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4 장

4

(2)

 

사향은 혼자서 평양거리를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은 안내원 혜정이를 찾지 않기로 하였다. 아침에 찾아오겠다고 전화가 온것을 오늘까지 혼자있고싶다고 했다. 북조선에 가면 지정된 대상과 지정해주는 사람들만 만나게 돼있지 혼자서는 제마음대로 한발자국도 움직일수 없다던 미국이나 남조선사람들의 주의사항에 반감이 들어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향의 그런 심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혜정은 전혀 동이 다른 소리를 하였다.

《사향선생님, 평양에 와서 첫 밤을 잘 지내셨나요? 식사랑은 구미에 맞아요? 혹시 몸이 불편해서 혼자 계시겠다는것은 아니겠지요?》

혜정이는 첫인상 그대로 역시 발랄하게 문안도 거침없었다. 오돌차고 해죽거리며 두볼에 보조개를 파는 얼굴이 눈앞에 보는것처럼 방불히 떠올랐다.

《아뇨, 혜정양. 불편한 점이 없어요. 식사도 잘하고 쩡한 김치맛에 밥 한그릇을 다 축냈어요. 그저 어쩐지 오늘까지 혼자있고싶어서…

오전에는 호텔주변거리를 거닐어보고 오후엔 본사와 련계를 취해보겠어요. 그러니 혜정양의 수고를 끼칠것까지는 없을것 같아서…》

《선생님, 혼자 나가시는건 마음을 놓아도 됩니다. 다만 길을 헛갈릴수 있으니 오늘은 먼데 가지 말고 호텔이 보이는 주변에서…》

《아유, 찬찬하기란. 명심하지요.》

자기없이 혼자 나가면 안된다고 펄쩍 뛸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을 놓아도 된다고 했다. 돈지갑을 노리는 도적도 없고 불량배도 없으며 총기류공포같은것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그 한마디에 다 담겨진것 같았다.

그렇지만 길만은 헛갈리지 말라고 걱정하지 않는가.

친혈육인 동생이 낯설고 물설은 타향에 온 언니에게 일러주는것 같아서 가슴이 훈훈하였다. 만나면 이번에 자기가 조선에 오게 된 사연을 터놓고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고향이 함경도의 어디라는것과 비록 누렇게 퇴색하기는 했지만 대를 물려오는 귀중한 사진을 꺼내놓고 거기에 찍혀있는이들의 후손들을 찾을수 없겠는가를 토론해보고싶은 욕망까지 불쑥 솟구쳤다.

안내원과 전화를 끝냈는데 이번에는 나들문이 열리며 호텔관리원처녀가 나타났다. 머리를 다소곳이 숙여 인사하고는 방금 혜정이처럼 밤에 잠자리는 편안했는가, 불편한 점은 없었는가고 물었다.

키가 쭉 빠지고 몸매가 날씬한 처녀였다. 얼굴이며 차림새를 별로 치장하지 않았는데도 아릿다와보였다.

《선생님, 부탁하신 신문을 가져왔습니다.》

《고마와요.》

《아침식사는 가져올가요, 식당에서 하시겠습니까?》

《식당에서…》

《그럼 어제 그 탁에 차려놓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해요.》

관리원처녀는 들어올 때처럼 조용히 나갔다. 안내를 맡은 혜정이 역시 빈틈이 없는 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신문을 벌써 다 맞물려놓은것이다. 어제 도착하자바람으로 품을 들여 그동안의 신문을 읽은탓에 오늘은 벌써 《로동신문》이 눈에 설지 않았다. 신문제호가 안겨오고 그아래 기사와 사진들이 눈길을 끌었다. 모든 면들에서 강국건설에 떨쳐나선 나라의 숨결과 기상이 풍기고있었다.

그는 이날 신문을 다 보고 아침식사까지 달게 한 다음 호텔현관을 나섰다.

어제는 비행장에서 승용차를 타고오면서 본 광경이라면 오늘은 걸어서 더 가깝게 보게 되는 사람들과 거리풍경이라고 할수 있었다.

차안에서 내다보던 광경과 다를바 없었다.

