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6 장

3

 

피뜩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불찰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날 아침. 사향은 충격적인 소식에 접하여 몹시 흥분되여있었다.

호텔의 자기 방에서 평양방송의 아침보도를 들었는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조선의 긴박한 군사정세와 《광명성-2》호발사와 관련되는것이였다.

남자방송원의 격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사향은 라지오앞에 한걸음 더 다가앉으며 귀를 바싹 강구었다.

보도가 끝난 후 방송에서는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힘찬 음악이 한동안 계속되였다.

바로 그 소식을 듣고 사향은 이날 그처럼 달게 들던 아침식사도 설치였으며 혜정을 기다려 호텔정원에서 서성거렸던것이다. 그러다가 그를 보자 정신없이 마주 달려갔다. 가방은 분명 그때 앉았던 의자에 그냥 놔둔것이 틀림없는것 같다.

화는 쌍으로 온다더니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사향에게 또 다른 불행이 덮쳐들었다.…

 

×

 

《얘 사향아, 네가 어떻게 여기에 와서 잠을 자니? 이젠 그만 일어나려무나.》

먼곳에서 울려오는 소리처럼 아슴푸레 들렸다. 그건 분명 어머니목소리같다. 일어나야겠는데 몸은 왜 이렇게 노그라지는가. 좀더 자볼가.

《얘 사향아, 넌 왜 벌써 우리를 따라와서 이런데 누워있는거냐? 일어나거라.》

역시 먼곳에서 울려오는 소리다. 석쉼하고 좀 엄한 기가 느껴지는것으로 보아 분명 아버지목소리같다. 지금까지 내가 잠자는것을 탓해본적 없는 아버지가 어째서 저렇게 소리를 지를가.

《애아비야, 애가 좀더 자게 놔두려무나. 먼길을 이렇게 찾아와서 함께 있으니 오죽 좋냐.…》

저건 할머니의 목소리다. 나를 두둔하는 말같다. 아버지, 어머니는 언제 오시고 할머니는 또 어떻게 된것인가? 세상을 떠나신줄로 아는 부모님들과 할머니가 어떻게 내곁에 있을가.

이승말고도 저승이라는것이 있다더니 내가 지금 할머니나 부모들이 먼저 간 그곳에 와있는게 아닌가. 그래서 거기서 마음놓고 잠든 나를 보고 소리쳐 깨우는것이 아닐가.

일어나긴 나야겠는데, 왜 이렇게 옴짝할수 없을가.

사향은 아까보다도 더 가늘어지는 그 누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천길나락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또 귀전에서 도란도란, 두런두런하는 말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몸은 왜 이렇게 비틀어짜는것처럼 아플가. 복부의 어디에다 누군가 쇠말뚝같은것을 박아놓고 무거운 메로 떵떵 때리는것 같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고 신음소리를 냈다.

《의사선생님, 환자가 혼수상태에서 깨는것 같습니다.》

조용조용한 녀자의 목소리다.

《음- 정신이 드는 모양이군.》

이번에는 좀 웅글은 남자의 목소리다.

《아직은 안정하게 해야 합니다. 저렇게 몸을 뒤틀거나 움직이게 해선 안됩니다. 출혈을 멈춰세웠으니 수술준비를 합시다.》

느릿느릿하나 지금까지의 말들을 눌러버리며 주장하고 지시하는 다른 목소리가 또 들렸다.

그다음은 또 정적, 그것을 깨뜨리며 달그락소리, 팔을 조심히 걷어올리더니 예리한 그 무엇이 꼭 찌른다.

잠시후 아픔은 한결 가셔졌다.

사향은 지금 평양의 어느 한 병원 구급실침대에 누워있었다. 그 자리에는 환자말고도 그를 후송해온 혜정이와 그의 련락을 받고온 일군, 병원기술부원장과 과장, 의사, 간호원들 여러명이 심중한 얼굴로 서있었다.

몸을 뒤틀던 사향이 다시 잠든것처럼 조용해지자 둘러섰던 그들은 방벽을 따라놓은 쏘파와 의자들에 조용히 앉았다.

