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10. 오동진

 

(4)

 

며칠후 량세봉은 오동진을 따라 팔도구로 갔다.

오동진이 량세봉을 김형직선생님옆에 가까이 내세워준것은 그로서의 웅심이 있었다. 그는 량세봉과 자주 접촉하면서 이 사람을 키워내기에는 자기의 힘과 지략이 부족하다는것을 절감하게 되였다.

그는 학식도 높고 뜻도 높으며 지략이 출중하신 김형직선생님의 지도를 량세봉이 직접 받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이때부터 량세봉은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을 수시로 찾아뵙고 고귀한 가르치심을 직접 받아안게 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남만일대에서 독립군세력을 대표하는 오동진이 찾아올 때마다 그와 함께 오는 량세봉을 반겨주시였다.

선생님께서는 그에게 국제국내정세도 폭넓게 일깨워주시면서 량세봉이 보수적인 민족주의견해에서 벗어나 진보적인 세계관을 가지도록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광복군총영에 자주 오시여 독립운동가들을 만나주시였는데 량세봉은 늘 자기 집에 모시고 신변을 지켜드리고 숙식에 성의를 다하였다.

량세봉은 김형직선생님의 비범한 인간상을 끝없이 신뢰하였으며 그분을 스승으로, 독립운동의 걸출한 선배로, 지도자로 따르고 배우기 위하여 애를 썼다.

이 과정에 량세봉은 김형직선생님과 사상정신적으로뿐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정을 맺게 되였다.

어느해 봄이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또다시 광복군총영까지 먼길을 오시여 독립운동안에 조성된 엄중한 내분과 의견상이를 해소하기 위한 회의를 여시고 불면불휴의 노력을 기울이시였다.

여러가지 문제로 옥신각신하며 제나름의 주의주장을 떠들던 여러 파벌의 두령들이 공명정대하고 사리정연하며 애국의 얼이 넘치는 김형직선생님의 가르치심을 받자 수그러들었다.

너그러운 도량과 로숙한 수완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일변되고 만장이 우뢰같은 박수로 선생님께서 펼쳐주시는 독립운동의 웅지와 경륜에 격정을 터칠 때 량세봉은 끓어넘치는 경탄과 흠모의 정을 금할수 없었다.

회의기간 선생님께서는 내내 량세봉의 간곡한 청으로 그의 집에 처소를 정하시고 숙식을 하시였다.

선생님께서는 련 이레동안 내내 등잔불밑에서 글을 쓰시고 사색을 기울이며 밤을 지새우군 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잠자리가 불편하고 식사가 풍성하지 못하여 몸둘바를 몰라하는 량세봉과 김씨와 윤재순에게 밝은 미소를 지으시고 소탈한 어조로 위로하군 하시였다.

어머님, 아주머니, 독립운동자들이 언제 호사를 바라며 다니겠습니까.

이만하면 사실인즉 너무 과분한 대접입니다.

이제는 나도 어머님이 해주시는 오곡밥과 총각김치와 토장국에 맛들었습니다.》

그러면 김씨와 윤재순은 자기들의 크지 않은 성의를 달게 받아주시는 선생님의 스스럼없는 겸허한 말씀에 더욱 송구스러워 고맙다는 인사만 곱씹어올리군 하였다.

그리고 산나물 한가지라도 더 지성껏 차려드리기 위하여 온갖 지성을 다하였다.

김형직선생님의 정력적인 지도밑에 회의가 성과적으로 끝나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모시고 밥상에 마주앉았을 때였다.

이날 량세봉은 윤재순이 오래동안 보관하여온 중국에서 으뜸가는 명주로 일러주는 모태주 한병을 밥상에 올려놓았다.

량세봉은 노란 놋잔에 술을 붓고나서 말씀을 드리였다.

《선생님, 전 선생님이 술을 안하시는걸 알고있습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원래 술을 극력 삼가하군 하시였다.

그 시절에는 만주의 혹한속에서 벌리는 독립운동의 나날에 얻은 위장병으로 술을 입에 대지 않고계시였다.

《그런데 오늘 이 잔만은 받으셔야 합니다.

이건 또다시 사분오렬될번 했던 독립운동을 구원해주신 선생님께 드리는 감사의 잔입니다.

사실인즉 이번에 저도 선생님의 가르치심에서 또 많은걸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허허… 회의가 성과적으로 끝난것이 어찌 나 하나의 공로겠소.

오동진, 리청천, 김좌진… 다 어떤분들이시오. 일본놈들이라면 이를 가는 사람들인데 좀 생각들이 한발자국씩 삐져나가 그렇지 그 바탕이야 어데 가겠소.

