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6 장

4

(1)

 

《아이! 정신이 좀 드셨군요.》

사향이 눈을 떴을 때 머리우에서 이런 탄성과 말소리가 울렸다.

얼굴은 수척하지만 숱이 좀 성긴 머리칼을 단정히 빗어넘긴 중년녀인이 기쁨이 실린 얼굴로 내려다보고있었다. 눈길이 류달리 부드럽고 그윽하였다. 곱게 생긴 입귀에도 웃음이 비껴있었다.

그는 의자를 끄당겨다 가까이 앉으며 사향의 가슴노리에서 약간 들린 하얀 담요깃을 조심히 눌러주었다.

깊은 잠에 들었다가 깬것처럼 사향은 눈을 뜨고 한동안 그채로 있었다. 영문을 알수 없었다. 미국 애틀란타에 있는 자기 집 방도 아니고 평양에 와서 든 호텔방도 아니였다. 고즈넉한 정적이 흐르는 방안에서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유난히 채깍거렸다. 좀더 눈길을 돌려보니 바로 머리맡에 점적대가 놓여있었다. 벽 한쪽에는 자기가 누워있는것과 같은 하얀 하불을 씌운 침대가 있었다.

(내가 왜 이런 곳에 누워있을가? 그윽한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고있는 이 녀인은 누구일가? 연청색줄이 간 좀 후렁해보이는 환자옷을 입은것을 보면 혹시 저 침대를 차지하고있는 환자가 아닐가. 그러니 나는 지금 병원침대에 누워있는것인가?)

사향은 정신을 차리는 순간 눈에 설게 안겨드는 방안모습과 녀인, 떠오르는 여러가지 의문으로 하여 다시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두눈을 도로 감으며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몹시 괴로운가요? 의사선생을 부를가요?》

기쁨이 느껴지던 처음보다 퍽 낮고 근심이 실린 목소리였다.

사향은 스르르 다시 눈을 떴다. 내려다보는 녀인쪽으로 머리를 약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뉘신지?…》

《내가 미처… 이 호실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있는 환자랍니다. 서경림이라고 해요.》

《여기는 병원인가요?》

《그래요. 선생님은 어제밤 큰 수술을 받았답니다.》

《내가요?》

《그래요.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원들이 머리맡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선생님의 호흡이 고르로와지고 잠드신것을 보고서야 잠간 자리를 떴답니다.

이제 곧 나타날거예요. 의사선생님들이 선생이 정신을 차린것을 알면 무척 기뻐할겁니다.》

녀인의 목소리는 퍽 다정하고 얼굴에서는 따뜻한 미소가 흘렀다.

《내가 어떻게 병원에 왔을가요?》

《제가 곁에서 듣자니 선생님은 어데로 참관을 가셨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동통을 호소하며 의식을 잃었답니다.》

사향은 그 말을 들으며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정신을 가다듬어 지나간 일을 더듬어보았다. 엷은 안개발같은것이 걷히며 승용차안에서 동통으로 몸을 뒤틀던 일, 땀을 철철 흘리며 혜정이가 손을 주물러주며 어쩔바를 몰라하던 일이 떠올랐다.

안내 혜정이는 지금 어데 있는가.

내가 실신상태에서 실려왔다면 병원측과는 누가 교섭하고 진찰비와 수술비, 입원비는 누가 지불했을가. 내 몸에 흘러들었을 약값은 누가 물었을가.

당장 생명이 꺼져가도 돈이 없으면 문전거절당하는 미국같은 나라라면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다는 내가 아직 목숨이 붙어있을가.

조선이라고 다를바 없지 않을가.

한데 나는 수술을 받았고 이렇게 병원침대에 누워있으며 정신을 차리지 않았는가.

이런 때 돈이 들어있는 가방을 잃었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안내 혜정이 혹시 나의 치료교섭때문에 땀흘리며 뛰여다니는것이 아닐가.

의식을 차리자 사향은 새로운 근심이 가슴을 꽉 그러쥐였다.