의사 한명과 간호원 한명이 환자의 호흡과 맥박, 혈압상태를 놓치지 않으려고 침대가까이에 의자를 당겨놓고 사향의 얼굴과 의료기구들을 예리한 눈길로 번갈아 살폈다.

《기술부원장선생님, 수술은 꼭 해야겠지요?》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생명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요?》

일군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수술준비를 하는 동안 환자의 상태를 좀더 관찰해봅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사선생들만 믿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말이 큰 위안으로 된것 같았다. 일군은 이번에는 혜정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는 사향이 평양에 도착하는 날 마중을 나왔던 최성훈이였다.

《도대체 어찌다가 이런 일이 생겼소?》

그때까지도 혜정이는 자기의 옷매무시며 얼굴이며 목덜미에 내돋은 땀을 닦고 바로잡을 생각조차 못하고 저쪽의자에 망연자실해서 앉아있었다.

아마 사경에 처한 사향이를 병원까지 후송해오느라고 어지간히 혼을 뽑은 모양이였다. 최성훈이 자기더러 사연을 물어서야 하얀 손수건으로 입언저리며 목을 자근자근 눌러 땀을 훔치고나서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떼였다.

《오늘 아침따라 사향선생은 몹시 흥분되여있었습니다. 여느때없이 호텔밖 정원의자에까지 나와 앉아있었는데 나를 보자 황급히 일어나 마주 달려왔습니다.

나는 내가 늦었나 해서 손목시계를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날보다 10분나마 호텔에 빨리 도착한셈이였습니다.》

《그때 벌써 몸이 불편하여 나와 기다렸던게 아니요?》

《그런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도 무슨 일이 있는것 같아 물었지요. 선생님, 어찌된 일입니까? 이렇게 일찍부터 밖에 나와계시니…하고 말입니다.》

《동무와 사향선생사이에는 벌써 언니, 동무라고 부르게 됐다면서?》

《그런 약조가 있었습니다. 같은 녀성인데다가 선생이 조선사람이여서 그런지 인차 친숙해졌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지.》

《그렇지만 그런 부름은 단둘이 있거나 생활적인 계기때고 사업상이나 공적용무인 경우에야 제가 자기 처신을 바로해야 할게 아닙니까.》

언니, 동무라고 서로 부른다고 해서 처신을 바로 못한다고 할수야 없지. 그건 그렇구, 그래서…》

《그랬더니 사향선생이 오늘은 날씨까지 참 기막히게 좋아. 혜정이, 저 살구나무에 꽃망울이 커가는걸 보라구. 이쪽 공원울타리를 돌아가며 있는 개나리는 며칠 안 있어 필것 같애.이러며 이런 좋은 날에 참관을 간다니 마음이 막 들뜬다구 했습니다. 나이는 나보다 퍽 많은데 꼭 사춘기의 처녀같이 발랄하구 마음이 붕 떠있었습니다.》

《음, 그랬을테지. 자기가 태여난 곳은 아니지만 선친들의 고국이 아니요. 우리 나라의 사계절은 다 좋지만 그래도 봄날이야 얼마나 더 좋소. 그래서…》

최성훈은 버릇처럼 또 재촉했다.

《사향선생은 혜정이, 오늘 아침 소리방송보도를 들었어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보도 말이야., 들었어요. 여기 로동신문에도 실리지 않았나요.나는 마침 내가 들고갔던 신문을 내보였습니다. 사향선생은 한참 들여다보더니 나에게 묻겠지요.》

혜정은 처음보다는 퍽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때 그들 둘사이에는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혜정이, 조선은 한다 하면 하는 나라니까 인공지구위성발사두 할거구 여기 중대보도에도 있는것처럼 일본이나 미국사람들이 그것을 요격한다면 그 행위도 가만 놔두지 않겠지?》

《그야 뭐 물을거나 있습니까. 우리 인민군대는 빈말을 모른답니다.》

《그럼 전쟁이 아닌가요?》

《그럴수도 있지요.》

《그런데도 평양은 이렇게 평온하구 정상적인 생활이 흐르구있으니 나로서는 잘 리해가 되지 않아.…》

《선생님은 그래서 이렇게 일찍 밖에 나와 날 기다렸나요?》

사향은 대답대신 혜정이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머리를 몇번 끄덕였다.

