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0월 25일 《로동신문》

 

조중친선의 년대기에 아로새겨진 형제적우의와 전투적단결의 력사 불멸하리

 

수 필

도라지처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중 두 나라 인민들은 오래전부터 자기들의 운명을 하나로 련결시키고 공동의 원쑤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여왔으며 혁명전우로서의 의리를 소중히 간직하고 동지적우의를 두터이 하여왔습니다.》

중국의 저명한 작가 곽말약이 쓴 작품들중에는 《석길영에게》라는 시도 있다.

도라지를 캐고 차도 끓이며 애오라지 형제위해 살고 죽음에 아랑곳없었다고, 눈물겨운 그 이야기가 상감령 전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고 중국의 시인이 격정을 터쳐 노래한 작품의 주인공은 과연 어떤 사람이였는가.

전쟁의 이듬해에 사랑하는 부모를 원쑤들에게 잃은 석길영은 부락의 민청위원장이였다.

당시 그 일대에서는 중국인민지원군 부대들이 싸우고있었는데 지원군전사들은 자기들을 위해 땀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 그를 누나라고 정담아 불렀다.

어느날 5. 1절을 앞두고 지원군전사들에게 별식을 대접하고싶어 산에서 도라지를 캐던 석길영은 그만 적의 포탄이 곁에서 터지는 바람에 허궁 날려갔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곁에는 지원군전사들이 있었다. 도라지바구니부터 먼저 찾는 그에게 지원군전사들은 아직 도라지가 반나마 들어있는 바구니를 찾아 쥐여주었다.

《이걸 고지에서 싸우는 동무들에게 전해주세요. 제손으로 도라지채를 만들어 대접하고싶었는데…》

이 한마디를 남기고 처녀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석길영의 마음이 깃든 도라지바구니는 중국인민지원군의 한 구분대에서 다른 구분대에로 전달되면서 전선을 돌았다. 그 바구니에 스민 조선처녀의 아름다운 소행은 중국인민지원군 구분대들에 《석길영복수조》, 《석길영습격조》를 낳았다.

앞을 다투어 자기의 뜨거운 피를 넣어준 중국전우들의 극진한 치료를 받고 퇴원한 석길영은 한쪽다리를 잃은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를 곰곰히 생각하던 끝에 상감령으로 통하는 길가에서 더운물을 끓여 지원군전사들에게 공급해주기로 결심하였다.

길옆에 가마를 걸어놓고 물을 끓여서는 물통에 채워주군 하는 나어린 처녀, 쌍지팽이를 짚고서도 늘 밝게 웃으며 더운물을 권하는 그를 보며 중국인민지원군 전사들은 원쑤들에 대한 천백배의 복수를 맹세하군 하였다.

그후 석길영은 중화인민공화국창건 10돐을 맞으며 중국을 방문하게 되였다. 그에 대한 소문은 중국땅에도 널리 알려져 낯모르는 이국의 벗들도 그를 만나면 《도라지처녀》라 부르며 친누이를 만난듯 반가와하였다. 수십년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되였어도 중국전우들의 마음속에 그는 언제나 《도라지처녀》였다.

어찌 《도라지처녀》뿐이였으랴.

전화의 그날 이 땅의 그 어디에나 지원군부대가 있는 곳에는 혈육의 정으로 지원군병사들을 품어안은 우리 인민이 있었다.

《조선의 한치 땅의 불을 끄는것이 곧 중국의 한치 땅에 번져갈 불을 막는것이다.》라고 하면서 죽음도 두렴없이 싸우는 지원군용사들을 찾아 불비속을 헤치며 고지로 오르던 전선원호대원들과 담가대원들, 나의 목숨은 잃을지언정 중국인민의 아들딸들의 생명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자기 몸으로 적탄을 막아 지원군전사의 생명을 구원하고 희생된 박재근농민과 같은 유명무명의 사람들, …

그들의 이름과 소행은 서로 달랐어도 지원군용사들의 가슴속에 청사진과도 같이 새겨진 우리 인민의 모습은 한결같이 《도라지처녀》처럼 아름답고 열렬하고 진실했다.

적기의 폭격에 불바다가 된 자기 집에 뛰여들어 지원군부상병부터 먼저 업어 구원해내온 한계화동무, 뒤미처 달려갔건만 끝내 불속에서 숨진 사랑하는 어린 동생을 부둥켜안고 그가 목메여 하던 말이 메아리쳐온다.

《달리는 할수 없었어요. 꼭같이 귀중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바로 이것이 형제적중국인민과 한전호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해온 이 나라 수천수만의 《도라지처녀》들의 진정이였다.

 

본사기자 조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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