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10. 오동진

 

(2)

 

량곡사건으로 영창에 들어갔던 량세봉이 검무관이 되였다는 소식이 총영안을 한바퀴 휘저으며 돌아갔다.

그가 임명을 받은 날 강연희가 여러권의 책을 들고 찾아왔다.

《오빠, 함께 있게 되여 참말로 기뻐요.》

강연희는 박씨같은 앞이를 드러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녀자는 진심으로 량세봉과 가까이 지내게 된것을 기뻐하였다.

《나도 아씨를 가까이 모시게 되여 기쁩니다.》

량세봉은 처녀의 정이 고마왔다.

《아이, 절 아씨라고 부르지 마세요. 거북합니다. 그저 연희 아니면 비서라고 불러주세요.》

《예, 거야 뭐… 그렇게 합시다. 비서아씨.》

《또또…》

량세봉이 습관된 부름말을 다시 입에 올리자 강연희가 곱게 눈을 흘겼다.

《아, 연희비서.》

그들은 즐겁게 소리내여 웃었다.

하기는 강연희나이에 이제는 아씨라는 부름말은 거두어야 할 때다.

물론 그 녀자의 말씨는 예나지금이나 시내물처럼 맑고 랑랑하고 뽀얀 윤기가 어린 얼굴도 한점의 티없이 청신하며 몸매 역시 철산시절처럼 날씬해서 앞모습도 뒤모습도 그지없이 어여쁘고 우아하다.

세월의 년륜이 이 녀자만은 피해가는듯싶다.

하지만 지나간 해와 달들이 뿌려던진 풍상고초야 어찌 피할수 있으랴. 그속에서 처녀는 마음의 키가 부쩍 커져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세련미가 풍기고 의젓해졌다.

몸에 맞게 지어입은 군복을 소가죽혁띠로 잘룩하게 묶은 그 녀자의 걸음씨는 독립군용사답게 억세여지고 고운 웃음이 남실거리던 눈빛은 세찼으며 필요한 자리에서는 자기의 주장도 서슴지 않고 내놓았다.

그러고보면 철산에서 망울터친 온실의 연연한 나리꽃이 바람세찬 만주의 림해설원에 옮겨져 독립군의 일점홍으로 더욱 향기롭게 활짝 피여난것이다.

강연희가 가져온 책은 규률과 질서와 관련하여 지휘관과 대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과 군사교범들이였다.

《우선 학습하세요. 어떤것이 총영에서 규률위반으로 되는가부터 똑똑히 알아야 할게 아닙니까. 무턱대고 규률위반이라고 해서도 안되고 규정도 모르면서 벌을 적용해서도 안되지 않습니까.》

《옳소. 연희비서가 옳은 말씀을 하셨소. 그러지 않아도 이런게 없을가 하고 생각하던중이요. 내 며칠간 골을 싸매고 규정학습부터 하겠소. 그리고 나부터 규률과 질서를 잘 알고 모범적으로 지키는 모범대원이 되도록 하겠소. 참 고맙소.》

량세봉은 진정을 담아 감사를 드렸다.

그날 저녁부터 량세봉은 그가 가져온 규정책을 통채로 외웠다. 며칠후에 강연희는 또 두툼한 책들을 한보자기 싸들고 왔다. 그것은 신흥무관학교에서 가르치던 군사훈련교재들이였다. 로씨야의 병법도 있었고 나뽈레옹의 병법도 있었으며 황포군관학교에서 리용해온 군사교범책도 있었다.

그속에는 《36계》를 비롯한 중국의 고대군사가들이 남긴 병서들도 있었다.

량세봉이 군사교련을 정식으로 받은 일이 없는것을 념려하는 처녀의 다심한 관심과 깨끗한 순정이 어려있는 책들이였다.

량세봉은 강연희의 남다른 보살핌과 지원에 깊이 감동되여 밤을 패워가며 병서들을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나서 검무관일을 착실하게 하기 시작하였다.

독립군에 발을 붙이고 며칠간 독립군의 일과생활에 섭쓸려보니 광복군총영이라는게 리상적인 무장집단이 못되였다.

