생활에 어지간히 눈이 트고 미립이 생기자 자기의 그 발발한 꾀와 장끼를 발휘해볼 심산이였다.

안해더러 판을 좀더 크게 벌려 김치장사에다 비빔밥, 떡국, 평양랭면까지 만들어 곁들어 팔게 하고 자기는 본시 가지고있던 기술과 재간으로 자그마한 철물가게를 차려놓았다.

어느날 달근이 술까지 한잔 했는지 얼근해서 안해가 김치와 음식을 파는 곳에 나타났다. 기분이 어지간히 좋았다. 오래간만에 보는 웃는 얼굴이였다.

《아니, 당신이 오늘 어떻게 된거예요? 대낮에 술까지 마시고 호사하면서…》

《호사야 무슨… 여보, 쥐구멍에두 볕이 들 날이 있다구 한가지 좋은 수가 생겼소. 옛다, 부호야, 이걸 먹어라.》

달근은 주머니에서 봉지를 꺼내여 제 어머니곁에서 부지런히 시중을 드는 아들 부호에게 내밀었다.

《아버지, 이게 뭐나요?》

《그게 가을이면 우리가 고향마을 뒤산에 올라가 줏던 밤이다.》

《야!- 밤, 정말이구나.》

《네 생각이 나고 고향생각이 나서 한봉지 샀다. 당신도 한알 맛보구려.》

《이게 어찌된 일이요? 해가 서쪽에서 뜨겠수다.》

안해도 벙실 웃으며 이미 부호의 손에 넘어간 봉지에서 밤 한알을 꺼냈다. 입에 대지는 않고 뱅글뱅글 돌려가며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그 밤 한알조차 무던히 향수를 불러오는 모양이였다.

《여보, 내 오늘 좋은 자리를 한곳 봐뒀소.》

《좋은 자리라니요?》

안해가 밤알을 도로 아들에게 넘겨주고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여기서 한참 들어가느라면 세가닥길이 합쳐지는데가 있소. 사람의 왕래가 많고 눈길을 끌수 있는 곳이란 말이요. 거기다가 이 음식점이나 철물가게를 차려놓으면 알도리가 있소.》

《아이구, 당신 꿈같은 소릴해요. 누가 그런 명당자리를 우리같은 굴러온 막돌에게 준단 말이요?》

안해는 바라지도 말라는듯 눈을 내리깔며 돌아앉았다. 귀밑에 벌써 서리가 내린 머리칼이 눈에 뜨인다. 입귀며 눈언저리에 실금같은 주름이 여러개 패였다.

그 곱던 얼굴이 이국살이 몇해어간에 폴싹 늙었다.

달근은 밝은 낮에 안해의 그런 모습을 보니 새삼스레 딴사람을 보는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내색하지 않고 계속했다.

《아따, 내 오늘 그곳 관리인을 만나구 오는 길이라니. 그 사람을 삶느라구 이렇게 한잔 한거구.

어찌겠소. 저 어린 부호에게 양복 한벌 못 해입힌 처지여서 손이 좀 떨리기는 했지만 공짜가 어디있고 돈이 못하는짓이 있나. 더 큰것을 봐야지.》

달근은 제 무릎을 철썩치며 호방하게 웃었다.

《모르겠수다. 눈을 펀히 뜨고도 생눈알을 뽑히는 나라에 와서 누가 누굴 속여먹는것인지…》

안해는 또 한번 눈을 내리깔며 시답지 않아하였다.

《아무러면 이 변달근이 속은 놈이 속여먹은 놈을 업고가는 격이 될가.》

달근은 이러며 부호가 보는것도 아랑곳않고 이번에는 제 안해의 어깨팍을 철썩 쳤다.

마음 푹 놓으라는것이였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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