《선생님, 선생님도 세계를 놀래웠던 푸에블로호사건을 아시지요?》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데 있겠어.》

《그때도 우리 나라 정세는 요즈음처럼 팽팽했답니다. 미국놈들의 간첩배가 우리 나라 령해 깊숙이 원산앞바다에까지 들어와 정탐행위를 했지요. 용감한 우리 해병들 몇명이 배에 올라 80여명이나 되는 승무원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배까지 나포했지요. 붙들린 놈들은 고스란히 자기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인정했답니다.

그런데 미국놈들이 얼마나 오만무례하고 날강도들인가 좀 보세요. 우리더러 붙잡은 배를 고스란히 돌려보내라는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산을 폭격하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거지요. 세상사람들은 그때 정말 우리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는줄 알고 속이 한줌만 해있었어요. 덩지 큰 나라들까지 겁을 잔뜩 집어먹고 우리더러 미국에 배를 돌려주든가 좋게 문제를 풀라는겁니다.

정신빠진 얼간망둥이들이지요.

우리 수령님께서는 미국놈들의 그런 무분별하고 강도적인 행위를 발아래로 굽어보시며 단호하게 선언하시였습니다.

미국놈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단호히 맞받아나가 싸워 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섬멸소탕할것이라고… 그러시면서 정세가 그처럼 긴장하고 준엄한 때이지만 호탕하게 웃으시며 일군들에게 우리 나라에서 래일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오늘 밤12시까지는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답니다.

어디 그때뿐인줄 아세요? 판문점사건이란 말을 들어보신적 있습니까?》

《혜정이, 그 일도 잘 알아요. 남조선에 와있는 미국군인들이 판문점비무장지대에서 합의도 없이 나무를 망탕 찍으면서 정전협정을 위반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던가요? 일명 판문점도끼사건이라고도 하는…》

《호호… 사향언닌 모든것을 환하게 아시니까 말하기가 재미있어요.》

《그렇지 못해.…》

《그때도 미국놈들은 저들이 잘못을 저질러 응당한 징벌을 받았는데 사죄할 대신 보복을 하겠다, 전쟁을 일으키겠다 기광이 나서 날뛰였습니다.

전쟁을 하겠으면 하자,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날이 네놈들은 저 하늘과 해를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고 우리로서는 네놈들과 총결산하고 조국통일을 이룩하는 날이라는것을 똑똑히 알라, 우리 인민군대는 이렇게 벼르고있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우리의 정일장군님께서 인민군지휘성원들을 부르셨답니다. 그들은 모두 나라의 정세가 전쟁전야에 있는것만큼 장군님께서 인민군대의 싸움준비와 관련한 중요한 말씀이 계실것이라고 생각하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글쎄 그들을 환하게 웃으시며 맞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뜻밖에도 오늘 동무들과 함께 지금 한창 건설하고있는 만수대예술극장앞 공원을 어떻게 꾸리고 거기에 놓을 자연바위들을 어떻게 운반해오겠는가 하는 문제를 토론해보자고 이렇게 불렀다고 말씀하셨답니다.

세상에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처럼 강철의 담력과 드놀지 않는 배짱을 지니신 천출명장은 없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장군님께서 계시는데 어데라고 적들이 함부로 범접해요. 일본놈들이나 미국놈들 하내비가 덤벼들어도 우린 눈섭 한오리 까딱 안해요.

언니, 내 말이 맞나 틀리는가 하는건 이제 두고보시고 멋진 글을 한편 쓰세요.》

혜정은 너무도 자신만만하게, 너무도 흔연히 말하였다. 사향은 놀라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은 바로 이틀후인 오늘 사향은 참관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승용차안에서 복부동통을 호소하였고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전에는 힘들게 자기의 가방을 잃은 사실을 말했던것이다.

의학지식이라고는 간단한 외상처치나 할줄 알고 가정약같은것을 사용하는것밖에 모르던 혜정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차를 멈춰세우고 뒤좌석에 옮겨앉았다.

《혜정이, 별일 없을거예요. 그전에도 드문히 이런 증상이 있었어,… 약을 먹으면 되겠는데… 가방을 잃어서…》

《가방을 잃다니요? 그건 또 무슨 일이예요?》

혜정은 또 한번 놀랐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쩌다가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연방 들이닥치는가.