무엇보다도 상하는 물론 대원들사이에 화목과 우애심이 부족하고 소대, 중대들에서 신분과 출신도들에 따라 끼리끼리 싸고돌고 쩍하면 말다툼이 생겨나군 하였다.

무장장비가 한심하고 후방공급사업도 정연하지 못하였으며 군복도 부족하여 입고온 농사군저고리를 새끼오리로 질끈 동이고 다니는 대원들도 있었다.

군기가 문란하여 일부 지휘관들은 호구지책에 급급해서 전투훈련을 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휘관들이 지휘하는 소대나 중대는 전투에서도 언제나 뒤자리만 차지하였다.

그런가 하면 주둔지주변 주민들과의 관계도 잘 가지지 않았다. 여름철이면 함부로 익어가는 강냉이나 수수이삭을 잘라오고 참외밭에 드나들어 주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원래 광복군총영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장대로서 그 어느 무장단체보다 질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무장조직이였다.

그러나 최근시기 규모가 커지고 여러 무장단체들과 무장조직들이 모여들면서 군기가 문란해지기 시작하였던것이다.

새로운 검무관이 자리에 앉았다는 소식이 돌아가자 량세봉의 방으로는 돌쩌귀에 불이 나도록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였다.

대원들도 찾아오고 지휘관들도 찾아왔다.

그리고 주둔지역 린근마을들에서 농사짓는 주민들도 왔다.

량세봉은 그 어떤 사리나 공명심이나 편견도 없이 제기되는 상소들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대원들과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놀라운것은 지휘관들과 대원들속에서 김한석에 대한 상소가 뻗닿게 들어오는것이였다.

김한석이 검무관사업을 한해가까이 하면서 적지 않은 사건들을 잘못 처리했으니 재심의할것을 요구하는 상소들이였다.

오동진총영장이 임명할 때에 슬쩍 몇마디 내비치였는데 그저 덮어버릴 일이 아니였다.

어느 한 소대장은 자기 중대에서 서너달사이에 열세명의 대원들과 소대장 한명이 도주하였는데 이것을 따지고보면 중대장과 김한석의 과오라는것이였다.

그 사람들은 주민가옥에서 호미, 낫을 빌려다가 쓴 한 대원을 영창에 끌어다놓고 무턱대고 계집질하러 갔다고 트집을 걸고는 마구 때리기까지 하였다는것이다. 며칠 고민하던 그 대원은 결국 이런데서 더는 있지 못하겠다고 볼부은 소리를 하다가 달아났다는것이다.

열세명의 대원과 소대장이 다 이러루하게 애매한 사건들에 걸려들어 독립군에서 영 떠났다고 한다. 그러며 하는 소리가 중대장은 총영밖으로 자주 나돌아가군 하는데 하사구에 있는 술집에 드나드는것을 여러번 봤다는 대원도 있다고 한다.

그들의 중대장이란 일전에 그를 량곡도적으로 몰아붙이던 5중대장 오광이였다.

량세봉은 그 열세명의 대원들과 소대장의 도주에 대한 상소를 일일이 적어가지고 파고들었다.

그런데 어느날 오광이 검무관실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그는 들어서자바람으로 개털모자를 량세봉의 책상앞에 던지듯 벗어놓고는 시누런 이발을 내보이며 왁작 고아대기 시작했다.

《뭐 당신이 검무관으로 벼락출세하더니 내 엉치를 쑤시고 돌아간다면서?… 그래, 량곡사고를 고발한데 대한 앙갚음이야?

내가 그래 하지 못할 고소를 했나? 그래 내 똥구멍 파보니 누렇더냐 시꺼멓더냐? 개자식, 쏴치우고말테다. 너죽고 나죽고야.

너따위같은 자식들이 뭐라고 독립군밥을 먹으며 10년을 넘기는 나를 감히 목치자고 달려들어?

그래 총영장이나 참모장이 이 독립군의 로병을 기생방에 몇번 드나들었기로서니 쫓아낼상싶은가?》

두볼과 턱부리에 시커먼 털이 부시시한 오광은 앞으로 튀여날듯 두드러진 퉁방울눈을 무섭게 디굴거리며 침방울을 마구 튕기면서 악에 받쳐 소리질렀다.