평양은 확실히 특이한 도시같았다. 사람의 눈뿌리를 뽑고 머리가 휘휘 내둘리는 아찔한 건물이나 번쩍번쩍하며 현혹시키는것은 없어도 거리형성과 건축물들이 시원하고 웅장하고 조화롭고 깨끗하였다. 그 하나하나에 무슨 의미나 뜻이 깃들어있는것 같았다.

고상하면서도 친절성이 느껴지고 안정감을 주었다.

하늘은 왜 이리도 맑고 해빛은 어쩌면 이리도 찬란할가.

거리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활력이 넘쳐나고있었다. 옷차림이 단정하고 걸음걸이가 씩씩하며 얼굴이 밝았다. 모든 사람들이 열렬해보이고 지향이 있고 목적하는것이 있으며 그래서 시간을 아끼고 바쁜 걸음을 하는것 같았다.

남조선의 허민우따위는 평양에 가서 지칠대로 지친 모습, 기아에 허덕이고 전쟁공포에 휩싸인 북조선사람들의 병들고 침울한 얼굴을 어떻게 대하겠는가고 했다. 어디 뒤골목에 들어가면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겠는가.

사향은 그 알량한 남조선차관의 말은 믿을것이 못된다는것을 이미 깨닫고 혀를 깨물었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는 지꿎은 타성과 의심으로 해서 거리의 뒤모퉁이에도 걸음을 해보았다.

방금 앞거리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그대로이지 다른 광경은 아무리 살펴보아야 없었다.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어린것들도 없고 소매치기나 깽도 없다.

사향은 상념에 잠겨 발볌발볌 걸음을 옮겼다. 평양의 뒤뜰안은 오가는 자동차도 적고 사람들의 왕래가 붐비지 않아서 사색을 좋아하는 그에게는 더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는 몇걸음 걷다가 어디선가 애들의 명랑한 웃음소리와 노래소리가 들려와서 머리를 들었다.

분명 해바라기꽃송이를 만들어서 2층으로 된 아담한 건물의 처마에 원을 그리며 한송이한송이 붙였는데 그 한복판에는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글이 한자씩 빨간 옷을 입고 들어앉아있었다.

그 글발이 해빛을 받아 유난히 환하게 또렷하게 보이는 건물앞 넓은 마당에서 소년, 소녀애들이 손풍금반주에 맞추어 나풀나풀 춤을 추고있었다.

《아이, 저 귀염둥이들…》

분명 어제 비행장에서 들어오면서 본거리를 달리던 모든 차들을 세워놓고 우선권을 부여받아 길을 건너가던 그또래의 어린이들이였다. 행차가 요란스럽던 마치 그 애들인듯싶어 반가움이 앞섰다. 손풍금을 타는 처녀는 원을 짓고 춤을 추는 애들쪽을 자주 넘겨다보며 열정적으로 건반을 눌렀다. 조선치마저고리를 단정하게 입었는데 조화로운 곡선미와 육체미를 엿보게 하는 머리와 어깨와 온몸이 선률에 따라 자연스럽게 물결쳤다. 원을 지은 어린이들의 한가운데서는 다른 한 처녀가 그애들과 꼭같이 춤을 추고있었다.

오동보동한 두볼, 머루알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그들은 춤을 추면서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자꾸 캐득캐득 웃었다. 그 애들의 얼굴에는 한점 티도 그늘도 없었다. 손풍금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소리가 그지없이 맑고 챙챙하였다.

어느 애든지 한달음에 달려들어가 담쑥 안아주고싶었다.

가슴이 짜릿해지며 또 다른 애의 얼굴이 떠오른다. 퍽 낯익다. 그러나 그는 웃지 못하고 온몸이 온통 피칠갑이 되였다. 이게 누구냐? 네가 어떻게 이곳에 와서 이 꼴이 됐냐? 머리를 흔들었다. 아들애는 없다. 다시 웃고 노래부르며 춤추는 어린것들이 보인다.

사향은 손수건을 꺼내여 누가 볼세라 눈굽을 훔쳤다.

이럴줄 알았으면 혜정양과 함께 와서 《왕》들이 산다는 방에까지 들어가볼걸, 나혼자면 어데서 무슨 일로 왔는가고 물을테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기자라면 눈이 커지고 의심을 부쩍 살테지.

그러지 않아도 저 손풍금을 연주하는 처녀와 원안에서 애들과 같이 춤을 추는 처녀가 이따금 나를 이상스레 쳐다보지 않는가.