《선생님, 뭘 좀 마시겠어요?》

녀인이 조갈든 입술을 감빠는 사향을 보자 머리를 수그리며 물었다.

사향이 도리머리질을 했다.

《하긴 이제 선생님들이 오신 다음에 물을 마시고 음식도 들자요. 제가 가서 의사선생님을 데려오겠어요.》

《아니, 괜찮아요. 그냥 앉아…》

사향은 그 녀인이 훌쩍 일어서면 방안에 혼자 남는것이 두려운지 담요아래에서 손까지 내밀며 만류하였다.

《선생님, 몹시 괴롭지 않으면 내가 들은 이야기나 할가요?》

《어서 그래주세요. 고마와요.》

사향은 베개우에 반듯이 놓았던 머리를 경림이쪽으로 약간 돌렸다.

그러느라고 들리운 담요깃을 이번에도 경림이 조심히 눌러주었다.

《병원에 들어와서 수술을 받길 참 잘하신것 같습니다. 의사선생들이 혜정동무에게 말하는걸 들으니 선생님의 병은 퍽 오래되고 중했다고 합니다.

제때에 수술을 했으니 어려운 고비는 넘겼대요.》

《혜정씨는 집으로 갔겠지요?》

《아니예요.》

《그럼?》

《어제밤 수술을 할 때 출혈을 많이 한 선생님에게 갑자기 피가 요구되였답니다. 피형이 같은 혜정동무는 더 말할것두 없구 련락을 받고 달려온 일군들과 병원의사, 간호원들이 저저마다 피를 바쳤답니다.

혜정동무는 그러고도 선생님때문에 뭘 좀 알아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답니다.》

《나에게 그가 피를 바쳤단 말이예요? 의사, 간호원들까지요?》

그때 사향의 눈은 번쩍하였다. 짙은 두눈섭이 곤두서고 머리까지 들려고 했다.

그러는것을 경림이 조심히 눌러놓았다.

《내가 너무 서둘러 말해서… 선생님은 흥분하시면 안되겠는데…》

《아니예요! 아니예요!》

사향은 경림을 올려다보던 눈길을 천정쪽으로 옮기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는 그의 눈굽에서 맑은것이 솟아 하얀 베개잇에 떨어졌다.

그러는데 입원실나들문이 열리면서 의사, 간호원들이 들어섰다.

경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알려주었다.

《기자선생님이 정신을 차렸어요.》

《그래요?! 어디 좀 봅시다.》

기술부원장이 기뻐하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밤사이에 얼굴이 수척해진것 같았다. 대머리진 의사와 간호원들도 여간 좋아하지 않았다.

기술부원장이 경림이 내주는 의자에 앉으며 사향의 얼굴을 살폈다.

그때까지도 사향의 눈굽에서는 눈물이 멎지 않고있었다. 경림이 그런것을 보고 머리맡에서 수건을 들어 사향의 관자노리를 조심히 눌러주었다.

《선생님, 큰 수술을 용케 참고 견뎌냈습니다. 의식까지 차렸으니 이젠 됐습니다.》

기술부원장은 이러며 뒤에 따라들어온 일행을 돌아보았다. 대머리진 의사도, 치료함을 든 간호원도 머리를 끄덕이며 함께 기뻐하였다.

기술부원장이 간호원에게 자리를 내주며 어서 체온, 혈압, 맥박들을 재보라고 했다. 간호원이 익숙된 솜씨로 그 모든 일들을 하였다.

한참후에 귀에 꼈던 청진기를 벗기며 간호원이 기술부원장에게 뭐라뭐라 조용히 알려주었다.

《그 지표들이면 경과가 무척 좋은것 같소. 아직 미열이 좀 있는것은 수술후과요. 그것도 오늘 하루동안만 주사를 맞고 안정하면 없어질것 같소. 간호원동무, 이제부터 시간을 어기지 말고 주사와 약을 지정해준대로 사용하오.》

《알았습니다.》

기술부원장이 활기에 넘쳐 말하자 입원실분위기는 더욱 밝아졌다. 환자를 보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하는품이 도무지 남같지 않았다. 마치 오래동안 사귄 친구이거나 친혈육, 친지들을 대해주는것 같았다.