《중대장님.》

량세봉은 완전히 리성을 잃고 덤벼드는 상대를 지켜보다가 맞붙어 흥분하고 성내서는 안될 일같애서 침착하고 저력있게 불렀다.

《왜? 말해.》

《그러지 않아도 난 중대장님을 찾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기된것을 더 정확히 알아보지 않고 찾아가서야 이야기가 되겠습니까. 너무 흥분하지 말아주십시오.》

《흥, 흥분하지 말라구? 난 이 모든걸 내 자의로 처리한건 아니란 말이요. 참모장님께 다 이야기한거요. 물론 처리야 내가 했는가? 총영장님의 결재를 받아 참모장이 한게 아닌가? 헌데 왜 내 이름 거들어? 그놈들 제김에 달아나니 요즘 말썽거리가 없어져서 우리 중대가 모범중대가 됐어.》

오광은 기가 펄펄 살아올라 그냥 두덜거렸다.

다음날에는 참모장 김한석이 여전히 표표한 상을 해가지고 나타났다.

그는 상관답게 그의 방을 한바퀴 둘러보고나서 제잡담 책상앞으로 걸상을 당겨놓고 앉으며 차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말을 듣자니 내가 이미 심의하고 총영장님이 결론한 문제들이 이 방에서 재심의된다고 하는데 맞는 소린가?》

《예, 그러루한것이 좀 있습니다.》

《한쪽귀로 들어두고 한쪽귀로 흘려보내야 하는게 검무관의 일이요. 건건이 눈을 밝히다가는 머리가 터지는 일이요. 총영장님을 건드리는 일에 대해서는 그를 받드는 첫번째 보좌관으로서 나는 용서할수 없었소. 당신 못지 않게 엄격하게 채를 쳐서 걷어낸거요. 오광중대장이 당신더러 애송아지가 뿔돋기 전에 분풀이하느라고 두사람을 받아넘기려 한다고 했소. 주제넘는 일을 삼가하는게 좋다는거야. 우리 총영장님은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 수하 명장들을 제손으로 죽이고 패한 조조가 아니야.》

김한석은 이렇게 돌던지듯 욕설을 퍼붓고는 자리에서 성큼 일어나 선뜩한 눈총으로 노려보았다.

《흥!》

그는 한번 야단스럽게 코김을 불어던지며 방안에서 훌쩍 나가버렸다.

량세봉은 련이어 닥쳐들어 소동을 벌리는 사람들의 행악질에 정신이 얼떠름해져서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김한석이 뿌려던진 얼음장같은 랭기에 온몸이 금시 얼어들었다.

그는 한동안 얼쳐가지고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자리에 굳어져있다가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무겁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날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강연희를 만났다.

《어때요, 일해보니?… 대원들이 좋아하더군요. 검무관이 좋은 사람같다고 해요. 그 소리 듣기 좋아요.》

강연희가 잔조름하게 박힌 맑은 이발을 드러내며 남의 속은 알지 못하고 좋아하였다.

《좋은 사람같다구? 하…》

량세봉은 어이없는듯 피식 웃었다.

그는 밑도끝도 없이 물었다.

《강비서, 조조라는게 어느 나라 뭘하던 사람이요?》

《조조? 중국사람이지요.》

《중국사람… 나도 중국의 옛책들을 몇권 보긴 했는데 조조라는 이름은 생각나지 않더군. 어떤 사람이요?》

《이건 저에게 중국력사시험을 쳐보는가요. 중국의 후한 말기때 조조라는 위나라의 왕이 있었어요. 8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전중국을 제패하려고 하다가 오나라의 장수 주유에게 패하고말았지요.》

《왜 패했다오?》

《그건… 호호, 오빠가 중국의 고대장수들을 깨깨 알아서 뭘하나요.》

《글쎄 이야기해주오. 어째서 패했다오?》

그러자 강연희는 웃음을 거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음, 그건 말이예요, 그때 오나라의 주유가 반간계를 써서 조조로 하여금 수전을 앞두고 유명한 수전장수 두명을 죽이게 했지요. 주유는 그다음에 화공전술로 조조의 80만대군을 하루밤새에 다 물속에 처넣고 승리를 거두었던거지요. 그런데 갑자기 조조를 알아선 뭘하나요. 력사공부도 하시나요? 호호.》

강연희는 강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저녁시간에 량세봉과 이야기를 나누는것이 즐거워서 가볍게 소리내여 웃었다.