난 그저 그네들의 그 마음의 뿌리에 불을 달아주었을뿐이요.

좋소. 량중대장이 덕담까지 받쳐주는 잔인데 받으리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이렇게 헌헌히 웃으시며 흔쾌히 량세봉이 드리는 잔을 받으시였다.

량세봉은 선생님께 산도라지를 무친 찬그릇을 가까이 옮겨드리며 또 한잔을 부어드리였다.

이번에는 좀 숫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말하였다.

《이 잔도 받으셔야 합니다.》

《허, 그런데 중대장은 왜 안하오.

그 술병을 이리 주오.

술군들의 말을 빈다면 술이란 부어주는 재미로 나눈다는데 나도 붓기요.》

《그럼 부어주십시오.》

량세봉은 김형직선생님께 사기술병을 넘겨드리며 무랍없이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 부어주신 잔을 받아든 량세봉이 술잔을 상우에 올려놓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씀드리였다.

《고맙습니다. 사실은 제가 오늘 선생님께서 술을 못하시는걸 알면서도 이렇게 술을 낸 리유가 있습니다.》

《술을 내는 리유? 음, 글쎄… 밥상이 색갈이 다르다 했더니 무슨 속궁냥이 따로 있었구만. 들어봅시다.》

《저 다름이 아니구… 선생님께 이 술기운을 빌어 소청을 드릴게 있습니다.

헌데 받아주시려는지 과히 걱정부터 앞섭니다. 사실은 그래서 이 술로 담을 부풀어올려놓고싶었던것입니다.》

량세봉은 이렇게 여전히 어줍은 투로 말씀드리고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허허… 그 소청이라는게 어마어마하구만. 어서 꺼내놓소.》

《선생님, 저의 소청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선생님앞에서는 언제나 막내동생처럼 천진스러울 정도로 속깊이 파묻어놓은 마음속비밀도 꾸밈없이 퍼올리는 량세봉이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도 량세봉의 담대하고 틀잡힌 심장밑에 고여있는 솔직하고 착한 마음씨를 언제나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주신다.

《허허이 남만을 쩡쩡 울리고있는 배짱드센 싸움군에게도 이렇게 마음이 여린데가 있었던가.

어서 말하오. 난 량중대장의 소청이라면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 심산이요.》

《그렇습니까?… 됐습니다. 약속하시였습니다.

저의 소청이라는게 사실인즉 어마어마한것입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참말로 별을 따고싶어 하는, 혼맹이가 쭉 빠진 청이라고 할겁니다.

감히 어떤분에게 제가 도대체 뭐라고 그렇게도 무엄한 청탁을 드리는가구 저를 나무람들 할겁니다.》

량세봉은 이렇게 또다시 그 소청이라는걸 꺼내놓았다가 단번에 선생님으로부터 퇴를 맞을가봐 념려가 앞서 무춤 말을 멈추고는 선생님을 우러르며 숨을 가라앉히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무엇인가 서뿌르게 꺼내놓지 못하는 소청을 묻어안고 바재이는 량세봉을 넌지시 바라보시다가 호탕한 웃음부터 터치시였다.

《중대장이 오늘은 웬일이시오?

언제나 내앞에서는 마음속 밑바닥을 다 드러내놓더니만, 난 안팎이 다른데 없는 량중대장의 그 모양새가 좋소. 자, 어서 말해보오.》

《저이런겁니다. 저는 아직 길지 않게 살았지만 훌륭한 스승들을 모셨습니다.

어린시절에는 강서명선생님의 문하에서 글을 깨치고 애국의 넋을 키웠습니다.

다음에는 천마산무장대에서 최시흥대장님을 모시고 용맹과 슬기를 닦았습니다.

지금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조선독립운동의 불변의 원칙과 백승의 전략과 전술을 배우고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애국자의 참모습을 따라배우고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계시는 한 조선독립운동은 절대로 후퇴나 좌절이 없을것이며 선생님과 함께라면 이 량세봉도 조선의 무장으로 자기 몫을 하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이 량세봉은 평생토록 선생님을 조선독립운동의 유일무이한 지도자로, 대선배로, 스승으로 높이 모시고저 합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이 량세봉의 충의를 받아주시였으면 합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평소에 품어왔던 속생각이라 물쏟듯 거침없이 꺼내놓는 량세봉의 한껏 흥분한 열변에 몇번 손을 저으시다가 그의 소청의 의미에 접하자 다심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량세봉중대장, 뭘 새삼스럽게 내게서 다짐을 받으려나. 난 량중대장과 사귀였던 그때부터 량중대장이야말로 우리의 지원의 뜻을 이어받을 조선독립운동의 동량이 되리라는것을 믿어마지않았소.》

《선생님께서 저를 그렇게 믿어주시니 제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소청이라는걸 이자리에서 토설할가 합니다.