사향은 기술부원장의 시원시원한 그런 말을 듣고 입원실안의 밝은 분위기를 느끼면서 이젠 자신에게서 생명의 위험고비가 사라졌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이런 때 혈육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곁에 있어가지고 환자인 자기를 대신하여 사례를 해야 할게 아닌가. 인사말이라도 해야 할게 아닌가. 만리 먼곳에 혼자 와서 일을 당하고보니 목숨을 건지고도 보답은커녕 말 한마디 변변히 못하는 이런 인사불성이 어데 있는가.

아직도 꼭 감고있는 두눈에서는 뜨거운것이 계속 솟구쳐 흘렀다.

경림이 또 한번 닦아주니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자기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였을것이다.

도무지 어찌했으면 좋을지 몰라 사향은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선…생님, 고…고맙습니다.》

사향은 세상에 나서, 더우기 철들어서 진심을 담은 이런 말을 처음으로 하는것 같았다.

《고맙긴요. 마음을 놓으십시오. 선생님은 이번에 평양에 오시길 참 잘한것 같습니다.》

기술부원장은 간호원이 일어선 의자에 다시 앉으며 사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젠 환자와 마음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을만큼 상태가 좋은것 같았다.

《어제밤 이 박선생과 함께 수술하면서 보니 기자선생은 어데선가 한번 수술을 받았던적이 있은것 같던데요.》

뒤에 선 대머리진 의사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사향은 그 말을 듣자 머리를 알릴락말락하게 끄덕이며 다시 눈을 감았다. 미간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비꼈다. 그것은 수술부위의 동통때문이 아니였다. 도무지 돌이켜보고싶지 않은 추억이 그를 괴롭히기때문이였다.

이제는 20여년세월이 흘렀다. 그 몸서리치는 일을 어떻게 되살릴수 있단 말인가.

…마가을 찬비가 쏟아지던 그밤, 라스베가스로 가겠다고 돈을 내라고 강박하던 《남편》이라는 사내는 요구를 거절당하자 야수로 변해버렸다. 주먹질은 성차지 않는지 죽어라 하고 들이차던 발길질, 새 생명이 꼼지락거리던 배안에서 찌를듯 한 예리한 아픔이 전신으로 퍼지더니 아래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침 아버지가 이 일을 알고 병원에 실어갔으나 치료비를 먼저 내지 않았다고 문밖으로 밀어내였다. 의식을 잃은 후에도 하혈은 계속되였다.

아버지가 돈을 가지고 허겁지겁 달려와서 수술을 받았다.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그후부터 사향은 드문히 복부동통과 하혈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동안 눈을 감고 고통스러워하는 사향의 얼굴을 살피던 기술부원장은 아까보다 퍽 분개스러워하며 조용히 뇌였다.

《어느 나라의 병원에서 누가 수술했는지는 몰라도 의사로서의 본분이나 인간애는 고사하고 초보적인 량심도 없었던것 같습니다. 병조를 완전히 들어내지 않고 되는대로 봉합해버린것이 확연하니까요. 그동안 선생님은 만성적으로 동통을 느꼈을것입니다. 그대로 말씀드리면 배안에 폭탄을 두고있은것이나 같습니다.》

기술부원장은 잠간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했는데 목소리가 퍽 밝아졌다. 가볍게 웃기까지 했다.

《허허… 장담을 앞세운다고 나무라지 마십시오. 이젠 아마 그런 아픔이나 출혈증상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것입니다.