혜정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사향의 손을 주무르며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언니, 사향언니! 힘을 내세요. 조금만 참아요.… 운전사동무, 빨리 병원으로…》

혜정이 다급한 소리를 하였다.

《기자선생이 다른 나라 사람인데 외국인병원으로 가야 하지 않을가요?》

나이지숙한 운전사가 긴급한 정황인데도 용케 사리를 가려가며 물었다.

《아니예요! 상태가 급하니 우선 가까운 병원에 들어갔다가 보자요.》

혜정은 그럴 경황이 못된다고 재촉하였다.

그렇게 해서 이 병원에 들어왔던것이다.

그동안 사향은 끝내 의식을 잃고말았다.

사연을 듣고난 최성훈은 한동안 아무말없이 침울한 표정그대로 있더니 나무람 비슷한 소릴 했다.

《난 혜정동무가 퍽 찬찬하고 세심한걸루 알고있는데 선생이 손가방 잃은것두 모르고 지내다니…》

《내 잘못이 큽니다. 선생의 사생활에까지 간섭하는것 같아서…》

《글쎄 동무의 그 생각도 틀리는건 아니구. 해당 기관에랑 호텔에랑 알려서 그 문제도 알아봅시다.》

《알겠습니다.》

혜정은 여전히 생기없이 대답하였다.

그러는데 기술부원장이 두사람에게 다가와 조용조용 알려주었다.

《환자의 병이 깊은것 같습니다. 검사소견들이 나오면 확정되겠지만 상태는 중합니다. 하혈과 복강에서의 출혈을 많이 했습니다. 곧 수술을 하려고 합니다.》

아직 나이가 그리 많아보이지 않지만 리지적이고 침착성이 느껴지는 기술부원장은 일군에게 치료결심을 알려주었다. 곁에 청진기를 들고서있는 대머리진 의사가 동감이라는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기술부원장보다 나이는 어지간히 많아보이지만 눈빛이 예리하고 손이 류달리 매끈하고 나긋나긋해보였다.

간호원 한명이 발자국소리를 죽이면서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 여러장의 실험검사표들과 필림이 들려있었다. 보는족족 곁에 선 대머리의사에게 넘겨주었다. 어떤 장은 함께 보면서 수군수군 토론하기도 했다. 그러고나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환자를 수술장으로 옮기시오. 곧 수술해야겠소. 집도는 나와 박선생이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술부원장의 지시와 대머리의사의 대답은 단호하고 명백하였다.

의료일군으로서의 실력과 권위, 자신심이 그 한마디의 말들에 그대로 담겨져있는것 같았다.

간호원들이 밀차를 끌어다 환자를 옮겨눕혔다. 방안천정의 밝은 불빛을 받은 사향의 얼굴은 피기 한점없이 창백해보였다. 혜정이 눈물이 그렁해서 간호원들을 도우려다가 그들이 만류하자 두손을 가슴에 얹은채 호- 하고 가는 한숨을 내쉬였다.

수술장으로 들어가려는 기술부원장에게 최성훈이 한마디 하였다.

《외국인병원으로 이송하는 문제는 수술이 끝난 다음 본인의 의향이랑 들어보고 요구대로 합시다.

기술부원장선생, 이 기자는 미국에서 온 해외동포3세녀성입니다. 선친들의 고국을 꼭 찾고싶어 처음으로 평양에 왔는데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어련하겠습니까마는 최선을 다해주길 부탁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비록 이국민이 되긴 했지만 우리 동포의 후손이 고국에 왔다가 이런 일을 당했으니…》

《안내를 맡은 혜정동무에게서도 들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화가 복으로 될지 알겠습니까.》

젊은 기술부원장은 빙그레 웃으며 안심시켰다.

그 웃음이 불안하던 최성훈과 혜정의 마음을 한결 가셔주었다.

우리 당이, 사회주의제도가 키운 의료일군들이 아닌가. 사향선생은 꼭 소생하고 건강을 회복할것이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우며 수술장안으로 들어가는 사향을 바래였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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