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19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두번째로 맞이하는 해맞이초소의 새해아침은 류별했다. 광란하는 바다, 때없이 절벽을 꽝꽝 때리는 파도소리, 해변가 소나무숲을 맹렬히 빠져나오는 비명과도 같은 바람소리, 흐릿한 하늘, 휘뿌려진 모래알과 같이 허공에서 흩날리는 싸락눈…

두툼한 근무용솜외투를 입은 남용일은 중대병실밖 직일탁앞에서 근무를 서고있었다. 새해직일근무를 그가 자진하여 나섰다. 뜨끈한 교양실에 앉아 텔레비죤도 보며 설날을 즐겁게 보낼 생각이야 왜 없으랴만 지난해 가을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은 병사답게 명예근무를 서고싶었던것이다.

하지만 왜 자기만이 명예근무를 선다고 하랴, 설날을 뜻깊게 맞이하는 온 나라 인민들의 안녕과 행복을 지켜 지금 이 시각도 전연경계근무성원들은 살을 저미는듯 한 차디찬 칼바람속에서 적들과 총부리를 마주하고있었다.

용일의 눈길은 저도 모르게 온통 눈보라속에 잠긴 북쪽하늘가로 향하였다. 집에서는 설날을 어떻게 맞이하고있는지… 아버진 발전소건설장에서 돌아오지 못했을것이고 어머니만이 홀로 집에서 이 아들을 생각하고있을것이다.

중대에서는 새해아침을 즐겁게 맞이하였다. 중대장, 정치지도원을 비롯한 군관들이 모두 떨쳐나서 정성껏 설음식을 차려주었다. 정치지도원의 안해가 직접 나와서 만든 콩나물찬과 콩나물국은 정말 별맛이였다. 거기에다 설을 맞추어 담근 김치맛은 또 어떻고…

별안간 모두들 병실에서 교양실로 들어가는 소리에 용일은 황급히 근무중인 자신을 돌이켜보며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그렇지, 아까 텔레비죤에서 잠시후 중대방송이 있겠다고 했었지. …

현관안쪽에서 서로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중대방송이라면 위대한 장군님의 신년사일지도 몰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난해에는 그 전해에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신년사를 재방영했으니까. …》

용일은 가슴이 울컥해왔다. 아, 자나깨나 뵙고싶은 아버지장군님! …

중대정치지도원 지인선이 밖으로 나왔다. 그는 용일의 근무용외투목깃을 꽁꽁 여며주며 부드럽게 물었다.

《춥지 않소?》

용일은 황급히 자기를 다잡았다.

《춥지 않습니다!》

《이제 곧 텔레비죤에서 중대방송이 있게 돼. 용일동문 누구보다 최고사령관동지의 모습을 뵙고싶겠지?》

용일은 다시금 차렷자세를 취했다.

《뵙고싶습니다. 하지만 전 새해 명예근무를 자진했습니다.》

지인선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장군님의 품에 안겨 기념사진을 찍은 용일동무가 다르다는거야. 텔레비죤에 모셔질 장군님의 영상을 지켜나선건 더 큰 영광이라고 생각해.》

《정치지도원동지, 근무를 경각성있게 수행하겠습니다!》

지인선은 용일의 어깨를 다정히 두드려주고나서 다시 현관안으로 들어갔다.

용일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병영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불현듯 속보판에 나붙은 큼직한 붉은 글발들이 안겨왔다.

《혁명의 수뇌부로 향한 길목을 지켜선 심정으로! …》

지난해 언제부터였던가. 초소옆 천연바위에 새겨진 구호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에 이어 근무전 모임이나 결의마당에서는 점차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라는 웨침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만 들릴뿐 병영안은 그 어떤 인적도 없었다.

바람은 아까보다 더 기승을 부리는듯싶었다. 병영가의 잎사귀 하나없는 헐벗은 나무들이 꺾어질듯, 뿌리채 뽑혀날듯 몸부림치고있었다.

맵짠 바람은 용일의 뺨을 바늘뭉치로 마구 찔러대는것만 같았다. 게다가 발가락까지 시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최고사령관동지의 안녕을 보위한다는 긍지와 영광으로 하여 온몸이 다시금 후더워나기 시작하였다. 지금쯤 모두들 환희에 넘쳐 신년사를 하시는 장군님모습을 뵈옵고있을거야! …

별안간 운동장 한옆에서 무엇이 《뿌지직!》하며 짜개져나가는 아츠러운 소리에 용일은 깜짝 놀라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이하게 두갈래로 높이 자란 아카시아나무가 세찬 바람에 못이겨 밑둥아리까지 량쪽으로 짜개져나가고있었다. 처음 어리벙벙해서 그 광경을 그저 지켜만 보고있던 그는 흠칫 가슴을 떨었다. 그밑으로 지나간 전기선이 보였던것이다. 만약 짜개진 나무가 전기선을 친다면! …

용일은 앞뒤를 가려볼 사이없이 총알같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무작정 짜개져나가는 나무밑둥에 어깨를 들이밀었다. 바람이 우―우― 몰아칠 때마다 《뿌지직!― 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무게가 점점 그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다급한 나머지 교양실쪽을 향하여 소리를 치려다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한창 자애로운 최고사령관동지의 모습을 우러르고있을 중대군인들을 놀래운다는것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던것이다. 어깨뼈가 물러앉으며 한쪽 가슴이 짓이겨지는듯 한 숨가쁜 아픔, 후들거리는 두다리로 하여 당장 주저앉을것 같은 위구심에 이마와 목, 등골로는 삽시에 진땀이 쫙 솟구쳤다. 이리저리 나무우듬지를 휘잡아 흔드는 바람과 함께 아픔은 점차 어깨에서부터 허리부위까지 내뻗쳐 그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냈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가까스로 입술을 놀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백두밀림… 헤쳐온… 항일의 준엄한… 나날에… 》

점점 몽롱해오는 의식속에서 용일은 이쪽으로 다급히 달려오는 중대군인들의 발걸음소리를 들었다.

신년사가 끝난게로구나!… 안도감으로 하여 용일은 쫙!― 하니 완전히 짜개져나가는 나무를 어깨에 실은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뒤의 일은 그의 의식밖에 있었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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