저는 선생님을 형님으로 모시고싶습니다,

저를 동생으로 받아주시였으면 합니다.

저는 평생 선생님을 저의 가장 귀중한 형님으로 모시고 따르고 받들어가렵니다.

제 절대로 선생님을 욕되게 하는 속뼈 무른 용렬한 동생이 되지 않겠으니 저를 슬하에 받아주십시오.》

《그러니 의형제로?》

《그렇습니다.》

량세봉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드팀없는 어조로 대답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예지로 빛나는 어글어글한 두눈에 그윽한 빛을 담으시고 량세봉의 거쿨진 모습을 잠시 더듬으시였다.

사귀여볼수록 사람됨됨이 진국이여서 정이 두터워만지는 사나이다.

입이 한번 열리면 사리분명한 웅변이 청산류수처럼 흘러나오는데 꺼내놓는 마디마디에 씨알이 박혀있어 미래가 촉망되고 대견스럽기 그지없으시였다.

《좋네!》

김형직선생님께서 드디여 장쾌한 어조로 말씀하시며 잔을 드시였다.

《자, 동생도 잔을 들게. 내 오늘 앉은자리에서 장수동생을 얻게 되였군. 우리 평생 변치 말고 독립의 혈전장에서 형제가 되여 싸워나가자구.》

《고맙습니다, 선생님!》

속이 조마조마해서 선생님의 하회를 기다리던 량세봉은 너무도 감격에 겨워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김형직선생님앞에서 정히 절을 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그의 손을 잡아주시며 량세봉의 실한 허리를 꽉 끌어안으시였다.

이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김씨에게 맏아들 량세봉의 의형의 자격으로 깍듯이 인사를 올리고 윤재순과 량세봉의 여러 동생들로부터 례법에 따라 다시 인사를 받으시였다.

량세봉은 물론 온 집안식구들이 독립운동의 걸출한 지도자이시며 독립운동자들의 선망을 한몸에 받고계시는 위대한 성인을 자기 가정의 웃분으로 모시게 되였다는 기쁨과 감격에 휩싸였다.

다음날 량세봉과 윤재순은 김형직선생님을 따라 팔도구에 가서 강반석녀사와 자제분들께 의형제의 동생내외로 인사를 올리고 뜻깊은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왔다.

뒤날 강반석녀사와 윤재순도 형님, 동생으로 부르며 각근하게 지내였다.

이렇게 시작되고 두터워진 김형직선생님과 량세봉의 혈연의 뉴대는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신 후에도 대를 이어 계속되였다.

1926년 6월 김형직선생님께서 애석하게 서거하시였을 때 량세봉은 수백리길을 한달음에 달려가 오동진과 함께 상제가 되여 장례식을 주관하였다.

윤재순도 함께 가서 강반석녀사를 도와 부엌일을 맡아하였다.

량세봉은 당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자주 뵈옵군 하였는데 10대의 소년이시였던 수령님의 위인적풍모에 완전히 심취되여있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량세봉은 독립운동자들의 학교로 만주땅에서 소문났던 화성의숙에서 군사를 배우도록 수령님을 직접 추천하였다.

여러명의 독립운동원로들이 김일성동지의 나이를 가지고 아직은 때가 너무 이르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량세봉은 꿋꿋이 주장을 폈다.

《나이가 무슨 대수요. 성주를 어린 소년으로 보지 마오. 그는 남아대장부요. 이제 성주는 군사까지 배우면 날개돋친 호랑이가 될거요.》

참으로 김형직선생님과 의형제로 두터이 맺어진 우의는 량세봉을 1920년대가 저무는 남북만주에서 왜놈들을 전률케 하는 독립군의 용장으로 우뚝 세워준 사상정신적 밑거름이 되였다.

김형직선생님의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활동과 선생님의 뜻을 받든 오동진과 량세봉을 비롯한 량심적이며 진보적인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에 의하여 드디여 만주의 각지에 할거하면서 호상 반목질시하며 끝없는 론쟁과 때로는 류혈충돌까지 벌려오던 독립운동단체들이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로 압축되였다.

이어 만주의 독립운동의 통일성을 보장하기 위한 유일당으로서 조선혁명당이 정식 조직되였다.

조선혁명당은 자기의 강령에서 《민족주의력량집결, 새로운 혁명리론과 방법의 정립으로 조선독립운동을 완수하며 국민부를 령도하는 유일정당》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만주의 수백만 교포들의 거주지역과 동포들에 대한 통일적지도를 담당한다고 명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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