아이, 저 어린것들도 내가 낯선 모양이지. 저것보지, 저건 분명 나를 쳐다보다가 다른 애와 충돌했다. 저 사내애는 손을 들어 까딱까딱하기까지 한다. 저 애가 방금 눈앞에 나타났던 내 혈육이라면 얼마나 좋을가. 그 애를 찾으러 어머니인 내가 이곳에 왔다면 얼마나 행복할가. 사향은 이런 생각까지 하며 미안한감이 들고 두렵기도 해서 그 건물로 들어가는 정문어귀에서 주춤주춤했다.

혜정이와 함께 오지 못한것을 또 후회하였다. 그러다가 다른 걱정은 안해도 되지만 길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하던 그의 당부가 생각나서 머리를 들고 살폈다. 저 멀리에 자기가 든 호텔의 옥상이 보였다. 다행이였다. 그는 또 한결 가벼워진 마음, 오래간만에 생의 희열이 찰랑거리는 가슴을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향은 그날 저녁 본사에 자기가 평양에 별일없이 도착했다는것과 짤막한 한건의 기사를 보냈다.

아마 소식이 없이 있으면 그러지 않아도 제나름대로 떠벌이기 좋아하는 본사나 미국언론계나 사회계가 CNN방송녀기자가 북조선에 억류되였다느니, 비우호적대우를 받는것 같다느니, 심지어 실종되였을수도 있다느니 하는 어망처망한 험구까지 마구 쏟아낼수 있기때문이였다. 기사는 조선의 주장이나 현실과 정반대로 끓어번지며 험악하게 치닫고있는 서방세계가 정신을 차리라는 의도를 담았다. 그것이 얼마나 영향력을 나타내겠는지

짧은 단신보도였다.

 

-평양의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다.

이 하늘로는 부리사나운 독수리가 아니라 평화로운 비둘기가 날아오를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우산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향은 이 기사와 함께 제딴에도 파격적이라고 생각되는 활짝 웃으며 즐겁게 뛰놀고있는 유치원어린이들과 평양의 거리를 수록한 동영상을 전송하였다.

평양에서 보낸 소식이나 기사에 대한 반응은 역시 관심이 크고 예민하였다.

여전히 세계의 초점이 평양에 모아지고있다는것이 대뜸 알렸다.

CNN방송편집국장이 보낸 답신은 친절하고 점잖은것 같으면서도 그 어떤 위구적인것이 느껴졌다. 서방세계가 알고있는 조선의 현실은 다르니 현지에서 더 리성적으로 랭철하게 평양을 보는것이 좋겠다는 의미가 담겨져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었다.

편집국장은 답신에서 이렇게 썼다.

《사향씨의 기사는 그대로 세상을 풍미할것임. CNN방송이 조롱당하지 않게 하라!》

그런 답신과 함께 몇건의 기사, 편집물도 보내왔다.

또 한사람, 공화국창건 50돐때 평양에 왔던 베이징주재 CNN방송특파기자 마이클 취노이가 본사에 들렸다가 사향의 소식을 알고 짧은 전보문을 보내왔다. 사향이가 쓴 기사를 본것 같다.

《사향씨, 주저하지 말라. 굴하지 말라. 조선은 신비한 나라고 평양은 인상깊은 도시다. 귀국때 베이징에서 만나자. 마이클 취노이》

무엇을 주저하지 말고 굴하지 말라는것인지 어쨌든 퍽 고무적이였다.

그런데 CNN방송이 조롱당하지 않게 하라는건 무슨 뜻인가. 그건 분명 심사숙고해서 미국의 국익에 저촉되지 말고 방송회사의 명예도 손상되지 않는 기사를 보내달라는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내가 미처 평양에 체류하기도 전에 벌써 북조선편을 든다고 여기는가? 평양의 립장을 대변해준다고 의심을 가지는가?

아니다!

사향은 이 시각 그 어떤 불쾌감보다도 그들의 억측이나 주장에 당당히 도전해보고싶은 충동이 불쑥 치밀어올랐다.

사향은 편집국장이 보내온 편집물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페부로 느끼면서 이제부터라도 세계가 초점을 두고있는 조선의 현실을 그대로 말하리라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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