허허… 그래서 아까 선생님에게 평양에 오시길 잘했다고 말한겁니다.》

대머리진 의사도 머리를 끄덕이며 느슨한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사향은 또 한번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이러고있을 때 이번에는 혜정이와 최성훈이 나타났다. 그말고도 또 몇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도 의식을 차린 사향을 보자 의사나 간호원들처럼 용케 수술을 견뎌냈다고, 이젠 됐다고 하며 기뻐하였다.

혜정은 침대곁에 무릎을 꺾고 엎드리며 사향의 손을 잡아 자기의 볼에 꼭 댔다. 자기에게 피를 바쳤다더니 손길이 좀 싸늘하고 얼굴은 파리해보였다.

사향은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사향에 대한 정성은 의료일군들이건 찾아오는 사람들이건 한결같이 뜨겁고 진실하였다. 수술후 하루가 지나서부터는 죽을 달게 먹었다. 그의 몸에 흘러들어가는 약물만 해도 엄청났다. 그것 못지 않게 정성은 더 지극하였다.

그것이 그대로 효험을 보아 사향의 병은 하루가 다르게 머리를 숙이고 원기도 좋아졌다.

한호실에 있는 서경림은 자기도 환자이면서 사향을 위해 끔찍이도 마음을 썼다. 사향이 가만 보니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누울 때면 허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것이 헨둥하였다. 그렇지만 자기가 볼세라 애써 감추며 늘 웃는 낯으로 대했다. 사향이 수술을 받고 운신 못하던 이틀동안에는 간호원이 시중을 드는것도 마다하고 세면기에 더운물을 떠다 수건을 적셔가지고 얼굴을 찬찬히 닦아주는가 하면 조갈든 입술에 꿀을 발라주기도 했다.

병을 고치는데는 약절반, 마음절반이라고 하면서 한숟가락의 음식이라도 더 들게 하려고 무던히 마음을 썼다.

혜정이는 또 어떤가. 아침이면 병원으로 출근하다싶이했다. 사향이 있는 입원실에 들어서자바람으로 발씬 웃었다. 환자에게 물어 별일 없다거나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경림이와 간호원들에게 자기가 없은 밤사이 사향의 상태를 물었다.

침대에 머리를 수그려 사향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언니, 뭘 잡숫고싶어요? 시원한 국수? 사과? 배? 귤?…》

그런 다음에는 반대로 자기 귀를 사향이의 입가까이에 대였다.

사향이 대답대신 물기가 핑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머리를 가로저으면 그는 앵돌아지는척 했다.

《엥이- 언니 막 미워.… 뭐든지 꽝꽝 잡숴야 빨리 일어나지.》

그런 때는 꼭 동생이나 철없는 자식같았다. 가슴에 와락 그러안고 볼을 맞비비고싶었다. 그 칠칠한 까만 머리를 자꾸 쓰다듬어주고싶었다.

그런 혜정이가 하루는 사향에게 외국인병원으로 옮기지 않겠는가고 의향을 물었다.

《외국인병원으로요?》

《사향언닌 외국인병원에 가야 하는건데 그날 너무 급해서 내가 가까운 이 병원에 들어오자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 병원에서 날 나가라고 쫓아내는가요?》

사향은 낯색이 달라졌다.

《쫓아내다니요?》

《그럼 수술비나 치료비를 내지 못해서요?》

《아이, 점점…》

혜정은 얼굴을 붉혔다.

《한데 외국인병원소리는 왜 하는가요?》

《오해하지 마세요. 외국인병원에서 치료받게 됐으니 그러는거구. 그래서 의향을 묻는건데…》

《혜정이, 그 병원에 가면 난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한호실에 있어야겠지?》

《그야 뭐…》

《싫어요. 다른 복잡한 문제가 없다면 날 그냥 이 병원에 있게 해줘요. 여기 의사선생님들과 경림씨랑 같이 있게 말이예요. 부탁이예요.》

사향은 애절한 눈길로 혜정을 쳐다보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알겠어요.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면 될걸.… 음- 언닌 공연히 오해하면서…》

혜정은 웃으며 밉지 않은 눈길로 사향을 흘겨보는척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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