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3월 21일 《우리 민족끼리》

 

사회주의큰집을 떠받드는 사람들 (7)

 

전체 인민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어버이로 높이 모시고 한가정, 한식솔이 되여 고락을 같이하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사회주의큰집.

이 큰집이 날이 갈수록 더욱 화목해지고 굳건해지고있는것은 과연 무엇때문인가.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자기의 깨끗한 량심을 다 바치는 길에서 인생의 참된 삶을 찾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에서 찾아보려 한다.

 

산골분교의 종소리 높이 울려가는 애국자교원

 

은률군 원평리에서 구월산 정곡골짜기를 따라 막바지로 오르느라면 자그마한 마을이 나진다.

높고낮은 산봉우리들로 둘러막혀 들리는것은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뿐인 바로 이곳에 20여명의 학생들을 위한 분교가 있다. 그 분교에서 매일 아침마다 산촌의 정적을 깨치며 배움의 종소리가 울린다.

그 종소리를 울려가는 교원이 바로 어머니의 뒤를 이어 지난 10여년세월 교단을 지켜가고있는 정미경동무이다.

10여년전 어느날 저녁 조옥희해주교원대학 기숙사의 한 호실에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한 녀학생이 있었다. 그가 바로 졸업을 앞둔 정미경동무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그의 귀전에는 그날 담임교원이 학생들앞에서 들려주던 이야기가 다시금 울리고있었다.

수십년전 구월산지구에 분교가 새로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몇명 안되는 학생들을 위해 그곳에 자원진출하여 위대한 수령님들께 기쁨을 드린 한 졸업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졸업생이 바로 정미경동무의 어머니 리금순녀성이였다.

정미경동무는 외진 산골분교에서 오랜 세월 후대교육사업에 진정을 바쳐가고있는 어머니에 대해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대학연혁사와 더불어 어머니의 한생이 세대를 이어 빛나고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마냥 높뛰였다.

그날 받은 충격으로 하여 그는 오래도록 잠을 이룰수 없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분교에서 얼마 안되는 학생들을 위해 늘 바삐 뛰여다니던 어머니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어려왔다.

학생들의 실력향상을 위해 밤깊도록 잠 못 이루던 어머니,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시기에는 얼마 안되는 식량마저 학생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군 하던 어머니에게 정미경동무는 친자식들보다 배워주는 학생들이 더 곱나 하고 투정질까지 하였었다.

그때마다 어린 자기를 품에 꼭 껴안고 이제 크면 너도 다 리해하게 된다며 남몰래 눈물짓던 어머니였다.

그날 밤 어머니가 걸어온 삶의 자욱을 돌이켜보는 정미경동무의 가슴속에는 이런 결심이 굳게 자리잡았다.

(한두명의 학생들을 위해서도 분교가 세워지고 통학렬차가 달리는 고마운 사회주의조국을 빛내이기 위해 나도 어머니처럼 헌신의 길을 꿋꿋이 이어가리라.)

이렇게 되여 정미경동무는 구월산의 깊은 골안에 있는 분교에 자진하게 되였다.

어머니와 딸이 교단에 나란히 선 분교에서는 아침이면 학생들을 부르는 배움의 종소리가 언제나 정답게 울리군 하였다.

정미경동무는 산골분교의 교단에 섰다고 하여 자신의 본분을 다한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비록 배워주는 학생수는 많지 않고 교실은 넓지 않아도 자기가 맡은 산골분교의 학생들을 지덕체를 겸비한 미래의 역군들로 훌륭히 키워내려는것이 그의 가슴속에 간직된 소중한 지향이였다.

하루수업이 끝난 후면 그는 아이들의 년령심리적특성에 맞는 교수교양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였고 학생들이 리해하기 어려워하는 수학공식을 알기 쉽게 배워줄수 있는 묘리를 찾아 밤잠을 잊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군 하였다.

그러나 정미경동무의 교수사업이 언제나 순조롭게만 진행된것은 아니였다.

몇해전 어느날 한 학생이 아버지의 손목에 이끌려 분교에 전학을 왔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분교에 온 첫날부터 학생들과 다투는가 하면 장난에 몰두하면서 수업에 자주 빠지군 하였다.

정미경동무는 그를 조용히 타일러도 보았으나 그의 생활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너무도 안타까와 정미경동무가 혁이만은 안되겠다고 도리머리를 저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학생들의 선생님이 되기 전에 어머니가 되여야 한다는것을 명심하거라. 이 세상에 자식을 타발하는 어머니는 없단다.》

정미경동무는 새로운 결심을 안고 혁이의 학습지도를 맡아나섰다.

그의 자그마한 긍정을 놓고도 교실의 벽보에 소개하여 모든 학생들이 따라배우도록 적극 내세워주었고 생일날에는 학생들과 함께 그의 집을 찾아가 학용품도 안겨주면서 축하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른아침 먼길을 떠났던 정미경동무는 밤이 퍽 깊어서야 분교에 들어섰다.

그때까지 교실에서 기다리던 어머니에게 오던 길에 산짐승을 만나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정미경동무는 등에 진 묵직한 배낭을 내려놓았다.

배낭에는 명자나무를 비롯한 나무모들이 들어있었다.

영문을 몰라하는 어머니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깊이 대상해보니 혁이가 나무가꾸기에 몹시 취미가 있어하더구만요. 그래서 분교뒤에 자그마한 양묘장을 꾸리려고 해요.》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는 딸의 얼굴을 정깊게 바라보던 어머니는 그의 터갈라진 두손을 말없이 쓰다듬어주었다.

며칠후 분교에는 자그마한 양묘장이 생겨나게 되였다.

정미경동무는 학생들과 함께 양묘장을 정성껏 관리하며 거기서 자란 나무모들을 분교주변에도 심고 금수산태양궁전 수목원에도 보내군 하였다.

나무모가꾸기에서 남다른 열성을 보이던 혁이는 어느덧 학습과 조직생활에서도 앞장선 모범소년단원으로 자라나게 되였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과정에 학생들의 마음속에 애국의 마음이 싹터 구월산지구에 있는 혁명사적지들을 더 잘 꾸려나가는 《꽃소년》, 《은방울소녀》들이 늘어났다.

정미경동무는 학생들에 대한 교수교양방법을 부단히 개선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한편 지난해 자체의 힘으로 분교개건사업을 힘있게 내밀어 짧은 기간에 그 모습을 일신시켰다.

이렇게 분교학생들을 위해 진정을 바쳐가던 나날 그는 평양에서 진행되는 뜻깊은 대회들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였다.

오늘도 정미경동무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을 가슴깊이 새기고 당 제8차대회에서 제시된 교육부문과업을 훌륭히 수행해나가고있으며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배움의 종소리, 애국의 종소리를 높이 울려가고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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