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0월 17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구리비녀마저 꽂을수 없었던 세상

 

여기에 1880년대말에 태여나 100살이 넘도록 살면서 봉건시기와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의 반인민성과 반동성을 직접 체험한 한 녀성의 이야기가 있다.

그가 바로 평양시 동대원구역 신흥3동에서 살던 임호순할머니이다.

그는 봉건통치시기에도 인간이하의 천대와 착취를 받아왔지만 특히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에는 그보다 더한 생활 그야말로 망국노의 생활을 강요당하였다.

그의 수난에 찬 생활사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나이 50이 넘도록 물동이로 물을 길어다 팔며 가난한 살림을 유지해나가는 그는 언제 한번 쪽진 머리에 윤기나는 구리비녀를 꽂아볼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토방에 지게를 벗어놓고 방에 들어선 남편이 품속에서 구리비녀를 꺼내여 그의 손에 쥐여주는것이였다. 귀밑머리가 희여지도록 가난에 쪼들려 살면서 안해에게 구리비녀 하나 꽂아주지 못한것이 가슴에 맺혀 한푼두푼 모아두었던 돈으로 장만한것이였다.

임호순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맺혔다.

이튿날 난생처음으로 그가 나무비녀대신 구리비녀를 꽂은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장마당에 나섰을 때였다.

그를 불러세운 일제경찰놈이 커다란 칼자루로 머리에 인 물동이를 사정없이 내려치는것이였다.

순간에 물동이가 깨지며 물이 그의 온몸을 흠뻑 적셨다.

일제경찰놈은 다짜고짜로 머리에서 구리비녀를 뽑아내며 왜 이런것을 《대일본제국》에 바치지 않고 머리에 꽂고 다니는가고 호통을 치는것이였다.

침략전쟁을 아시아의 넓은 지역으로 확대해나가던 일제는 이 시기 군수품생산을 위해 우리 인민들이 쓰던 놋그릇과 놋수저는 물론이고 녀인들이 머리에 꽂은 구리비녀까지 무자비하게 강탈해가고있었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격분한 그는 놈에게 《그래 우리 조선녀인들이 구리비녀를 꽂고 다니는게 죄란 말이요?》라고 항거해나섰다.

그러자 놈은 《조선민족이 있는가. 조선사람은 일본사람이 되든가 아니면 죽어야 한다.》고 지껄이면서 구두발로 그를 사정없이 차고 때리였다.

그날 그는 구리비녀를 하루도 꽂아보지 못하고 빼앗긴 서러움, 온몸에 피멍이 지도록 매를 맞은 아픔보다도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무참히 짓밟히고 유린당해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 없는 망국노의 가련한 신세를 끝없이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나라가 해방이 되여서야 비로소 인간의 참된 삶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게 된 그는 인민을 제일로 귀중히 여기는 우리의 사회주의가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사회라고 말하군 하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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