《음, 그렇구만. 그러니 저들이 그 수군장수쯤 된다는건가. 그러면 나는 누구란 말인가. 주유?》

량세봉은 별이 아물거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쳐다보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보지요? 말씀해요. 한은 나누어가지면 줄어들고 속앓이는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어주면 쉽게 낫는다는 소리 있잖아요.》

강연희는 틀림없이 고민거리를 무겁게 안고있는듯싶은 량세봉의 낯빛에 마음을 쓰며 다시 급하게 졸랐다.

량세봉은 객적은 소리를 강연희에게 꺼내놓는듯싶어 입을 다물어버렸다.

하지만 끝내는 어제부터 있었던 일들을 짤막짤막하게 설명하였다.

《그 사람들이 앙갚음이란 말을 꺼내놓으니 난 할 말이 없어지더구만. 하참.》

량세봉은 말을 끝내며 길게 한숨을 지었다.

《오빠의 일거리가 정말 만만치 않군요. 참모장과 오광중대장은 원체 한배를 타고가는 사람들이예요. 참모장이 중대장을 할 때 오광은 그밑에서 소대장, 부중대장을 한바가 있어요. 나도 검무관일이 오빠에게는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들어보니 걱정이 돼요. 너무 속을 쓰지 마세요.》

강연희는 심중한 안색으로 걱정하였다.

《하여튼 해보는거지요. 오동진총영장님의 걱정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총영장님이 뭘 걱정하시였게요?》

《나를 검무관으로 임명하면서 부대관리에서 겪고있는 여러가지 고충을 툭 털어놓고 말씀하시더군요. 일해보니 우리 총영안의 분위기가 생각하던바와는 다른것 같습니다. 아직도 정돈되지 못하고 내부가 단합되지 못하고… 천마산무장대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대장을 중심으로 하나처럼 뭉쳐있고 서로서로 도와주는 상부상조의 기풍이 서있고 싸움에서는 다들 몸을 아끼지 않고… 생각이 많습니다.》

《예, 그래서 저의 아버님도 걱정이 많습니다. 오동진총영장이 김형직선생님의 가르치심과 후원속에서 갈래많던 독립군부대들을 다 모여놓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큰 싸움 한번 온전히 벌리지 못하고 모든게 다 어수선합니다. 하나하나 바로잡혀가는것이 눈에 뜨이긴 하지만 너무 속도가 완만합니다. 왜놈들은 점점 만주에 깊숙이 마수를 뻗치고 전면전쟁의 기회를 노리고있는데 우리도 빨리 준비를 다그쳐야 할것 같습니다.》

《옳은 주장이요. 헌데 그걸 총영장님께 제기해봤습니까?》

《그럼요.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숨을 쉬군 하지요. 무장부대를 지휘한다는게 독립운동의 한갈래를 이끄는것보다 훨씬 힘든가봐요.》

강연희소리에 량세봉은 고개를 두세번 끄덕거리였다.

오동진에게도 새삼스러운 문제는 아닐것이다. 굼뜨지만 달라지고있는것은 사실이다. 나도 오동진총영장을 도와 부대를 일신시키는데 미력하나마 기여하자.

량세봉은 새삼스럽게 이런 결의를 다지였다.

강연희는 헤여지면서 제기된 문제를 꼭꼭 총영장에게 보고하고 결론을 받아서 처리하라고 이야기하였다.

참모장 김한석을 주의하라는 말도 하였다.

그 사람은 자기와 척진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물어메쳐버리는 야심군이라고도 말하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강연희는 이렇게 다소 격앙된 음조로 말을 잇다가 입을 꼭 다물고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자기의 처소를 향하여 총총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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